2025년 03월 24일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1 주님,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2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의지하였으니,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내 원수가 나를 이기어 승전가를 부르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3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수치를 당할 리 없지만, 함부로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

4 주님, 주님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고,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5 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주님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

6 주님, 먼 옛날부터 변함 없이 베푸셨던, 주님의 긍휼하심과 한결 같은 사랑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7 내가 젊은 시절에 지은 죄와 반역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님의 자비로우심과 선하심으로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8 주님은 선하시고 올바르셔서, 죄인들이 돌이키고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신다.

9 겸손한 사람을 공의로 인도하시며, 겸비한 사람에게는 당신의 뜻을 가르쳐 주신다.

10 주님의 언약과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진실한 사랑으로 인도하신다.

11 주님, 주님의 이름을 생각하셔서라도, 내가 저지른 큰 죄악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NIV

No one who hopes in you

will ever be put to shame,

but shame will come on those

who are treacherous without cause(3절).

 

주석

4-7절. 주님의 길, 곧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에 헌신하려는 자는 자신의 죄, 곧 하나님께 했던 반역을 회개하고 먼저 하나님과 화해해야 한다(IVP 성경주석, 679쪽)

 

[오늘의 묵상]

 

1. 주님을 기다립니다. 

시인은 주님을 기다리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분이 오셔야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수가 시인을 압박하고 있다. 

그 원수의 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에게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시인은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기에 온종일 주님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성품을 생각하며 그분을 기다린다. 

주님은 구원을 주시는 분, 

진리로 지도하시는 분, 

오래 전부터 긍휼과 사랑을 베푸신 분, 

자비와 선하심이 가득하신 분, 

공의와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이런 분을 만나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이런 주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을 멘토로 둔 사람은 복이 있다. 

당연히 완벽한 사람이야 없겠지만,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고자 노력하는 분을 멘토로 두고 종종 그의 삶을 배운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마음의 무릎을 꿇을 수 있는 멘토를 만나고 싶다. 

그와 함께 주님을 기다리는 법을 더욱 익히고 싶다.

 

2. 가르쳐 주십시오.

시인은 하나님께 당당히 요구하고 있다. 

자신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마땅히 가야할 그 길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진리로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다. 

올바른 길을 가르쳐 달라고 탄원한다. 

주님을 기다리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그분께 배우기 위해서다. 

그분의 생각, 관점, 판단, 삶의 방식, 계획… 

그분께 배워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가능한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이 좋다. 

 

배움을 멈추는 그곳에서 죽음이 시작된다. 

죽을 때까지 배움을 그치지 않으리라. 

계속 배우는 것이 좋다. 

하나님에 대해, 진리에 대해, 이 세상에 대해… 

배우고 익히고 내 것으로 삼는 과정. 

이 과정을 쉬지 않고 싶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성품을 다시 상상합니다. 

주님은 자비로우시며 공의로우십니다. 

모든 진리가 주님께 있습니다. 

우주의 원리가 주님께 있습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시뮬레이션 우주론,

천문학에서 말하는 빅뱅이론, 

온갖 종류의 과학 이론들이 판을 치지만 오직 주님께 진리가 있습니다. 

주님께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래서 저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저에게 우주의 원리와 진리를 가르치소서. 

하나님의 통치를 기다립니다. 

직접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다스려주소서.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을 회복시켜주소서. 

헌법 재퐌관들이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를 빨리 진행하게 하소서. 

국민들 사이에 분열과 반목이 더욱 심해져서 이러다가는 심리적 내전을 넘어 물리적 내전으로 치달을까 두렵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5년 03월 21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38 사울은 자기의 군장비로 다윗을 무장시켜 주었다. 머리에는 놋투구를 씌워 주고, 몸에는 갑옷을 입혀 주었다.39 다윗은, 허리에 사울의 칼까지 차고, 시험삼아 몇 걸음 걸어 본 다음에, 사울에게 “이런 무장에는 제가 익숙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무장을 한 채로는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하고는 그것을 다 벗었다. 그렇게 무장을 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40 그런 다음에, 다윗은 목동의 지팡이를 들고, 시냇가에서 돌 다섯 개를 골라서, 자기가 메고 다니던 목동의 도구인 주머니에 집어 넣은 다음, 자기가 쓰던 무릿매를 손에 들고, 그 블레셋 사람에게 가까이 나아갔다.

 

주석

38절. 다윗이 왕의 갑옷을 입고 나가면, 군인들은 왕이 직접 나간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사울은 사람들이 다윗을 자신으로 오인하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IVP 성경배경주석, 440쪽).

 

[오늘의 묵상]

 

1. 사울의 장비

 

사울은 전투에 나가는 다윗을 위해 자신의 전투 도구들로 그를 무장시켜 준다. 

사울의 심리를 상상해 본다. 

크게 두 가지 마음이 있었을 것 같다. 

하나는 다윗에게 왕의 권위를 실어 그의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함이다. 

왕의 장비를 가지고 나가면 그 자체로 영예로운 일일 것이다. 

왕이 신뢰를 보내고 권위를 부여하면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울은 다윗이 비록 실패할 확률이 높지만 작은 가능성에라도 희망을 걸기 위해서는 그에게 최대한의 용기와 격려가 필요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성경배경주석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왕의 장비를 통해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왕이 직접 전투에 임하고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의 사기는 바닥을 찍고 있었다. 

더불어 사울의 인기와 권위도 하락하고 있었다. 

골리앗의 도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왕을 보는 부하 군인들의 마음엔 왕에 대한 실망이 그득했다. 

그들에게 왕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왕의 모습을 한 다윗을 내보내는 것이 필요했다. 

 

2. 다윗의 장비

 

사울이 빌려준 전투 도구들은 다윗에게 맞지 않는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에 불과했다. 

갑옷도 너무 무겁고, 투구는 머리를 짓눌렀으며, 칼은 바르게 잡는 법도 잘 몰랐다. 

걷기도 불편했다. 

이런 장비로는 싸움은 보나마나였다. 

익숙하지 않은 도구를 사용하느니 위력을 적을지라도 익숙한 돌팔매가 나았다. 

 

다윗의 장비는 쉽고 간단했다. 

그는 자신이 원래 잘 사용하던 지팡이와 돌팔매질을 위한 무릿매를 들고 나갔다. 

시냇가에서 돌 다섯 개를 챙기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걸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돌맹이 다섯 개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다윗의 장비는 과거 맹수들을 물리칠 때 사용했던 것들이다. 

다윗의 확신은 과거 하나님의 구출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그 때 사용했던 장비를 가지고 나가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훨씬 나았다. 

하나님이 예전에 일하셨던 그대로 지금도 일하시리라 믿었던 것이다. 

과거 하나님과의 관계가 현재를 좌우하고 있다. 

과거가 현재를 살린다. 

 

3. 나의 장비

 

일상은 작은 전쟁터다. 

골리앗이 있고, 내 삶에 대한 무시와 조롱이 있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가 곳곳에 그어진다. 

내편 니편이 있고, 경쟁 구도가 형성되어 있다. 

두려움이 엄습하고, 좌절과 절망이 스며든다. 

그럼에도 다시 나아가 싸워야 한다. 

전략을 짜야 하고, 누군가를 속여야 한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끝까지 남는 자가 승리자가 되기도 한다. 

 

싸움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면에서도 일어난다. 

자책감, 죄책감, 비교의식, 불안, 걱정, 미움, 분노, 욕망… 

내면의 나와 싸워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과거에 나를 도우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나를 인도하신다. 

과거에 그분이 도우실 때, 내가 사용했던 방법과 장비가 익숙하기 마련이다. 

너무 급격한 방식의 변화, 장비의 변화는 도리어 몸을 둔하게 만들고 싸움의 의욕을 꺾는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썼던 방법을 즐겁게 쓰는 것이 낫다. 

과거의 경험과 방식이 절대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연습했던 것, 익숙하게 사용했던 것을 기본으로 삼는 것이 옳다. 

 

신앙과 삶에 있어서 내가 오랫동안 사용한 것이 바로 묵상과 에세이다.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세계에 머문다. 

그 머뭄 속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차분히 적어본다. 

통성기도도 부르짖는 기도도 침묵기도도 다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익숙한 것은 말씀에 머물며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다. 

기도문을 작성하는 것도 익숙하다. 

이것들이 나의 신앙과 삶의 장비다. 

 

전쟁터와 같은 일상의 삶에서 중요한 도구는 달리기와 기도다. 

달리기와 기도(묵상, 에세이, 기도문)는 중요하고 익숙한 장비다. 

이 장비를 가지고 일상의 많은 전투를 치렀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때로 조금씩 특별한 장비를 사용해보고 훈련해보고 싶다. 

그것도 신선하고 즐거운 일이다. 

 

[오늘의 기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모든 전투에 능하신 하나님, 

일상의 전투가 끊이질 않습니다. 

생각과 생각이 말과 말이 서로 부딪혀 날카로운 굉음임 끊이질 않습니다. 

그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지만, 불가피한 경우가 있습니다. 

저의 전투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게 하소서. 

그리고 용기있게 그 싸움에 임하게 하소서. 

무엇보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도우셨던 때를 기억하고 그 때 사용했던 방식이나 장비들을 잘 구사하도록 이끄소서. 

 

기도와 달리기로 삶의 루틴을 만들어가게 하소서. 

몸과 마음이 더욱 건강하여져서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 되게 하소서. 

고통받고 연약한 자들을 잘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3월 20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24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를 보고 무서워하며, 모두 그 사람 앞에서 달아났다.25 “저기 올라온 저 자를 좀 보게.” 군인들이 서로 말하였다. “또 올라와서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있어. 임금님은, 누구든지 저 자를 죽이면 많은 상을 내리실 뿐 아니라, 임금님의 사위로 삼으시고, 그의 집안에는 모든 세금을 면제해 주시겠다고 하셨네.”26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저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이스라엘이 받는 치욕을 씻어내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준다구요? 저 할례도 받지 않은 블레셋 녀석이 무엇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군인들을 이렇게 모욕하는 것입니까?”27 군인들은 앞에서 말한 내용과 같이, 저 자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한 상이 내릴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다.28 다윗이 군인들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맏형 엘리압이 듣고, 다윗에게 화를 내며 꾸짖었다. “너는 어쩌자고 여기까지 내려왔느냐? 들판에 있는, 몇 마리도 안 되는 양은 누구에게 떠맡겨 놓았느냐? 이 건방지고 고집 센 녀석아, 네가 전쟁 구경을 하려고 내려온 것을, 누가 모를 줄 아느냐?”29 다윗이 대들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다는 겁니까? 물어 보지도 못합니까?”30 그런 다음에 다윗은, 몸을 돌려 형 옆에서 떠나 다른 사람 앞으로 가서, 똑같은 말로 또 물어 보았다. 거기에서도 사람들이 똑같은 말을 하였다.

31 다윗이 한 말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누군가가 그것을 사울에게 알렸다. 그러자 사울이 그를 데려오게 하였다.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저 자 때문에 사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33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그만두어라. 네가 어떻게 저 자와 싸운단 말이냐? 저 자는 평생 군대에서 뼈가 굵은 자이지만, 너는 아직 어린 소년이 아니냐?”34 그러나 다윗은 굽히지 않고 사울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의 종인 저는 아버지의 양 떼를 지켜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양 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가면,35 저는 곧바로 뒤쫓아가서 그 놈을 쳐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어 살려 내곤 하였습니다. 그 짐승이 저에게 덤벼들면, 그 턱수염을 붙잡고 때려 죽였습니다.36 제가 이렇게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으니,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꼴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를 어찌 그대로 두겠습니까?”37 다윗은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 주신 주님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 그제서야 사울이 다윗에게 허락하였다. “그렇다면, 나가도 좋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길 바란다.”

1. 맏형의 꾸짖음

맏형인 엘리압으로서는 막내 동생 다윗의 행동이 맘에 안 들었을 것이다. 
이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인 전쟁터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곳이며, 게다가 지금은 골리앗 때문에 그 죽음이 더욱 가까운 곳이다. 
8명의 아들 중 이곳에 3명이 와 있으니, 그것도 참 난감하다. 
셋 다 목숨을 잃을 경우 이새의 집은 너무도 큰 슬픔에 잠길 수 밖에 없다. 
엘리압은 나머지 동생들이라도 집을 잘 지켜주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막내 동생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 전장터로 왔다는 사실에는 그나마 마음이 놓였을지는 모르나, 다윗이 그렇게 군인들에게 전황을 묻고 현 전투 상황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마뜩치 않았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다윗은 형들이 보는 앞에서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었다. 
엘리압의 생각이 거기에 다다르자 더욱 화가 났다. 
아직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왕의 기름부음을 받고, 전쟁터에 나와서 마치 자신이 영웅인 것처럼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있었던 거다. 

형 엘리압이 이해가 된다. 
형으로서 가족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동생의 무모하고 교만한 행동을 볼 때, 그를 꾸짖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다윗이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리저리 군인들에게 가서 전황을 묻고 자기 나름의 판단으로 비판하는 다윗을 그저 가만히 둘 수만은 없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전장터는 너무 위험한 곳이다. 
만약 지금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나의 가족들을 현존하는 위험으로부터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2. 사울의 만류

다윗의 언행이 왕에게까지 미쳤다. 
그리고 사울이 다윗을 불렀다. 
아마 엘리압은 이런 상황이 두려웠을 것이다. 
말이 많으면 결국 그 말에 책임을 지기 마련이다. 
다윗은 사울 왕을 보자마자 대뜸 군의 사기에 대해 말한다. 
골리앗 때문에 군의 사기가 바닥이었다. 
거기까지도 당찬데, 그 이상의 말을 해 버린다. 
자신이 나가서 싸우겠다는 것이다. 
3미터에 가까운 거구의 숙련된 싸움꾼, 골리앗과 한 판 뜨겠다는 것이다. 
다윗이 평균키였다면, 150~180cm 사이지 않았을까! 
3미터에 가까운 골리앗과 싸우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다윗은 실제 전투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다. 
사울은 말렸다. 
그러나 다윗은 그동안 야생 맹수로부터 양을 지켰던 경험을 말하며 자신이 사우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형 엘리압이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했었다. 
“이 건방지고 고집 센 녀석아”(28절)
다윗은 한 고집했다.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모욕당하는 것을 그는 참을 수 없었다. 
하나님의 군대가 사기가 꺾여 곧 죽을 것처럼 앉아 있는 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윗에게는 굳센 믿음이 있었다. 
37 다윗은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 주신 주님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
사울은 극구 말렸으나 다윗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싸우겠다는 걸 끝까지 말릴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골리앗과 대적해야 했다. 
아님 사울 자신이 나가야 할 판이다. 

사울 마음에는 다른 생각들도 있었을 것이다. 
혹시 어린 소년이 출전하여 골리앗에게 끔찍하게 살육을 당하면, 다른 군사들이 크게 분노하게 될 것이며, 그 분노가 도리어 사기를 끌어 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다윗이 워낙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단언하니, 사울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를 출전시켰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절대로 출전시키지 말아야했다. 
다윗은 아직 소년이요 전쟁터에 나가본 적이 없었으니, 그의 말을 듣는 것조차 왕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었다. 

3. 다윗의 믿음

다윗의 행동은 참으로 무모했지만, 그의 고백만큼은 대단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려주실 것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하나님이 자신을 온갖 맹수로부터 지켜주신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하나님은 다윗을 종종 구원해주셨다.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구출해주셨다. 
사자의 발톱, 곰의 발톱에서 살려 주셨다. 
다윗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골리앗과의 전투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을 살려주실 것에 대해 믿었다. 
사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와 미래에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은 100% 진실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변하기 마련이다. 
다윗은 순진한 믿음이 있었지만, 모든 사람,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의 무모한 고백과 믿음을 사용하셨다.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다. 
사울을 비롯해 그동안 이스라엘 군대에 내로라하는 장수들이 있었겠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사용하시기로 결정하셨다. 
그를 왕으로 세우기로 하셨기 때문이다.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이다. 
이제 다윗은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는 사람이 되었다. 

믿음이 먼저냐, 선택이 먼저냐? 
다윗의 경우엔 하나님의 선택이 먼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따지고보면, 아브라함, 야곱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선택이 앞선다. 
하나님의 의지가 사람의 의지나 선택보다 앞선다. 
하나님이 당신의 의지에 따라 역사를 이끌고 계신다. 
구원의 역사를 그리고 완성의 역사를…

4. 대한민국의 역사

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난 2년간 독재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187360.html
어쩌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퇴보하였는가? 
윤석열 정권의 통치기간 동안 한국은 후퇴했다. 
하나님은 대한민국을 통해 어떤 일을 이루실 계획이신가? 
하나님의 선택과 그분의 의지가 궁금하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도 필요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이끄심과 주도하심이 절실하다. 

다윗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나오길 소망한다. 
하나님의 뜻인, 사랑과 평화, 생명과 회복, 환대와 돌봄, 공평과 정의가 가득한 세상이 오면 좋겠다. 
폭력, 거짓, 우상 숭배, 탐욕, 물질숭배의 사탄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기를!!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전장터로 나아가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오늘의 기도]

당신의 영광과 나라를 위해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 
다윗을 선택하시고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어주셔서 이스라엘의 위기 상황을 돌파하도록 이끄신 하나님, 
당신을 찬양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윤석열과 그의 일단은 온갖 우상을 국가 공적 정책에 적용하고, 북한과의 전쟁을 불사하고, 살해와 폭력을 조장하는 자들이 정권을 잡았었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엄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의 계획과 행적을 파면 팔수록 가관입니다. 
군대는 3천개의 영현백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노상원의 수첩에는 수거해서 처리해야 할 사람들로 빼곡합니다. 
http://newstapa.org/article/jNZ1x
이런 자들은 옹호하는 목사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조직으로서의 교회는 절대 불변의 절대 가치를 가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가 절대 가치를 지닙니다. 
교회가 찬양받을 일이 아니고 삼위 하나님이 찬양받으셔야 합니다. 
교회를 참칭하여 폭력을 조장하고 살인자를 옹호하는 자들을 벌하여 주소서. 
이 나라를 회복시켜주시고 주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 나라의 불완전한 모델로 삼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3월 18일 화요일

 

여는 기도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1 블레셋 사람들이 또 전쟁을 일으키려고 군인을 모두 모아, 유다의 소고에 집결시키고, 소고와 아세가 사이에 있는 에베스담밈에 진을 쳤다.2 사울도 이스라엘 군인들을 집결시켜 엘라 평지에 진을 친 뒤에, 블레셋 군인들과 맞서서 싸울 전열을 갖추었다.3 그리하여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이쪽 저쪽 산 위에서 맞서서 버티고 있었다.

 

4 블레셋 진에서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는 장수가 싸움을 걸려고 나섰다. 그는 키가 여섯 규빗 하고도 한 뼘이나 더 되었다.5 머리에는 놋으로 만든 투구를 쓰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는데, 그 갑옷의 무게는 놋 오천 세겔이나 되었다.6 다리에는 놋으로 만든 각반을 차고, 어깨에는 놋으로 만든 창을 메고 있었다.7 그의 창자루는 베틀의 용두머리만큼 굵었고, 그 창날의 무게는 쇠 육백 세겔이나 되었다. 그의 앞에서는 방패를 든 사람이 걸어 나왔다.

 

8 골리앗이 나와서, 이스라엘 전선을 마주 보고 고함을 질렀다. “너희는 어쩌자고 나와서 전열을 갖추었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고, 너희는 사울의 종들이 아니냐? 너희는 내 앞에 나설 만한 사람을 하나 뽑아서 나에게 보내어라.9 그가 나를 쳐죽여 이기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다. 그러나 내가 그를 쳐죽여 이기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서 우리를 섬겨야 한다.”10 이 블레셋 사람이 다시 고함을 질렀다. “내가 오늘 이스라엘 군대를 이처럼 모욕하였으니, 너희는 어서 나에게 한 사람을 내보내어 나하고 맞붙어 싸우게 하여라.”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은 그 블레셋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몹시 놀라서 떨기만 하였다.

 

주석

4절. 블레셋은 ‘싸움 거는 자’를 앞에 배치하고, 이스라엘의 대표 장수를 앞으로 나오게 하여 단둘이 싸우자고 요구했다. 이런 개인 전투 관습 뒤에는 신(들)이 선택한 사람에게 승리를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있었다(IVP 성경주석, 425쪽). 

4절. 본문에 기록된 골리앗의 키는 약 3미터다(IVP 성경배경주석, 438쪽).

 

[오늘의 묵상]

* 골리앗의 등장

블레셋 사람들이 또 전쟁을 걸어왔다. 

사울은 이스라엘 군인들을 징집하여 전쟁터로 나갔다. 

이제 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된다. 

이번 전쟁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왜냐하면 3미터에 가까운 거인 장군 골리앗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피지컬의 장군이 딱 버티고 있으니,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든든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보기만 해도 압도당하고 만다. 

그의 외모를 성경 저자는 상당히 자세하게 기술한다.

투구, 갑옷, 각반, 놋창, 그리고 방패. 

이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그를 묘사하면 할수록 겁을 먹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 군이었다. 

 

당시의 일대일 싸움은 한 민족의 최고의 실력자가 등장하여 전쟁을 대리한다. 

각 민족의 신마다 그 민족을 위해 최고의 장수를 둘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따라서 각 민족의 최고의 싸움꾼끼리 개인 전투를 벌였을 때, 이기는 자의 신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상호간에 인정하게 된다. 

골리앗은 이스라엘을 깔보며, 이스라엘의 신도 무시하고 있었다. 

과거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자신들의 주요 도시들에 저주를 내렸다는 역사적 사실을 벌써 잊은지 오래다.

삼손이나 기드온 같은 장수가 있었으면 한 번 싸워볼 만 했다. 

사울 왕으로는 이 싸움에 응할 수 없었다. 

사울 자신도 웬만한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가 클 정도로 키가 컸지만, 골리앗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떻게 저런 괴물이 블레셋 군대에 들어갔는지 모두 의아했다. 

결국 블레셋의 신이 블레셋을 돕고 있다는 생각이 그들 머리 속에 가득하게 되었다. 

공포가 밀려온다. 

 

인생은 실전이다. 

우리 삶엔 언제든지 골리앗이 등장할 수 있다.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이 초래된다. 

상대방을 밟아야 내가 승리한다. 

그런데 그 상대방이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골리앗을 준비했을 수 있다. 

두려움에 휩싸인다. 

삶은 지금 마주하는 골리앗 때문에 고달프며, 앞으로 맞이할 수 있는 골리앗 때문에 고뇌한다. 

 

지금 나의 골리앗은 무엇이며, 앞으로 찾아올 골리앗은 무엇일까? 

 

[오늘의 기도]

많은 사람들이 골리앗을 두려워합니다. 

갑자기 등장한 압도적인 경쟁력, 전투력에 넋을 잃고 맙니다. 

그저 자신은 조그만 벌레처럼 느껴집니다. 

숨기 마련입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올바른 분별력을 주소서. 

골리앗이 아닌데 골리앗인 것처럼 느끼지 않도록 도우소서. 

진짜 골리앗이라면 내 힘으로 나아가지 않고 오직 주님의 도우심으로 나아가도록 도우소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의 힘이 여전히 막강합니다. 

마치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 편이라 믿는 듯이 행동합니다. 

기도 소리도 엄청나고 아멘 소리도 땅을 울립니다. 

그들이 마치 개신교의 대표가 된 것처럼 행동합니다. 

주님, 불법을 행하는 자들의 손을 막아 주소서. 

불법을 조장하는 자들의 입을 막아 주소서. 

 

골리앗을 맞아 싸우는 자들에게 분별력과 힘을 공급해주소서. 

과도한 두려움 혹은 부정확한 오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골리앗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고 그에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이끄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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