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 11일 화요일

 

여는 기도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11 끝으로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12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바울은 끝으로 ‘화평’을 이야기합니다(11절). 우리는 기뻐하는 것,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는 것, 서로 격려하는 것, 같은 마음을 품는 것으로 화평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11-12절).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13절).

 

모두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를 온전케 할 것입니다. 죽음과 어둠에 있는 자들을 위해 생명의 빛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분열과 갈등을 잠재우는 성령의 사귐으로 우리는 같은 마음을 품게 될 것입니다. 화평하게 지냅시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에게 문안하는 하루를 보냅시다.

 

[오늘의 묵상]

1. 대단원의 막 

고린도후서를 이렇게 오랫동안 묵상한 적도 처음이었다. 

바울의 개인적인 생각, 감정이 가장 많이 묻어나는 책이었다. 

때로는 바울의 감정이 널을 뛰는 것 같아 따라가기 힘든 적도 있었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다시 하는 것 같아 불평하기도 했다. 

허나 생각해보면, 이렇게 솔직한 글을 성인에게서 본다는 것은 행운이다. 

예수님의 바리새인에 대한 솔직한 비난을 본다는 것이 행운인 것처럼 말이다. 

거룩과 정직이 함께 갈 수 있다. 

거룩은 조용함이 아니다. 

거룩은 변하지 않는 감정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거룩은 진정성과 정직이다. 

이것은 예수님과 바울이 보여주셨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여주었던 다양한 감정은 큰 도전이 된다. 

나처럼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큰 도전이다. 

마음 속 생각과 감정에 정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수님과 바울을 모델로 삼을 만 하다. 

 

바울은 긴 편지의 마지막을 몇 가지 권면으로 할애하고 있다.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라. 

서로 격려하라. 

같은 마음을 품으라. 

화평하게 지내라. 

하나같이 소중한 덕목이다. 

여전히 고린도교회는 분열의 씨앗이 존재하고, 갈등과 긴장이 있다. 

하지만, 교인들은 기뻐해야 한다. 

예수님의 복음이 그들에게 있으며, 예수님이 그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온전함과 완전함에 이르기를 힘써야 한다. 

자유로움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나태함에 빠져서는 안된다. 

자유는 아무것도 안할 자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물론 때로는 안해야 할 것도 많지만), 선을 행할 자유가 더 중요하다. 

온전함을 추구할 자유가 생겼다. 

그전에는 꿈도 꾸지 못하는 자유다. 

이제는 온전함, 완전함을 추구해야 한다. 

서로 격려하라. 

온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서로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를 응원하고 힘을 북돋아 주어야 한다.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 그리스도의 향기와 편지, 대사로 살기 위해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이런 목표를 위해 같은 마음을 품으라. 

파당을 짓고 서로를 비난하고 나와 너가 다르다고 경계하지 말고 공통점을 찾아내고 한 마음으로 나아가라. 

그렇게 화평을 품으라. 

화평, 평화는 우리 주님이 부활하시고 처음 제자들에게 나타셔서 주신 말씀이다. 

평화가 너희에게 있기를!! 

두려움과 절망에 빠진 제자들을 위해 하신 말씀이다. 

평화가 너희에게 있기를!! 

격정적 환희에 들떠있는 제자들을 위해 하신 말씀이다. 

평화가 너희에게 있기를!!

그렇게 공동체는 하나가 되고 한 마음이 되어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걷는다. 

 

2. 삼위 하나님의 축복 

바울은 삼위 하나님의 축복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행한다. 

거룩한 입맞춤은 삼위 하나님의 축복이다. 

서로를 축복함으로 인사하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주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 축복으로 서로를 축복한다. 

손을 서로에게 펼치고 삼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사귐이 넘치길 기도한다. 

고린도후서 전체를 묵상한 지금 이 시점에 이 축복이 가지는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사도 바울의 마음에 가득한 우려와 걱정은 삼위 하나님의 축복으로 대체된다. 

우려와 걱정만으로는 공동체를 세워나갈 수 없다. 

같은 마음, 같은 노력, 같은 격려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삼위 하나님의 축복이 절실하다. 

그분의 은혜와 사랑과 사귐이 꼭 필요하다.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연합이 공동체에 녹아들어야 한다. 

그분의 선물과 사랑과 긴밀한 연결이 공동체에 녹아들어야 한다. 

그점에도 바울은 요한의 강조를 반복한다. 

삼위 하나님의 연합 가운데 제자들이 하나가 되길 그토록 바라셨던 예수님, 그 예수님의 말씀과 소원을 특유의 문장으로 강조한 사도 요한(요한복음 17장)의 글은 바울에게도 울린다. 

 

어느 기독 공동체나 이런 축복이 필요하다.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건, 조밀하게 붙어 있건 간에 기독 공동체는 삼위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다. 

은혜, 사랑, 사귐이 가득해야 한다. 

삼위 하나님의 연합의 정신이 붙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 요한, 바울이 다 강조한다. 

초기 기독 공동체의 강조는 다름 아니라 바로 삼위 하나님 안에서의 하나됨이다. 

거리와 상관없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삼위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모든 성도들이 모든 성도들을 대상으로 문안한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거룩한 입맞춤” 교회!! 

 

이런 축복의 마음을 품고 오늘도 공동체를 세운다. 

 

 

[오늘의 기도]

은혜의 예수님, 사랑의 하나님, 사귐의 성령님, 

삼위 하나님의 축복으로 저와 공동체를 축복하소서. 

하나님의 교회가 분열과 비난이 아니라 사랑과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고 인사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주 안에서 기뻐하고, 예수님처럼 온전히 되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한 마음을 품고, 평화를 누리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연합 가운데 들어가길 소망합니다. 

무뎌진 마음에 찾아오셔서 더욱 온전함으로 나아가도록 도우소서. 

있는 척, 그런 척 하지 말고 정말 진정으로 정직하게 제 자신을 주님께 올려드리게 하소서. 

 

오늘도 부담스러운 일정입니다. 

감당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감당하도록 도우소서. 

사랑의 마음, 은혜의 마음, 사귐의 마음이 채워지게 하소서.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님, 

우리 나라의 역사도 주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선거제 개혁을 위해 국회 전원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승자독식, 반사이익의 정치, 혐오의 정치가 100%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함께 망하는 길이 아닌 서로 성장하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기득권 정체 세력의 허리를 꺽어 주시고, 나라 발전을 위한 새로운 대안이 만들어지게 하소서. 

변화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10일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5 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해 보고, 스스로 검증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모른다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

6 그러나 나는 우리가 실격자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7 우리는 여러분이 악을 저지르지 않게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합격자임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실격자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여러분만은 옳은 일을 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무언가 할 수 있습니다.

9 우리는 약하더라도, 여러분이 강하면, 그것으로 우리는 기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완전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10 내가 떠나 있는 동안에 이렇게 편지를 하는 것은, 내가 가서, 주님께서 주신 권한 가지고 사건들을 처리할 때에, 너무 엄하게 대할 필요가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권위는 여러분을 넘어뜨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세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NASB

For we rejoice when we ourselves are weak, but you are strong; this we also pray for, that you become mature(9절).

 

이제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를 시험해 봐야 합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들은 실격자입니다(5절). 바울의 소망은 고린도 교인들이 옳은 일을 행하며, 진리 안에 강하게 서는 것입니다(7-9절). 이 편지의 목적도 고린도 교인들을 바르게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10절).

 

바울은 충분하고 끈질기게 자신을 소명했습니다. 그를 의심하던 사람들은 이제 자기 자신을 의심해야 합니다. 약하고 어리석다는 사실은 실격자를 가르는 척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도리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강해집니다. 나의 믿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면, 그 안에서 강하고 완전하게 되기를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1. 스스로 시험&검증

바울은 성도들에게 스스로 믿음에 있는지 시험하고 검증하라고 요청한다. 

무엇보다 그 시험과 검증의 핵심은 예수님이 자기 안에 있는지에 대한 인식과 확신이다. 

예수님은 성도들 마음 속에 거하면서 성도들을 변화시키신다. 

예수님의 숨과 영이신 성령님은 성도들 내면에서 성도들을 새롭게 만드시는 분이시다. 

그리스도의 편지요 향기로 만드신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 

그 예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확신하고 있다면 합격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실제로는 교회에는 나오지만 구원받는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교인들은 자신의 믿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이 자기 안에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가? 

예수님이 자기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확신을 하고 있는가?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는 확신이 있는가? 

스스로 물어보고, 대답해보고, 시험하고 검증해야 할 일이다. 

 

자신을 속이면서 대답할 일이 아니다.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면서 변화의 움직임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바울은 몇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1) 자신 안에 예수님을 인식

2) 악을 저지르지 않음

3) 진리를 위해서 일함

4) 완전함을 향함

5) 자신 뿐 아니라 상대의 성장을 도모함

예수님을 안에 품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변화가 있다.

악을 일부러 저지르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진리를 위해 일한다. 

진리를 거스르는 일을 거부한다. 

점점 완전해지길 위해 노력한다. 

물론 완전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성도의 성장을 기뻐하고 그것을 추구한다. 

이런 기준으로 자신을 시험하고 검증할 필요가 있다. 

 

2. 성도를 세우는 권위

바울은 자신이 권한과 권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늦게 사도가 되었지만, 다른 사도들의 권위와 견주어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많은 교회가 그것을 인정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던 사도들도 인정했다. 

그런데 그 권위는 단순히 설교를 위한, 사역을 위한 권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성도들을 세우기 위한 권위였다. 

성도들을 징계하고 꾸중하고 판단하는 권위가 아니라,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옳은 일을 하도록, 더욱 완전함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권위였다. 

권위가 없으면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가 기준을 마련하고, 급기야는 자신 맘대로 기준을 바꾼다. 

자기가 만든 기준도 기분따라 바꾼다. 

권위가 없으면 공동체는 무너진다. 

건강한 권위, 사람을 살리는 권위가 필요하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가서 처리해야 할 일과 사건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교회의 권위자로서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잘못이 교회에 너무 큰 문제가 되면, 적절하게 치리, 징계, 권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을 교회로부터 떠나가게 만드는 조치가 아니다. 

그 사람이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지도록 돕기 위함이다. 

권위를 가지고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 권위자는 더욱 정결하며 높은 도덕 수준을 유지해야 하며, 교회 공동체 전체를 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완전에 가까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디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기에 바울은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성도들을 위해서 말이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와서 잘잘못을 분별하고, 엄하게 치리하기 전에 스스로 자신들의 행위를 돌아봐야 했다. 

과연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예수님을 점점 닮아가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성도들이 할 일이다.  

그리고 바울도 스스로 그러해야 했다. 

 

자신을 권위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 권위를 다른 사람의 성장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신의 쾌락을 쫓아 권위를 남발한다. 

위계를 사용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종속시켜버린다. 

가스라이팅, 그루밍… 범죄다. 

그래서 점점 사람들은 권위자를 멀리하기에 이른다. 

제대로된 권위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니라 남을 세우고 돕는 권위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 슬픈 현실이다. 

슬프지만, 실제요 현실이다. 

 

나는 과연 자신있게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권위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오늘의 질문이자 반성이다. 

 

[오늘의 기도]

참된 권위를 가지신 예수님, 

십자가를 통해 자신의 권한과 권세를 다 내려놓으셨습니다. 

사람들을 살리고 세우기 위한 참된 권위를 보여주셨습니다. 

참된 권위의 본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주님, 

저도 저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섬기고 세우는 일에 더 깊이 헌신하게 하소서. 

저에게 권위가 있다면 공동체를 세우고 건강하게 만드는 일에 사용하도록 도우소서. 

억지로 함이나 짜증이 아니라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소서. 

 

새로운 한 주의 시작입니다. 

이번 한 주도 주님의 도우심으로 완전을 향해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 완전이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무결함이 아니라, 많은 일상의 문제들 속에서도 주님의 마음으로 대처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살아오셨듯이 저도 주님을 따라 매일의 일상의 일들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대처하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의 큰 계획을 마음에 품고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07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11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억지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를 인정해 주었어야 마땅합니다. 내가 비록 보잘것없는 사람일지라도, 저 우두머리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12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일일이 참고 견디면서, 놀라운 일과 기적을 표징으로 삼아 사도가 된 표징을 행하였습니다.

13 내가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고 여러분이 다른 교회들보다 못난 점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한 것이 불공평한 처사라고 하면,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4 지금 나는 이렇게 세 번째로 여러분에게로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구하는 것은 여러분의 재물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위하여 재산을 모아 두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재산을 모아 두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15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비용을 쓰겠고, 내 몸까지도 희생하겠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더 많이 사랑하면 할수록, 여러분은 나를 덜 사랑하겠습니까?

16 어쨌든 나는 여러분에게 짐이 된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간교한 속임수로 여러분을 사로잡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7 내가 여러분에게 보낸 사람들 가운데 누구를 통해서 여러분을 착취한 일이 있습니까?

18 내가 디도에게 여러분에게로 가라고 권하였고, 또 그와 함께 형제 한 사람을 보냈는데, 디도가 여러분을 착취한 일이 있습니까? 디도와 내가 같은 정신으로 행하고,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주석

14-15절 부유한 고린도인들은 바울의 후견인이 되기 원했다. 바울이 그들의 후원을 거절한 것은 사회적인 통념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실상은 그가 후견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바울을 의지해야 하는 자였기 때문이다(IVP 성경배경주석).

 

바울은 다시 한번 자신을 인정해 주길 요청합니다.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면 용서하라고 이야기합니다(11-13절). 그러나 바울은 앞으로도 그들에게 재정적으로 폐를 끼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가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부모의 마음으로 고린도 교회를 계속 사랑하겠다고 말합니다(14-18절).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거짓 사도들의 간교한 속임수를 폭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착취하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희생과 사랑은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사로잡히는지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약자를 착취하고 이용하는 간교한 속임수가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불의를 폭로하시고, 세상을 그분의 방식으로 사로잡으실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1. 어리석은 사람 

바울은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물론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긴 하다. 

그러나 결국 그 결정은 바울이 했던 것이다. 

무엇을 하였기에 어리석은 사람이 된 것인가? 

그건 어쩔 수 없이 자기 자랑을 한 것 때문이다. 

자신의 출신을 자랑하고, 그동안의 수고와 노력을 자랑했다. 

그렇지 않으면 성도들이 자신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양날의 검이다. 

이런 식의 말들은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바울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런 바울의 말에 정이 떨어질 수 있다. 

자기 행동에 대해 정당화, 합리화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더 싫어질 수 있다. 

차라리 당하면서 사는 것이 낫다고 믿는 사람들은 바울의 자기 자랑과 자기 합리화에 실망할 수도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선택을 했다. 

성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자기 자랑이 어리석은 행동이긴 하지만,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복음을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정수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 선택을 한 것이다. 

자기를 드러내고, 다른 사도들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고, 후원받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이런 모습들을 선택한 것이다. 

자기가 어리석은 바보가 되더라도, 성도들의 신앙을 위해 어찌보면 성육신을 한 것이다. 

부작용이 있고, 후폭풍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바울은 이렇게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도들을 위해, 복음을 위해 바보가 되었다. 

그 결과가 생각했던대로 그대로 나왔기를 바란다. 

 

2. 재물이 아니라 여러분!! 

윤복희의 “여러분”이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여 나는나는나는나는 너의 기쁨이야"
마지막 소절의 가사는 멜로디와 어울려 절심함이 배가된다. 

친구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의지와 결단이 묻어난다. 

 

바울도 같은 마음이다. 

돈의 문제가 아니다.
성도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길 바란다. 

비용문제로 성도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선교 여행에는 언제나 돈이 들기 마련이다. 

숙식비와 교통비가 가장 많이 든다. 

그러나 돈 문제로 성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후원을 받고 안받고의 문제가 아니다. 

성도들에게 진정성있게 다가가고 싶었다. 

복음이 잘 전해지기만을, 그리스도의 사랑이 잘 전달되기만을, 그리고 자신의 애정이 잘 수용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고린도교회 성도와 자신의 관계를 부모 자식 관계로 이해하고 있다. 

성도들을 깊이 품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자신의 자녀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내리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려운 일을 감당하고 있다. 

 

3. 성금요일 

오늘은 성금요일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던지셨다. 

죽음으로 당신의 자녀들을 살리셨다. 

죽음의 권세를 쥐고 사람들을 위협하던 사단의 위력을 깨부수셨다. 

몸은 죽었으나 영은 승리했다. 

온 우주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다. 

고통의 끝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영광이 찾아온다. 

 

이런 십자가가 있었기에 바울이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십자가의 정신이 바울에게 이어진다. 

자기 희생이 사람들의 생명으로 이어진다면 마다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 자기를 바보가 되게하고, 

사람들의 영생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 기독교는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다. 

자신의 돈과 시간과 에너지는 내어주는 사랑이 있었기에…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은 그렇게 내어주는 사랑 끝에 자기 보상이라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대했던 반응이 오지 않을 때, 보상심리가 작동한다. 

최선을 다해 희생하고 섬겼는데, 그 섬김에 대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을 때, 그걸 넘어 오히려 비판할 때, 극단적인 보상심리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사단의 계략이다. 

이걸 이겨야 한다. 

예수님은 그걸 이겼다. 

3년의 헌신에도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비난하고 비판했다. 

화낼만 했다. 

심판과 저주를 퍼부을 수 있었다. 

유대 지도자 뿐만일까? 

자신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도달하지도 못했으며, 심지어는 회계담당 제자인 유다는 자신을 은 30냥에 팔아버렸다. 

하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했다. 

결국 자신의 생명을 주는 것까지 하셨으니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보상심리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육체를 지닌 사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한 가지,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이다. 

 

사역자들은 보상심리를 항상 조심해야 한다. 

희생하고 헌신한다고 생각하기에, 결국엔 뭔가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그 좋은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채우려는 욕망이 차오른다. 

그 욕망이라는 형광물질은 사탄의 레이다에 즉각적으로 탐지된다. 

사탄의 조직적 계략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한 개인이 이걸 이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한 개인이 사탄의 조직을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하늘의 군대와 조직을 운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극복할 수 있다. 

성령님이 이끄시는 하나님 나라의 군대와 조직이다. 

 

나에게도 이런 보상심리가 꼬물꼬물 올라온다.

나이가 드니 더욱 위험천만이다. 

다시 예수님의 십자가로 나아간다. 

성금요일의 십자가!! 

 

[오늘의 기도]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 

당신의 십자가는 너무 큰 충격입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를 더욱 존엄한 존재로 만듭니다. 

당신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그 사랑만큼 우리는 존귀합니다. 

그 정신이 나를 살게 하고 우리를 살게 합니다. 

예수님, 감사하고 또 사랑합니다. 

 

십자가의 정신을 끝까지 유지하게 해 주세요. 

보상심리에 빠져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게 해 주세요. 

보상심리에 빠져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욕구하지 않게 해 주세요.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오늘 당신의 십자가에 동참하게 하셔서, 

당신의 마음을 더 깊이 느끼도록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06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1 자랑함이 나에게 이로울 것은 없으나, 이미 말이 나왔으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들과 계시들을 말할까 합니다.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그 때에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3 나는 이 사람을 압니다. 그가 몸을 입은 채 그렇게 했는지 몸을 떠나서 그렇게 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4 이 사람이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5 나는 이런 사람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두고서는 내 약점밖에는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6 내가 자랑하려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터이므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삼가겠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내게서 보거나 들은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7 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나는 이것을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NIV

But he said to me,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for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Therefore I will boast all the more gladly about my weaknesses, so that Christ's power may rest on me(9절).

 

바울은 십사 년 전에 경험했던 환상과 계시에 대해서 말합니다(1-4절).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기를 바라며 자랑을 삼갑니다(5-6절). 바울 안에 있는 ‘가시’는 그를 약하게 만들었으나, 하나님은 그것으로 바울이 교만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7절). 이제 바울은 약함을 자랑하고 기뻐합니다. 그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9-10절).

 

거짓 사도들은 바울이 환상과 계시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비방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염려해서 환상과 계시에 대해 말하는 것을 삼갔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점인 ‘가시’가 바울의 자랑이었습니다. ‘가시’는 바울이 약해지는 순간에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족합니다. 우리는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해집니다.

 

[오늘의 묵상]

구구절절 설명하는 바울이 못마땅하다. 

통크게 갈 수도 있는데, 그렇게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비판이 있어도 참고 견디고 그 다음을 준비하면 될 것을, 뭐 이렇게 구구절절 자신의 상황과 마음을 나누려고 하는지, 오늘은 들어주기 싫은 마음이 든다. 

아마도 며칠간 계속되는 바울의 속마음 이야기에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편지를 쭉 읽었으면 들지 않을 마음인데, 매일 끊어서 깊이 묵상하다보니 나오는 반응인 것 같다. 

이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본문을 살펴본다. 

 

일반적으로 여기서 등장하는 “십사 년 전의 사람”은 바울 자신을 가리킨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바울이 처음 예수님을 믿고, 회개 한 뒤에, 깊은 영적 체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계시를 받았다. 

모든 것을 다 알려줄 수는 없겠지만, 그 예언은 바울의 삶과 사역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받았다. 

혹을 말로 드러내서는 안되는 무언가를 보았다. 

무엇보다 바울은 이런 과정들을 통해 하나님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보았던 계시를 닮았다. 

다니엘이나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들이다. 

큰 신상의 환상이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환상…

이런 환상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세계다. 

바울은 어떤 면에서 이런 예언자들의 반열에 올랐다. 

요한도 계시록을 쓸 때, 이런 환상을 경험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만한 것은 이런 환상 전체를 말과 글로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유는, 자기 자랑이 될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남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할 것이 걱정되서다. 

바울은 한 명의 그리스도인지, 그 자신이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 

고린도교회에서 보이는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등의 파당짓기에 이름이 올라갈 정도니, 자칫하면 예수님과 같은 위치에 설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을 것이다. 

자기 자랑이 과하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게 된다. 

예수님은 도달할 수 없는 신적존재지만, 대단한 영웅적인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기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준다. 

사람들을 희망을 주는 그 사람을 더 바라보게 된다. 

예수님보다 사람이 높아질 때, 자칫 우상이 된다. 

성도들에게 우상숭배의 죄를 짓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자기 자랑을 멈춰야 한다. 

 

바울은 도리어 자신의 약점을 노출한다. 

사탄의 하수인인 몸의 가시를 정직하게 말한다. 

그 몸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이나 간곡하게 기도한 적이 있다. 

여기서 세 번은 단순히 식사기도 하듯 일상적인 기도의 일종이 아니다. 

시간을 내서 금식하며 특별 작정 기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은 그 때마다 “네 은혜가 족하다”는 답변을 주셨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상상해 보건데, 첫 번째 기도에서도 그런 응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두 번째, 세 번째 작정기도를 이어갔다. 

아마도 그 사탄의 하수인인 몸의 가시가 어지간히 자신을 괴롭혔는지 모른다. 

너무 힘든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표현한 것을 미루로 짐작컨대, 간질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위장병도 아프지 않은 병은 아니지만, 내가 오랫동안 아파왔던 경험으로 볼 때, 못참을 만큼 힘든 병은 아니다. 

게다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하니, 아마도 사역 일정에 큰 지장을 준 것 같고, 더 나아가 성도들에게도 염려와 걱정을 안겨주는 질병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면,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발작증세를 보이는 간질 같은 것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다. 

핵심은 매우 심각한 몸의 질병이라는 점이다. 

세 번이나 절실하게 요청했던 기도의 제목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도리어 이런 질병이 바울을 겸손하게 했다. 

영적 체험을 했음에도 그는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참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과 성도들을 위해 참고 함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성령님이 주시는 절제의 힘이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경험과 지식을 더 자랑하기보다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겠다고 나선다. 

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겸손한 사람들을 통해 이뤄진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도 겸손을 몸에 익히면 하나님이 사용하신다. 

별로 잘 나지 않았는데도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가 없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거만하게 구는 사람들에게는 성령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신다. 

그 사람 중 한 명이 전광훈이다. 

그의 말은 거만함으로 가득하다. 

자신이 무슨 신이줄 안다. 

걱정이다. 

 

나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고 싶다. 

부족함과 약점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바울에게 배울 것이 많다. 

 

 

[오늘의 기도]

사람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 

제 속을 잘 들여다 보게 하소서. 

제 마음의 어떤 생각과 감정들이 올라오는지 잘 살피게 하소서. 

주님이 주시는 생각들로 채우게 하소서. 

기도의 시간이 깊어지길 원합니다. 

조용한 가운데 주님이 제 마음 속에 하시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거만하게 자랑하는 사람이 되길 원치 않습니다. 

저의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도리어 저의 약점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부족함과 약점을 통해서도 일하시길 원하신다면 기쁨으로 맞이하게 하소서. 

정서적, 정신적, 영적, 육체적, 관계적 약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약점을 숨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고 더욱 겸손하게 나아가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가 그런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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