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26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1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갇힌 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십시오.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십시오.

3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4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 부르심의 목표인 소망도 하나였습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아버지시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하여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선물의 분량을 따라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성경에 이르시기를 “그분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셔서, 포로를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셨다” 합니다.

9 그런데 그분이 올라가셨다고 하는 것은 먼저 그분이 땅의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0 내려오셨던 그분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려고, 하늘의 가장 높은 데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십니다.

 

 

주석

8-10절. 인용한 시편 68:18의 랍비들의 해석에서는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었듯이, 선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 대한 언급으로 재해석된다. NRSV는 올라가시기 전에 먼저 내려오셨다고 말하는데[참고. “먼저(first)”를 삽입한 미심쩍은 사본 상의 변이], 하데스까지 내려갔다고 가정한다. 이 구절이 땅으로 내려오신 것, 명백히 성육신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NIV가 올바르다고 보인다. 최근의 많은 주석가들은 올라가신 후에 내려오셨다는 해석을 선호한다. 다시 말해, 교회에 대한 성령의 은사 수여를 통해 그리스도가 내려오신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1. 부르심에 합당한 삶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부르심을 각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믿는다. 

그러기에 부르심은 다양한 직업군을 포함하여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그러한 개인적 부르심, 개인적 소명이 분명히 존재한다. 

바울은 이방인의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방인보다는 유대인에게 먼저 다가갔다. 

선교에 대한 명령과 부르심은 동일하나, 그것을 추진하고 진행하는 데에는 각자의 은사와 부르심에 맞게 흘러간다. 

칼뱅의 직업소명설에 의거해 개혁주의 신앙 전통에서는 직업 자체가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말한다. 

각자의 직업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기여한다. 

그러나 오늘 바울은 좀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한다. 

각자의 직업을 소명으로 바라보기 전에, 가장 먼저 부르심을 받은 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 하나됨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하나됨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성도들 간의 하나됨이라고 할 수 있다. 

성도들의 모임은 서로 하나되어야 한다. 

 

이것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삶이다. 

이를 위해 온유함과 겸손함은 필수다. 

하나되기 위해서는 과격하거나 교만해서는 안된다.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해서도 안된다. 

복음의 본질이라는 측면을 고수할 때는 단호함과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외에는 언제나 온유하고 겸손하게 남을 나보다 더 높게 여기고 공동체의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기독 공동체는 정치 결사체가 아니다. 

하나님의 일을 대리해서 수행하는 하나님의 손과 발이다. 

하나님의 몸이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니다.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고 헌신하는 존재들이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이 예수님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심으로써 공동체를 하나되게 하셨다. 

따라서 그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한다. 

원망과 불평과 판단과 정죄를 내려놓고 성령님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켜야 한다. 

 

어떻게 성령님은 성도들을 하나되게 할까? 

내가 답할 수 있는 부분은, 성령님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분, 예수님을 떠올리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예수님께 집중하도록 도우시는 분이시다. 

사람이 아니다. 목사가 아니다. 한 개인이 아니다. 

오직 예수님께 주목하게 하고, 그분의 삶과 사역과 가르침과 죽음과 부활을 떠오르게 하신다. 

성도들도 예수님으로 대동단결이 된다. 

자신의 능력이나 은사나 재능이나 쇼맨십이 아니라, 예수님이다. 

한 개인, 한 조직, 한 단체, 한 운동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2천년전부터 인류의 빛이 되신 예수님께 주목하는 것이다. 

예수님께 집중함으로 성령의 운행하심을 느끼고, 그 운행하심이 분열된 사람들을 한 몸과 마음으로 묶는다. 

그 하나됨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성도들의 부르심이다. 

1차적 부르심은 하나님과 화해하고 연합하는 것이요, 2차적 부르심은 성도의 하나됨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요, 3차적 부르심은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직업 활동 및 봉사 활동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것이다. 

순서도 중요하고, 그 중요도에 대한 강조도 중요하다. 

 

2. 충만케 하시는 분 

바울도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았기에, 성령님을 통한 하나됨을 이야기 하면서 결국 예수님께 집중하게 된다. 

 

10 내려오셨던 그분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려고, 하늘의 가장 높은 데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십니다.

 

성령님도 하나님 아버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주권자로 계속 높이고 계신다. 

예수님은 만물을 충만케 하시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셨는데, 올라가셨다는 말은 내려오셨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어디로 내려오셨는가? 

바로 하늘에서 땅으로 성육신한 몸으로 내려오셨다.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이루시다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다.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그분이 선물로 약속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성령님이시다. 

그분이 올라가야 성령님이 온 지구에 충만하게 내려오실 것이었다. 

예수님의 영이 성도들을 통해 이 지구로 강력하게 내려오실 것이었다. 

이것이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이요 선물이다. 

예수님 당신을 성령님을 통해 이 세상 곳곳으로 파송하셨다. 

왕이신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 성도들 각 개인과 공동체마다 하나되게 하심과 충만케 하심을 실현시키셨다. 

그래서 하늘 가족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한 백성, 한 가족이 된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예수님께 집중하는지 보게 된다. 

편지 곳곳에 예수님께 집중하려는 사도 바울의 모습이 보인다. 

그가 성령 충만한 이유다. 

모든 일상에서 예수님을 발견한다. 

예수님의 정신과 인격과 가르침을 발견한다.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대리 통치자로서의 신분과 정체성이 분명해지지만, 결국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성령님처럼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자아 확장의 세대, 개인주의의 세대, 자기 광고와 자기 표현의 시대에, 오직 예수님만 영광받으시도록 성도들을 이끌 수 있을까?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나도록 도울 수 있을까? 

 

오늘 본문은 정말 중요하고 심지어는 위대하기까지 하다. 

바울 신학을 칭의의 신학, 구원론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의 신학은 예수 중심의 하나됨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 같다. 

복음의 진리가 훼손되는 것도 못 참지만, 공동체가 분열되는 것도 참지 못하는 사람 같다. 

예수님이 지키신 성도들간의 연합을 깨뜨리는 것을 싫어한다.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지켜나가고자 하는 열정과 의지가 가득해 보인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하나가 되게 하는데 열심이다. 

가난한 자와 부자, 어린이와 어른, 남자와 여자, 종과 주인을 하나되게 하기 위해 열심을 품는다. 

그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으로 대동단결되기를 갈망한다. 

 

나의 태도도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기도]

성도들을 하나로 묶어 주시고 그 하나됨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됨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고 주목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 하나될 수 없습니다. 

다른 것으로 하나됨을 지킬 수 없습니다. 

성령님과 아버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듯, 오직 예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써 하나됨을 지킬 수 있습니다. 

주님, 우리 교회와 기독 공동체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되게 하소서. 

오직 예수님께 집중하도록 도우소서. 

 

예배와 찬송과 말씀이 예수님을 드러내게 하소서. 

그 하나됨을 지키고 유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4월 25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14 그러므로 나는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빕니다.

15 아버지께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붙여 주신 분이십니다.

16 아버지께서 그분의 영광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여 주시고,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18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19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

20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분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석

15절. 15절은 기본적으로 모든 살아 있는 무리의 창조자시며, 그 각각에게 ‘형태’와 역할을 주권적으로 부여하시는 하나님을 천명하는 말이다. 히브리 전통에서는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이름을 주신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에게 이름표를 붙여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들의 존재의 본질을 결정한다는 말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마음 속에 계신 예수님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 성도들의 마음 속에 거하신다. 

육신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계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예수님의 존재, 성품, 가르침, 비전 등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지속적으로 상기시키신다. 

내가 이해하기로 예수님이 마음 속에 있다는 말은, 삼위일체 중 한 위격이신 성령님이 영으로 사람의 마음에 거하신다는 의미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이요, 예수님을 생각하게 하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신다. 

성령님을 보고 있으면, 예수님의 모습이 보인다. 

성령님의 일하심은 예수님의 현현이요 재현이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요, 자연스레 예수님을 닮게 된다. 

이것이 마음 속에 계신 예수님의 실재다.

 

내 마음 속에 성령님이 계시는가?
그분이 더 활발히 일하시도록 그분께 요청하고 있는가? 

그분의 뜻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2. 그리스도의 사랑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경험했던 사람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박해했던 바울을 만나주시고 인생의 새로운 목적과 목표를 제시해 주셨다. 

그 사랑이 그의 마음에 언제나 남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사랑이 더욱 크고 강력하고 엄청나게 그를 압도하고 있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성령의 법에 대한 강조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 사랑은 온갖 지식을 초월한다. 

그 사랑은 성도들이 구원받게 되는 초석이며, 구원 이후의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을 살아갈 수 없고, 대리통치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사탄의 거짓과 술수와 계략과 위협과 유혹을 이길 힘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악행자들의 폭력과 억압과 위협 속에서도 선을 행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수많은 재난과 고통 속에서도 대리통치자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어찌 어려움이 없겠는가? 

어찌 고통이 없겠는가?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찌보면 더욱 피곤하고 고통스럽다. 

높은 윤리적 기준도 그렇고, 책임있는 대리통치자의 자리도 그렇고, 세상 사람들이 잘 알아 주지 않은 것도 그렇고… 때로 더 외롭고 괴롭다. 

그분의 사랑이 없으면,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뚫고 나갈 힘이 없다. 

그분의 사랑 덕분에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개인과 교회와 공동체에 넘치게 흐른다. 

그분의 사랑 덕분에 공동체는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틀이 놓인다. 

그분의 사랑 덕분에 공동체가 하나님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모든 지식과 정보와 이론과 사상보다 뛰어난 그분의 사랑 덕분에 이것이 가능하다. 

사람들 간의 사랑과 신뢰와 희생이 가능한 것은 바로 그분의 사랑 덕분이다. 

 

그 사랑을 나와 우리 공동체가 경험하길 소망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깊이 알고, 깨닫고, 삶으로 살아내길 소망한다. 

그분의 사랑이 더욱 드러나길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알고 경험하고 느끼길 원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사랑, 내게 소명을 주시고 이끄시는 사랑, 오늘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용납하시고 용서하시는 사랑, 앞으로도 실수와 죄악과 부족함을 용납해주시는 그 사랑… 

그 사랑을 끝까지 신뢰하고 믿고 의지하며, 경험하고 정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그 사랑을 흘려 보내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 사랑을 후배들에게 청년들에게 학생들에게 흘려 보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나를 보호하려기보다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4월 24일 수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8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셔서,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을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시고,

9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있는 비밀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모두에게 밝히게 하셨습니다.

10 그것은 이제 교회를 통하여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리시려는 것입니다.

11 이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하신 영원한 뜻을 따른 것입니다.

12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분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13 그러므로 여러분을 위하여 당하는 나의 환난을 보고서, 여러분이 낙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내가 당하는 환난은 여러분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주석

10절. 여기서 말하는 정사(통치자, rulers)들은 아마 하늘에 속한 모든 존재일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나 6:12의 악한 세력들뿐만 아니라 둘 다를 가리킬 것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지극히 작은 자 

바울이 자기 자신을 낮출 때마다 위선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후세대와 이방인들에게 전파한 사람이었다. 

기독교의 교리의 기초를 놓았고, 기독교가 그 모양을 갖추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방세계에 예수님과 하나님을 전했다. 

그런 그가 자신이 모든 성도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다고 말하니, 어찌 위선 혹은 거짓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바울의 인생을 조금만 살펴봐도, 그가 주님을 얼마나 박해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예수님을 따를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권세를 가지고 전세계로 파송받았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반역과 악행을 생각할 때, 그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 스스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과거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회상할라치면 부끄러움과 수치에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누군가 그의 과거를 말할 때마다 진땀이 흘렀을 것이다.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라는 그의 마음의 표현은 그에게 있어서는 진실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과거의 자신만 부끄러웠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거다. 

현재의 자신도 부끄럽기는 매한가지. 

신앙생활은, 자신에 더욱 알아가는 과정인 신앙생활은,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을 계속 알아가는 과정이다. 

육체의 법과 성령의 법이 서로 싸우고 있음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

이런 고백이 나오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다. 

성화의 단계에 올라갈수록 자신의 죄성과 연약함이 더 많이 보이는 법이다. 

거룩한 하나님과 더 친밀해질수록 거룩하지 못한 자신의 몸, 영혼, 정서, 행동이 더 부각된다. 

그래도 괜찮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여전히 부르시기 때문이다. 

부르셔서 당신의 영광스런 계획과 일들을 보여주시고 맡기신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일도 상당히 부담스런 일이다. 

이 일의 끝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것인가? 

이 곳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까? 

주님의 뜻을 구한다. 

점점 나의 연약함을 알아가게 될 이 일의 끝에서 나는 하나님께만 영광돌리 수 있을까? 

 

 

2. 교회를 통하여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밝혀졌다. 

이방인도 구원의 대열에 합류하여 유대인과 한 몸이 되었다. 

교회는 이것을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네트워크, 공간이다. 

바울에게 알려주신 그 비밀은 한 개인에게 머무는 것이 아니다. 

교회 공동체가 그 비밀을 온 세상에 드러낸다. 

교회는 하나됨으로 세상을 바꾼다. 

위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세상에 천명한다. 

부족하고 연약해서 때로는 넘어지고 깨지지만,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다시 하나님의 계획을 드러낸다. 

이것은 영원전부터 하나님이 계획해 놓으신 뜻이었다. 

그 계획이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부족한대로, 연약한대로 하나님의 뜻이 실행된다. 

그러기에 교회는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12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분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한 개인도 부족하지만, 그런 개인들이 모인 교회도 기독공동체도 다 부족하다. 

그럼에도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분 안에서 그 비밀의 확산이 가져올 영광스러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용기있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의 구할 바를 아뢴다. 

아마도 바울도 이런 마음으로 사역했을 것이다. 

때로 선교팀이 분열되고, 서로 싸우고, 외부의 핍박에 핍절한 상황에 놓여도, 그는 다시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라며 기도했을 것이다. 

 

이 꿈과 비전을 놓치고 싶지 않다. 

끝까지 용기 있게 그 길을 걷고 싶다. 

다시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분이 주시는 뜻을 받고 따르길 원한다. 

 

[오늘의 기도]

부족한 사람들을 불러서 당신께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주님을 바라봅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육체의 정욕, 성공에 대한 욕망, 인정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한 저를 봅니다. 

더욱 정결하고 깨끗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저의 부족함에도 여전히 사명을 맡기시고, 그 일을 하라고 부르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게 하소서. 

저 뿐 아니라 교회와 기독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리시길 원하시는 주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일을 이루도록 도우소서. 

날마다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그치지 않겠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담대함을 얻어 우주의 주인이신 당신께로 나아가겠습니다. 

겸손하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4월 23일 화요일

 

여는 기도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1 그러므로 이방 사람 여러분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몸이 된 나 바울이 말합니다. 

2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도록 나에게 이 직분을 은혜로 주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이미 들었을 줄 압니다.

3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 비밀을 계시로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미 간략하게 적은 바와 같습니다.

4 여러분이 그것을 읽어보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5 지나간 다른 세대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려주지 아니하셨는데, 지금은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성령으로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6 그 비밀의 내용인즉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 사람들과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약속을 함께 가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7 나는 이 복음을 섬기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이 작용하는 대로 나에게 주신 그분의 은혜의 선물을 따른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1.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다. 

이유는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두 그룹에서의 고소가 계속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이방인들 중에 이방신을 모독하는 것이 경제적 손해가 되기에 고소한 사람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장소가 에베소였다. 

아데미 신전이 있었던 에베소 사람들은 바울이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자, 폭동을 일으켜서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을 잡아서 즉결심판을 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사도행전 19:21-41). 

이방신을 섬기던 사람들에게 바울이 전한 복음은 위협적이었다. 

 

다른 하나는, 유대인들 중에 바울의 복음이 자신들의 율법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율법에 엄격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예수님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특히 바울은 예수님을 복음을 전하면서, 율법의 핵심이라고 여겨졌던 할례나 각종 제사나 절기에 대해 이제는 필요없다는 입장이었다. 

예수님에 의해서 언약이 성취되었고, 더는 율법 조항 중 예식법, 절기법, 제사법 등은 그 의무를 다 했다고 본 것이다. 

바울의 개혁적인 주장에 반기를 든 전통주의자 유대인들이 많았고, 이들은 바울의 선교 여행에 쫓아 다니며, 바울을 박해하고 고소했다. 

 

바울은 이렇게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예수님을 전했다는 이유로, 예수님이 가르치신 언약의 성취와 개혁 정신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무엇보다 이방인들에게 유대인과 동일한 신분이 되었음을 선포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하나님이 주신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감옥에 갇히는 이유가 된다. 

박해받는 이유가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아이들의 장난이 아니다.

인생을 건 한결같은 헌신이다. 

위험과 위협이 따르는 험준한 산악 여행과 같다.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와 샘이 갔던 길과 같다. 

역경과 어려움은 언제나 있어 왔다. 

 

2. 그 비밀  

바울의 부르심에 근저에는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비밀이 놓여 있다. 

바울은 다마스쿠스 언덕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이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 

 

6 그 비밀의 내용인즉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 사람들과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약속을 함께 가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비밀은 이방인을 향한 복음 선포다. 

복음은 유대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복음은 이방 사람들도 언약의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 거룩한 백성이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원래 계획을 묵살했었다. 

모든 민족이 복을 누려야 하며, 그 복의 근원이자 유통자로서의 아브라함 자손의 소명이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그 소명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이방인들과 상종하지 않음으로 도리어 하나님의 원래 계획에서 멀어졌다. 

율법에 등장하는 성결법(거룩을 위한 법)은 열심히 지켰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래 주었던 언약의 근간이 복의 전달자, 유통자로서의 역할은 소홀히 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원래 계획이 비밀이 되어버렸다. 

누구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땅에 감추어진 보물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이 다시 그 보물을 꺼내셨다. 

예수님을 통해 땅을 파시고 그 보물을 꺼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기 시작하셨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성령님을 통해 보여주시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보물을 바울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거듭나게 되었다. 

 

하나님의 원래 계획인 그 비밀을 알게 되면 소명이 생긴다. 

하나님의 비전을 알게 되니, 소명이 발생한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분명하게 알면 알수록 소명이 더욱 확실해진다. 

인생의 목표가 생긴다. 

그저 지나가는 인생은 없다. 

 

 

[오늘의 기도]

당신의 계획과 비전을 알려주신 하나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우리 인생을 허망함과 허무함에 두지 않으시고, 

목적과 목표를 두셔서 심장을 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심어두신 그 비밀을 알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드러난 주님의 계획에 참여토록 이끄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그 계획 때문에 흥분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열정적으로 주님의 계획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주님,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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