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2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벌리고 헐떡입니다.

 

29 이스라엘 왕 아합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시리아와 싸우려고 길르앗의 라못으로 올라갔다.

30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여호사밧에게 말하였다. "나는 변장을 하고 싸움터로 들어갈 터이니, 임금께서는 왕복을 그대로 입고 나가십시오." 이스라엘 왕은 변장을 하고, 싸움터로 들어갔다.

31 시리아 왕은 그와 함께 있는 서른두 사람의 병거대 지휘관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를 상대하여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만 공격하여라."

32 병거대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더니 "저 자가 이스라엘의 왕이다." 하며, 그와 싸우려고 달려들었다. 여호사밧이 기겁을 하여서 소리치니,

33 병거대 지휘관들은,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님을 알고서, 그를 추적하기를 그만두고 돌아섰다.

34 그런데 군인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긴 것이 이스라엘 왕에게 명중하였다. 화살이 갑옷 가슴막이 이음새 사이를 뚫고 들어간 것이다. 왕은 자기의 병거를 모는 부하에게 말하였다. "병거를 돌려서, 이 싸움터에서 빠져 나가자. 내가 부상을 입었다."

35 그러나 특히 그 날은 싸움이 격렬하였으므로, 왕은 병거 가운데 붙들려 서서, 시리아 군대를 막다가 저녁 때가 되어 죽었는데, 그의 병거 안에는 왕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 흥건히 고여 있었다.

36 해가 질 즈음에 "각각 자기의 성읍으로, 각각 자기의 고향으로!" 하고 외치는 명령이 진영에 전달되었다.

37 왕은 죽고, 사람들은 그 주검을 사마리아로 가지고 가서, 그 곳에 묻었다.

38 그리고 사마리아의 연못에서 왕의 병거와 갑옷을 씻을 때에 개들이 그 피를 핥았고, 창녀들이 그 곳에서 목욕을 하였다. 이렇게 해서 모든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다.

39 아합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과, 그가 건축한 상아 궁과, 그가 세운 성읍들에 관한 모든 사실이,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다 기록되어 있다.

40 아합이 조상들과 함께 묻히니, 그의 뒤를 이어서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

 

MESSAGE

“그들은 그곳 성읍의 창녀들이 목욕하는 사마리아 연못에서 왕의 전차를 씻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개들이 피를 핥아 먹었다.”(38절)


무심코 당긴 활 

 

시리아의 병사인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저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명령은 이스라엘의 왕을 공격하라는 말이었다. 

 

31 시리아 왕은 그와 함께 있는 서른두 사람의 병거대 지휘관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를 상대하여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만 공격하여라.”

 

시리아 왕은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오만한을 익히 알고 있었다. 아합의 명성도 알고 있었다. 

그를 제거하는 것이 이번 전쟁의 목표였다. 

아합 왕이 업적이 결코 작지 않다. 

경제적으로 번영했으며, 그의 왕궁도 아름답기 그지 없다. 

상아 궁은 상상을 넘어선다. 어떤 모습일까? 

 

39 아합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과, 그가 건축한 상아 궁과, 그가 세운 성읍들에 관한 모든 사실이,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다 기록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시리아 왕은 아합 왕만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병사들은 누가 아합 왕인지를 살피면서 공격을 수행했다. 

궁사였던 나도 가능한한 아합 왕을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병거대 지휘관이 아합 왕이라고 지목한 사람을 향해 활을 날렸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는 아합 왕이 아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여호사밧 즉 유대 왕이었던 것이다. 

다시 아합 왕을 찾아 활을 쏜다. 

물론 당장 앞에 있는 적을 보며 활을 당기기도 하지만, 핵심 목표는 아합 왕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아합 왕이 없다. 

원래 전쟁에서 왕은 왕의 위엄을 드러내며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는다. 

어디서나 왕은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합 왕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오랜 활쏘기 훈련으로 보는 눈이 좋았다. 

먼 거리의 표적도 집중하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아합 왕은 없었다. 

별 수 없다. 적을 향해 활을 쏘는 거다. 그게 나의 할 일이었다. 

육탄전에 활을 쏘는 것은 피아 구별이 어렵기 때문에 무의미한 일이었다. 

육탄전 주변에 말을 타고 있는 적군, 병거를 타고 있는 적군, 조금 떨어져서 숨 고르는 적군을 향해 활을 날렸다. 

몇 명을 맞혔는지는 모르겠다. 

멀리 있는 병거를 향해 쏘기는 했으나 무심코 던진 활이었다. 

저 정도 거리면 갑옷을 뚫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위협은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활을 쏘았다. 

그런데 그 병거 위의 지휘관이 휘청인다. 

아마도 우연히 그의 갑옷 사이를 뚫은 것 같다. 

당장 죽지는 않아도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알고보니 전투 중에 아합 왕이 죽었다고 한다. 

활을 맞고 전사했다고 하니, 혹시 나의 화살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 사실 확인이 안된다. 

내 화살이라고 표시를 한 것도 아니거니와 내가 맞혔다고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한 병거 위의 지휘관의 갑옷 사이로 활이 들어갔었다. 

그리고 그가 휘청거리며 자리에 주저 앉는 것도 봤다. 

만약에 그가 아합 왕이라면 나 스스로에게라도 상을 줘야 한다. 

대대 손손 나의 영웅담을 들려줄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웃기다. 

아합 왕이 일반 지휘관의 옷을 입고 변장을 했다니… 

그리고 결국 화살에 맞아 죽었다니… 

차라리 용맹하게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는 것이 멋진 일이다. 

참 군인이라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아합 왕의 신은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허용했는가? 

아합 왕의 신은 도대체 왜 그런 신탁을 내렸는가? 

여러모로 의아한 지점이다. 

 

이스라엘은 알다가도 모를 민족이다. 

여호와라는 신을 섬긴다고 했는데, 그들이 지니고 있는 신상은 바알과 아세라 신의 것이었다. 

도대체 여호와 신상은 언제 볼 수 있을까? 

있기는 한 건가? 

여튼 오늘 전투로 밝혀졌다. 

이스라엘이 섬긴다는 여호와라는 신은 우리의 신보다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여호와에 대한 소문은 과장되었거나 거짓일 것이다. 

솔로몬 시대의 영광도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우리 시리아의 영광이 위대하다. 

오늘의 승리를 자축하리라. 


주님,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물론 장기적인 하나님의 계획이 여전히 작동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단면만 놓고 보면 그 단면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상상해 본다면, 

슬프로 마음 아픈 일들의 연속입니다. 

 

혹시 우리 IVF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면 용서하여 주세요. 

더욱 겸손히 주님을 섬기도록 도와주세요.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사람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11월 02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니, 주님의 규례로 나를 살려 주십시오.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빗소리가 크게 들리니, 이제는 올라가셔서, 음식을 드십시오."

42 아합이 올라가서, 음식을 먹었다. 엘리야는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을 바라보며 몸을 굽히고,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었다.

43 그리고는 그의 시종에게, 올라가서 바다쪽을 살펴 보라고 하였다. 시종은 올라가서 보고 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엘리야가 다시 그의 시종에게, 일곱 번을 그렇게 더 다녀오라고 하였다.

44 일곱 번째가 되었을 때에, 그 시종은 마침내, 사람의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바다에서부터 떠올라 오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엘리야는 아합에게 사람을 보내어서, 비가 와서 길이 막히기 전에 어서 병거를 갖추고 내려가라는 말을 전하라고 하였다.

45 그러는 동안에 이미 하늘은 짙은 구름으로 캄캄해지고, 바람이 일더니, 곧 큰 비가 퍼붓기 시작하였다. 아합은 곧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내려갔다.

46 주님의 능력이 엘리야와 함께 하였기 때문에, 엘리야는 허리를 동여 매고, 아합을 앞질러서, 이스르엘 어귀에까지 달려갔다.

 

주석

46절: 이 구절은 더 빨리 달렸다는 말이 아니라 이스르엘에 도착할 때까지 아합의 병거 앞에서 달려갔다는 말이다. 왕이나 왕자의 병거 앞에서 달려가는 사람들은 그의 측근자들이다. 엘리야는 야웨의 권세하에, 선지자적 포고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IVP 배경주석).


왕의 병거다. 

가장 좋은 말과 가장 좋은 장비다. 

비록 비가 내린다고 해도 왕의 병거 앞에서 뒤쳐지지 않고 그 긴 거리(26km)를 달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주님의 능력이 엘리야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사람이다. 

그릿 시내에서 사르밧까지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입었다. 

갈멜산에서는 두려울 것이 없는 신적 대리자였다. 

그리고 지금 비가 오는 것을 예언하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깊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의 연장이라는 것을 온 백성에게 알리게 된 지금,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온 몸으로 드러내고 있다. 

가뭄을 해결한 분은 왕과 바알/아세라가 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임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백성들은 이 기이한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랜 가뭄 끝에 큰 비가 내렸다. 그것 자체가 복된 소식이다. 

그런데 그 복된 소식을 가지고 오는 존재는 오랫동안 사라졌던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야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엘리야를 다시 보게 되었다. 

도망친 줄 알았던 엘리야, 벌써 죽은 줄만 알았던 엘리야가 다시 등장했다. 

갈멜산에서의 대결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도 전에, 엘리야의 모습이 등장했다. 

지치지 않고 빗속을 뚫고 달려나가는 엘리야의 모습은 한 마리의 호랑이, 사자와 같다. 

세상을 호령하는 듯한 그의 달리기에 사람들이 놀란다. 

왕과 왕비 이세벨이 틀렸다. 바알과 아세라는 진짜 신이 아니다. 

오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여호와 하나님이 진정한 신이시다. 

 

한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엘리야의 종의 순종이다. 

7번이나 같은 일을 반복했다. 

세 번 쯤 하면 원래 하기 싫어진다. 

변화가 없는 상황인데, 계속 올라가서 바다 쪽을 보고 오라고 한다. 

얼마나 올라가야 바다가 보이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짧은 거리라 하더라도 계속 반복시키게 되면 짜증이 몰려 올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종은 엘리야의 말을 잘 들었다. 조금 전에 있었던 갈멜산 대결과 기손 시내에서의 처형사건이 그로 하여금 엘리야의 권위를 인정하게 했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7번은 조금 과했다. 

세 번 정도가 적당한 것 같은데 말이다. 

사실 갈멜산 전투에서는 단 한 번의 기도로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 물에 푹 젖은 제물들을 불살라 버렸다. 

그런데 일곱 번이라니…

때로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의 시간은 더디기도 하다. 

하나님의 방식은 항상 똑같지는 않다. 

원리는 같다. 그분에 대한 신뢰다. 

그러나 방식은 종종 다르다. 한 번일 때도 있고, 세 번일 때도 있고, 일곱 번일 때도 있다. 

그게 신뢰를 연습하는 데 더할나위 없이 좋은 방식이다. 

항상 예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다. 

예측 불허의 방식으로 움직이신다. 

그분은 모든 방식에 열려 있다. 

그분의 백성은 다만 그분을 신뢰할 뿐이다. 

 

코로나 속에서 많은 것들이 변화되었다. 

일상으로 돌아오려는 움직임이 이제 시작되었다. 

앞으로도 많은 변화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변화들 속에서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그분을 신뢰하면서

그분께 순종하면서

그분을 사랑하면서… 

 

신간훈이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새로운 간사들이 오고 있다. 

고통 속에서도 웃음으로 견뎌낼 수 있는 간사들이다.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빗속의 준마들과 달려도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길 축복한다. 


하나님, 

마치 패배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때에

엘리야의 사역을 기억합니다. 

이스라엘을 떠나 사르밧에서 3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놀라운 일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주님, 저와 우리 간사님들이 주님을 신뢰하며 달려나갈 수 있게 해 주세요. 

고난 속에서도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일에 두려움이 없도록 도우소서. 

고난 속에서도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레미야에 대한 책이지만, 엘리야에게도 어울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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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

가장 인간적인 예언자로 평가받는 예레미야. 그의 삶을 통해 듣는 온전함과 탁월함에 관한 하나님의 메시지! 성경과 현대를 넘나들며 예레미야서를 깊이 묵상하도록 집피된 이 책은 우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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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나를 위해 펼쳐 놓으신 길로 달려가겠습니다.”(시편 119:32)

2021년 10월 28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8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9"이제 너는, 시돈에 있는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에서 지내도록 하여라. 내가 그 곳에 있는 한 과부에게 명하여서, 네게 먹을 것을 주도록 일러두었다."

10엘리야는 곧 일어나서, 사르밧으로 갔다. 그가 성문 안으로 들어설 때에, 마침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엘리야가 그 여인을 불러서 말하였다. "마실 물을 한 그릇만 좀 떠다 주십시오."

11그 여인이 물을 가지러 가려고 하니, 엘리야가 다시 여인을 불러서 말하였다. "먹을 것도 조금 가져다 주시면 좋겠습니다."

12그 여인이 말하였다. "어른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저에게는 빵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뒤주에 밀가루가 한 줌 정도, 그리고 병에 기름이 몇 방울 남아 있을 뿐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땔감을 줍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가서, 저와 제 아들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것을 모두 먹으려고 합니다."

13엘리야가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방금 말한 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음식을 만들어서, 우선 나에게 먼저 가지고 오십시오. 그 뒤에 그대와, 아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도록 하십시오.

14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비를 내려 주실 때까지, 그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5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과연 그 여인과 엘리야와 그 여인의 식구가 여러 날 동안 먹었지만,

16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도 마르지 않았다. 주님께서 엘리야를 시켜서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되었다.

17이런 일이 있은 뒤에, 이 집 여주인의 아들이 병이 들었다. 그의 병은 매우 위중하여서, 끝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18그러자 그 여인은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사람이신 어른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렇게 저에게 오셔서, 저의 죄를 기억나게 하시고, 제 아들을 죽게 하십니까?"

19엘리야가 그 여인에게 아들을 달라고 하면서, 그 여인의 품에서 그 아이를 받아 안고, 자기가 머물고 있는 다락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를 자기의 침대 위에 뉘어 놓고,

20주님께 부르짖었다. "주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집의 과부에게 이렇게 재앙을 내리시어, 그 아들을 죽게 하십니까?"

21그는 그 아이의 몸 위에 세 번이나 엎드려서, 몸과 몸을 맞춘 다음, 주님께 또 부르짖었다. "주 나의 하나님, 제발 이 아이의 호흡이 되돌아오게 하여 주십시오!"

22주님께서 엘리야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 아이의 호흡을 되돌아오게 하여 주셔서, 그 아이가 살아났다.

23엘리야는,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내려와서, 아이를 돌려주면서 말하였다. "보시오,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24그 여인이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제야 저는, 어른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시라는 것과, 어른이 하시는 말씀은 참으로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릿 시냇가가 마르자 하나님은 엘리야를 시돈 땅 사르밧 지역으로 보내신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아합 왕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왕비로 맞이했었다. 

그녀의 악행으로 하나님은 진노는 이스라엘 땅에 기근으로 이어졌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 원흉의 땅 시돈으로 보내신다. 

하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 아합과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시돈 땅에도 여호와를 아는 사람이 있으며, 그는 세계적 기근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삶을 살아간다. 

이방땅에도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시돈의 왕 엣바알이 섬기는 바알은 기근 속에서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신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근을 주관할 뿐 아니라 기근 속에서도 사람들을 살릴 수 있으신 분이시다. 

이 대조를 통해 북이스라엘이, 아합 왕과 이세벨이 얼마나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것인지 밝히신다. 

그들은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한다. 

 

그 땅의 한 과부는 엘리야가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알아차린다. 

 

12그 여인이 말하였다. "어른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저에게는 빵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뒤주에 밀가루가 한 줌 정도, 그리고 병에 기름이 몇 방울 남아 있을 뿐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땔감을 줍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가서, 저와 제 아들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것을 모두 먹으려고 합니다."

 

아마 그 여성은 당시의 주변국들이 어떤 신을 섬기는지 대강 알았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앎은 아주 피상적일 뿐이다. 

그는 아직 하나님의 진정한 능력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엘리야가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자, 그는 작은 믿음을 가지고 엘리야의 말을 따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던 여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손길을 믿어 본다. 

그리고 그 믿음은 실제가 된다.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다. 

만나의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아합와 이세벨은 자신들의 멋진 왕궁에서 하나님을 배반했지만, 사르밧의 어머니는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다. 

그 신뢰와 믿음이 결국 기적을 보게 했다. 

 

그런데 비극적인 일이 찾아왔다. 

이제 음식은 있어서 다시 살게 되었는데, 생존의 문턱은 넘었는데, 아들이 병으로 인해 죽어버린 것이다. 

이전에는 같이 죽으려했으나, 지금은 자신만 살고 아들은 잃었다. 

그 어머니는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그 전보다 더 심각하다.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는데, 그래서 놀라운 기적을 매일 경험하고 있는데, 아들이 죽다니… 혹여 내가 엘리야 선지자에게 잘못한 것이라고 있나? 아님 전 남편에게 잘못한 것이 있나?’ 

이런 저런 생각들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고통의 눈물만 흘린다. 

밤낮 눈물로 옷이 젖는다. 

하나님은 그 어머니를 너무 고통스럽게 하셨다. 

 

18그러자 그 여인은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사람이신 어른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렇게 저에게 오셔서, 저의 죄를 기억나게 하시고, 제 아들을 죽게 하십니까?"

 

저 어머니의 고통에 찬 호소와 부르짖음이 들리는 듯 하다. 

자신의 모든 죄들을 떠올려본다. 

남편도 없고, 오직 아들만으로 인생의 희망과 소망을 두었는데, 그마저도 이제 사라졌다. 

그는 더이상 살아갈 용기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기 죄가 밤낮 떠오르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르밧의 한 어머니가 보인다. 

그의 심장과 위장은 오그라들고 폐는 찌그라든다. 

머리에는 생각이 끊이지 않고 고통의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 고통은 사르밧 어머니에게만 찾아온 것은 아니다. 

엘리야도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밀가루와 기름의 기적을 가져다 준 장본인이긴 하지만, 결국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다. 

오히려 아들의 죽음으로 고통만 가중되었다. 

엘리야도 하나님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왜 하나님이 이런 재앙을 사르밧의 어머니에게 주시는지 알 길이 없었다. 

고통스런 부르짖음이 들리는 듯 싶다. 

 

20주님께 부르짖었다. "주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집의 과부에게 이렇게 재앙을 내리시어, 그 아들을 죽게 하십니까?"

21그는 그 아이의 몸 위에 세 번이나 엎드려서, 몸과 몸을 맞춘 다음, 주님께 또 부르짖었다. "주 나의 하나님, 제발 이 아이의 호흡이 되돌아오게 하여 주십시오!"

 

엘리야는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을 부른다. 

최선을 다해 그분을 부른다.

결국 이 부르짖음의 기도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24그 여인이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제야 저는, 어른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시라는 것과, 어른이 하시는 말씀은 참으로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돈의 사르밧 어머니의 고백은 시돈의 공주인 이세벨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 

이세벨이 배워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사실이다. 

오직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다. 

생명을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현실에서도 이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자신의 권력이, 혹은 세상의 성공을 부추기는 바알과 같은 존재가 더 위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생명을 살리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그분이 생명의 근원되신다.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 

주님만이 참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바알같은 신과 하나님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모욕입니다. 

그럼에도 저도 모르게 ‘돈, 명예, 쾌락보다 하나님이 더욱 중요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그런 것들과 비교하곤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그런 비교조차 기분 상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주세요.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주세요. 

육이 죽어가는 거야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젊은 나이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살려주세요. 

그보다도 더 간절히 기도합니다. 

영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주세요. 

좌절하지 않고 주님의 살려주심을 경험하길 원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생명을 느끼는 하루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10월 27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29유다의 아사 왕 제 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스물두 해 동안 다스렸다.

30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그 이전에 있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31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앞질렀다. 그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으며, 더 나아가서 바알을 섬기고 예배하였다.

32또 그는 사마리아에 세운 바알의 신전에다가 바알을 섬기는 제단을 세우고,

33아세라 목상도 만들어 세웠다. 그래서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였다.

34아합 시대에 베델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다. 주님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시켜서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그는 그 성의 기초를 놓으면서는 그의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성문을 달면서는 그의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다.

1길르앗의 디셉에 사는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내가 섬기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앞으로 몇 해 동안은, 비는 커녕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2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3"이 곳을 떠나서, 동쪽으로 가거라. 그리고 거기 요단 강 동쪽에 있는 그릿 시냇가에 숨어서 지내며,

4그 시냇물을 마셔라. 내가 까마귀에게 명하여서, 네게 먹을 것을 날라다 주게 하겠다."

5엘리야는 주님의 말씀대로 가서, 그대로 하였다. 그는 곧 가서, 요단 강 앞에 있는 그릿 시냇가에 머물렀다.

6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빵과 고기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고, 저녁에도 빵과 고기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물은 그 곳 시냇물을 마셨다.

7그런데 그 땅에 비가 내리지 않으므로, 얼마 있지 않아서, 시냇물까지 말라 버렸다.

 

주석

1절: 비가 내리지 않은 것은 단순한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 여호와의 권능과 바알의 무능함을 드러낼 경쟁 가운데 첫 번째 시도였다(IVP 성경주석).


유다 왕 아사는 정말 많은 일을 겪은 왕이었다.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급변 사태가 너무 자주 바뀌었고, 그 때마다 철저하게 대비해야 했다. 

그렇게 많이 바뀌는데도, 그들의 죄악은 그치질 않는다. 

아마 아사가 끝까지 다윗의 길을 걸었던 것, 죄악의 길로 빠지지 않았던 것은 북이스라엘의 왕들의 역사를 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았던 것은 아닌지 추측을 해본다. 

 

오므리도 문제였지만, 그의 아들 아합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는 정도가 아니라 더 앞질렀다.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다. 

그리고 바알을 섬기고 예배했다. 

시돈 왕의 이름이 엣바알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기본적으로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피해야 할 대상이건만, 아합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세라는 거칠 것이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거리낌 없이 진행한다. 

아합 왕을 조종하여 바알을 섬기는 제단과 아세라 목상도 만들었다. 

이제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다. 

비의 신, 풍요의 신 바알을 섬기기로 결정한 듯 싶다. 

 

하나님의 진노가 점점 끓어 오른다. 

이상한 점은 하나님의 진노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심판의 시기가 정해진다는 점이다. 

어떤 왕은 금방 실권하여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악한 왕은 장기집권에 성공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1차원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의인을 통해 악인을 치시는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더 큰 악인을 통해 기존의 악인을 치시는 경우도 있다. 

더 큰 악인이 더 빨리 심판은 받는 것도 아니다. 

심판의 시기는 계산되지 못한다. 

하나님께 달린 일이다. 

그분이 결정하신다. 

언제 심판할 지, 어떻게 심판할 지는 하나님의 판단에 달려 있다. 

 

선지자 엘리야가 갑자기 불쌍하다. 

기껏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나서, 도망해야 했다. 

그릿 시냇가에 몸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아침 저녁으로 까마귀에 의존해야 했다. 

게다가 가뭄이 심해지자 그릿 시냇가도 말라 버렸다. 

하나 같이 열받는 상황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으면 하나님께서 좋은 집과 옷과 음식과 편안한 삶을 보장해주셔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렇게 비루한 삶을 살아야 하다니… 

불쌍하다는 생각에 고통스럽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의 삶이 이러하다니… 

선뜻 이 길을 가자고 말하기가 두렵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도 그렇고 바울도 그렇고 그들이 현실에서 풍족한 삶을 누리지는 못했다. 

차라기 구약의 족장들을 보면 그래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은 누렸던 것 같은데 말이다. 

선지자들의 삶,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람들의 삶은 누추하다. 

이것이 사실이다. 

그 길을 회피하지 말자. 

둘 다를 얻으려는 억지 욕심을 포기하자. 

이 시대의 엘리야들을 응원한다. 


어제는 슬퍼하시는 하나님을 떠올렸다면, 오늘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슬픔과 분노를 느끼신다는 사실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당신의 진노를 여전히 촉발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쟁을 도모하고, 살인을 계획하는 사람들. 

거짓과 술수로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는 사람들. 

주님, 이런 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깊이 깨닫고 돌아서게 해 주세요. 

그들로 인해 고통받는 자들을 보살펴 주소서. 

 

주님, 

당신의 말씀을 전하고 증언하기 위해 헌신한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축복하여 주소서. 

때로는 그릿 시냇가가 마르는 좌절스런 경험이 그들에게 찾아 올 수도 있겠지만, 

주님의 도우심을 여전히 신뢰하며 인내하는 그들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께 맡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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