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1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니, 주님의 규례로 나를 살려 주십시오.

 

11 “그 날이 오면, 내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고, 그 터진 울타리를 고치면서 그 허물어진 것들을 일으켜 세워서, 그 집을 옛날과 같이 다시 지어 놓겠다.

12 그래서 에돔 족속 가운데서 남은 자들과, 나에게 속해 있던 모든 족속을, 이스라엘 백성이 차지하게 하겠다.” 이것은 이 일을 이루실 주님의 말씀이다.

13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 때가 되면, 농부는 곡식을 거두고서, 곧바로 땅을 갈아야 하고, 씨를 뿌리고서, 곧바로 포도를 밟아야 할 것이다. 산마다 단 포도주가 흘러 나와서 모든 언덕에 흘러 넘칠 것이다.

14 내가, 사로잡힌 내 백성 이스라엘을 데려오겠다. 그들이 허물어진 성읍들을 다시 세워, 그 안에서 살면서 포도원을 가꾸어서 그들이 짠 포도주를 마시며, 과수원을 만들어서 그들이 가꾼 과일을 먹을 것이다.

15 내가 이 백성을 그들이 살아갈 땅에 심어서, 내가 그들에게 준 이 땅에서 다시는 뿌리가 뽑히지 않게 하겠다.” 주 너의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오늘의 묵상]

하나님의 심판은 회복을 전제한다. 

그토록 무섭던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조치였다. 

하나님의 간절한 소망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완전히 죽어 없어지는 것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다시 회복되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명예를 되찾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소명은 전 세계를 위한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었다. 

삼위 하나님의 연합 가운데로 전 세계 사람들과 민족들을 안내하고 이끄는 것이다. 

자신들은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과 세상의 다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세상을 인도하는 것이다. 

이 소명을 회복하기를 하나님은 그토록 원하셨다.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 소개하여, 세상이 자신들의 죄악에서 벗어나 거룩한 하나님의 법을 따르기를 자청하도록 이끄는 존재가 바로 이스라엘이어야 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바로 그 약속이 성취될 때 일어나는 일이었다. 

복의 근원, 모든 민족의 아버지로서의 정체성이 확보될 때 일어나는 일이었다. 

참복은 물질에 있지 않다. 

참복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이다. 

참복은 삼위 하나님과의 사랑의 연합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죄악, 특별히 우상 숭배와 불의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고,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니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니 불의한 사회, 약자를 짓밟는 폭력적인 사회가 되었다. 

율법의 핵심을 놓쳤으니 결국 이렇게 심판대에 서게 되었다. 

BC 721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다. 

BC 586년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다. 

남유다 사람들은 바벨론에 끌려가 바벨론의 통치를 받았다. 

오랫동안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었으나 그들은 그 기회를 발로 찼다. 

결국 그들은 멸망당했으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셨다. 

회복의 날을 예언하셨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옛땅을 회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들이 다시 제사장 나라가 되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산마다 단 포도주가 흘러 넘친단다. 

농사도 성공적이고, 사회도 안정적이며, 따라서 축제와 파티가 종종 열린다. 

사회가 병들면, 미움이 가득하면, 어쩔 수 없이 전쟁이 뒤 따른다. 

물질적 풍요만으로 파티가 열릴 수 없다. 

서로를 위한 배려와 사회 안전망이 갖춰져야 축제를 즐길 수 있다.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고대 사회에서 그들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공동체는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포도주는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먹을게 없는 기근의 사회라면, 만인이 만인에 대한 투쟁 사회라면, 서로 죽이고 빼앗는 사회라면, 약자들에게 돌아갈 포도주는 없다. 

포도주 자체를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어렵게 만든 적은 포도주마저도 강자들에 의해 독점된다. 

평범한 농민들은 그 흔한 과일도 맘 놓고 먹기 어려워진다. 

하나님이 회복시키려는 사회는 술을 많이 먹는 사회가 아니라, 강자와 약자가 함께 즐기는 사회다. 

어린이가 독사굴에 손을 넣고 장난쳐도 즐겁기만 한 사회다. 

양과 사자가 함께 뒹구는 사회다. 

폭력이 아니라 놀이가 만연한 사회다. 

 

바벨론으로부터 귀향한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회복의 실마리, 그루터기가 놓였다. 

율법을 중심으로 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다시 꿈꾸었다. 

제사장 나라가 되기 위해 그들이 버려야 했던 것, 추구해야 했던 것을 구분하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완전하지 않음이 분명했다. 

그들은 여전히 번번히 실패했다. 

사람의 노력으로 그 이상적인 공동체를 달성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그러니 오늘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은 바벨론 포로로부터 귀환한 공동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도리어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예견한다.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왕이 되셔야 한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진정한 이스라엘, 진정한 제사장 나라를 만드셔야 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분에 의해 참 이스라엘이 완성된다. 

그분에 의해 우주적, 유기적 교회가 시작된다. 

그 교회가 바로 회복의 주체이며 제사장 나라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존재다. 

이 세상의 모델이다. 

예수님이 왕이시며, 교회는 그의 백성이다. 

이 존재야말로 절대 뿌리 뽑히지 않는다(15절).

가나안 땅, 예루살렘, 시온산에 제한되지 않는다. 

우주적 교회, 보편적 교회, 유기적 교회는 역사를 총망라하며 전세계적인 네트워크다. 

이 교회는 우상 숭배가 없고, 약자에 대한 괴롭힘이 없다. 

이 교회에는 포도주가 넘치고 먹을 것이 마련되어 있다. 

모두가 서로 즐거워하며 매번 파티가 열린다. 

 

지역 교회, 개교회는 약점이 많다.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이상적인 교회로 발돋움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역 교회는 우주적 교회의 그림자다. 

우주적 교회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 높은 이상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우주적 교회의 모델이다. 

 

한국교회는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생존이 문제가 아니라 본질이 문제다. 

우상 숭배의 죄에서 벗어나야 한다. 

불의를 방조하고 동조한 죄에서 벗어나야 한다. 

옳고 그름을 흐트러뜨려 기준선을 흐리게 만든 것을 뉘우쳐야 한다. 

자신이 불법을 저지르고 돈으로 무마하려는 죄악을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현시점의 이정표를 제시해야 한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완벽을 향한 기준을 제시하는 소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물론 더 철저하게 자기를 성찰하고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여 가능하면 완벽에 가까운 모델이 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그 완벽을 향해 나아가기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현실 지역 교회는 그저 최선을 다해 그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소명을 다한 것이다.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기준을 주장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라. 

현실을 감안하되, 절대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한국 사회는 우주적 교회의 기준과 모델을 반영해야 한다. 

우상이 아니라 인격적이며 거룩하며 자기 희생적인 유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까지 나아가면 최상이다. 

사회적 약자가 소외되거나 불의함을 경험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고, 사법 정의를 실천하며, 경제 정의가 회복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사회, 공동체는 우주적 교회를 닮은 것이다. 

다른 이념으로 대체해서는 안된다.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우주적 교회(하나님 나라) 모델을 대체할 수 없다. 

반자본주의든 반공산주의든 우주적 교회 모델을 가로막을 수 없다. 

사람들의 이슈가 하나님의 이슈를 덮어서는 안된다. 

사람들의 이슈가 존중받아야 하는 것처럼, 우주적 교회 모델을 이 땅에 실현하시려는 하나님의 이슈를 가로채서는 안된다. 

 

이 기준으로보면, 윤석열과 그의 일당은 큰 죄를 저질렀다. 

첫째는 우상 숭배의 죄요, 둘째는 사회 폭력의 죄다. 

귀신과 잡신을 섬기는 모습이 곳곳에 잡혔다. 

계엄이라는 국가 폭력을 통해 장기 집권의 기틀을 마련하려고 했다. 

하나님 사랑도 어겼고, 이웃 사랑도 놓쳤다. 

그들이 끝까지 놓지 않고 있는 것은 자기 사랑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자기 사랑에 몰입되어 있다. 

사탄과 귀신이 부추기는 것이다. 

속히 국가 지도자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자칫하면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려는 여로보암이나 므낫세와 같은 존재가 될 뻔 했다. 

이 나라를 지켜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민주 시민들을 통해 하나님은 이 나라를 지켜주셨다. 

도리어 한국의 일부 교회들이 우주적 교회 모델로서 부적격의 모습을 보였다. 

우상 숭배자와 불의를 조장하는 폭력배를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지지했다. 

지역 교회가 분별력을 잃고 돈과 권력의 힘에 압도당하고 있다. 

평화가 아니라 폭력과 전쟁을 지지하는 듯하다. 

우선순위가 뒤바뀌면 안된다. 

우선순위는 우상숭배를 배격하고, 사회 폭력을 제거하는 일이다. 

폭력이 가져오는 전쟁을 막는 일이다. 

지역 교회의 생존을 위해 우주적 교회의 본질을 내팽겨치면 안된다. 

 

하나님의 심판은 회복을 전제한다. 

한국의 지역 교회에도 적용된다. 

우주적 교회의 일원으로 그 정체성을 다시 회복하라.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실 것이니, 그분께 순종하라. 

 

 

[오늘의 기도]

회복하시는 하나님, 

벌써 12월 31일입니다. 

2024년이 이제 지나갑니다. 

다사다난 했던 한 해였습니다. 

특히 12월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지도자는 정신이 나갔고, 국민들은 대형참사로 슬픔에 잠겼습니다. 

한국 사회를 회복시켜 주소서. 

한국의 지역 교회들이 우주적 교회의 모델이 되게 하시어, 대한민국 공동체 회복에 기여하게 하소서. 

 

우상숭배를 대놓고 하며, 사회 폭력을 조장하는 무리들을 심판하소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그른 것인지 헷갈리게 하는 무리들을 단죄하소서. 

하나님외에 다른 것은 참신이 아닙니다. 

이웃을 압제의 대상, 자기 권력 유지의 기반으로만 인식하는 자들을 정죄하소서. 

 

그리고 이 땅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고통과 슬픔에 잠겨있는 자들을 위로하소서. 

그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의 고통을 끌어안아 주소서.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은혜를 베푸소서. 

더는 대형참사로 고통받지 않도록 주여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12월 27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벌리고 헐떡입니다.

 

7 주님께서 야곱의 자랑을 걸고 맹세하신다. “그들이 한 일 그 어느 것도 내가 두고두고 잊지 않겠다.

8 그들이 이렇게 죄를 지었는데, 어찌 땅이 지진을 일으키지 않겠으며, 어찌 땅 위에 사는 자들이 모두 통곡을 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강물처럼 솟아오르다가, 이집트의 강물처럼 불어나다가, 가라앉지 않겠느냐?

9 나 주 하나님이 하는 말이다. 그 날에는 내가 대낮에 해가 지게 하고, 한낮에 땅을 캄캄하게 하겠다.

10 내가 너희의 모든 절기를 통곡으로 바꾸어 놓고, 너희의 모든 노래를 만가로 바꾸어 놓겠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굵은 베 옷을 입히고, 머리를 모두 밀어서 대머리가 되게 하겠다. 그래서 모두들 외아들을 잃은 것처럼 통곡하게 하고, 그 마지막이 비통한 날이 되게 하겠다.

11 그 날이 온다. 나 주 하나님이 하는 말이다.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보내겠다. 사람들이 배고파 하겠지만, 그것은 밥이 없어서 겪는 배고픔이 아니다. 사람들이 목말라 하겠지만, 그것은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다.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목말라 할 것이다.

12 그 때에는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찾으려고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헤매고, 북쪽에서 동쪽으로 떠돌아다녀도, 그 말씀을 찾지 못할 것이다.

13 그 날에는 아름다운 처녀들과 젊은 총각들이 목이 말라서 지쳐 쓰러질 것이다.

14 사마리아의 부끄러운 우상을 의지하고 맹세하는 자들, ‘단아, 너의 신이 살아 있다’, ‘브엘세바야, 너의 신이 살아 있다’ 하고 맹세하는 자들은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주석

11절. 여호와의 공정한 보상은 냉혹하다. 말씀이 무시되었기에 말씀이 사라진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오랫동안 무시했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하나님의 심판의 날,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의 날이 다가온다. 

그 날에는 교만하고 거짓되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의 죄악이 만방에 드러난다.

그 날에는 곡하는 소리가 가득할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높였던 자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 눈물을 흘릴 것이다. 

빠져나올 길이 없다. 

 

9 나 주 하나님이 하는 말이다. 그 날에는 내가 대낮에 해가 지게 하고, 한낮에 땅을 캄캄하게 하겠다.

 

이 구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예고한다. 

사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사탄의 권세를 심판했다. 

사탄의 권세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마지막 심판이 기다린다. 

십자가 심판 때, 해가 어두워지고 땅이 캄캄해졌다. 

마지막 백보좌 심판 때, 온 우주가 결산을 맞이할 것이다. 

 

우상을 따르던 자, 

자기 욕심을 따르던 자, 

무절제하게 자기 욕망에 충실했던 자, 

온갖 귀신들과 잡신들을 섬겼던 자, 

하나님의 공의롭고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구약 성경은 예수님에 의해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예수님이 구약 성경을 인정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을 귀하게 여긴다. 

구약은 예수님을 예언하고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다. 

구약의 권위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한다. 

구약이 여러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최종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편집되었던 고대 문학 작품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다른 고대 문서들과 어떤 차별점을 가지는가? 

다른 것으로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그 신적 기원과 권위를 부여하기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고대 이집트 문서, 고대 수메르 문서와의 유사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학자들은 바벨론 포로기의 유대민족이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 제국들의 신화들을 빌려와서 구약을 만들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런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논증은, 구약이 가지는 독특함과 차별성이다. 

유일신 하나님을 전제하며, 다른 신화들에 등장하지 않는 인간 창조의 의도성, 선악의 분명한 이분법, 높은 도덕적 덕목을 강조하는 법률 등은 그 차별성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 또한 다른 고대 문서의 발견에 의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고고학, 역사학은 새로운 발견에 의해 언제든지 바뀐다. 

 

다른 접근이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부활의 역사적 사실성을 신뢰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신 예수님은 부활함으로써 자신을 증명해내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증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긍정하시고 인용하신 구약 성경은 하나님이 공증하신 문서로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구약에서 가장 큰 죄는 우상 숭배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구약은 계속 선포한다. 

북이스라엘, 남유다가 멸망한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겼기 때문이다. 

 

무속 신앙을 따르면서 국헌을 문란하게 한 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기독교를 따르면서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차피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따라 살며 그 누군가가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국헌을 문란하게 했다면 그 국헌 문란에 대해서 비판해야지, 그가 무속 신앙을 따르는 것에 대해 비판해서는 안된다”

이런 입장이다. 

맞다.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 기독교의 가치를 따라 국가의 중대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대통령이 어떤 종교,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는지를 비판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몇 가지 고려할 것이 있다. 

 

1. 무속 신앙은 전근대적 신앙임은 상식적이다. 

무속 신앙의 근본은 개인 욕망의 극대화를 추구하며 그 추구를 위해 접신한다.  

이는 계몽주의와 근대화에 의해 논파되었다. 

인간의 욕망이 잡신들을 불러오고 그 잡신들에 의해 인간의 자유와 인권은 속박된다. 

근대화는 인간 개인과 주체성의 발견 과정이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증대되는 과정으로의 변화다. 

무속 신앙은 이런 근대화에 역행한다. 

무속 신앙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위해 신을 부르고 신에 종속된다. 

따라서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는 무속 신앙과 공공의 이익은 충돌한다. 

그러기에 국가 통치자는 대놓고 무속 신앙을 따른다고 말하지 않는다. 

 

2. 개인의 자유의 인권의 증대를 가져온 종교는 기독교다. 

막스 베버의 책,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개신교 윤리가 자본주의 발달에 기여했다고 본다. 

계획적,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개인의 주체성을 발달시켰고, 초기 자본주의는 자유와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지금 전세계의 자유와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 벌이고 있는 나라들은 기독교 국가임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이런 기독교 국가들의 모든 노력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퇴행을 가져오고 또 다른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그러나 노예를 해방하고, 여성 인권을 높이는 일에 기독교가 기여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건 그대로 긍정하되, 현재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에 반해 무속 신앙은 사람을 귀신들에게 종속시킨다. 

박수와 무당들에 의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인권을 스스로 제한한다. 

 

3. 기독교에서 최악의 죄악은 잡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다. 

기독교인들은 무속 신앙을 따르는 사람들을 지도자로 인정할 수 없다. 

기독교인이면서 무속인을 국가 지도자로 지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의 공적 영역에서 현재 통용되는 종교는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포함)와 불교 정도다. 

그들 종교는 공적 영역과 종교 영역의 적절한 거리를 두고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관계를 설정해 왔다. 

그래서 종교활동과 정치, 경제 활동을 상식적인 선에서 구분한다. 

서로 존중한다. 

 

따라서 한국의 기독인은 최소한 가톨릭, 개신교, 불교를 따르는 지도자를 지지할 수 있다. 

물론 특정 종교를 따른다고 해서 그의 공적 정책이나 정치 행보를 무조건 지지해서는 안된다. 

정치, 외교, 안보, 경제, 문화 등에 있어서 각각의 정책 결정의 원리들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지도자의 인격이나 실력도 살펴야 할 것이다. 

특정 종교를 믿는 것과 지도자로서 자격이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무속 신앙을 따르는 자를 기독교인이 지지할 수는 없다. 

사실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들이 무속 신앙의 지도자를 따르는 것은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더군다나 기독인이라면 우상숭배를 그토록 싫어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절대로 지지해서는 안될 것이다. 

 

윤석열과 김건희, 천공, 건진, 노상원… 

이 정권은 무속 정권임이 더욱 분명해졌다. 

왕자를 새기고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에 참석할 때부터 알았어야 했다. 

무속 신앙이 공적 영역으로 침범하고 있음을 빨리 알아챘어야 했다.

만방에 드러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이 정권을 지지하는 기독인이 있다면, 그는 우상숭배를 긍정하는 자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용서하실 수가 없다. 

신약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고 한다. 

성령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무당과 박수를 찾아다니고, 그들에게 신점을 보는 교인이 있다면, 그는 혼합주의에 빠졌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신앙 형태다. 

제발, 극우기독교에서 벗어나라.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린다. 

스스로 멸망하게 되어 있다. 

마지막 심판을 두려워하라. 

 

 

[오늘의 기도]

심판의 하나님, 

우상을 섬기는 자, 

무엇보다 공공의 이익을 쫓기보다 개인의 이익을 쫓아 사는 국가 지도자를 빨리 파면해주세요. 

더 이상 참기가 어렵습니다. 

내란 수괴가 여전히 체포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헌을 문란케 한 자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발광을 떨고 있습니다. 

귀신들을 제압하여 주소서. 

악한 귀신들을 막아주소서. 

오직 성령께서 이 나라를 보호하소서. 

 

저의 영혼도 주님께 맡깁니다.

분노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분노하기보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계속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게 하소서. 

 

아내의 질병을 고쳐주소서.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주님의 역사적 개입을 강력하게 부르짖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12월 19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니, 주님의 법이 나의 기쁨입니다.

 

12 말들이 바위 위에서 달릴 수 있느냐? 사람이 소를 부려 바다를 갈 수 있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공의를 뒤엎어 독약을 만들고, 정의에서 거둔 열매를 쓰디쓴 소태처럼 만들었다.

13 너희가 로드발을 점령하였다고 기뻐하며 ‘가르나임을 우리의 힘만으로 정복하지 않았느냐’고 말하지만,

14 이스라엘 가문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서 너희를 치겠다. 만군의 하나님, 나 주의 말이다. 그들이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개울에 이르는 온 지역에서 너희를 억압할 것이다.”

 

주석

13절. ‘로드발’과 ‘가르나임’, 이 두 곳은 요단 강 동편의 지명이다. 아마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영토를 솔로몬의 범위까지 확대했을 때, 그의 승리를 자축하는 장면일 것이다(IVP 성경주석).

14절. 여로보암의 확장으로 이스라엘은 솔로몬 재위 때와 같은 크기로 회복되었다. 하맛 어귀는 다마스쿠스에서 72km 떨어진 레바논의 북부 바카에 있다. 현재의 사해인 아라바 시내는 이스라엘 왕국의 남쪽 경계였다.

 

[오늘의 묵상]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능력자이거나 범죄자다. 

달인들은 능력자다.

공동체에 위해를 가하는 것은 범죄자다. 

공의를 엎어 독약을 만드는 자, 그들은 공동체를 반영구적으로 손상입힌다.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 

구조적으로 공의와 정의가 더럽고 약한 것으로 치부한다. 

사람들은 점점 공의와 정의를 멀리한다. 

악과 힘과 돈과 모략이 넘쳐난다. 

그런 것들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고, 승전할 수도 있다. 

교만한 평가가 줄을 잇는다. 

자신들의 힘으로 승리한 줄 안다. 

자신들의 능력으로 정복한 줄 안다. 

하나님은 사라진다. 

하나님의 역할은 그들에게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할 수 없는 일을 한 사람이 또 있다. 

윤석열. 

국민을 대상으로 총부리를 겨누었다. 

전시 혹은 전시에 준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게엄령을 발동시켰고, 그것도 모자라 국회를 해산하려고 했다. 

내란의 죄를 범했음에도 뻔뻔하게 자기 합리화에 빠져 있다. 

그의 범죄로 인해 나라가 엄청난 손상을 입었다. 

나라가 제 자리로 빨리 돌아오려면 속히 그를 파면시키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정치라는 것이 진영 논리가 있기 때문에 진실이 가려지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쉴드 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전 국민이 TV로 실시간 시청을 했다. 

국회에 침입하는 특수부대원들은 상부의 명령이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결국 내란의 우두머리와 그의 수하들은 철저하게 수사받고 처벌받아야 한다. 


아내가 쓰러졌다. 

어지럽다고 하더니 쿵하고 쓰러져 머리를 다쳤다. 

뇌출혈. 

충격적이었다. 

아직은 젊은 나이에 뇌를 다쳤다. 

다행인 것은 인지 능력, 기억 능력, 손발 사용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각 신경 부위의 출혈로 인해 냄새를 못 맡게 될지도 모른다. 

피가 더 많이 나지 않은 것도 다행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후각 신경도 다시 회복되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치료의 하나님, 

갑작스런 사고에 놀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제가 주님의 도우심을 충분히 간구했는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주변 가족과 이웃들의 관심과 기도는 정말 감사한 부분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와 우리 주님의 도우심으로 수술까지는 하지 않고 회복할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끝까지 후유증 없이 회복되도록 돌봐주소서. 

후각 신경이 회복되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12월 13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벌리고 헐떡입니다.

 

4 "나 주가 이스라엘 가문에 선고한다. 너희는 나를 찾아라. 그러면 산다.

5 너희는 베델을 찾지 말고, 길갈로 들어가지 말고, 브엘세바로 넘어가지 말아라. 길갈 주민들은 반드시 사로잡혀 가고, 베델은 폐허가 될 것이다."

6 너희는 주님을 찾아라. 그러면 산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요셉의 집에 불같이 달려드시어 베델을 살라버리실 것이니, 그 때에는 아무도 그 불을 끄지 못할 것이다.

7 너희는 공의를 쓰디쓴 소태처럼 만들며, 정의를 땅바닥에 팽개치는 자들이다.

8 묘성과 삼성을 만드신 분, 어둠을 여명으로 바꾸시며, 낮을 캄캄한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올려서 땅 위에 쏟으시는 그분을 찾아라. 그분의 이름 '주님'이시다.

9 그분은 강한 자도 갑자기 망하게 하시고, 견고한 산성도 폐허가 되게 하신다.

10 사람들은 법정에서 시비를 올바로 가리는 사람을 미워하고, 바른말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11 너희가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그들에게서 곡물세를 착취하니, 너희가 다듬은 돌로 집을 지어도 거기에서 살지는 못한다. 너희가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어도 그 포도주를 마시지는 못한다.

12 너희들이 저지른 무수한 범죄와 엄청난 죄악을 나는 다 알고 있다. 너희는 의로운 사람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법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였다.

13 그러므로 신중한 사람들이 이런 때에 입을 다문다.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

 

 

주석

4절.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그들에게 필요한 치료책으로 제시하신다. ‘나를 찾으라’는 말은 가까운 관계, 교제 그리고 새로운 생명으로의 초청이다(IVP 성경주석). 

8절. 묘성과 삼성은 계절의 표시였다. 묘성의 등장과 안착은 뱃사람들에게 항해의 시기를 표시해 주었고, 유목민의 달력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나타냈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나라도 내란 중이듯이 내 몸도 오한으로 내란 중이었다. 

12년 만의 이사가 끝나자마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고, 나는 새벽에 국회로 택시를 탔다. 

시민들과 계엄령 해제를 외쳤다. 

그 뒤로 이어지는 윤석열 탄핵 집회에 금토에 걸쳐 참석했다. 

몸이 점점 가라 앉았다. 

내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일정이었다. 

급기야 감기가 찾아왔고, 무엇보다 몸살과 오한이 밀어 닥쳤다. 

지난 며칠간 고통스런 순간들을 보내고, 이제 좀 몸이 말을 듣는 듯 싶지만, 너무 오래 누워있었던 탓인지, 요통이 또 찾아왔다. 

정치인들은 저렇게 밤을 새고, 저렇게 흥분하는데도 모두들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 처럼 보인다. 

저 정도의 체력을 갖고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 싶다. 

젊은 날 체력을 키우는 일에 더 힘을 썼어야 했다. 

근육도 키우도 체력도 키웠어야 했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나를 찾으라”이다. 

하나님은 심판받아 마땅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당신을 찾으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을 찾는 자만이 산다. 

비록 이스라엘이 그동안 저지른 죄악이 크고 하나님을 실망시켰지만, 그래서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있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하다. 

그들이 회개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신 그 계획을 따라 사는 것이다. 

 

베델, 길갈, 브엘세바로 가서는 안된다. 

그곳은 계속 죄를 짓는 곳이며, 하나님을 떠나는 길이다. 

장소를 바꾸어야 한다. 

당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에 꼭 예루살렘으로 가야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베델과 길갈과 브엘세바에서 지은 죄를 멈추라는 의미다. 

 

1. 버려진 공의와 정의 

“7 너희는 공의를 쓰디쓴 소태처럼 만들며, 정의를 땅바닥에 팽개치는 자들이다”

집사부일체 53회(2019년 1월 20일 방영), 육성재와 이승기는 쓰디쓴 소태차를 마시고 속이 뒤틀리는 경험을 했다. 

너무 써서 입만 대도 버려버리는 것이 소태다. 

공의와 정의가 그렇게 내팽겨쳐진다. 

공의와 정의가 사회의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그 위에 사랑과 자비가 덧씌워져야 하는데, 그게 망가졌다. 

그게 베델의 길이다. 

 

2. 사법 정의 추락

“10 사람들은 법정에서 시비를 올바로 가리는 사람을 미워하고, 바른말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일상 생활을 하는 중에 입바른 말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들은 재수 없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바른 말을 해야 한다. 

진실이 중요하다.

동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일단 진실이 확보되어야 제대로된 동정을 할 수 있다. 

공감이 앞서면, 죄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할 수가 없다. 

일단 진실이 명명백백 밝혀져야 진짜 공감받아야 할 사람이 누군지가 드러난다. 

이스라엘은 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3. 착취

“11 너희가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그들에게서 곡물세를 착취하니…”

사법 정의가 망가지면, 결국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짓밟는다. 

합법적으로도 힘들게 할 수 있는데, 조금만 불법을 가미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완전히 착취할 수 있다. 

법정에서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면, 일상에서는 폭력이 난무한다. 

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가! 

 

4. 의인 학대 & 억울한 판결

“12 너희들이 저지른 무수한 범죄와 엄청난 죄악을 나는 다 알고 있다. 너희는 의로운 사람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법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였다.”

 

결국 의인들은 학대를 받는다. 

정직한 사람들은 도리어 손해를 본다. 

힘없는 사람들은 더욱 억울해진다. 

 

이런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심판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기회를 주신다.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하나님을 찾을 것을 요청하신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거꾸로 돌아갔다. 

경제만 추락한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이 무너졌다. 

어쩌다 저런 자가 대통령이 되었을까?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중용한 사람들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낙점하여 대통령을 만들고 지금까지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죄악이 더욱 크다. 

물론 윤석열 자신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스스로를 고치지 못하는 인격장애적 성향을 그대로 방치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다. 

자기 자신을 너무 채찍질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자기 반성이 안되는 사람이 리더십을 가지니 그야말로 개차반이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미치는 악영향이 너무 크다. 

우리가 괴물을 만들었다. 

 

어제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2분동안 사과할 때는 언제고 이제서는 계엄이 정당하다고 한다. 

국민과 싸우려고 한다. 

거짓과 변명으로 점철되었다. 

권한을 이양하겠다는 말도 거짓이다. 

그는 종신집권을 위해 계엄을 자행했다. 

총선 패배 이후에 계엄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단다. 

군을 장악하려고 채해병 사건도 무마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그간의 그과 그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그렇게 무례했던 이유가 있었다. 

계엄으로 모든 것을 뒤집어 엎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제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렇게 무법무천 기세등등 하더니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협치하라고 그렇게 조언을 했지만, 듣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몰고 간 이유가 있었다. 

계엄으로 끝내려는 거였다. 

 

이런 자를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자들은 민주시민의 자격이 의심스럽다. 

 

우리 나라는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공의로운 그분께로 돌아가야 한다. 

약자를 사랑하시고 회복시키시는 그분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만이 살길이다. 

여전히 윤석열을 옹호하는 자들에게 외친다. 

하나님을 찾으라. 

국민의 힘 의원들에게 외친다. 

공의로운 하나님을 찾으라. 

그게 살 길이다. 

 

한국의 교회들이여! 

전광훈의 혀에 놀아나지 마라. 

지금은 광화문이 아니라 국회 의사당 앞으로 가야 할 때다. 

공의로운 하나님께 돌아서라. 

거짓과 속임수로 획책하는 무리들로부터 돌아서라.

 

 

[오늘의 기도]

주님, 

이땅을 고쳐주소서. 

우리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계엄이라는 위급한 상황에서 구출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뻔 했습니다. 

유혈 사태도 대한민국의 역사가 45년전 과거로 회귀할 뻔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국교회는 각성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제 자신도 더욱 깨어있도록 도와주소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영원한 가치를 갖습니다. 

그 복음이 대한민국 곳곳에 영향을 미치도록 이끌어 주소서. 

교회 건물과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급급해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교회가 더욱 영화로워지도록 행동하는 한국교회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와 당신의 뜻과 의가 드러나도록 이끄소서. 

 

전광훈과 같은 거짓과 탐욕의 무리들을 제거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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