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8 26 목요일

여는 기도

마음이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22 나는 안에서 성전을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23 도성에는, 해나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도성을 밝혀 주며, 어린 양이 도성의 등불이시기 때문입니다.

24 민족들이 가운데로 다닐 것이요,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을 도성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25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

26 그리고 사람들은 민족들의 영광과 명예를 도성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27 속된 것은 무엇이나 도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증한 일과 거짓을 행하는 자도 절대로 거기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다만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만이 들어갈 있습니다.

1 천사는 , 수정과 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강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2 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흘렀습니다.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 나무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쓰입니다.

3 다시 저주를 받을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도성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도성 안에 있고, 그의 종들이 그를 예배하며,

4 하나님의 얼굴을 것입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고,

5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릴 것입니다.

 

 

주석

생명수의 (1): 생명수의 강은 성을 회복된 낙원으로 묘사한다. 에덴처럼생명나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이것은 하나의 나무, “만국을 치료하기 위한유일한 근원이다(IVP 성경비평주석).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22). 그곳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해서 빛이 필요 없고, 밤이 없습니다(23, 25). 그리고 도시의 가운데에는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2). 이것은 모든 나라들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완전한 모습으로 회복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상 성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이전에 경험할 없었던 완전한 빛과 영광을 보게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영원히 그곳에서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를 묵상합시다. 나라를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시작된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역사는 이제 종결된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과 어린 양이 주인이시다. 

이상 과거의 예루살렘 성전의 기능이 필요없다. 

예루살렘 자체가 거룩한 곳이며,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빛이 가득한 곳이다. 

하나님의 영광의 , 그의 사랑의 , 그의 정의의 빛이 가득한 곳이다. 

빛으로 다닐 , 이상의 두려움은 사라진다. 모든 것이 명명백백해졌다. 

감춰진 진리는 아무것도 없다. 

우주의 신비에 대해서도, 과학이 풀지 못한 모든 사실에 대해서도, 역사의 진실에 대해서도 어떤 것도 숨겨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드러나고, 모든 것의 원인이 밝혀지고, 거짓과 술수와 계략과 모략은 사라진다. 

정직하게 사랑하고 정직하게 다스린다. 

빛이 어린 양에게서도 나온다는 사실이 위안이다. 

영광의 빛은 우주의 창조자 하나님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여 사람들을 품으신 예수님에게서도 나온다. 

사람들은 어린 양을 매일 매일 본다. 

희생 당한 어린 양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지 누가 알았겠는가!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던 생명나무는 이제 신천지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제공된다. 

생명샘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이 사람들을 회복시키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한다. 

회복이 일어난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5절이다. 

 

5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릴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릴 것이다. 

예수님과 하나님과 함께 우주를 통치할 것이다. 

본래 인간들에게 주었던 소명이 성취된다. 

대리 통치자로서의 본래의 소명이 완성된다. 

 

그렇게 에덴이 탄생한다. 

동물도 새들도 물고기도 사람의 돌봄과 통치 안에서 살아간다. 

우주의 역사도 새롭게 씌여진다. 

영원한 생명이 흘러간다. 

사랑과 정의가 막힘없이 흘러간다. 

 

솔직히 영원히 통치한다는 개념이 완벽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누굴 통치한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한다. 

궁금함을 가지고 신천지를 기대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지 기대한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내가 일이다. 

기대와 소망. 

그렇게 그분을 신뢰한다. 

 

 

——

우주의 주인 되신 하나님, 

세상을 다시 완벽하게 회복시켜주실 하나님, 

생명을 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더이상의 고통과 아픔을 겪지 않게 하실 하나님, 

사랑과 정의로 우주를 통치하실 하나님,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의 영광을 사모합니다. 

하늘과 , 

하나님의 새로운 도성을 기대합니다. 

 

주님, 어서 오셔서 죽음이 여전한 땅을 치료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8 24 화요일

여는 기도

내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1 나는 하늘과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2 나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때에 나는 보좌에서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5 때에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말씀하셨습니다. "기록하여라.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

6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이루었다. 나는 알파며 오메가,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내가 생명수 샘물 거저 마시게 하겠다.

7 이기는 사람은 이것들을 상속받을 것이다.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자녀가 것이다.

8 그러나 비겁한 자들과 신실하지 못한 자들과 가증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마술쟁이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차지할 몫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바다뿐이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주석

1: 질서의 소멸은 하늘 형성과 동시에 일어나고( 65:17; 66:22), 하늘과 땅의 등장은거룩한 예루살렘 내려오는 것으로 그려진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다. 나아가 이것은 자기남편 어린 양의신부 단장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묘사된다(IVP 성경비평주석).

 

요한은 하늘과 땅을 봅니다(1). 또한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봅니다(2). 이제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 함께 하시며,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3-4). 이제 이상 슬픔도 고통도 없는 새로운 세상이 임합니다. 처음이며 마지막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십니다(5).

 

드디어 기다리던 날이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눈물도 슬픔도 고통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땅에서 바빌론의 시스템과 짐승에 대한 경배를 거부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살게 것입니다. 땅을 사는 동안 비록 눈물과 고통이 있지만,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땅에 임하게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오늘을 살아갑시다.

 

——

 

요한계시록을 통독하는 사람들에게 그간의 읽기가 보상받는 장면이다. 

그동안 인간들의 반역, 하나님의 진노, 심판받는 반역자의 언어와 이미지가 가득하여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봉인의 해제, 나팔 소리, 대접 재앙으로 이어지는 심판의 싸이클은 완전한 심판의 상징을 극대화했다. 

출애굽 시기의 10가지 재앙보다 더욱 완벽한 심판이요, 재앙이다. 

일곱 번도 완전수의 상징인데, 그것이 또다른 완전수 번으로 증폭된다. 

21번의 심판이 하늘과 땅에 뿌려진다. 

그리고 드디어 하늘과 땅이 등장한 것이다. 

심판은 사라지고, 이제 온전한 어린 양의 통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의 그의 백성들과 함께 있다. 

그들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신다.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다.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희롱거리로 죽지 않아도 된다. 

이전의 고통의 세계를 움직이던 시스템이 사라졌다. 

모든 위계가 사라잔다. 기득권들에 의해 작동하던 세상의 질서가 사라진다. 

위계를 위해 만들어진 수많은 사회 구성물들이 사라진다. 

이제 새로운 세상이다. 

그분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신다. 

왕이 바뀌고, 세상의 시스템이 새롭게 되어간다. 

원래 거의 모든 조직이 최고 권력자가 바뀌면, 그의 철학과 의지에 의해 수많은 인사가 단행되고, 조직이 변경된다. 이것이 자연스럽다. 

우주의 왕으로 어린 양이 최종 등극하고, 드디어 세상의 질서가 재편되는 것이다. 

어린 양이 왕이라는 사실이 감사와 기쁨으로 다가온다. 

역사의 봉인을 해제하셨던, 희생당하신 어린 양이 이제 완전한 왕으로 등극하신 것이다. 

찬양이 울린다. 

어느 때보다 길고 나팔 소리가 들린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가 들린다. 

그런데 어린 양이 사람 사람 찾아가 그들의 눈물을 닭아 준다. 

왕의 취임식인 알았는데, 왕의 상담소가 되었다. 

사람들의 회복이 자연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하늘과 땅은 회복을 넘어 세계를 창조한다. 

 

6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이루었다. 나는 알파며 오메가,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내가 생명수 샘물 거저 마시게 하겠다.

 

어린양이 처음이요 마지막이었다. 

에덴 동산의 생명의 열매를 만드신 분이 그분이었다. 

생명의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막으신 분도 그분이었다. 

이제 하늘과 땅의 모든 사람들이 생명수 샘물을 공짜로 마신다. 

영원한 생명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마르지 않는 생명수 샘으로 인해 더이상 그들은 갈등하지도 싸우지도 않는다. 

모두가 하나님, 예수님을 모시고 매일 매일 생명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간다. 

우주를 통치하고, 우주의 질서를 잡아가며, 우주를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의도하면서, 대리 통치자의 삶을 살아간다.   

지헤가 부족하면 주님의 도움을 받는다.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하면 주님의 도움과 서로의 도움으로 즐거움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노랫소리, 신나는 레크리에이션, 과도한 경쟁이 없는 행복한 게임들 

세상을 섬기는 시간 외의 여가 시간은 서로를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며 그리고 자신도 즐거움과 기쁨이 넘치는 시간으로 채워간다. 

과연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삶은 어떨까? 

오늘도 삶을 상상해 본다. 

 

누군가는 지금 세상에서 즐거움을 누리고자 노력한다. 

지금 세상에서 새하늘과 새땅의 즐거움을 미리 조금씩 만끽하는 것은 정당하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 그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든 과도하면 경계를 넘어선다. 

새하늘과 새땅의 즐거움을 현재에 투사하는 것은 옳으나, 

현재의 즐거움 자체를 새하늘과 새땅의 즐거움인양 오해해서는 안된다. 

자칫 오해로 인해 사람들은 현실에 매이게 된다. 

현실을 뚫고 올라가서 하늘과 땅의 이상을 소망하는 삶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다. 

현실이 중요하지 않다고 누가 말하는가! 

현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의 쾌락에 중독되어 하늘과 땅의 소망을 잃어버린다면 그는 어리석은 결정을 것이다. 

 

——

주님, 하늘과 땅을 바라봅니다. 

하늘과 땅의 비전으로 소망하게 하소서. 

낮에도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8 19 목요일

여는 기도

마음이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11 나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에 말이 있었는데, '신실하신 ', '참되신 '이라는 이름을 가지신 분이 위에 타고 계셨습니다. 그는 의로 심판하시고 싸우시는 분입니다.

12 그의 눈은 불꽃과 같고, 머리에는 많은 관을 썼는데, 그분 밖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 그의 몸에 적혀 있었습니다.

13 그는 피로 물든 옷을 입으셨고,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14 그리고 하늘의 군대가 희고 깨끗한 모시 옷을 입고, 말을 타고, 그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15 그의 입에서 날카로운 칼이 나오는데, 그는 그것으로 모든 민족을 치실 것입니다. 그는 친히 쇠지팡이를 가지고 모든 민족을 다스리실 것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하신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실 것입니다.

16 그의 옷과 넓적다리에는 '왕들의 ', '군주들의 군주'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17 나는 해에 천사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공중에 나는 모든 새들에게 소리로 외치기를, "하나님의 잔치에 모여라.

18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힘센 자들의 살과, 말들과 위에 자들의 살과, 모든 자유인이나 종이나 작은 자나 자의 살을 먹어라" 하였습니다.

19 나는 짐승과 세상의 왕들과 군대들이, 말을 타신 분과 그의 군대에 대항해서 싸우려고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0 그러나 짐승은 붙잡혔고, 앞에서 기이한 일들을 행하던 거짓 예언자도 그와 함께 붙잡혔습니다. 그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짐승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을 이런 기이한 일로 미혹시킨 자입니다. 둘은 채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바다로 던져졌습니다.

21 그리고 남은 자들은 타신 분의 입에서 나오는 칼에 맞아 죽었고, 모든 새가 그들의 살점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주석

11: 로마의 군주들은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을 말을 타는 것이 관례였다(IVP 성경배경주석).

 

요한은 하늘이 열리고 말을 타고 오시는 분을 봅니다(11). 그분의 이름은 다양하게 설명됩니다. 이름은신실하신 ’, ‘참되신 ’, ‘하나님의 말씀’, ‘왕들의 ’, ‘군주들의 군주입니다. 또한 그분은 의로 심판하고 싸우시는 분입니다(11). 그분을 대적하던 짐승과 세상의 왕들과 군대들, 그리고 거짓 예언자들은 붙잡혀서 불바다로 던져집니다(19-20).

 

말을 타고 오시는 분의 모습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분은 여러 이름으로 영광을 받으시고, 깨끗한 옷을 입은 군대가 그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를 대적하려는 무리들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패잔병을 처리하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승리하신 주님께서 왕들의 왕이 되셨습니다(16).

 

——

왕의 이름 

 

말을 타고 오시는 분의 이름이 다양하다. 

신실하신 , 되신 , 하나님의 말씀, 왕들의 , 군주들의 군주, 그리고 그분 밖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 

그분은 세상을 온전히 통치하시는 영광의 왕이시다. 

왕의 이름을 듣고 있으니, 역시 예수님 밖에 없다. 

신실하신 그것은 예수님의 다른 이름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에 신실하게 반응하셨다. 

아담과 전혀 다른 반응으로 하나님께 신실하셨다. 끝까지 참고 인내하신 것이다. 

그분이 참이시다. 진리 자체가 바로 그분이시다. 사도 요한이 그렇게 강변했던 , 진리로 세상에 오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름도 요한의 강조점 하나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이다. 그분의 말은 하나님의 생각, , 의지, 열정, 마음이 육신으로 빚어지니, 빚어진 육체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왕들의 , 군주들의 주는 오래전부터 통용되던 최고의 왕에 대한 칭호다. 

고대의 수많은 왕들이 있었다. 군대를 통솔하는 주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위엄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전쟁을 펼쳤다. 

서열짓기는 인간 공동체에 내재되어 있는 메카니즘이다.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수는 제한적이다. 

번에 인식하고 인정하게 도는 사람들의 수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1-3등이 중요하다. 센터가 중요하고, 좌의정, 우의정이 중요하다. 무대에 오를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정 욕구가 인간의 기본 욕구라면, 왕들의 전쟁이 이해가 된다. 왕들의 왕이 필요하다. 

그래서 최고의 왕의 이름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왕중의 , 군주중의 주인이 등장했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로마의 황제가 아니다. 개선장군이 아니다. 오직 예수님이시다. 

 

눈에 들어오는 이름이 있다. 

그건 그분 밖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이다. 

성경이 말하지 않으니 당연히 굳이 필요는 없는 이름이겠으나, 왠지 이름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어떤 이름일까?

아마 구약에서여호와라는 히브리 이름의 정확한 발음이 아직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구약의 히브리 이름은 자음만 기록되어 있어서 원래 발음을 정확히 없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도 그분의 원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님, 삼위 하나님 사이에서 부르는 사랑스런 애칭일까? 분은 서로 사랑으로 연합되어 계신다. 분이 서로를 부를 ,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분들만의 이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님, 삼위 하나님이 인정하는 우주의 왕이라는 징표로서의 이름이 적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름이 어떻든, 이름 또한 다른 이름들 못지 않게 아주 영광스러운 이름일 것이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점점 가슴이 벅차진다. 웅장해진다. 

왕이신 그분이 세상을 사랑과 정의로 통치하신다면, 그래서 어느 누구도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을 억압하고 불의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그런 세상이 온다면 

때를 다시 떠올린다. 

예수님의 온전한 통치 

소말리아의 어린 아이들도,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도 안전한 나라, 웃을 있는 나라. 

전쟁, 기아, 폭력, 재해가 없는 나라 

나라를 꿈꾼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2021 08 18 수요일

여는 기도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십시오. 주님의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1 일이 있은 뒤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있는 무리가 내는 우렁찬 음성과 같은 소리가 이렇게 울려왔습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권력은 우리 하나님의 것이다.

2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 음행으로 세상을 망친 창녀를 심판하셨다. 자기 종들이 흘린 피의 원한을 여자에게 갚으셨다."

3 그들이 다시금 "할렐루야, 여자에게서 나는 연기가 영원히 올라가는구나" 하고 외치니,

4 스물네 장로와 생물이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아멘, 할렐루야" 하고 말하였습니다.

5 그 때에 보좌로부터 음성이 울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종들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아, 작은 자들과 자들아,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6 나는 무리의 음성과 같기도 하고, 물소리와 같기도 하고, 우렁찬 천둥소리와 같기도 소리를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 전능하신 분께서 왕권을 잡으셨다.

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어린 양의 혼인날이 이르렀다. 그의 신부는 단장을 끝냈다.

8 신부에게 빛나고 깨끗한 모시 옷을 입게 하셨다. 모시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다."

9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고 기록하여라." 그리고 말하였습니다. " 말씀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다."

10 그 때에 내가 그에게 경배드리려고, 그의 앞에 엎드렸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러지 말아라, 나도 예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동료들 가운데 하나요, 너와 같은 종이다. 경배는 하나님께 드려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다.”

 

주석
7절: 하나님의 통치의 시작은, 어린 양과 나중에 “새 예루살렘”으로 표현되는(21:2,9) 그분의 “신부”의 미래의 결혼으로 상징된다(IVP 성경비평주석).

 

바빌론에 대한 심판 이후, 하나님의 통치가 선포됩니다(1, 6절). 하나님의 심판은 순교자들의 외침에 대한 응답이라는 것이 다시 확인됩니다(2절).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5절). 이제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시작될 것입니다(7절). 신부의 준비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바빌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준비됩니다. 이제 어린양 예수와 그의 신부와의 혼인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됩니다. 짐승의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믿음으로 인내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혼인잔치에 신부로 준비되었습니다. 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9절).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어린양을 따르며, 고난을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

어린 양의 눈물

그동안 심판의 메세지가 여러모로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빨리 다른 본문으로 바뀌길 은근히 때로 대놓고 바랬다. 

하나님의 진노를 보는 것도 꺼려지고, 진노를 부르는 인간들의 반역과 반역을 부추기는 창녀 바벨론/로마/세상권세가 싫었다. 

복음서의 예수님이 그리웠다. 

요한계시록의 어린양은 여리고 부드러운 속성의 이름과는 달리 세상을 심판의 도가니로 몰아간다. 

어린 아이를 안고 축복하시는 예수님, 제자들에게 찬찬히 설명해주시는 예수님, 병든자를 치유하시고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시는 예수님을 묵상하고 싶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정의롭고 엄격한 심판의 그림만을 보여주는 같았다. 

그속의 어린 양의 눈물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어린 양의 눈물이 느껴진다. 

심판과 진노의 순간에는 어린 양은 눈물을 흘리신다. 

분명음행으로 세상을 망친 창녀”(2) 대해서는 엄중하고 엄격하게 심판하신다. 

그러나 와중에도 어린 양은 슬퍼하신다. 

너무 오랫동안 하나님의 종들이 피를 흘렸다(2).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처형당했다. 수많은 로마 시민들의 경멸의 함성과 피에 흥분한 환호 속에 목숨을 잃었다. 

로마의 모래에는 그리스도인들의 피의 울분이 묻어 있다. 

노예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세상에서는 노예였으나, 그리스도의 공동체에서는 어엿한 성도요 때론 지도자였다. 

그들이 받은 수모는 이루 말할 없다. 

벗으라면 벗고, 기라면 기고, 죽으라면 죽어야 하는, 주인의 노리개감이었다

모든 노예가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주인의 뜻에 따라야하는 것이 노예의 숙명이었다. 

로마는 그런 곳이었다. 

로마의 많은 신들은 피를 부르는 글래디에이터들의 칼과 창에 흥분하는 신들이었다. 

피로 신들을 위로한다. 

피로 신들의 가호를 받는다. 

피로 신들의 축복을 받는다. 

무슨 피인가사람들의 피이다.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너무 거리가 멀다. 

 

그러니 어린 양은 눈물이 흐른다.

반역과 음행의 결과는 공의로운 심판이다. 

 

 

아프가니스탄에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길 

탈레반의 이슬람식 공포정치가 눈앞에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인권이 바닥으로 치달을 것이다. 

20년의 친미 정권은 자유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데에 실패했다. 

다시 여성들의 피가 땅을 적신다. 

미군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은 숙청당한다. 

부패한 정권, 자유를 위해 싸울 의지가 부족한 정부군, 자립의 의지가 부족했던 아프가니스탄의 시민들그리고 미국의 군사제일주의 정책. 

이런 것들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억지는 억지를 낳는다. 

진정한 변화는 폭력과 강제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여러 제국들의 폭력이 그들을 더욱 폭악한 공포정치를 하게 만들었다. 

땅에 사는 약자들을 살려주시길 기도할 뿐이다. 

땅의 지도자들이 겸손하게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돌아오길 기도할 뿐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땅에 임하길 기도한다. 

 

1 이 일이 있은 뒤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있는 큰 무리가 내는 우렁찬 음성과 같은 소리가 이렇게 울려왔습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권력은 우리 하나님의 것이다.
6 또 나는 큰 무리의 음성과 같기도 하고, 큰 물소리와 같기도 하고, 우렁찬 천둥소리와 같기도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전능하신 분께서 왕권을 잡으셨다.

 

왕권, 권력은 우리 주님의 것이다. 

개인과 단체가 누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시다. 

요한의 환상이 아프가니스탄에 실현되길 원한다. 

그리고 우리 한국 땅에도 드러나길 원한다. 

 

한국의 세속주의

과거에는 도덕주의에 대한 경계가 필요했다. 

딱딱한 군대 문화 속에 살아왔던 한국 사람들, 엄격한 권위주의 문화 속에 지냈던 사람들에게 도덕주의가 뇌리에 박혀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도덕주의라기보다는 보여주기식, 윗사람에게 맞춰주기식 원리주의라고 말하는 것이 좀더 정확할 같다. 

따라서 너무 쉽게 원리, 원칙, 규칙, 규정에 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교회에서 이런 성향이 발현되면 소위 율법주의가 되는 것인데, 세상의 언어로 말하면 위선적 도덕주의라고 말할 있겠다. 

따라서 거짓된 도덕주의에 대해 경계하고 정직한 자아 발견을 중심 메시지로 삼는 설교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의 한국 문화와 상황을 살펴보면, 거짓된 도덕주의에 대한 경계보다는 자유분방한 세속주의 쾌락주의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솔직한 문화가 대세다. 문제는 솔직함에 있지 않다. 쾌락을 추구하는 , 자신의 욕망을 최우선하는 , 공동체적 규정과 규칙에 앞서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는 것에 너무 솔직하다는 이런 종류의 솔직함이 선을 넘을 때가 점점 많아지는 같다. 

절제와 자기 부인의 메시지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는 느낌이다. 

하나님보다 자기가 훨씬 우선인 보인다. 

거짓된 도덕주의 만큼이나 방임된 쾌락주의가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 

메시지 방향의 균형이 필요해 보인다.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는 외부에서 주어진 수많은 도덕과 규정을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욕구, 욕망, 열망을 알아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또한 과정에는 울타리를 넘어 욕망을 방임했을 벌어지는 자아 파괴 현상에 대해서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우주와 영혼의 진정한 왕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그분 안에 있을 , 우리는 참된 자아를 발견한다. 

위선적인 도적주의로는 나를 발견할 없다. 외부에서 주입된 사회화된 나일 뿐이다

그렇다고 방임된 욕구충족우선주의로 나를 발견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와 이웃을 파괴한다. 

나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사랑의 안전한 울타리에서 나를 누구보다는 아시는 분의 가이드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우주의 왕이시요, 사랑으로 존재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연합이다. 

그것이 우리의 울타리요, 우리의 가이드다. 

 

그분이 왕이시다

요한은 왕으로 오시는 어린양을 본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 파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본다. 

로마의 음란한 연회와는 비교가 안되는 아름다운 즐거움을 만끽한다. 

시기, 질투, 암투, 계략, 험담, 판단, 폭력, 음행, 쾌락으로 점철된 바벨론/로마/뉴욕/강남의 연회/클럽/룸살롱이 아니다. 

사랑, 절제, 존중, 격려, 세워줌, 축복, 섬김이 가득한 하나님의 잔치이다. 

잔치를 요한은 보고 있다. 

그는 감격해서 천사에게 엎드린다. 

 

10 그 때에 내가 그에게 경배드리려고, 그의 발 앞에 엎드렸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러지 말아라, 나도 예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네 동료들 가운데 하나요, 너와 같은 종이다. 경배는 하나님께 드려라. 예수의 증언은 곧 예언의 영이다.”

 

그러나 천사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요한은 바울과 바나바 이야기를 읽지 못했는가! 

천사에게 경배하는가!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에게 경배하는가! 

요한도 아직 완전하게 알지 못한다. 

우주의 신비를, 우주의 영적 존재들을

그러니 이런 실수를 했던 것이다. 

오직 경배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분은, 인간도 천사도 어떤 피조물도 아니다. 

오직 어린 양과 하나님 뿐이시다

나도, 가족도, 지역사회도, 단체도, 국가도 심지어는 인류라는 추상적 포괄적 개념도 아니다. 

오직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통해 통치하시고 예수님과 성령님을 보내주신 여호와 하나님, 

그분만이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그분이 왕이시다. 

아멘.

 

——

 

왕되신 하나님, 

주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에 요한을 통해 보여주시는 놀라운 광경을 있는 눈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왕적 통치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사실 저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저의 인생 전체, 심지어는 저의 생명까지도 당신의 왕적 통치에 걸었습니다. 

기대하고 고대하고 기다립니다. 

 

주님, 

여전히 포악한 무력으로 통치하는 세상 권력을 심판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공의로 통치하여 주소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경험하게 하소서. 

어린이와 여성들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우리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켜 주소서. 

아프가니스탄의 주의 백성들을 지켜주세요. 

 

당신이 나의 왕이십니다. 

쾌락주의, 세속주의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오직 주의 나라 위해 오늘도 저의 달리기를 하게 하소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을 고대합니다. 

 

오늘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당신의 아름다움을 있는 눈을 주소서. 

당신이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느끼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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