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26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15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16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17 내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오히려 악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죽음의 세계로 내려가서, 잠잠하게 해주십시오.18 오만한 자세로, 경멸하는 태도로, 의로운 사람을 거슬러서 함부로 말하는 거짓말쟁이들의 입을 막아 주십시오.19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주시려고 주님께서 마련해 두신 복이 어찌 그리도 큰지요? 주님께서는 주님께로 피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베푸십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복을 베푸십니다.20 주님은 그들을 주님의 날개 그늘에 숨기시어 거짓말을 지어 헐뜯는 무리에게서 그들을 지켜 주시고, 그들을 안전한 곳에 감추시어 말다툼하는 자들에게서 건져 주셨습니다.21 주님,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포위당했을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푸셨기에,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22 내가 포위되었을 그 때, 나는 놀란 나머지 “내가 이제 주님의 눈 밖에 났구나” 생각하며 좌절도 했지만,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는, 내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23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너희 모두 주님을 사랑하여라. 주님께서 신실한 사람은 지켜 주시나, 거만한 사람은 가차없이 벌하신다.24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아, 힘을 내어라. 용기를 내어라.

 

NIV

In the shelter of your presence you hide them from all human intrigues;

you keep them safe in your dwelling from accusing tongues(20절).

 

ESV

In the cover of your presence you hide them from the plots of men;

you store them in your shelter from the strife of tongues(20절).

 

1. 부끄러움

부끄러움은 사회적 언어다. 

타인이 없다면 부끄러움은 존재하기 어렵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부끄러움이 드러난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인정받는 자가 되게 해 달라는 말과 동일하다. 

문제는 대적하는 사람이 매번 등장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칭찬듣고 인정받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듣는 사람은 없다. 

솔직히 적대자에겐 부끄러움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적대자가 뭐라고 하건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적대자 앞에서 믿었던 사람들의 배반이나 나의 실책으로 인한 분열 같은 것이 벌어졌을 때, 그 때가 가장 부끄럽기 마련이다. 

부끄러움은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한다. 

 

한국교회가 부끄러울 때가 많다. 

반공이데올로기에 경도되어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했다. 

성경을 자기 입맛대로 재단하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전체 큰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다. 

이단, 사이비의 출현을 막지 못한다. 

사람들을 홀리고 사기치는 경우를 막지 못한다. 

전광훈, 손현보 같은 정치 목사를 방치한다. 

 

참으로 부끄럽다. 

 

2. 부르짖음

주님을 간절히 찾게 되면 부르짖게 된다. 

주님이 절실하면 어쩔 수 없이 부르짖게 된다. 

책임지고 있는 일들이 많고, 관리해야 할 것들이 많으면, 그래서 자기 한계를 느끼고 부족함을 느낀다면, 주님을 부르짖게 된다. 

겉으로 부르짖는 것도 있지만, 속으로 부르짖는 것도 있다. 

속울음을 우는 것이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최선을 다해 주님을 찾는 것이다. 

이집트의 히브리 민족처럼 말이다. 

바벨론 강가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울었던 포로들처럼 말이다. 

 

지금 내 삶은 어찌보면 참으로 평안하다. 

국가의 위기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해소되었다고 본다. 

투표 행위로 국민의 뜻이 모아지면 나라가 본궤도로 올라갈 수 있다. 

나라의 어려움이 극복되니, 현재 내 삶은 꽤나 평온하다. 

그러다보니 주님께 크게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는 것이야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삶의 여러 어려움으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상황에 점점 둔감해진다는 사실이 큰 문제다. 

아파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들을 위해 같이 아파하고 같이 부르짖어야 하는 것이 목회자의 역할이다. 

그 일을 게을리하고 있는 것이 나의 부족함이다. 

나의 부족함과 죄악을 주님께 아뢰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오늘의 기도]

연약한 모든 자들의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주님,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삶의 여러 어려움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굽어 살펴 주소서. 

암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죽음의 문턱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눈물로 밤을 새우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O현을 보살피소서. 

골육종으로 시작해서 폐암까지 전이가 되어 벌써 수술 및 항암 치료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다시 폐암이 발견되어 그 아이와 그 부모가 슬픔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찾아가셔서 그의 몸과 마음을 보살피소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끝까지 이 싸움을 싸울 수 있도록 이끄소서.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보호해 주소서. 

고통과 통증의 시간을 견디게 하소서.

생의 의지를 더하시고, 삶의 소망을 붙들게 하소서.

그 부모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 05 19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1 주님, 내가 주님께 피하오니, 내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나를 건져 주십시오.2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속히 건지시어, 내가 피하여 숨을 있는 바위, 나를 구원하실 견고한 요새가 되어 주십시오.3 주님은 진정 나의 바위, 나의 요새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인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십시오.4 그들이 몰래 쳐놓은 그물에서 나를 건져내어 주십시오. 주님은 나의 피난처입니다.5 주님의 손에 나의 생명을 맡깁니다. 진리의 하나님이신 주님, 나를 속량하여 주실 믿습니다.6 썩어 없어질 우상을 믿고 사는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미워하시니, 나는 오직 주님만 의지합니다.

 

7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기쁘고 즐겁습니다. 주님은 나의 고난을 돌아보시며, 영혼의 아픔을 알고 계십니다.8 주님은 나를 원수의 손에 넘기지 않으시고, 발을 평탄한 곳에 세워 주셨습니다.9 주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울다 지쳐, 눈이 시력조차 잃었습니다. 몸과 마음도 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10 나는 슬픔으로 힘이 소진되었습니다. 햇수가 탄식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근력은 고통 속에서 말라 버렸고, 뼈마저 녹아 버렸습니다.11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한결같이 나를 비난합니다. 이웃 사람들도 나를 혐오하고, 친구들마저도 나를 끔찍한 보듯 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마다 나를 피하여 지나갑니다.12 내가 죽은 사람이라도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며, 깨진 그릇과 같이 되었습니다.13 많은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사방에서 협박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밉니다.14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NIV

Keep me free from the trap that is set for me, for you are my refuge(4).

 

1. 우상을 미워하시는

시인은 주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주님의 구원하심, 피난처 되심이 절실했다. 

안팎으로 고난이 심하니 어쩔 수 없다. 

그 와중에 그는 하나님의 선호를 분명히 알고 있다.

 

하나님은 우상을 미워하시는 분이시다.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으로 썩어 없어질 것들이다. 

진정한 구원을 만들 수 없는 존재다. 

사람들이 가진 두려움이 형상화된 것이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응축되어 숭배의 대상을 탄생시켰다. 

그 두려움은 사실 사탄이 제공한다.

하나님은 두려움에 의해 압제당하는 히브리 민족들을 구출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두려움을 극복하기를 요청하신다. 

두려움에 가두려는 우상을 버리길 원하신다. 

 

우상은 중독을 일으킨다. 

두려움으로 시작된 우상에 대한 의존은 중독과 숭배를 낳는다. 

이성적, 상식적, 합리적 생각과 논리는 점점 배제된다. 

사람의 감정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아 결국 중독에 빠지게 만든다.

가스 라이팅의 원조는 우상 숭배였다. 

하나님은 중독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현실의 영성을 바라신다. 

일상을 잘 살아내어 사람과 자연에 조화롭고 평화로운 환경이 만들어지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중독에서 사람들을 빼내어 자유로운 의지를 발휘하는 존재들로 만드신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신다. 

그분은 우상을 미워하신다. 

 

2. 비난 받을 용기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심지어 사랑해도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 수 있다. 

시인은 8-14절까지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에 고통받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시가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라고 한다면, 해당 부분은 너무 처절하고 개인적이다. 

이 노래는 다윗만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성가대의 노래를 듣거나 불렀다. 

원수의 손, 울다 지쳐 시력조차 잃다, 햇수가 탄식 속에서 흐른다, 근력이 마르고 뼈마저 녹았다…등의 표현을 보면 시인이 겪는 고통의 깊이가 얼마큼인지 알게 된다. 

사람들의 비난과 협박이 끊이질 않는다. 

대적자들이 시인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음모와 전략을 세운다.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님 덕분에 항상 평온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많은 시간동안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협박을 받으며 살았다. 

다윗 자신도 전장의 장수로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러니 당연히 많은 적들로부터 위협을 당하기 마련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비난 받는 경우가 있다. 

어찌보면 큰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난 받는 것이 불가피한 과정일 수 있겠다. 

나는 오랫동안 비난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만큼 비난에 약하다. 

아마도 비난 받을 용기가 별로 없을 것이다. 

한 두 사람이라도 비난 하는 경우에 내면에 큰 상처로 남아 쩔쩔 맬 것이다. 

목사로서는 어쩌면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최선의 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운동가로서는 비난 받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운동가는 이상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이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복지부동의 사람들을 깨워서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 

그러니 비판과 비난이 찾아 올 수 있다. 

그걸 못 견디면 운동을 할 수 없다. 

목사는 그저 힘들고 지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도우면 된다. 

그러나 운동가는 저항하는 사람들을 밀고 끌고 당겨야 한다. 

난 어디쯤 있는가?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저는 용기가 없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의 비난과 비판에 금방 위축되고 자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찌보면 타인의 비난과 비판에 대해서도 용감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도가 아닙니다. 

무조건 다른 사람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도 바르지 않습니다. 

찬찬히 비판의 내용과 의도를 잘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러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담대해야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이성적으로 여유있게 반응할 수 있을 겁니다. 

 

예수님이 대적자들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저도 비판에 유연하게 대처하게 하소서. 

소명을 향해 끝까지 운동을 펼치셨던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하게 하소서. 

목사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이 가셨던 운동가의 삶도 포기하지 않도록 이끄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5월 12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성전 봉헌가, 다윗의 시]

1 주님, 주님께서 나를 수렁에서 건져 주시고, 내 원수가 나를 비웃지 못하게 해주셨으니, 내가 주님을 우러러 찬양하렵니다.2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울부짖었더니, 주님께서 나를 고쳐 주셨습니다.3 주님, 스올에서 이 몸을 끌어올리셨고, 무덤으로 내려간 사람들 가운데서, 나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4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여라.5 주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영원하니,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넘친다.6 내가 편히 지낼 때에는 “이제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겠지” 하였지만,7 아,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으로 나를 지켜 주시던 주님께서 나를 외면하시자마자 나는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8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었고, 주님께 은혜를 간구하였습니다.

 

9 내가 죽은들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내가 죽어 구덩이에 던져지는 것이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한 줌의 티끌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한 줌의 흙이 주님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습니까?10 주님,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 주십시오.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주님께서 나를 돕는 분이 되어 주십시오.11 주님께서는 내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나에게서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을 갈아입히셨기에12 내 영혼이 잠잠할 수 없어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영원토록 주님께 감사를 드리렵니다.

 

주석

8절. 주님께 부르짖고, 은혜를 간구한 시인의 행동은 과거에 한 번 일어난 행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부르짖고 간구하기를 반복했다는 의미입니다(IVP 성경주석, 685쪽). 

 

[오늘의 묵상]

 

1. 성전 봉헌가? 

이 시는 성전 봉헌가라는 표제를 달고 있다.

성전을 다 건축하고 하나님께 올려드리면서 드리는 찬송일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내용이 성전 봉헌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일단 성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시인이 고통 속에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응답하셨고 그에 대한 감사의 내용이 다다. 

나 같으면, 성전을 완성하도록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 그동안 수고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축복을 비는 시를 쓸 것 같다. 

 

다윗은 다른 생각을 가진 것 같다. 

성정 봉헌가에 어울리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을 적고 있다. 

게다가 울부짖다,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다, 죽은들 무슨 소용, 내 통곡, 슬픔의 상복 등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자기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하소연하는 듯 한 느낌이다. 

물론 그는 그 슬픔과 고통이 결국 기쁨, 기쁨의 춤, 기쁨의 나들이옷 등의 단어를 통해 주님께서 하신 일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고통과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이런 내용들이 성전 봉헌가에 어울린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2. 다윗의 기쁨

다윗은 기쁨을 드러내고 있다. 

성전을 봉헌하는 이 순간 그는 자신의 그간의 고통과 슬픔이 어떻게 벗겨졌는지 고백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던 사람이다. 

그냥 소원을 아뢰는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 울부짖고 눈물로 기도했던 사람이다. 

환경의 어려움을 기도로 토로할 수 있었다. 

자신 안에 꽁꽁 숨겨두고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말하고 토로하고 기도했다. 

기도의 내용, 시간, 방법이 다 절절하다. 

그는 죽음 같은 상황에 있었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밤새 기도했으니 기도 시간만 해도 8시간 이상이다. 

눈물로 울부짖었으니 눈은 퉁퉁 붓고 기진맥진하여 더는 울 힘조차 없었을 것이다. 

 

허나, 그 모든 고통의 시간들을 주님께서는 보고 계셨고, 그에게 도움을 주셨다. 

주님이 다윗을 구원하셨다. 

다윗의 기도에 긍정적으로 응답하셨다. 

그를 죽음에서 건지셨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이제는 기쁨으로 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 

성전을 봉헌하는 것이 그에게는 큰 기쁨 중 하나였다. 

그는 춤으로 자신의 기쁨을 표현하다. 

시인이자, 수금 연주자이자, 싸움의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그는 이제 주님 앞에 춤을 추고 있다. 

 

인생은 등산 같다. 

올라가는 길이 있고, 정상에 머무르는 순간이 있고, 내려가는 길이 있다. 

올라가는 길은 고통스럽다. 

숱한 계단 하나 하나 내딛고 몸을 올리려는 할 때마나 숨은 가빠지고 몸의 고통은 배가 된다. 

그러나 그 고통을 이기고 정상에 다다르면 시원한 바람에 이끌린 눈동자에 비친 풍경은 그야말로 환희의 순간이다. 

고통의 순간에 해야 할 일은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다. 

한 가지를 더 알아야 한다. 

그 내딛는 걸음 걸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그 인생의 산을 오를 수 없다. 

자기 혼자 오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도움 없이는 오를 수 없는 것이 인생 산이다. 

 

그걸 아는 자들은 산 정상에서 감사와 기쁨의 춤을 출 것이다. 

오늘도 그런 날이 되길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인생 산을 오릅니다. 

막막함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꺠닫게 하소서. 

당신이 원하시는 산을 향해 걷게 하소서. 

아무산이나 오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 오르라는 산을 향하게 하소서. 

그리고 그 산의 헐떡 고개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하소서. 

고통과 고난이 기쁨의 춤이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 앞에서 춤을 추게 하소서.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기소서. 

악한 영의 계략을 막아 주시고, 힘없고 연약한 자들이 평안을 누리는 나라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을 공동체에 적용하려는 자들에게 힘을 주소서. 

대선 정국에서 사회를 혼란케 하려는 자들의 시도를 막아주시고, 평화롭게 대선이 치러지도록 도우소서. 

신변 안전의 위협을 느끼는 대선 후보자들을 지켜주소서. 

이 나라를 향한 주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대통령이 뽑히도록 도우소서. 

 

마지막으로 기도드립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나라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미움과 갈등이 켜켜이 쌓여 서로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이 상황을 보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화해의 하나님, 중재의 하나님, 막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5월 05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다윗의 시]

1 하나님을 모시는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돌려드리고 또 돌려드려라.2 그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려라.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려라.

3 주님의 목소리가 물 위로 울려 퍼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로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큰 물을 치신다.4 주님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주님의 목소리는 위엄이 넘친다.5 주님께서 목소리로 백향목을 쩌개고, 레바논의 백향목을 쩌개신다.6 레바논 산맥을 송아지처럼 뛰놀게 하시고, 시룐 산을 들송아지처럼 날뛰게 하신다.7 주님의 목소리에 불꽃이 튀긴다.8 주님의 목소리가 광야를 흔드시고, 주님께서 가데스 광야를 뒤흔드신다.9 주님의 목소리가, 암사슴을 놀래켜 낙태하게 하고, 우거진 숲조차 벌거숭이로 만드시니, 그분의 성전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영광!” 하고 외치는구나.

10 주님께서 범람하는 홍수를 정복하신다. 주님께서 영원토록 왕으로 다스리신다.11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내리신다.

 

NIV

Ascribe to the Lord the glory due his name; worship the Lord in the splendor of his holiness(2절).

 

주석 

3-8절. 여기에 등장하는 여러 지명들(3-4절의 큰 물, 5-6절의 레바논과 시룐, 8절의 광야와 가데스)은 각각 이스라엘 서쪽의 지중해, 북쪽 끝과 남쪽 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이 이스라엘 온 나라, 나아가 온 세상을 압도하고 계심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입니다(IVP 성경주석, 684쪽).

 

[오늘의 묵상]

 

1. 주님의 목소리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았다. 

콘클라베. 

영화 내내 긴장을 유지하는 음악 소리에 심장이 졸인다. 

순간 귀가 먹먹해지기도 한다. 

영적인 순간을 음악으로 표현하느라 작곡가와 감독이 최선을 다한 모양이다. 

하나님이 선택하신다는 믿음으로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전 세계의 추기경들의 엄중함이 음향에 묻어난다. 

하나님의 목소리는 큰 폭발음으로도 들린다. 

거역할 수 없는 주님의 목소리… 

 

다윗은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그는 수금을 타는 음악가였다. 

세밀한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섬세한 수금 연주에 사탄의 영향을 받는 사울이 일시적으로 해방을 경험했다. 

그만큼 세밀하고 섬세함을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이 다윗이었다. 

이런 그가 하나님의 위대하고 크고 엄중한 목소리를 듣는다. 

자연 곳곳에 배어있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주님의 크신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분의 음성을 더욱 크게 듣고 싶다. 

더욱 명료한 주님의 음성에 반응하고 싶다. 

점점 이 세상의 죄악에 대해 예민해진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의 거대한 카르텔이 눈에 들어온다. 

비판을 넘어 변혁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2. 영광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닫는 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외친다. 

눈이 어둡고 귀가 닫힌 자들은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따라서 영광을 돌리지도 못한다. 

영의 눈이 열리고, 영의 귀가 열려야 가능한다. 

그리고 이것은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도리어 예수님의 발걸음과 예수님의 시선을 쫓아가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분의 시선을 따라 함께 움직일 때 영의 귀와 눈이 열린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분의 영광을 어떻게 더 깊이 인식할 수 있을까?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심을 어떻게 더 깊이 알 수 있을까? 

대형교회의 찬양과 사역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그분의 일하심을 확인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오 주님, 저의 눈을 열어주소서.

 

[오늘의 기도]

주님, 

대형교회에 가면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성도들에게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과연 성도들의 작은 일상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시는지 잘 알 수 있을까요? 

의문이 듭니다. 

저를 통해, 그리고 우리 가정을 통해, 그리고 저의 작은 교회와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심을 느끼도록 허락하소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게 하소서. 

그리고 그 목소리에 “영광”이라고 외치게 하소서. 

부끄럽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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