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3월 24일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1 주님,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2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의지하였으니,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내 원수가 나를 이기어 승전가를 부르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3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수치를 당할 리 없지만, 함부로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

4 주님, 주님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고,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5 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주님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

6 주님, 먼 옛날부터 변함 없이 베푸셨던, 주님의 긍휼하심과 한결 같은 사랑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7 내가 젊은 시절에 지은 죄와 반역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님의 자비로우심과 선하심으로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8 주님은 선하시고 올바르셔서, 죄인들이 돌이키고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신다.

9 겸손한 사람을 공의로 인도하시며, 겸비한 사람에게는 당신의 뜻을 가르쳐 주신다.

10 주님의 언약과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진실한 사랑으로 인도하신다.

11 주님, 주님의 이름을 생각하셔서라도, 내가 저지른 큰 죄악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NIV

No one who hopes in you

will ever be put to shame,

but shame will come on those

who are treacherous without cause(3절).

 

주석

4-7절. 주님의 길, 곧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에 헌신하려는 자는 자신의 죄, 곧 하나님께 했던 반역을 회개하고 먼저 하나님과 화해해야 한다(IVP 성경주석, 679쪽)

 

[오늘의 묵상]

 

1. 주님을 기다립니다. 

시인은 주님을 기다리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분이 오셔야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수가 시인을 압박하고 있다. 

그 원수의 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에게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시인은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기에 온종일 주님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성품을 생각하며 그분을 기다린다. 

주님은 구원을 주시는 분, 

진리로 지도하시는 분, 

오래 전부터 긍휼과 사랑을 베푸신 분, 

자비와 선하심이 가득하신 분, 

공의와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이런 분을 만나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이런 주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을 멘토로 둔 사람은 복이 있다. 

당연히 완벽한 사람이야 없겠지만,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고자 노력하는 분을 멘토로 두고 종종 그의 삶을 배운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마음의 무릎을 꿇을 수 있는 멘토를 만나고 싶다. 

그와 함께 주님을 기다리는 법을 더욱 익히고 싶다.

 

2. 가르쳐 주십시오.

시인은 하나님께 당당히 요구하고 있다. 

자신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마땅히 가야할 그 길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진리로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다. 

올바른 길을 가르쳐 달라고 탄원한다. 

주님을 기다리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그분께 배우기 위해서다. 

그분의 생각, 관점, 판단, 삶의 방식, 계획… 

그분께 배워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가능한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이 좋다. 

 

배움을 멈추는 그곳에서 죽음이 시작된다. 

죽을 때까지 배움을 그치지 않으리라. 

계속 배우는 것이 좋다. 

하나님에 대해, 진리에 대해, 이 세상에 대해… 

배우고 익히고 내 것으로 삼는 과정. 

이 과정을 쉬지 않고 싶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성품을 다시 상상합니다. 

주님은 자비로우시며 공의로우십니다. 

모든 진리가 주님께 있습니다. 

우주의 원리가 주님께 있습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시뮬레이션 우주론,

천문학에서 말하는 빅뱅이론, 

온갖 종류의 과학 이론들이 판을 치지만 오직 주님께 진리가 있습니다. 

주님께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래서 저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저에게 우주의 원리와 진리를 가르치소서. 

하나님의 통치를 기다립니다. 

직접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다스려주소서.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을 회복시켜주소서. 

헌법 재퐌관들이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를 빨리 진행하게 하소서. 

국민들 사이에 분열과 반목이 더욱 심해져서 이러다가는 심리적 내전을 넘어 물리적 내전으로 치달을까 두렵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5년 03월 17일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1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이 모두 다 주님의 것, 온 누리와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것도 주님의 것이다.

2 분명히 주님께서 그 기초를 바다를 정복하여 세우셨고, 강을 정복하여 단단히 세우셨구나.

3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누가 그 거룩한 곳에 들어설 수 있느냐?

4 깨끗한 손과 해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 헛된 우상에게 마음이 팔리지 않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5 그런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그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다.

6 그런 사람은 주님을 찾는 사람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사모하는 사람이다. (셀라)

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활짝 열려라. 영광의 왕께서 들어가신다.

8 영광의 왕이 뉘시냐? 힘이 세고 용맹하신 주님이시다. 전쟁의 용사이신 주님이시다.

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활짝 열려라. 영광의 왕께서 들어가신다.

10 영광의 왕이 뉘시냐? 만군의 주님, 그분이야말로 영광의 왕이시다. (셀라)

 

Message

Wake up, you sleepyhead city!

Wake up, you sleepyhead people!

King-Glory is ready to enter(7절).

 

주석

2절. 시인은 건축과 관련된 은유와 용어를 사용해 하나님을 우주의 창조주와 유지자로 묘사한다(IVP 성경연구주석 구약: 오경·역사서·시가서, 731쪽).

 

[오늘의 묵상]

* 주님의 것

시인의 고백은 단호하다. 

그 단호함이 부럽다. 

지금은 단호함을 유지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단호함을 배타적이며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연함, 포용성이 대세다. 

시대의 흐름을 따르려면 단호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인간 정신의 한계는 분명하다. 

모든 정보와 모든 세계관을 다 넣어서 포괄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당한다. 

육체의 고된 노동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정신을 자극하는 숱한 세계관과 이슈와 관점이 정신을 휘집어 놓는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시인 당시의 세계도 현재 못지 않게 많은 신들이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서로 경쟁하던 때였다. 

물론 지금처럼 동시다발로 빠르게 소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 살던 사람들도 정신 세계가 어지러웠을 것이다. 

그 속에서 시인은 단호하게 말한다. 

모든 것은 주님의 것!! 

 

하늘과 땅에 가득한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다. 

온 세상과 그 세상에 가득한 생물과 사물이 다 주님의 것이다. 

주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다. 

그분이 만드셨으며, 그분이 유지하시며, 그분이 돌보시며, 그분이 발전시키신다. 

인간의 모든 창조 행위과 그 결과도 다 주님의 것이다. 

그분의 허락없이 진행되는 것이 무엇이 있던가!! 

 

**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

시인은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의 특징을 나열한다. 

깨끗한 손, 해맑은 마음, 우상에게 마음을 팔지 않는 사람,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너무 갑작스레 이런 요소들을 제기하니, 어리둥절하다. 

만약,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을 십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 율법에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 등으로 규정했다면 마음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원래 알고 있는 내용이거니와 성경 전체에 두루두루 등장하는 원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손이 깨끗한 사람? 해맑은 마음을 소유한 사람? 

이 두 가지는 참 이해하기 힘들다. 

 

손이 깨끗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여러 번역본을 살펴보자. 

 

시편 24:4

ESV_He who has clean hands and a pure heart, who does not lift up his soul to what is false and does not swear deceitfully.

NLT_Only those whose hands and hearts are pure, who do not worship idols and never tell lies.

개역한글_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NASB95_He who has clean hands and a pure heart, Who has not lifted up his soul to falsehood And has not sworn deceitfully.

NIV_The one who has clean hands and a pure heart, who does not trust in an idol or swear by a false god.

 

다른 번역본을 보면 뜻이 좀더 분명해진다. 

시인이 말하는 손과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란, 우상을 경배하지 않으며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우상을 향해 손을 들어 예배하지 않는 사람, 우상이든 사람이든 마음에도 없는 말로 맹세하여 자신의 마음과 양심을 속이지 않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두 가지가 함께 엮여 있다. 

거짓 신, 허무한 신, 허탄한 신에게 마음을 두고 그를 높이는 더러운 손과 이웃과 타인을 속이는 맹세가 함께 한다. 

종교적 행위와 도덕적 행위가 엮여 있다. 

신에 대한 태도와 사람에 대한 태도가 함께 한다. 

거짓 신에게 마음을 빼앗긴 자는 이웃에 대한 태도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정결하지 못한 손과 마음은 하나님과 이웃 모두에게 버림받는 행동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싫어하신다. 

 

주님을 찾으시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나도 그래야 하지만,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그래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윤석열은 손과 마음이 정결하고 깨끗하다고 볼 수가 없다. 

손바닥엔 왕자가 새겨졌으며, 국민을 계몽하기 위해 계엄했다고 거짓을 일삼고 있다. 

그는 하나님도 섬기지 않고 국민도 섬기지 않는다. 

그런 자를 엄호하고 옹호하는 자들이 불쌍하다. 

특히 장로교 신학대학의 김철홍 목사(https://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25076)나 소기천 전교수(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7182)는 과연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고통스런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들의 입을 막아주시길 기도할 뿐이다. 

 

[오늘의 기도]

깨끗한 손과 정결한 마음을 원하시는 주님, 

저와 손과 마음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하소서. 

우주의 주인이시며 모든 것을 소유하시고 돌보시는 주님, 

주님의 위대하심 앞에 무릎 꿇게 하소서. 

그리고 저의 손과 마음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하소서. 

오직 주님만이 저의 진정한 찬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매일 주님께 저를 드리게 하소서. 

 

주님, 탄핵 심판의 결과가 이제는 빨리 나오게 하소서. 

국론이 너무 분열되어 있습니다. 

이 나라를 살려 주시고 주님의 도우심을 얻는 나라가 되게 하소서. 

개신교 지도자들이 정신을 차리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불법을 옹호하지 않게 하시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알아차리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김철홍 목사나 소기천 교수 같은 사람의 입을 막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3월 10일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3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NIV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darkest valley,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4절).

 

주석

5절. 고대 세계에서 잔치의 주인은 이마에 바르는 고급 기름으로 손님들을 환대하기도 했다. 이 기름은 그들의 얼굴이 번쩍이고 돋보이게 했을 뿐 아니라, 방 전체에 향기가 나도록 했을 것이다(IVP 성경배경주석, 756쪽).

 

[오늘의 묵상]

3절까지만 보면 마치 목가적인 평온한 시로 보인다. 

시인은 부족함 없이 풀밭에 누워 피크닉을 온 것처럼 행동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인식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으로 인해 평화와 안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4-5절을 보면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시인은 지금 몇 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원수와 적군은 시인을 죽이려고 쫓아오고 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사실 이 시를 쓰고 노래 부르고 난 뒤에 적군에게 발각될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주님의 집에 돌아가 그분과 함께 거하는 삶에 대한 갈망과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인생의 위기 속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이다. 

그분의 진실하심과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윤석열의 구속이 취소되었다. 

금의환양하듯 손을 흔들며, 주먹을 움켜쥐고 환한 미소로 지지들에게 인사했다. 

내란수괴의 구속 취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전광훈 집회를 보면, 최선을 다해 소리치며 주님을 부른다. 

기도하고 선포하고 찬양하고 아멘하다. 

도대체 한국의 개신교는 왜 이렇게까지 되었나? 

부르짖는 기도의 유용성에 대해 믿어왔던 나로서는 점점 부끄러움과 수치가 늘어난다. 

법기술자들의 술수에 넘어간 현실이 괴롭다. 

검찰 수뇌부는 내란의 공범들이다. 

윤석열의 부하들은 자신들이 처벌받지 않기 위해 실패한 내란의 불꽃을 다시 살리려는 것 같다. 

윤석열의 귀한을 왕의 귀한 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위의 시를 윤석열이 감옥에서 읽었을 것 같아 고통스럽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법죄자가 이 시를 읽으며 하나님의 위로를 얻는다면, 과연 이 시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성경은 한 두 구절만 읽어서는 안된다는 명제가 다시 증명되었다. 

성경 전체의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범죄자가 자신의 처지를 위로받고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 시를 사용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회개의 메시지, 이사야와 아모스가 외쳤던 회개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고통스런 하루가 또 지나간다. 

내란이 종식되고 속히 나라가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범죄자들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제 영혼에 안식이 필요합니다. 

범죄자들이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것을 보니 울화가 치밉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감당하게 하소서. 

기도하고, 참여하고, 기도하고, 목소리를 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3월 03일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22 주님의 이름을 나의 백성에게 전하고, 예배 드리는 회중 한가운데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23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그를 찬양하여라. 야곱 자손아, 그에게 영광을 돌려라. 이스라엘 자손아, 그를 경외하여라.24 그는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들을 외면하지도 않으신다.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응답하여 주신다.25 주님께서 하신 이 모든 일을, 회중이 다 모인 자리에서 찬양하겠습니다. 내가 서원한 희생제물을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앞에서 바치겠습니다.26 가난한 사람들도 “여러분들의 마음이 늘 유쾌하길 빕니다!” 하면서 축배를 들고,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27 땅 끝에 사는 사람들도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올 것이며, 이 세상 모든 민족이 주님을 경배할 것이다.28 주권은 주님께 있으며, 주님은 만국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29 땅 속에서 잠자는 자가 어떻게 주님을 경배하겠는가? 무덤으로 내려가는 자가 어떻게 주님 앞에 무릎 꿇겠는가? 그러나 나는 주님의 능력으로 살겠다.30 내 자손이 주님을 섬기고 후세의 자손도 주님이 누구신지 들어 알고,31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도 주님께서 하실 일을 말하면서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다’ 하고 선포할 것이다.
 
NIV
All the rich of the earth will feast and worship;
all who go down to the dust will kneel before him—
those who cannot keep themselves alive(29절).
 
[오늘의 묵상]
시인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첫째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보시는 분, 둘째 찬양받으실 분, 셋째 만국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24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성품을 이렇게 고백한다. 

24 그는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들을 외면하지도 않으신다.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응답하여 주신다.

 
하나님은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을 보고 느끼고 계신다.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부르짖는 기도에 언제나 응답해 주신다.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면 정말 기쁘고 감사할 일이다. 
솔직히 난 하나님이 고통스런 사람들을 돌보시고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부르짖는 사람에게 언제나 응답해 주신다고는 쉽게 믿기지 않는다. 
몇몇 달변가 혹은 궤변론자(?)들이 여기서 말하는 “언제나”에는 Yes, No, Wait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기도 그대로 긍정적으로 응답하실 수 있고, 아니라고 하실 수도 있고, 좀 더 기다려라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무응답도 응답이라고 주장하는 영성가도 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언급하면서 아무런 응답이 없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논한다. 
그런데 정말 고통에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무응답이 과연 응답이란 말인가? 
그냥 뭐라도 편하게 말씀해주실 수 없으신가? 
너무 어렵게 하시지 말고, 쉽게 쉽게 응답해주시면 안될까? 
고등종교는 참 어렵다. 
그분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도 적었지만, 그분이 고통받는 사람을 돌보시고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난 감사드린다. 
그분은 그런 분이시다. 
그러나 부르짖는 사람에게 언제나 응답하여 주신다는 시인의 주장은 과장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둘째, 시인에게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실 분이시다. 
가난한 사람들이 축배를 든단다(26절). 
세상 모든 민족이 경배를 한단다(27절). 
찬양은 인간 내면에 심겨진 종교적 본성이다. 
위대하고 훌륭한 존재를 찬양하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감탄과 탄성의 확장이다.
게다가 그분이 나를 살리고 우리를 구원하는 분이라면 말해 뭐하나! 
하나님은 역사 가운데 등장하셔서 사람들을 구출하고 구원하셨다. 
예수님이 산 증인이시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자들을 돌보셨다. 
삼위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어제 카톨릭 미사를 드렸다. 
결혼 미사를 빼고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경건함이 공간을 압도한다. 
사제, 부사제, 동사, 사회자, 기도자, 봉독자, 성가대…
공간, 분위기, 음악이 웅장함과 함께 위축감을 선사한다. 
혼자 앉아 있으니 어떻게 미사가 진행되는지 관찰하기 바쁘다. 
사실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성도들은 많은 것을 암송하고 있었다.  
노래면 노래 기도면 기도, 주임 신부의 선창 혹은 성가대의 선창에 이어 성도들의 후창을 들었다. 
잘 들리는 듯하면서도 정확히는 들리지 않는 기이한 상황. 
가사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최신 아이돌 음악보다야 낫지만, 그래도 안개를 헤메는 듯한 느낌. 
영성체 시간, 미사의 꽃이었다. 
사제의 말씀시간보다 길면 길었지 짧지 않았다. 
사제의 말과 행동으로 떡과 포도주가 진짜로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경건함. 
카톨릭 영성의 요체가 바로 그 시간이라는 것이 새삼 강하게 느껴졌다. 
매주 이들은 기적을 보고 먹는다. 
과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장인장모님의 딸인 아내에게 물어보니, 실제로 화체설을 믿는 신자는 많지 않다더라. 
그래도 천주교 신자 중 3분의 1일 화체설을 믿는다고 통계가 말해준다. 
그렇다면 600만명의 한국 천주교 신자 중 200만명이 화체설을 믿는다는 것인데, 이건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매주 신부가 집전하는 신비로운 기적을 보고 믿고 먹고 마신다는 사실에 놀란다.
예수님의 떡과 피가 자기 몸에 들어오니 그는 예수님과 한 몸이 된다. 
그럼 그 한 몸된 자신을 성령의 성전으로 알고, 하나님과 연합된 존재로 경건하게 살아갈 실질적, 심리적 동인을 얻게 된다. 
영성의 요체라 불릴만 한다.
1) 예배의 장엄함
2) 영성체(성만찬)의 영성적 효과 
그리고 세 번째로 느낀 것은 어쩔 수 없이 미사의 위계와 높은 허들이었다. 
사제부터 평신도까지 위계가 분명했다. 
성도들의 노래와 각종 기도문의 후창을 외우지 않고서는 미사에 온전히 참여하기 힘들다.
사제가 미사가 마쳤음을 알렸으나 성도들은 남아서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는 성가대도 멈추고 오직 성도들만의 노래와 기도로 이어졌다. 
이것도 개신교인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사제는 하나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으나, 성도는 마리아를 통해서 기도를 올려드린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사실 한 번 미사를 드린 것이니, 피상적인 느낌에 불과하지만, 배울 점과 접근하기 어려운 점 모두 적어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여하튼, 미사 내내 성가대의 운용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찬양은 거의 끊김이 없었고, 그들의 소리는 공간을 더욱 거룩하게 만들었다. 
아무나 성가대를 할 수 없어 보였다.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가톨릭의 성가대는 이를 현실화시켰다. 
 
셋째, 시인은 하나님을 만국을 통치하시는 분을 보고 있다. 
적극적으로 인정한다. 
하나님은 만국을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에 국한되는 분이 아니시다. 
가나안 땅의 부족신이 아니다. 
그분은 전 세계에 영향을 주신다. 
그분은 지금 이 땅과 미국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 북한을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통치는 인간들의 통치와 정치와는 차원이 다르다. 
예수님과 같이 섬기는 자들을 통해 나라와 민족과 자연과 만물을 보존하시는 방식으로 통치하신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상은 주님이 섬기고 돌보는 자들을 통해 이 세상을 보존하시고 지탱하시며 움직이신다. 
이걸 믿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말이다. 
 
트럼프, 푸틴, 젤렌스키, 시진핑… 이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세력들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제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져간다. 
트럼프과 젤렌스키는 전세계가 보는 앞에서 말싸움을 이어갔다.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고, 경제적 이익도 챙기고 싶으니, 젤렌스키를 압박했다. 
미리 사전에 논의하고 결정난 것을 서로 악수하며 싸인하면 되는 일을, 공개적으로 불러서 망신을 줬다. 
그렇게해서 젤렌스키를 국제적으로 외교적으로 왕따를 시킬 계획 아니었나 싶다. 
나는 젤렌스키를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푸틴이나 막지못한 젤렌스키나 도긴개긴이다.
푸틴의 야욕이 더 큰 문제이긴 하지만 젤렌스키의 무모함과 어리석음도 한 몫했다. 
지도자들의 욕망, 교만, 무모함과 어리석음 속에서도 현재 이 세계가 이정도라도 보존되고 운영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돌봄이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꿈꾸며 특히 예수님이 세계 통치의 완전함을 그려본다. 
그 나라가 빨리 와서 더 이상의 전쟁과 살상과 슬픔이 사라지길 기도할 뿐이다. 
 
 
[오늘의 기도]
전쟁의 참화 속에서 고통받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소서. 
하나님!!
당신을 찬양합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고 새로운 나라를 열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지도자들의 교만은 하늘을 찌릅니다. 
그들을 겸손하게 하소서. 
 
고통받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소서. 
눈물이 마르지 않는 자들에게 새로운 바람을 허락하소서. 
눈물이 마르고, 생의 의지가 드러나고, 웃음이 다시 번지게 하소서. 
생명의 기운이 흐르게 하소서. 
 
러우 전쟁이 끝나게 하시고, 더 이상의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을 막아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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