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26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15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16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17 내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오히려 악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죽음의 세계로 내려가서, 잠잠하게 해주십시오.18 오만한 자세로, 경멸하는 태도로, 의로운 사람을 거슬러서 함부로 말하는 거짓말쟁이들의 입을 막아 주십시오.19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주시려고 주님께서 마련해 두신 복이 어찌 그리도 큰지요? 주님께서는 주님께로 피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베푸십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복을 베푸십니다.20 주님은 그들을 주님의 날개 그늘에 숨기시어 거짓말을 지어 헐뜯는 무리에게서 그들을 지켜 주시고, 그들을 안전한 곳에 감추시어 말다툼하는 자들에게서 건져 주셨습니다.21 주님,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포위당했을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푸셨기에,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22 내가 포위되었을 그 때, 나는 놀란 나머지 “내가 이제 주님의 눈 밖에 났구나” 생각하며 좌절도 했지만,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는, 내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23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너희 모두 주님을 사랑하여라. 주님께서 신실한 사람은 지켜 주시나, 거만한 사람은 가차없이 벌하신다.24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아, 힘을 내어라. 용기를 내어라.
NIV
In the shelter of your presence you hide them from all human intrigues;
you keep them safe in your dwelling from accusing tongues(20절).
ESV
In the cover of your presence you hide them from the plots of men;
you store them in your shelter from the strife of tongues(20절).
1. 부끄러움
부끄러움은 사회적 언어다.
타인이 없다면 부끄러움은 존재하기 어렵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부끄러움이 드러난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인정받는 자가 되게 해 달라는 말과 동일하다.
문제는 대적하는 사람이 매번 등장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칭찬듣고 인정받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듣는 사람은 없다.
솔직히 적대자에겐 부끄러움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적대자가 뭐라고 하건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적대자 앞에서 믿었던 사람들의 배반이나 나의 실책으로 인한 분열 같은 것이 벌어졌을 때, 그 때가 가장 부끄럽기 마련이다.
부끄러움은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한다.
한국교회가 부끄러울 때가 많다.
반공이데올로기에 경도되어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했다.
성경을 자기 입맛대로 재단하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전체 큰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다.
이단, 사이비의 출현을 막지 못한다.
사람들을 홀리고 사기치는 경우를 막지 못한다.
전광훈, 손현보 같은 정치 목사를 방치한다.
참으로 부끄럽다.
2. 부르짖음
주님을 간절히 찾게 되면 부르짖게 된다.
주님이 절실하면 어쩔 수 없이 부르짖게 된다.
책임지고 있는 일들이 많고, 관리해야 할 것들이 많으면, 그래서 자기 한계를 느끼고 부족함을 느낀다면, 주님을 부르짖게 된다.
겉으로 부르짖는 것도 있지만, 속으로 부르짖는 것도 있다.
속울음을 우는 것이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최선을 다해 주님을 찾는 것이다.
이집트의 히브리 민족처럼 말이다.
바벨론 강가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울었던 포로들처럼 말이다.
지금 내 삶은 어찌보면 참으로 평안하다.
국가의 위기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해소되었다고 본다.
투표 행위로 국민의 뜻이 모아지면 나라가 본궤도로 올라갈 수 있다.
나라의 어려움이 극복되니, 현재 내 삶은 꽤나 평온하다.
그러다보니 주님께 크게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는 것이야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삶의 여러 어려움으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상황에 점점 둔감해진다는 사실이 큰 문제다.
아파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들을 위해 같이 아파하고 같이 부르짖어야 하는 것이 목회자의 역할이다.
그 일을 게을리하고 있는 것이 나의 부족함이다.
나의 부족함과 죄악을 주님께 아뢰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오늘의 기도]
연약한 모든 자들의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주님,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삶의 여러 어려움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굽어 살펴 주소서.
암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죽음의 문턱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눈물로 밤을 새우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O현을 보살피소서.
골육종으로 시작해서 폐암까지 전이가 되어 벌써 수술 및 항암 치료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다시 폐암이 발견되어 그 아이와 그 부모가 슬픔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찾아가셔서 그의 몸과 마음을 보살피소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끝까지 이 싸움을 싸울 수 있도록 이끄소서.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보호해 주소서.
고통과 통증의 시간을 견디게 하소서.
생의 의지를 더하시고, 삶의 소망을 붙들게 하소서.
그 부모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냇가에 심은 나무 >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31:1-14_주님은 나의 피난처 (1) | 2025.05.19 |
---|---|
시 30편_잠잠할 수 없어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0) | 2025.05.12 |
시 29편_크신 왕의 목소리 (0) | 2025.05.05 |
시 27:7-14_내게 와서 예배하여라 (0) | 2025.04.21 |
시 25:1-11_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0) | 2025.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