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세가 구스 여인을 데리고 왔는데,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가 그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았다고 해서 모세를 비방하였다.
2 “주님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주님께서 들으셨다.
3 모세로 말하자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
4 주님께서는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당장 부르셨다. “너희 셋은 회막으로 나오너라.” 세 사람이 그리로 나갔다.
5 주님께서 구름기둥 가운데로 내려오시어 장막 어귀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셨다. 그 두 사람이 나가 서자
6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의 말을 들어라. 너희 가운데 예언자가 있으면, 나 주가 환상으로 그에게 알리고, 그에게 꿈으로 말해 줄 것이다.
7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을 충성스럽게 맡고 있다.
8 그와는 내가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말한다. 명백하게 말하고, 모호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나 주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
9 주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떠나가셨다.
NIV
“With him I speak face to face, clearly and not in riddles; he sees the form of the LORD. Why then were you not afraid to speak against my servant Moses?”(8절)
주석
1-2절.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모세의 재혼 문제였으나, 본질적으로는 모세의 영적 권위에 대한 시기와 도전이었다(IVP 성경주석, 252쪽).
[구스 여인]
모세 나이가 80세가 넘었다.
재혼할 필요가 굳이 있었을까?
미리암과 아론의 비판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동안 장인 이드로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재혼 때문에 생기는 여러 문제를 생각하면 재혼 하지 않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일단 이스라엘 여인이 아니라는 점이 걸린다.
이방인을 아내를 맞이하는 것, 하나님이 그렇게 좋아하시지 않을 것 같다는 인상이 나에게 있다.
야곱의 형 에서도 그렇고, 삼손도 그렇고, 느헤미야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렇다.
하나님과 가나안 족속과 결혼하는 것을 그렇게 원하지 않으셨다.
그러니 이런 여러 가지 예를 통해 볼 때, 하나님이 이방 여인과의 재혼을 기뻐히지 않으실 것이라는 관념이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리더십 측면에서 이방여인과의 결혼은 권력자의 정치적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아합 혹은 솔로몬을 보라.
정치적으로도 위험 부담이 큰 행위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비판을 했다면 어땠을까?
미리암과 아론은 “주님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라며 모세의 영적 권위를 흔들고 있다.
자기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내려서 예언을 한 적이 있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모세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를 바랬지만, 결과는 이렇게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리더십의 근원을 나눠주면, 리더십의 권위가 흔들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논리로 생각을 밀고 가는 것이 옳은가?
모세의 그 열망, 즉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으면 좋겠다는 그 만인 선지자의 열망은 그것대로 매우 의미있고 필요하고 미래지향적이고 성령님으로 성취되는 것 아닌가!
몇몇이 그의 리더십에 문제제기 한다고 그 열망이 옳지 못하다고 단정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
10 모세는, 백성이 각 가족별로, 제각기 자기 장막 어귀에서 우는 소리를 들었다. 주님께서 이 일로 대단히 노하셨고, 모세는 그 앞에서 걱정이 태산 같았다.
11 모세가 주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을 이렇게도 괴롭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를 주님의 눈 밖에 벗어나게 하시어, 이 모든 백성을 저에게 짊어지우십니까?
12 이 모든 백성을 제가 배기라도 했습니까? 제가 그들을 낳기라도 했습니까? 어찌하여 저더러,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마치 유모가 젖먹이를 품듯이, 그들을 품에 품고 가라고 하십니까?
13 백성은 저를 보고 울면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달라!’ 하고 외치는데,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14 저 혼자서는 도저히 이 모든 백성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너무 무겁습니다.
15 주님께서 저에게 정말로 이렇게 하셔야 하겠다면, 그리고 제가 주님의 눈 밖에 나지 않았다면, 제발 저를 죽이셔서, 제가 이 곤경을 당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16 주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이스라엘 장로들 가운데서, 네가 백성의 장로들 또는 그 지도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 일흔 명을 나에게로 불러 오너라. 너는 그들을 데리고 회막으로 와서 그들과 함께 서라.
17 내가 내려가 거기에서 너와 말하겠다. 그리고 너에게 내려 준 영을 그들에게도 나누어 주어서, 백성 돌보는 짐을, 그들이 너와 함께 지게 하겠다. 그러면 너 혼자서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MESSAGE
I can't do this by myself—it’s too much, all these people. If this is how you intend to treat me, do me a favor and kill me. I’ve seen enough; I’ve had it(14-15절).
[제발]
백성들의 울음, 외침, 항변, 불평!!
도저히 더는 들을 수 없었다.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갔다.
하나님께 자신의 처지에 대해,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먹을 것을 달라는 아이들 앞에 아무 것도 줄 수 없는 부모는 절망하기 마련이다.
모세의 마음이 이와 같다.
백성을 사랑하여 그들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그들이 보인 태도에 기가 질린다.
하루 하루가 지옥이다.
조금이라도 잘 못되면 다 자기 잘못처럼 들린다.
사랑과 헌신이 극도의 책임감으로 자리잡는다.
백성들의 외침에 그는 하나님께 울부짖는다.
“제발 저를 죽여주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을 정도다.
적군이 처들어 온다면 목숨바쳐 싸울 수 있다.
자신이 사랑하던 자들이 매일 불평하며 울며 요구하면, 마음과 정신이 무너진다.
죽기를 바란다.
죽기를 청했던 인물들이 생각난다.
욥, 엘리야, 요나…
모세(민수기 11:11-15): '중압감'의 기도 — 사명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울부짖은 리더의 탈진
엘리야(열왕기상 19:3-4): '번아웃'의 기도 — 영적 대승 뒤에 찾아온 극심한 공포와 무력감
욥(욥기 3:1-3, 3:20-22): '영혼의 밤'의 기도 — 고난의 이유를 알 수 없어 탄식한 순전한 절망
요나(요나서 4:3, 4:8-9): '반발과 분노'의 기도 — 내 뜻과 다른 신의 자비에 항의하는 자기중심적 원망
1 주님께서 들으시는 앞에서 백성들이 심하게 불평을 하였다. 주님께서 듣고 진노하시어, 그들 가운데 불을 놓아 진 언저리를 살라 버리셨다.
2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었다. 모세가 주님께 기도드리니 불이 꺼졌다.
3 그래서 사람들은 그 곳 이름을 다베라라고 불렀다. 주님의 불이 그들 가운데서 타올랐기 때문이다.
4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섞여 살던 무리들이 먹을 것 때문에 탐욕을 품으니, 이스라엘 자손들도 또다시 울며 불평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5 이집트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던 것이 기억에 생생한데, 그 밖에도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눈에 선한데,
6 이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만나밖에 없으니, 입맛마저 떨어졌다.”
7 만나의 모양은 깟 씨와 같고, 그 빛깔은 브돌라와 같았다.
8 백성이 두루 다니면서 그것을 거두어다가,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고, 냄비에 구워 과자를 만들었다. 그 맛은 기름에 반죽하여 만든 과자 맛과 같았다.
9 밤이 되어 진에 이슬이 내릴 때면, 만나도 그 위에 내리곤 하였다.
NIV
Now the people complained about their hardships in the hearing of the LORD, and when he heard them his anger was aroused. Then fire from the LORD burned among them and consumed some of the outskirts of the camp(1절).
11 제 이년 둘째 달, 그 달 이십일에 증거궤가 보관된 그 성막에서 비로소 구름이 걷혔다.
12 이스라엘 자손은, 시내 광야를 떠나서 구름이 바란 광야에 머물 때까지, 여러 곳을 거쳐 행군을 계속하였다.
13 이것은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지시하신 명령을 따라서 한 첫 번째 행군이었다.
14 맨 앞에는 유다 자손이 진의 부대기를 앞세우고, 부대별로 정렬하여 출발하였다. 유다 부대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 이끌었고,
15 뒤이어 따라나선 잇사갈 자손 지파 부대는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 이끌었고,
16 그 다음에 나선 스불론 자손 지파 부대는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 이끌었다.
17 뒤따라 성막 운반을 맡은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 성막을 걷어 가지고 출발하였다.
18 다음으로는 르우벤 자손이 진의 부대기를 앞세우고, 부대별로 정렬하여 출발하였다. 르우벤 부대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 이끌었고,
19 뒤이어 따라나선 시므온 자손 지파 부대는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 이끌었고,
20 그 다음에 나선 갓 자손 지파 부대는 르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 이끌었다.
21 뒤따라 고핫 자손들이 성막 기구들을 메고 출발하였다.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은 고핫 자손들이 도착하기 전에 성막을 세워야만 했다.
22 그 다음으로는, 에브라임 자손이 진의 부대기를 앞세우고, 부대별로 정렬하여 출발하였다. 에브라임 부대는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가 이끌었고,
23 뒤이어 따라나선 므낫세 자손 지파 부대는 브다술의 아들 가말리엘이 이끌었고,
24 그 다음에 나선 베냐민 자손 지파 부대는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 이끌었다.
25 맨 마지막으로는, 단 자손이 진의 부대기를 앞세우고, 앞선 모든 부대의 후방 경계를 맡은 부대들이 부대별로 정렬하여 출발하였다. 단 부대는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 이끌었고,
26 뒤이어 따라나선 아셀 자손 지파 부대는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 이끌었고,
27 그 다음에 나선 납달리 자손 지파 부대는 에난의 아들 아히라가 이끌었다.
28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부대별로 정렬하여 행군할 때의 행군 순서이다.
주석
21절. 성막 기구가 도착하기 전에 성막이 먼저 세워져야 했기에 성막은 맨 앞에 선 첫 번째 군대 뒤를 따라갔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준비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이다(IVP 성경주석, 249쪽).
[행군]
이스라엘의 행군을 묵상하다보니, 군생활에서의 행군이 생각난다.
나의 첫 행군, 95년 여름 논산 훈련소.
군장을 메고, 20-30km의 야간 행군을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걷는 것은 차라리 낫다.
그 준비가 힘들었다.
군장을 챙기고, 행군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비상 벨이 울리면, 교육받았던대로 암막커튼을 치고, 전투복과 전투화를 챙기고, 군장을 메고, 총을 받으러 간다.
그 때의 사진을 봐야 좀더 기억이 되살아날 것이다.
핵심은 교관들이 끊임없이 지시한다는 것이다.
계속 소리를 지른다.
실수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장교들과 교관들이 끊임없이 지시하고 지적하고 바로잡는다.
첫 행군은 누구에게나 겁나는 일이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까지 오는데도 쉽지 않았다.
행렬의 맨 마지막 사람들은 아말렉 민족의 공격을 받아 큰 고초를 겪었다.
이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제대로된 군사 행렬을 짰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동한다.
유다 지파는 선봉이었다.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다.
세 지파가 앞장 선후에 성막을 운반하는 레위인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게르손, 므라리 자손들의 역할이다.
중간에는 고핫 자손들이 성막 기구를 메고 운반한다.
그들은 직접 어깨에 언약궤와 성막 기구를 메고 운반한다.
아마도 속도가 가장 느렸을 수도 있겠다.
다른 레위 지파는 소가 수레를 끌기에 그나마 낫지만, 고핫 자손들은 어깨에 메어야 했기에 상당히 불편했을 것이다.
이 행군의 핵심에도 하나님의 지시가 있다.
하나님은 지시하는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방향과 방식을 둘다 지시하신다.
사람들은 그 방향으로 지시받은 방식대로 이동해야 한다.
특별한 이유, 과학적인, 사회학적인, 군사학적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것이다.
9 너희의 땅에서 너희를 공격해 온 침략자들에 대항하여 전쟁에 나설 때에는, 나팔을 짧게 급히 불어라. 그러면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 원수들에게서 너희를 구해 줄 것이다.
10 너희들이 즐기는 경축일과 너희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날과 매달 초하루에는, 너희가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바치며 나팔을 불어라. 그러면 너희 주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할 것이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이동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당신이 이스라엘을 기억하고,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임을 보여주고 싶어하신다.
영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동도, 떠남도, 방식도 영적인 이유가 있다.
최근 AI를 사용하기로 결심하여 공부하고 있는 이 모든 과정도 영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로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는 것이다.
[기도]
행군의 구체적인 방식도 알려주시는 하나님,
주님의 뜻을 구합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이동하고, 주님의 방식으로 움직이고 싶습니다.
주님께 제 마음을 아뢰고 주님께서 저를 통해 하시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계속 알게 하옵소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기도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IVF를 위한 기도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IVF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치지만, 그 운동을 뒷받침하는 기도회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주님, 우리 공동체에 은혜를 베푸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The March]
Meditating on Israel's march brought back memories of marching during my military service.
My first march, summer of 1995, Nonsan Training Center.
I remember carrying full gear on a 20-30km night march.
Walking itself was bearable.
It was the preparation that was hard.
When the emergency bell rang, as we'd been trained: draw the blackout curtains, put on combat uniform and boots, shoulder the pack, go receive the rifle.
Seeing photos from that time would probably bring back more memories.
The key thing was that the instructors never stopped giving orders.
They kept shouting.
So that no mistakes were made, so that everything proceeded safely, the officers and instructors constantly directed, corrected, and adjusted us.
That first march was frightening for everyone.
Israel's journey to Sinai wasn't easy either.
Those at the very back of the procession suffered greatly under attack from the Amalekites.
Now, by God's command, they organized into a proper military formation.
The Israelites moved according to God's will.
The tribe of Judah went first.
No one knew what might happen.
After three tribes led the way, the procession of the Levites carrying the tabernacle followed.
This was the role of the Gershonites and Merarites.
In the middle, the Kohathites carried the furnishings of the tabernacle.
They carried the ark of the covenant and the sacred furnishings directly on their shoulders.
Perhaps they were the slowest of all.
The other Levite clans at least had oxen pulling carts, but the Kohathites had to bear things on their shoulders — considerably more difficult.
At the heart of this march, too, was God's instruction.
God is a God who gives instructions.
He instructs both the direction and the method.
The people had to move in that direction, in the manner they were instructed.
I don't know if there were specific reasons — scientific, sociological, or military — behind it.
But one thing is certain:
9 When you go into battle in your own land against an enemy who is oppressing you, sound a blast on the trumpets. Then you will be remembered by the Lord your God and rescued from your enemies.
10 Also at your times of rejoicing—your appointed festivals and New Moon feasts—you are to sound the trumpets over your burnt offerings and fellowship offerings, and they will be a memorial for you before your God. I am the Lord your God.
Even through their movement, God wanted to show that He would remember Israel and be their God.
There was a spiritual reason.
The moving, the leaving, the method — all of it had spiritual meaning.
Even this whole process I'm currently in — deciding to learn and study AI — must have a spiritual reason too.
That reason is simply this: God is my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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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시하시는 하나님, 기억하시는 하나님
본문: 민수기 10:11-28
1. 들어가며
1995년 여름, 논산훈련소에서의 첫 야간 행군을 기억합니다. 20-30km를 완전군장으로 걸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힘들었던 것은 걷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비상벨이 울리면 암막커튼을 치고, 전투복을 입고, 군장을 메고, 총을 받으러 뛰어가야 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교관들은 끊임없이 소리치며 지시했습니다. 실수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말입니다. 오늘 본문 민수기 10장에도 또 하나의 행군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는 장면입니다.
2. 본문 내용
이스라엘의 행군은 무질서한 이동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철저히 조직된 행렬이었습니다. 유다 지파가 선봉에 섰고, 그 뒤로 성막을 운반하는 레위 지파의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구조물을 수레에 실어 운반했지만, 가장 거룩한 것들 — 언약궤와 성막 기구들 — 을 맡은 고핫 자손은 수레가 아니라 어깨에 메어 운반해야 했습니다(민 7:9). 가장 느리고, 가장 불편하고, 가장 수고로운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9-10절에서 하나님은 나팔을 부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전쟁에 나설 때든, 절기를 지킬 때든, 나팔 소리는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게 하는 표징이었습니다.
3. 나의 인싸이트
이 본문을 묵상하며 제 마음에 남은 것은 "하나님은 지시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방향만이 아니라 방식까지 정하십니다. 왜 고핫 자손이 굳이 어깨에 메야 했는지, 왜 유다 지파가 앞장서야 했는지 — 그 모든 세세한 이유를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지시의 목적이 훈련소 교관들의 지시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교관들의 지시는 두려움과 사고 방지에서 나왔지만, 하나님의 지시는 "기억하심"에서 나옵니다. 나팔 소리 하나에도 "내가 너희를 기억한다"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가장 수고로운 자리, 가장 불편한 역할을 맡은 고핫 자손조차 그 행렬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어깨로 짊어지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4. 적용
우리 삶에도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방향과 방식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 이유를 다 이해하지 못한 채 순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왜 이 길이어야 하는지, 왜 이렇게 불편한 방식이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저 역시 최근 AI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낯선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배움과 도전의 자리에서도, 제가 붙잡아야 할 질문은 "이것이 효율적인가"가 아니라 "누구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가"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면, 이 걸음 역시 그분의 인도하심 아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고핫 자손처럼 불편하고 수고로운 역할을 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고가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가까이서 짊어지는 특권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5. 나가며
첫 행군이 두려웠던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행군에는 두려움 대신 하나님의 지시와 임재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방향과 방식을 정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모든 걸음 가운데 우리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도 한 걸음 내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