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22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서 지팡이를 모아라. 각 종족별로 지팡이 하나씩, 곧 각 종족마다 한 지도자에게서 하나씩, 지팡이가 열두 개이다. 너는 각자의 이름을 그 지팡이 위에 써라.

3 레위의 지팡이 위에는 아론의 이름을 써라. 각 종족별로 우두머리마다 지팡이가 하나씩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4 너는 그것들을 회막 안, 내가 너희에게 나 자신을 알리는 곳인 그 증거궤 앞에 두어라.

5 내가 택하는 바로 그 한 사람의 지팡이에서는 움이 돋아날 것이다. 너희를 거역하여 불평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불만을 내가 없애고야 말겠다.”

6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니, 각 지도자마다 지팡이 하나씩을 그에게 주었다. 각 종족마다 한 지도자에 지팡이가 하나씩이므로, 지팡이는 열두 개였다. 아론의 지팡이도 그 지팡이들 가운데에 있었다.

7 모세는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주님 앞에 놓았다.

8 이튿날이 되어, 모세가 증거의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레위 집안 아론의 지팡이에는 움이 돋았을 뿐 아니라, 싹이 나고, 꽃이 피고, 감복숭아 열매까지 맺은 것이 아닌가!

9 모세는 모든 지팡이를, 주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 모두에게로 가지고 나왔다. 그들은 그것들을 보았다. 저마다 자신의 지팡이를 집어들었다.

10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 놓아, 반역하는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도록 잘 간직하여라. 너는 다시는 그들이 나를 거역하여 원망하지 못하게 하여라. 그래야만 그들이 죽지 아니할 것이다.”

11 모세는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하였다.

12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죽게 되었습니다. 망하게 되었습니다. 다 망하게 되었습니다.

13 가까이 가는 사람, 곧 주님의 성막에 가까이 가는 사람은 모두 죽을 터이니, 우리가 이렇게 망하는 것으로 끝장이 나야 합니까?”

 

주석

8절. 아론에 대해 지속적으로 불평하는 반역자들을 위해 표적이 주어졌다.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과 꽃이 피면서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셨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IVP 성경주석, 255쪽).

 

[건설 vs. 해체]

공동체를 세우는 데는 리더십을 공고히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세의 리더십을 확립하는 데도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고, 아론의 제사장직을 세우는 데도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불평하는 일에 빠르다. 

작은 불편이 불평으로 이어진다. 

모두가 동일한 고통의 역치값을 갖고 있지 않다. 

누군가는 작은 자극에도 고통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제법 큰 고통이 와야 고통으로 안다. 

불평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참으로 괴롭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의 리더십을 세우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이신다. 

이집트를 탈출한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의 리더십을 잘 인정하지 못했다. 

특히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을 불신하였기에 40년간의 광야 생활이라는 징벌을 받는다. 

이 징벌을 받는 원인을 지도자에게서 찾는 백성들이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신을 회개하지 않고, 모세와 아론이 자신들을 잘못이끌었다고 믿고 있다. 

이런 왜곡된 믿음이 결국 안식일도 함부로 대하고,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반역하게 된 원인이다. 

공동체를 세울 때는 권위에 대한 순종이 더욱 필요하다. 

 

그러나 공동체의 권위를 해체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그렇다. 

유대 공동체의 강고한 벽을 허무신다. 

대제사장부터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의 권위를 무너뜨리신다. 

유대 공동체 입장에서 예수님은 반역자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고라와 다단, 아비람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모세가 만들어놓은 유대 율법을 유다 지파의 나사렛 사람에게서 나왔다. 

그가 왕족일 수는 있지만, 제사장 지파에 속하지는 않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대제사장과 사두개인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싸잡아서 비난하고 비판한다. 

오랫동은 공동체를 지켜온 사람들은 예수를 이단아요 반역자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성경은 그 둘을 다 말한다. 

성경대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12사도와 바울과 다른 지도자들의 권위에 순복해야 한다. 

성경대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 대신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과 조직과 규례들을 해체해야 한다. 

건설과 해체의 역사가 기독교의 역사다. 

 

과연 지금은 건설의 때인가? 

아님 해체의 때인가? 

 

[기도]

세우시고 또한 무너뜨리시는 주님,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공동체를 세우시는 하나님,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공동체를 해체하시는 예수님, 

삼위 하나님의 역사 의식을 배웁니다.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옳지 않은 길로 걷고 있을 때는 해체시켜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어쩌면 해체의 임계점에 가까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님,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한 당신의 해체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소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당신의 건설을 기쁘게 수용하게 하소서. 

오늘도 겸손히 주님께 나아갑니다. 

사랑을 잃지 않게 하소서. 

겸손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소서.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세계의 권력자의 교만을 꺾으소서. 

돈에 눈이 멀어 자신과 세상을 파멸의 길로 가게 하는 자들을 막으소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를 구출하소서. 

 

제가 가야 할 길을 밝히 보이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09월 21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1 할렐루야. 주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하늘 웅장한 창공에서 찬양하여라.

2 주님이 위대한 일을 하셨으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더없이 위대하시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3 나팔 소리를 울리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거문고와 수금을 타면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4 소구 치며 춤추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현금을 뜯고 피리 불면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5 오묘한 소리 나는 제금을 치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큰소리 나는 제금을 치면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6 숨쉬는 사람마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날마다]

어렸을 때, 이 시를 종종 읽고 읊었다. 

모든 악기를 통해 주님을 찬양하라고 외쳤고, 모든 순간에 주님을 높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실제 그런 삶을 살고자 노력했고, 매일 매주 예배드리는 삶을 추구했다. 

이 시편으로 만든 노래를 부르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그런 삶을 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는 않다. 

실제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새벽예배에 나가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도 있다. 

수요일, 금요일, 주일에 예배당에 나가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도 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건한 사람들 혹은 경건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불가능하지 않다. 

 

다만, 그런 종교적 행위에 처음과 같은 마음을 계속 쏟아 붓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며,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은 쉽게 습관화된다. 

습관은 무의식에 각인되어 의식하지 않고 인식하지 않고도 행동할 수 있다.

지금 마음의 상태와 상관없이 그 일을 할 수 있다. 

순종하는 마음이 없이도 순종할 수 있다. 

굳이 설득이 필요 없이도 맡겨진 일이라서 감당하곤 한다. 

그게 오래 반복되면 본심이 감춰지고 행위의 반복만 남게 된다. 

그 결과 마음과 행위가 분리된다. 

그건 매우 위험한 징조다.

위선이 그 바위틈에서 자란다. 

 

어떻게 처음 마음, 처음 사랑을 유지하면서 그분을 찬양할 수 있단 말인가? 

노래와 악기의 실력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습관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분을 찾고 바라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진정 그 존재의 기쁨이고 만족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가? 

삼위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진정한 노래는 어디에 있는가? 

그분이 하신 위대한 일을 기억하고, 그로 인해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분을 찬양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삼위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찾아봤다. 

의외로 많이 없어서 당황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JZ0IV81CUI

정신호 목사 정규2집 앨범 수록곡이다.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예수님, 능력은 성령님, 삼위일체 주님을 노래한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노래하는 이런 노래가 더 많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그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요체 중의 하나다. 

 

날마다 그분을 찬양할 수 있을까!

2026년 09월 18일 금요일

 

여는 기도

주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로 어서 와 주십시오.

 

36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37 “너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일러서, 불 탄 자리에서 향로들을 모으게 하고, 타다 남은 불은 다른 곳에 쏟게 하여라. 이 향로들은 아무나 만져서는 안 된다.

38 그 향로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죄를 짓고 목숨을 잃었지만, 그 향로는 그들이 주 앞에 드렸던 것으로, 이미 거룩하게 된 것인 만큼, 향로를 망치로 두들겨 펴서 제단에 씌우도록 하여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것이 경고가 될 것이다.”

39 제사장 엘르아살이, 불에 타 죽은 사람들이 주님께 드렸던 그 놋향로들을 거두어다가, 망치로 두들겨 펴서 제단 위에 씌웠다.

40 엘르아살은,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말씀하신 대로 다 하였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아론 자손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절대로 주 앞에 가까이 가서 분향할 수 없다는 것과, 누구든지 그렇게 하였다가는 고라와 그와 합세하였던 사람들처럼 된다는 것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상기시키려 한 것이다.

 

[경고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특히 자기 백성에게 경고하시는 장면을 쉽게 넘겨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 당신의 자녀들이 함부로 자신을 반역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묵과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분명히 경고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이 사랑이 많다고 해서, 기준이 없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이 죄인을 용납한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그분께 반역하는 자들을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시다. 

 

이 땅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친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인간사 개입을 인정한다면, 그분이 지금 이 땅 가운데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실 수 있다는 사실을 묵과해서는 안된다. 

그분은 사랑이시다. 

동시에 그분은 거룩이시다. 

사랑하시기에 거룩으로 부르신다. 

무조건적인 용납은 삼위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연합으로 우리를 부르는 힘이다. 

그 안에 있다면, 우리는 더 높은 기준을 경험하게 된다. 

그 기준에 도달할 수 없지만, 최소한 그 기준의 근간을 흔드는 반역을 고의적으로 지속하는 죄는 범하지 않을 수 있다. 

“삼위하나님&우리&나”, 이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 반역의 본질이다. 

이런 반역을 고의적으로 지속한다면 그는 이생의 경고와 심판 & 내생의 심판을 받는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이라면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삼위하나님&우리&나”의 관계를 고의적, 지속적으로 깨는 것은 위선과 거짓의 앞잡이다. 

사탄에게 유혹받아 사탄의 뜻을 따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모를 때는 도리어 용서받기 쉬우나 알면서 고의적으로 지속적으로 짓는, “관계 파탄”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다. 

그분의 경고를 들어야 한다. 

돌이키면 그분은 용서하신다.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은 심판이다. 

2026년 09월 17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25 모세가 일어나 다단과 아비람에게로 가니, 이스라엘 장로들도 그를 따랐다.

26 그는 회중에게 경고하였다. “당신들은 이 악한 사람들의 장막에서 물러서시오! 그들에게 딸린 어느 것 하나도 건드리지 마시오. 건드렸다가는, 그들의 죄에 휘말려 함께 망할 것이오.”

27 그러자 회중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거처 주변에서 물러섰다. 다단과 아비람은 밖으로 나와서, 그들의 장막 어귀에 섰다.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과 어린 것들도 함께 섰다.

28 그 때에 모세가 말하였다. “당신들은 이제 곧 이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을 하도록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된 일임을 알게 될 것이오.

29 이 사람들이 보통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죽는다면, 곧 모든 사람이 겪는 것과 같은 죽음으로 죽는다면, 주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오.

30 그러나 주님께서, 당신들이 듣도 보도 못한 일을 일으켜서, 땅이 그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에게 딸린 모든 것을 삼켜, 그들이 산 채로 스올로 내려가게 되면, 그 때에 당신들은 이 사람들이 주님을 업신여겨서 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

31 그가 이 모든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이 딛고 선 땅바닥이 갈라지고,

32 땅이 그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집안과 고라를 따르던 모든 사람과 그들의 모든 소유를 삼켜 버렸다.

33 그리고 그들과 합세한 모든 사람도 산 채로 스올로 내려갔고, 땅은 그들을 덮어 버렸다. 그들은 이렇게 회중 가운데서 사라졌다.

34 그들의 아우성 소리에, 주변에 있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땅이 우리마저 삼키려 하는구나!” 하고 소리치며 달아났다.

35 주님께로부터 불이 나와, 향을 바치던 이백오십 명을 살라 버렸다.

 

주석

33절. ‘스올’은 땅 아래에 있는 죽은 자들의 거처로 여겨졌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결국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하고, 그들의 소유와 함께 이스라엘 회중에서 소멸되었다(IVP 성경주석, 254쪽).

 

[진노하시는 하나님]

온 우주의 통치자께서 분노하시고 진노하시는 것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그분 앞에 설 용기가 사라진다. 

그분께 반역하는 자, 그분의 뜻을 어기는 자에게 표현하시는 그분의 분노에 눈을 들 수가 없다. 

고라, 다단, 아비람은 하나님의 진로를 받아 그의 가족들과 함께 땅 속에 생매장 당했다. 

그들이 보여준 교만함과 반역에 하나님은 분명히 심판하셨다.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모세의 제안 자체가 기회다. 

그간의 역사를 돌아볼 때, 모세를 통해 일하셨던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함부로 그에게 도전할 일이 아니다. 

모세의 시험을 받아들일 때, 자신의 부족함과 죄악을 인정했어야 했다. 

세력을 과시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봐야 했다. 

그걸 분별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한번 교만의 길로 들어서면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교만 때문에 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식이 아니라 인격적인 교제로 나아가야 우리는 산다. 

논쟁이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이 우선이다. 

지적 우월성을 추구할 일이 아니라 그분과 나누는 사랑의 깊이, 정도, 횟수… 친밀감이 핵심이다. 

그분은 우리를 가르치기 이전에 사랑하신다. 

사랑 안에 거하면 우리는 언제든 자신을 고치고 수정하고 돌이킬 수 있다. 

논쟁으로 설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일어나야 우리는 산다. 

그분의 말씀, 표현, 뜻, 의지, 성향을 느끼고 알아차리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다. 

거기로부터 시작된다. 

비판하는 자리에 서지 말고 주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순종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 

비판할 수 있지만, 항상 비판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비판하는 자리에 서지 말라는 말의 의미다. 

 

나는 오늘 그분과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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