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07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10 이스라엘 자손은 그 곳을 떠나서는 오봇에 이르러 진을 쳤다.

11 오봇을 떠나서는 이예아바림에 이르러 진을 쳤다. 그 곳은 모압 맞은편, 해 돋는 쪽 광야이다.

12 또 그 곳을 떠나서는 세렛 골짜기에 이르러 진을 쳤다.

13 또 그 곳을 떠나서는 아르논 강에 이르러 북쪽 강변을 따라 진을 쳤다. 그 곳은 아모리 사람의 경계로 이어지는 광야이다. 아르논 강은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 있는 모압 경계이다.

14 그래서 ‘주님의 전쟁기’에도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수바 지역의 와헙 마을과 아르논 골짜기와

15 모든 골짜기의 비탈은 아르 고을로 뻗어 있고 모압의 경계에 닿아 있다.”

16 그들은 그 곳을 떠나서 브엘에 이르렀다. 브엘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백성을 모아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마” 하고 말씀하신, 바로 그 샘이 있는 곳이다.

17 그 때에 이스라엘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 “샘물아, 솟아나라. 모두들 샘물을 노래하여라.

18 지도자들이 파고, 백성의 원로들이 왕의 통치 지팡이들로 터뜨린 샘물이다.” 그들은 그 광야를 떠나 맛다나에 이르렀다.

19 맛다나를 떠나서는 나할리엘에 이르고, 나할리엘을 떠나서는 바못에 이르렀다.

20 바못을 떠나서는 비스가 산 꼭대기 부근,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모압 고원지대의 한 골짜기에 이르렀다.

 

주석

14, 17절. 이 여행 기록에는 두 개의 인용문이 등장한다. 하나님 고대 기록인 ‘여호와의 전쟁기’에서,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노래에서 인용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여정을 도우셨음을 기억하며 기쁨으로 노래했다(IVP 성경주석, 259쪽).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시간]

불뱀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아주 특별한 사건이다. 

성경도 어쩔 수 없이 특별한 사건들에 초점을 맞춘다. 

모든 사건 사고를 다 강조해서 적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책의 한계다. 

발화의 한계다. 

모든 빛은 사건의 기록이다. 

광자는 어떤 순간도 버리지 않는다. 

광자의 집합은 역사의 집대성이다. 

빛을 제외하면 그 어떤 것도 모든 것을 다 담지 못한다. 

선택과 배제가 난무한다. 

특별한 것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문장과 문장 사이, 행과 행 사이에는 숱한 사건과 사람과 시간이 존재한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저자의 의도에 따른 선별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계속 여행한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땅을 향해 수십만명이 움직인다. 

그 여정을 누군가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면, 장엄함과 두려움과 감동이 섞일 것이다. 

불평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 속에는 찬양하는 자들도 있었다. 

불평하는 자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주목되었다. 

여기서는 찬양하는 자들의 모습도 등장한다. 

17절에서 이스라엘은 노래를 부른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감사다.

 

삼위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감사가 삶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2026년 10월 06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 네겝 지방에 살고 있던 가나안 사람 아랏 왕은,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와서, 이스라엘과 맞서 싸워, 그들 가운데서 얼마를 포로로 사로잡았다.

2 그 때에 이스라엘이 주님께 다음과 같은 말로 서약하였다. “주님께서 이 백성을 우리 손에 붙이시면, 우리는 그들의 성읍들을 전멸시키겠습니다.”

3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붙이시니, 이스라엘이 그들과 그들의 성읍들을 전멸시켰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고 부르게 되었다.

4 그들은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에서부터 홍해 길을 따라 나아갔다. 길을 걷는 동안에 백성들은 마음이 몹시 조급하였다.

5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다. “어찌하여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습니까?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합니까? 먹을 것도 없습니다. 마실 것도 없습니다. 이 보잘것없는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납니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사람을 무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구하였다. “주님과 어른을 원망함으로써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이 우리에게서 물러가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세가 백성들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였다.

8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로 뱀을 만들어서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에, 물린 사람은 구리로 만든 그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주석

4절. 에돔이 영토 통과를 거부하자, 이스라엘은 에돔 땅을 우회하는 길을 택해야 했으며, 이는 홍해 쪽으로 멀리 돌아가는 여정을 의미했다(IVP 성경주석, 257쪽).

 

[승리와 불평]

가나안 성읍을 물리쳤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함께 마음을 모았다. 

“주님께서 이 백성을 우리 손에 붙이시면, 우리는 그들의 성읍들을 전멸시키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그리고 그들의 간구와 기도가 상달되었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광야생활하던 그들에게 전쟁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지헤를 주셨다. 

그럼에도 그들은 곧 마음에 불평이 올라왔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부족하다. 

만나는 보잘것없는 음식이 되었다.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이 보잘것없는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납니다.”

이해가 된다. 

40년 가까이 먹어왔다. 

이렇게 저렇게 먹어도 같은 음식이다. 

맛난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 

맛집을 찾아 다니는 한국인들은 저런 상황에서 더 불평했을 것이다. 

지금 같은 현실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식욕은 성욕보다 강하다. 

먹지 못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단순한 식욕이야 건강의 상징이다. 

식탐은 다르다. 

식탐은 우상숭배다. 

욕구를 탐하면 그 욕구로 다른 필요들이 줄을 선다. 

영적인 필요, 관계의 필요가 뒤로 빠지고, 오직 탐욕이 앞장선다.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점점 뒤로 빠진다. 

그분이 하신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불평과 불만이 쌓인다. 

 

최근에 내가 경험하는 것들이 그렇다. 

갑자기 험한 일들이 쏟아졌다. 

장모님의 응급실, 딸아이의 병원, 아들녀석의 수술, 욕실 누수, 심지어 밭솥 고장… 

할 일이 많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챙겨야하고 신경써야 할 일이 많은데, 과연 감사함으로 감당하고 있지 못하다.

짜증과 불만… 

허리까지 아프니 더욱 힘들다. 

하나님이 하신 일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청개구리 볼따귀처럼 불평이 가득하다.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줄어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갔다.

다시 중심을 잡자. 

주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자. 

예수님이 내 인생에 끼친 영향을 기억하자. 

 

뭔가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고 싶었으나, 미미하다. 

미미하다고 내 존재가 작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하나님이 시키신 일들을 할 뿐이다. 

그 일들을 좀더 잘 하고 싶을 뿐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살고 싶다.

 

 

2026년 10월 01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1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렀다. 백성은 가데스에 머물렀다. 미리암이 거기서 죽어 그 곳에 묻혔다.

2 회중에게는 마실 물이 없었다.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비방하려고 함께 모였다.

3 백성은 모세와 다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동족이 주님 앞에서 죽어 넘어졌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소.

4 어쩌자고 당신들은 주님의 총회를 이 광야로 끌고 와서, 우리와 우리의 가축을 여기에서 죽게 하는 거요?

5 어찌하여 당신들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이 고약한 곳으로 데리고 왔소? 여기는 씨를 뿌릴 곳도 못 되오.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소.”

6 모세와 아론이 총회 앞을 떠나 회막 어귀로 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주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나타났다.

7 그 때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8 “너는 지팡이를 잡아라. 너와 너의 형 아론은 회중을 불러모아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 바위에게 명령하여라. 그러면 그 바위가 그 속에 있는 물을 밖으로 흘릴 것이다. 너는 바위에서 물을 내어, 회중과 그들의 가축 떼가 마시게 하여라.”

9 모세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주님 앞에서 지팡이를 잡았다.

10 모세와 아론은 총회를 바위 앞에 불러모았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반역자들은 들으시오. 우리가 이 바위에서, 당신들이 마실 물을 나오게 하리오?”

11 모세는 팔을 높이 들고, 그의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쳤다. 그랬더니 많은 물이 솟아나왔고, 회중과 그들의 가축 떼가 마셨다.

12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총회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13 여기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과 다투었으므로, 이것이 바로 므리바 샘이다.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서 거룩함을 나타내 보이셨다.

 

주석

1절. ‘첫째달’은 3월 중순을 의미하는 것 같다. 광야에서 38년의 기간이 경과했다. 민수기는 광야에서 보낸 38년을 시간 낭비로 여기고 생략했을 것이다(IVP 성경주석, 257쪽)

 

[38년후]

고라와 다단 및 아비후의 반역 이후에 여러 조치들이 있었고, 정결에 대한 예법도 다시 강화되었다. 

그 뒤 38년이 지났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잘 지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연단의 시간, 혹은 징벌의 시간을 잘 버텼다. 

그러나 38년이 지난 시점, 그들의 절대적 필요인 물이 없었다.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비방하려고 모였다. 

3절에서 백성들이 말한 것이 정확히 어떤 사건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의 동족이 주님 앞에서 죽어 넘어졌을 때”? 

고라와 다단 및 아비람과 250명의 지도자들이 땅에 삼켜진 사건을 의미하는가? 

아님 다른 사건 혹은 일반적인 죽음을 의미하는가? 

38년이 지났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연사했을까? 

38년동안 만나와 메추라기와 다른 필요들을 하나님이 공급하셨을 것이다. 

광야를 방황하며 구름기둥과 불기붕을 따라 이동했을 것이다. 

분명 연단의 시기였고, 잘 훈련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목마름 앞에 그들은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한편으로 그들이 이해가 간다. 

가나안 땅은 도대체 언제 들어간단 말인가? 

광야에서 이렇게 떠돌다가 죽음을 맞이한단 말인가? 

인생이 한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다. 

광야에 어떤 낙이 있었을까? 

그들 나름대로의 공동체 문화가 있었겠지만, 떠도는 생활이 마냥 즐거지만은 않았을 터. 

씨를 뿌리지도 못하고,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없다. 

게다가 물도 없다. 

충분히 불평할 수 있는 환경. 

이런 곳에서 불평한다고 이들을 반역자라도 몰아세우는 모세와 아론이 야속하다. 

모세와 아론도 오랜 광야 생활에 지쳤을까? 

백성들을 곧바로 반역자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명령도 두 번이나 내리친다.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을 더 아꼈어야 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더 섬세하게 드러내야 했다. 

백성들의 불평과 아우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백성들의 아우성을 자신의 아우성으로 삼아 주님의 구원을 구했다면 어땠을까? 

그동안 이 본문은 백성들의 잘못으로만 읽었지만, 지도자의 부족함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싶다. 

 

지도자는 38년간 더 어려운 연단의 시기를 거쳤을 것이다. 

지도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 잘 드러내야 했다.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38년간 쉴새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우신 주님, 

그럼에도 백성들은 불평을 쏟아냅니다. 

그것 자체도 문제이지만, 오늘 본문에서의 문제는 모세와 아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도 지쳤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제가 끝까지 지치지 않고 저에게 맡겨주신 이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예수님이 그들을 사랑했던 것처럼 저도 사랑하게 하소서. 

그 사랑이 더 깊어 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09월 30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11 “어느 누구의 주검이든, 사람의 주검에 몸이 닿은 사람은 이레 동안 부정하다.

12 그는 사흘째 되는 날과 이레째 되는 날, 붉은 암송아지를 불사른 재를 탄 물로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야 한다. 그러면 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흘째 되는 날과 이레째 되는 날에 자기의 몸을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그냥 부정하다.

13 누구든지 주검, 곧 죽은 사람의 몸에 닿고도 스스로 정결하게 하지 않은 사람은, 주의 성막을 더럽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반드시 이스라엘에서 끊어져야 한다.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 몸에 뿌리지 아니하여 자신의 부정을 씻지 못하였으므로, 그의 부정이 여전히 그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14 다음은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에 지켜야 할 법이다. 그 장막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나 그 장막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이레 동안 부정하다.

15 어떤 그릇이든지, 그 위의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들도 부정하게 된다.

16 들판에 있다가 칼에 맞아 죽은 사람이나, 그냥 죽은 사람이나, 그 죽은 사람의 뼈나, 아니면 그 무덤에라도 몸이 닿은 사람은, 누구나 이레 동안 부정하다.

17 그렇게 부정하게 되었을 때에는, 붉은 암송아지를 불사른 재를 그릇에 떠다가, 거기에 생수를 부어 죄를 씻는 물을 만든다.

18 그렇게 한 다음에, 정한 사람이 우슬초를 가져 와서, 그것으로 이 물을 찍어, 장막 위에와, 모든 기구 위에와, 거기에 있는 사람들 위에와, 뼈나 살해당한 자나 죽은 자나 무덤에 몸이 닿은 사람 위에 뿌린다.

19 정한 사람이 사흘째 되는 날과 이레째 되는 날에, 부정한 사람에게 이 잿물을 뿌려 준다. 그러면 이레째 되는 날, 부정을 탄 그 사람은 정하게 된다. 그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는다. 저녁때가 되면, 그는 정하게 된다.

20 그러나 부정을 탄 사람이, 그 부정을 씻어 내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총회에서 제명되어야 한다.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의 위에 뿌리지 아니하여 그 더러움을 씻지 못하면, 주의 성소를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21 이것은 그들이 언제까지나 지켜야 할 율례이다.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사람도 자기의 옷을 빨아야 한다. 정결하게 하는 물에 몸이 닿아도, 그는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22 부정한 사람이 닿은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하며, 그것에 몸이 닿은 사람도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주석

20절. 정화의 물을 등한히 한 사람은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져야 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정결의 길을 고의로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도적으로 불순종하는 행위이다(IVP 성경주석, 257쪽).

 

[정결]

하나님은 정결하신 분이시다. 

죽음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으신다. 

그분은 생명이며 빛이며 소생이다. 

죽음의 기운, 죽음의 이미지는 부정으로 취급된다. 

피를 흘리는 것, 죽은 존재를 만지는 것, 생명의 기운이 빠져 나가는 것, 불치병… 이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느낀다. 

하나님은 죽음의 이미지를 부정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본질과 반대되거나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준다. 

죽음의 기운은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만들고 생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정서적으로도 그렇다. 

죽음을 계속 떠올리게 되면 그만큼 사람들은 극단적이게 된다. 

죽음 앞에서 못할 일이 없다. 

죽음 앞에서는 하나님을 버릴 수도 있다. 

죽음 앞에서는 어떤 규정과 법률도 내팽겨쳐진다. 

그 죽음의 기운을 막아야 공동체가 산다. 

생명되신 하나님과 죽음은 공존이 어렵다. 

정결은 그러니까 생명을 보호하고 공동체를 보호한다. 

물리적으로 병균으로부터 사람과 공동체를 보호한다. 

정서적으로 우울과 무기력으로부터 사람과 공동체를 보호한다. 

영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반역으로부터 사람고 공동체를 보호한다. 

정결이 중요한 이유다. 

 

주검에 닿은 사람, 시체를 만진 사람은 더욱 정결 예식을 잘 가져야 한다. 

광야에서 충분한 물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규정이 없다면 청결을 위한 과정을 쉽게 놓치게 될 것이며, 이는 전염병의 위험에 노출된다. 

하나님은 죽음의 실제적 위협과 정서적, 정신적 위협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신다. 

 

피를 계속 흘리는 것은 죽음과 가깝기 때문에 부정하다.

그럼 부정한 사람과 닿은 사람도 부정하다. 

혈루병에 걸린 그 여인이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여러 모로 큰 죄악이다. 

부정한 몸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몸에 손을 대었다. 

그가 조용히 다가가 만진 이유가 있다. 

자신 때문에 예수님도 하루 종일 부정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정에 종속되지 않는 분이다. 

도리어 그분이 씻는 물이다. 

우슬초로 뿌려진 물이다. 

생명이다. 

부정을 씻어내는 힘이 그분에게 있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여기서 물은 생수되신 예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모든 존재들의 모임이다. 

그 총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로 깨끗하게 씻겨야 한다. 

생수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깨끗게 된다. 

 

이 정결하신, 생명되신 예수님이 죽음으로 직접 들어가셨다. 

생명이 죽음에 걸어들어간 것이다. 

그토록 거룩하고 정결하신 분이, 죽음이라는 부정의 중심에 들어가셨다. 

그렇게 죽음의 본진을 깨뜨리셨다. 

죽음의 기운으로 부정하게 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기도]

거룩하신 정결하신 삼위하나님, 

부정의 전염성을 잘 압니다. 

하지만 정결의 전염성도 어마무시합니다.

 

생명되신 예수님, 생수되신 예수님, 당신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됩니다. 

그 생수를 저에게 마시게 하소서. 

예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저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을 묵상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예수님을 드러내게 하소서.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더 많이 알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생명을 전하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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