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01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1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렀다. 백성은 가데스에 머물렀다. 미리암이 거기서 죽어 그 곳에 묻혔다.
2 회중에게는 마실 물이 없었다.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비방하려고 함께 모였다.
3 백성은 모세와 다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동족이 주님 앞에서 죽어 넘어졌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소.
4 어쩌자고 당신들은 주님의 총회를 이 광야로 끌고 와서, 우리와 우리의 가축을 여기에서 죽게 하는 거요?
5 어찌하여 당신들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이 고약한 곳으로 데리고 왔소? 여기는 씨를 뿌릴 곳도 못 되오.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소.”
6 모세와 아론이 총회 앞을 떠나 회막 어귀로 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주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나타났다.
7 그 때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8 “너는 지팡이를 잡아라. 너와 너의 형 아론은 회중을 불러모아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 바위에게 명령하여라. 그러면 그 바위가 그 속에 있는 물을 밖으로 흘릴 것이다. 너는 바위에서 물을 내어, 회중과 그들의 가축 떼가 마시게 하여라.”
9 모세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주님 앞에서 지팡이를 잡았다.
10 모세와 아론은 총회를 바위 앞에 불러모았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반역자들은 들으시오. 우리가 이 바위에서, 당신들이 마실 물을 나오게 하리오?”
11 모세는 팔을 높이 들고, 그의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쳤다. 그랬더니 많은 물이 솟아나왔고, 회중과 그들의 가축 떼가 마셨다.
12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총회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13 여기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과 다투었으므로, 이것이 바로 므리바 샘이다.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서 거룩함을 나타내 보이셨다.
주석
1절. ‘첫째달’은 3월 중순을 의미하는 것 같다. 광야에서 38년의 기간이 경과했다. 민수기는 광야에서 보낸 38년을 시간 낭비로 여기고 생략했을 것이다(IVP 성경주석, 257쪽)
[38년후]
고라와 다단 및 아비후의 반역 이후에 여러 조치들이 있었고, 정결에 대한 예법도 다시 강화되었다.
그 뒤 38년이 지났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잘 지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연단의 시간, 혹은 징벌의 시간을 잘 버텼다.
그러나 38년이 지난 시점, 그들의 절대적 필요인 물이 없었다.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비방하려고 모였다.
3절에서 백성들이 말한 것이 정확히 어떤 사건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의 동족이 주님 앞에서 죽어 넘어졌을 때”?
고라와 다단 및 아비람과 250명의 지도자들이 땅에 삼켜진 사건을 의미하는가?
아님 다른 사건 혹은 일반적인 죽음을 의미하는가?
38년이 지났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연사했을까?
38년동안 만나와 메추라기와 다른 필요들을 하나님이 공급하셨을 것이다.
광야를 방황하며 구름기둥과 불기붕을 따라 이동했을 것이다.
분명 연단의 시기였고, 잘 훈련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목마름 앞에 그들은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한편으로 그들이 이해가 간다.
가나안 땅은 도대체 언제 들어간단 말인가?
광야에서 이렇게 떠돌다가 죽음을 맞이한단 말인가?
인생이 한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다.
광야에 어떤 낙이 있었을까?
그들 나름대로의 공동체 문화가 있었겠지만, 떠도는 생활이 마냥 즐거지만은 않았을 터.
씨를 뿌리지도 못하고,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없다.
게다가 물도 없다.
충분히 불평할 수 있는 환경.
이런 곳에서 불평한다고 이들을 반역자라도 몰아세우는 모세와 아론이 야속하다.
모세와 아론도 오랜 광야 생활에 지쳤을까?
백성들을 곧바로 반역자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명령도 두 번이나 내리친다.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을 더 아꼈어야 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더 섬세하게 드러내야 했다.
백성들의 불평과 아우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백성들의 아우성을 자신의 아우성으로 삼아 주님의 구원을 구했다면 어땠을까?
그동안 이 본문은 백성들의 잘못으로만 읽었지만, 지도자의 부족함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싶다.
지도자는 38년간 더 어려운 연단의 시기를 거쳤을 것이다.
지도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 잘 드러내야 했다.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38년간 쉴새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우신 주님,
그럼에도 백성들은 불평을 쏟아냅니다.
그것 자체도 문제이지만, 오늘 본문에서의 문제는 모세와 아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도 지쳤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제가 끝까지 지치지 않고 저에게 맡겨주신 이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예수님이 그들을 사랑했던 것처럼 저도 사랑하게 하소서.
그 사랑이 더 깊어 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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