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18일 금요일

 

여는 기도

주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로 어서 와 주십시오.

 

36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37 “너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일러서, 불 탄 자리에서 향로들을 모으게 하고, 타다 남은 불은 다른 곳에 쏟게 하여라. 이 향로들은 아무나 만져서는 안 된다.

38 그 향로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죄를 짓고 목숨을 잃었지만, 그 향로는 그들이 주 앞에 드렸던 것으로, 이미 거룩하게 된 것인 만큼, 향로를 망치로 두들겨 펴서 제단에 씌우도록 하여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것이 경고가 될 것이다.”

39 제사장 엘르아살이, 불에 타 죽은 사람들이 주님께 드렸던 그 놋향로들을 거두어다가, 망치로 두들겨 펴서 제단 위에 씌웠다.

40 엘르아살은,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말씀하신 대로 다 하였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아론 자손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절대로 주 앞에 가까이 가서 분향할 수 없다는 것과, 누구든지 그렇게 하였다가는 고라와 그와 합세하였던 사람들처럼 된다는 것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상기시키려 한 것이다.

 

[경고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특히 자기 백성에게 경고하시는 장면을 쉽게 넘겨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 당신의 자녀들이 함부로 자신을 반역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묵과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분명히 경고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이 사랑이 많다고 해서, 기준이 없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이 죄인을 용납한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그분께 반역하는 자들을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시다. 

 

이 땅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친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인간사 개입을 인정한다면, 그분이 지금 이 땅 가운데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실 수 있다는 사실을 묵과해서는 안된다. 

그분은 사랑이시다. 

동시에 그분은 거룩이시다. 

사랑하시기에 거룩으로 부르신다. 

무조건적인 용납은 삼위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연합으로 우리를 부르는 힘이다. 

그 안에 있다면, 우리는 더 높은 기준을 경험하게 된다. 

그 기준에 도달할 수 없지만, 최소한 그 기준의 근간을 흔드는 반역을 고의적으로 지속하는 죄는 범하지 않을 수 있다. 

“삼위하나님&우리&나”, 이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 반역의 본질이다. 

이런 반역을 고의적으로 지속한다면 그는 이생의 경고와 심판 & 내생의 심판을 받는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이라면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삼위하나님&우리&나”의 관계를 고의적, 지속적으로 깨는 것은 위선과 거짓의 앞잡이다. 

사탄에게 유혹받아 사탄의 뜻을 따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모를 때는 도리어 용서받기 쉬우나 알면서 고의적으로 지속적으로 짓는, “관계 파탄”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다. 

그분의 경고를 들어야 한다. 

돌이키면 그분은 용서하신다.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은 심판이다. 

2026년 09월 17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25 모세가 일어나 다단과 아비람에게로 가니, 이스라엘 장로들도 그를 따랐다.

26 그는 회중에게 경고하였다. “당신들은 이 악한 사람들의 장막에서 물러서시오! 그들에게 딸린 어느 것 하나도 건드리지 마시오. 건드렸다가는, 그들의 죄에 휘말려 함께 망할 것이오.”

27 그러자 회중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거처 주변에서 물러섰다. 다단과 아비람은 밖으로 나와서, 그들의 장막 어귀에 섰다.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과 어린 것들도 함께 섰다.

28 그 때에 모세가 말하였다. “당신들은 이제 곧 이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을 하도록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된 일임을 알게 될 것이오.

29 이 사람들이 보통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죽는다면, 곧 모든 사람이 겪는 것과 같은 죽음으로 죽는다면, 주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오.

30 그러나 주님께서, 당신들이 듣도 보도 못한 일을 일으켜서, 땅이 그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에게 딸린 모든 것을 삼켜, 그들이 산 채로 스올로 내려가게 되면, 그 때에 당신들은 이 사람들이 주님을 업신여겨서 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

31 그가 이 모든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이 딛고 선 땅바닥이 갈라지고,

32 땅이 그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집안과 고라를 따르던 모든 사람과 그들의 모든 소유를 삼켜 버렸다.

33 그리고 그들과 합세한 모든 사람도 산 채로 스올로 내려갔고, 땅은 그들을 덮어 버렸다. 그들은 이렇게 회중 가운데서 사라졌다.

34 그들의 아우성 소리에, 주변에 있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땅이 우리마저 삼키려 하는구나!” 하고 소리치며 달아났다.

35 주님께로부터 불이 나와, 향을 바치던 이백오십 명을 살라 버렸다.

 

주석

33절. ‘스올’은 땅 아래에 있는 죽은 자들의 거처로 여겨졌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결국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하고, 그들의 소유와 함께 이스라엘 회중에서 소멸되었다(IVP 성경주석, 254쪽).

 

[진노하시는 하나님]

온 우주의 통치자께서 분노하시고 진노하시는 것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그분 앞에 설 용기가 사라진다. 

그분께 반역하는 자, 그분의 뜻을 어기는 자에게 표현하시는 그분의 분노에 눈을 들 수가 없다. 

고라, 다단, 아비람은 하나님의 진로를 받아 그의 가족들과 함께 땅 속에 생매장 당했다. 

그들이 보여준 교만함과 반역에 하나님은 분명히 심판하셨다.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모세의 제안 자체가 기회다. 

그간의 역사를 돌아볼 때, 모세를 통해 일하셨던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함부로 그에게 도전할 일이 아니다. 

모세의 시험을 받아들일 때, 자신의 부족함과 죄악을 인정했어야 했다. 

세력을 과시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봐야 했다. 

그걸 분별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한번 교만의 길로 들어서면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교만 때문에 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식이 아니라 인격적인 교제로 나아가야 우리는 산다. 

논쟁이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이 우선이다. 

지적 우월성을 추구할 일이 아니라 그분과 나누는 사랑의 깊이, 정도, 횟수… 친밀감이 핵심이다. 

그분은 우리를 가르치기 이전에 사랑하신다. 

사랑 안에 거하면 우리는 언제든 자신을 고치고 수정하고 돌이킬 수 있다. 

논쟁으로 설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일어나야 우리는 산다. 

그분의 말씀, 표현, 뜻, 의지, 성향을 느끼고 알아차리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다. 

거기로부터 시작된다. 

비판하는 자리에 서지 말고 주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순종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 

비판할 수 있지만, 항상 비판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비판하는 자리에 서지 말라는 말의 의미다. 

 

나는 오늘 그분과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2026년 09월 16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16 모세가 고라에게 말하였다. “당신과 당신의 모든 사람은 내일 주님 앞에 나오시오. 당신과 그들과 아론이 함께 설 것이오.

17 각자 자기의 향로를 들고, 그 안에 향을 담아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하오. 각자가 향로를 가지고 오면, 향로는 모두 이백오십 개가 될 것이오. 당신과 아론도 각자 향로를 가져 와야 하오.”

18 그래서 각자 자기의 향로를 가지고 와서, 거기에 불을 피우고, 그 안에 향을 넣어서, 회막 어귀에 섰다. 모세와 아론도 함께 있었다.

19 고라는 온 회중을 모두 회막 어귀에 모아 두 사람과 대결하게 하였다. 갑자기 주님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났다.

20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21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따로 떨어져라. 내가 그들을 순식간에 없애 버리겠다.”

22 그러나 모세와 아론이 땅에 엎드려 부르짖었다. “하나님, 모든 육체에 숨을 불어넣어 주시는 하나님, 죄는 한 사람이 지었는데, 어찌 온 회중에게 진노하십니까?”

23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4 “너는 회중에게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거처 가까이에서 떠나라고 하여라.”

 

주석

18절. 제사장직은 오직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직분이었다. 향로를 가져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그분의 승인을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IVP 성경주석, 254쪽).

 

[고라의 담대함 혹은 무모함]

도대체 고라의 담대함(?)은 어디서 왔는가?

그는 어디서 이런 자신감을 얻었단 말인가?

고라(Korah)의 자신감은 그의 든든한 혈통적 배경, 높은 사회적 지위, 그리고 강력한 지지 세력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는 모세와 아론의 사촌이다. 

레위 지파, 고핫의 자손이며, 이들은 언약궤를 메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신성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니 교만해 질 수 있었다. 

게다가 나답과 아비람의 지지를 얻었고, 250명의 지도자들의 세력을 등에 업었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해서는 안되지만, 사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 외에도 민족의 지도자들을 용인하셨다. 

70명의 장로들, 엘닷과 메닷에게는 하나님의 영을 부어져서 예언을 하기도했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 모세와 아론의 권위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지금 이스라엘은 참으로 취약하다. 

질서를 세우지 않으면, 그 질서에 권위가 세워지지 않으면 이스라엘 국가 공동체는 생존하지 못한다. 

생존하지 못하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없다. 

법도 치밀해야 하고, 법 집행도 철저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세에게 임한다. 

고라는 이집트에서의 특성을 버리지 못했다. 

권력을 차지하겠다는 욕심이 그의 눈과 귀를 멀게 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으로 사역하는 것과 욕심으로 사역하는 것은 다르다. 

현재 모임 하나가 내게 주어졌는데, 과연 그 모임을 일으킬 힘이 내게 있는가? 

사실 그 힘이 없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기도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어떻게 더 겸손하게 하지만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복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하나님의 통로가 되어 수도권학사회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이건 소명인가? 무모함인가? 

2026년 09월 10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22 너희가 실수하여, 나 주가 모세에게 말한 이 모든 명령을 실천하지 못하였을 때에,

23 곧 나 주가 모세를 시켜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나 주가 명한 그 날 이후부터, 너희 대대로 실천하지 못하였을 때에,

24 그것이 회중이 모르는 가운데 실수로 저지른 것이면, 온 회중은 수송아지 한 마리를 번제물, 곧 주를 기쁘게 하는 향기로 불살라서 바치고, 거기에 딸린 곡식제물과 부어 드리는 제물도 규례대로 바쳐야 한다. 또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바쳐야 한다.

25 이렇게 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의 죄를 속하여 주면, 그들은 속죄를 받게 된다. 그것은 실수로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로 잘못을 저질렀으니, 나 주에게 불살라 바치는 제물과 속죄제물을 주 앞에 가져 와야 한다.

26 모든 백성이 실수로 잘못을 저지른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과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함께 용서받게 될 것이다.

27 만일 한 개인이 실수로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는 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가져 와야 한다.

28 그러면 제사장은 주 앞에서 실수로 죄를 지은 그 사람의 죄를 속해 주어야 한다. 제사장이 그의 죄를 속해 주면, 그는 속죄를 받게 될 것이다.

29 실수하여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그가 본토 출신 이스라엘 자손이든 그들 가운데서 살고 있는 외국인이든, 같은 법이 적용된다.

30 그러나 본토 사람이든 외국인이든, 일부러 죄를 지은 사람은 주를 모독한 것이므로, 그런 사람은 그의 백성 가운데서 쫓아내야 한다.

31 나 주의 말을 경멸하고 그의 명령을 어겼으므로, 그런 사람은 반드시 쫓아내야 한다. 자기의 죄는 자기가 짊어져야 한다.”

 

주석

30절. 고의적이지 않은 죄에 대해서는 용서가 적용되었지만, 고의로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어떠한 용서도 불가능했다(IVP 성경주석, 253쪽).

 

[실수]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실수없이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현대 법령보다야 그 양이 적어서 어찌 도전해보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실수없이 완벽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게다가 어린이들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아이들의 실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른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것인가? 

사람마다 성장 속도가 다 다를텐데, 아이와 청소년 그리고 어른의 경계 나이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여러 가지 예외를 생각할 때, 하나님의 명령을 완벽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유권해석이 필요한 대목. 

실수로 저지른 것과 의도적으로 고의로 저지른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야 한다. 

 

사람이 며칠간 잠을 못자면, 분별력도 흐려지고 유혹에도 쉽게 시달린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체가 그에 따르지 못한다.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만약 그 리듬이 잘 찾아지지 못한다면… 

지금 생각나는 것은 금식과 달리기다. 

일상적으로는 달리기가 리듬 회복에 도움이 된다. 

특별하게는 금식이 리듬 회복에 도움이 된다. 

몸은 쉼을 원한다. 

장기도 쉼을 원한다. 

쉼이 있어야 리듬의 회복이 원할하다. 

리듬이 무너지면 실수도 많이 하기 마련이다. 

해야 할 일을 뒤에 둔다.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더욱 열심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리듬 회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리듬 회복 중에 중요한 부분이 바로 영성 생활이다. 

하나님과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 시간을 빼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실수를 용서하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고의로 죄를 지은 자들을 백성으로부터 내치시는 엄격한 하나님을 본다. 

신약의 예수님은 사람들을 쉽게 내치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신약의 예수님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에서와 같이 엄격하실 때가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다. 

그분의 말씀에 계속 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진정으로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죄를 피하기 위해 사는가? 아님 선을 이루기 위해 사는가? 

기본적인 동력은 선/ 사명을 이루는 것에 전선을 이어야 한다. 

죄를 피하는 것은 주의해야 할 영역이다. 

두려움이 동력이 되는 것은 어설프다. 

선/ 사명에 대한 의지가 동력이 되자. 

 

 

[기도]

은혜로우신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은혜를 많이 경험했으나, 그 은혜 이후에 저의 교만과 부족함을 봅니다. 

다시 겸손하게 주님을 볼 수 있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을 읽고, 주님의 계획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사랑안에 살게 하소서. 

잠이 안오면 기도할 일입니다. 

잠이 안오면 주님께 나아갈 일입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금식하며, 절제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고 싶습니다. 

저의 욕망보다 주님의 열망과 뜻이 더 우선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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