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3월 13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6 그들이 왔을 때에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속으로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시려는 사람이 정말 주님 앞에 나와 섰구나’ 하고 생각하였다.7 그러나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셨다.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8 다음으로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들도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9 이번에는 이새가 삼마를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 아들도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10 이런 식으로 이새가 자기 아들 일곱을 모두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새에게 “주님께서는 이 아들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뽑지 않으셨소” 하고 말하였다.

 

Message

But God told Samuel, “Looks aren’t everything. Don’t be impressed with his looks and stature. I’ve already eliminated him. God judges persons differently than humans do. Men and women look at the face; God looks into the heart.”(7절)

 

[오늘의 묵상]

* 말씀하시는 하나님

사무엘은 새로운 왕을 세워야 했다. 

기존의 왕인 사울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새로운 왕을 뽑기 위해 기름을 들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반역이요 역모다. 

사울의 뿌락치가 없을 리 없다. 

곳곳에서 사무엘과 중요한 사람들에 대한 정보수집 및 사찰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눈 밖에 났다고 여겼기에 더욱 세심하게 주변을 살폈을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사무엘은 조용히 잠행하여 이새의 집으로 향했고, 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으로 사람들을 속였다. 

그리고 이새의 자녀들을 한 명씩 살펴본다. 

하나님이 미리 알려주시지 않았다. 

한 명 한 명 인터뷰 보듯이 보신다. 

사무엘 앞으로 아들들이 한 명씩 지나갈 때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신다. 

이 지점을 어떻게 상상하고 묵상해야 하는지 난관이다. 

본문을 보면 사무엘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교차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은 실시간으로 사무엘에게 말씀하신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무당들의 점사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면, 그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신과 접속하는 듯 보인다. 

하나님도 그렇게 하실까? 

의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직접 들었을까? 

나도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싶다. 

그러면 이 모든 의문과 질문들이 가라앉고 주님만 의지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한 편 두려움도 커진다. 

과연 그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좋은 것인가? 

자칫하면 하나님의 음성과 사탄의 음성 그리고 나의 욕망의 음성이 섞여 분별력을 잃을 수가 있다. 

하나님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에게 속아 교회과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릴 위험이 있다. 

구마 사제였던 가브리엘 아모르트의 실제 사역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 “엑소시스트: 바티칸”(2022)에 보면, 사탄은 사제에게 빙의하여 교회를 어지럽히고 큰 죄악을 저지르게 만들었었다. 

마녀 사냥이 그 한 예다. 

교회의 죄악은 인간의 악함에게 있지만, 그 악함과 약함을 파고드는 사탄의 교묘한 전략에도 들어난다. 

악마의 음성과 하나님의 음성을 분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분별하고 분간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내야 한다. 

성경을 통해, 그리고 그분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그분의 음성에 예민해져야 한다. 

성경을 문자주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는 더 큰 범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뜻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담겨 있다. 

하나님의 뜻은 지금도 드러나고 있다. 

사람에게 생명을 주고, 회복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평화, 정의, 사랑이 흘러가도록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오만한 자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것과 자신이 세운 조직을 유지하는 것에 급급하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다. 

인간이 만든 조직은 영원할 필요가 없다. 

 

* 외형이 아니라 중심이다. 

사무엘은 키가 크고 외모가 괜찮은 첫째 아들을 보며 왕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봤다. 

과거 사울의 예를 봐도 알수 있는데, 외모가 좋다고 왕에 합당한 자질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 

사울은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클 정도로 훤칠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외형만큼 훌륭한 영적 자질을 갖추지는 못했다. 

하나님은 오늘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당신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이 말에 처음 드는 생각은, 그렇다면 사울의 중심을 제대로 보셨나 하는 점이다. 

사울이 잘 못했다는 점을 십분 수긍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렇게 삐딱하게 나갈 것을 하나님은 왜 모르셨을까?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 이렇게 큰 실수를 하신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울을 버리는 이 모든 과정조차도 하나님의 원대하신 계획의 일부라고 말한다면 정말 할 말이 없다. 

하나님은 현실 세계에서 완벽한 하나님 나라를 이룰 마음이 없으신 건가? 

언제나 모나고 부족한 현실만 남겨두실 생각이신가? 

그럴 수도 있겠다. 

하나님을 변호하는 입장에서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계획을 추진하시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만약 이런식이라면 윤석열의 대통령 선출이나 그의 계엄 선포나 구속 취소 결정도 다 그런 식으로 합리화할 수 있게 된다. 

역사의 하나님이 이 모든 과정을 선용하시어 하나님 당신의 계획을 실현하실 것이라는 믿음의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점점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걸 거부하고 싶다. 

하나님을 내가 옹호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하나님은 스스로 충분히 옹호하실 수 있는 분이다. 

역사의 끝에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수용가능하다. 

그러나 역사의 과정 속에서 이런 나약한 자기 합리화식의 결정론을 채택하고 싶지 않다. 

윤석열은 무속의 도움을 받았으며 더 나아가 신천지의 도움을 받았다. 

윤석열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계엄을 촘촘히 준비했으며 최선을 다해 실시했다. 

그와 그의 가족들의 죄악은 차고 넘친다. 

그런 자를 엄벌하는 것이 정의다. 

역사의 끝에 이 모든 과정이 어떻게 평가되고 이해될지는 중간에 있는 사람은 모른다. 

그저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그리고 그분께 기도하면서 내리는 양심의 결정에 따라, 윤석열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 나와 우리가 할 일이라고 판단한다. 

 

하나님은 외모나 외형이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 

그 말을 믿고 싶다. 

내 중심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분명히 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와 고통스런 현실에서 구출해주셨다는 믿음이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빨리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켜 주실 것에 대한 소망이 있다. 

이 중심을 봐 주시길 기도한다. 

이제 나는 위대한 사람이 되길 포기한다. 

그저 마음과 영과 육이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주변의 작은 수의 사람들에게라도 생명의 기운을 전하고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게 내 마음의 중심이다. 

 

[오늘의 기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혼란스런 시대 속에서 사람들의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기 원합니다.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한 두 마디로 정리할 수는 있겠지만, 그 정도와 수준과 상황별 적용이 너무나 다양해서 언제나 헷갈립니다. 

성경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말하는데, 이게 시대마다, 공간마다, 상황마다, 사안마다 다 다르잖습니까? 

 

주님!! 

말씀하옵소서. 

사탄의 전략에 속지 않도록 이끄소서. 

오직 순순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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