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16일 화요일

 

 

여는 기도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15 그러므로 나도, 주 예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듣고서,

16 여러분을 두고 끊임없이 감사를 드리고 있으며, 내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합니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신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19 또한 믿는 사람들인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20 하나님께서는 이 능력을 그리스도 안에 발휘하셔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쪽에 앉히셔서

21 모든 정권과 권세와 능력과 주권 위에, 그리고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 일컬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22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입니다.

 

 

주석

20-23절.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현재와 상상 가능한 미래에 온 우주에 존재할 능력 있고 권능 있는 그 어떤 존재보다 그리스도를 우월하게 만드신 이 두 행동에서 입증되었다. 무한한 권위가 그리스도에게 주어져서, 우주의 만물이 그분께 복종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그리스도를 우주를 다스리는 “머리”의 자격으로 교회에 주셨다. 이 함의는 교회가 그 머리의 권위에서 유익을 얻고, 그분의 높아지심의 결과에 동참한다는 것이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1. 지혜와 계시의 영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신다. 

이 지혜와 계시의 영 덕분에 성도의 마음의 눈이 열리고 놀라운 비밀들을 알게 된다. 

지혜와 계시의 영은 예수님의 영이며 예수님의 성품과 말씀과 삶을 제일 또렷하게 보여주시는 분이시다. 

세상에는 수많은 영이 존재한다.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에 영향을 주는 영들이다. 

두려움을 주기도 하고 헛된 야망을 품게 만들기도 하는 영들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서 자기가 제시하는 것에 몰두하도록 만드는 영들이다. 

미혹의 영, 거짓의 영, 유혹의 영, 단절의 영이다. 

이런 세상의 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룩하고 참된 영이 있다. 

바로 예수님의 영, 지혜와 계시의 영,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으로 인해 예수님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따르게 된다. 

예수님께 집중하게 되고 몰두하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만 알려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성령님은 그 고유의 지혜외 계시의 영의 능력을 유감없이 드러내신다. 

성도들의 마음의 눈을 열어 주셔서 놀라운 하늘의 비밀들을 알게 하신다. 

 

2. 부르심에 속한 소망

성령님을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부르심 이유를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부르실 때에는 이유와 목적이 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계획이 있으시다. 

성도들은 그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영광스런 성취를 고대한다. 

하나님의 통치가 온 땅에 가득한 것. 

더는 전쟁과 죽음이 판을 치지 않고, 생명과 평화가 흘러 넘치는 것, 

사자와 어린 양이 서로 어울리는 것, 

서로 긴밀히 소통하고 사랑하여 오해와 불신이 사라지는 것, 

한 마음으로 서로를 향한 기대와 축복이 가득한 것… 

이런 하나님 나라를 꿈꾸게 하신다. 

 

우리에겐 이런 소망이 있다. 

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함이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함이다. 

공동체를 회복시키고 하나님 나라의 모델을 만들기 위함이다. 

나를 부르신 소망이 여기에 있다. 

 

3. 영광스러운 상속 

소망만 바램이고 큰 그림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은 실체가 없는 소망만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상속이 있다.

하나님 나라의 대리통치자로 성도들을 세우시고, 땅과 기업을 주실 것이다. 

그것은 실체다. 

마음의 소망에 머물지 않는다. 

현실 세계로 밀고 들어오는 실체다.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이 현장에 도착해서는 실물로 영접하게 되는데, 이와 같다. 

하나님의 통치의 실제를 경험하는 것, 이것은 영광스러운 상속이며 선물이다.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아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실물을 보기 위해 여행을 감행한다. 

현재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 A380이나 KTX를 타고 실물이 있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 여행지로 떠난다. 

 

지금 내가 있는 이 거제도의 아침처럼 실제 존재하는 것(사물)이며 곳(장소)이다. 

이 영광스러움에 감격한다. 

 

4. 활동하시는 능력 

하나님이 능력이 결국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하신다. 

우주를 창조하셨던 그분이, 우주를 유지하시는 그분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고, 부활시키셔서 온 우주의 권세를 예수께 넘기셨다. 

누구도 그 왕권을 거부할 수 없게 하셨다. 

왔던 세상, 오는 세상 그 어떤 공간과 시간의 권세자들도 예수님의 왕권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인간이 되셨던 하나님이 진정한 왕이 되셨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자신의 능력으로 진행시키셨다. 

그분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신다. 

 

오늘도 그분의 능력을 기억하고 싶다. 

경험하고 싶다. 

소망으로만 끝나지 않고 현실 속에 들어와 있는 상속(선물)과 능력의 일부를 맛보고 싶다. 

어떻게 경험하게 될지가 기대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소망과 상속과 능력을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도 전달되기를 기도한다. 

4.16의 기억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참된 위로와 격려가 있기를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소망과 상속과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이 아침에 당신이 하신 일을 묵상하는 동안  감격과 감동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께서 행하셨던 일과 행하실 일들을 생각할 때, 감사와 기쁨을 느낍니다. 

이 경험이 단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종종 일어나게 하소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경험하고 싶습니다. 

주께서 도우소서. 

 

리트릿에 와 있습니다. 

서로를 깊이 알아가고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게 하소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게 하소서. 

서로를 축복하고 격려하는 시간으로 채우게 하소서. 

 

여전히 사회 곳곳에 재난과 참사의 기억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더욱 넘치게 하소서. 

그들에게 당신의 소망과 상속과 능력을 경험케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4월 15일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7 내가 주님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님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

8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9 내가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10 거기에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힘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11 내가 말하기를 “아, 어둠이 와락 나에게 달려들어서, 나를 비추던 빛이 밤처럼 되어라” 해도,

12 주님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며, 밤도 대낮처럼 밝으니, 주님 앞에서는 어둠과 빛이 다 같습니다.

 

주석

7-12절. ‘영’(Spirit)은 하나님의 역동적인 임재, 그분의 개인적인 임재를 의미한다. ‘어디로... 어디로’는 여호와가 어느 곳이든 임재하시고 어디에서든 활동하신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이러한 사실은 8-12절에서 탐험된다. 즉, 위와 아래라는 영원한 차원(8절, NIV의 난외주, 스올), 공간적 차원(9-10절, 동쪽과 서쪽), 시간적 차원(11-12절, 어둠과 빛)이다. 

 

[오늘의 묵상]

1.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없다. 

교회에 주님이 계신다. 

예배드리는 곳, 기도하는 곳, 찬양하는 곳,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주님이 계신다. 

거기에만 머물지 않으신다. 

식당에서, 거리에서, 자동차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모든 건물에서 주님이 계신다. 

안방, 거실, 주방, 서재… 주님이 안 계신 곳이 없다. 

주님은 어디든 계실 수 있으며, 언제든지 말씀하실 수 있다. 

바다 속 저 깊은 심해에도, 하늘 끝 우주에도 주님은 계신다. 

만물을 만드시고, 지금도 운영하시는 주님은 어디에나 계시며, 어디에나 역사하신다. 

 

2. 그러기에 모든 행동을 아신다. 

그러기에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아신다.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과학과 우주의 신비를 알면 알수록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양자 역학의 세계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양자 얽힘 현상이 일어나면 거리와 상관없이 서로 반응한다. 

관측되지 않으면 통계적으로 존재한다. 

우주의 힘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어떻게 블랙홀은 생성하고 발전하고 유지되는가?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의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아신다? 

다 같은 선상에 있다. 

우주가 유지되고 있다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생각과 행동도 아실 수 있다. 

그분은 이 우주의 창조자이시기 때문이다. 

 

3. 시인은 스스로 죽음을 경험하고 있다. 

시인은 스올에 내려간 것 같은 경험이 있었다. 

그는 바다 끝 아무도 모르는 곳까지 가본것처럼 삶의 무게를 느껴본 경험이 있다. 

더는 빛에 거하기 싫고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를 바라본 적이 있다. 

우울한 순간, 답답한 순간이 그를 엄습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했다. 

하나님의 임재, 어디에나 계시는, 피할 수 없는 그 임재를 경험했다. 

그게 그를 살게 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주께서 지금 내 삶을 어디로 이끄시는지 잘 모르겠다. 

뭔가 답답하고 우려되는 상황이 앞에 놓여 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쉽지 않다. 

무엇보다 처리해야 좋을지 아이디어가 부족하다. 

책임져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지혜가 부족하다. 

 

4. 신뢰할 분은 주님 뿐

어둠과 빛이 주님께는 나뉘지 않는다. 

빛도 파장이며 어둠도 파장이다. 

어둡다고 파장과 에너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가시광선 영역을 벗어나는 주파수의 빛은 볼 수 없으나 존재하며,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생물들은 전혀 다르게 밤을 인식할 것이다. 

야간투시경, 전파망원경, 자외선, 적외선 카메라… 

주님께는 그 모든 것을 보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뿐이랴! 그분 자체가 빛이시다. 

그분 자체가 그 수많은 주파수를 발산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에게 답이 있다. 

내가 보는 수준에서는 답이 없다. 

하나님이 답을 찾아내시는 것이 아니라 답을 만드신다. 

그분은 답을 창조할 수 있는 분이시다. 

그분께 기댈 수 밖에 없다. 

 

[오늘의 기도]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 

주님께 제 마음과 생각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우리의 생각과 정서를 아십니다. 

걱정과 염려를 아십니다. 

소원과 열망을 아십니다. 

답답한 상황이 계속됩니다. 

길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저 이렇게 다시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길을 인도하소서. 

주님의 임재와 인도를 구합니다. 

 

오늘도 멀리 여행을 갑니다. 

오고 가는 모든 길 위에 주님의 보호하심을 간구합니다. 

만나는 사람들과 이어지는 모든 대화에서 주님의 인도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4월 12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이, 에베소에 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2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4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5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6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이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8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셔서,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10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주석

7-8절. 바울이 특별히 언급하는 유익은 ‘죄 사함’이다. 바울이 이것을 거론하는 이유는 죄 사함이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장차 있을 복의 유일한 부분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모든 유익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죄가 해결될 때까지 인류는 하나님 그리고 그분이 베푸시는 유익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기원적으로 보면, 아담과 하와가 누렸던 복이 하늘에 속한 복이었다. 

세상 만물을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 돌보고 다스릴 권한을 그들이 받았다. 

그들은 서로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 한 몸이 되어 세상을 통치했다. 

그것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의 원본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아름다운 관계로 회복시키려고 하나님은 오랫동안 참고 인내하셨다. 

예수님을 통해 그 일을 이루실 계획을 세우셨으며, 그 안에서 복의 원본을 다시 회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복구하시기로 하셨다. 

예수님 안에 우리를 다시 부르시고, 예수님과의 연결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를 삼으셨다. 

본래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통치하라고 부르신 사람들에게 다시 그 소명을 심어 주셨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반역과 죄악에 대한 해결이 선행되어야 했고, 그 일을 예수님께서 하신 것이다. 

속죄가 이 시대에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성경의 이 거대한 메타내러티브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 분들이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삶과 십자가와 부활을 무게감있게 바라보지 않는 분들이다. 

죄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 인간의 본질적 문제다. 

반역, 거부, 무시, 무관심은 이기적인 본성의 자식들이다. 

이기심은 결국 관계를 무너뜨리고 망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인간의 이기심을 폭로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잇는 역할을 하시는 분이 지극히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죽음을 죽으신 예수님이시다. 

이제 그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다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반역하기 전의 아담과 하와가 누리던 그 복을 다시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오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계획은 거기에 멈추지 않으신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이 거대한 비전을 보여준다. 

때가 차면,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히 무르익으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최고 통치자로 두고 통일시키실 것이다. 

그날을 기다린다. 

예수님이 온 우주의 왕권을 가지고 완전히 통일시키러 오시는 그 날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으로 오늘을 산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예수님 안에 하나되게 하신 하나님, 

예수님을 통해 연결되고 연합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에게 원래 주시고자 했던 그 축복을 예수님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시켜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감사가 끊어지지 않게 하소서.

특히 예수님을 통해 하늘과 땅에 모든 것들이 통일되게 하신다는 그 계획이 실현되는 것을 눈으로 보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도처에 널린 갈등과 싸움과 전쟁과 죽음을 멈추게 하시고, 주님 안에 하나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총선 이후에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정치권은 국민들의 민의를 잘 받들어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나도록 역사하소서. 

총선으로 집중된 생각을 다시 펼쳐서 고통받고 고난 속에 있는 사람들을 살피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이끄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4월 09일 화요일

 

여는 기도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1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2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3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4 각 사람은 자기 일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에게는 자랑거리가 있더라도,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5 사람은 각각 자기 몫의 짐을 져야 합니다.

 

메시지

여러분은 저마다 창조적으로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5절). 

 

[오늘의 묵상]

공동체에서 죄를 다루는 과정을 보면, 그 공동체의 성숙도를 알 수 있다. 

죄에 대해서는 엄격하되, 사람에 대해서는 자애로와야 한다. 

바울은 두 가지를 주문한다. 

하나는 바로잡기다. 

죄에 대해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 

죄가 계속 흘러가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죄악이 죄악이라는 사실이 공표되어야 하고, 그 죄악이 교정되어야 한다.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온유함 마음이다. 

죄를 지은 형제 자매를 대하는 태도는 온유함이다. 

죄를 바로잡기 위해 냉철하게 판단하고 단호하게 행동해야겠지만, 

형제 자매에 대해서는 온유함으로 일관해야 한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래서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그것이 공동체를 살리고, 하나님 나라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바로잡기를 위해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가 있다. 

1) 성령을 따라, 2) 자기를 살펴서, 3) 유혹에 빠지지 말기

이렇게 세 가지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이 모든 과정에 중심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분이시며, 사랑으로 이끄시고, 분별력을 제공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인도하심 없이 인간적 판단과 세속적 시스템에 기댄다면, 공동체는 분열과 갈등이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그분의 인도하심을 좇아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연히 자기를 살피게 된다. 

사탄의 공격은 끊이지 않는다. 

성령님의 조명하심 속에서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결국 유혹에 빠지고, 자신도 흑화된다. 

 

자신을 살피는 과정에서 우리는 죄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짐을 져 줄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이웃 사랑이라는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죄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은 사실, 죄로 인한 피해자 뿐 아니라 그 주변 사람, 가해자의 주변 사람, 그리고 심지어는 가해자까지 포함된다. 

이 모든 형제 자매들의 짐을 대신 져 줄 수 있는 사랑의 태도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렇게 죄의 문제를 다루다보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심판자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무슨 벼슬을 하고 있는 것처럼, 어떤 특별한 권위를 받은 것처럼 스스로를 여긴다. 

바울은 그 유혹도 이기라고 말하고 있다. 

이게 자기의 몫이다. 

자랑할 게 아니라, 묵묵히 자기를 몫을 감당해 나가는 것이다. 

 

사실 이 기록은 바울 자신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고, 

하나님이 바울에게 적용하도록 주신 말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바울은 그동안 갈라디아 교인들의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온유하라고 했지만, 그는 이 작은 편지에 갈라디아 교인들이 어리석다고 표현한 적도 있었다. 

죄를 다루기 위한 그의 노력은 처절하고 간절하고 절박하다. 

그 스스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한다.

죄와 문화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문화 자체가 죄는 아니나 죄된 문화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날까롭게 분별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다. 

그리고 죄와 싸우기 위해 처절하고 간절하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바울이 그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요청한다. 

 

[오늘의 기도]

소중한 권면들을 던져주시는 하나님, 

오늘도 주님의 권면과 방향설정에 대해 듣습니다. 

우리가 갖추어야 할 태도에 대해 알게 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죄를 분별하고 죄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되 온유한 마음으로 하게 하소서. 

강팍함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제 자신을 잘 돌아보게 하소서. 

바울이 보여주었던 방법을 참조하게 하시되, 그 방법 자체를 절대화 하지 않기 원합니다. 

절대적 기준은 우리 주님임을 이시간 다시 고백합니다. 

사람을 사랑하게 하시고, 사람의 회복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