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3월 06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1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임금님에게 기름을 부어,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세우게 하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2 ‘만군의 주가 말한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한 일 곧 길을 막고 대적한 일 때문에 아말렉을 벌하겠다.3 너는 이제 가서 아말렉을 쳐라. 그들에게 딸린 것은 모두 전멸시켜라. 사정을 보아 주어서는 안 된다.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젖먹이, 소 떼와 양 떼, 낙타와 나귀 등 무엇이든 가릴 것 없이 죽여라.’”
4 사울이 백성을 불러모으고 들라임에서 그 수를 헤아려 보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었다. 유다에서 온 사람도 만 명이나 되었다.5 사울은 아말렉 성읍에 이르러서, 물 마른 개울에 군인들을 매복시켰다.6 사울이 겐 사람들에게 경고하였다. “당신들은 어서 거기에서 떠나시오. 내가 아말렉 사람들을 칠 때에, 당신들을 함께 치지 않도록, 그들 가운데서 떠나시오. 당신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올라올 때에, 그들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들이오.” 그러자 겐 사람들이 아말렉 사람들 가운데서 빠져 나갔다.7 그런 다음에 사울은, 하윌라에서부터 이집트의 동쪽에 있는 수르 지역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쳤다.8 아말렉 왕 아각은 사로잡았고, 나머지 백성은 모조리 칼로 쳐서 없애 버렸다.9 그러나 사울과 그의 군대는, 아각뿐만 아니라, 양 떼와 소 떼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것들과 가장 기름진 짐승들과 어린 양들과 좋은 것들은, 무엇이든지 모두 아깝게 여겨 진멸하지 않고, 다만 쓸모없고 값없는 것들만 골라서 진멸하였다.
10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11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이 후회된다. 그가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사무엘은 괴로운 마음으로 밤새도록 주님께 부르짖었다.
주석
2절. ‘아말렉 사람’은 예부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큰 위협 거리였다. 그들은 특히 이스라엘 쪽 국경을 공격해 농장을 습격하고 가축을 약탈하는 야만적인 유목민이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단호한 조치가 필요했다(IVP 성경주석, 423쪽).
[오늘의 묵상]
* 후회하시는 하나님
후회하시는 하나님은 충격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후회하시는가?
아무리 이렇게 물어봐도 소용없다.
실제로 후회하시기 때문이다.
죄악을 저지르는 사람들 때문에 그들을 창조한 것을 그들을 보존한 것을 후회하셨다.
창세기 6:5-6_주님께서는 ,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다.
아담과 하와의 죄악을 보시면서, 노아 시대 인류의 죄악을 보시면서, 홍수 이후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후회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은 사울 왕을 세운 것을 후회하시고 계시다.
항상 선하고 완전하고 변함없으신 그분이 어떻게 후회하시는가?
그래서 충격이다.
생각해보면,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의 마음이 바뀌는 역사다.
하나님의 원래 계획과 어긋나는 역사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완전하시다는 명제에서 시작하지 말고, 성경 이야기 그 자체에서 뽑아낸 진리는 “하나님은 변한다”이다.
그분의 마음과 생각과 계획이 바뀐다.
크게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하려 했으나 그들의 불손종으로 그들을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로 보내신다.
이건 원래 계획에는 없는 부분이었다.
작게는 요나서에 등장하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를 보시고 그들을 진멸하실 계획을 바꾸신 사건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처럼 사울 왕을 세워두고서는 그의 불순종을 보시고 후회하시는 장면도 있다.
이렇게 변하시는 하나님을 고정된 큰 기둥으로 인식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그분은 갈대처럼 흔들리는 분이시다.
그분은 바람과 파도를 타고 항해하시는 분이시다.
그렇다고 그분에게 변하지 않는 부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분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1) 인간을 사랑하시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이 증명한다.
2)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시고 돌보시고 통치하신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그분의 돌봄이 없다면 이 세계는 유지될 수 없다.
자연의 불변의 상수는 과연 누가 만들었는가?
조금이라도 오차가 있었다면 이 우주는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중력상수, 원주율, 프랑크 상수, 빛의 속도…..
물리학자가 아니니 자세한 것은 모르나, 변하지 않는 숫자가 우주와 물리 세계를 떠받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난 신앙인으로서 이런 상수의 존재는 우주를 붙드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언한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변하는 하나님, 변하지 않는 하나님.
이 두 가지를 이해하는 것이 내게 큰 도전이었다.
마치 구신약 사이에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변하시는 것 같다
구약에서는 대체로 즉각적이시지만, 신약에 와서는 과거보다 더 오래 기다리신다.
그래서 신약을 은혜시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하면 구약도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내의 정도 차이가 있다 정도로 정리하는 것이 정확하다.
하나님이 내 삶에 대해 실망하시고 후회하신다는 생각만 해도 소름돋고 매우 슬프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혹시 나에대해 실망하신다면 그 충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의 감정은 그분이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끝까지 나를 대해 주실 것을 믿는 것으로 향한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에서 버림 받은 사람이 있지 않았는가?
바로 가륫 유다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그분의 뜻에 맞게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다.
그렇다고 두려움에 떨면 안되는 이유가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이자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과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지금도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 때문에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과 순종하는 마음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오늘의 기도]
전통적인 생각의 흐름 안에 갇히지 않고 싶습니다.
성경으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모든 정보를 잘 모으고 싶습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깊이 알아가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이 모든 과정을 잘 거칠 수 있도록 도우소서.
혼란한 시기, 무조건 닫아 잠근다고 해결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저의 신학의 실험실이 진실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이끄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냇가에 심은 나무 > 사무엘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상 15:32-35_마음이 상한 사무엘 (0) | 2025.03.11 |
---|---|
삼상 15:12-23_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0) | 2025.03.07 |
삼상 14:36-46_서두르는 사울, 요나단의 위기 (0) | 2025.03.04 |
삼상 14:16-23_머뭇거리는 사울 (0) | 2025.02.28 |
삼상 14:8-15_우리에게 넘겨 주셨다는 징조 (1) | 2025.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