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23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1 다윗이 부하들과 함께 사흘 만에 시글락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아말렉 사람이 이미 남부지역과 시글락을 습격하고 떠난 뒤였다. 그들은 시글락에 침입하여 성에 불을 지르고,2 여자를 비롯하여, 그 성읍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어린 아이나 노인 할 것 없이 사로잡아,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 끌고 갔다.3 다윗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 성읍으로 들어와 보니, 성은 불타 버렸고, 아내들과 아이들이 모두 사로잡혀 갔다.4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목놓아 울었다. 모두들 더 이상 울 힘이 없어 지칠 때까지 울었다.5 다윗의 두 아내인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인 아비가일도 사로잡혀 갔다.6 군인들이 저마다 아들딸들을 잃고 마음이 아파서, 다윗을 돌로 치자고 말할 정도였으니, 다윗은 큰 곤경에 빠졌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믿는 주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였다.7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말하였다. “어서 나에게 에봇을 가져다 주시오!”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 가져오니,8 다윗이 주님께 문의하였다. “제가 이 강도들을 추격하면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틀림없이 따라잡고, 또 틀림없이 되찾을 것이니, 추격하여라!”

 

1. 아말렉의 공격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장정들은 블레셋 대 이스라엘 전쟁에 다 나갔다. 

다윗을 따랐던 사람들의 가족들만 시글락에 남았다. 

아말렉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민족은 약자를 공격하는 것이 특기다. 

과거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행렬 뒤에 쳐진 연약한 사람들을 공격했었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했다. 

아말렉은 전투력이 없는 사람들을 붙잡아 자신들의 노예로 삼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다윗 및 병사들이 없는 틈을 타 시글락을 공격한 것이다. 

 

아말렉의 비열한 웃음 소리가 들린다. 

어린 아이들과 부녀자와 노인들을 끌고 가면서 윽박지르고 때리고 저주한다. 

다윗의 두 아내도 죽을 목숨이다. 

아비가일은 최근에 다윗과 결혼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그녀는 지혜와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무자비한 힘과 폭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전령을 보내 다윗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지만, 전령으로 쓸 사람조차 없었다. 

 

 

2. 다윗의 믿음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큰 전쟁을 피했고, 이제 집에서 쉬면 되는 줄 알았다. 

시글락이 저 멀리 보이는 지점에 도달했을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성을 봤을 떄,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상황을 빨리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다. 

성읍은 불타고 사람들은 사라졌다. 

말밥국 자국과 흔치 않은 방패의 문양을 보고 금방 알아챘다. 

아말렉이다!! 

곳곳에서 대성통곡이 들린다. 

연로하신 부모님, 아내, 그리고 어린 아이들까지 죄다 사라졌다. 

시체가 거의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우리 쪽에서 항복을 했고, 그래서 모두 사로잡혀 간 걸로 보인다. 

군인들 사이에 큰 동요가 일어난다. 

다윗을 저주하는 부하들이 늘기 시작한다. 

급기야는 다윗을 돌로 치자라는 말도 들린다. 

 

다윗이 이제까지 겪었던 그 어떤 위기보다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이 내부의 분열이다. 

신뢰를 잃은 장군은 곧 죽을 운명이다. 

다윗은 일생일대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을 더 굳게 의지한다. 

그 방법 밖에 없다. 

 

다윗이 점점 싫어진다. 

아니 그의 존재가 싫다가 아니라 그의 삶이 너무 고달프다. 

다윗처럼 살고 싶지가 않다. 

좀 평온하게 살 수 없는가!

 

지인의 딸은 벌써 세 번째 암 발견이다. 

고난의 연속이다. 

눈물이 가리다가 메마른다. 

그 아이와 부모의 마음에 흐느낀다. 

고통스런 현실이 차갑다.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탄식이 깊어진다. 

 

주님! 도우소서. 

 

[오늘의 기도]

가족을 송두리째 잃어 버릴 때 다윗과 그 부하들이 느꼈을 고통과 아픔을 상상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떤 위로를 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겨낼 힘을 공급하소서. 

 

대선이 코앞입니다. 

다시는 윤석열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나라를 지켜주소서. 

평화를 만들어 북한과 그 너머에 있는 땅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기를 꿈꾸게 하소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게 하소서. 

건강한 몸과 맘으로 이 세상을 섬기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5월 20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8 사울은 다른 옷으로 갈아 입고 변장한 다음에, 두 신하를 데리고 갔다. 밤에 그들이 그 여인에게 이르렀는데, 사울이 그에게 말하였다. “망령을 부르는 술법으로, 내가 당신에게 말하는 사람을 나에게 불러올려 주시오.”9 그러나 그 여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것 보시오. 사울이 이 나라에서 무당과 박수를 모조리 잡아 죽인 것은, 당신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당신은 나의 목에 올가미를 씌워, 나를 죽이려고 하십니까?”10 사울이 주님의 이름을 걸고 그 여인에게 맹세하였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걸고 맹세하지만, 당신이 이 일로는 아무런 벌도 받지 않을 것이오.”11 그 여인이 물었다. “내가 당신에게 누구를 불러올릴까요?” 사울이 대답하였다. “나에게 사무엘을 불러올리시오.”

 

12 그 여인은 사무엘이 올라온 것을 보고, 놀라서 큰소리를 질렀다. 그런 다음에, 그 여인은 사울에게 항의하였다. “사울 임금님이 몸소 오셨으면서도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13 왕이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네가 무엇을 보고 있느냐?” 여인이 사울에게 대답하였다. “땅 속에서 영이 올라온 것을 보고 있습니다.”14 사울이 그 여인에게 물었다. “그 모습이 어떠하냐?” 여인이 대답하였다.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겉옷을 걸치고 있습니다.” 사울은 그가 사무엘인 것을 알아차리고, 얼굴이 땅에 닿도록 엎드려 절을 하였다.15 사무엘이 사울에게 물었다. “당신이 왜 나를 불러올려 귀찮게 하시오?” 사울이 대답하였다. “제가 매우 궁지에 몰려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지금 저를 치고 있는데, 하나님이 이미 저에게서 떠나셨고, 예언자로도, 꿈으로도, 더 이상 저에게 응답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서, 이처럼 어른을 뵙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16 사무엘이 책망하였다. “주님께서는 이미 당신에게서 떠나 당신의 원수가 되셨는데, 나에게 더 묻는 이유가 무엇이오?17 주님께서는, 나를 시켜 전하신 말씀 그대로 당신에게 하셔서, 이미 이 나라의 왕위를 당신의 손에서 빼앗아 당신의 가까이에 있는 다윗에게 주셨소.18 당신은 주님께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소.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오늘 당신에게 이렇게 하셨소.19 주님께서는 이제 당신과 함께 이스라엘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실 터인데, 당신은 내일 당신 자식들과 함께 내가 있는 이 곳으로 오게 될 것이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군대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실 것이오.”

 

NASB

Samuel said, “Why then do you ask me, since the Lord has departed from you and has become your adversary(16절)?

 

주석 

9-10절. 사울이 무당의 도움을 받으려 하는 이야기의 의도는 강령술과 같은 풍습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과는 큰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없습니다. 다만 사울이 얼마나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IVP 성경주석, 434쪽).

 

1. 무당 1인칭

당황스럽다. 

갑자기 고위 관료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죽은 사람의 영을 불러 내라고 했다.

그건 이 나라에서 불법이다.

사울 왕이 무당과 박수를 모조리 잡아 죽였다. 

그 박해로 인해 나의 유일한 친구도 모진 고문 끝에 죽었다. 

알고 있는 모든 무당과 박수를 말하라고 했단다. 

나는 산속 깊이 피신했으며 겨우 살아 남았다.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이 사람들이 나를 찾아 왔단 말인가? 

 

우리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다.

그럼에도 박수와 무당의 역할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종종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길흉화복을 물었다. 

내가 가진 영험한 능력, 빠르고 정확한 직관을 가지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웠다.

하나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분은 즉각적으로 대답해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개개인의 소망에 대해 혹은 개개인의 길흉화복에 대해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를 어렵사리 찾아온 이들도 여러 가지 걱정이 있어서 왔을 것이다. 

가능하면 내 정체가 들키지 않아야겠지만, 이왕 이렇게 알려진 이상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당신들은 왜 나에게 올가미를 씌워 죽이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나를 해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그렇다면 믿을만 하다.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내가 당신에게 누구를 불러올릴까요?”

사무엘!!! 

이건 장난이 아니다!!!

 

2. 그 때나 지금이나

말씀을 보니 그 때나 지금이나 참 비슷하다. 

하나님 대신 우상을 찾거나 토속 신앙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왔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무당을 찾아가 점을 본다. 

영험한 신을 받았다고 하면서 사람들의 사주를 보고 길흉화복을 예언한다. 

사탄과 귀신이 좋아하는 것을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나의 세계관에서, 인간 영혼의 탈을 쓴 사탄의 졸개들이 신이랍시고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영혼은 죽어서 예수님 품에 안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은 사탄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그곳이 영원히 고통받는 불지옥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최소한 그곳은 사탄의 영향력 아래 있어서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를 입증해야 하는 곳이다. 

살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 공의, 평화, 이해가 넘치는 곳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몸의 부활이 일어나고 영혼과 몸은 다시 연결된다. 

나의 세계관은 현재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물론 사후 세계에 대해, 그리고 영혼에 대해 다양한 신학적 이론이 있는 것을 안다. 

사실 어떤 것도 증명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예수님이 하신 비유의 말씀을 가능하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비유가 실재를 100% 반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은 그 비유를 통해 사람들이 가져야할 세계관을 의도하셨다. 

 

무당들은 사탄들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영이 함부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많은 경우 사탄의 속임수라고 본다. 

사탄은 통계치를 가지고 미래를 내다본다. 

그리고 사람을 속여서 자신에게 예속시킨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려야 한다. 

그럼에도 사탄에게 속아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권사 장로라는 사람들이 그런 행위에 빠져 있다. 

통탄할 일이며, 사실 그런 경우 직분을 빼앗아야 하건만, 교회는 치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참으로 문제다. 

 

최근 윤석열이나 한덕수를 보면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정말 제멋대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에 치를 떤다. 

진짜 그리스도인의 출현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무당들도 구원해 주소서. 

그들이 더는 사탄에게 속아서 자기와 남을 다 속이는 행위를 멈추게 하소서.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게 하소서. 

성경 속에서 답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게 하소서. 

제멋대로 자기 맘대로 하나님을 재단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게 하소서. 

 

오늘의 만남 속에서도 즐거움과 의미가 넘치도록 이끄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참고 
기독교 신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이 땅에 머물며 떠돈다고 보지 않습니다. 대신, 죽은 자의 영혼은 하나님의 정하신 곳으로 간다고 믿습니다. 

 

전통적인 기독교 관점에서 죽음 이후 영혼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1. 죽음 직후: 영혼은 육체를 떠나 특정한 중간 상태(intermediate state)로 들어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의 영혼은 즉시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된 장소(낙원 또는 천국)로 옮겨져 최종 부활과 심판을 기다립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구절(누가복음 23:43) 등을 근거로 듭니다.

믿지 않는 자의 영혼은 심판을 기다리는 다른 장소로 간다고 봅니다.

2. 최종 부활 및 심판: 세상 끝날에 모든 사람이 육체와 함께 부활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3. 영원한 상태: 심판 결과에 따라 최종적으로 천국 또는 지옥이라는 영원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기독교 신학은 사람이 죽은 후 그 영혼이 이 땅을 떠돌아다니거나 산 자에게 나타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죽은 자와 관련된 현상들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됩니다. 예를 들어, 사무엘상 28장에서 사울이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통해 사무엘의 영을 불러낸 사건 같은 경우는, 그것이 정말 사무엘의 영이었는지, 혹은 다른 영적인 존재(예: 악한 영)의 활동이었는지에 대해 신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며, 일반적으로 이러한 신접한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부정적으로 봅니다. 

 

결론적으로, 기독교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구천을 떠돈다'는 개념을 성경적 가르침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대신 영혼은 죽음 이후 즉시 정해진 상태로 옮겨진다고 가르칩니다.

 

2025 05 16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8 바로 기간에,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니면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습격하곤 하였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수르 광야와 이집트 국경선에 이르는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9 다윗은, 그들이 사는 지역을 때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람도 살려 두지 않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옷을 약탈하였다. 약탈물을 가지고 아기스에게로 돌아가면,10 아기스는 으레그대들이 오늘은 어디를 습격하였소?” 하고 묻고, 그럴 때마다 다윗은, 유다의 남쪽 지역을 털었다느니, 여라무엘 족속의 남쪽 지역을 털었다느니, 또는 족속의 남쪽 지역을 털었다느니, 하는 식으로 대답을 하곤 하였다.11 다윗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죽이고 가드로 데려가지 않은 것은, 그들이 다윗의 정체를 알아, 다윗이 그런 일을 하였다고 폭로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지역에 거주하는 동안, 언제나 이런 식으로 처신하였다.12 아기스는 다윗의 말만 믿고서,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서 그토록 미움받을 짓을 하였으니, 그가 영영 자기의 종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 그럴 즈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 쳐들어가려고 모든 부대를 집결시켰다. 그러자 아기스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귀관이 나와 함께 출정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아오. 귀관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직접 출정하시오.”2 다윗이 아기스에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종이 무엇을 있는지, 임금님이 아시게 것입니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좋소! 귀관을 나의 종신 경호대장으로 삼겠소.”

 

주석

8. 블레셋 가드의 성읍이었던 시글락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했지만, 다른 나라의 국경과도 가까웠습니다. 다윗은 이런 지리적 입지를 이용해 유대의 대적이자 블레셋의 대적이기도 그술, 기르스, 아말렉 등을 습격했습니다(IVP 성경주석, 432).

 

1. 그술 사람

다윗의 군대가 쳐들어 온다. 

그런데 방향이 영 다르다. 

이스라엘에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 땅에서 올라오고 있다. 

척후병과 세작들을 통해 알아본 결과 다윗은 현재 블레셋 가드 지역 시글락에 머물고 있단다. 

다윗이 블레셋에 투항을 했단다. 

믿을 수가 없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철천지 원수였다. 

어떻게 갑자기 블레셋의 아기스에게 투항했단 말인가? 

문제는 그가 이스라엘서 오든, 블레셋에서 오든 전투 후에 한 사람도 남기지 않는다는 첩보다. 

욕이 나온다. 

전투를 하자는 건지, 말살을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이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다. 

끝까지 항전할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죽으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소문이 무섭긴 하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성읍을 떠났다. 

전의를 상실한 사람들이 산속으로 피신했다. 

아예 다른 성읍으로 도망하기도 했다. 

남은 사람으로 과연 전투를 수행 할 수 있을까? 

도대체 다윗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무자비한 행동을 한단 말인가? 

다윗의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신이신가? 

왜 우리를 이렇게 괴롭시는가? 

 

2. 어려운 질문

오늘 본문의 핵심 메시지는 다윗의 처신일 것이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그러나 그술, 기르스, 아말렉 사람들 입장에서는 다윗과 하나님이 너무 미울 것 같다. 

도대체 왜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느냐는 질문이 터져 나올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오래 전에 마무리 되었고, 지금은 사사시대를 지나 왕정으로 이어졌으니, 이방 민족들을 이렇게까지 몰살 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로 받아들이기가 솔직히 어렵다. 

 

다윗은 아기스에게로 가지 말아야 했다. 

모세처럼 광야로 들어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딸린 식구들과 부하들의 식솔들도 있으니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겠으나, 자신들이 살려고 무수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예수님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이다. 

예수님은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고 하지 않으셨나! 

다윗이 예수님의 작은 모델이라는 말도 지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다윗을 통해 우리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그의 정직함, 하나님에 대한 열심, 잘못을 회개함 등이다. 

그러나 절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할 것도 있다. 

분노, 살상, 간음, 생존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음 등이다. 

차라리 과거 아브라함처럼 과거 야곱처럼 멀리 이주하는 것이 답이 아닐까? 

팔레스타인을 넘어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는 것이 답이 될 수도 있다. 

전쟁과 살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모험으로 그의 열정을 바꿀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으니, 나중에 사울이 죽은 후에 다시 돌아오면 된다. 

한동안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땠을까? 

 

[오늘의 기도]

비가 옵니다. 

질문도 많고 의문도 깊어집니다. 

하나님을 이해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기에 당신이 주신 말씀들 속에 계속 거합니다. 

그러니 질문도 생기는 겁니다. 

주님, 당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을 더 사랑하게 하소서. 

 

구약의 단편적인 에피소드에서 하나님 당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구약의 편집자들이 다윗 편에서 이야기를 구성했는데, 정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 분별력을 허락하소서. 

어떤 위대한 인물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왜 다윗에게 당신의 성전 공사를 허락하지 않았는지 점점 이해가 됩니다. 

 

쏟아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주님을 더 깊이 생각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가 그런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 05 15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 다윗이 혼자서 생각하였다. “이제 이러다가, 내가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붙잡혀 죽을 것이다. 살아나는 길은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망명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사울이 다시 나를 찾으려고 이스라엘의 땅을 뒤지다가 포기할 것이며, 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게 것이다.”

 

2 그래서 다윗은 일어나서, 자기를 따르는 부하 육백 명을 거느리고, 가드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넘어갔다.3 그리하여 다윗은 가드에 있는 아기스에게로 가서 거처를 정하였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저마다 가족을 거느리고 살았는데, 다윗이 거느린 아내는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인 아비가일이었다.4 다윗이 가드로 도망갔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전하여지니, 그가 다시는 다윗을 찾지 않았다.5 다윗이 아기스에게 간청하였다. “임금님이 나를 좋게 보신다면, 지방 성읍들 가운데서 하나를 나에게 주셔서, 내가 곳에 정착할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종이 어떻게 감히 임금님과 함께, 임금님이 계시는 도성에 수가 있겠습니까?”6 그러자 아기스는 당장 시글락을 다윗에게 주었다. 그래서 시글락이 날까지 유다 왕들의 소유가 되었다.7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지역에서 거주한 기간은 달이었다.

 

주석 

1. 600명의 군사와 함께했던 다윗은 이상 오래 숨어있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스라엘 근처의 다른 나라들 가운데 사울과 동맹관계를 맺은 나라로 피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현재 다윗의 유일한 선택은, 사울과 적대관계에 있었던 블레셋 편에 서는 것이었습니다(IVP 성경주석, 433).

 

1. 가드 아기스 

나 아기스는 최근 기이한 일을 경험했다. 

우리의 적국인 이스라엘의 다윗 장군이 군사 600명을 이끌고 투항한 것이다. 

살려달라고 찾아왔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거다.

지금 이스라엘은 내부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사울 왕은 자신의 최고의 장수 다윗을 죽이려들고 있다. 

 

사실 나로서는 다윗을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껄끄러웠다. 

다윗 하면 우리의 위대한 장수였던 골리앗이 떠오른다. 

골리앗은 이곳 가드 출신이었다. 

블레셋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탁월한 장수였는데, 청소년에 불과한 어린 다윗에게 죽임을 당했다.

가드 사람이라면 그 사건을 모르지 않는다. 

게다가 몇년 전에 저 다윗이라는 작자가 미친 척하며 우리 곁에 기거했던 적도 있었다. 

이만하면 우리가 그를 죽일 이유도 충분하다. 

그는 우리를 속였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잘 이용하면 우리가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사울과 다윗은 싸우고 있다. 

다윗과 600명의 군사가 사울의 군대와 전투를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순풍에 돛단배다. 

다윗과 그의 무리들은 지금 죽을 각오를 하고 우리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들에게 남은 옵션이 별로 없다. 

우리가 갑이다. 

 

블레셋의 신, 다곤님이 드디어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다. 

 

그런데 다윗이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지방 성읍을 하나 달라고 한다. 

신하, 참모, 책사들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많이 했다. 

다윗을 우리 편으로 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나도 그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다윗을 확실히 우리 편으로 묶어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식솔과 군사들도 기본적인 삶의 유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땅이 필요하다. 

시글락이 적절해 보였다. 

현재 살고 있는 시글락 백성들에겐 야속한 일이겠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다른 성읍으로 이주하는 것이 낫겠다. 

 

선물인 듯 골칫거리다.

시간이 지나 다윗과 그의 군사들을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 아기스에게 하나님은?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블레셋의 신인 다곤을 섬겼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참으로 무서운 신이다. 

과거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왔다가 크게 고생한 적이 있었다. 

아기스는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다곤과 여호와가 제대로 붙으면 다곤이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윗이 군사들을 이끌고 왔을 때, 아기스는 번민이 있었을 것이다. 

많았겠지만, 종교적인 이유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자신은 다곤을 섬기고, 다윗은 여호와를 섬긴다. 

철저하게 다윗을 검증했더라면, 다윗과 그의 군사들에게 여호와를 버리라고 강요했을 것이다. 

아기스는 그것까지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점이 의아하다. 

적군의 장수가 항복하고 전향할 때는 그의 신념을 바꾸라고 특히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종교적 신념을 바꾸라고 말했을 것 같은데, 아기스는 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실수이며, 또한 하나님의 역사일 게다. 

하나님이 다윗을 돌보시는 방법 중에 하나로 보인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아기스에게 충고의 메시지다. 

다윗을 바꾸지 못한다면 자신과 자신의 나라가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은 블레셋도 회개하길 바라셨다. 

요나 시대의 앗수르에 대해서도 그러하셨듯이, 다윗 시대의 블레셋에게도 그러셨을 것이다.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여주셨는데,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들의 신이 더 위대할 거란 착각을 하고 있다. 

그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성경의 주변 인물에게 집중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주변 인물, 그래서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존재는 중요하며 심각했다. 

그들도 성경 이야기, 그 거대한 흐름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그런 작고 감춰진 이야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변 인물에게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오늘의 기도 

모든 자들에게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는 겸손한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세상의 왕들은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을 의지하도록 인도하소서. 

 

다윗의 처량한 신세가 어찌보면 아기스에게 영적인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다윗으로부터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배웠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연약한 사람에게 배워야 합니다. 

겸손하게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응시하고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주소서. 

 

약한 자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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