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02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7 마침내 사울이 일어나서 굴 속에서 나가 길을 걸어갔다. 

8 다윗도 일어나 굴 속에서 밖으로 나가서, 사울의 뒤에다 대고 외쳤다. “임금님, 임금님!” 사울이 뒤를 돌아다보자,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9 그런 다음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은 어찌하여, 다윗이 왕을 해치려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만 들으십니까? 

10 보십시오, 주님께서 오늘 저 굴 속에서 임금님을 나의 손에 넘겨 주셨다는 사실을, 이제 여기에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임금님을 살려 보내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임금님을 아꼈습니다. 절대로, 손을 들어 우리의 임금님을 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임금님은 바로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11 아버지,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임금님의 겉옷자락을 보십시오. 내가 이 겉옷자락만 자르고, 임금님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시면, 나의 손에 악이나 죄가 없으며, 임금님께 반역하거나 잘못한 일이 없다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임금님은 나를 죽이려고, 찾아다니십니다. 

12 이제는 주님께서, 나와 임금님 사이에서 재판관이 되시고, 나의 억울한 것을 주님께서 직접 풀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나의 손으로는 직접 임금님께 해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13 옛날 속담에 ‘악인에게서 악이 나온다’ 하였으니, 나의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4 이스라엘의 임금님은 누구를 잡으려고 이렇게 나오셨습니까? 임금님이 누구를 잡으려고 쫓아다니십니까? 한 마리 죽은 개를 쫓아다니십니까? 한 마리 벼룩을 쫓아다니십니까? 

15 그러므로 주님께서 재판관이 되셔서, 나와 임금님 사이를 판결하여 주시기를 빌겠습니다. 주님께서 굽어보시고 나의 억울함을 판결하여 주시며, 나를 임금님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를 빌겠습니다.”

 

주석

14절. ‘죽은 개’라는 표현은 여러 고대 근동 문서에 등장합니다. 한 사람이 상대방 앞에서 자신을 겸손히 낮출 때 즐겨 쓰는 표현이었습니다(IVP 성경배경주석-구약, 449쪽).

 

[오늘의 묵상]

 

1. 닫힌 귀 

사울은 한쪽 편의 사람들 이야기만 듣고 있다. 

이를 닫힌 귀라고 할 것이다. 

모름지기 지도자라면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특히 서로 반대되는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모함하는 이야기만 듣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다윗을 시기하고 있음을 들켰기 때문일 것이다. 

간신들은 지도자의 마음의 약점을 귀신 같이 찾아낸다. 

그 틈을 이용하여 자신의 잇속을 차리려는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려고 한 적이 없다. 

도리어 사울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걸고 전쟁터로 향했던 자다. 

사울의 시기심이 다윗의 목숨을 구하는 있다. 

 

윤석열은 한쪽 귀를 막고 정치를 했다. 

야당의 목소리를 완전히 외면했다. 

야당 대표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그와의 대화를 거부했다. 

결과는 작년 4.10 총선 참패, 그리고 여소야대. 

그러니 자기가 원하는 정책을 펼 수 없게 되었고, 급기야는 위헌적 불법 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지금의 기득권들은 그 기득권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지귀연 중앙지법 판사는 사법부 엘리트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최후 보루처럼 행동하고 있다. 

어느 단체 혹은 조직이나 지도자가 편협하여 절차와 규정을 어기고 어거지로 밀어부치면 큰 화를 당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특히 공동체의 지도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공평한 추다. 

편향된 결정을 내리는 자를 싫어하신다. 

권력을 가진 엘리트들의 작은 편향성은 서민들의 고혈을 흘리게 한다. 

 

2. 악인에게 악이 나온다.

당연한 속담이 있다. 

악인에게 악이 나온다. 

악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기보다 악인으로부터 세상에 표출된다. 

사탄은 그 자체로 세상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사탄은 사람을 통해 세상을 어지럽힌다. 

 

다윗은 악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자신이 직접 죽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사실, 이쯤되면 사울을 처단해도 될 일이지만, 다윗은 거부했다. 

그의 부하들은 다윗에게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라고 부추겼지만, 다윗은 얼굴을 돌렸다. 

악에 대한 자기만의 내적 기준이 분명해 보인다. 

다윗에게 결코 넘어서는 안되는 악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거였다. 

골리앗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할 때, 다윗은 분연히 일어섰다. 

하나님이 기름부어 공동체의 왕으로 세우신 사람을 자신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기준도 있었다. 

 

사람이 악한 귀신에게 속아 그에게 자신의 미래를 위임하면, 악이 이 세상에 더욱 편만해진다. 

합리적인 판단은 공동체의 규약으로부터 나온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일상에서 실천함이 옳다. 

하나님의 뜻은 그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위에, 사람을 더욱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경우에 확실성을 얻는다. 

기본을 무너뜨리면서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대리자인 양 행세하는 자들은 사탄에게 속고 있다. 

하나님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헌법과 법률이라는 일반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 

그 공동체 규약을 소중히 여기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기본을 갖춘 자다. 

그 위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게 된다.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더욱 헌신하는 특별한 부르심 말이다. 

션과 같은 사람이 그렇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여전히 내란 세력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기 싫어서 발악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힘을 얻지 못하도록 주께서 그들의 허황된 계획과 계략을 궤멸해 주소서. 

공화국의 헌법과 규정을 모두 자기 뜻대로 휘두르는 자들을 눈을 멀게 하소서. 

그들의 성대를 닫아 주소서.

그들의 키보드가 먹통이 되게 하소서. 

더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 시중에 떠돌아다니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4월 30일 수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19 십 사람 몇이 기브아로 사울을 찾아 올라가서 밀고하였다. “다윗은 분명히, 우리가 있는 호레스 산성 속에 숨어 있습니다. 바로 여시몬 남쪽에 있는 하길라 산 속에 숨어 있습니다.20 임금님이 지금 당장 내려가기를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를 잡아서 임금님의 손에 넘기는 일은, 저희가 맡아서 하겠습니다.”21 사울이 말하였다. “당신들이 나를 생각하여 그토록 정성을 보였으니, 주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를 바라오.22 당신들은 가서 빈틈없이 준비하시오. 그 자가 도망다니는 곳이 어디이며, 누가 어디서 그 자를 보았는지, 자세히 알아보시오. 내가 듣는 바로는, 그는 매우 교활하오.23 당신들은 그가 숨을 만한 모든 은신처를 자세히 살펴본 다음에, 틀림없는 정보를 가지고 나를 찾아오시오. 그러면 내가 당신들과 함께 가겠소. 그가 이 나라 안에 있기만 하면, 내가 유다의 마을들을 남김없이 다 뒤져서라도 그를 찾아내고야 말겠소.”

 

24 이리하여 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 광야로 떠나갔다. 이 때에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여시몬 남쪽의 아라바에 있는 마온 광야에 있었다.25 사울도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윗을 찾아 나섰다. 누가 이 사실을 다윗에게 알려 주니, 그가 마온 광야에 있는 바위로 내려갔다. 사울이 이 소식을 듣고, 곧 마온 광야로 가서 다윗을 추격하였다.26 이리하여 사울은 산 이쪽에서 쫓아가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산 저쪽에서 도망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급히 도망하고, 사울과 그의 부하들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을 잡으려고 포위를 하는데,

 

27 갑자기 전령 한 사람이 사울에게 와서, 블레셋 족속이 쳐들어왔으니, 어서 돌아가야 한다고 보고하였다.

28 사울은 다윗을 추격하다 말고 돌아가서, 블레셋 족속을 맞아 싸우러 나갔다. 그리하여 그 곳 이름을 셀라하마느곳이라고 부른다.29 다윗은 엔게디 산성에 올라가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주석

28절. 셀라하마느곳은 ‘도피의 바위’ 또는 ‘분리의 바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새번역 난외주).

 

[오늘의 묵상]

 

1. 밀고 

다윗이 숨은 곳을 알게 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일부는 사울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십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들은 어떻게 사울에게 밀고하게 되었을까? 

크게 두 가지일게다. 

하나는 정보가 차단되어 사울이 선이고 다윗이 악이라 판단한 사람들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많은 정보가 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사울을 편드는 사람들일 수 있다. 

전자는 무식한 것이며, 후자는 악독한 것이다. 

아무리 봐도 사울의 행위는 온당치 못하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싸워왔던 위대한 장군을 적으로 돌린 것은 사울이었다. 

시기심에 눈이 돌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이다. 

제대로 눈이 박힌 사람이라면 다윗이 무고하게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더는 고상한 사람이라 볼 수 없을 것 같다. 

온 세계가 보는 앞에서 불법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을 만든 사람은 어쩌면 정치 무관여층, 정치 무관심층일 것이다. 

최소한의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정보들 속에서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평소에 훈련을 해야 한다. 

영혼의 평안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공동체가 평안해야 한다. 

그러려면 외교, 안보, 그리고 정치를 살펴야 한다. 

그것이 스스로 부당한 밀고자가 되지 않는 길이다. 

 

2. 산을 뛰어넘다

체력은 위기의 순간에 큰 힘을 발휘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람은 기지와 체력에 의해 생사가 갈린다. 

지혜가 있어야 한다 .

무엇이 바른지 그른지 판단하고, 생존에 가장 적합한 방식의 길을 찾아야 한다. 

오래 생각하는 것은 평소에 하는 일이다. 

위기의 순간에는 빠른 판단력과 실행력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체력이 필요하다. 

체력이 없으면 걷고 뛰어야 할 때 할 수 없게 된다. 

 

다윗은 산을 뛰어 넘어 도망다니고 있다. 

쫓아오는 그룹의 인원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산이 포위되기 전에 포위망을 뚫을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러면 산을 뛰어넘을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다.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그는 가만히 앉아서 기도만 한 것이 아니었다. 

뛰면서 달리면서 몸을 숨기면서 산을 오르면서 암벽을 기어다니면서 기도했다. 

몸을 움직이며 기도하는 것, 이것이 다윗의 절박한 기도였다. 

이집트의 히브리 노예들이 기도가 가장 절실했던 것은 노동의 현장이었을 것이다. 

죽을 만큼 일해도 끝나지는 않는 노동 지옥 현장에서 몸을 움직이면서 살려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움직여라 그리고 기도하라. 

 

[오늘의 기도]

삶의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내 영혼의 만족만이 아니라 갈급한 자의 영혼의 만족을 위해 기억하고 기도하고 행동하게 하소서. 

 

종교성의 품에 숨어 현실의 피비린내를 간과하지 않게 하소서. 

철저히 현장의 모습을 보고, 그 소리에 귀기울이게 하소서. 

저의 한계와 부족함을 봅니다. 

나이가 들수록 편한것을 찾는 것에 만족하지 않게 하시고, 

도리어 불편해하는 사람들 속에서 불편함을 견뎌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생각, 말, 글, 행동이 이렇게 차이나는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5년 04월 29일 화요일

 

여는 기도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14 그리하여 다윗은 광야의 산성을 찾아다니며 숨어서 살았다. 그는 바로 십 광야의 산간지역에서 살았다. 그 동안 사울은 날마다 다윗을 찾았지만, 하나님이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 주지 않으셨다.15 그래서 사울이 다윗의 목숨을 노리고 출동할 때마다, 다윗이 그것을 다 알고서 피하였다. 다윗이 십 광야의 호레스에 있을 때에, 16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호레스로 다윗을 찾아와서,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도록 격려하였다. 17 그는 다윗에게 말하였다. “전혀 두려워하지 말게. 자네를 해치려는 나의 아버지 사울의 세력이 자네에게 미치지 못할 걸세. 자네는 반드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걸세. 나는 자네의 버금가는 자리에 앉고 싶네. 이것은 나의 아버지 사울도 아시는 일일세.”18 이리하여 이 두 사람은 다시 주님 앞에서 우정의 언약을 맺었다. 그리고 다윗은 계속 호레스에 머물렀으나, 요나단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주석

14절. 다윗은 그일라에서 벗어나 더 광활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을 찾아 남쪽으로 이동한다(IVP 성경연구주석 구약: 오경·역사서·시가서, 442쪽).

 

[오늘의 묵상]

 

1. 요나단의 격려 

다윗은 사울을 피해 숨어 다녔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피해다니는 삶은 얼마나 고달플까.

그 스트레스와 긴장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매일 매일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시간이었다. 

내 삶에 다윗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상당히 고통스럽고 스트레스풀한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3, 군대, 유학 첫 학기, 그리고 최근 직장에서의 경험은 고통스럽긴 했다.

그러나 생존의 위협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 

고통의 시기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잘 건너왔다. 

그분께 항상 감사드린다. 

 

다윗의 고단한 삶의 한 줄기 빛 같은 존재가 있었다. 

바로 친구 요나단이었다.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지만, 요나단은 다윗을 끝까지 지키려고 하고 있다. 

요나단은 다윗이 숨어 있는 곳을 찾아냈다. 

이 점이 신비롭다. 

다윗이 꽁꽁 숨었을 텐데 요나단은 다윗을 잘 찾아냈다. 

둘 사이의 연락책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다윗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안한 과정이었다. 

그동안 요나단이 보여준 우정은 신뢰하지만, 요나단에게 간첩, 세첩이 붙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윗은 요나단과 연락을 주고 받았으며, 자신의 위치를 노출했다. 

그리고 서로 만났다. 

만나서 저들의 첫 마디는 무엇이었을까? 

요나단은 다윗의 안부를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으로 인해 사울의 미움을 사고 있는 요나단의 안녕을 물었을 것이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묻어 있었을 것이다. 

 

요나단은 다윗을 격려한다. 

“하나님을 굳게 의지 하게나.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쭉 하나님을 신뢰하게.”

요나단의 신앙도 상당하다. 

믿음의 친구를 두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안다. 

믿음의 친구가 없이 사는 것은 사막에 홀로 지내는 것과 같다. 

온통 죽음의 위협 뿐인 세상에서,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파괴하려는 사탄의 무차별적인 공격에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믿음의 친구가 절실하다. 

 

2. 우정의 언약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우정의 언약을 맺었다. 

누구 앞에서 그 언약을 맺고 있는가? 

다름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앞에서 우정의 언약을 맺고 있다. 

이것이 언약의 핵심에 속한다. 

언약의 내용도 중요하다. 

서로간의 약속의 내용을 나누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언약의 보증, 증인이 누군가이다. 

우리는 자기를 믿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을 속인다. 

결심 만큼 변심도 빠르다. 

작심 삼일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내 자신을 온전히 믿을 수 없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증언자로 세워야 한다. 

그분이 보증을 서 주셔야 한다. 

그것은 나의 약속을 내가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연약해진 상황에서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겠다는 결심의 표현이다.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자기 한계의 표현이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겸손의 표현이다. 

겸손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나락으로 떨어진다. 

 

[오늘의 기도]

언제나 도우시는 주님, 

저의 연약함을 도우소서. 

저의 부족함을 도우소서. 

주님의 도움으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끄소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두렵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너무 힘을 많이 주지도, 그렇다고 너무 나태하지도 않게 하소서. 

오직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즐겁게 저의 할 일을 감당하게 하소서. 

제게 주신 사명을 다시 깨닫게 하소서. 

 

학사운동을 다시 기억합니다. 

세상 속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쳐나갈 주님의 백성들이 필요합니다. 

그 운동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앞장서서 총탄을 몸으로 막고 있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그들이 외롭게 쓰러지지 않도록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요나단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5년 04월 23일 수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11 그러자 왕은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은 물론, 놉에 있는 그의 집안 제사장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모두 왕에게로 나아왔다.12 사울이 호통을 쳤다. “아히둡의 아들은 똑똑히 들어라!” 아히멜렉이 대답하였다. “임금님, 말씀하십시오!”13 사울이 그를 꾸짖었다. “네가 왜 이새의 아들과 함께 공모하여 나에게 맞서려고 하였느냐? 네가 왜 그에게 빵과 칼을 주고, 왜 그가 하여야 할 일을 하나님께 물어서, 그가 오늘날과 같이 일어나서 나를 죽이려고 매복하도록 하였느냐?”14 그러자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임금님의 모든 신하들 가운데서 다윗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더구나 그는 임금님의 사위인 동시에 경호실장이며, 이 궁중에서 매우 존귀한 사람이 아닙니까?15 그가 할 일을 하나님께 여쭙는 일을, 제가 오늘에 와서 처음으로 시작한 것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님은 이 종이나 이 종의 온 집안에 아무 허물도 돌리지 말아 주십시오. 이 종은 이런 일은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16 그런데도 왕은 이런 선언을 내렸다. “아히멜렉은 들어라. 너는 어쨌든 너의 온 집안과 함께 죽어 마땅하다.”17 그리고 왕은 자기 곁에 둘러 서 있던 호위병들에게 명령하였다. “너희는 당장 달려들어 주님의 제사장들을 죽여라. 그들은 다윗과 손을 잡고 공모하였으며, 다윗이 도망하는 줄 알았으면서도 나에게 귀띔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의 신하들은 손을 들어 주님의 제사장들을 살해하기를 꺼렸다.18 그러자 왕이 도엑에게 명하였다. “네가 달려들어서 저 제사장들을 죽여라.” 그러자 에돔 사람 도엑이 서슴없이 달려들어서 그 제사장들을 죽였는데, 그가 그 날 죽인 사람은 모시 에봇을 입은 제사장만도 여든다섯 명이나 되었다.19 사울은 제사장들이 살던 성읍 놉에까지 가서, 주민을 다 칼로 쳐죽였다. 그는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젖먹이, 소 떼나 나귀 떼나 양 떼를 가리지 않고, 모두 칼로 쳐서 죽였다.

주석
11절. 놉은 실로의 성소가 파괴된 이후, 실로를 대체하는 주요한 성소였다(IVP 성경주석, 430쪽).

[오늘의 묵상]
1. 왕에게로 가는 길 
걷기는 언제나 사색적이다. 
사울 왕이 아히멜렉을 비롯한 그 집안 제사장들을 모두 불러냈다. 
갑작스런 왕의 호출에 여든다섯 명의 제사장들은 왕에게로 나아간다. 
그들이 거기까지 가는 길은 무수한 생각과 말들로 정신이 없다. 
죽음을 직감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저 낙관적인 태도로 걸어가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가! 
그 길은 생각의 길이었다. 

권위자의 갑작스런 호출은 부담스럽고 그렇기에 숱한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권위자 뿐 아니라 내 삶에 영향을 주는 어떤 사람도 그의 호출로 인해 나는 혼란스러워진다. 
선하고 유익한 영향을 받게 될지, 악하고 손해되는 영향을 받게 될지 분명치 않으면 더욱 생각이 많아진다. 
나를 부른 그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과 나의 관계를 떠올리고, 지금 어떤 상황인지 분석한다. 

사울 같은 왕이 아니라 참된 왕의 호출을 받고 싶다. 
자기 유익을 위해 망상에 빠져 사람들을 해하고 죽이는 자의 호출은 피하련다. 
만나면 언제나 편안하고 나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내가 하는 일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자의 호출은 기쁘다. 
나에게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2. 줄을 잘못 탄 도엑
하나님의 명령으로 불경한 자들을 처단했던 그룹이 있었다. 
바로 레위 지파였다. 
그들은 줄곧 제사장 지파로 선택되었다. 
그러나 도엑은 사울 왕의 이기적인 동기와 망상의 줄을 잡았다. 
사울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몰살시켰다. 
85명. 
한 명 한 명 살해할 때마다 그 피를 뒤집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다. 
제사장들의 원한이 쌓인다. 
도엑의 살해는 언뜻 가나안 정복의 진멸전쟁 헤렘을 닮았다. 
씨를 말리는 인종청소. 
터를 없애는 박멸청소. 

사울은 정작 했어야 했던 아말렉 사람들에게는 하지 않고 자신의 동족 그것도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죽이는 일을 감행한다. 
그는 정상이 아니다. 
사탄에게 조종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배신자와 반역자로 낙인 찍어 하나님의 제사장들의 삼족, 칠족을 멸하고 있다. 
고대 사회 권력자들이 자신의 정적을 죽이는 방식을 그대로 닮았다. 
지파 동맹 공동체 때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 명 절대 권력자에 의해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몰살당하고 있다. 

레위지파가 될 것이가? 도엑이 될 것인가? 
베드로가 될 것인가? 가륫 유다가 될 것인가? 
줄을 제대로 타야 산다.

신천지와 통일교의 뇌물을 먹은 윤석열과 김건희를 옹호하는 기독인들은 도대체 뭘 먹은걸까?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꿈은 사울의 그것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만민이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번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의 유익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고 구현하지도 못했습니다. 
스트레스풀한 비교의식에 휩싸여 결국 사탄에게 마음을 주고 말았습니다. 

주님, 주님의 꿈을 품게 하소서. 
주님의 라인에 서게 하소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제 기능을 다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공동체가 공동체다워지길 소망합니다. 
영혼은 말씀과 기도로 더욱 맑아 지고, 
육체와 정신은 달리기와 운동으로 더욱 건강해지게 하소서. 

우울증을 앓는 OO영 자매를 위해 기도합니다. 
호르몬의 분비를 조절해 주소서. 
우울의 긴 터널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하소서. 
가족들이 서로 힘을 합쳐 견뎌내게 하소서. 
남편 OOO 형제가 끝까지 사랑으로 돌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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