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4월 11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10 다윗이 거기를 떠나, 그 날로 사울에게서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다.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왕에게 보고하였다. “이 사람은 분명히 저 나라의 왕 다윗입니다. 이 사람을 두고서, 저 나라의 백성이 춤을 추며,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12 다윗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했다. 그는 가드 왕 아기스 옆에 있는 것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3 그래서 그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는 미친 척을 하였다. 그들에게 잡혀 있는 동안 그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여 성문 문짝 위에 아무렇게나 글자를 긁적거리기도 하고,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기도 하였다.14 그러자 아기스가 신하들에게 소리쳤다. “아니, 미친 녀석이 아니냐? 왜 저런 자를 나에게 끌어 왔느냐?15 나에게 미치광이가 부족해서 저런 자까지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왕궁에 저런 자까지 들어와 있어야 하느냐?”
주석
10절. 다윗은 아마 블레셋 용병으로 일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이 뛰어난 군인인 자신을 적으로 대하는 대신, 자신들의 편이 되어 싸우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IVP 성경배경주석 구약, 444쪽).
[오늘의 묵상]
1. 아기스에게 도망가는 다윗
사울의 위협이 도를 넘어서자 다윗은 안전한 처소를 찾기 시작했다.
자신의 적이었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쳤다.
이 부분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다른 왕국으로 도망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굳이 자신이 오랫동안 전투를 통해 많은 사상자를 낸 블레셋으로 투항한단 말인가?
골리앗도 블레셋 장수였다.
다윗이 이스라엘 내에서 명예를 얻게 된 것도 블레셋과의 전투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블레셋으로 망명을 떠났는가?
사울의 위협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장소라서?
원수의 나라에 투항함으로써 확실히 사울을 배반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이 결정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
블레셋으로 망명을 떠나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어떤 말씀을 주셨을까?
그것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의 운신을 결정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도리어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움직인다기보다도 일단 자신의 상황에서 스스로 최선을 다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든 경우에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신의 앞날을 결정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어떤 일을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가?
누굴 만나야 하고, 무슨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가?
안식월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묻어 두었던 질문들을 다시 꺼낸다.
2. 미친 척 하는 다윗
다윗은 생존형 리더다.
일단 자신이 살아야 했다.
생존하기 위해서 미친 척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이 미친 척도 대강해서는 누구도 속일 수 없다.
골리앗을 죽였던 다윗,
사울의 위협으로 망명을 시도한 다윗,
조금만 그의 상황을 파악했다면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살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아기스의 신하들의 조언은 참으로 적절하다.
물론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소개한 것은 과장되었다.
아직 다윗은 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망이나 다윗이 그동안 펼친 행적 등을 두루 고려할 때, 신하들이 다윗을 위험 인물로 소개한 것은 적절하다.
다윗은 아기스 왕에게 죽임을 당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에 쌓여 미친 척을 했다.
다윗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나님이 이 상황에서 어떤 말씀을 주셨을지도 잘 모르겠다.
미친 척 하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윗은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누구라도 속을 수 있도록 제대로 미친 연기를 펼쳤다는 것이다.
지금 시대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는 당연해보인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분을 억지로 요청하는 것은 모두에게 독이 된다.
그분이 정말 계시는지 그래서 이 세상에 개입하시는지 자꾸 확인해야 한다.
그분이 숨어계시니 어쩔 수가 없다.
확연히 드러내셔서 당신의 존재를 확인시켜주시지 않으시니 사람으로서는 계속해서 의문이 들고 의심이 든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인간은 생존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당장 살아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중요하다.
위협하는 대적들을 무찌르거나 회피해야 한다.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면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생존하고 그 생존을 위해 방어막을 펼쳐야 하며 그 방어막을 확대해야 한다.
방어막 확대는 결국 누군가의 권리와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전쟁이다.
하나님 없는 삶의 극단은 전쟁이다.
그렇다고 경험되지 않는 하나님을 억지로 믿거나 있는 척 연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 고통스런 인간의 상황이여!!
점점 다윗을 존경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다윗도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는 존재로 보인다.
미친 척 할 것이 아니라 모세처럼 광야로 도망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적군에게 가서 목숨을 구걸하다니, 그걸 넘어 미친 척 하다니…
내 성향에 안 맞는다.
그럼에도 다윗에게 한 가지 부럽고도 본받고 싶은 것이 있다.
그는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를 쓰고, 기도의 노래를 불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그를 붙들었다.
그의 믿음은 참으로 부럽다.
하나님 경험이 끊어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분의 살아계심을 더욱 확신할 수 있는 계기가 많아지길 기도한다.
나의 삶과 생각과 느낌과 죄악과 게으름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로막지 않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결국 하나님 경험이 제게 최선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더욱 깊이 경험하게 하소서.
이게 무너지면 저는 살아갈 힘을 잃습니다.
저의 의문과 의심은 신학 실험실에서 이뤄지게 하소서.
저의 존재는 당신의 존재에 뿌리를 내리게 하소서.
더 깊이 뿌리를 내려 당신으로부터 오는 자양분을 빨아드리게 하소서.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도록 저를 이끄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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