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4 30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8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그대가 마땅히 해야 일을 아주 담대하게 명령할 수도 있지만,

9우리 사이의 사랑 때문에, 오히려 그대에게 간청 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이요, 이제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로 또한 갇힌 몸입니다.

10내가 갇혀 있는 동안에 얻은 아들 오네시모를 두고 그대에게 간청합니다.

11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 없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그대와 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2나는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는 바로 마음입니다.

13나는 그를 곁에 두고 내가 복음을 위하여 갇혀 있는 동안에 그대를 대신해서 나에게 시중들게 하고 싶었으나,

14그대의 승낙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대가 선한 일을 마지못해서 하지 않고, 자진해서 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15그가 잠시 동안 그대를 떠난 것은, 아마 그대로 하여금 영원히 그를 데리고 있게 하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6이제부터는 그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으로 사랑 받는 형제로 그대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특히 그가 나에게 그러하다면, 그대에게는 육신으로나 주님 안에서나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17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생각하면, 나를 맞이하듯이 그를 맞아 주십시오.

18그가 그대에게 잘못한 것이 있거나, 빚진 것이 있거든, 그것을 앞으로 달아놓아 주십시오.

19 바울이 친필로 이것을 씁니다. 내가 그것을 갚아 주겠습니다. 그대가 오늘의 그대가 것이 나에게 빚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20형제여, 나는 주님 안에서 그대의 호의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마음에 생기를 넣어 주십시오.

21나는 그대의 순종을 확신하며 글을 씁니다. 나는 그대가 내가 말한 이상으로 해주리라는 것을 압니다.

22그리고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기도로 내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23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에바브라가 그대에게 문안합니다.

24나의 동역자인 마가와 아리스다고와 데마와 누가도 문안합니다.

25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영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사도의 권위로서가 아니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자로써, 복음을 듣고 변화된 오네시모를 위해 간청합니다(8-10). 오네시모는 전에는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주인(빌레몬) 몰래 도망친 종이었지만, 이제는 주안에 사랑받는 아들로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보내며 사랑하는 형제로 맞이하고 호의를 베풀어 것을 부탁합니다(12-20).

 

바울은 빌레몬이 자신의 말을 따를 아니라, 이상으로 오네시모를 대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21). 바울은 속히 빌레몬에게 가서 교제하길 바라며 함께 하는 동역자들의 안부를 전합니다(22-25). 예수를 믿을 우리에게는 존재의 변화만 아니라,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변화도 일어납니다. 오늘 내가 친절하게 환대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

바울과 디모데의 고심

 

1. 옥중 서신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다. 

와중에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아들로 두었다. 오네시모는 회심을 했고, 동안의 잘못을 회개했고 주님을 따르기로 했다. 

바울이 그를 아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친밀한 관계로 발전했다. 

13시중이라는 표현을 보니 감옥에 갇힌 바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음식을 갖다 주고 의복도 챙겨주고 말벗도 되는 등의 활동을 했을 것이다. 

심지어는 바울이 오네시모를 두고, 자기 마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12).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렇게 표현한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오네시모에 대해서도 그렇게 불렀다는 사실은 새삼 놀랍다. 

바울과 오네시모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관계에 대해서도 들었다. 오메시모의 죄책감과 관계의 문제를 풀고 싶어하는 의지도 확인했을 것이다. 

바울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일단 오네시모를 설득해야 했다. 그냥 멀리 떨어져 있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도망자의 신분으로 사는 것은 여러가지로 불안했다. 법적인 문제가 걸렸을 , 위험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핵심은 오네시모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 그리고 공동체내 형제간의 화해의 문제였다. 이대로 방치하면, 오네시모는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기가 어렵다. 공동체에서도 긴장하며 살아야 한다. 교회의 하나됨도 위협을 받는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들이 더욱 비일비재할 것이다. 

도망가는 노예들은 항상 있을 것이고, 기독 공동체로 유입될 가능성도 높다. 

주인과 노예 간의 긴장은 교회 공동체의 뇌관과도 같다. 

공동체의 분열을 일으킬 있는 지점이다. 

좋은 선례를 만든다는 점에서도 오네시모-빌레몬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2. 간청

그래서 바울은 간청을 한다. 명령을 내리지 않고 권고를 하는 것도 아니고,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14그대의 승낙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대가 선한 일을 마지못해서 하지 않고, 자진해서 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빌레몬의 자발적인 의사를 통해 선한 일이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다. 

빌레몬의 호의를 바라고 있다(20). 

 

물론 편지만으로도 엄청난 압박이 있음도 사실이다. 

개인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라 빌레몬의 가정 교회에 보낸 편지다. 

가정교회는 편지를 함께 읽고 빌레몬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오네시모를 다시 받아 것인가 것인가하는 문제 말이다. 

빌레몬의 결단이 제일 중요하지만, 빌레몬 가정 교회의 공동체적 결정도 중요하다. 

압박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런 압박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는 바울의 모습이 편지 곳곳에 드러난다. 

 

빌레몬이 그동안 바울에게 빚에 대해서도 다시 상기 시키고 있다. 

사실 이런 논법이 맘에 들지는 않는다. 

 

19 바울이 친필로 이것을 씁니다. 내가 그것을 갚아 주겠습니다. 그대가 오늘의 그대가 것이 나에게 빚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굳이 말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사실은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고칠 있을까? “솔직하게 그대가 나에게 빚진 부분에 대해서 길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상기시켜 드리고 싶어요 

차라리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낫다. 

바울은 은근히 압박하고 있다. 

오네시모가 잘못한 부분이라든지 빚진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갚겠다고까지 말하고 있다(18). 

정도 되면 상당히 강력한 압박이다. 

 

바울이 편지를 , 얼마나 고심을 했을지 갑자기 상상이 된다. 

디모데와 상당히 많은 논의를 했을 같다. 

어떤 어조로 부분을 풀어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같다. 

명령, 권면, 부탁, 호소 

강하고 직접적인 압박, 부드럽고 간적적인 압박

고민이 많았을 바울과 디모데가 떠오른다. 

 

여튼 바울은 빌레몬의 자유로운 의사를 통해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빌레몬의 호의를 바라는 것이다.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 바울로 받은 호의를 갚을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해주고 있다. 

 

3. 악마는 디테일 속에

대의는 동의할 있으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는 것이다. 

공동체의 하나됨이라는 대의를 반대할 사람 누구인가? 

그러나 하나됨을 이루는 방식은 백만가지다. 

사람마다, 자기가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르다. 

 

점점 고민할 일이 많이 생긴다.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도 대의가 문제가 아니라 디테일이 문제다. 

어떻게 풀어가는가,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의사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디테일한 문제들을 지혜롭게 풀어가야 한다. 

 

갑자기 야고보가 이야기했던 하나님의 지혜가 너무 필요하다. 

대의만 말하는 어줍잖은 운동가가 되고 싶지 않다. 

아주 구체적으로 지혜롭게 해야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능하면 공동체 구성원들 모두를 기쁘게 하면서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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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1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감옥에 갇힌 바울과 형제 디모데가, 우리의 사랑하는 동역자 빌레몬과

2자매 압비아와 우리의 전우인 아킵보와 그대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4나는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기억하면서, 언제나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나는 예수에 대한 그대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그대의 사랑 관하여 듣고 있습니다.

6그대의 믿음의 사귐이 더욱 깊어져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선한 일을 그대가 깨달아 그리스도께 이르게 되기를 나는 기도합니다.

7형제여,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성도들이 그대로 말미암아 마음에 생기를 얻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동역자인 빌레몬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위해 편지를 쓰면서, 그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1-3). 바울은 빌레몬을 위해 규칙적으로 기도하면서, 그가 믿음과 사랑 가운데 자라가고 있다는 소식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립니다(4).

 

바울은 빌레몬이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또한 그는 빌레몬의 섬김으로 인해 위로와 힘을 얻고 있다고 고마움을 표현합니다(6-7). 누군가 영적으로 성장하며 자라가길 기대하며 사람을 위해 기도해본 적이 있습니까? 주변에 주님을 알아가며 사랑함으로 자라가길 소망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품고 기도해봅시다.

 

——

편지를 통한 교제

 

1. 가정 교회, 그리고 편지

 

2자매 압비아와 우리의 전우인 아킵보와 그대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다. 도시의 몇몇 가족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린다. 10명에서 30 정도의 작은 규모의 교회였을 것이다. 

성도의 가정에 모여 성만찬을 실행하고 저녁 식사를 먹는다. 처음오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식사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아이들과 어울려 놀이도 하고 찬양을 부르기도 한다. 가정교회에 전달된 사도들의 편지가 있다면 편지를 전체 앞에서 읽고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때로 토론으로 번지기도 한다. 어제 읽었던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로버트 뱅크스, IVP) 나와 있는 내용들이다. 

로버트 뱅크스,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IVP

www.ivp.co.kr/books/book_detail.html?book=s01&idx=1255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Going to Church in the First Century

www.ivp.co.kr

바울과 디모데는 이렇게 빌레몬 가정 교회에 편지를 썼다. 

지금이야 직접 가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고, 최근에는 온라인 실시간 대화가 되는 시대이니 전혀 다른 역동이 일어나곤 하지만, 빌레몬이 살던 시대에는 편지가 아니고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의 소식이나 메시지를 들을 없었을 것이다. 

편지를 쓰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이고, 전달하는 , 그리고 함께 모여 읽는 것도 상당한 에너지가 드는 일일 것이다. 

모든 의사소통 행위가 일종의 이벤트다. 

 

바울과 디모데는 편지 목회를 하고 있다. 

빌레몬과 그의 교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 않고서야 편지를 기록하고 그것을 오랫동안 전달하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때로 글은 오해를 낳기도 하기 때문에, 편지가 어떤 교회에 분란을 낳을 수도 있다. 토론하다가 마음 상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직접 방문해서 자신의 의도한 정확한 뜻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깔끔하다. 

이런 부작용이 있음에도 바울과 디모데는 편지를 써야 하는 경우가 있음을 알았고 실제로 썼다. 

현재 신약의 서신서들이 이런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다. 

아마도 많은 편지들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성경이라고 확정되기 전에 많은 편지들이 회람되었을 것이지만, 어떤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고, 어떤 것은 전체 신앙 공동체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 있었을 수도 있다. 

 

나에게 편지는 많은 시간, 에너지, 그래서 사랑이 들어가는 행위이다. 

편지를 쓰는 것이 쉽지 않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오해나 불신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하나, 단어 하나, 이모티콘 하나에 민감해진다. 

편지는 기록에 남는 것이니만큼 더욱 조심스럽다. 

하지만, 정돈되고 정갈한 언어로 사랑을 담아 격려와 권면을 하기 위해서는 글로 편지를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두고 두고 읽으면서 음미할 있다. 

 

 

2. 기도할 때마다 기억하기 

 

4나는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기억하면서, 언제나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어떻게 기도생활을 했을까? 

갑자기 너무 궁금해진다. 

내가 그동안 해오던 기도 생활과 비슷할까 아님 전혀 다를까? 

베드로는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 시간을 가졌다. 사도행전 3 1-2절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시에 기도하러 성전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보인다. 

정기적인 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마치 어떤 예식처럼 기도 시간을 지켰던 같다. 

바울과 디모데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긴 하다. 

 

그들이 함께 모여 기도할 때마다, 혹은 혼자서 기도 시간을 지킬 때마다, 그들은 빌레몬 가정 교회를 떠올렸다. 

빌레몬 가정 교회의 성도들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렸다. 

함께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과 대화, 그리고 함께 먹었던 식사 등을 떠올렸다. 

 

기억은 지도자에게 필요한 좋은 도구다. 

기억하지 못하면 정보가 부족하면 제대로된 기도도 드릴 없다. 

제대로된 격려와 권면도 불가능하다. 

사람에 대한 기억을 높여야 한다. 

함께 했던 추억, 함께 먹었던 음식, 그의 인품과 개성, 그의 열정과 은사가능하면 섬세하게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그동안 부분에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때로는 기억을 주관하시도록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기독교의 기억의 종교다. 

머리를 비우는 종교가 아니라, 채우는 종교다. 

예수님의 삶과 사역, 죽음과 부활, 그분의 가르침을 계속 기억해야 한다. 

성만찬은 예수님을 기억하도록 돕는다. 

성령님도 예수님을 기억하는데 일조하신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이런 방식으로 예수님을 기억한다. .

 

그리고 기억의 방식은 결국 형제자매들에게도 이어진다.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추억하면서 그들의 삶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사랑을 계속 복기한다. 

그렇게 기억이 뚜렷하면 할수록 영성적으로 도움이 된다. 

 

 

3. 믿음, 사랑

 

5나는 예수에 대한 그대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그대의 사랑 관하여 듣고 있습니다.

 

편지니까 의례 하는 말로 들릴 있다. 

하지만, 바울과 디모데는 빌레몬 가정 교회의 믿음과 사랑의 행위에 대해 듣고 있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빌레몬의 행동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랑하게 되면, 기억하게 되고, 기억하다 보면 묻게 된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동안 과정을 내가 간과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묻지 않았다. 묻는 것은 과도한 개입으로 가는 길이라 여겼다. 과도한 개입은 자칫 험담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균형을 잃은 판단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아예 적당히 알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랑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묻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의 구체적 행위는 자녀들의 상황을 계속 묻고 듣고 알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관련된다. 

지금처럼 수많은 변화를 맞닥뜨리는 코로나 상황에서 자녀들이 겪고 있는 숱한 변경/수정/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가고 기억하고 반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있다. 

 

바울과 디모데는 빌레몬 가정 교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컸고, 이는 그의 기도제목에 반영되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빌레몬 가정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귀를 세우고 듣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빌레몬 가정 교회의 믿음과 사랑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 그리고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빌레몬서를 계속 읽고 묵상하다보면 힌트가 나올 지도 모른다. 

그런 힌트를 찾아가는 매일 매일의 묵상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울의 기도에 주목하게 된다. 

믿음의 사귐이 더욱 깊어지길 기도하고 있다. 

믿음은 단순히 지적 동의가 아님이 더욱 분명해 진다. 

믿음은 사귐을 동반한다. 지적인 동의를 넘어서서 인격적 신뢰를 바탕으로 사귐의 단계에 이른다. 믿음의 성숙은 사귐의 성숙과 관련된다. 

이성적 판단이 믿음의 전체가 아니다. 감정적 반응과 의지적 결단이 동시에 수반되는 전인격적인 역동이 믿음이다. 그러니 사귐이 일어난다. 사귀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사귐이 없는 믿음은 자칫 자신과 공동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 

 

빌레몬의 사랑은 바울을 크게 기뻐하게 만든다. 빌레몬의 사랑의 행위는 소문이 자자했을 것이다. 

사랑의 행위에 대한 바울의 격려는 빌레몬으로 하여금 더욱 사랑의 실천을 행하도록 동기부여 했을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찬과 격려가 사라지면, 공동체는 원래의 기능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서로에 대한 칭찬과 격려가 계속되어야 한다. 

 

——

새롭게 빌레몬서로 묵상하도록 인도하신 예수님, 

구절 하나 하나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또렷이 바라보게 됩니다. 

속에서 예수님이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셨는지 봅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서로를 향한 기도가 이어지고, 믿음과 사랑의 소식이 전해지고, 기쁨이 드러나는 이런 관계를 맺게 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저에게도 이런 관계가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믿음의 사귐이 깊어지고, 사랑의 소문이 많아지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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