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30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8 우리가 알기로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 사용하면, 선한 것입니다.9 율법이 제정된 것은, 의로운 사람 때문이 아니라, 법을 어기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와, 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않은 자와, 속된 자와, 아비를 살해하는 자와, 어미를 살해하는 자와, 살인자와,10 간음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사람을 유괴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를 하는 자와, 그 밖에도, 무엇이든지 건전한 교훈에 배치되는 일 때문임을 우리는 압니다.11 건전한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이 복음을 선포할 임무를 맡았습니다.

 

NIV 

We also know that the law is made not for the righteous but for lawbreakers and rebels, the ungodly and sinful, the unholy and irreligious, for those who kill their fathers or mothers, for murderers, for the sexually immoral, for those practicing homosexuality, for slave traders and liars and perjurers—and for whatever else is contrary to the sound doctrine(9-10절). 

 

주석

10절. 사람을 유괴하는 자는 남녀 아이들을 유괴해 인신매매를 일삼는 노예 상인을 의미합니다(IVP 성경배경주석-신약, 704쪽). 

 

1. 율법, 건전한 교훈, 그리고 복음

바울은 올바른 교리를 지켜내야 한다고 디모데에게 권면했다. 

그 올바른 교리에서 순전한 사랑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율법 이야기로 넘어간다. 

오래전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켜왔던 율법은 가치중립적이며, 적법하게 사용하면 선한 것이다. 

죄를 막는데 사용하는 것이 율법을 적법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율법의 적법성은, 죄의 방지에 있지 구원에 방편에 있지 않다. 

건전한 교훈을 지키고 죄를 짓지 않도록 막는 역할이 율법에게 있다. 

 

율법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비하면 지극히 제한적이다. 

율법은 건전한 교훈을 지켜내고 확산시키고 보호한다. 

그러나 복음은 죄인들을 구출하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극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바울은 이 복음을 선포할 임무를 맡았다. 

디모데에게도 그 복음을 맡기고 있다. 

 

율법이 지키고자하는 건전한 교훈은 그 복음에 귀속된다. 

복음에 맞아야 건전한 교훈으로 끝까지 남을 수 있다. 

복음이 죄인들을 구출하고 구원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보여준다면, 건전한 교훈은 구원 과정에서 보여지는 변화에 기여한다. 

건전한 교훈은 새로운 삶의 방식의 형태를 보여주고 그 기준을 확립해준다. 

그럴 때만이 건전한 교훈으로 남게 된다. 

율법이 완성되는 것은 복음에 의해서다. 

율법의 완성이란 율법의 자기 목적과 역할을 100% 충분히 발휘되는 것을 의미한다. 

율법의 목적은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이 인간답게 살게 만드는 것이다. 

율법의 역할은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이 인간답게 살도록 윤리적, 도덕적 측면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복음이 없이는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이렇기에 율법이 완성은 복음에 의해서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왜 율법의 완성이 되는가? 

위의 논리를 따라, 복음을 끌고 들어오시고 그 복음 자체가 되신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이 된다. 

사람은 예수님 없이 참 사람이 될 수 없다. 

 

바울은 이것을 알았고, 그래서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끝까지 충성을 다한 것이다.

 

 

[오늘의 기도]

복음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복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복음을 알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그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역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인생이 다하는 날까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포기하지 않고 선포하게 하소서. 

 

복음이 필요한 자들에게 잘 설명하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선포할 필요가 있을 때는 담대하게 선포하게 하소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듣고 주님을 사랑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5월 29일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이,2 믿음 안에서 나의 참 아들이 된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자비와 평화가 그대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3 내가 마케도니아로 떠날 때에, 그대에게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대가 거기에서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명령하고,4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정신을 팔지 못하도록 명령하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믿음 안에 세우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는, 도리어 쓸데없는 변론을 일으킬 뿐입니다.5 이 명령의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6 그런데 몇몇 사람은 이러한 목적에서 벗어나서 쓸데없는 토론에 빠졌습니다.7 그들은 율법교사가 되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또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NIV

As I urged you when I went into Macedonia, stay there in Ephesus so that you may command certain people not to teach false doctrines any longer or to devote themselves to myths and endless genealogies. Such things promote controversial speculations rather than advancing God’s work—which is by faith(3-4절).

 

주석

4절. ‘신화’는 신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전하는 이야기를, ‘끝없는 족보 이야기’는 당시의 몇몇 유대 문서에서 성경의 족보를 확대 해석하거나 조상의 기원을 잘못 추정하는 등의 오염된 진리를 의미합니다(IVP 성경배경주석-신약, 704쪽).

 

1. 다른 교리

복음서는 교리를 알려주기보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집중한다. 

바울 서신서는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올바른 교리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 반복적으로 말해준다. 

에베소라는 이교 사회에서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을 때,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교리를 가르치라고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다. 

초대 교회는 세계관의 전쟁터 속에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한 온갖 신화가 사회에 만연했다. 

사람들의 마음은 신화에 흔들린다. 

그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신화 중 하나로 남는다. 

우주의 창조주 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의 이야기가 여러 신화 중 하나로 취급받는 것을 바울은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디모데에게 그토록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교리와 바울이 말하는 교리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걸 비교하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현재는 수많은 교파들이 자신 나름의 교리를 가지고 정통성 논쟁을 펼친다. 

어떤 것이 바울이 말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지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신학 실험실이 필요한 이유다. 

 

2. 사랑

오늘 말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절이 있다. 

바로 5절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명령한 목적이 적시되어 있다.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란다. 

가장 기본은 사랑을 꺼내서 확신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사랑도 종류가 있다는 점이다. 

깨끗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 있는 반면, 

더러운 마음, 악한 양심, 사기에 가까운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 같지 않은 사랑이 있다. 

가짜 사랑은 남에게 좋은 것은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한 사랑이다. 

자신을 희생한 예수님에게서 나온 사랑은 그야말로 깨끗하고 선하고 거짓이 없다. 

순전히 상대방을 위한 사랑이다. 

상대의 영혼과 육체와 미래를 위한 사랑이다. 

순전한 사랑. 

그 사랑을 위해 디모데는 끝까지 예수님과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교리를 붙들어야 한다. 

과연 바울이 말한 것처럼 순전한 사랑은 바른 교리에서 나오는가? 

이걸 따져보려면, 순전한 사랑이 무엇인지, 그 순전한 사랑이 발생하는 경로는 무엇인지 파악해봐야 한다. 

일단 가설을 세워보자면 순전한 사랑은 타인의 유익을 위한 목표가 제1의 목표가 되어 오롯이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한 행위여야 할 것이다.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실제적인 유익과 도움이 되어야 한다. 

나에게 어떤 도움이나 유익이 될 것인지 미리 계산해서 진행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랑이 나오는 경로는 무엇인가? 

인간의 이기적 심성을 생각할 때, 자연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움직인다. 

생존을 위한 본능이 이기심의 근원이다. 

살아 있는 존재는 이기심의 DNA를 가지고 있다. 

그 본성을 억누르고, 내가 아닌 타인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하거나 희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순전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본성을 억누를 수 있는 힘, 동력을 찾아야 한다. 

바울은 예수님에 관한 올바른 교리라고 보고 있다. 

다른 것은 없나? 

 

오늘의 궁금함이다. 

하루 동안 이 질문을 품고 살아가고 싶다. 

AI에게도 물어봐야 겠다. 

 

[오늘의 기도]

온전한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 

당신의 사랑이 온전하고 순전한 이유는 죄인들을 위해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을 내어주심이 진정한 희생이 되려면, 예수님의 육체적 생명 또한 매우 귀중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당신은 영이기 때문에 육체는 사실 있으나마나 한 것이었다면, 당신의 육체의 죽음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될 것입니다. 

허나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당신의 희생이 그토록 강한 사랑의 표현이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을 더 깊이 느끼도록 이끄소서. 

그 사랑이 더 많이 흘러가도록 저를 붙드소서. 

 

O현을 붙들어 주소서. 

그의 고통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그 부모의 아픔을 위로하소서. 

수차례에 걸친 항암치료를 잘 견뎌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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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1:8-11_건전한 교훈  (0) 2025.05.30

2025년 05월 26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15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16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17 내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오히려 악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죽음의 세계로 내려가서, 잠잠하게 해주십시오.18 오만한 자세로, 경멸하는 태도로, 의로운 사람을 거슬러서 함부로 말하는 거짓말쟁이들의 입을 막아 주십시오.19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주시려고 주님께서 마련해 두신 복이 어찌 그리도 큰지요? 주님께서는 주님께로 피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베푸십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복을 베푸십니다.20 주님은 그들을 주님의 날개 그늘에 숨기시어 거짓말을 지어 헐뜯는 무리에게서 그들을 지켜 주시고, 그들을 안전한 곳에 감추시어 말다툼하는 자들에게서 건져 주셨습니다.21 주님,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포위당했을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푸셨기에,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22 내가 포위되었을 그 때, 나는 놀란 나머지 “내가 이제 주님의 눈 밖에 났구나” 생각하며 좌절도 했지만,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는, 내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23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너희 모두 주님을 사랑하여라. 주님께서 신실한 사람은 지켜 주시나, 거만한 사람은 가차없이 벌하신다.24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아, 힘을 내어라. 용기를 내어라.

 

NIV

In the shelter of your presence you hide them from all human intrigues;

you keep them safe in your dwelling from accusing tongues(20절).

 

ESV

In the cover of your presence you hide them from the plots of men;

you store them in your shelter from the strife of tongues(20절).

 

1. 부끄러움

부끄러움은 사회적 언어다. 

타인이 없다면 부끄러움은 존재하기 어렵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부끄러움이 드러난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인정받는 자가 되게 해 달라는 말과 동일하다. 

문제는 대적하는 사람이 매번 등장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칭찬듣고 인정받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듣는 사람은 없다. 

솔직히 적대자에겐 부끄러움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적대자가 뭐라고 하건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적대자 앞에서 믿었던 사람들의 배반이나 나의 실책으로 인한 분열 같은 것이 벌어졌을 때, 그 때가 가장 부끄럽기 마련이다. 

부끄러움은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한다. 

 

한국교회가 부끄러울 때가 많다. 

반공이데올로기에 경도되어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했다. 

성경을 자기 입맛대로 재단하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전체 큰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다. 

이단, 사이비의 출현을 막지 못한다. 

사람들을 홀리고 사기치는 경우를 막지 못한다. 

전광훈, 손현보 같은 정치 목사를 방치한다. 

 

참으로 부끄럽다. 

 

2. 부르짖음

주님을 간절히 찾게 되면 부르짖게 된다. 

주님이 절실하면 어쩔 수 없이 부르짖게 된다. 

책임지고 있는 일들이 많고, 관리해야 할 것들이 많으면, 그래서 자기 한계를 느끼고 부족함을 느낀다면, 주님을 부르짖게 된다. 

겉으로 부르짖는 것도 있지만, 속으로 부르짖는 것도 있다. 

속울음을 우는 것이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최선을 다해 주님을 찾는 것이다. 

이집트의 히브리 민족처럼 말이다. 

바벨론 강가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울었던 포로들처럼 말이다. 

 

지금 내 삶은 어찌보면 참으로 평안하다. 

국가의 위기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해소되었다고 본다. 

투표 행위로 국민의 뜻이 모아지면 나라가 본궤도로 올라갈 수 있다. 

나라의 어려움이 극복되니, 현재 내 삶은 꽤나 평온하다. 

그러다보니 주님께 크게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는 것이야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삶의 여러 어려움으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상황에 점점 둔감해진다는 사실이 큰 문제다. 

아파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들을 위해 같이 아파하고 같이 부르짖어야 하는 것이 목회자의 역할이다. 

그 일을 게을리하고 있는 것이 나의 부족함이다. 

나의 부족함과 죄악을 주님께 아뢰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오늘의 기도]

연약한 모든 자들의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주님,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삶의 여러 어려움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굽어 살펴 주소서. 

암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죽음의 문턱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눈물로 밤을 새우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O현을 보살피소서. 

골육종으로 시작해서 폐암까지 전이가 되어 벌써 수술 및 항암 치료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다시 폐암이 발견되어 그 아이와 그 부모가 슬픔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찾아가셔서 그의 몸과 마음을 보살피소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끝까지 이 싸움을 싸울 수 있도록 이끄소서.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보호해 주소서. 

고통과 통증의 시간을 견디게 하소서.

생의 의지를 더하시고, 삶의 소망을 붙들게 하소서.

그 부모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5월 23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1 다윗이 부하들과 함께 사흘 만에 시글락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아말렉 사람이 이미 남부지역과 시글락을 습격하고 떠난 뒤였다. 그들은 시글락에 침입하여 성에 불을 지르고,2 여자를 비롯하여, 그 성읍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어린 아이나 노인 할 것 없이 사로잡아,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 끌고 갔다.3 다윗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 성읍으로 들어와 보니, 성은 불타 버렸고, 아내들과 아이들이 모두 사로잡혀 갔다.4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목놓아 울었다. 모두들 더 이상 울 힘이 없어 지칠 때까지 울었다.5 다윗의 두 아내인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인 아비가일도 사로잡혀 갔다.6 군인들이 저마다 아들딸들을 잃고 마음이 아파서, 다윗을 돌로 치자고 말할 정도였으니, 다윗은 큰 곤경에 빠졌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믿는 주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였다.7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말하였다. “어서 나에게 에봇을 가져다 주시오!”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 가져오니,8 다윗이 주님께 문의하였다. “제가 이 강도들을 추격하면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틀림없이 따라잡고, 또 틀림없이 되찾을 것이니, 추격하여라!”

 

1. 아말렉의 공격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장정들은 블레셋 대 이스라엘 전쟁에 다 나갔다. 

다윗을 따랐던 사람들의 가족들만 시글락에 남았다. 

아말렉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민족은 약자를 공격하는 것이 특기다. 

과거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행렬 뒤에 쳐진 연약한 사람들을 공격했었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했다. 

아말렉은 전투력이 없는 사람들을 붙잡아 자신들의 노예로 삼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다윗 및 병사들이 없는 틈을 타 시글락을 공격한 것이다. 

 

아말렉의 비열한 웃음 소리가 들린다. 

어린 아이들과 부녀자와 노인들을 끌고 가면서 윽박지르고 때리고 저주한다. 

다윗의 두 아내도 죽을 목숨이다. 

아비가일은 최근에 다윗과 결혼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그녀는 지혜와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무자비한 힘과 폭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전령을 보내 다윗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지만, 전령으로 쓸 사람조차 없었다. 

 

 

2. 다윗의 믿음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큰 전쟁을 피했고, 이제 집에서 쉬면 되는 줄 알았다. 

시글락이 저 멀리 보이는 지점에 도달했을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성을 봤을 떄,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상황을 빨리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다. 

성읍은 불타고 사람들은 사라졌다. 

말밥국 자국과 흔치 않은 방패의 문양을 보고 금방 알아챘다. 

아말렉이다!! 

곳곳에서 대성통곡이 들린다. 

연로하신 부모님, 아내, 그리고 어린 아이들까지 죄다 사라졌다. 

시체가 거의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우리 쪽에서 항복을 했고, 그래서 모두 사로잡혀 간 걸로 보인다. 

군인들 사이에 큰 동요가 일어난다. 

다윗을 저주하는 부하들이 늘기 시작한다. 

급기야는 다윗을 돌로 치자라는 말도 들린다. 

 

다윗이 이제까지 겪었던 그 어떤 위기보다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이 내부의 분열이다. 

신뢰를 잃은 장군은 곧 죽을 운명이다. 

다윗은 일생일대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을 더 굳게 의지한다. 

그 방법 밖에 없다. 

 

다윗이 점점 싫어진다. 

아니 그의 존재가 싫다가 아니라 그의 삶이 너무 고달프다. 

다윗처럼 살고 싶지가 않다. 

좀 평온하게 살 수 없는가!

 

지인의 딸은 벌써 세 번째 암 발견이다. 

고난의 연속이다. 

눈물이 가리다가 메마른다. 

그 아이와 부모의 마음에 흐느낀다. 

고통스런 현실이 차갑다.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탄식이 깊어진다. 

 

주님! 도우소서. 

 

[오늘의 기도]

가족을 송두리째 잃어 버릴 때 다윗과 그 부하들이 느꼈을 고통과 아픔을 상상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떤 위로를 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겨낼 힘을 공급하소서. 

 

대선이 코앞입니다. 

다시는 윤석열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나라를 지켜주소서. 

평화를 만들어 북한과 그 너머에 있는 땅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기를 꿈꾸게 하소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게 하소서. 

건강한 몸과 맘으로 이 세상을 섬기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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