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08일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20 벌써 다윗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 여인의 맞은편에서 내려오고 있었으므로, 나귀를 타고 산굽이를 돌아 내려가는 아비가일이 그들과 마주쳤다.21 다윗은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내가 저 광야에서 그에게 속한 것은 무엇이든지 지켜 주어, 그의 모든 재산 가운데서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였으나, 그것이 모두 헛일이었다. 그는 나에게 선을 악으로 갚았다.22 내가 내일 아침까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남자들을 하나라도 남겨 둔다면, 나 다윗은 하나님께 무슨 벌이라도 받겠다.”

23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서, 다윗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하였다.24 그런 다음에 아비가일이 다윗의 발 앞에 엎드려 애원하였다. “죄는 바로 나에게 있습니다. 이 종이 말씀드리는 것을 허락해 주시고, 이 종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25 장군께서는 나의 몹쓸 남편 나발에게 조금도 마음을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정말 이름 그대로, 못된 사람입니다. 이름도 나발인데다, 하는 일도 어리석습니다. 그런데다가 장군께서 보내신 젊은이들이 왔을 때에는,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아서, 그들을 만나지도 못하였습니다.26 장군께서 사람을 죽이시거나 몸소 원수를 갚지 못하도록 막아 주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도 살아 계시고, 장군께서도 살아 계십니다. 장군님의 원수들과 장군께 해를 끼치려고 하는 자들이 모두 나발과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27 여기에 가져온 이 선물은 장군님을 따르는 젊은이들에게 나누어 주시라고, 내가 가져온 것입니다.28 이 종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군께서는 언제나 주님의 전쟁만을 하셨으니, 주님께서 틀림없이 장군님의 집안을 영구히 세워 주시고, 장군께서 사시는 동안, 평생토록 아무런 재난도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29 그러므로 어느 누가 일어나서 장군님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일이 있더라도, 장군님의 생명은 장군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이 생명 보자기에 싸서 보존하실 것이지만, 장군님을 거역하는 원수들의 생명은, 주님께서, 돌팔매로 던지듯이 팽개쳐 버리실 것입니다.30 이제 곧 주님께서 장군께 약속하신 대로, 온갖 좋은 일을 모두 베푸셔서, 장군님을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워 주실 터인데,31 지금 공연히 사람을 죽이신다든지, 몸소 원수를 갚으신다든지 하여, 왕이 되실 때에 후회하시거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처럼 좋은 일을 장군께 베풀어 주시는 날, 이 종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석 

30-31절. 아비가일의 조언은 후일 다윗의 정치적 행보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나발 개인의 악한 성품에도 불구하고 갈렙 족속으로 유다 지파의 유력한 가문인 그를 공격했더라면, 그가 훗날 왕위에 오를 때 유다 지파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IVP 성경주석, 432쪽).

 

[오늘의 묵상]

 

1. 다윗의 분노 

선을 악으로 갚은 나발에게 다윗은 분노했다. 

이 분노는 정당한가? 

나발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보인 태도는 분명 잘못되었다. 

여러 모로 적절치 않다. 

다윗의 정치, 군사적 입지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나발은 훨씬 더 지혜롭게 처신했어야 했다. 

그렇다고 다윗이 한 말과 분노 그리고 그의 계획이 정당한지는 의문이다. 

22절을 보자. 

 

22 내가 내일 아침까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남자들을 하나라도 남겨 둔다면, 나 다윗은 하나님께 무슨 벌이라도 받겠다.”

 

과도한 분노다. 

유다 지파에 속한 갈렙 가문의 씨를 말리겠다는 소린데, 이는 가당치 않다. 

전쟁을 많이 해서 그런가, 왜 이런 과도한 분노를 표출한단 말인가?

이 장면에서 다윗의 온유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윗 전체의 삶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해주셨다. 

 

삼상 13:14_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사도행전 13:22_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그렇다고 그의 모든 행동이 다 선하고 온전했다고 말하는 것은 오해다. 

그는 많은 실수를 했고, 과도한 분노를 표했고, 때로는 거짓말을 했으며, 때로는 흉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가 과연 사울보다 도덕적으로 백배천배 낫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가 하나님 마음에 끝까지 합한 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도덕적 자질보다는 그의 정직함이었다. 

 

이 사실을 깊이 마음에 두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 

성경의 스토리를 읽어감에 있어, 캐릭터들의 정직함 여부를 잘 바라봐야 한다. 

 

 

2. 아비가일의 설득

다윗은 자칫 큰 실수를 범할 뻔 했다. 

나발의 잘못을 그 집안 모두에게 갚을 뻔 했다. 

실제로 그 일을 행했을지는 의문이나, 일단 하나님 앞에 약속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상당히 근접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다윗은 전투의 신 같은 존재였다.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의 명령에 절대 복종했다. 

싸움이 크게 번질 수 있었다. 

사울의 군대가 개입할 수도 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실수를 막았다.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 한 결심(22절)은 속히 정정되어야 했다. 

아비가일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가문도 지키고 다윗도 지키는 일이라 여겼다. 

다윗 입장에 서서 어떤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은지 조언했다. 

다윗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생각하도록 설득했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왕이 될 유력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사무엘의 죽음 즈음에는 다윗이 그의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무엘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이야기 했을 가능성도 높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차기 왕좌는 다윗의 차지일거란 말이 돌았다. 

그걸 아비가일은 알고 있었고, 다윗에게 가장 좋은 선택을 제안했다.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는 결정과 실행이 필요하다. 

윈윈전략을 실행하라. 

자기는 살고 남을 죽이는 방식으로는 오래 가지 못한다. 

결국 나도 죽고 남도 죽는다. 

 

[오늘의 기도]

주님,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지혜롭게 일을 감당하도록 이끄소서. 

모든 대화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게 하소서. 

 

다윗처럼 과도한 분노에 휩싸이지 않도록 하소서.

아비가일처럼 분노를 가라않히고 차분하게 생각하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로운 조언자들을 많이 두게 하소서.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자녀들의 건강을 주님께 맡깁니다. 

저의 능력으로는 자녀들의 건강을 잘 지키지 못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자녀들을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5월 07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4 그러는 사이에 나발의 일꾼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그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가서 말하였다. “실은, 다윗이 광야에서 부하들을 보내어 주인께 문안을 드렸는데, 주인께서 그들에게 호통만 쳐서 보냈습니다.15 그러나 그들은 우리에게 매우 잘 하여 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들에서 양을 칠 때에 그들과 함께 지낸 일이 있었는데, 그 동안 내내 그들이 우리를 괴롭힌 일도 없고, 양 떼를 훔쳐간 일도 없었습니다.16 오히려 우리가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양을 칠 동안에는, 그들이 밤이나 낮이나 우리를 성벽과 같이 잘 보살펴 주었습니다.17 그러므로 이제 마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하셔야 할지, 어서 생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부하가 틀림없이 주인 어른께 앙갚음을 할 텐데, 주인 어른의 성격이 불 같으시니, 말도 붙일 수 없습니다.”

 

18 아비가일이 서둘러 빵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와 이미 요리하여 놓은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뭉치 백 개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모두 나귀 여러 마리에 싣고,19 자기의 일꾼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뒤따라 갈 터이니, 너희가 앞장 서라.” 아비가일은 이 일을 자기의 남편 나발에게는 전혀 알리지 않았다.

 

NIV 

They were a wall to us both by night and by day, all the time we were with them tending the sheep(16절). 

 

주석 

16절. 메소포타미아의 라르사 지역에서 흥미로운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주전 약 2천년 경 목자들과 양 주인 간에 맺어진 계약서를 보면, 털을 깎는 날에 짐승들을 안전하게 넘겨주면서 양을 보호한 것에 대한 대가로 털, 유제품, 곡식 등을 받았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은 그들이 나발의 동물들을 보호하는 데 충분히 기여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IVP 성경배경주석-구약, 449쪽).

 

[오늘의 묵상]

1. 나발의 일꾼 

나발은 다윗을 좋게 보지 않았다. 

“도대체 다윗이란 자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즈음은 종들이 모두 저마다 주인에게서 뛰쳐나가는 세상이 되었다.”(삼상 25:10)

 

다윗을 모르는 이스라엘 사람이 어디 있었을까? 

골리앗을 이긴 다윗, 블레셋을 물리친 용맹한 장수. 

나발 정도의 거부라면 더더욱이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발은 다윗을 거부했다. 

 

두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하나는 나발이 돈을 너무 좋아했다는 추정이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에게 줄 음식이 아까웠다. 

어떻게 재산을 지켜왔는데, 떠돌아 다니는 다윗 무리들에게 공짜로 음식을 나눠준단 말인가? 

다른 하나는 나발이 정치적으로 사울에게 줄을 대었다는 추정이다. 

다윗보다는 현실 권력에 정점인 사울을 위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이 둘 다 오판이었다. 

나발의 가축들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의 사람들이 광야에서 가축들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몇 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만약 약탈을 했다고 한다면, 그 양들은 벌써 끝장났을 것이다. 

다윗의 사람들은 양을 잡아먹기보다 그것들을 보호했다. 

 

다윗은 무고하게 사울에게 쫓기는 신세였다. 

정의감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다윗의 처지에 공감했을 것이다. 

게다가 다윗은 위대한 장수였다. 

사울은 멀리있고 다윗은 가까웠다. 

그렇다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 

나발의 사병이 혹 있었다하더라도 다윗에게 대적하는 것은 어리것은 일이다. 

 

그나마 나발의 일꾼은 적절하게 아비가일에게 이 상황을 알렸다. 

말을 아끼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필요한 말을 적절하게 제 타이밍에 할 수 있어야 남도 살리고 나도 산다. 

그 일꾼은 정직하게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아비가일에게 고한다. 

그만큼 상황을 면밀히 보고 있었다. 

다윗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 그들이 와서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 그리고 나발이 그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관찰, 해석, 판단이 빠른 일꾼이었다. 

그의 명민함이 온 집안을 살렸다. 

이런 명민함이 필요하다. 

 

2. 아비가일의 처신

나발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이 문제를 자신이 스스로 해결하기로 했다. 

나발은 불같은 성격이었다. 

앞뒤 꼼꼼히 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지혜로왔다. 

상황의 심각함을 빨리 알아차렸다. 

몇 백명이 먹을 음식을 빠르게 준비시켰다. 

다윗의 부하들을 따라잡으려면 서둘러야했다. 

집안의 일꾼들을 통솔했다. 

시간이 촉박하다. 

나발 집안의 생사가 달렸다. 

일꾼들을 재촉했다. 

절대로 나발에게는 알려서는 안된다. 

아비가일이 옳았다. 

 

그녀의 과감하고 신속한 결정과 실행을 칭찬한다.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사람이었다. 

남편의 성격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식솔들을 살린 위대한 여인이었다. 

리더십 있는 여인이었다. 

혹자는 그의 지혜롭고 현명한 요소에 집중하지만, 나는 그의 용기와 실행력을 높게 산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다윗에게로 달려간다. 

다윗을 만나야 산다. 

사울에게 쫓겨다니는 다윗, 하지만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 다윗… 

그 믿음을 가지고 다윗을 만나러 간다. 

일종의 도전이며 도박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올인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인품과 말과 능력을 보고 그가 메시야라고 믿었다. 

100% 확신한 바는 아니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대안이 되리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인생을 예수님께 걸었다. 

지혜도 필요하지만 용기도 필요하다. 

그런 용기를 가진 청년들이 지금 이 시대에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걱정이다. 

돈과 자기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으니 걱정이다. 

지혜와 용기!!

사랑과 정의만큼이나 꼭 필요하다. 

 

[오늘의 기도]

주님, 이 세상을 보니 다윗, 나발, 아비가일, 그리고 다윗의 사람들, 나발의 일꾼들… 수많은 사람들의 역동이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도 곳곳에서 긴장과 갈등과 삶과 죽음이 챙챙거리며 부딪힙니다.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죽음의 위협을 넘김 수 있습니다. 

서로 약속을 안지킨다고 욕하고 비난합니다. 

정치판이 대체로 그렇습니다. 

언제나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사랑과 정의를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서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작은 일상의 정치에서도 그 필요는 여전합니다. 

 

지혜로우신 주님, 주님의 지혜를 부어주소서. 

만왕의 왕이신 주님, 주님의 용기를 불어넣어주소서. 

매일 부딪히는 긴장의 순간에 포기하지 않도록 이끄소서. 

그리고 이 나라를 지켜주소서. 

공동체가 함께 공유한 약속을 쉽게 깨뜨리는 자들을 막으시고 벌하소서. 

국민주권주의를 파괴하여 헌법을 유린하는 내란 세력들을 막으소서. 

평화로운 세상에서 마음껏 하나님 나라를 선포할 수 있는 날이 오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5월 05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다윗의 시]

1 하나님을 모시는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돌려드리고 또 돌려드려라.2 그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려라.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려라.

3 주님의 목소리가 물 위로 울려 퍼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로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큰 물을 치신다.4 주님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주님의 목소리는 위엄이 넘친다.5 주님께서 목소리로 백향목을 쩌개고, 레바논의 백향목을 쩌개신다.6 레바논 산맥을 송아지처럼 뛰놀게 하시고, 시룐 산을 들송아지처럼 날뛰게 하신다.7 주님의 목소리에 불꽃이 튀긴다.8 주님의 목소리가 광야를 흔드시고, 주님께서 가데스 광야를 뒤흔드신다.9 주님의 목소리가, 암사슴을 놀래켜 낙태하게 하고, 우거진 숲조차 벌거숭이로 만드시니, 그분의 성전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영광!” 하고 외치는구나.

10 주님께서 범람하는 홍수를 정복하신다. 주님께서 영원토록 왕으로 다스리신다.11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내리신다.

 

NIV

Ascribe to the Lord the glory due his name; worship the Lord in the splendor of his holiness(2절).

 

주석 

3-8절. 여기에 등장하는 여러 지명들(3-4절의 큰 물, 5-6절의 레바논과 시룐, 8절의 광야와 가데스)은 각각 이스라엘 서쪽의 지중해, 북쪽 끝과 남쪽 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이 이스라엘 온 나라, 나아가 온 세상을 압도하고 계심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입니다(IVP 성경주석, 684쪽).

 

[오늘의 묵상]

 

1. 주님의 목소리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았다. 

콘클라베. 

영화 내내 긴장을 유지하는 음악 소리에 심장이 졸인다. 

순간 귀가 먹먹해지기도 한다. 

영적인 순간을 음악으로 표현하느라 작곡가와 감독이 최선을 다한 모양이다. 

하나님이 선택하신다는 믿음으로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전 세계의 추기경들의 엄중함이 음향에 묻어난다. 

하나님의 목소리는 큰 폭발음으로도 들린다. 

거역할 수 없는 주님의 목소리… 

 

다윗은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그는 수금을 타는 음악가였다. 

세밀한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섬세한 수금 연주에 사탄의 영향을 받는 사울이 일시적으로 해방을 경험했다. 

그만큼 세밀하고 섬세함을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이 다윗이었다. 

이런 그가 하나님의 위대하고 크고 엄중한 목소리를 듣는다. 

자연 곳곳에 배어있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주님의 크신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분의 음성을 더욱 크게 듣고 싶다. 

더욱 명료한 주님의 음성에 반응하고 싶다. 

점점 이 세상의 죄악에 대해 예민해진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의 거대한 카르텔이 눈에 들어온다. 

비판을 넘어 변혁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2. 영광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닫는 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외친다. 

눈이 어둡고 귀가 닫힌 자들은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따라서 영광을 돌리지도 못한다. 

영의 눈이 열리고, 영의 귀가 열려야 가능한다. 

그리고 이것은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도리어 예수님의 발걸음과 예수님의 시선을 쫓아가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분의 시선을 따라 함께 움직일 때 영의 귀와 눈이 열린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분의 영광을 어떻게 더 깊이 인식할 수 있을까?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심을 어떻게 더 깊이 알 수 있을까? 

대형교회의 찬양과 사역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그분의 일하심을 확인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오 주님, 저의 눈을 열어주소서.

 

[오늘의 기도]

주님, 

대형교회에 가면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성도들에게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과연 성도들의 작은 일상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시는지 잘 알 수 있을까요? 

의문이 듭니다. 

저를 통해, 그리고 우리 가정을 통해, 그리고 저의 작은 교회와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심을 느끼도록 허락하소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게 하소서. 

그리고 그 목소리에 “영광”이라고 외치게 하소서. 

부끄럽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5월 02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7 마침내 사울이 일어나서 굴 속에서 나가 길을 걸어갔다. 

8 다윗도 일어나 굴 속에서 밖으로 나가서, 사울의 뒤에다 대고 외쳤다. “임금님, 임금님!” 사울이 뒤를 돌아다보자,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9 그런 다음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은 어찌하여, 다윗이 왕을 해치려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만 들으십니까? 

10 보십시오, 주님께서 오늘 저 굴 속에서 임금님을 나의 손에 넘겨 주셨다는 사실을, 이제 여기에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임금님을 살려 보내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임금님을 아꼈습니다. 절대로, 손을 들어 우리의 임금님을 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임금님은 바로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11 아버지,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임금님의 겉옷자락을 보십시오. 내가 이 겉옷자락만 자르고, 임금님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시면, 나의 손에 악이나 죄가 없으며, 임금님께 반역하거나 잘못한 일이 없다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임금님은 나를 죽이려고, 찾아다니십니다. 

12 이제는 주님께서, 나와 임금님 사이에서 재판관이 되시고, 나의 억울한 것을 주님께서 직접 풀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나의 손으로는 직접 임금님께 해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13 옛날 속담에 ‘악인에게서 악이 나온다’ 하였으니, 나의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4 이스라엘의 임금님은 누구를 잡으려고 이렇게 나오셨습니까? 임금님이 누구를 잡으려고 쫓아다니십니까? 한 마리 죽은 개를 쫓아다니십니까? 한 마리 벼룩을 쫓아다니십니까? 

15 그러므로 주님께서 재판관이 되셔서, 나와 임금님 사이를 판결하여 주시기를 빌겠습니다. 주님께서 굽어보시고 나의 억울함을 판결하여 주시며, 나를 임금님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를 빌겠습니다.”

 

주석

14절. ‘죽은 개’라는 표현은 여러 고대 근동 문서에 등장합니다. 한 사람이 상대방 앞에서 자신을 겸손히 낮출 때 즐겨 쓰는 표현이었습니다(IVP 성경배경주석-구약, 449쪽).

 

[오늘의 묵상]

 

1. 닫힌 귀 

사울은 한쪽 편의 사람들 이야기만 듣고 있다. 

이를 닫힌 귀라고 할 것이다. 

모름지기 지도자라면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특히 서로 반대되는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모함하는 이야기만 듣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다윗을 시기하고 있음을 들켰기 때문일 것이다. 

간신들은 지도자의 마음의 약점을 귀신 같이 찾아낸다. 

그 틈을 이용하여 자신의 잇속을 차리려는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려고 한 적이 없다. 

도리어 사울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걸고 전쟁터로 향했던 자다. 

사울의 시기심이 다윗의 목숨을 구하는 있다. 

 

윤석열은 한쪽 귀를 막고 정치를 했다. 

야당의 목소리를 완전히 외면했다. 

야당 대표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그와의 대화를 거부했다. 

결과는 작년 4.10 총선 참패, 그리고 여소야대. 

그러니 자기가 원하는 정책을 펼 수 없게 되었고, 급기야는 위헌적 불법 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지금의 기득권들은 그 기득권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지귀연 중앙지법 판사는 사법부 엘리트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최후 보루처럼 행동하고 있다. 

어느 단체 혹은 조직이나 지도자가 편협하여 절차와 규정을 어기고 어거지로 밀어부치면 큰 화를 당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특히 공동체의 지도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공평한 추다. 

편향된 결정을 내리는 자를 싫어하신다. 

권력을 가진 엘리트들의 작은 편향성은 서민들의 고혈을 흘리게 한다. 

 

2. 악인에게 악이 나온다.

당연한 속담이 있다. 

악인에게 악이 나온다. 

악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기보다 악인으로부터 세상에 표출된다. 

사탄은 그 자체로 세상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사탄은 사람을 통해 세상을 어지럽힌다. 

 

다윗은 악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자신이 직접 죽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사실, 이쯤되면 사울을 처단해도 될 일이지만, 다윗은 거부했다. 

그의 부하들은 다윗에게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라고 부추겼지만, 다윗은 얼굴을 돌렸다. 

악에 대한 자기만의 내적 기준이 분명해 보인다. 

다윗에게 결코 넘어서는 안되는 악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거였다. 

골리앗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할 때, 다윗은 분연히 일어섰다. 

하나님이 기름부어 공동체의 왕으로 세우신 사람을 자신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기준도 있었다. 

 

사람이 악한 귀신에게 속아 그에게 자신의 미래를 위임하면, 악이 이 세상에 더욱 편만해진다. 

합리적인 판단은 공동체의 규약으로부터 나온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일상에서 실천함이 옳다. 

하나님의 뜻은 그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위에, 사람을 더욱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경우에 확실성을 얻는다. 

기본을 무너뜨리면서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대리자인 양 행세하는 자들은 사탄에게 속고 있다. 

하나님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헌법과 법률이라는 일반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 

그 공동체 규약을 소중히 여기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기본을 갖춘 자다. 

그 위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게 된다.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더욱 헌신하는 특별한 부르심 말이다. 

션과 같은 사람이 그렇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여전히 내란 세력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기 싫어서 발악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힘을 얻지 못하도록 주께서 그들의 허황된 계획과 계략을 궤멸해 주소서. 

공화국의 헌법과 규정을 모두 자기 뜻대로 휘두르는 자들을 눈을 멀게 하소서. 

그들의 성대를 닫아 주소서.

그들의 키보드가 먹통이 되게 하소서. 

더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 시중에 떠돌아다니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