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 29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우리에게 믿음과 더불어 사랑을 베푸소서.

 

23 평화의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이 없이 완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이 일을 또한 이루실 것입니다.

25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26 거룩한 입맞춤으로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문안해 주십시오.

27 나는 주님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명합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십시오.

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

 

주석

26절 입맞춤은 친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에게 흔히 사용하던 다정한 인사법이었다(IVP 성경배경주석).

27절 이 편지를 교회 사람 모두가 읽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전갈이 본인의 의도하는 모든 사람에게 확실히 전달되도록 하고 싶었다(IVP 성경주석).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평화의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셨고, 그 부르심을 신실하게 이루실 것이라고 강조합니다(23-24절). 더불어,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문안할 것을 부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축복의 이야기를 모든 교인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청합니다(27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복음으로 더욱 단단해지길 간구합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교제하길 원했으며, 공개적인 편지 낭독을 통해 자신의 가르침이 모두에게 흘러가길 기대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직접 마주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깊이 영적 공동체를 누리고 있습니다. 나는 영적 교제를 풍성하게 누리고 있습니까? 공동체 지체들에게 문안하며, 그들을 위해 중보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오늘의 묵상]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했다. 

컴퓨터가 생기고, 핸드폰이 생기고, 인터넷이 연결될 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쓰는 도구가 달라졌다. 

도구가 달라지니, 몸과 정신과 지성이 그에 적응한다. 

새롭게 재편되는 지식 축적 기반에서 생존해야 한다. 

변화가 강력한데, 육체와 정신은 쇠퇴한다. 

과연 새로운 시대 속에서도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가!! 

 

김민식 PD는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으로 “태도”를 꼽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ek_yX-mKT7k&t=642s

05:49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

 

지식이나 기술이 그동안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었다면, AI시대에서는 도리어 잘 듣고 질문을 잘하는 “태도”가 그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정도 동의가 된다. 

방대한 지식은 인공지능을 따라 갈 수 없다. 

기계가 인간의 기술을 더 많이 대체해 갈 것이다. 

질문을 잘 던져서 원하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능력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그 좋은 질문은 상황 파악에서 나오고, 상황 파악은 주의 깊은 관찰에서 나온다. 

성경 연구에 귀납적 성경 연구 방법론이라는 것이 있는데, 관찰, 질문, 해석, 적용이라는 틀이 있다. 

이 과정이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되는 학습, 연구 방법론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좋은 질문을 많이 던지는 것. 사람에게건 인공지능에게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힘.

질문을 던지는 것은 마음의 힘과 관련이 있다. 

모름을 인정하고, 앎에 대한 추구가 있고, 관계 형성에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마음의 힘이 갖춰져야 한다. 

 

그야말로 급변하는 세상이다. 

그런 급변하는 세상에서 어디에 닻을 내릴 수 있는가? 

어디에 윤리적 기준, 삶의 기준과 목표를 찾을 수 있는가?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한 가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이 일을 또한 이루실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오랫동안 추구해왔던,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이끄실 것이다. 

어떤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그 길을 가도록 이끄실 것이다. 

무엇보다 재림의 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세우실 것이다. 

이것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이다. 

 

변화는 두려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인공지능의 특이점을 지나는 이 시점에도 크게 두렵다는 감정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다만, 인공지능이 가져다 줄 변화를 지혜롭게 다뤄야 한다는 책임감이 찾아온다. 

기술에 의해 휘둘리지 않고, 인류와 자연을 위한 탁월한 윤리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 기준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감히 말하건대, 그 기준의 잣대는 문화명령을 내리시고, 만물의 회복을 꿈꾸시는 삼위 하나님에게 있다. 

그분의 신실하심에 있다. 

 

오늘도 그분의 신실하심을 신뢰한다. 

나와 인류를 이끄시는 그분을 의지한다. 

 

 

[오늘의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저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인류를 위해 역사를 이끌어 오셨던 당신의 노력을 기억합니다. 

인류 역사의 특이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될 것 같습니다. 

과학 기술은 그렇게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허나, 그 모든 특이점 속에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당신의 사랑이며 당신의 약속입니다.

그 사랑을 신뢰하고 약속을 믿습니다. 

이 세상 살면서 더욱 빛과 소금의 삶을 살게 하소서. 

당신의 이름을 드높이고, 당신의 이름으로 선을 행하게 하소서. 

사랑을 실천하고 사랑을 드러내게 하소서. 

 

주님,

육체를 강건하게 만들어 주소서. 

근육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시고, 통증을 잘 다스리게 하소서. 

건강한 육체로 다른 사람들을 잘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젊은 사역자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가는 존재가 되길 원합니다. 

좋은 문과 통로가 되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사역을 사용해 주세요. 

밝은 빛으로 이끌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28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16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19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20 예언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21 모든 것을 분간하고, 좋은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22 갖가지 모양의 악을 멀리 하십시오.

 

 

바울은 일상의 자리에서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할 것을 권면합니다(16-18절). 그리고 성령과 예언을 굳게 붙들며, 분별력을 가지고 선을 행할 것을 이야기합니다(19-22절).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분의 주되심을 인정하게 될 때, 결국 기쁨과 감사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묵상]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구절은 어렸을 때부터 많이 암송했었다. 

그때도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참 지키기 어려운 권면이며, 명령이라는 사실이다. 

항상 기뻐하는 것도,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도,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도리어 항상 기뻐하는 것,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은 순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주 비판하고 자주 문제 제기하는 것이 기독 지성인의 일이며, 책무며, 삶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 생각에 100%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반기를 들고 싶다. 

기독 지성인의 책무는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을지, 어떻게 쉬지말고 기도할 수 있을지,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지를 연구해야 한다. 

비판하면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가? 

문제제기 하면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가? 

이것이 가장 어려운 고도의 지적, 심적 작업 아닌가!! 

 

기쁨이 사라진 문제제기, 감사가 빠진 비판이 얼마나 오래갈까. 

그것은 관계를 망가뜨리고, 스스로도 망가뜨린다. 

마음 속에 기쁨을 유지하고, 감사의 마음을 강화하고, 하나님께 기도의 제목을 언제나 올린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감지하고,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사랑과 정의가 더욱 확산되는 방향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욕하거나 무시하거나 힐난하지 않고 이슈와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협력할 바를 찾고, 거부할 것을 정중하게 거절하고, 좀 더 나은 건설적인 대안을 찾아보려고 노력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 비판적 생각을 연습하기 위한 비판, 인격을 모독하는 비판은 삼간다. 

비판적 생각을 연습하기 위해 자기 생각을 공개하지 않을 글로 정리해서 논리성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권장할 만하다. 

그러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화를 내고, 남을 깎아 내리고, 비판의 생각의 꼬리를 끊어내지 않고, 인격을 모독하는 등의 관계 파괴형 비판은 금물이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살면서, 문제제기가 삶의 디폴트 값이 되어 버렸다. 

문제 제기 하는 사람이 결국 영향력을 갖고, 리더십을 발휘한다. 

문제 발견형 감각과 논리 구조가 몸에 박혀 있다. 

기계처럼 반응한다. 

기쁨, 감사, 기도가 작용하지 못한다. 

사역자들 가운데도 많은 경우 이런 함정에 빠져 있다. 

설교를 하는 것, 글을 쓰는 것이 문제 찾기 일환이다. 

 

그러니 “비판/문제제기”와 “기쁨, 감사, 기도” 사이의 모순 관계가 놓이게 되며, 둘 다를 지혜롭게 잘 하는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바울은 이 난제에 해답을 성령님으로 보는 것 같다. 

성령과 예언을 대뜸 들이댄다. 

성령님이 없이는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말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성령님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이끌어 주셔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는 사람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그래야 기도가 끊어지지 않는다.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의 기쁨을 유지하라. 

피곤함이 주관하지 않도록, 기쁨과 감사가 내면에 흐르도록, 성령님께 기쁨 호수의 댐 수문을 주장하시도록 맡겨야 한다. 

성령님이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아름답고 멋진 모습들을 계속 묵상해야 한다. 

지식만이 아니라 더 크게 풍성한 감정의 물꼬를 열어두어야 한다. 

 

예언 관련해서는 분별이 핵심이다. 

과연 이 예언, 즉 대언이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사탄의 속임수인지, 아님 나의 욕망과 내면의 소리인지 구분해야 한다. 

그 구분이 핵심이다. 

그걸 구분할 수 있으면 성령님의 역사를 더욱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더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다 .

그러면 기쁨과 감사가 찾아온다. 

더불어 기도가 끊어지지 않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즐거운 일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그 어떤 즐거움보다도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 그 기쁨이 찾아오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저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예수님, 

도우시고 이끄시고 실마리를 만들어 주시는 예수님, 

오늘도 기쁨과 감사가 사그라드는 이 세상에서 오직 주님으로 인해 기쁨과 감사가 다시 살아나게 하소서. 

성령님께서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이미지에 주목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이 더욱 자주 생각나게 하소서.

예언의 말씀을 분별, 분간, 구분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인식, 알아차림, 이해하게 하소서. 

그것이 마음의 내적 기쁨을 낳고, 감사를 흐를게 하고, 기도의 끊을 더욱 붙잡게 합니다. 

부담스런 모든 시간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27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12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수고하며,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이들을 알아보십시오.

13 그들이 하는 일을 생각해서 사랑으로 그들을 극진히 존경하십시오. 여러분은 서로 화목하게 지내십시오.

 

14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을 훈계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십시오.

15 아무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도리어 서로에게,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NIV

Now we ask you, brothers and sisters, to acknowledge those who work hard among you, who care for you in the Lord and who admonish you(12절).

 

주석

14절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을 지칭할 수 있으며, ‘마음이 약한’ 사람은 슬퍼하고 맥이 빠진 사람들로 보인다. ‘힘이 없는’ 자는 역경이나 유혹의 공격을 받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일 수 있다(IVP 성경주석).

 

바울은 공동체 안팎의 관계에서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먼저 교회 지도자에게 가져야 할 태도로써 존경과 화목을 권고합니다(12-13절). 그리고 교회 안에 어려움을 겪는 이에게 영적인 도움을 주며(14절), 교회 밖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에 힘쓰라고 요청합니다(15절).

 

바울은 ‘형제자매’에게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할 것을 부탁합니다. 특별한 몇몇 사람이 아니라, 교인 모두에게 서로를 사랑으로 돌보고 지도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내하며 사랑으로 섬길 때, 그 공동체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로 세워집니다.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영적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묵상]

1. 교회 지도자들에 대해 

바울은 성도들에게 교회 지도자들을 사랑, 존경, 화목으로 대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전에 살펴야 할 것은 어떤 교회 지도자들인가 하는 점이다. 

이들은 성도들 가운데서 수고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도들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사람들이다. 

핵심은 이들이 수고한다는 점이다. 

지도하고 훈계하는 것도 수고로움이겠지만, 그보다도 더 많은 섬김으로 수고하기에 지도자라고 불린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지만, 예수님을 섬기러 왔으며, 그 본을 보여 주셨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삶을 사셨다. 

지도자는 권위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섬김을 실천해야 한다. 

 

마가복음 10:43-45_43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44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45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이런 지도자들에 대해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온당한가? 

바울은 사랑으로 대하라고 한다. 그리고 극진히 존경하라고 한다. 

더불어 그들과 화목하게 지내라고 한다. 

권위가 무너진 세상에서 교회 지도자들과 사랑으로, 존경으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세 가지 단어 중에, “극진히 존경”이라는 표현은 낡은 것으로 치부된다. 

상호 존중이라는 단어가 더 와닿는다. 

극진히 존경은 폐기되어야 할 어구로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런지는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무비판적으로 존경을 하는 것은 무모하고 위험하다. 

이단과 사이비가 판 치는 세상에서 지도자라고 해서 무조건 내가 가진 보석을 건네는 것은 옳지 않다. 

충분히 고민하고 생각해 보고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충분히 고민하고 생각한 뒤에, 그 지도자가 수고하는 섬김의 사람이라면 그리고 진실하고 신실하게 지도하고 훈계하는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극진한 존경”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존경은 위험한 요소가 분명히 있다. 

사람이란 언제든지 변할 수 있기에, 타락할 수 있기에, 지도자를 위해 극진한 존경보다는 안전한 존경이 어떨까 싶다. 

안전한 존경은 지도력의 범위와 한계를 함께 인정하고 그 한계와 범위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경우에는 최대한의 존경을 표하되, 그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는 경우에는 분명히 주의와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동체가 미리 정해 놓은 것이 필요하다. 

 

존경보다 더 좋은 것은 사랑일 거다. 

지도자도 약점이 있을 수 있다. 

약점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반응해 주어야 한다. 

부족함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죄에 대해서는 훈계와 치리와 용서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연약함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품고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더 크고 품이 넓은 나무가 될 수 있도록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도자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도와 지도자들 사이에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필요하다. 

 

2.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오늘 말씀 중에는 이 말이 가장 어렵게 느껴진다. 

참을 만한 사람에게 오래 참고 싶다.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는 것은 하기 싫은 것 중 하나다. 

마음의 약하거나 힘이 없는 사람은 그나마 참을 수 있겠다. 

하지만,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을 오래 참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오래 참으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바울은 마가에 대해 오래 참지는 못했던 전력이 있다. 

선교단 활동 도중에 팀을 이탈했던 젊은 마가에 대해, 그 다음 선교 여행 때는 배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자신의 신앙의 멘토격이었던 바나바와 싸우고 결별하게 된다. 

바울도 이 점이 약점이었던 걸로 보인다. 

완벽주의적 관점에서는 이런 약점이 있는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로 말한다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바울도 약점이 있는 사람이다. 

추후에 마가와 서로 화해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면에서 바울은 노력형이요 성장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은 귀담아 듣는 것이 좋다.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는 것은 성도들의 덕목이다. 

특히 약한 사람, 힘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참고 인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사이 나는 마음에 힘이 빠져 있다. 

간사 수련회 이후에 감기와 위장 장애로 몸에 힘이 없다. 

의욕도 감소했다. 

할 일은 많은데 덕지덕지 마음에 쌓여 있는 것들이 참 많다. 

기도의 깊이도 현저히 떨어졌다. 

글을 쓰는 것도 기도의 일환이겠으나, 묵상글과는 다른 깊은 기도로 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있다. 

다만 시간과 힘을 내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과연 내가 다 담당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이기적이게도 하나님께 나를 인내해 달라고 요청하고자 한다. 

마음의 힘이 없고 약하니, 주님께서 참고 인내해 주십사 부탁드리려고 한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힘을 경험하고 싶다. 

내 의지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의지에서 나오는 힘을 공급받고 싶다. 

 

시편이 그립다. 

이번 시심은 다 좋은데, 시편이 없다는 것이 때로 아쉽다. 

시편을 통해 내 감정을 토로하고 싶다. 

다윗을 따라 그의 감정을 따라 나도 하나님께 내 감정을 토해내고 싶다.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시는 그분께,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뢴다. 

 

오늘은 기도하는 날이다.

 

[오늘의 기도]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지 잘 아시는 예수님,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 대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저에 대해서도 참아 주세요.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깊이 없는 기도 생활에 은혜를 뿌려주소서. 

주님과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가길 원합니다.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삶의 활력을 공급해주세요. 

몸과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세요. 

스트레스로부터 저를 보호해 주세요.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기쁨이 넘치게 해 주세요. 

 

무기력 속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지 않게 하시고, 

독수리처럼, 범고래처럼 세포 하나 하나에 에너지가 공급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주님께 맡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26일 수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1 형제자매 여러분, 그 때와 시기를 두고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겠습니다.

2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3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 때에, 아기를 밴 여인에게 해산의 진통이 오는 것과 같이,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4 그러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아니하므로, 그 날이 여러분에게 도둑과 같이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5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며, 정신을 차립시다.

7 잠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술에 취하는 자들도 밤에 취합니다.

8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이므로,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슴막이 갑옷으로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씁시다.

 

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하심에 이르도록 정하여 놓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정하여 놓으셨습니다.

1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도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이, 서로 격려하고, 서로 덕을 세우십시오.

 

주석

3-4절 이 위협적인 사건에 대한 경고는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주의 날은 심판과 관련될 뿐 아니라 동이 트면서 비취는 ‘빛’과 같다. 여기서 빛은 하나님의 계시와 의를 상징한다. 신자들은 이미 이 빛을 받으며 살고 있다(IVP 성경주석).

 

바울은 주님의 날을 비유로 설명합니다. 그날은 밤에 도둑처럼 올 것이며(2절), 해산의 진통처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3절). 한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이들은 낮에 속하여 있으므로 그 어둠이 덮치지 않을 것입니다(4-5, 9절).

 

낮에 속한 사람은 마땅히 그 정체성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무장하고(8절),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6절). 그리스도가 행하신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살도록 하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11절). 나는 지금 깨어 있습니까? 갑옷과 투구로 무장되어 있습니까?

 

[오늘의 묵상]

1. 때와 시기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사람들은 항상 때와 장소를 떠올린다. 

시기를 잘 정하는 것, 장소를 잘 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 분위기가 좌우된다. 

분위기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과 기여에 대해 재고한다.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약속 장소와 시간에 예민하다. 

장소와 시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믿기도 한다. 

 

데살로니가 성도들 중에도 때와 시기에 더욱 더 예민한 분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언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지 계속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원칙이 있다.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예수님조차도 이 내용을 모른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다. 

마태복음 24:36_”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니 자꾸 그 시간에 대해 묻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상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날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평안과 주의를 함께 준다.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있으라 주의를 준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빛에 거하고 있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로 평안을 준다. 

이 두 가지 태도 모두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야 한다. 

 

먼저, 깨어 있어야 한다. 

정신을 놓아버림으로, 혹은 어떤 한 두 가지 일에 집중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면, 정신을 차려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실제 삶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와이파이를 계속 연결해 놔야 한다. 

그분이 언제 올지 모른다. 

덕후라는 시대풍조는 때로 정신없이 한 두 가지 일에 몰입하게 한다. 

그것 자체를 거부할 필요는 없으나, 정기적으로 자신을 객관화하고, 정말 집중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튜닝할 필요가 있다. 

 

둘째, 평안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경계하는 마음은 때로 우왕좌왕하게 만든다. 

긴장감이 지속되면 때로 판단이 흐려지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안에서 산다면, 재림에 대해 너무 걱정하거나 그 때를 놓치는 것에 대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끝까지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이다. 

평안한 마음은 주님에 대한 신뢰에서 온다. 

신뢰하지 못하면 평안을 유지할 수 없다. 

믿지 못할 사람들과 대화하면 할수록 불안이 가중된다. 

 

때와 시기에 연연하지 말되, 깨어서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한다. 

 

2.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지금이나 앞으로나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도들이 주님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다. 

다양한 기질의 사람들이 주님의 뜻에 동의한다. 

주님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주님 안에서 살아간다. 

이것을 위해 주님께서 죽으신 것이다. 

 

1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지금 살아서 주님과 함께 살든지, 앞으로 죽어서 주님과 함께 살든지, 핵심은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분의 숨을 받으며,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주님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것을 가능케 하신다. 

사탄도 두려운 존재고, 귀신도 무서운 존재다.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한가! 

모든 신들의 신인 하나님, 모든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은 무서운 존재다. 

그분과 함께 사는 것은 솔직히 인간으로서 불편하고 무섭고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부모처럼 깊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도록 결정적인 증거를 대는 것이다. 

그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예수님의 죽음이다. 

자기 자신과도 같은 아들을 사랑의 징표로 내놓으셨다.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통해 확증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 

그분께 나아가서 그분과 더불어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지금 그분과 함께 지내고 있는가? 

그분의 숨을 느끼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동행하는가? 

오늘의 질문이다. 

 

[오늘의 기도]

당신과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신 예수님, 

저는 주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과 더욱 가까이 지내고 함께 살고 싶습니다. 

당신의 말씀을 듣고, 당신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당신의 정서에 공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눈이 머무는 곳에 함께 머물고, 당신이 손발이 향하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몸은 곤하고, 감기 기운도 있습니다. 

할 일은 많은데, 눈이 감깁니다. 

주님, 육체의 피로를 이기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누리게 하소서. 

 

감당해야 할 일 앞에서 주눅들지 않게 하시고, 용감하게 처리하도록 도와주세요.

담대함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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