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3일 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선한 사람과 그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1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 내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2  내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에게서 온다.3  주님께서는, 네가 헛발을 디디지 않게 지켜 주신다. 너를 지키시느라 졸지도 않으신다.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5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은 네 오른쪽에 서서, 너를 보호하는 그늘이 되어 주시니,6  낮의 햇빛도 너를 해치지 못하며, 밤의 달빛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7  주님께서 너를 모든 재난에서 지켜 주시며, 네 생명을 지켜 주실 것이다.8  주님께서는, 네가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실 것이다.

 

NIV

My help comes from the LORD, the Maker of heaven and earth(2절).

 

주석

1절. 순례자인 시편 기자는 산 때문에 위축되어(안전하지 못한 길을 걷는 고충과 그 곳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도적이나 야생 동물의 위험 때문에), 하나님이 여행길에서 자신을 보호해 주시기를 간구한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이 시의 표제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이다. 

시인은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예배드리러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고 있다. 

그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께 향하고 있다.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할 것에 대한 소망,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경건한 자들을 만날 것에 대한 소망,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다시 한번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할 것에 대한 소망. 

소망으로 가득한 여행길이다. 

 

그러나 예루살렘까지의 여행은 위험이 도사린다. 

낮에도 밤에도 위험하다. 

순례자들만을 노리는 강도가 있다. 

산과 들에는 맹수들이 돌아다닌다. 

시인은 이 모든 위험과 장애를 뚫고 나아간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수적이다. 

혼자서는 어렵다. 

 

시인은 이미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생각할 때도 그렇고 지금 성전에 올라가는 길도 그렇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시인은 도움을 입고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도움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확신하고 노래한다. 

앞으로도 그 도움은 계속 될 것임을 믿고 찬양한다. 

 

매일 매일 기도해도 넘쳐나는 기도제목들이 있다. 

어찌 그 모든 것을 기도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는 것들도 하나님은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나의 심장과 숨을 붙들고 계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온 몸에 혈액을 보내고, 산소를 들고나게 하시는 분. 

생명을 유지시켜 주시는 분, 

육체의 생명 뿐 아니라 영적 생명을 공급하시는 분. 

그분을 찬양한다. 

 

내 생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 

생명을 유지시켜 주시는 분도 하나님, 

이 생명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 

그분의 도우심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오늘따라 생명의 근원되시는 그분이 더욱 다가온다. 

그분이 만물을 붙드신다. 

그분이 생명을 유지시키신다. 

그분께 맡길 일이다. 

 

 

[오늘의 기도]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 

당신이 만드신 생명의 메커니즘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수많은 우주의 별들 가운데, 

사람을 만드시고, 배치하시고, 유지하시는 하나님,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모든 것을, 심지어 생명 활동까지도 주관하시는 분이,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명령에 그저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반역할 수 있는 자유까지도 주셨습니다. 

이것 또한 신비롭고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 

저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저의 길을 도와주세요. 

주님과 더불어 이 길을 걷게 해 주세요. 

어려운 논의들을 이어갑니다. 

감당할 힘을 공급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8월 07일 월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모든 계명들을 낱낱이 마음에 새기면, 내가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9 이스라엘아, 주님을 의지하여라. 주님은, 도움이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신다.

10 아론의 집이여, 주님을 의지하여라. 주님은 도움이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신다.

11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주님을 의지하여라. 주님은, 도움이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신다.

 

12 주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여 주셔서 복을 주시고,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며,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신다.

13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니, 낮은 사람, 높은 사람, 구별하지 않고 복을 주신다.

14 주님께서 너희를 번창하게 하여 주시고, 너희의 자손을 번창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15 너희는 하늘과 땅을 지으신 주님에게서 복을 받은 사람이다.

 

16 하늘은 주님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다.

17 죽은 사람은 주님을 찬양하지 못한다. 침묵의 세계로 내려간 사람은 어느 누구도 주님을 찬양하지 못한다.

18 그러나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할렐루야.

 

The Message

The heaven of heavens is for God,

but he put us in charge of the earth(16절).

 

[오늘의 묵상]

시인은 계속 반복한다. 

주님은 도움이 되시고, 방패가 되어 주신다. 

그분은 우리의 큰 도움이시다. 

환난이 오고, 슬픔이 오고, 괴로움이 찾아 올 때, 그분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분이시다. 

사단의 공격이 찾아오고, 환경의 어려움이 다가오고, 무거운 피곤함이 몰려와도 그분은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신다. 

그러니 우리는 그분을 의지할 수 있다. 

시인은 주님을 의지하라고 말한다. 

이런 인식에 도달하는 것은 자연히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역사가 증명해야 한다. 

자신의 경험도 추가되어야 한다. 

한 두 번의 사건으로 이런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 

오랜 이스라엘 역사를 돌아보며,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은혜를 돌아보며 생겨난 인식이다. 

 

시인이 두 번째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첫째는 보호였다며, 둘째는 복이다. 

첫째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전제로 하는 부정적 상황에서의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면, 

둘째는 미래 비전과 소망을 전제로 하는 긍정적 상황에서의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보호와 함께 복을 주신다. 

시인은 번창이 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번성하는 것, 번창하는 것, 가정과 기업과 자손이 번창하는 것은 분명 복이 맞다. 

하지만 그게 진정한 복은 아니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과의 연합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시를 읽다보면 기업인들은 아마도 자신의 기업이 잘 되고 번창하고 성공하는 것을 복이라고 말할 것이다. 

맞다. 그것도 복이다. 

다만, 진정한 복은 아니다. 

그 기업을 통해 삼위 하나님의 연합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진정한 복이다. 

 

보호와 번창의 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을 영원히 찬양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요청되는 영성은 십자가를 경험하면서 찬양하는 영성이다. 

예수님은 사실 보호받지 못했다. 

번창의 복을 누리지도 못했다. 

도리어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 

죽음의 길을 갔다. 

그럼에도 그분은 하나님을 찬양한다. 

모든 뜻이 하나님께 달렸다 한다. 

욥은 자신의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의 원망을 인내하셨다. 

그리고 욥도 자신의 상황을 견뎠다. 

보호와 번창은 어쩌면 결과론일 수 있다. 

모든 순간, 모든 사안에 대해 동일한 보호와 번창의 복을 누리지는 못한다. 

그건 비현실적이고,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는다. 

때로는 보호막이 사라진 것 같고, 때로는 실패의 연속으로 자신의 꿈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결말은 아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충분히 찬양받으실 만한 결말을 제공하신다. 

인내가 필요하다. 

 

 

[오늘의 기도]

매 순간 기분 좋을 수는 없습니다. 

매 순간 즐거움을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때로는 슬프고, 고되고, 짜증나고, 지루하고, 격앙됩니다. 

그러나 종종 찾아오는 주님의 위로와 보호하심과 축복해 주심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월요일이 시작되었습니다. 

결코 할 일이 적지 않습니다. 

신경써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회피하지 않게 하시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을 경외함으로 일에 몰두하게 하소서. 

일은 사람을 돌보고 살립니다. 

그러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적극적으로 열정적으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을 살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하소서. 

그 깨달음 속에서 주님의 보호하심과 번창케 하심을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5월 22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23 배를 타고 바다로 내려가서, 큰 물을 헤쳐 가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은,24 주님께서 하신 행사를 보고, 깊은 바다에서 일으키신 놀라운 기적을 본다.25 그는 말씀으로 큰 폭풍을 일으키시고, 물결을 산더미처럼 쌓으신다.26 배들은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깊은 바다로 떨어진다. 그런 위기에서 그들은 얼이 빠지고 간담이 녹는다.27 그들이 모두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흔들리니, 그들의 지혜가 모두 쓸모 없이 된다.  

 

28 그러나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그들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신다.29 폭풍이 잠잠해지고, 물결도 잔잔해진다.30 사방이 조용해지니 모두들 기뻐하고, 주님은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그들을 인도하여 주신다.31 주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 사람에게 베푸신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  32 백성이 모인 가운데서 그분을 기려라. 장로들이 모인 곳에서 그분을 찬양하여라.

 

주석

배, 바다(23절) 항해는 이생에서의 경험을 보여주는 완벽한 영상이다. 모든 계산을 뒤엎어 버리며 소중히 여기는 위안거리를 파괴시켜 버리고 우리를 완전히 위압적인 세력에 붙들리게 하여 무방비 상태로 두는 폭풍이 온다. 모든 폭풍은 기도를 촉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폭풍이며 폭풍을 일으킨 동일한 손이 때가 되면 그것을 잔잔케 하실 것이다(IVP 성경주석).

 

묵상

시인은 항해 중에 큰 폭풍을 만나서 거의 죽게 된 자들을 이야기합니다(23-24절). 거대한 폭풍 앞에서 뱃사람의 지혜는 모두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26-27절). 그러나 한 가지, 그 폭풍이 하나님이 일으키신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25절).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은 폭풍을 잠재우시고 그들을 안전한 항구로 인도하십니다(28-30절).

 

계산 밖의 일이 언제 어디서 생길지 모른다는 점에서 인생은 항해와 닮아 있습니다. 내 삶에 안전하고 합리적인 일만 일어나면 좋겠지만, 하나님은 폭풍과 물결이라는 곤경이 삶에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기도 하십니다.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맞닥뜨릴 때,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폭풍을 잠잠하게 하실 하나님의 강한 손입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내 삶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안전한 항구가 됩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시인의 노래가 오랫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들려왔다. 

여호와 하나님은 풍랑에서 건져주시는 분이시다. 

말씀으로 폭풍을 일으키시는 분이시며 말씀으로 물결을 잔잔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이 일을 실제로 하신 분이 계시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폭풍으로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제자들을 구해 주신다. 

풍랑 가운데 우뚝 서셔서 말씀으로 폭풍을 잠잠케 하신다. 

그러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공동체의 오랜 신앙 고백과 노래에 적합한 인물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놀랄 수 밖에 없고 의아할 수 밖에 없다. 

두렵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하나님이 실제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자연 만물을 다스리시고 통제하신다. 

시편의 노래가 물리적 현실이 된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외부적 폭풍과 내면의 폭풍을 맞이한다. 

그 둘을 같이 맞딱뜨리면 참 곤란하다. 

난 지금 내면의 폭풍을 견뎌내고 있다. 

속이 너무 시끄럽다. 

항상 도피처를 찾는다. 

드라마는 좋은 도피처다. 

특별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휘몰아친다.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몰려온다.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내라는 말이 거슬린다. 

만족하나 만족스럽지 않다. 

행복한 듯 행복하지 않다. 

내면과 일상이 변화되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은 아닌가 싶다. 

몸도 마음도 또 한 번의 변화를 감지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집중하고 싶다. 

피정이 필요하다. 

마음의 복잡함을 내려놓고, 오직 그분의 뜻을 분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드라마라는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정서적 위안 거리를 내려놓고, 

본질을 향해 다시 나아가야 한다. 

생명과 에너지의 근본 되신 그분께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면의 폭풍을 잠재울 수 없다. 

바쁘다는 말로 대신하지 마라. 

바쁘다는 말로 허비하고 있는 시간이 아깝다. 

젊음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말들을 나에게 던지고 또 던진다. 

 

 

[오늘의 기도]

주님, 

폭풍같은 제 마음을 주님께 보여드립니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할 일이 많다고 계속 투정입니다. 

루틴을 망가뜨리는 모든 행사가 괴롭습니다. 

마음에 기쁨이 엷어지니 포용능력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폭풍같은 제 마음을 다스려 주소서. 

피곤한 육체를 다스려 주소서. 

약해진 의지를 고쳐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10월 11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다윗이 교훈을 하려고 지은 믹담, 지휘자를 따라 수산 에둣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 소바'와 싸울 때에 요압이 돌아와서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군 만 이천 명을 죽였다. 그 때에 다윗이 지은 시]

 

1하나님, 주님께서 우리를 내버리시고, 흩으시고, 우리에게 노하셨으나, 이제는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2주님께서 땅을 흔드시고 갈라지게 하셨으니, 이제는 그 갈라지고 깨어진 틈을 메워 주시어서, 땅이 요동치 않게 해주십시오.

3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에게 곤란을 겪게 하시고, 포도주를 먹여 비틀거리게 하셨습니다.

4활을 쏘는 자들에게서 피하여 도망치도록, 깃발을 세워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인도해 주십시오. (셀라)

5주님의 오른손을 내미셔서,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6하나님께서 성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크게 기뻐하면서 뛰어놀겠다. 내가 세겜을 나누고,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겠다.

7길르앗도 나의 것이요, 므낫세도 나의 것이다. 에브라임은 내 머리에 쓰는 투구요, 유다는 나의 통치 지팡이이다.

8그러나 모압은 나의 세숫대야로 삼고, 에돔에는 나의 신을 벗어 던져 그것이 나의 소유임을 밝히겠다. 내가 블레셋을 격파하고, 승전가를 부르겠다."

9누가 나를 견고한 성으로 데리고 가며, 누가 나를 에돔까지 인도합니까?

10하나님, 우리를 정말로 내버리신 것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의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않으시렵니까?

11사람의 도움이 헛되니, 어서 우리를 도우셔서, 원수들을 물리쳐 주십시오.

12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우리는 승리를 얻을 것이다. 그가 우리의 원수들을 짓밟을 것이다.


표제에 나와 있는 상황과 시인의 노래의 내용이 잘 맞지 않는다. 

표제에는 분명 요압이 돌아와서 에돔 군 만 이천 명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우리를 정말로 내버리신 것입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전쟁을 도와주시고 계신 것이 아닌가? 

다윗은 감사를 드려야지 지금 원망섞인 기도를 드리는 것이 합당한가? 

뭔가 이상하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찬양의 순간에 처절한 간구의 기도가 드려지고 있다. 

1절도 그렇다. 

 

1하나님, 주님께서 우리를 내버리시고, 흩으시고, 우리에게 노하셨으나, 이제는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언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단 말인가? 

언제 흩어셨단 말인가? 

다윗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는 있겠다. 

전쟁 자체가 고통이다. 

이방인들과 계속되는 싸움과 전쟁은 왕으로서 참 곤욕스런 일이다. 

외교력의 문제를 제기하는 신하와 백성이 있을 수 있다. 

전쟁을 매년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왕의 일이 아닌가? 

아무리 작은 전쟁이라도 결국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사실이다. 

전쟁이 일어난 것 자체가 하나님의 분노다. 

진정한 승리는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자발적인 순종으로 이끄는 것이 최고의 승리다. 

그런면에서 하나님이 온 세계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확고부동해지면 더욱 좋겠다. 

그래야 이스라엘 주변국도 더이상 제사장 나라인 이스라엘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8그러나 모압은 나의 세숫대야로 삼고, 에돔에는 나의 신을 벗어 던져 그것이 나의 소유임을 밝히겠다. 내가 블레셋을 격파하고, 승전가를 부르겠다.

 

실제로 이 세상 모든 나라의 소유권은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은 모압과 에돔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거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유다는 하나님의 통치지팡이이다. 

유다를 통해 하나님은 전 세계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로 하셨다. 

그러니 그 유다의 말을 따르는 것이 필요했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하는 것. 

그분의 다스림에 기쁨으로 따르는 것. 

그리스도인의 마땅히 해야 할 바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어서 그런 삶으로 들어오도록 인도하면 제일 좋은 일이다. 

 

한 주의 시작이다. 

그분의 다스림에 순복하고 싶다. 

그분의 이끄심에 기쁨으로 따르고 싶다. 


 

주님, 

한 주를 시작하는 시작이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주님께 저의 부담을 내려놓습니다. 

주님께서 인도해주세요.

억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진행되도록 주님께서 인도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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