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4월 18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25 나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남김없이 전파하게 하시려고 내게 맡기신 사명을 따라,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주석
24절. 1세기 유대인들은 주의 날 이전에 ‘메시아의 고통’이 있으리라 예상했다. 여기서 바울은 아마 이것을 가리킬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으로 육체적 고통이나 역경에서 구원받지 않았다. 도리어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참여하는 삶이다(IVP 성경비평주석 신약, 825쪽).

[오늘의 묵상]
1. 교회를 위하여 
여기서 교회는 하나의 지역 교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골로새 교회만을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가는 것이 아니었다. 
바울은 지역 교회의 총합과 보편 교회의 전체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가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불충분해서가 아니다. 
그리스도가 남겨주신 고난이다. 
예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정한 고난의 삶을 남겨주셨다. 
고난 없는 기독교인은 참된 그리스도인인지 돌아봐야 한다.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들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뜻이다. 
교회는 언제나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 했다.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피해자인 척 하는 자들과는 가능한한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진짜 아프고 고통받는 자들이 있다. 
그들을 품고 그들의 아픔에 동참해야 한다. 
그것이 교회를 위한 일이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고통에 동참할 것을 남겨 두셨다.

2. 교회의 일꾼 
지역 교회의 일꾼 만은 아니다. 
보편 교회의 일꾼이어야 한다. 
내 교회를 위해 헌신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모든 교회를 위해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주님의 사명을 받은 자로 살아가라. 

그분의 죽으심을 깊이 묵상하며 그분이 재정하신 새로운 언약의 성만찬을 기념하라. 
그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언제나 충성을 다하라. 
살아계신 하나님이 복음이다. 
질그릇을 새롭게 하시는 그분의 능력이 복음이다. 
새로운 언약의 재정과 성만찬으로의 부르심이 복음이다. 
그분은 우리와 화해하길 원하신다. 
이것이 복음이다.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의 기도]
인류의 죄악을 해결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세상의 악이 너무나 강고하고 성실합니다. 
선한 사람들은 피해만 입고 괴로워합니다. 
악인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말도 안되는 일들을 저지릅니다. 
그들을 정죄하시고 판단하옵소서. 

그리고 고통받는 자들에게 당신의 자비와 사랑을 베푸셔서 그들 영혼의 평안을 허락하소서. 
그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4월 17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21 전에 여러분은 악한 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고,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22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그분의 육신의 몸으로 여러분과 화해하셔서,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 앞에 내세우셨습니다.

23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에 튼튼히 터를 잡아 굳건히 서 있어야 하며,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복음은 하늘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었으며,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주석

23절. 이 복음이 모든 피조물에 전파되었다는 주장은 과장이 포함되어 있겠지만, 골로새 교인들에게는 그들이 혼자가 아님을 생각하게 해줄 것이다(IVP 성경비평주석 신약, 824쪽).

 

[오늘의 묵상]

1. 하나님과 원수 

골로새 교인들은 과거에 하나님과 원수였었다.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은 간단하다. 

악한 일을 거리낌 없이 행하면 된다. 

양심을 져버리면 된다. 

십계명에서 말하는 바, 인간 보편의 윤리를 개똥 취급하면 된다. 

좀 더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사탄을 따르게 된다. 

사탄은 인간 존재 근처에서 끊임없이 속삭인다. 

유혹하는 그를 이겨낼 사람이 거의 없다. 

때로 정신이 돌아와서 양심에 소리에 귀 기울인다 해도, 순간일 뿐이다. 

지속적으로 양심적으로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 그렇게 인간은 사탄의 유혹에 굴복하게 되는 걸까? 

첫째, 인간은 불안에 시달린다. 

주변에 고통당하는 사람 천지다. 

자신도 언제든지 고통의 늪에 빠질 수 있다. 

허우적거리고 발버둥쳐도 빠져나오기는 커녕 더 빨리 빨려들어간다. 

그러니 아무리 현재가 만족스럽더라도 행복하더라도 그 행복이 언제 꺼질지 모른다. 

도로의 싱크홀을 보라. 

갑자기 들이닥치는 불헹을 어떻게 막으랴. 

그러니 불안하다. 

 

둘째, 인간은 두려움에 시달린다.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다. 

어버이가 돌아가신다. 

친한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죽는다. 

죽음은 공허를 낳는다. 

그 사람이 빠져나간 공허에는 두려움이 가득 들이찬다. 

고인을 대체할 다른 것이 찾아 들어오기까지 죽음에 대한 공포는 매시간 현실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극대화시키는 사탄의 전략을 피할 자 누군가!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자들에게 위장 평안를 주려는 사탄의 전략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 

망령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공허한 자들의 영혼과 존재를 앗아간다. 

윤리며 삶이며 배려며 타인이 사라지고, 오직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나르시스트가 등장한다. 

하나님의 원수의 탄생이다. 

 

2. 복음의 능력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이 복음이다. 

하나님의 원수가 그분의 자녀가 되도록 화해시키신 것이 복음이다. 

관계 회복의 방법을 제시하신 것이 복음이다. 

망가진 영혼과 정신세계를 복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 복음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복음이다.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는 소망을 품게 된다. 

 

바울은 이 복음을 전하는 소명을 받았다. 

복음은 전해야 그 효과가 실효된다. 

복음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여야만 복음의 능력이 실효적으로 나타난다. 

실제 이뤄진 일들을 자신이 수용하지 않으면 자신만의 감옥에 갇혀 있을 뿐이다. 

작은 방, 혹은 약간 큰 집에 갇혀 있는 자에게 복음은 밖으로 나오도록 이끈다. 

넓은 세계가 있고 자유가 있다. 

 

종교에 매이지 않아야 한다. 

종교성에 기대지 말고, 복음에 몰입하라. 

종교적 행동에 만족하지 말고 복음의 소식에 항상 귀기울이라. 

복음이 일으키는 생명의 회복을 주목하라.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회복을 관찰하라.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이 기쁜 일들을 이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기쁜 소식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탄의 유혹과 함정으로부터 구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슬픔이 아니라 저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로 흘러가도록 이끄소서. 

생명, 평화, 사랑, 정의가 흘러가서 사람이 동물이 생물이 살아나게 하소서. 

악한 구조와 조직이 무너지고 와해되게 하소서. 

 

무엇보다 

예수님 빨리 오셔서 

당신의 나라 완성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4월 15일 화요일

 

여는 기도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13 아버지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14 우리는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Message

God rescued us from dead-end alleys and dark dungeons. He’s set us up in the kingdom of the Son he loves so much, the Son who got us out of the pit we were in, got rid of the sins we were doomed to keep repeating(13-14절).

 

주석

13절.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 현재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 또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킨다(IVP 성경주석 신약, 586쪽).

 

[오늘의 묵상]

1. 암흑의 권세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이방인으로서 유대인들의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기 종족을 배신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야기는 그들의 삶을 바꾸었다. 

그들이 믿었던 신, 신화, 이야기, 세계관은 사실 암흑과도 같았다. 

자유, 평화, 생명, 번영이 없는 곳, 

독재, 복종, 죽음, 전쟁, 살상이 판 치는 곳, 

사탄의 권세가 지배하는 곳, 

암흑에서 살아왔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세상의 독재자들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사회를 계급으로 나누고 낮은 계급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상위 계급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도록 했다. 

노예의 삶은 처참했고, 평민의 삶도 녹록치 못했다. 

여성 노예들은 주인의 성 노리개였고, 남성 노예들은 상류층의 기쁨을 주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암흑의 권세가 세상을 지배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권세를 꺾으시고 사람들을 구출하셨다. 

과거 히브리 노예들은 절대 권력 파라오로부터 구출했듯이, 

이제는 사탄의 졸개들인 제국과 왕국의 권세로부터 사람들을 구출하셨다. 

영적인 탈출 뿐 아니라 육체와 정신의 탈출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그 둘을 구분하여 영적인 탈출만을 강조하는 것은 영지주의적이다. 

하나님은 영육을 동시에 구출하신다. 

 

2. 현실의 암흑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들의 영육을 구출하신다. 

허망한 죽음으로부터 구출하신다. 

전쟁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출하신다. 

악한 정권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출하신다. 

 

윤석열 정권은 악한 정권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그룹이다. 

돈이 된다면 국가 기관을 유린하고 사람들을 사지로 내몬다. 

자신들에게 충성하는 자들까지도 배반한다. 

윤석열은 파면당하는 것을 넘어서 그 죄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법과 제도와 절차를 깡그리 무시했다. 

 

완벽한 정권이 어디에 있겠는가? 

허나 언제나 최선은 있다. 

현실에 기반한 최선의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 

차선도 좋다. 

최악은 면해야 한다. 

최소한 “선”한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한 자리씩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으면 안된다. 

국민과 공동체를 위한 자기 희생과 헌신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윤석열은 여전히 내란 관련 형사 재판 중에도 1시간 30분 이상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정한단다. 

국민 계몽을 위한 평화적 계엄이란다. 

국회와 선관위에 군대를 보내놓고선 어떻게 평화적 계엄이라고 주장하는가!

거짓말을 밥먹듯 숨쉬듯 한다. 

이런 자가 대통령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참된 자유와 정의 속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 세계로 전하길 바란다. 

참된 자유와 정의는 세상의 방식으로 구현되지 못한다. 

오직 자기의 몸을 희생시킴으로써 사랑의 본을 보여주신 신이자 인간이셨던 예수님을 통해서 가능하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확산시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유의 정의는 구호로 될 일이 아니다. 

희생당하신 예수님을 삶의 모델과 주인으로 삼을 때 가능하다. 

철학과 수양으로 되지 않는다. 

그분을 참으로 따라야 가능하다. 

 

 

[오늘의 기도]

저와 많은 사람들을 구출해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으로 어둠의 권세로부터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당신의 삶을 다시 묵상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삶을 따랐던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가난하여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깊이 들어가도록 인도하소서.

션처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김장하 선생님처럼 바라는 것 없이 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처럼 누군가를 진심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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