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지역 교회 청소년부 부장집사인 그는 이번 여름 청소년부 수련회에서 저녁 집회 설교를 해달라고 몇 달 전에 부탁을 했었다. 이번 통화는 그 후속 통화였다. 친구는 요즘 그 교회 청소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신앙적 고민을 하고 있는지 꼼꼼하게 설명했다. 그리고는 회심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준비해주길 부탁했다. 그는 요사이 보기드문 부장집사님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와의 통화로 인해 수련회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고, 참가할 학생들에게 최선의 것으로 대접하고 싶은 열망이 속에서부터 올라왔다. 

책을 들었다. 안식월 복귀후 사무실 책상에 놓여 있었던 책은 조장호님의 “오늘을 위한 아우구스티누스 인생 수업”(IVP)이었다.  잠깐만 읽어도 명료하고 유려한 문체에 쉽게 몰입이 되었다. 번역서가 아닌 한국인 저자의 힘이다. 


회심이라는 주제가 머리 속에 박혀 있으니, 그의 책을 읽을 때도 그 주제와 관련된 내용들이 쏙쏙 들어왔다. 

“회심은 궁극적으로 사랑하고 열망하는 대상이 바뀌는 것이며, 사람의 전 존재를 움직이는 중심은 바로 사랑이다. 이 점에서 선생은, 지식과 앎을 앞세웠던 그리스・로마 철학의 지성주의(intellectualism) 경향과 달리, 의지와 사랑을 통해 인간 존재의 역동을 정확하게 집어낸다.”(p.32) 

저자는 신앙의 거대한 봉우리인 아우구스티누스의 많은 이야기 속에서 회심이라는 주제를 강조한다. 회심은 사랑과 열망의 대상이 바뀌는 거란다. 그리고 사람의 존재 중심은 다름 아닌 사랑이란다. 오래전부터 들어왔고, 관련된 설교도 수십차례 해 왔지만, 오늘따라 다시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남는다. 

그렇다. 회심은 일차적으로 인간 존재 중심에 있는 사랑과 열망이 바뀌는 것이다. 거기에 머물지는 않는다. 사랑과 열망이 인간의 왜곡된 의지를 변화시킨다. 아는 것, 지식만으로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사랑의 대상, 열망의 방향이 바뀌어 의지가 발동하여 그 대상과 방향으로 움직이고자 하는 열의가 느껴진다.  

“사랑이 건강한 질서를 되찾아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려는 의지의 변화가 온 것이다.”(p. 101)

사랑의 변화, 의지의 변화만으로도 회심이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결국 구제적인 행동의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 회심이다. 후회하고도 다르다. 뉘우침, 용서를 빔, 잘못 인정 등과도 다르다. 회심은 사랑과 열망의 방향을 틀어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일까지 포함한다. 행동의 변화까지 회심이다. 

우연히 발견한 책에서 좋은 힌트, 필요한 통찰을 얻는다. 나에겐 이런 것이 은혜다. 생각지 못한 일, 사건, 자료, 만남을 통해 고민의 단초가 연결되고 풀어진다. 오늘도 우연히 발견하고 읽게 된 이 책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다. 

2025 05 15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 다윗이 혼자서 생각하였다. “이제 이러다가, 내가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붙잡혀 죽을 것이다. 살아나는 길은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망명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사울이 다시 나를 찾으려고 이스라엘의 땅을 뒤지다가 포기할 것이며, 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게 것이다.”

 

2 그래서 다윗은 일어나서, 자기를 따르는 부하 육백 명을 거느리고, 가드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넘어갔다.3 그리하여 다윗은 가드에 있는 아기스에게로 가서 거처를 정하였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저마다 가족을 거느리고 살았는데, 다윗이 거느린 아내는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인 아비가일이었다.4 다윗이 가드로 도망갔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전하여지니, 그가 다시는 다윗을 찾지 않았다.5 다윗이 아기스에게 간청하였다. “임금님이 나를 좋게 보신다면, 지방 성읍들 가운데서 하나를 나에게 주셔서, 내가 곳에 정착할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종이 어떻게 감히 임금님과 함께, 임금님이 계시는 도성에 수가 있겠습니까?”6 그러자 아기스는 당장 시글락을 다윗에게 주었다. 그래서 시글락이 날까지 유다 왕들의 소유가 되었다.7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지역에서 거주한 기간은 달이었다.

 

주석 

1. 600명의 군사와 함께했던 다윗은 이상 오래 숨어있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스라엘 근처의 다른 나라들 가운데 사울과 동맹관계를 맺은 나라로 피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현재 다윗의 유일한 선택은, 사울과 적대관계에 있었던 블레셋 편에 서는 것이었습니다(IVP 성경주석, 433).

 

1. 가드 아기스 

나 아기스는 최근 기이한 일을 경험했다. 

우리의 적국인 이스라엘의 다윗 장군이 군사 600명을 이끌고 투항한 것이다. 

살려달라고 찾아왔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거다.

지금 이스라엘은 내부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사울 왕은 자신의 최고의 장수 다윗을 죽이려들고 있다. 

 

사실 나로서는 다윗을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껄끄러웠다. 

다윗 하면 우리의 위대한 장수였던 골리앗이 떠오른다. 

골리앗은 이곳 가드 출신이었다. 

블레셋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탁월한 장수였는데, 청소년에 불과한 어린 다윗에게 죽임을 당했다.

가드 사람이라면 그 사건을 모르지 않는다. 

게다가 몇년 전에 저 다윗이라는 작자가 미친 척하며 우리 곁에 기거했던 적도 있었다. 

이만하면 우리가 그를 죽일 이유도 충분하다. 

그는 우리를 속였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잘 이용하면 우리가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사울과 다윗은 싸우고 있다. 

다윗과 600명의 군사가 사울의 군대와 전투를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순풍에 돛단배다. 

다윗과 그의 무리들은 지금 죽을 각오를 하고 우리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들에게 남은 옵션이 별로 없다. 

우리가 갑이다. 

 

블레셋의 신, 다곤님이 드디어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다. 

 

그런데 다윗이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지방 성읍을 하나 달라고 한다. 

신하, 참모, 책사들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많이 했다. 

다윗을 우리 편으로 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나도 그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다윗을 확실히 우리 편으로 묶어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식솔과 군사들도 기본적인 삶의 유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땅이 필요하다. 

시글락이 적절해 보였다. 

현재 살고 있는 시글락 백성들에겐 야속한 일이겠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다른 성읍으로 이주하는 것이 낫겠다. 

 

선물인 듯 골칫거리다.

시간이 지나 다윗과 그의 군사들을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 아기스에게 하나님은?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블레셋의 신인 다곤을 섬겼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참으로 무서운 신이다. 

과거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왔다가 크게 고생한 적이 있었다. 

아기스는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다곤과 여호와가 제대로 붙으면 다곤이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윗이 군사들을 이끌고 왔을 때, 아기스는 번민이 있었을 것이다. 

많았겠지만, 종교적인 이유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자신은 다곤을 섬기고, 다윗은 여호와를 섬긴다. 

철저하게 다윗을 검증했더라면, 다윗과 그의 군사들에게 여호와를 버리라고 강요했을 것이다. 

아기스는 그것까지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점이 의아하다. 

적군의 장수가 항복하고 전향할 때는 그의 신념을 바꾸라고 특히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종교적 신념을 바꾸라고 말했을 것 같은데, 아기스는 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실수이며, 또한 하나님의 역사일 게다. 

하나님이 다윗을 돌보시는 방법 중에 하나로 보인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아기스에게 충고의 메시지다. 

다윗을 바꾸지 못한다면 자신과 자신의 나라가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은 블레셋도 회개하길 바라셨다. 

요나 시대의 앗수르에 대해서도 그러하셨듯이, 다윗 시대의 블레셋에게도 그러셨을 것이다.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여주셨는데,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들의 신이 더 위대할 거란 착각을 하고 있다. 

그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성경의 주변 인물에게 집중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주변 인물, 그래서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존재는 중요하며 심각했다. 

그들도 성경 이야기, 그 거대한 흐름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그런 작고 감춰진 이야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변 인물에게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오늘의 기도 

모든 자들에게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는 겸손한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세상의 왕들은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을 의지하도록 인도하소서. 

 

다윗의 처량한 신세가 어찌보면 아기스에게 영적인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다윗으로부터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배웠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연약한 사람에게 배워야 합니다. 

겸손하게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응시하고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주소서. 

 

약한 자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 05 14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3 다윗이 맞은편으로 건너가 멀리 산꼭대기에 섰다. 다윗과 사울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14 여기서 다윗이 사울의 부하들과 넬의 아들 아브넬에게 소리쳤다. “아브넬은 대답을 하여라!” 아브넬이 대답하였다.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소리를 쳐서 임금님을 깨우느냐?”15 다윗이 아브넬에게 호통을 쳤다. “너는 사내 대장부가 아니냐? 이스라엘 천지에서 너만한대장부가 어디에 있느냐? 그런데 네가 어째서 너의 상전인 임금님을 보호하여 드리지 않았느냐? 백성 가운데 사람이 너의 상전인 임금님을 범하려고 이미 들어갔었다.16 너는 이번에 너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말하지만, 너희가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너희의 상전을 보호해 드리지 못했으니, 너희는 이제 죽어 마땅하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 왕의 창이 어디로 갔으며, 왕의 머리맡에 있던 물병이 어디로 갔는지, 어서 찾아 보도록 하여라.”

 

17 사울이 다윗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말하였다. “나의 아들 다윗아, 이것이 정말로 너의 목소리냐?” 다윗이 대답하였다. “나의 상전이신 임금님, 그러합니다.”18 그런 다음에, 다윗이 말하였다. “나의 상전이신 임금님은 어찌하여 이렇게 임금님의 종을 사냥하러 나오셨습니까?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손으로 저지른 죄악이 무엇입니까?19 나의 상전이신 임금님은 종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임금님을 충동하여 나를 치도록 시키신 분이 주님이시면, 나는 기꺼이 희생제물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임금님을 충동하여 나를 치도록 시킨 것이 사람이면, 그들이 주님에게서 저주를 받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유산으로 주신 땅에서 내가 받을 몫을 받지 못하도록 하고, 나더러 멀리 떠나가서 다른 신들이나 섬기라고 하면서, 나를 쫓아낸 자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20 그러니 이제,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방 땅에서, 내가 살해당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찌하여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사냥꾼이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듯이, 겨우 벼룩 마리 같은 나를 찾으러 이렇게 나서셨습니까?”21 사울이 대답하였다. “내가 잘못했다. 나의 아들 다윗아, 돌아오너라. 네가 오늘 나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겨 주었으니, 내가 다시는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 정말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아주 잘못을 저질렀다.”22 다윗이 말하였다. “여기에 임금님의 창이 있습니다. 젊은이 하나가 건너와서 가져가게 하십시오.23 주님께서 사람에게 공의와 진실을 따라 갚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오늘 임금님을 나의 손에 넘겨 주셨지만, 나는,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임금님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24 그러므로 내가 오늘 임금님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겼던 것과 같이, 주님께서도 나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시고, 어떠한 궁지에서도 나를 건져 내어 주실 것입니다.”25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나의 아들 다윗아, 하나님이 너에게 주시기를 바란다. 너는 참으로 일을 해낼 만한 사람이니, 매사에 형통하기를 바란다.” 다윗은 자기의 길로 가고, 사울도 자기의 궁으로 돌아갔다.

 

NASB 

“Now behold, as your life was highly valued in my sight this day, so may my life be highly valued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may He deliver me from all distress.” Then Saul said to David, “Blessed are you, my son David; you will both accomplish much and surely prevail.” So David went on his way, and Saul returned to his place(24-25).

 

1. 아브넬

아브넬은 갑자기 들린 큰 소리에 잠이 번쩍 깼다. 

다윗의 목소리였다. 

그 내용은 더 가관이었다. 

사울 왕을 제대로 호위하지 못했으니, 죽음으로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어디 감히…

그런데 정말 왕의 창이 사라졌다. 

화들짝 놀라 다윗이 소리치는 방향으로 몸을 틀고 바라봤다. 

저 멀리 산 꼭대기에 다윗과 한 사람이 서서는 이쪽을 향해 말하는 것이 보였다. 

창과 물병을 가져갔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왕의 물병도 사라졌다. 

정말 저들이 우리에게 찾아왔던 것이다. 

최소한 저들이 아니라도 첩자를 시켰건, 날렵한 부하를 시켰건, 우리 진영 깊숙이 들어왔다는 건 사실이다. 

이건 방어 실패다. 

 

사울 왕이 다윗을 ‘나의 아들아’라고 불렀다. 

그리고 다윗을 잡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건 정말 최악이다. 

다윗이 복귀하는 것은 큰 위협이다. 

게다가 다윗이 하는 말의 핵심은, 사울 왕을 누군가가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시키신 것이 아니라 신하 중에 왕을 속여 다윗을 죽이게 만들었다는 거다. 

다윗이 복귀하면 사울의 명령을 따라 다윗을 추격했던 우리 모두 죽게 된다. 

그런데 왕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매순간이 위기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위기를 경험케 하시는가? 

다윗의 하나님은 아브넬의 하나님은 아니란 말인가? 

솔직히 내가 사울 왕을 부추긴 것은 아니다. 

왕이 스스로 다윗을 시기하고 미워했던 것이다. 

그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다윗은 사울의 시기를 신하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경계 근무에 실패한 것, 안일하게 대처한 것은 나의 잘못이 맞다. 

그러나 왕이 다윗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2. 다윗의 하나님, 모두의 하나님

하나님은 다윗의 하나님이시기만 한가? 

아님 모두의 하나님이신가? 

답은 정해져 있다.

그분은 모두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사울 혹은 아브넬의 하나님의 아니다. 

권력자의 시기를 받아 눈 밖에 나서 몇천명의 군사들로부터 쫓기는 다윗의 하나님이시다. 

연약한 자, 고통받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권력의 부당한 압제로부터 죽음의 골짜기를 걷고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자기 욕망에 충실하다 못해 과잉충성하는 자의 하나님이 아니다. 

평범한 일상을 빼앗기고 찢겨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느끼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나에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의 욕망을 극대화하길 원하시기보다 당신의 뜻이 분명해지길 바라시는 분. 

한 개인인 나의 소망을 무조건 들어주시는 분이시기보다 거대한 이야기의 일원으로 그 뜻에 따라 살기를 원하시는 분. 

그렇다고 그분이 나의 소망과 소원에 무관심하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그분에겐 그분의 뜻이 있다. 

나의 뜻이 그분의 뜻을 넘어서서 강변되어서는 안된다. 

 

 

 

오늘의 기도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며 주님이신 여호와 하나님, 

한 개인의 기도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시에 한 개인의 기도를 넘어서서 당신의 소망과 뜻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주님의 뜻을 알고 따르는 것이 참 기쁨입니다.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인간의 주체성이 강조됩니다.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어떤 우상의 동굴에서도 벗어나서 초인의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저는 초월적 하나님을 믿고 따릅니다. 

그게 저라는 사람의 길입니다. 

압도적으로 충만한 이 세상의 신비를 무시하지 않겠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오직 이 세상의 창조주를 따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5월 13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1 십 광야의 주민이 기브아로 사울을 찾아와서 밀고하였다. “다윗은 여시몬 맞은쪽 하길라 산 속에 숨어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2 그래서 사울이 일어나, 이스라엘에서 삼천 명을 골라 거느리고, 십 광야에 있는 다윗을 찾으러 직접 십 광야로 내려갔다.3 사울은 여시몬 맞은쪽 하길라 산 속으로 들어가 길 가에 진을 쳤다. 이 때에 다윗은 바로 그 광야에 있었기 때문에, 사울이 자기를 잡으려고 그 광야로 쫓아온 것을 알게 되었다.

 

4 다윗은 곧 정찰대원들을 파견하여, 사울이 와 있는 장소가 어디인가를 확인하게 한 다음에,5 사울이 진을 친 곳으로 가 보았다. 다윗이 그 곳에 와 보니, 사울과 넬의 아들 아브넬 군사령관이 자고 있었는데, 사울은 진의 한가운데서 자고, 그의 둘레에는 군인들이 사방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6 그래서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인 아비새에게, 누가 자기와 함께 사울의 진으로 내려가겠느냐고 물으니, 아비새가 나서서, 자기가 다윗과 함께 내려가겠다고 대답하였다.7 이리하여 다윗이 아비새를 데리고 밤에 군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 보니, 사울이 진의 한가운데서 누워 자고, 그의 머리맡에는 그의 창이 땅바닥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군인들은 그의 둘레에 사방으로 누워 있었다.8 아비새가 다윗에게 자청하였다. “하나님이 오늘, 이 원수를 장군님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제가 그를 당장 창으로 찔러 땅바닥에 박아 놓겠습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이, 한 번이면 됩니다.”9 그러나 다윗은 아비새에게 타일렀다.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 그 어느 누구든지,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자를 죽였다가는 벌을 면하지 못한다.”10 다윗이 말을 계속하였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말하지만, 주님께서 사울을 치시든지, 죽을 날이 되어서 죽든지, 또는 전쟁에 나갔다가 죽든지 할 것이다.11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이를 내가 쳐서 죽이는 일은, 주님께서 금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12 다윗이 사울의 머리맡에 있던 창과 물병을 들고 아비새와 함께 빠져 나왔으나, 보는 사람도 없고, 눈치채는 사람도 없고, 깨는 사람도 없었다. 주님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셔서, 그들이 모두 곤하게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NIV 

Abishai said to David, “Today God has delivered your enemy into your hands. Now let me pin him to the ground with one thrust of the spear; I won’t strike him twice(8절).”

 

주석 

11절. 다윗이 밤에 사울의 진영에 들어가 탈취한 창은, 왕의 직위를 상징하며 왕의 공식 의전에 사용되는 무기였습니다. 어떤 사람의 물과 무기를 빼앗았다는 것은, 그의 생명이 빼앗은 이의 손에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IVP 성경배경주석-구약, 450쪽).

 

[오늘의 묵상]

 

1. 아비새 

다윗은 장차 왕이 될 인물이다. 

그가 당하는 고통에 깊이 공감된다. 

그는 잘못이 없다. 

사울 왕의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고 있다. 

나발이 무시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를 잘 보위하여 추후에 왕으로 옹립하는 것 그게 아비새 내가 할 일이다. 

 

이 날도 사울의 위협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웠다. 

수천의 군사들이 코앞에 왔다. 

느닷없이 다윗이 아히멜렉과 나 아비새에게 제안을 한다. 

사울 왕의 진영으로 들어가자라는 것이다. 

왜? 

도대체 이 작전의 목적과 이유는 무엇인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수천의 군사를 뚫고 사울 왕을 잡자는 것인가? 

아님 군사 동향을 파악하자는 것인가? 

후자라면 세작을 보내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사울을 죽이자는 이야긴데, 과연 둘이서 가능한 일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다윗이 그동안 보여준 전략과 임기응변을 알기에, 무엇보다 그의 권위가 하나님과 맞닿아 있기에 따르기로 했다. 

 

밤에 내려가니 모두들 아주 편하게 자고 있었다. 

경계도 약했다. 

싸움을 하러 온 사람들이 맞나 싶었다. 

아마도 국가간의 전쟁이 아닌데다 쫓기는 신세인 다윗 일당이 무엇을 할까보냐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울 왕이 잠들어 있는 곳까지 손쉽게 찾아갔다. 

진의 중앙에 있을 것이 당연했다. 

아무도 불침번을 서지 않고 있었다. 

왕과 더불어 모든 참모들이 깊이 잠들어 있었다. 

절호의 기회다. 

이건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기회다.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다윗 군대의 장군으로서 내가 적장을 벨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다윗이 시키기만 하면 이 지긋지긋한 도망자의 신세도 끝이다.

 

“장군님!! 제가 그의 목숨을 끊겠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울을 맡기셨습니다.” 

작은 소리지만 단호했다. 

 

“아니다. 주님께서 기름부어 주신 자를 죽여서는 안된다.” 

 

와… 이런… 숨이 막힌다. 

답답하다. 

지난 번에도 사울을 살려 준 적이 있었다. 

그 때 사울은 다시는 다윗을 뒤쫓지 않겠다 했다. 

그런데 상황은 어떤가? 

여전히 쫓고 쫓기는 상황 아닌가? 

그를 죽이지 않고서는 이 상황이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답답한 소리를 하다니… 

순간 진절머리가 나고, 욱하는 뱃심이 올라왔다. 

 

“창과 물병만 챙기고 가자” 

 

이 아까운 기회를 이렇게 날리다니… 

이 절호의 찬스를 이렇게 허비하다니… 

 

2.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 

아비새는 아마도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다윗의 말을 과연 들어야 하는지, 아님 과감하게 이 상황을 종결해야 하는지..

그동안 겪은 역경을 생각하면, 다윗을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과감하게 결행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비새는 다윗의 말을 순종했지만, 나라면 좀더 과감했을 수도 있었겠다. 

도망자의 신세를 모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은 너무나 아쉽다. 

 

하나님의 뜻은 나의 욕망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정말 많다. 

내가 바라는 것,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가 있다. 

순간 순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거대 서사가 있다. 

또한 미시적인 바램도 있으시다. 

그분의 거대 서사 속에 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미시적인 뜻도 분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도가 필요한 이유다. 

묻고 기다리고 행동하고 다시 묻고 기다리고 행동하고의 반복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거대한 이야기를 계속 바라보고 응시한다. 

 

내면의 욕망의 소리를 들을 것인가? 

하나님의 거대한 이야기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소리를 들을 것인가? 

가끔 내 욕망의 소리가 너무 커질 때가 있다. 

그 소리를 잠재워야 거대한 북의 미세한 떨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기에 내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님의 뜻을 구한다. 

 

[오늘의 기도]

지혜가 많으신 하나님,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 막막함도 익숙해져야 합니다. 

주님의 길을 걷게 하소서.

눈에 보이는 당장의 필요를 쫓기보다 거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계속 떠올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사람들의 필요, 공동체의 필요를 잘 파악하고 필요한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학사 운동을 정립하고 그 기초를 잘 쌓도록 이끄소서.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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