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06일 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선한 사람과 그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1  내가 고난을 받을 때에 주님께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여 주셨다.2  주님, 사기꾼들과 기만자들에게서 내 생명을 구하여 주십시오.3  너희, 사기꾼들아, 하나님이 너희에게 어떻게 하시겠느냐? 주님이 너희를 어떻게 벌하시겠느냐?4  용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싸리나무 숯불로 벌하실 것이다!5  괴롭구나! 너희와 함께 사는 것이 메섹 사람의 손에서 나그네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구나. 게달 사람의 천막에서 더부살이하는 것이나 다름없구나.6  내가 지금까지 너무나도 오랫동안,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왔구나.7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평화를 말할 때에, 그들은 전쟁을 생각한다.

 

NIV

I call on the LORD in my distress, and he answers me(1절).

 

주석

5절. 극 북쪽에 있는 ‘메섹’(창 10:2)과 시리아 아라비아 사막에 있는 ‘게달’(렘 2:10)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시편 기자가 살 수 없는 곳이다. 이 두 장소는 은유적으로, 집에서 매우 먼 곳, 황량한 이 세상의 바깥쪽을 암시한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사기꾼들과 속이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들은 자신의 잇속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속인다. 

감옥에서도 꼭 피해야 할 재소자들이 있는데, 바로 사기범이란다. 

그들에게 잘 못 걸리면 평생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 

물리적 상해를 입는 것만큼이나 사기를 당해 평생 모아 온 돈을 날리고 빚더미에 앉는 것도 고통스럽다. 

사기꾼들은 결국 싸움을 만들어 낸다. 

남을 속이기 때문에 공동체에는 불신이 싹튼다. 

깊은 불신은 평화를 저해한다. 

불신이 결국 전쟁을 만들어낸다. 

정직이 결국 전쟁을 막는다. 

정직해야 신뢰가 쌓인다. 

 

나 혼자 아무리 평화를 사랑한다고 해도,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갈등과 긴장 그리고 싸움에 휘말리기 마련이다. 

실수도 정직하게 말하면 해결할 수 있다. 

잘못과 부족함도 정직하게 인정하면 그 이후를 바라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루고자 하는 목표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감추고 속이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목표에 달성하는 듯 싶지만, 어느새 자기 주변에 갈등과 긴장으로 나가 떨어지는 사람들 투성이다. 

자칫하면 서로 미워하고 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나도 정직해야 하지만, 정직한 사람들 사이에 지내는 것도 축복이다.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 속에 지내는 것이 축복이다. 

갈등과 긴장이 있지만, 결국 정직한 사람들은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들여 준다. 

오늘도 다시 정직을 연습한다. 

 

그렇게 기도의 세계로 들어간다. 

기도의 세계는 정직의 세계다. 

거짓으로 기도할 필요는 전혀 없다. 

기도는 정직을 연습하는 최적의 장소다. 

하나님은 나의 심정을 잘 아신다. 

그분께 숨어, 그분의 품 안에서 나의 바램과 소원을 아뢴다. 

그렇게 정직을 연습한다. 

 

[오늘의 기도]

정직한 영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주님께 숨길 것이 없습니다. 

작은 욕망도, 작은 수치도 주님께 내어 놓습니다. 

실수도 부족함도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님, 저를 용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저를 당시의 친구로 여겨 주시니 감사합니다. 

 

기도의 영을 불어 넣어 주소서.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09월 15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1두로의 히람 왕은 평소에 늘 다윗을 좋아하였는데,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솔로몬에게 자기의 신하들을 보냈다.

2그래서 솔로몬은 히람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하였다.

3"임금님께서 아시다시피, 나의 아버지 다윗 임금은 주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주님께서 원수들을 그의 발바닥으로 짓밟을 수 있게 하여 주실 때까지 전쟁을 해야 했으므로, 자기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성전을 짓지 못하였습니다.

4그런데 이제는 주 나의 하나님께서 내가 다스리는 지역 온 사방에 안정을 주셔서, 아무런 적대자도 없고, 불상사가 일어날 일도 없습니다.

5이제 나는 주님께서 나의 아버지 다윗 임금에게 '내가 네 왕위에 너를 대신하여 오르게 할 네 아들이, 내 이름을 기릴 성전을 지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대로, 주 나의 하나님의 이름을 기릴 성전을 지으려고 합니다.

6그러므로 이제 명령을 내리셔서, 성전 건축에 쓸 레바논의 백향목을 베어서 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종들이 임금님의 종들과 함께 일을 할 것이고, 임금님의 종들에게 줄 품삯은, 임금님께서 정하시는 대로 지불하겠습니다. 임금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쪽에는 시돈 사람처럼 벌목에 능숙한 사람이 없습니다."

7히람이 솔로몬의 말을 전하여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 다윗에게 이 큰 백성을 다스릴 지혜로운 아들을 주신 주님께 찬양을 드리자."

8그리고 히람은 솔로몬에게 회신을 보내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나에게 보내 주신 전갈은 잘 들었습니다. 백향목뿐만 아니라, 잣나무도 원하시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9나의 종들이 레바논에서부터 바다에까지 나무를 운반하고, 바다에 뗏목으로 띄워서, 임금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곳까지 보내고, 그 곳에서 그 나무를 풀어 놓을 것입니다. 그러면 임금님께서는 끌어올리기만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 값으로 내가 바라는 것은, 나의 왕실에서 쓸 먹거리를 제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10이렇게 하여서, 히람은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을 솔로몬이 원하는 대로 다 보내 주었다.

11솔로몬은 히람에게, 왕실에서 쓸 먹거리로, 밀 이만 섬과 짜낸 기름 스무 섬을 보내 주었다. 솔로몬은 해마다 히람에게 이렇게 하였다.

12주님께서는, 약속하신 그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셔서, 히람과 솔로몬 사이에는 평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은 조약도 맺었다.

13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전국에서 노무자를 불러 모았는데, 그 수는 삼만 명이나 되었다.

14그는 그들을 한 달에 만 명씩 번갈아 레바논으로 보내어, 한 달은 레바논에서 일을 하게 하고, 두 달은 본국에서 일을 하게 하였다. 노역부의 책임자는 아도니람이었다.

15솔로몬에게는, 짐을 운반하는 사람이 칠만 명이 있었고, 산에서 채석하는 사람이 팔만 명이 있었다.

16그 밖에 작업을 감독하는 솔로몬의 관리 가운데는 책임자만 해도 삼천삼백 명이 있었다. 그들은 공사장에서 노동하는 사람을 통솔하였다.

17왕은 명령을 내려서, 다듬은 돌로 성전의 기초를 놓으려고, 크고 값진 돌을 채석하게 하였다.

18그리하여 솔로몬의 건축자들과 히람의 건축자들과 그발 사람들은 돌을 다듬었고, 성전을 건축하는 데 쓸 목재와 석재를 준비하였다.

 

솔로몬은 히람 왕에게 성전 재료를 요청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 다윗 왕에게 허락하지 않으셨던 성전 건축을 솔로몬에게는 허락하셨음을 전합니다(1-6절). 히람은 솔로몬의 요청을 허락하고, 지혜로운 왕 솔로몬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7-10절). 그리고 솔로몬과 히람은 평화조약을 맺습니다(11-12절). 솔로몬은 성전을 만들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합니다(13-18절).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는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솔로몬에게 성전을 건축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면서 건축을 준비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우리 공동체에 맡겨주신 소명이 있나요? 그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부분을 준비하고 실행해야 할까요?

 

——

다윗은 전쟁을 해야만 했다. 

주변국들의 위협이 계속 있었다. 

거의 매년 봄만 되면 국경을 지키러 전쟁에 나간다. 

솔직히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형편이 안되었다. 

역대상에는 약간 다른 뉘앙스의 구절이 있다.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리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역대상 22:8) 

다윗이 솔로몬에게 자신이 왜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는지 설명하는 내용이다. 

다윗은 자신이 전쟁을 통해 사람들의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성전 건축을 막으셨다는 늬앙스로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솔로몬은 히람 왕에게 다윗왕이 전쟁을 많이 치러야 했기 때문에, 그만큼 국제정세가 불안했고, 노동자보다 군사가 필요했고, 돈과 에너지를 전쟁에 투입해야했기 때문에, 그래서 큰 건축사업을 펼칠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둘 다 맞는 말이겠으나, 최소한 히람 왕에게 전달할 때, 도덕적 흠결의 늬앙스가 느껴지지 않게 말하는 솔로몬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사실 많은 전쟁은 엄청난 에너지가 투입되는 일이다. 

온 신경이 거기에 쓰인다. 

전투에서 패배하면 고스란히 수많은 동족의 생명이 사라진다. 

솔로몬의 근거가 매우 설득력 있다. 

 

이제는 국제정세가 안정이 되었다. 

노동력도 풍부하고, 먹거리도 풍부하다. 

전쟁의 위협이 없고, 주변국들과의 협력도 늘어나고 있다. 

교역도 늘고 상호 왕래도 늘고 있다. 

이제 때가 되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때가 된 것이다. 

 

솔로몬의 편지에 히람 왕은 주님께 찬양을 드린다. 

 

7히람이 솔로몬의 말을 전하여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 다윗에게 이 큰 백성을 다스릴 지혜로운 아들을 주신 주님께 찬양을 드리자."

 

히람이 손해볼 일이 없다. 

당시 강대국인 솔로몬 왕국과 교역하면서 자신의 노동자들의 일거리도 제공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도 유익하며,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협정이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지혜로운 통치는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자신의 영향력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지혜로운 돌봄과 다스림은 결국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단순히 부와 물질의 풍성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부수적이다. 

핵심은 평화다. 

그 평화로움이 부를 가져오고, 그 평화로움이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한다. 

 

가정, 교회, 직장에서 지혜로운 돌봄으로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그 평화로운 관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할 수 있는가? 

 

개인적 취미가 있다. 

영화, 드라마, 유툽 동영상 등등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즐기는 것은 좋은 일이나, 돌봄으로 평화를 만드는 일에 드는 시간을 빼앗기면서 그런 일에 매몰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결국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는 때는, 내가 내 주변의 관계에서 얼마나 평화를 증진시키느냐에 달린 것 같다. 

나를 위한 투자, 평화 증진을 위한 투자.. 

그 둘 사이의 균형을 고민한다. 

 

내게 기대되는 역할과 책임을 생각할 때, 좀더 평화증진을 위한 에너지 정도를 높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정, 교회, 직장에서 어떻게 하면 평화증진을 위한 돌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오늘도 주님의 지혜를 구한다. 

 

——-

지혜의 본체 되시는 하나님, 

어쩌다 보니,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위치에 있습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평화를 전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이건 가만히 있는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끊임없는 조율과 소통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예술적인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랑도 필요합니다. 센스도 필요합니다. 

주님,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더 큰 지혜로 함께 해 주세요. 

모든 만남 속에서 평화를 만들어 내는 대화, 소통이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4 26 월요일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3-4월호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32악인이 의인을 엿보며 그를 죽일 기회를 노리지만,

33주님은 의인을 악인의 손아귀에 버려 두지 않으시며, 판결을 내리실 때에 의인에게 유죄를 선고하지 않으실 것이다.

34주님을 기다리며, 주님의 법도를 지켜라. 주님께서 너를 높여 주시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니, 악인들이 뿌리째 뽑히는 모습을 네가 보게 것이다.

35악인의 세력을 내가 보니, 본고장에서 자란 나무가 무성한 잎을 뽐내듯 하지만,

36한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흔적조차 사라져, 아무리 찾아도 모습 찾아볼 없더라.

37 없는 사람을 지켜 보고, 정직한 사람을 눈여겨 보아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으나,

38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할 것이니, 악한 자들은 미래가 없을 것이다.

39의인의 구원은 주님께로부터 오며, 재난을 받을 때에, 주님은 그들의 피난처가 되신다.

40주님이 그들을 도우셔서 구원하여 주신다. 그들이 주님을 피난처로 삼았기에, 그들을 악한 자들에게서 건져내셔서 구원하여 주신다.

 

시인은 악한 자가 의로운 자를 해치려고 하지만, 주님께서 의로운 자를 지켜주신다고 말합니다(32). 의인이 주님을 의지하여 말씀을 붙들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얻으며, 악인이 심판받는 것을 보게 것입니다(33-34). 악인들은 지금 잎이 무성한 나무를 자랑하지만,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의인들은 미래에 번성할 것입니다(35-38).

 

주님은 의로운 자들의 피난처이시며 그들을 악한 자들로부터 구원하시는 분입니다(39-40). 자신이 가진 힘을 붙들고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은 영화가 오래갈 것처럼 생각하지만,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처럼 금세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보기에 약한 같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며 말씀을 붙잡는 인생은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나는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오늘은 말씀이 위로가 된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다. 

하나님은 평화를 사랑하시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신다. 

그들의 피난처가 되신다. 

 

악인들은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엿보며, 죽일 기회를 노린다(32). 

도대체 그들은 사람들을 해하려고 하는 걸까? 

그들은 악인이 되었는가? 

길이 없다. 답답하다. 서로 사이좋게 평화롭게 지낼 수는 없을까? 

사람들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고 심지어는 죽이느냔 말이다. 

 

우리 주님을 평화를 사랑하시고,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신다. 

평화를 추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래를 선사하신다. 

 

마태복음 5장

3“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5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7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8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것이다.

9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너희가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예수님도 시를 발표하셨다. 

그분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호를 받게 것이라고 축복의 말을 남기셨다. 

마태는 시가 특히 맘에 들었나 보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설교를 시를 사용해서 시작했다. 

평화를 사랑하면 예수님의 시에서도 그렇게 적으셨지만,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다. 

슬픔도 있고, 목마름도 있다. 때로 박해도 있다. 

그럼에도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다. 

 

시편의 시인도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구약의 하나님도 평화를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말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의 미래를 보호하시고 미래의 전망을 열어주신다. 

 

혐오, 쿠데타, 전쟁

이런 뉴스들이 그치질 않는다. 

세계의 경찰이라고 불렸던 미국에서는 혐오 범죄가 늘고 있다. 

총기 사건이 그치지 않는다. 

미얀마의 군인들이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민간인들을 총으로 죽이고 있다. 

내전으로 번지고 있다. 

과연 사람들은 영구적 평화를 구축할 도덕적 힘을 가지고 있는가? 

화성에 사람을 보낼 계획은 만들어도, 세계의 전쟁을 없앨 계획은 만들지 못하는가? 

평화를 추구할 의도가 과연 있는가? 

세계 지도자들은 무엇을 향해 회의를 하고 모임을 가지는가? 

 

평화를 주십사 다시 기도한다. 

 

 

——

평화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평화가 유지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소서. 

수많은 인권 운동가, 긴급구호 현장의 활동가들, 유니세프, 적십자, 유엔 평화 유지군 등의 사람들을 보호해주세요. 

평화가 증진되고 영구적으로 정착되도록 도와주세요. 

북한과의 적대관계가 청산되고 부디 평화로운 관계로 서로 상생하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04월 22일 목요일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3-4월호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13여러분 가운데서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한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하여 그의 행실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그 일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14여러분의 마음 속에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마십시오.

15이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게 속한 것입니다.

16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

17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18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땅에 속한 지혜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의 차이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있는 사람은 온유함으로 선을 행합니다(13절). 반면 땅에 속한 지혜를 가진 자들은 시기심과 경쟁심에 사로잡혀 다투기를 잘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칩니다(14-16절).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진 자들은 깨끗한 마음을 갖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애쓰며, 친절을 베풀며, 자비롭고, 선하게 행동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17-18). 땅의 지혜와 하늘의 지혜는 자기 욕심을 채우는데 열심인지 공동체의 평화를 만드는데 열심인지를 통해 드러납니다. 나는 어떤 열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

강림지혜

 

1. 야고보의 환생 

야고보서를 묵상하다가 '야고보가 환생한다면 어떤 생각과 말들을 했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아마도 상당히 강한 어조의 비판을 가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말은 온유하되 글은 상당히 비판적으로 쓰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그는 말에 대해서 계속 강조하고 있다. 

혀가 제어되지 않고 말로 실수를 연발하는 경우에 그 심리를 잘 들여다 보면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공동체를 진정으로 위한다기 보다 자신의 유익과 영달을 위해, 남과 비교해서 승리하기 위해, 남이 잘되고 남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면서 질투가 생겼다. 

결국 이런 시기심과 경쟁심은 당연히 자신의 성공과 성취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차별의 언어가 생각과 몸에 베인다. 

자기도 모르게 분열적 정서가 흐른다. 자신의 성공과 성취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고, 방해가 되는 사람이 생긴다. 자연스럽게 도움이 되는 사람에겐 선대하고 방해가 되는 사람에겐 박대한다. 

그러니 차별이 일어난다. 말에도 그런 차별의 흔적이 있다. 

 

야고보가 환생한다면, 지금 시대의 시기와 경쟁에 대해 한탄하는 글과 말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그 어느 시대 보다 경쟁을 유발시키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살아남아야 한다. 

존버가 결국 승리한다. 

남을 짓밟고 일어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시기심과 경쟁심은 그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다. 

그 마음에서 비롯되는 지혜는 나름 상당히 합리적이고 막강하다.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지혜들이 쏟아진다. 

승리를 위한 지혜다. 이기기 위한 지혜다. 남 보다 더 잘 나가기 위한 지혜요, 생존을 위한 지혜다. 

마치 분노에 의해 생각과 말이 빨라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경쟁심에서 나오는 지혜가 세상에 널렸다. 

책으로 나온다. 경영서적이라는 타이틀, 자기 계발이라는 타이틀로 존재한다. 

그만큰 경쟁은 매력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 초인적인 힘과 순발력이 출현하는 것처럼, 경쟁을 극으로 몰고가면 자신도 모르는 지혜와 행동이 등장한다. 아드레날린이 치솟는다. 일종의 마약 중독과 같다. 

마라톤의 러닝하이가 있다. 

 

30 이상 달리면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경쾌한 느낌이 드는데 이를러너스 하이’(runners high) 혹은러닝 하이’(running high)라고 한다. 이때에는 오래 달려도 전혀 지치지 않을 같고, 계속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한다. 짧게는 4, 길면 30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이때의 의식 상태는 헤로인이나 모르핀 혹은 마리화나를 투약했을 나타나는 것과 유사하고, 때로 오르가즘에 비교된다. 주로 달리기를 예로 들지만 수영, 사이클, 야구, 럭비, 축구, 스키 장시간 지속되는 운동이라면 어떤 운동에서든 러너스 하이를 느낄 있다_[네이버 지식백과러너스 하이 (KISTI 과학향기 칼럼)

 

경쟁에도 하이가 있다. 경쟁에서 이길 때의 짜릿함이 있다. 경쟁심이 촉발시킨 정신의 고도의 집중현상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종의 중독이다. 

 

2. 위에서 오는 지혜 

17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 없습니다.

 

경쟁심과 시기심에서 오는 지혜가 있는 반면, 위에서 오는 지혜가 있다. 

경쟁심, 승부욕, 남을 이기려는 마음, 남이 잘 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듣이지 못하는 마음, 이런 마음에서 나오는 지혜와는 전혀 다른 지혜가 있다. 

이것은 일단 순결하다. 맞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경쟁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출원한 지혜는 순결하다. 이기적인 동기나 남을 이기려는 충동이 아니다. 나와 남을 살리는 순결한 동기가 작동한다. 

그러니 평화를 만들 수 밖에… 

순결에서 나오는 지혜는 평화를 만들어 낸다. 

태도는 친절하고 온순하다. 

행동은 자비롭고 선한 열매가 맺힌다. 

이러니 편견, 위선도 없다. 

이런 지혜가 참된 지혜다. 

 

중독을 끊는 것은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경쟁심과 시기심에서 나오는 지혜에 중독된 사람들을 구출하려면, 위에서 내려온 밧줄이 필요하다. 

위에서 내려온 지혜가 경쟁심에서 나오는 지혜를 압도해야 한다. 

그렇게 압도하도록 때로는 세상의 외부 자극을 최소화하고 위를 바라보아야 한다.

위에서 내려온 지혜가 내 존재를 압도할 때까지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다. 

 

순결, 평화, 친절, 온순… 

이 시대는 이런 가치가 허공에 떠있는 에드벌룬 같지만, 실제 삶에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국민 10 6 만성적 울분상태…"원인 1 부패한 정치"

https://www.news1.kr/articles/?4282743

 

만성적 울분 상태… 

이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정서다. 

세상이 조장하는 정서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위에서 오는 지혜를 가지고 누릴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야고보가 환생한다면, 그도 말과 글은 이렇게 썼겠지만 뾰족한 수를 찾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위를 바라보자. 

위에서 내려오는 지혜를 구하자. 

그렇게 하루에 한 번이라도 위에서 내려오는 지혜를 갈망하자. 

우리 속에 쌓인 울분과 경쟁심을 내려놓자. 

위를 바라보자. 

 

 

——

순결하신 주님, 

온 인류를 위한 주님의 마음에는 경쟁심과 시기심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순수함이 있습니다. 

그 순수함이 순간순간 제 마음에 내려오게 해 주세요. 

오늘 하루, 시간을 내어 위를 바라보게 해 주세요. 

위에서 내려오는 순결한 지혜를 추구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저도 그 지혜로 살아가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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