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02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9 젊은이가 어떻게 해야 그 인생을 깨끗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길, 그 길뿐입니다.

10 내가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11 내가 주님께 범죄하지 않으려고, 주님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합니다.

12 찬송을 받으실 주님, 주님의 율례를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13 주님의 입으로 말씀하신 그 모든 규례들을, 내 입술이 큰소리로 반복하겠습니다.

14 주님의 교훈을 따르는 이 기쁨은, 큰 재산을 가지는 것보다 더 큽니다.

15 나는 주님의 법을 묵상하며, 주님의 길을 따라 가겠습니다.

16 주님의 율례를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ESV]

With my whole heart I seek you; let me not wander from your commandments! I have stored up your word in my heart, that I might not sin against you(10-11절).

 

[주석]

9절. 이 시의 사례는 ‘청년’에게 맞추어져 있는데, 이는 순결한 삶이 끊임없는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을 암시한다… ‘무엇으로’(How)는 실제적인 질문으로서, ‘도대체 무슨 수단으로?’라는 의미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이제 연휴가 이틀 남았다. 

부담스러운 일, 해야 할 일들이 점점 다가온다. 

연휴 기간 미뤄두었던 일들이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시인은 젊은이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시인도 젊은이로 보인다. 

9절에 이어 10절의 주어가 “내가”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유혹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성적인 유혹, 돈에 대한 유혹, 성공에 대한 유혹… 

그 모든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나이가 바로 젊은이다. 

젊기에 빠르게 회복되고, 그렇기에 일단 최선을 다해 달리기 시작한다. 

방향보다도 속도에 쾌감을 느낀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가 중요한데, 젊을 때는 그보다 순간의 속도감을 즐기려는 경향이 있다. 

사단은 그것을 노린다. 

또한 경계를 벗어나는 스릴도 즐긴다. 

윤리적, 법적 경계를 넘어 세상의 끝으로 가려고 한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율법 체계를 넘어서려고 한다. 

시험해 보려고 한다. 

정말 이 안에 있는 것이 가장 즐거운지, 밖에 있는 것이 더 즐거운지 알고 싶다. 

젊은이에게는 그런 충동이 올라온다. 

반복되는 충동이 부르심이라 착각한다. 

 

시인은 그 충동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아무리 충동이 있더라도 율법의 경계를 넘지 말라고 경고한다. 

더 나아가 그 충동을 율법을 연구하고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데에 쓰라고 권면한다. 

 

오늘 시에는 말씀을 묵상하는 자의 자세와 태도와 방법에 대해 잘 말해 주고 있다. 

 

1. 간직

2. 배움

3. 소리내어 읽음

4. 소리내어 읽음을 반복 

5. 묵상

6. 따름

7. 잊지 않음

8. 기쁨

9. 간구

 

9가지의 말씀 묵상의 방법과 태도가 나와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태도인 기쁨이다. 

말씀을 배우고, 반복적으로 읽고 간직하는 것의 마음의 동인은 바로 기쁨이다. 

주님의 말씀이 기쁘다.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기쁜 사람은 즐거운 사람은 계속 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기도 할 것이다. 

말씀을 제대로 간직하고 따를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기도를 계속 드릴 것이다. 

말씀에 대한 기쁨을 간직한 사람은 복이 있다. 

이것이 진정한 복에 속한다. 

 

어느 순간 이 기쁨이 줄어들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난 이 기쁨 덕분에 사역자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 기쁨이 나를 추동했다. 

말씀에 대해 배우고, 말씀의 의미를 알아가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나이가 들어 이 기쁨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슬프다. 

다시 찾아야 할 기쁨이 바로 이것이다. 

찬양을 할 때도 기쁨이 있다. 

하지만 더 근복적으로 말씀의 기쁨이 회복되어야 한다. 

주님, 도우소서. 

 

[오늘의 기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말씀을 더욱 기뻐하게 하소서. 

당신이 주시는 메시지를 더욱 즐겁게 받아들이게 하소서. 

오랫동안 보여주신 당신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과정을 더욱 즐겁게 여기게 하소서. 

 

흐뜨러진 마음이 회복되게 하소서. 

해야 할 많은 일들을 다시 즐겁게 감당하게 하소서. 

대회를 준비하는 수많은 선수와 스탭처럼 일상 속에서 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소서.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을 위로하소서. 

정치가 회복되게 하소서. 

상식을 벗어난 자들이 권력을 얻지 못하도록 막아 주세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 사랑과 공의의 개념을 아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게 하시고, 지도자가 되게 하소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내각, 행정 관료를 비롯한 공무원, 국회위원, 사법부의 구성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소서.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것에서 벗어나 공동체를 위하는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7월 25일 화요일

 

여는 기도

내가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17 일흔[두] 사람이 기쁨에 차서, 돌아와 보고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을 대면, 귀신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1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19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세력을 누를 권세를 주었으니, 아무것도 너희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굴복한다고 해서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쁨에 차서 이렇게 아뢰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는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 아이들에게는 드러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우신 뜻입니다.22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맡겨 주셨습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아들 밖에는, 그리고 아버지를 계시하여 주려고 아들이 택한 사람 밖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돌아서서 따로 말씀하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것을 보는 눈은, 이 있다.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왕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The Message

All the same, the great triumph is not in your authority over evil, but in God’s authority over you and presence with you. Not what you do for God but what God does for you—that’s the agenda for rejoicing(20절).

 

[오늘의 묵상]

70명이 돌아왔다. 

제자들은 저마다 기쁨으로 가득 찼다. 

출발할 때의 걱정은 까마득히 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귀신들이 예수님의 이름에 복종한다. 

병자들이 치유를 받는다.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환영하는 사람들이 많다. 

홀대보다 환대를 경험했다. 

제자들은 귀신들을 통제했다는 사실을 기뻐한다. 

하나님 나라는 이들을 통해 또 한 번 더 확장되었다. 

온 마을에 예수님의 이름이 드높아진다. 

진정한 왕은 사단이 아니라 예수님이시다. 

 

그 옛날 가나안을 정탐했던 12지파의 대표자들 중에 10명은 슬퍼했고, 2명은 기뻐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70(72)은 모두들 기뻐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가 무서운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예수님은 귀신들을 통제한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70명 제자들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 구원자명부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다. 

진정한 기쁨은 거기에 있다. 

하나님 나라에 소속된 것이 기쁜 것이다. 

단순히 귀신을 제어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귀신을 제어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당이나 박수는 다른 귀신으로 어떤 귀신을 제어한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소위 축귀사역을 하는 사역자 중에도 이런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경우가 있다. 

자신들은 귀신을 내쫓는 사역을 하고 있음에도 점점 귀신을 닮아가는 경우가 있다. 

폭력적이고 지저분하며 돈에 취약하고 사람들을 옭아매려고 한다. 

하나님 나라 복음, 하나님의 통치보다 자신의 통치에 사람들을 묶어둔다. 

자신의 성향과 기분에 따라 사람들을 제어한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똑똑하고 잘나서 결국 자신의 사람들로 사람들을 옭아매려는 자들을 경계한다. 

도리어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자신의 왕국이 아닌 하나님의 왕국에 집중하는 자들을 등용하신다. 

 

21절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는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 아이들에게는 드러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우신 뜻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기 왕국을 지으려고 하지 않는다. 

통제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받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 

귀신을 내쫓는 것을 자신의 유익과 영광으로 돌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뜻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있음을 기뻐한다. 

 

이제까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던 일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사단의 세력을 무력화시켰다. 

이제는 강력하게 하나님 나라가 전세계에 뻗어나갈 것이다. 

로마 제국도 어쩔 수 없다. 

하나님 나라가 더욱 강력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욕망과 통제로 욕구로 가득한 권력지향적 성향으로부터 탈출시킨다. 

자기 생존에 목숨거는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자아가 되도록 만든다. 

하나님 나라는 목회자의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분의 통치 그 자체가 기쁨이다. 

역사 속 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날이 오길 바랬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환히 드러났다. 

예수님이 왕이시다. 

그분이 영광을 받으신다. 

 

나는 무엇에 기뻐하는가?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길 갈망한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더욱 강력하게 임하길 소망한다. 

귀신과 사단의 세력이 점점 더 무력화되고, 

평화와 정의와 사랑이 점점 더 확산되길 바란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서로 사랑하여 아름다운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길 바란다. 

변화가 일어나길 소망한다. 

그런 변화를 보는 것이 나의 기쁨이다. 

하나님 나라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는 것을 보는 것이 나의 기쁨이다. 

하나님 나라 통치 안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길 갈망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시고 우리를 초대하시는 예수님, 

저를 그 나라에 일원으로 삼아 주시고 

그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개인들이 더 많이 일어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조직과 공동체가 더 많이 생겨나게 하소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하나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 지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이 더욱 풍성하게 드러나도록 이끄소서. 

 

자기 감정에 휩싸여 부르르 떨며 부정적인 말을 토해내지 말게 하소서. 

상황을 바르게 인식하고 사랑과 평화의 말을 던지게 하소서. 

분노로 사는 사람 말고 사랑과 평화로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아지게 하소서. 

변화를 추구하되 더 깊이 사랑하는 관계로 나아가는 변화를 추구하게 하소서. 

서로 연결되고, 이어지고, 교감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관계. 

그러면서도 약자를 더 많이 배려하고, 고통을 분담하고, 아픔을 감싸주는 공동체. 

이런 공동체가 더욱 많아지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에 일원이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28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16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19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20 예언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21 모든 것을 분간하고, 좋은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22 갖가지 모양의 악을 멀리 하십시오.

 

 

바울은 일상의 자리에서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할 것을 권면합니다(16-18절). 그리고 성령과 예언을 굳게 붙들며, 분별력을 가지고 선을 행할 것을 이야기합니다(19-22절).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분의 주되심을 인정하게 될 때, 결국 기쁨과 감사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묵상]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구절은 어렸을 때부터 많이 암송했었다. 

그때도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참 지키기 어려운 권면이며, 명령이라는 사실이다. 

항상 기뻐하는 것도,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도,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도리어 항상 기뻐하는 것,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은 순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주 비판하고 자주 문제 제기하는 것이 기독 지성인의 일이며, 책무며, 삶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 생각에 100%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반기를 들고 싶다. 

기독 지성인의 책무는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을지, 어떻게 쉬지말고 기도할 수 있을지,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지를 연구해야 한다. 

비판하면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가? 

문제제기 하면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가? 

이것이 가장 어려운 고도의 지적, 심적 작업 아닌가!! 

 

기쁨이 사라진 문제제기, 감사가 빠진 비판이 얼마나 오래갈까. 

그것은 관계를 망가뜨리고, 스스로도 망가뜨린다. 

마음 속에 기쁨을 유지하고, 감사의 마음을 강화하고, 하나님께 기도의 제목을 언제나 올린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감지하고,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사랑과 정의가 더욱 확산되는 방향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욕하거나 무시하거나 힐난하지 않고 이슈와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협력할 바를 찾고, 거부할 것을 정중하게 거절하고, 좀 더 나은 건설적인 대안을 찾아보려고 노력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 비판적 생각을 연습하기 위한 비판, 인격을 모독하는 비판은 삼간다. 

비판적 생각을 연습하기 위해 자기 생각을 공개하지 않을 글로 정리해서 논리성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권장할 만하다. 

그러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화를 내고, 남을 깎아 내리고, 비판의 생각의 꼬리를 끊어내지 않고, 인격을 모독하는 등의 관계 파괴형 비판은 금물이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살면서, 문제제기가 삶의 디폴트 값이 되어 버렸다. 

문제 제기 하는 사람이 결국 영향력을 갖고, 리더십을 발휘한다. 

문제 발견형 감각과 논리 구조가 몸에 박혀 있다. 

기계처럼 반응한다. 

기쁨, 감사, 기도가 작용하지 못한다. 

사역자들 가운데도 많은 경우 이런 함정에 빠져 있다. 

설교를 하는 것, 글을 쓰는 것이 문제 찾기 일환이다. 

 

그러니 “비판/문제제기”와 “기쁨, 감사, 기도” 사이의 모순 관계가 놓이게 되며, 둘 다를 지혜롭게 잘 하는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바울은 이 난제에 해답을 성령님으로 보는 것 같다. 

성령과 예언을 대뜸 들이댄다. 

성령님이 없이는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말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성령님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이끌어 주셔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는 사람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그래야 기도가 끊어지지 않는다.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의 기쁨을 유지하라. 

피곤함이 주관하지 않도록, 기쁨과 감사가 내면에 흐르도록, 성령님께 기쁨 호수의 댐 수문을 주장하시도록 맡겨야 한다. 

성령님이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아름답고 멋진 모습들을 계속 묵상해야 한다. 

지식만이 아니라 더 크게 풍성한 감정의 물꼬를 열어두어야 한다. 

 

예언 관련해서는 분별이 핵심이다. 

과연 이 예언, 즉 대언이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사탄의 속임수인지, 아님 나의 욕망과 내면의 소리인지 구분해야 한다. 

그 구분이 핵심이다. 

그걸 구분할 수 있으면 성령님의 역사를 더욱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더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다 .

그러면 기쁨과 감사가 찾아온다. 

더불어 기도가 끊어지지 않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즐거운 일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그 어떤 즐거움보다도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 그 기쁨이 찾아오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저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예수님, 

도우시고 이끄시고 실마리를 만들어 주시는 예수님, 

오늘도 기쁨과 감사가 사그라드는 이 세상에서 오직 주님으로 인해 기쁨과 감사가 다시 살아나게 하소서. 

성령님께서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이미지에 주목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이 더욱 자주 생각나게 하소서.

예언의 말씀을 분별, 분간, 구분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인식, 알아차림, 이해하게 하소서. 

그것이 마음의 내적 기쁨을 낳고, 감사를 흐를게 하고, 기도의 끊을 더욱 붙잡게 합니다. 

부담스런 모든 시간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11일 화요일

 

여는 기도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11 끝으로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12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바울은 끝으로 ‘화평’을 이야기합니다(11절). 우리는 기뻐하는 것,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는 것, 서로 격려하는 것, 같은 마음을 품는 것으로 화평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11-12절).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13절).

 

모두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를 온전케 할 것입니다. 죽음과 어둠에 있는 자들을 위해 생명의 빛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분열과 갈등을 잠재우는 성령의 사귐으로 우리는 같은 마음을 품게 될 것입니다. 화평하게 지냅시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에게 문안하는 하루를 보냅시다.

 

[오늘의 묵상]

1. 대단원의 막 

고린도후서를 이렇게 오랫동안 묵상한 적도 처음이었다. 

바울의 개인적인 생각, 감정이 가장 많이 묻어나는 책이었다. 

때로는 바울의 감정이 널을 뛰는 것 같아 따라가기 힘든 적도 있었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다시 하는 것 같아 불평하기도 했다. 

허나 생각해보면, 이렇게 솔직한 글을 성인에게서 본다는 것은 행운이다. 

예수님의 바리새인에 대한 솔직한 비난을 본다는 것이 행운인 것처럼 말이다. 

거룩과 정직이 함께 갈 수 있다. 

거룩은 조용함이 아니다. 

거룩은 변하지 않는 감정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거룩은 진정성과 정직이다. 

이것은 예수님과 바울이 보여주셨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여주었던 다양한 감정은 큰 도전이 된다. 

나처럼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큰 도전이다. 

마음 속 생각과 감정에 정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수님과 바울을 모델로 삼을 만 하다. 

 

바울은 긴 편지의 마지막을 몇 가지 권면으로 할애하고 있다.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라. 

서로 격려하라. 

같은 마음을 품으라. 

화평하게 지내라. 

하나같이 소중한 덕목이다. 

여전히 고린도교회는 분열의 씨앗이 존재하고, 갈등과 긴장이 있다. 

하지만, 교인들은 기뻐해야 한다. 

예수님의 복음이 그들에게 있으며, 예수님이 그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온전함과 완전함에 이르기를 힘써야 한다. 

자유로움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나태함에 빠져서는 안된다. 

자유는 아무것도 안할 자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물론 때로는 안해야 할 것도 많지만), 선을 행할 자유가 더 중요하다. 

온전함을 추구할 자유가 생겼다. 

그전에는 꿈도 꾸지 못하는 자유다. 

이제는 온전함, 완전함을 추구해야 한다. 

서로 격려하라. 

온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서로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를 응원하고 힘을 북돋아 주어야 한다.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 그리스도의 향기와 편지, 대사로 살기 위해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이런 목표를 위해 같은 마음을 품으라. 

파당을 짓고 서로를 비난하고 나와 너가 다르다고 경계하지 말고 공통점을 찾아내고 한 마음으로 나아가라. 

그렇게 화평을 품으라. 

화평, 평화는 우리 주님이 부활하시고 처음 제자들에게 나타셔서 주신 말씀이다. 

평화가 너희에게 있기를!! 

두려움과 절망에 빠진 제자들을 위해 하신 말씀이다. 

평화가 너희에게 있기를!! 

격정적 환희에 들떠있는 제자들을 위해 하신 말씀이다. 

평화가 너희에게 있기를!!

그렇게 공동체는 하나가 되고 한 마음이 되어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걷는다. 

 

2. 삼위 하나님의 축복 

바울은 삼위 하나님의 축복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행한다. 

거룩한 입맞춤은 삼위 하나님의 축복이다. 

서로를 축복함으로 인사하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주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 축복으로 서로를 축복한다. 

손을 서로에게 펼치고 삼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사귐이 넘치길 기도한다. 

고린도후서 전체를 묵상한 지금 이 시점에 이 축복이 가지는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사도 바울의 마음에 가득한 우려와 걱정은 삼위 하나님의 축복으로 대체된다. 

우려와 걱정만으로는 공동체를 세워나갈 수 없다. 

같은 마음, 같은 노력, 같은 격려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삼위 하나님의 축복이 절실하다. 

그분의 은혜와 사랑과 사귐이 꼭 필요하다.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연합이 공동체에 녹아들어야 한다. 

그분의 선물과 사랑과 긴밀한 연결이 공동체에 녹아들어야 한다. 

그점에도 바울은 요한의 강조를 반복한다. 

삼위 하나님의 연합 가운데 제자들이 하나가 되길 그토록 바라셨던 예수님, 그 예수님의 말씀과 소원을 특유의 문장으로 강조한 사도 요한(요한복음 17장)의 글은 바울에게도 울린다. 

 

어느 기독 공동체나 이런 축복이 필요하다.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건, 조밀하게 붙어 있건 간에 기독 공동체는 삼위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다. 

은혜, 사랑, 사귐이 가득해야 한다. 

삼위 하나님의 연합의 정신이 붙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 요한, 바울이 다 강조한다. 

초기 기독 공동체의 강조는 다름 아니라 바로 삼위 하나님 안에서의 하나됨이다. 

거리와 상관없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삼위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모든 성도들이 모든 성도들을 대상으로 문안한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거룩한 입맞춤” 교회!! 

 

이런 축복의 마음을 품고 오늘도 공동체를 세운다. 

 

 

[오늘의 기도]

은혜의 예수님, 사랑의 하나님, 사귐의 성령님, 

삼위 하나님의 축복으로 저와 공동체를 축복하소서. 

하나님의 교회가 분열과 비난이 아니라 사랑과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고 인사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주 안에서 기뻐하고, 예수님처럼 온전히 되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한 마음을 품고, 평화를 누리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연합 가운데 들어가길 소망합니다. 

무뎌진 마음에 찾아오셔서 더욱 온전함으로 나아가도록 도우소서. 

있는 척, 그런 척 하지 말고 정말 진정으로 정직하게 제 자신을 주님께 올려드리게 하소서. 

 

오늘도 부담스러운 일정입니다. 

감당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감당하도록 도우소서. 

사랑의 마음, 은혜의 마음, 사귐의 마음이 채워지게 하소서.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님, 

우리 나라의 역사도 주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선거제 개혁을 위해 국회 전원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승자독식, 반사이익의 정치, 혐오의 정치가 100%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함께 망하는 길이 아닌 서로 성장하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기득권 정체 세력의 허리를 꺽어 주시고, 나라 발전을 위한 새로운 대안이 만들어지게 하소서. 

변화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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