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 05일 수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22 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내가 정신 나간 사람같이 말합니다마는,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24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25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26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27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28 그 밖의 것은 제쳐놓고서라도,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염려가 날마다 내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29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넘어지면, 나도 애타지 않겠습니까?

30 꼭 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

31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주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아십니다.

32 다마스쿠스에서는 아레다 왕의 총리가 나를 잡으려고 다마스쿠스 성을 지키고 있었으나,

33 교우들이 나를 광주리에 담아 성벽의 창문으로 내려 주어서, 나는 그 손에서 벗어났습니다.

 

주석

29절 바울이 자신을 ‘약한 자들’과 동일시한 것은, 그러한 것을 비천한 신분의 상징으로 본 사회적으로 강력한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못마땅한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바울이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 것은 그의 대적들의 입장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IVP 성경배경주석).

 

바울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약점을 자랑합니다. 바울 또한 거짓 교사들과 같이 히브리 사람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22절). 그리고 그들보다 더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약해질 때, 함께 약해지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일꾼이었습니다(23-30절). 주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은 바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아십니다(31절).

 

바울은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일꾼인가?’라는 물음 앞에 자신의 약점들을 늘어놓습니다. 수고와 고난을 마다하지 않은 바울은 모두를 대신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일꾼임이 틀림없습니다. 바울의 수고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언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오늘의 묵상]

이런 이야기까지 자신의 입으로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바울도 스스로 자신의 모습이 평범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내가 정신 나간 사람같이 말합니다마는”이라고 쓰고 있다. 

사실 이런 내용들은 스스로 말할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잘 알려줘야 한다. 

바울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시간들을 견디고 버티고 여기까지 왔는지 알려줘야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일꾼은 고통과 어려움의 시간들을 버티는 사람들이다. 

감옥살이, 돌에 맞음, 채찍에 맞음, 파선당함, 표류…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사단이 바울을 어떡해서든 막아서려고 한다. 

그의 선교가 미치는 영향이 너무 막대해서 그를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때마다 살아난다. 

주님께서 그를 보호하신다. 

선교 여행하는 동안 온갖 종류의 위협을 당했다. 

 

26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동족의 위험이다. 

같은 민족 사람들로부터 위협을 당한다. 

좌절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이해받고 사랑받고 적극적으로 후원받으면서 해도 할까말까하는 일들이다. 

이 일을 이렇게 감당하는 것만으로 대단하다. 

죽을 위기를 몇 번을 넘겼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교회들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바울에게만 주어지는 삶은 아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의 삶이 그러했다. 

선교사님들의 삶은 항상 위험 속에 놓여 있다. 

적대적인 국가에서의 선교는 더욱 그렇다. 

이슬람 국가에서 선교사로 사는 것, 중국에서 복음전도자로 사는 것… 항상 위험을 안고 산다. 

어느 나라에서는 소리없는 찬송을 합창하기도 한단다. 

모임 시간 두 시간 전부터 2명씩 건물에 입장해야 한단다. 

감시가 심하고 걸리면 추방이 일상이다. 

입국심사때부터 공안이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에,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일이기에 그 일을 감당한다. 

각자마다 자신의 부르심 속에서 고난을 당하기 마련이라지만, 바울의 삶을 생각할 때, 내가 당하는 고난은 고난 축에 속하지 않는다. 

바울은 아주 실제적인 고난, 물리적인 고난을 당하고 있다. 

1세기에 이렇게 자주 여행을 다닌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나야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난을 받지만, 바울은 육체적으로도 받는다. 

그렇다고 바울이 정신적으로 고난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교회를 생각하며 밤낮 기도해야 한다. 

교회에 대한 염려가 크다. 

 

한국교회에 대한 염려가 크게 다가온다. 

전광훈이라는 자가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더럽히고 있다. 

언제나 정치목사가 있어왔지만, 이렇게 지저분하지는 않았다. 

조찬기도회 나가는 정도가 대부분이었지만, 전광훈은 하나님도 우숩게 여긴는 작자다. 

총회때 권총을 들고 설쳤었다. 

빤스내리라는 말에 순종해야 자기 성도란다. 

정치개입은 기본이고, 공당의 공천권이 자신에게 있는 모양으로 말한다. 

걱정이다. 염려가 크다. 

어떻게 이런 사람을 목사라고 할 수 있는가! 

 

바울의 이런 노력에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과연 얼마나 바울을 인정했을지는 미지수다. 

어떤 사람들은 설득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바울을 비난했을 것이다. 

‘이렇게 고난을 많이 받은 사람은 요구하는 것도 많다고 그러는데..’ 등등

‘이런 고난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면 나는 믿지 않겠다’ 등등

주장이 강하면 비판도 강하게 돌아오는 편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끝까지 진실을 말한다. 

고난 당한 것을 숨길 필요가 없다.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심이 드러난다면, 굳이 숨길 일이 아니다. 

약점 속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면, 더욱 약점을 드러낼 일이다. 

 

정직하게 나의 약점을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말자. 

오늘의 다짐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저의 약점과 부족함을 잘 알고 계십니다. 

정서적으로, 지적으로, 의지적으로 여전히 약점을 안고 삽니다. 

육체의 통증이 의지를 약화시킵니다. 

피곤함이 생활 리듬을 깨뜨리고, 깨진 리듬이 피곤을 더합니다. 

악순환이 돌아갑니다. 

 

주님, 

더욱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싶고, 

피곤함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살고 싶습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삶을 향해 도전하고 싶습니다. 

몸의 피곤을 감하시고, 의욕과 의지를 더하소서. 

일상을 잘 관리할 수 있게 하소서. 

조금만 관리가 느슨해져도 이제는 몸이 아파지는 나이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제 주변의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벗꽃이 다지기 전에 꽃향기를 맡으러 나가야 하듯이, 

안따까운 젊음과 생명이 다지기 전에 사랑의 향을 더욱 진하게 더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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