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9월 18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19 구원의 문들을 열어라. 내가 그 문들로 들어가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겠다.

20 주님의 문이다.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갈 것이다.

21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나에게 구원을 베푸셨으니,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2 집 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23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니, 우리의 눈에는 기이한 일이 아니랴?

24 이 날은 주님이 구별해 주신 날, 우리 모두 이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25 주님, 간구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님, 간구합니다. 우리를 형통하게 해주십시오.

26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이에게는 복이 있다. 주님의 집에서 우리가 너희를 축복하였다.

27 주님은 하나님이시니,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셨다. 나뭇가지로 축제의 단을 장식하고, 제단의 뿔도 꾸며라.

28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내 하나님, 내가 주님을 높이 기리겠습니다.

29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메시지]

“지금 구원하소서. 하나님, 지금 구원하소서! 오 하나님, 자유롭고 충만한 삶을 주소서!”(25절)

 

[주석]

19절. 19절 이후로 어조가 바뀐다. 즉, 여호와에 관한 말이 여호와께 드리는 말로 바뀐다. 목소리 역시 바뀐다(IVP 성경주석).

 

27절. 축제 행사에는 춤과 더불어 잎이 무성한 가지를 한아름 안고 행진하는 행사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하나님이 풍요를 베풀어 주셨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언약의 가시적 성취를 온 공동체가 함께 경축했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관성. 

오늘은 이 단어가 무겁게 다가온다. 

원래 하던대로, 변화없이 지금 그 자리를 지키는 것. 

존재에도 관성이 작용한다. 

업무에도 관성이 작용한다. 

더 큰 변화나 움직임을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하던대로, 그대로 가길 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다. 

변화는 사람을 부대끼게 한다.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가 인간 본성이다. 

 

우리 주님은 그 관성을 깨셨다. 

영원히 하늘의 영광 속에 사셔도 되지만, 인간이 되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성육신. 

그것은 관성의 반대말이다. 

이도 저도 아닌 중간자, 

아니, 이도 저도 맞는 통합자. 

그 애매함으로 들어오셨다. 

사람들이 그 돌을 버린 이유가 있다. 

그 변화를 믿을 수가, 받아 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 

 

관성. 

어느덧 나도 관성에 푹빠져있다. 

움직이기 싫다. 

변화는 피곤이다. 

관성이 지속된다면, 빠지는 것이 도리다. 

쾌락이 관성을 욕구하게 한다. 

변화는 쾌락에 저항한다. 

 

존재적 변화는 더욱 쾌락을 방해한다. 

피곤한 인생을 선택했다. 

주님을 따르는 자의 인생은 피곤하다. 

존재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시니 그렇다. 

 

누군가를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힘과 의지가 나에게 있는가? 

 

주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 눈에 기이한 일이다. 

기인한 일은 무시하기가 어렵고, 주목하면 모종의 변화가 일어난다. 

변화는 피곤한 일이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기대하기 싫은 날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제 내면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나이가 들어 몸이 늙으니, 마음도 늙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저에게 찾아오셔서 저를 진단해주소서. 

저의 상태를 잘 돌아보게 하소서. 

 

현상유지의 욕망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변화가 두려워지는 시기가 오는 것 같습니다. 

주님, 

이 시기도 주님의 뜻에 맡깁니다. 

주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가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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