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6월 14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1  나는 이 모든 것을 마음 속으로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서 내가 깨달은 것은, 의로운 사람들과 지혜로운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나님이 조종하신다는 것, 그들의 사랑과 미움까지도 하나님이 조종하신다는 것이다. 사람은 아무도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일을 알지 못한다.2  모두가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 의인이나 악인이나,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깨끗한 사람이나 더러운 사람이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나 드리지 않는 사람이나, 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죄인보다 나을 것이 없고, 맹세한 사람이라고 해서 맹세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다.3  모두가 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잘못된 일 가운데 하나다. 더욱이, 사람들은 마음에 사악과 광증을 품고 살다가 결국에는 죽고 만다.4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희망이 있다. 비록 개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보다 낫다.5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가 죽을 것을 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보상이 없다. 사람들은 죽은 이들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6  죽은 이들에게는 이미 사랑도 미움도 야망도 없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에도, 다시 끼여들 자리가 없다.

 

NIV

So I reflected on all this and concluded that the righteous and the wise and what they do are in God's hands, but no man knows whether love or hate awaits him(1절).

 

주석

4-6절. 생명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 살아있음이 결정적으로 중요하고, 죽음은 결정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하나님의 조종 

하나님이 조종하신다는 말은 과한 표현이다. 

그분의 손 안에 있다는 말은 납득이 되지만 조종하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계를 조종할 때,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할 때, 음향장비 및 믹서를 조종할 때, 그 때 쓰는 단어가 조종이다. 

의지가 없는 존재를 자기 맘대로 이리저리 움직이고 갖다 놓고 옆으로 치우는 등의 행위가 조종이다. 

그런 의미의 조종은 하나님과 관련이 없다. 

전도자는 삶에 대한 회의를 기본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사람에게 주어진 엄청난 가치의 자유 의지를 의도적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하기보다는 초대하신다. 

당신의 사랑으로 당신의 공의로움으로 초대하신다. 

그 초대에 응하는 사람과 응하지 않는 사람의 정서는 전혀 다르다. 

응하는 사람은 점점 사랑에 관대해지고 포용에 마음을 연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통치에 반응하여 감정이 발생한다.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전투적, 공격적이게 된다. 

어쩔 수 없다. 

정글, 전장터같은 세상에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이 글을 쓸 때, 상당히 현실적이면서 회의적인 상태였던 것 같다. 

솔로몬 시대, 그 찬란했던 영광의 시기에, 도리어 이 글이 균형을 잡아 준다. 

낙관주의과 교만이 가득한 도시에 찬물을 붓는다. 

그래야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과몰입이 가져다 주는 괴물화를 막을 수 없다. 

자신과 세상을 주의깊게 성찰하지 않으면 성공의 단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개미가 될 뿐이다. 

하나님 탓으로 돌리지 마라. 

하나님은 우리를 초대하시는 분이시지, 조종하는 분이 아니시다. 

 

2. 다 같은 운명

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 

구체화시키면, 죽을 운명이다. 

지혜로운 자도 어리석은 자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의인도 악인도, 예배자도 우상숭배자도 모두 다 죽을 운명이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죽음은 언제나 곁에 있다. 

갑자기 암이 발견되어 2-3달 만에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패혈증은 아무리 건강했던 사람의 팔다리를 절단시킨다. 

그나마 사지절단에서 멈추면 다행이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갑남을녀일 뿐이다. 

죽음보다는 비루한 삶이 낫다. 

생명이 있는 한 소망이 있고, 사랑과 미움이 있다. 

생명이 있어야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고, 활동을 한다. 

비록 죽을 운명이지만, 죽을 운명에 잠식당해 무기력의 침대에 누워 있다면, 그건 죽음의 다른 모습이다. 

생명의 기운을 붙잡고, 심장의 박동을 듣고, 무릎으로 앞으로 내밀어 전진한다면 죽을 운명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시다. 

무기력의 침대에서 배에 힘을 주어 상체를 일으키게 하는 힘은 주님의 선물이다. 

사탄은 끝까지 잡아 끌어 침대에서 못 나오게 하지만, 하나님은 트랙과 산길을 걷고 뛰라고 격려하신다. 

죽을 운명이야 다 같지만, 그 운명까지 다다르는 삶의 방식의 다 다르다. 

달리라는 선물같은 말을 주셔서 감사하다. 

 

 

[오늘의 기도]

당신의 세계로 초대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초대에 응합니다. 

당신의 사랑과 공의를 경험하고 반응하길 원합니다. 

언제가는 흙과 먼지로 돌아갈 인생이지만, 그때까지 생명을 주신 당신께 지속적으로 반응하며 살길 원합니다. 

생각이 반응하고 감정이 반응하고 몸이 반응하게 하소서.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인간적 본능을 그저 가만히 흘려보내고, 지금도 생명을 연장시켜주시는 당신의 사랑을 혈관으로 근육과 인대로 느끼게 하소서. 

달리기를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달리면서 주님을 더 많이 묵상하게 하시고, 이 세상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하게 하소서. 

생명의 기운을 더 많이 더 깊이 더 자주 경험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6월 13일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5  나는 생을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에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일하면서, 하나님께 허락받은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언제나 기쁨이 사람과 함께 있을 것이다.16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였을 때에, 그리고 땅 위에서 밤낮 쉬지도 않고 수고하는 사람의 수고를 살펴보았을 때에, 17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두고서, 나는 깨달은 바가 있다. 그것은 아무도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뜻을 찾아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은 그 뜻을 찾지 못한다. 혹 지혜 있는 사람이 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그 사람도 정말 그 뜻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다. 

 

NIV

So I commend the enjoyment of life, because nothing is better for a man under the sun than to eat and drink and be glad. Then joy will accompany him in his work all the days of the life God has given him under the sun(15절).

 

주석

15절. 불의한 세상을 목격한 전도자의 권면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아 누리는 것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즐기라 

이런 말을 들으면 알러지 반응을 한 적이 있었다. 

즐기려면 외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믿었다. 

돈과 시간이 필요한데, 그저 즐기라고 하면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두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돈과 시간이 있어도 즐기지 못할 수 있다는 것. 

즐기려고 해도 경험이 부족해서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모르는 것. 

즐기는 것은 삶의 태도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주어진 삶의 조건 속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삶의 태도다. 

즐거움을 백안시 하는 것도 삶의 태도다. 

경건주의는 즐거움을 멀리하려는 삶의 태도를 배양한다. 

그러나 진정한 경건은 즐거움과 같이 간다. 

예수님의 웃음 소리를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분이 신나게 어린 아이처럼 웃고 즐긴 적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건 아마도 나의 관점이 무겁고 회의적인 경우가 많아서일 것이다. 

예수님이라고 왜 환하게 웃지 않았겠는가? 

그분이라고 잔치에서 왜 즐겁게 떠들지 않았겠는가? 

그분의 즐거움을 묵상해본다. 

그리고 전도자의 조언도 깊이 되새긴다. 

 

2. 이해 불가

세상의 이치도 이해하기 힘들거니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도 상당히 어렵다. 

전도자는 불가능하다고 단정한다. 

그의 말이 거의 맞다

그분이 직접 알려주시지 않는 한 말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직접적으로 알려주셨다. 

그분의 뜻을 따라 여러 제자들이 자신의 삶 전체를 드렸다. 

바울 또한 이방인에 대한 선교 활동에 전 생애를 바쳤다. 

세상의 이치나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분이 가르쳐주신 것을 기반으로 하나 하나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지난 수 천년에 걸쳐 인류는 하나님이 주신 지식을 기반으로 많은 것을 이루어왔다. 

과학 기술도 그렇지만, 사회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방법도 그분에게 많이 배웠다. 

문제는 아무리 배워도 인간의 악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가는 사람은 항상 있었고, 그 속임수가 사회 구조로 정착된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이 모순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많다. 

그걸 드러내고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역할이리라. 

 

탐욕으로 똘똘 뭉친 자들이 지도자가 될 때, 그 사회는 어두움에 갇힌다. 

속임수가 난무하며, 정직함이 사그라든다. 

그럴수록 죽음의 기운을 느끼는 보통의 사람들이 늘어난다. 

고통의 현실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는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희생하여 대의를 추구하고 시민들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지도자의 출현이 절실하다. 

 

 

[오늘의 기도]

기쁨을 주시는 주님, 

주님 안에서 참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뿐만 아니라 인생의 즐거움에 대해서도 건강하게 누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죄로 인한 즐거움말고 건강한 즐거움이 왜 없겠습니까?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즐거움을 추구하고 누리게 하옵소서. 

보는 즐거움보다 활동의 즐거움을 찾기 원합니다. 

가능하면 그 활동이 누군가에 도움이 되면 더욱 좋겠습니다. 

저를 통해서 사랑이 흐르게 하시고, 건강이 흐르게 하소서.

 

나라의 지도자가 탐욕과 위선을 버리고, 진정으로 국민과 나라를 걱정하게 하소서.

무당이나 술사를 찾지 않게 하시고, 합리적이고 건전한 회의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가까운 결정에 도달하게 하소서. 

물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여 기도하며 결정하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상식과 법률에 기초해서 다양한 의견을 들음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가깝게 결정하면 참 좋겠습니다. 

지도자들의 정신과 마음을 병들게 만드는 사탄의 유혹과 거짓말을 물리치도록 이끄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6월 12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9  나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살펴보다가, 이 세상에는 권력 쥔 사람 따로 있고, 그들에게 고통 받는 사람 따로 있음을 알았다. 10  나는, 악한 사람들이 죽어서 무덤에 묻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장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악한 사람들을 칭찬한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그 악한 사람들이 평소에 악한 일을 하던 바로 그 성읍에서,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한다. 이런 것을 보고 듣노라면 허탈한 마음 가눌 수 없다.11  사람들은 왜 서슴지 않고 죄를 짓는가? 악한 일을 하는데도 바로 벌이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12  악한 사람이 백 번 죄를 지어도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모든 일이 다 잘 되지만13  악한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가 하는 일이 잘 될 리 없으며, 사는 날이 그림자 같고 한창 나이에 죽고 말 것이다.”14  이 세상에서 헛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악한 사람이 받아야 할 벌을 의인이 받는가 하면, 의인이 받아야 할 보상을 악인이 받는다. 이것을 보고, 나 어찌 헛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NIV

Then too, I saw the wicked buried--those who used to come and go from the holy place and receive praise in the city where they did this. This too is meaningless(10절).

 

메시지

이것이 바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힘을 갖고 있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다(9절).

 

[오늘의 묵상]

1. 허탈한 마음 

세상이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거나 바라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전도자는 이 사실을 깊이 깨달은 사람이다. 

상식과 염원에서 멀어진 세상의 이치. 

인과응과가 세상의 이치라면, 현실의 단면은 그 이치에 반한다. 

선인이 복을 받고, 악인이 벌을 받는 단순한 구도는 사람들의 바람의 투사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되는가!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이 있다. 

착하게 살았는데 고통스런 일을 겪는 경우도 허다하다. 

악행이 선으로 둔갑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박수를 받는다. 

선행이 오해를 사서 억울함에 목숨을 내던지는 경우도 있다. 

모순 덩어리 세상. 

전도자는 이 세상의 모순을 깊이 자각한 사람이다. 

상식적인 바램이야 왜 없겠냐마는 바램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가 없다. 

세상은 모순과 역설로 가득하여 실망과 허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정직하게 세상을 바라보면 회의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다. 

 

2. 사람들의 말

12-13절에서 전도자는 일반 백성들의 말을 전한다. 

12  악한 사람이 백 번 죄를 지어도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모든 일이 다 잘 되지만13  악한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가 하는 일이 잘 될 리 없으며, 사는 날이 그림자 같고 한창 나이에 죽고 말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을 복을 받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거라는 요지다. 

그러나 이건 필부필부들의 말일 뿐이다. 

세태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선악의 결과가 만고불변의 법칙처럼 운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욥을 봐도 그렇다. 

아브라함의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윗의 삶도 마찬가지다. 

인과응보의 원리로만 설명되지 않는 삶의 다양함과 복잡성이 있다. 

그러니 보편원리를 추출하려는 노력은 헛되고 헛되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차라리 낫다. 

헛됨을 말하는 전도자의 맥락을 따라가다보면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회의주의 시각도 하나의 관점이다. 

현상에 대한 집착도 결국 헛되다. 

차라리 영원한 하나님의 판단에 기대는 것이 현실을 살아갈 힘이다. 

현상의 관찰은 모순 덩어리이지만, 그 현상 너머의 보편적 원리가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 과학을 진보시켰다. 

모순이 새로운 원리를 낳는 원동력이다. 

전도서의 저자의 말에 대부분 동의한다. 

허나 거기에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차라리 바울의 생각으로 넘어가고 싶다. 

이 세상 만물이 죄로 물들었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완벽한 의인은 없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 그 결과는 고통 뿐이다. 

모순도 그 고통의 일부다. 

그 모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모순까지도 만드신 우주의 창조주의 뜻을 따르는 것이리라. 

 

국가 지도자는 우주의 통치자를 두려워해야 한다. 

이것은 헛된 것이 아니다. 

자기 중심의 생각과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 혼자 있을 때에도 우주의 통치자를 떠올려야 한다. 

그것에 실패했다면 필부로 남는 것이 낫다. 

 

 

[오늘의 기도]

모순조차도 허락하신 하나님, 

그 모순이라는 것도 인간의 지혜와 지식의 한계에서 비롯됨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 모순도 우주의 구성 원리이며 운영 원칙일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세상의 모순에 무기력하게 대응하기보다 주님의 섭리를 믿고 따르겠습니다. 

악과 선이 교차되어 무간도의 상황이 반복되더라도,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이 세상의 지도자들이 우주의 창조주되신 당신을 두려워하게 하소서. 

자기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소아적 자아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자기부인의 덕목을 체득한 자들이 리더로 서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6월 11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1  어떤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인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지혜는 사람의 얼굴을 밝게 하고 굳은 표정을 바꾸어 준다.

2  나는 권한다. 왕의 명령에 복종하여라. 그것은 네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것이기 때문이다. 3  왕이 싫어하는 일은 고집하지 말고, 왕 앞에서는 물러나거라. 왕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4  왕의 말이 곧 최고의 법인데, 누가 감히 그에게 “왜 그렇게 하십니까?” 하고 말할 수 있겠는가? 5  왕의 명령을 지키는 이는 안전하다. 지혜 있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 그 일을 하여야 하는지를 안다.6  우리가 비록 장래 일을 몰라서 크게 고통을 당한다 해도, 모든 일에는 알맞은 때가 있고 알맞은 방법이 있다.7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하여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8  바람을 다스려 그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듯이, 자기가 죽을 날을 피하거나 연기시킬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벗어날 사람이 없듯이, 악은 행악자를 놓아 주지 않는다.

 

주석

5절. 8장 전체는 불의한 정치적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선한 왕도 있지만) 독재자 정권 아래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기다리면서 적절한 과정을 따른다는 의미다. 요나단과 나단, 에스더가 좋은 본보기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왕의 명령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왕 앞에서는 몸을 사리는 것이 지혜롭다. 

왕이 싫어하는 것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전도서 저자가 있던 시대는 왕이 최고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 현실적으로 지혜로운 처사다. 

저자는 단순히 실용적인 측면에서 복종을 권하는 것만은 아니다. 

왕과의 약속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것과 다름 없다고 본다. 

왕이 지켜야 할 약속이 있는 반면, 신하나 백성이 지켜야 할 약속도 있다. 

이스라엘은 왕정이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왕을 통한 신정이었다.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였다. 

그 대리자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면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복을 누리게 되었을 것이다. 

 

현대 사회의 대통령은 고대 사회의 왕과 전혀 다르다. 

대통령은 국가 최고 지도자이긴 하지만, 어쨌든 선출직 공무원이다. 

절대권력을 가질 수 없으며, 삼권분립에 의해 제한된다. 

그가 국민의 뜻에 부합하여 나라를 평온하게 통치하면 참 좋은 일이지만,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거나 국민의 뜻에 반하여 계속 고집을 피운다면 탄핵을 당할 수도 있다. 

 

도리어 오늘 본문은 현대 민주사회의 최고 권력자에게 복종하라는 말로 읽을 것이 아니라, 온 우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진정한 생사여탈권을 가진 분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왕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친구이시지만, 그 전에 그분은 우리의 왕이시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2. 알맞는 때

모든 일에는 알맞은 때가 있다. 

왕에게 복종할 때가 있다. 

하지만 왕이 하나님의 명령에 어긋나는 행동과 결정을 한다면, 주님께 기도하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에게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해야 하고, 때로는 강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그가 아무리 생사여탈권을 가진 고대 사회의 왕이라 할지라도, 더욱 근본적인 왕이신 하나님의 계명을 우선시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왕은 하나님이 가만히 두실 일이 없다. 

 

윤대통령 초기, 그의 정책 방향이 분명히 잡히지 않을 때는, 어떻게 추진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서 도대체 대통령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계속 하는 것을 볼 때, 탄핵이 불가피해 보인다. 

나라를 점점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태도, 채해병 사건을 무마하려는 계략, 총선에서 드러난 국민의 뜻을 지속적으로 무시하는 자세, 자신의 가족 사건에 무조건적인 관대함으로 일관하는 처사… 

무엇보다 남북대결을 가속시키는 정책, 외교적 대립 구도를 고착화시키려는 방향성. 

국민을 점점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때다. 

 

그는 고대 사회의 왕이 아니다.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을 계속 회피한다면,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된다. 

더 많은 국민이 피해를 입고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 

지금은 그런 때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왕, 나의 왕 되신 하나님, 

당신의 계획과 명령에 더 순종하고 복종하길 원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가장 최선의 것으로 제공하십니다. 

그 사실을 믿고 주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소서.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도대체 현실의 지도자를 믿고 따르기가 어렵습니다. 

나라를 운영하는 방식이 독단적입니다. 

국민을 뜻을 받들지 않고 자신의 가족 지키기에 혈안입니다. 

배우자를 통제하지 못합니다. 

도리어 배우자에게 통제당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의 태도를 바꾸시든지,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주소서. 

 

이 나라를 보호하시고,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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