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6월 14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1  나는 이 모든 것을 마음 속으로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서 내가 깨달은 것은, 의로운 사람들과 지혜로운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나님이 조종하신다는 것, 그들의 사랑과 미움까지도 하나님이 조종하신다는 것이다. 사람은 아무도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일을 알지 못한다.2  모두가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 의인이나 악인이나,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깨끗한 사람이나 더러운 사람이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나 드리지 않는 사람이나, 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죄인보다 나을 것이 없고, 맹세한 사람이라고 해서 맹세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다.3  모두가 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잘못된 일 가운데 하나다. 더욱이, 사람들은 마음에 사악과 광증을 품고 살다가 결국에는 죽고 만다.4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희망이 있다. 비록 개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보다 낫다.5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가 죽을 것을 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보상이 없다. 사람들은 죽은 이들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6  죽은 이들에게는 이미 사랑도 미움도 야망도 없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에도, 다시 끼여들 자리가 없다.

 

NIV

So I reflected on all this and concluded that the righteous and the wise and what they do are in God's hands, but no man knows whether love or hate awaits him(1절).

 

주석

4-6절. 생명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 살아있음이 결정적으로 중요하고, 죽음은 결정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하나님의 조종 

하나님이 조종하신다는 말은 과한 표현이다. 

그분의 손 안에 있다는 말은 납득이 되지만 조종하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계를 조종할 때,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할 때, 음향장비 및 믹서를 조종할 때, 그 때 쓰는 단어가 조종이다. 

의지가 없는 존재를 자기 맘대로 이리저리 움직이고 갖다 놓고 옆으로 치우는 등의 행위가 조종이다. 

그런 의미의 조종은 하나님과 관련이 없다. 

전도자는 삶에 대한 회의를 기본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사람에게 주어진 엄청난 가치의 자유 의지를 의도적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하기보다는 초대하신다. 

당신의 사랑으로 당신의 공의로움으로 초대하신다. 

그 초대에 응하는 사람과 응하지 않는 사람의 정서는 전혀 다르다. 

응하는 사람은 점점 사랑에 관대해지고 포용에 마음을 연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통치에 반응하여 감정이 발생한다.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전투적, 공격적이게 된다. 

어쩔 수 없다. 

정글, 전장터같은 세상에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이 글을 쓸 때, 상당히 현실적이면서 회의적인 상태였던 것 같다. 

솔로몬 시대, 그 찬란했던 영광의 시기에, 도리어 이 글이 균형을 잡아 준다. 

낙관주의과 교만이 가득한 도시에 찬물을 붓는다. 

그래야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과몰입이 가져다 주는 괴물화를 막을 수 없다. 

자신과 세상을 주의깊게 성찰하지 않으면 성공의 단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개미가 될 뿐이다. 

하나님 탓으로 돌리지 마라. 

하나님은 우리를 초대하시는 분이시지, 조종하는 분이 아니시다. 

 

2. 다 같은 운명

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 

구체화시키면, 죽을 운명이다. 

지혜로운 자도 어리석은 자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의인도 악인도, 예배자도 우상숭배자도 모두 다 죽을 운명이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죽음은 언제나 곁에 있다. 

갑자기 암이 발견되어 2-3달 만에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패혈증은 아무리 건강했던 사람의 팔다리를 절단시킨다. 

그나마 사지절단에서 멈추면 다행이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갑남을녀일 뿐이다. 

죽음보다는 비루한 삶이 낫다. 

생명이 있는 한 소망이 있고, 사랑과 미움이 있다. 

생명이 있어야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고, 활동을 한다. 

비록 죽을 운명이지만, 죽을 운명에 잠식당해 무기력의 침대에 누워 있다면, 그건 죽음의 다른 모습이다. 

생명의 기운을 붙잡고, 심장의 박동을 듣고, 무릎으로 앞으로 내밀어 전진한다면 죽을 운명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시다. 

무기력의 침대에서 배에 힘을 주어 상체를 일으키게 하는 힘은 주님의 선물이다. 

사탄은 끝까지 잡아 끌어 침대에서 못 나오게 하지만, 하나님은 트랙과 산길을 걷고 뛰라고 격려하신다. 

죽을 운명이야 다 같지만, 그 운명까지 다다르는 삶의 방식의 다 다르다. 

달리라는 선물같은 말을 주셔서 감사하다. 

 

 

[오늘의 기도]

당신의 세계로 초대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초대에 응합니다. 

당신의 사랑과 공의를 경험하고 반응하길 원합니다. 

언제가는 흙과 먼지로 돌아갈 인생이지만, 그때까지 생명을 주신 당신께 지속적으로 반응하며 살길 원합니다. 

생각이 반응하고 감정이 반응하고 몸이 반응하게 하소서.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인간적 본능을 그저 가만히 흘려보내고, 지금도 생명을 연장시켜주시는 당신의 사랑을 혈관으로 근육과 인대로 느끼게 하소서. 

달리기를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달리면서 주님을 더 많이 묵상하게 하시고, 이 세상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하게 하소서. 

생명의 기운을 더 많이 더 깊이 더 자주 경험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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