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7 07 수요일

여는 기도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십시오. 주님의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9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형제요 예수 안에서 환난과 나라와 인내에 여러분과 더불어 참여한 사람인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에 대한 증언 때문에 밧모라는 섬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10 주님의 날에 내가 성령에 사로잡혀 뒤에서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11 음성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 에베소와 서머나와 버가모와 두아디라와 사데와 빌라델비아와 라오디게아의 교회로 보내라."

12 그래서 나는 내게 들려오는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아섰습니다. 돌아서서 보니, 일곱 촛대가 있는데,

13 촛대 한가운데 '인자와 같은 ' 계셨습니다. 그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14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과 같이, 눈과 같이 희고, 눈은 불꽃과 같고,

15 발은 풀무불에 달구어 놋쇠와 같고, 음성은 물소리와 같았습니다.

16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쥐고, 입에서는 날카로운 양날 칼이 나오고, 얼굴은 해가 강렬하게 비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17 그를 때에, 내가 그의 앞에 엎어져서 죽은 사람과 같이 되니, 그가 내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18 살아 있는 자다. 나는 번은 죽었으나, 보아라,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있어서,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19 그러므로 너는, 네가 것과 지금의 일들과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여라.

20 네가 오른손의 일곱 별과 일곱 촛대의 비밀은 이러하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심부름꾼이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다."

 

 

주석
18절: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권세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지금 닥칠 수 있는 죽음에 용감하게 맞서도록 격려해 줄 것이다(IVP 성경배경주석).

 

요한에게 본 것을 기록하여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큰 음성이 있었습니다. 요한은 큰 음성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분은 일곱 금 촛대(일곱 교회) 한 가운데서 오른 손에 일곱 별(일곱 교회의 심부름꾼)을 쥐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모습은 성경의 여러 부분(겔 1:24, 9:2, 단 10:5-6, 7:9 참조)에서 묘사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마주한 요한은 큰 두려움을 경험합니다. 이런 요한에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17절). 그 분은 처음과 마지막, 죽었다가 살아나셔서 영원히 살아계시고, 죽음의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17, 18절). 초대교회에 전해진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

예수님과의 만남

 

사도 요한 만큼 예수님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과 3년을 같이 지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했었다. 예수님은 삽자가에서 돌아가실 ,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맡길 정도였다. 서로 깊이 신뢰하는 관계라고 있다. 

예수님의 얼굴을 누구보다도 알아보는 사람이었다. 

이제 그의 말년, 그는 밧모섬에 갇힌다. 

여러 환난을 겪었으며, 그럼에도 끝까지 인내하고 있는 요한은 밧모섬에서 성령님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뒤에서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음성을 듣게 된다. 

신기한 것은 앞에서 음성이 들리지 않고 뒤에서 그것도 엄청 크게 들렸다는 사실이다. 

어떤 영적 의미가 담겼다기보다는 그저 신기할 뿐이다. 일반적이지는 않다. 아마도 깜짝 놀래키려고 그러셨나싶다. 

하나님은 굳이 음성으로 말씀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신적이다. 

작은 음성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도 없는데 소리가 들린다면 깜짝 놀라게 것이다. 

그런데 뒤에게 음성이 들렸다. 엄청 놀랐을 것이다. 

나이가 많이 들어 육체의 귀는 쇠하였을지 모르나 요한의 영적인 귀는 엄청난 음성을 아주 정확하게 캐치하였다. 

노인 요한, 그는 이제 예수님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된다. 

젊었을 보았던 예수님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인자하고 자비로웠던 예수님의 모습보다는 위엄과 능력으로 가득한 모습이었으며, 언뜻 보기에는 만화영화에나 나올 법한 모습으로 계신다. 

영광스러운 왕의 모습이었다. 흰머리, 붉은 눈동자, 발이 끌리는 , 가슴엔 금빛 띠를 누르시고, 발에는 장화를 신으셨는데 놋쇠같은 강인한 신이었다. 하나같이 위엄있고 권위있는 모습이었다. 과거에 예수님이 입고 다니시던 일반인의 복장이 아니었다. 

노인 요한은 이제 왕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다시 보게 것이었다. 

어찌보면 모습이 원래의 왕되신 예수님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예전에 보았던 모습은 인간의 모습을 하러 세상에 오신 분의 모습이었지, 우주의 왕의 풍모와 복장을 갖춘 왕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진정한 왕으로 오셨다. 

 

 

이렇게 예수님이 왕의 모습으로 오실 있었던 여러 요인 중에 하나가 바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었다. 

 

18 살아 있는 자다. 나는 한 번은 죽었으나, 보아라,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있어서,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죽음을 맛보았다. 정말 죽었다고 봐야 한다. 그저 죽은 했다가 아니다. 정말 그분은 죽음이 가지고 있는 여러 특성을 몸소 경험하셨다. 숨이 끊어지고, 하나님과의 오랜 영적 연합에서 이탈되었다. 어떤 문서에 보면 죽음의 기간에 지옥에 다녀오셨다는 말도 있다. 그걸 인정하든 하지 않든 그분이 인간이 겪는 죽음의 과정을 온전히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죽음이 주는 고통과 외로움과 막막함을 그분도 경험하셨다. 그렇게 그분은 죽음의 권세에 굴복하는 싶었다. 하지만 죽음도 그분을 계속 가두지 못했다. 사단도, 지옥도, 죽음도, 죄의 구렁텅이도 그분을 가두지 못했다. 그분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다. 영원한 생명의 기운이 다시 작동하였다. 그러니 사망의 세계, 지옥의 세계도 그분께 순종할 밖에 없다. 사망도 지옥도 이제 주인은 엄밀하게 말해 사단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분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사망과 지옥의 불이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예수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그분은 모든 것의 중심이시며 모든 자체이시다.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역사의 처음과 역사의 마지막은 바로 그분에게 있다. 

빛의 시작과 우주의 시작, 그리고 빛의 만개와 새로운 우주의 시작은 바로 그분에게 달렸다. 

지구를 완전히 새롭게 만드시는 비전. 

예수님은 날을 기다리고 계시다. 

 

왕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인생 최대의 사건이다. 

자기를 왕으로 알고 자라나는 수많은 인생들에게 진정한 왕은 오직 예수님 분이라는 사실은 충격이다. 

여름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길 기도한다. 

때로 예배에서 그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길 기도한다. 

 

——

왕이신 예수님, 

당신의 모습을 실물영접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습니다. 

빨리 오셔서 왕이신 예수님께 저의 무릎을 꿇고 경배하고 싶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여러 가지 여름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젊은이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받아들이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수련회와 훈련 가운데 주님의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도 왕되신 주님을 기억하고 묵상하고 집중하고 바라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7 06 화요일

여는 기도

내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1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계시는 일어나야 일들을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천사를 보내셔서, 자기의 요한에게 이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자기가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3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과,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들의 열매이시요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고,

6 우리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시어 자기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7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그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것이다.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것이다.” 그렇게 것입니다. 아멘.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주석
1: 계시란 하나님의 주도와 허용이 없이는 사람들의 접근이 불가능한 진리가 하나님에 의해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IVP 성경신학사전).

 

4, 8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란 말은 이따금 헬라어에서 영원한 신성을 나타내던 칭호와 관련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특히 구약에 나오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름에 대한 헬라어 해설을 반영한다(IVP 성경배경주석).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revelation)입니다. 이 계시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이고(1절), 요한이 본 것이고(2절), 또한 모든 사람들이 이 이루어질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3, 7절). 하나님의 사람들은 현실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하나님을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4, 8절)’으로 설명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스스로를 ‘알파요 오메가(8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의 통치 아래 있던 일곱 교회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과거에도, 미래에도 함께 계시는 주인(Lord)’이라는 메시지는 어떤 의미로 전해졌을까요? 지금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

사무엘하에서 요한계시록으로 

 

다윗 시대에서 요한의 시대로 시공간이 이동되었다. 

사무엘하 말씀을 통해 다윗이 명암을 보았다. 

다윗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 다윗의 자손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요한과 그의 시대 성도들에게로 시점을 이동한다. 

성경의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은 나름의 재미가 있다. 

시대와 장소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일하셨는지 살피고 여전히 이곳 여기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

요한의 시각은 오실 예수님에게 맞춰져 있다. 

요한은 때가 가까이 왔음을 확신하고 있다.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7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그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것이다.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것이다.” 그렇게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처음의 일성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라.”

요한은 말을 이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사용하고 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 그러니 굳건히 우리의 신앙을 지키고, 아직도 어둠에 있는 사람들이 돌아오길 요청하고 있다. 

사실 요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이렇게 늦어지는지 의아해하고 있었다.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재림은 늦어지는데, 외부의 공격은 거세다. 박해가 심해지고 있다. 로마의 황제들은 자신이 신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성도들의 고난은 점점 강도가 더해지고 있다. 

베드로도 그의 편지에서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썼다(벧후 3:9). 그것은 아직 구원받을 사람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가 차야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말이다. 아직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계획하신 인원만큼의 회심자를 얻지 못했다는 말이다. 

요한은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를 단순하게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한계시록 전체를 통해서 재림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고난과 시련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의 역동적인 삶이 담겨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의 접근과 조금 다르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베드로의 답변이 시대적으로 앞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베드로와 요한의 성향 차이이기도 하리라. 

요한은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를 문장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보여준다. 여러 장의 그림으로 재림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림은 결국 현실의 사람들에게 믿음의 삶을 살라고 굳게 현재를 이겨내라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의 접근 방식과 요한의 접근 방식 둘다 필요하다. 

 

요한이 보는 복음의 정수 

 

4b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들의 열매이시요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고, 6 우리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시어 자기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구절들은 요한이 복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첫째, 복음은 위대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평화다. 그분은 영원히 계신 분이시며, 부활의 처음이시고, 모든 중의 왕이시다. 절대적으로 위대하신 예수님이 은혜를 주신다. 평화를 주신다. 영원한 , 부활의 , 모든 현실 권력을 능가하는 왕이 은혜를 베푸신다. 평화를 베푸신다. 이것만 생각해도 요한은 가슴이 벅차다. 복음의 기쁜 소식이 그에게 들린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사실을 요한은 누구보다도 알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이다.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라고 자신을 표현하기도 했다. 익명이 오히려 더욱 부각되는 형국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의 삶을 지지하시고 더욱 멋진 삶을 살라고 격려하시며 응원하시는 분이시다. 이러니 기쁜 소식이 아닐 없다. 

셋째,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죄와 죽음, 사단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주셨다는 것이다. 그분의 사랑이 일을 하셨다. 사랑이 우리를 해방한다. 그분의 의무가 아니라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여러 압제에서 구원하신다. 이게 복음이다. 사랑이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크고 작은 선물을 주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사랑이 그분 자신을 주신 것이며, 사랑이 사람들을 실제적으로 영적으로 해방시켰다. 이게 기쁜 소식이다. 요한은 기쁨이 넘칠 밖에 없다. 

넷째, 해방 이후의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되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제사장이 되게 주셨다. 해방만으로는 우리의 삶을 제대로 정초해 나갈 없다. 우리는 그런면에서 연약하기 그지 없다. 해방이 자유가 아니라 막막함의 감옥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하나님 나라로 엮어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나라가 되고 나라의 통치 질서 속에서 있게 되었다. 허망함과 막막함을 이겨낼 있는 위치에 우리를 올려 주신 것이다. 더불어 우리는 세상의 죄를 주님께 가져와서 화목의 제사를 드릴 있는 제사장의 위치에 올려주셨다. 하나님과의 화해를 주선할 있는 위치를 주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왕이 죄인을 사랑해서 자신의 목숨으로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해방시켜주시더니 그들에게 엄청난 지위를 허락하신 것이다. 이러니 복음이다. 

 

그렇게 것입니다. 아멘. 

 

이런 일이 더욱 강력하게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이런 복음의 역사가 거부할 없을 만큼 강력하게 드러나게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땅에 드러난다. 

요한은 확신에 가득 있다. 

여러 가지 환상을 보고 환상 끝에 이런 확신에 도달했다. 

요한의 환상은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요한이 가지고 있었던 이런 확신을 더욱 강화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것이었다. 의도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요한계시록은 두려움이 아니라 안도와 확신 속에서 현실을 살게 하는 힘이 된다. 

 

여전히 예수님이 오지 않으셨다. 

그래서 불안하다. 

혹시 안오시면 어쩌나 의심이 들곤 한다. 

그러나 복음으로 우리를 이끄신 예수님의 사랑이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리라 믿는다. 

어떻게 하면 회개하는 무리의 숫자가 가득찰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재림의 날을 앞당길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날에 하늘을 불타서 없어지고, 원소들은 타서 녹아버릴 것입니다.”(베드로후서 3:12) 

 

 

——

오늘도 귀한 말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당신의 사랑을 깊이 누리길 원합니다. 

요한이 생각하는 복음의 정수를 제가 깊이 누리길 원합니다. 

당신의 사랑이 제게 더욱 부어지게 하소서. 

우리 교회, 우리 아벱에 예수님의 사랑이 더욱 크고 능력있게 부어지길 간절히 소망하고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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