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6. 김혁수

 

[본문_창세기 2:15-17_새번역]

15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16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17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0. 들어가며 

- 런닝화의 딜레마_반발력 vs. 쿠션닝

최근 달리기에 점점 진심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4킬로미터씩 달리고요, 주말에는 10킬로미터를 달리고 있습니다. 열심히 달리다 보니까 런닝화에 관심이 쏠리더라구요. 어젯밤에 유투브 선생님들을 찾아봤습니다. 어떤 런닝화가 좋은지 여러 선생님들이 알려주시더라구요. 그런데 런닝화에도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탄성 반발력이 좋은면 쿠셔닝이 떨어지고, 쿠셔닝이 좋으면 반발력이 떨어지는 딜레마가 있더라구요. 다를 완벽하게 잡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어쨌든 저는 런닝화를 구입할 예정입니다. 

 

- 인생의 딜레마_일관성 vs. 유연성

그런데, 이런 종류에 딜레마는 우리 인생 곳곳에 존재합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볼게요. 어떤 사람이 일관성을 중시하고 엄격하게 일관성을 고수하려고 하면, 유연성/융통성이 부족해집니다. 반대로 유연성/융통성을 중시하여 상황에 따라 변화를 주려고 하면, 일관성과 성실성이 부족해집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딜레마죠. 다를 완벽하게 잡을 수는 없습니다. 어쩔 없이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죠. 중간 어디쯤에 나의 위치를 잡는 거죠. MBTI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I E, N S, T F, P J, 모든 성향지표들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쩔 없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의 다른 면이 단점이 되죠. 

 

하나님의 창조에도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딜레마인지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확인해 보면 좋겠습니다. 

 

1. 창조의 딜레마 

1) 대리통치자를 둘지 말지?

번째 딜레마는 대리통치자를 둘지 말지 였을 것입니다. 이건 순전히 저의 추측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세상이 아름답게 만들어진 것을 보시고, 정말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관리를 하나님 당신이 직접 하실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맡길지 고민을 하셨던 같습니다. 물론 그분이 모든 것을 직접 관리하실 있었을 겁니다. 모든 동식물의 이름을 직접 짓고, 모든 동식물의 행동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일들을 그분이 몸소 직접 하실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대리통치지를 두는 것이 좋은 세상이라고 판단하신 같습니다. 그분이 혼자서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관여하고 통제하고 규제하는 것보다 대리 통지자를 두어 세상을 맡기는 것이 더욱 아름답고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하신 같습니다. 하나님은 첫번째 딜레마를 이렇게 풀어내셨습니다. 

 

2) 대리통치자의 권한과 책임? 

번째 딜레마는 대리통치자의 권한과 책임의 한계를 어디다가 것인가하는 점이었습니다. 권한과 책임의 한계를 에덴 동산에만 국한 시킬 것인지 아니면 세계에 걸쳐 영향을 주게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리한다고 , 그가 무엇까지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해야 했던 것이죠. 생명나무의 열매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것인지 것인지 등을 결정해야 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권한과 책임을 가지느냐에 따라 대리 통치자의 위상이 달라지는 거죠. 나라를 대표하여 타국의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죠. 영사가 있고 대사가 있고 특사가 있습니다. 각각이 다른 정도의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나라를 대표하지요. 

 

결국 하나님은 모든 권한과 책임을 아담에게 넘깁니다. 영원한 생명을 이어갈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있게 하였습니다. 이건 엄청난 권한입니다. 

 

여러분, 아시죠? 에덴 동산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나무의 열매들이 있었습니다. 생명 나무의 열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대표적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니, 다른 나무도 갖가지 이름이 있었을 같습니다. 지혜를 주는 나무의 열매, 용기를 주는 나무의 열매, 사랑을 더하는 나무의 열매 등등상상할 있는 아주 다양한 나무의 열매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있도록 하셨습니다. 가장 강력한 나무의 열매가 바로 생명나무의 열매였습니다. 영원한 삶을 있도록 만들어 주는 열매였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내쫓으실 ,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든 나무가 바로 생명나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반역하기 전에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언제든지 먹을 있었습니다. 다른 나무의 열매도 언제든지 먹을 있었습니다. 지혜, 용기, 사랑, 리더십, 절제 등등의 열매도 먹을 있었을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권한과 책임의 범위였습니다. 어마어마한 권한을 주신 겁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세상의 돌봄 통치자의 자리를 주신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결정이었고요, 창조의 딜레마 번째에 대한 하나님의 답이었습니다. 

 

창조의 딜레마 가지를 하나님은 담대하게 풀어내셨습니다. 대리통치자를 두는 것이 더욱 좋은 세상이라고 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대리통치자에게 거의 무한에 가까운 권한을 주는 것이 좋겠다고 답하셨습니다. 한가지만 금지하셨던 것이죠.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말라는 명령이었죠. 그건 조금 있다가 다루도록 하고요. 우선 다시 기억할 내용이 있습니다. 

 

2. 에덴의 기능 

1) 세계 돌봄 통치의 중심지 

에덴의 가지 기능과 관련된 내용인데요. 여러분 기억하시나요? 

에덴의 번째 기능은 혹은 역할은 무엇인가요? 맞습니다. 세계 돌봄 통치의 중심지로서 에덴의 역할이 있습니다. 에덴으로부터 세계를 돌보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모든 동물들의 이름이 지어지고 분류가 되고 관계가 설정됩니다. 각각의 개성에 맞게 세상에 흩어져 살아갑니다. 앞으로 태어날 인류의 삶은 에덴에서부터 흘러 나오는 개의 강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돌봄을 받게 되는 거지요. 돌봄 통치의 주체가 바로 대리 통치자로 지목된 아담과 하와였습니다. 

 

2) 지성소  

에덴의 번째 역할은 무엇인가요? 지난 주에 우리가 다루었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성전의 지성소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공간이 바로 에덴이었습니다. 아담은 에덴 지성소를 섬기는 대제사장 격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에덴의 가지 기능을 살펴 보아야, 하나님이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의 명령을 내리셨는지 조금 이해를 있게 됩니다. 

 

3. 명령_선악과의 딜레마

1) 최고 통치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첫째, 최고 통치자와 대리 통치자 사이에 차이를 두기 위해서였습니다. 세계 돌봄 통치를 하는 데에 있어 사람은 거의 무한에 가까운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물들의 이름을 짓고 체계화시킬 있는 권한이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모든 종류의 열매를 먹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열매는 돌봄 통치에 필요한 모든 능력을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것입니다. 자칫하다가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간극이 세계 돌봄 통치에 관해서는 사라지게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하나의 안전장치였습니다. 최종적인 선악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사람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임을 사람들이 계속 인정하도록 돕는 안전장치였습니다. 바로 동산 중앙에 있어 매일 보게 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였던 거죠. 

 

2) 지성소의 보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둘째,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지성소를 보존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에덴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중의 성전, 지성소였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지성소의 제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성소에 계시다는 말의 의미는 최종적 선악의 판단은 하나님에게 있으며, 고유한 권한은 침해받을 없고, 따라서 제사장은 하나님의 선악 판단을 세상에 알리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존재들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한다는 겁니다. 에덴 지성소에서 계속 일어나야 하는 일이 바로 이런 중재와 화해의 역동이었습니다. 지성소의 역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선악의 최종적 판단은 하나님께만 있어야 했습니다. 사람은 그걸 온전히 인정해야 했구요.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모든 나무의 열매는 먹을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못하도록 금지하셨습니다. 그걸 먹는 것은 에덴 지성소를 더럽히는 행위였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선악과를 먹는 것에 하나님이 그리도 엄중한 벌을 내리시는지 우리는 조금 이해할 있습니다. 사람의 반역을 통해 세계 돌봄 통치의 질서가 망가져버립니다. 사람의 반역을 통해 에덴 지성소가 더렵혀지고 기능이 멈춰버립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말 좋지 않은 세상이 되고 마는 겁니다. 사람에게 걸었던 기대가 순식간에 무너져버리는 겁니다. 

 

4. 나가며

- 딜레마 이해하기

저의 오늘 설명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에덴과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계획에 비추어 , 창조의 딜레마와 선악과의 딜레마 조금 이해할 있습니다. 단순히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을 시험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비추어 , 이렇게 하는 것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대리 통치자이며 대제사장인 하나님의 형상, 사람을 두어 세계 돌봄 통치와 세상 화해중재를 맡기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더욱 좋은 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창조의 딜레마, 선악과의 딜레마에 많은 분들이 헷갈려하고 힘들어합니다. 이해가 안되기 때문이겠죠. 저는 오늘 하나님 편에서 한번 설명해 보았습니다. 바라기는, 100%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분이 그리는 세상에 대한 그림에 대해 조금 이해가 되고 납득이 가고 그래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분은 몰래 숨어서 사람들이 죄를 짓는지 안짓는지를 보는 경찰 아닙니다. 덫을 놓고 덫에 걸리기만을 기다리는 사냥꾼 아닙니다. 지은 사람을 정죄하고 형량을 매기는 재판관 아닙니다. 가장 아름답고 보기 좋은 세상을 창작한 예술가 가깝습니다. 균형을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예술가입니다. 창조자는 창조자로서, 사람은 대리통치자와 제사장으로서 역할에 충실하면서 세상의 아름다운 균형이 계속 유지되길 바라는 예술가입니다. 

 

9 ,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세상의 질서를 만드시고, 작품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작품 걸작품이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인데, 사람에게는 특별한 역할을 맡기셨죠. 바로 대리통치자, 대제사장의 역할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처음 그렸던 세상에 대한 아름답고 보기 좋은 그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앞에 머물러 있으시길 바랍니다. 10, 20, 30, 조용히 침묵하면서 하나님이 그리신 그림 앞에 머물러 있어 보는 겁니다. 마치 갤러리 그림 전시회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그분이 그리신 그림을 응시해보는 겁니다. 

 

이번 , 하나님의 창조의 그림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열리고 따뜻해지길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1. 창조의 하나님을 불러 봅시다. 창조의 하나님을 되뇌여 봅시다. 하나님은 자연 만물을 창조할 , 물질만 창조하고 손을 떼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만물을 돌볼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만물과 소통하고 평화를 유지하길 원하셨습니다. 대리통치자, 대제사장 사람의 역할이었습니다. 이런 그림을 다시 상상하면서 창조의 하나님을 불러 봅시다. 

 

2. 혹시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의문이 있었다면 솔직하게 말해봅시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대해 여전히 의심이 든다면 그런지 하나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시간을 가집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창세기를 읽으며 들었던 의문은 무엇이었나요? 어떻게 해결이 되었나요? 아직 해결이 안된 지점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시고 그것을 먹지 못하도록 금지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오늘 설교를 통해서 부분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내용은 무엇인가요? 

2021. 9. 19. 김혁수

 

[본문_창세기 2:14-19_새번역]

14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겨서, 낮과 밤을 가르고,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 15 하늘 창공에 있는 빛나는 것들은 땅을 환히 비추어라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16하나님이 빛을 만드시고, 가운데서 빛으로는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빛으로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별들도 만드셨다. 17하나님이 빛나는 것들을 하늘 창공에 두시고 땅을 비추게 하시고, 18낮과 밤을 다스리게 하시며, 빛과 어둠을 가르게 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19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나흗날이 지났다.

 

0. 들어가며 

- 나는 누구인가? 

최근에 알지 못하는 분들과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모임이건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자기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갔습니다. 여러분에게 1시간 동안 자기 소개를 하라고 하면 어떻게 소개할래요? 이름, 나이, 사는 아주 기본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는 1시간을 채울 수는 없을 겁니다. 개인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훑습니다. 어디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합니다. 때로는 그걸로도 1시간을 채우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 싫어하는 것을 나눕니다. 때로는 자신의 성격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MBTI, 애니어그램 등의 성격, 성향에 대한 지표들을 활용해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나에 대한 수많은 정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나는 누구인가?” 문장으로 대답하려고 하면, 이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 때문에 어떤 것이 나의 진정한 본질을 드러내는 정체성인지 집어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세포들의 복합적 유기체다. 

나는 엄마아빠의 아들이다 

나는 지구인이다. 

나는 한국인이다.

나는 INFJ이다. 

나는 박유진의 남편, 혜율, 혜강의 아빠다. 

나는 목사다. 

나는 이성적인 존재다. 

나는 사랑받는 존재다. 

 

맞는 말인데, 어떤 정의가 가장 본질적인 답이 될까요? 여러분도 한번 여러 개의 문장을 보시고, 중에 가장 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장을 골라보세요. 

 

오늘은 그동안 여러분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가지 사실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 하나가 있는 사실입니다. 바로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성전이요, 제사장입니다. 어떻게 이런 대답을 있게 되는지 성경을 통해 살펴봅시다. 함께 본문을 읽어볼까요? 

 

1. 성전으로서의 창조 

1) 성경의 통일성 

성경은 구약과 신약 합해서 66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구전되던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 최종 성경이 편집되까지는 2-3천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적중에 기적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아 우리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신학 공부할 출석하던 한인교회의 서정곤 목사님은 종종 기적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로 갖가지 기적을 바라지만, 진정한 기적은 성경책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서 지금까지 전세계 사람들이 읽을 있게 성경이 기적 중에 기적이라는 것이죠. 

 

구약과 신약 66권의 성경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진지하게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핵심 주제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우주의 하나님,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책을 구성하셨다면, 책은 일관되고 통일된 관점이 있을 라고 믿는 거죠.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동일하다는 확신 때문에 더욱 강화되는 믿음입니다. 

 

누구는 하나님 나라라고 합니다. 누구는 언약이라고 합니다. 누구는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학자들마다 조금씩 강조점을 달리해서 성경의 통일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갑니다. 여러분은 성경 66권의 핵심 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2) 새로운 신학적 통찰의 충격 

21 전에 이야기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선교단체의 간사가 되었습니다. 사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신학에 대해서는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었습니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도 몰랐습니다. 대학에서 라틴어 수업을 들었는데, 겨우 낙제를 면했습니다. 히브리어, 헬라어를 독학으로 공부하려고 했지만, 책값만 버렸습니다. 무수한 설교를 들었지만, 사실 성경 전체를 꿰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단편적인 지식들이 머릿속을 휘집고 다녔었죠. 다만, 예수님의 사역과 십자가와 부활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복음의 소식이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봤기 때문에, 저도 그런 소망을 가지고 선교단체의 간사가 것이죠. 성경 스토리는 대충 알았습니다. 그러나 통일성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 확신하기는 어려웠습니다. 

 

, 전국의 간사님들이 모이는 수련회에서, 강사 분이 성전신학이라는 과목을 개설했는데요, 사실 저를 위한 강의는 아니었고, 저보다 기수 위의 간사님들을 위한 과목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너무 궁금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선배 간사님들에게 그게 무슨 내용인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핵심 정보를 얻었죠. 바로 구약과 신약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개념으로 통일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구약의 창조이야기도 단순히 세계 만물의 창조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의 창조라는 사실이었죠. 깜짝 놀랐습니다. 전에는 번도 그렇게 생각해 적이 없었거든요. 

 

뒤에 [성전신학]이라는 책이 2004년에 나왔습니다. G. K. 비일이라는 학자가 책인데, 그분의 책이 저의 관점을 열어 주었습니다. 책소개를 드리고 싶네요.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과학적, 물리적 의미의 세상 창조가 아니었습니다. 창조에는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이 담겨 있었습니다. 

 

3) 성전으로서의 창조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창조는 하나님이 머무실 성전의 공사입니다. 빛을 만들고, 하늘과 땅을 만들고, 육지와 바다를 만들고, 광활한 공간에 해달별을 만들어 배치하고, 물고기와 새를 만들고, 육지 동물들을 만들어 채우십니다. 이것은 과학적 진술이 아니라 종교적 신학적 배치입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만드신 것입니다.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없는 시공간을 하나님께서 질서를 부여하시고 디자인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편안하게 지내실 공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편하게 계신 곳이 어디입니까? 맞습니다. 바로 성전입니다. 

 

2. 성전으로서의 에덴 

1) 혼란을 잠잠케 하시는 하나님(1:1-2)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창세기 1 1-2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하나님의 영은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사실 1-2절의 해석은 그야말로 혼란 자체입니다. 1절이 1-2장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표제어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세상을 만드셨는데, 아직 질서가 잡힌 세상이 아니라 혼돈스럽고 공허한 세상, 어둠이 깊음 위에 있는 세상을 일단 만들었다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시작되는 것이죠. 혼란함과 공허함, 그리고 어둠이 가득한 곳에 하나님께서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무엇부터 시작하시죠? 그렇습니다. 빛을 창조하십니다. 사실 하나님 스스로가 빛이시죠. 빛의 상징은 성경 전체에 하나님을 향해 사용됩니다. 강렬한 불과 빛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하죠. 모세에게 보이신 하나님은 강렬한 불꽃으로 등장하십니다.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이끄실 때도, 거대한 불기둥으로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시죠. 다마스쿠스 언덕에서 사울은 너무나 환한 빛을 보고 눈이 멀고 말았죠.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에는 빛이신 그분으로 인해 밤이 없다고 합니다. 

 

빛을 통해 세상의 기본 구조를 만드십니다. 빛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만드시죠. 빛이 없이는, 시공간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가시광선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빛이 시공간이라는 질서를 부여합니다. 빛이 있으니 세상이 존재하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속성과 너무나도 닮은 하나의 물리적 존재를 제시하라고 하면 그건 틀림없이 빛일 겁니다. 더이상 땅은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질서가 잡힙니다. 뒤에 그분은 공간을 구분하십니다. 물을 둘로 구분하셔서 하늘과 바다라는 고대 사람들이 보기에 도저히 규모와 크기를 상상할 없는 공간을 만드십니다. 하늘도 그렇고 바다도 그렇고 그들에겐 미지의 공간입니다. 바다를 육지와 바다로 다시 구분하십니다. 공간이 계속 구획되는 것이 보이시죠? 혼란스럽던 공간이 이제 빛으로 드러나면서 하늘과 바다로 구분되고, 뒤에 바다라는 두려움과 혼란의 공간이 다시 육지와 조금 작은 바다로 구분됩니다. 

 

구분된 공간에 하나님은 각종 장식물로 채우시고 데코레이션을 하십니다. 빛과 어둠을 담당하는 해달별을 집어 넣으시죠. 하늘에는 , 바다에는 물고기를 넣으십니다. 그리고 육지에는 동물들을 넣으시죠. 이렇게 공간을 채우십니다. 어느덧 혼란스럽고 비어 있던 초기 세상이 질서가 잡히고 채워지게 되는 겁니다. 왜요?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자연 성전의 의미입니다. 

 

2) 에덴 성전에서 휴식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하나님은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지성소를 만드시기로 결정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에덴입니다. 여러분, 성전 구조에서 하나님이 직접 제사장을 만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곳이 어디였습니까? 그렇습니다. 지성소라는 곳이에요. 우리가 성전과 회막의 구조를 공부해야 한다면 이런 구조물들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일 겁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고, 그룹이라고 불리는 날개달린 동물이 지키고 있는 , 대제사장이 일년에 번만 들어갈 있는 , 만약 대제사장이 죄가 있으면 들어가자 마자 죽는 , 그래서 방울 달린 밧줄을 매고 들어가는 ,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지성소 밖에서 끌어낼 밖에 없는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바로 그곳 지성소가 원래는 어디였다고요? 그렇습니다. 에덴이라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바로 에덴에서 쉬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3) 에덴 성전의 돌봄 통치

우리는 에덴을 통해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강들을 통해 에덴에서의 통치가 세상으로 흘러들어갑니다. 그런데 통치는 어떤 통치라고 했나요? 맞습니다. 돌봄 통치라고 말씀드렸죠. 

 

돌봄 통치의 본질이 오늘 성전신학에서 밝혀집니다. 여러분, 그저 사람과 동물의 복지를 높이는 것이 돌봄 통치의 본질이 아닙니다. 에덴의 본질이 하나님의 지성소라면, 지성소에서 뻗어져 나오는 강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과의 관계 상징합니다. 돌봄 통치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요, 그분의 임재 속의 연합입니다. 그러니 단순히 인권이나 동물권의 문제는 아니죠. 그건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요, 회복된 관계에서 오는 임재 속의 연합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막이나 성전의 기능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죄인된 사람들이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화평 평화를 누리게 되죠. 그리고 그분의 임재 속에 거하게 되는 겁니다.

 

3. 성전 제사장으로서의 아담

1) 아담, 새롭게 보기 

그렇다면 에덴 성전의 대리 통치자였던 아담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대제사장 겁니다. 자연 성전의 에덴 지성소의 아담 대제사장 있었던 겁니다. 아담은 단순히 인류의 조상으로서만 기능하지 않습니다. 유전학적으로 모든 인류의 공통 조상으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부여 받아 세상 만물을 돌보는 역할의 대리 통치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만물과 하나님의 관계를 이어주며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 샬롬의 관계를 유지해 주는 대제사장입니다. 

 

2) 하나님의 형상, 그리고 제사장

고대 팔레스타인 주변 지역의 신화들을 살펴보면 이런 개념들이 많이 사용됩니다. 신의 형상은 신을 대리하며 신과 세상을 중재합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세상을 이어주는 제사장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말입니다. 

 

26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하시고, 27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창세기 1 26-27)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이미지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른 피조물과도 다릅니다. 하나님도 닮았고, 다른 피조물과도 닮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니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 대제사장의 역할을 있는 겁니다. 

 

3) 제사장의 돌봄 통치

여러분, 제사장이 자신의 역할을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분명히 하나님과 다른 피조물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가 유지되고 깊어집니다. 하나님은 자연 성전에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게 되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서로 깊은 사랑의 관계로 남게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역할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피조물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기 어렵고 하나님이 껄끄럽고 같이 있기 부담스럽게 됩니다. 하나님은 피조물로부터 그분에게 합당하게 돌려져야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없게 됩니다. 화목한 관계, 평화로운 관계가 깨어집니다. 제사장의 역할이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제사장의 돌봄 통치는 그렇게 하나님과 다른 인간과 피조물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를 계속 유지하도록 돕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4. 나가며_성전&제사장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아담의 제사장 역할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수됩니다. 

 

5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것이다. 세상이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6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것이다.’ 너는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 (출애굽기 19:5-6)

 

그리고 신약에서는 바로 그리스도인들, 저와 여러분에게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면 충격은 밖에 없습니다. 

 

16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 3: 16-17)

 

그렇습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자연 성전, 에덴 지성소가 아닙니다. 광야 시절 회막이나 솔로몬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 몸과 마음 속에 계십니다. 이것이 둘째 아담으로 불리시는 예수님, 대제사장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기도 하면서, 예수님을 닮아 제사장의 역할도 같이 감당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와야 구약과 신약의 일관된 주제의식이 드러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요, 예수님을 따라 세상과 하나님을 이어주는 제사장입니다. 

 

이게 기적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이렇게 달라집니다. 나의 정체성은 나의 좋고 나쁨으로 이뤄진 것만은 아닙니다. 내가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만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인가요?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내게 부여하신 목적과 계획 나의 정체성이 됩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고, 하나님 나라의 돌봄 통치를 실행하는 제사장이다.” 

조금 문장이긴 하지만 우리 마음과 기억 속에 각인되길 축복합니다. 

 

민족의 명절 한가위를 맞아 가족 친지와 행복한 시간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남는 시간, 넷플릭스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한번쯤은 나는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보는 추석 연휴되길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기]

1. 창조의 하나님을 불러 봅시다. 창조의 하나님을 되뇌여 봅시다. 하나님은 자연 만물을 창조할 , 물질만 창조한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자연 성전과 에덴 지성소를 창조하신 겁니다. 창조의 하나님을 부르면서 자연 성전과 에덴 지성소를 상상해 봅시다. 

 

2. 예수님의 사역으로 이제 그리스도인들 명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제사장입니다. 정체성이 우리 몸과 마음에 각인되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이며,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전이고, 하나님 나라의 돌봄 통치를 실행하는 제사장이다.” 라는 자기 정체성이 확고해지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에덴 동산이 단순히 정원이 아니고 세계 돌봄 통치의 중심지이며 동시에 자연 성전의 지성소라는 말씀이 어떻게 다가옵니까?   

 

2.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고, 하나님 나라의 돌봄 통치를 실행하는 제사장이다.” 라는 문장을 나의 정체성으로 삼는다면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2021. 9. 12. 김혁수

 

[본문_창세기 2:15-25_새번역]

15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16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17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18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 19 하나님이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드시고, 사람에게로 이끌고 오셔서, 사람이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보셨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물 하나하나를 이르는 것이 그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되었다. 20 사람이 모든 집짐승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남자를 돕는 사람 그의 짝이 없었다. 21그래서 하나님이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셨다. 그가 잠든 사이에, 하나님이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뽑고, 자리는 살로 메우셨다. 22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뽑아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23 때에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사람!

뼈도 나의 , 살도 나의 ,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24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몸을 이루는 것이다. 25남자와 아내가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0. 들어가며 

- 낙동강 영풍 제련소 

기사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낙동강 영풍 제련소 이야기였습니다. 세계 4위의 아연 제련소라고 하는데요. 원래는 제련에 사용한 물을 중금속을 기준치로 줄여서 낙동강에 방류했었는데, 최근에 기술투자를 해서 지난 100일간 방울의 물도 방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용한 물을 증류해서 다시 공업용수로 쓰고, 증류해서 나온 중금속 고체를 폐기물로 처리합니다. “폐수 무방류기술을 개발하고 설비 투자를 하고 실행했다는 점에서 칭찬하고 싶습니다. 과거에 어땠는지는 그것 나름대로 정당한 평가가 있어야겠지만, 일단 미래를 위해 투자했다는 점은 높게 사고 싶습니다. ESG 경영 주목받고 있습니다. 환경 보호, 사회적 책임, 투명한 관리구조 가치로 삼는다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환경 보호라는 측면에서 미래를 위한 경영 철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지요. 

 

오늘은 하나님의 창조가 세상 돌보기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함께 본문을 볼까요? 

 

 

1. 최고 통치자와 대리 통치자(15-17) 

1) 맡아서 돌보다(15) 

세계 통치의 중심지 에덴에 하나님은 사람을 데리고 오십니다. 그리고는 사람에게 역할을 맡기시죠. 매우 중요한 단어인데요. 바로맡아서 돌보다입니다. 15절을 다시 보실까요? 

 

15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여기서맡아서 돌보다라는 동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개역한글에는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다라고 번역을 했구요.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관리하며 지키게 하시다라고 번역을 했어요. 문제는 이게 늬앙스가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게 전달되는데요. 번째 히브리 동사 아바드 일하다. 경작하다. 봉사하다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벌써 느낌이 다르죠. 번째 동사사마르 지키다, 보호하다, 돌보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바드와 사마르를 영어와 한국어 바꾸면서 때로는 다스리며 지키게 하다. 관리하며 지키게 하다. 혹은 맡아서 돌보게 하다 등으로 늬앙스가 바뀌는 거지요. 

 

여러분들은 어떤 번역을 선호하시나요? 

어떤 번역을 사용하신다고 해도 아바드, 사마르의 온전한 뜻을 완벽하게 번역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저는 새번역의 번역을 선호합니다. ‘맡아서 돌보다그러니까 관리하면서 원래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에덴의 기능 세계 통치의 기능이 작동하도록 아담을 세우신 입니다. 지구를 훼손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생명을 앗아가는 파괴적 폭력적 독재적 통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생명과 환경이 조화롭고 평화롭게 생명의 위협 없이 공존하도록 돌봄 통치를 행하는 겁니다. 이것이 사람의 번째 역할이었습니다. 

 

2) 자유와 권한(16)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좋은 선물들을 주십니다. 그것은 에덴 동산에서 나오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마음대로 먹을 있는 자유입니다. 마음대로 사용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과일을 좋아하나요? 사과, , , , 바나나, 두리안저는 사과를 좋아합니다. 

아담은 먹고 싶은 과일을 맘껏 먹을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관리하고 돌본다면 말이죠. 또한 어떤 과일은 따서 동물에게 있었습니다. 동물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아담의 권한이었습니다. 에덴을 통한 세계 통치가 돌아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아담에게 엄청난 자유와 권한을 주신 겁니다. 과실들은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에게 영양분을 제공하고 생명을 유지할 있는 힘을 줍니다. 

 

3) 넘지 말아야 (17)

하지만 가지 제한 조건이 걸려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고 활용할 있으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는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이었습니다. 먹는 날에는 기필코 반드시 죽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무의 열매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먹지말라고 것일 있습니다. 우주의 선과 악의 기준을 정하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들이 선과 악의 기준을 정하게 되면 세상은 질서가 사라지고 혼란만 남게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단단히 일러 두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설명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처음부터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만들지 말고, 그런 제약 조건도 만들지 않았으면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제약 조건을 만들었을까요? 질문에도 다양한 답이 존재하겠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이고, 너희는 사람이다. 나는 최고 통치자가 너희는 대리 통치자이다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넘지 말아야 선이 있는 것이죠.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리해서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리고 관리하고 돌보는 것이지,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 없이 세상을 통치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자유과 권한을 위임받는 아담은 가지를 없습니다. 가지를 하게 되면 최고 통치자에 대한 반역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죽음을 가져오게 되는 겁니다. 

 

=>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왕을 모시는 영의정을 일컫는 말인데요. 아담의 상태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가 아담의 지위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는 모든 자연만물을 돌보는 역할이죠. 여기서 안전선 넘으면 죽게 되는 겁니다. 자기의 위치를 모르고 하나님이 되려는 인간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인류 역사의 수많은 제국의 황제들이 스스로를 신이라고 부르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폭력적 통치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수많은 황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만 그런게 아닙니다. 우리들도 언제든지 그런 태도로 살아갈 있다는 사실을 직면할 필요가 있습니다. 

 

2. 돌봄 통치의 실례(19-20) 

1) 동물들이 지나가다(19)

이제 본격적으로 돌봄 통치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성경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동물들을 아담에게로 이끌고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정성스럽게 흙으로 빚으신 동물들입니다. 하나님은 각각의 동물의 특징을 알고 계셨고, 자연세계에서 어떻게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면 좋을지 알고 계셨습니다. 사실 그런면에서 직접 만드신 그분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시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그게 베스트죠. 그러나 하나님은 대리통치자인 아담으로 하여금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는 권한을 주십니다. 

 

과거에만해도 아이들의 이름은 가정의 가장 연장자의 몫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작명하시곤 했죠. 가장이 이름을 짓고 아이를 축복합니다. 가장 좋은 이름을 붙여서 아이의 인생을 축복하죠. 여러분의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아마도 좋은 의미가 있을 겁니다.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권한과 책임을 넘겼다는 의미합니다. 만드신 것은 하나님이지만, 이제 관리하고 돌보는 것은 사람입니다. 

 

2) 이름을 짓다(19-20)

이름을 짓는 행위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해보죠. 수많은 동물에 이름을 짓는 행위는 왠만한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첫째, 엄청 똑똑해야 합니다. 동물의 특징에 따라 이름을 짓습니다. , , 돼지, 염소, 사마귀, 귀뚜라미독수리, 참새, 기러기붕어, 장어, 상어, 돌고래지적인 능력이 탁월하지 않고서는 이름을 짓기가 어렵습니다. 둘째, 사랑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동물의 특징을 잡아내고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관찰해야 합니다. 관찰하면서 동물의 특성을 발견하고 무엇을 도와야 하나 어떤 필요가 있나를 확인하게 됩니다. 사랑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봅니다. 

 

돌봄은 이름 짓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름이 있어야 부를 있고, 부를 있어야 관계를 맺을 있으며, 관계를 맺어야 돌볼 있습니다. 돌봄의 시작은 이름 짓기부터였습니다. 

 

=> 별명 짓기

우리 공동체의 여러 활동을 생각해보면, 안에는 이름 짓는 순간이 들어가더라구요. 여름 수련회 주제 정하기, 보이는 라디오의 이름과 주제 정하기, 매월하는 생일 파티대신 다른 이름은 없을까 하면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데 과정이 즐겁습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서로 단어가 조합되고 행사나 활동의 특징에 걸맞는 이름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고, 토의하다가 모두 박수치며 좋아한 이름으로 정하게 되죠. 이름을 짓고, 주제를 정하고, 프로그램의 이름을 만들고이런 활동이 바로 관리하고 돌보는 활동이죠. 

 

서로의 별명을 짓는 것도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특징을 보고, 축복과 재미를 담아 별명을 지어주는 거지요. 저는 어렸을 , 살은 없고 키만 컸다고 꺽다리, 전봇대 등의 별명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별명은 무엇인가요? 

 

3. 돌봄 통치의 주체들(21-24) 

1) 남자와 여자(이쉬와 이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은 돌봄 통치를 지속가능하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배려해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전세계의 돌봄통치를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했습니다. 아담 혼자서는 외로움이 깊어져서 자칫하면 번아웃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담 혼자 독처하는 것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돌봄 통치를 함께 사람 필요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돕다는 표현은 단순히 보조한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돕다 쓰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 단순히 힘의 우열, 능력의 우열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님을 우리는 있습니다. 서로 도와 가며 세상을 돌보고 관리하는 겁니다. 

 

2) 둘이 함께 하는 돌봄 통치 

둘이 함께 , 돌봄 통치는 지속가능했습니다. 특히 자녀들이 태어나면 그들도 부모의 돌봄 통치의 역할을 물려받게 것입니다. 그렇게 세계를 조화롭게 통치하게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3) 하나됨의 비밀 

하나님께서 이쉬에게서 이샤를 만드시고, 다시 이쉬에게 데리고 오자, 이쉬는 시를 지어 노래를 부릅니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사람!

뼈도 나의 , 살도 나의 ,

이쉬에게서 나왔으니

이샤라고 부를 것이다.”

 

이쉬의 이름 짓는 본성이 여기서도 등장합니다. 시를 짓고 노래를 부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노래를 부르고 싶은가요?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쉬에서 발음 하나만 바꾸어 이샤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자, 여자 이렇게 부르는데, 만약 히브리어식으로 끝만 살짝 바꾸어 남자, 여자를 표현한다면, 이렇게 부를 수도 있을 같아요. 

 

이제야 나타났구나. 사람! 뼈도 나의 , 살도 나의 , 

사람에게서 나왔으니, 사랑이라고 부를 것이다.”

 

어떠세요. 이쉬, 이샤를 이렇게 달리 표현해 봤습니다. 사람과 사랑으로 말이죠. 그러니 에덴 동산에는 사람과 사랑이 살았습니다. 이렇게 둘은 서로 몸으로 팀으로 서로를 도와가며 돌봄 통치의 역할을 맡았던 것입니다. 

 

4. 나가며 

- 돌봄 통치의 공동체

하나님의 창조는 단순히 세계의 만물을 만드신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 사이의 질서와 조화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질서와 조화를 계속 돌보고 유지하고 관리하는 사람과 사랑을 만드신 것이죠. 돌봄 통치의 공동체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 사람과 사랑을 만들어 그들이 서로 도와가며 돌봄 통치를 이어가길 바라셨던 것이죠. 

 

저는 지금도 하나님은 일을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 사람과 사랑이 되어 우리 주변을 돌보는 것이죠. 우리 공동체도 이런 돌봄 통치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서로를 사랑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이름을 불러주고 혹은 별명도 지어주면서 축복과 함께 돌보는 것이지요. 우리 서로에게도 행해야 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연 만물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고양이, , , , 사람이 돌봐야 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후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위해서는 엄청난 돈과 노력이 것입니다. 그렇지만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온전히 회복시켜 주실 겁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노력이 필요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의 통치는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통치에 들어온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도 우리 주님의 뜻에 순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1. 창조의 하나님을 불러 봅시다. 창조의 하나님을 되뇌여 봅시다. 일종의 촛점 기도가 되겠습니다. 단어를 되뇌이며 창조의 하나님의 그려봅시다. 창조 속에 녹아 있는 돌봄 통치와 돌봄 통치의 주체인 이쉬와 이샤, 사람과 사랑에 대해 머릿속에 떠올려 봅시다. 

 

2. 급격한 환경 파괴로 자연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본래의 조화는 깨지고 숲은 불타고 동물들은 곳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생태계 회복을 위한 노력이 더욱 가속화 되도록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에 많이 참여하도록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나요? 오늘 새롭게 깨닫게 것은 무엇인가요?  

 

2. 돌봄 통치를 위한 공동체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 우리 공동체가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2021. 9. 5. 김혁수

 

[본문_창세기 2:4-14_새번역]

4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의 일은 이러하였다.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실 때에, 5 하나님이 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사람도 아직 없었으므로,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포기도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6땅에서 물이 솟아서, 땅을 적셨다.

7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8 하나님이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을 일구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10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서 동산을 적시고에덴을 지나서는 줄기로 갈라져서 강을 이루었다. 11첫째 강의 이름은 비손인데, 금이 나는 하윌라  땅을 돌아서 흘렀다. 12 땅에서 나는 금은 질이 좋았다브돌라라는 향료와 홍옥수와 같은 보석도 거기에서 나왔다.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인데구스  땅을 돌아서 흘렀다. 14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앗시리아의 동쪽으로 흘렀다.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이다.

 

0. 들어가며 

- 극한직업

어제 우연히 TV 보다가 EBS1에서 방영하는극한직업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직업 세계의 방대함과 각각이 가지는 극한의 어려움 등을 보고 있으면, ‘세상엔 정말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구나' 새삼 느끼게 됩니다. 어제는 동물원의 사육사 분들의 작업을 다루었는데요, 200KG 넘는 사자를 건강검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동안 맹수들을 건강검진한다는 사실을 몰랐거니와 그저아프면 수의사가 와서 마취하고 치료하면 되는 아닌가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매년 여름이면 더위에 맥을 못추는 사자의 건강상태를 살피기 위해 건강검진을 실시합니다. 문제는 엑스레이며 각장 의료 장비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사자를 동물병원으로 이동시키는데요, 이게 장난이 아닙니다. 일단 마취를 시키고, 들것에 옮겨서, 철로 만든 이동장에 넣어, 용달 차에 싣고, 병원까지 이송합니다. 모든 것을 마취가 깨기 , 그러니까 1시간 만에 진행해야 하는데요, 사육사 20여명이 달라붙어서 일을 합니다. 긴장감, 긴박감이 장난 아닙니다. 검진 마지막 어간에 사자가 눈을 뜹니다. 너무 많은 마취 주사는 사자의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정신이 완전히 돌아오기 전까지 일을 마쳐야 합니다. 맹수 옆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가슴이 떨리더라구요. 

 

사육사들은 사자를 보호하고 돌보기 위해 이렇게 매년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돌봄이라는 것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책임감 있게 생명을 돌보는 것에는 이렇게 많은 인력과 세심한 배려와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돌봄은 습관이기도 하지만, 상황에 창의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오늘부터 9 동안 창조의 하나님에 대해서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묵상의 방향은 창조세계를 돌보시는 하나님과 돌봄으로 초대받은 인간입니다. 오늘의 첫번째 입니다. 함께 말씀을 읽어볼까요? 

 

1. 질서의 창조자(4-6)

1) 무에서 유로, 혼돈에서 질서로 

오늘 본문을 보면, 창세기 1장과는 다른 그림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그분의 말씀으로 만물을 만드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창세기 2장에서는 그분이 직접 흙이라는 재료로 사람을 빚으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1장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하나님의 엄청난 상상 불가의 능력으로 빛부터 우주와 지구와 모든 동식물을 만드시는 장면이 나오죠. 그러나 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척박한 땅위에서 생명이 살아갈 있는 생명력 있는 지구로 만들어 가시는 것을 있습니다. 1장에서는 무에서 유의 창조가 눈에 띄지만, 2장에서는 혼란함과 혼돈에서 질서를 잡아가시면서 생명이 거할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시는 장면 눈에 띕니다. 대목에 대해서는 사실 우리가 연구할 것이 정말 많은데요, 9 동안 숙고해 함께 숙고해 보면 좋겠어요. 

 

2) 질서를 위한 조건

그럼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의 질서를 잡아가실까요? 어떻게 혼란스러움을 극복하고 세상을 보기 좋게 평화롭게 조화롭게 질서를 만들고 유지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은 자신의 이미지를 닮은 마치 자녀와도 같은 대리 통치자, 대리 돌보미 세상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존귀하고, 지혜로운 존재를 세상에 두기로 것이죠. 하나님이 계속 아주 세밀한 영역까지 돌보고 통치하실 있지만, 그분 혼자서 하지 않으시고, 그분을 대행할 사람, 함께 다스릴 사람을 만들기로 것입니다.

 

2. 작품의 창조자(7-9) 

1) ,

이렇게 질서의 창조자되신 하나님이 작품의 창조자가 되시는데요. 세상 자체가 하나님의 작품이며, 독창적인 예술품인 것은 사실이지만, 더욱 세밀하고 세심한 작품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그렇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7-9절을 보실까요? 

 

7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8 하나님이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을 일구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마른 땅에 물이 오릅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마른 땅이 이슬 혹은 안개로 축축해집니다. 토기장이들이 흙으로 아름다운 도자기를 빚으려면 좋은 흙과 물이 필요합니다. 양질의 진흙이 필요하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 재료는 흙과 물이었습니다. 축축해진 흙으로 사람을 빚어가십니다. 섬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흙과 물은 흐트러지기 십상입니다. 물레 위에 진흙을 조그만 잘못 다루면 진흙이 뭉개져버립니다. 정성이 담겨야 합니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실제 하나님이 물레를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이 정성을 다해 사람을 만들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2) 손길, 숨결

자신의 이미지를 닮은 사람을 흙으로 빚은 뒤에, 하나님은 전과는 다른 행동을 하십니다. 충분히 그저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생명을 불어 넣을 있을 것입니다. 다른 식물과 동물의 생명을 만들었듯이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만큼은 완전히 다르게 창조하십니다. 어떻게요? 그렇습니다. 사람의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의 코에 하나님의 숨을 불어 넣어 주신 것이죠. 그분의 예술가적 손길도 대단하지만, 마지막이 그분의 숨결이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 생명체, 생령

이렇게 진흙은 생명체가 됩니다. 단순한 생명체, 생물학적인 생명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숨결을 머금은 생령 됩니다.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 지점에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의 손길과 숨결을 머금은 하나님은 예술 작품 바로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바로 이런 사람으로 존재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의 중심은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 인간의 탁월한 문명이나 문화가 아닙니다. 근본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손길과 숨결이 담긴 그릇 인간이기에 인간은 존엄합니다. 모든 생명이 고귀하지만, 인간에 고귀함에 비할 것은 아닙니다. 사실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예술 작품으로 인식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넘을 없는 간극이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이런 인간의 고귀함, 하나님의 예술 작품에 대한 인식이 없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자신에 대한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어떠한 폭력도 정당화 없습니다. 폭력은 예술 작품을 망가뜨리고 깨뜨려서 다시 혼돈과 혼란으로 뒤돌아가게 만듭니다. 말의 폭력이든 물리적인 폭력이든 제어되지 않은 힘의 분출은 예술가이신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반역 행위입니다. 

 

3. 통치의 창조자(10-11) 

1) 에덴의 위치와 역할 

질서의 창조자, 작품의 창조자되신 하나님은 통치의 창조자이시기도 합니다. 에덴 동산이 그걸 말해줍니다. 에덴 동산은 온갖 아름다운 예술품이 전시된 정원 아닙니다. 저희집 근처에 퍼스트가든이라는 가꾸어진 정원이 있습니다. 곳에는 꽃과 나무, 식물과 동물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작은 놀이 시설까지 구비되어 있어서 아이들과 오후 때를 보내기 좋습니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서 한번 같이 가도 좋을 같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퍼스트가든이잖아요. 에덴 동산이 떠오르더라구요. 에덴 동산이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예쁘고, 즐거운 공간일 것이라는 상상은 그것만으로 행복하지요. 그러나 오늘 본문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히 여흥을 즐기는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끝나지 않음을 있습니다. 왜일까요? 에덴동산은 왕의 정원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계실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들이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생명의 기운이, 질서의 기운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있습니다.

 

9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10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서 동산을 적시고에덴을 지나서는 줄기로 갈라져서 강을 이루었다. 11첫째 강의 이름은 비손인데, 금이 나는 하윌라  땅을 돌아서 흘렀다. 12 땅에서 나는 금은 질이 좋았다브돌라라는 향료와 홍옥수와 같은 보석도 거기에서 나왔다.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인데구스  땅을 돌아서 흘렀다. 14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앗시리아의 동쪽으로 흘렀다.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이다.

 

생명의 기운이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맛있는 열매의 나무가 동산에 가득합니다. 흙과 물이 양질이며 맛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기운이 어떻게 세상으로 퍼져가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하나가 에덴 동산을 휘돌아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비손, 기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 흘러나옵니다. 비손 강은 금밭을 휘감아 돌고 있습니다. 세상의 가장 값진 것들이 모여듭니다. 최상의 금과 최고의 보석들이 강을 따라 이동합니다. 에덴은 나무와 풀과 흙으로만 이뤄진 작은 공원이 아닙니다. 금과 보석과 당시의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세계 통치의 중심입니다. 

 

기혼 강은 구스 땅을 돌아서 흘렀는데요, 고대 세계의 지명은 때때로 유명한 인물의 이름을 반영한다는 일반적인 원칙을 적용하면,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구스는 노아의 손자로서 힘센 장사, 장수들을 많이 배출하였습니다(참고, 창세기 10:6-10). 만약 그렇게 가정한다면 기혼 강은 군대 내지 노동력을 일으킬 있는 최선의 루트를 제공합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은 농경문화의 중심이었으며, 문명의 발달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개의 강을 통해 에덴은 동산이라기 보다는 세계 통치의 중심으로 최고의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생명의 기운에 에덴에서 세상으로 흘러간다면,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이 강들을 통해 세상에 전파됩니다. 에덴은 세상 통치의 중심이 됩니다. 물류의 중심입니다. 사람과 생명과 물건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곳이 바로 에덴입니다. 그러니 에덴은 놀이 동산이 아니라 왕의 정원이 되는 거죠. 세계 통치의 중심지입니다. 

 

2) 에스겔의 환상과 요한의 환상 

왕의 정원이 인간의 반역으로 기능을 상실합니다. 그것이 창세기 3 이후로 등장하는 내용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에덴에서의 통치를 회복시키십니다. 아니 멋진 에덴을 그리고 계셨습니다. 

 

에스겔 47 

1그가 나를 데리고 다시 성전 문으로 갔는데, 보니, 성전 정면이 동쪽을 향하여 있었는데,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의 오른쪽에서 밑으로 흘러 내려가서, 제단의 남쪽으로 지나갔다. 2 그가 나를 데리고 북쪽 문을 지나서, 바깥으로 나와, 담을 돌아서, 동쪽으로 문에 이르렀는데, 보니, 물이 동쪽 문의 오른쪽에서 솟아 나오고 있었다.

7내가 돌아올 때에는, 보니, 이미 강의 양쪽 언덕에 많은 나무가 있었다. 8그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 물은 동쪽 지역으로 흘러 나가서아라바로 내려갔다가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죽은 물이 살아날 것이다. 9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것이다.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면, 물도 깨끗하게 고쳐질 것이므로, 곳에도 아주 많은 물고기가 살게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것이다

 

바벨론에 포로가 에스겔은 낯선 이방땅에서 하나님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바로 회복된 예루살렘 성전에서 물이 흘러 세상을 회복시키는 비전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덴의 회복이요. 세상 통치의 회복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요, 성전의 회복입니다. 

 

에스겔만 이런 환상을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2 

1천사는 , 수정과 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강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2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흘렀습니다.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 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쓰입니다.

 

신약 성경의 마지막, 요한이 마지막 환상 중에 이런 장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물이 나와 강이 되어 세상으로 흐릅니다. 그곳에서는 생명 나무가 있어서 영원한 생명을 주며,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사용됩니다. 이렇게 에덴 통치의 비전이 실현됩니다. 

 

3) 세계 통치/ 세계 돌봄

저는 세계 통치와 세계 돌봄이라는 단어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세계 통치는 세계 돌봄이라는 관점으로 읽어내야 합니다. 통치라는 단어가 워낙에 오염이 많이 되었습니다. 통치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세상의 권력자들의 통치는 무자비하고, 폭력적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방향이었습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노예 제도를 정당화했습니다. 국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제국주의적 식민지 확장 전쟁을 일으켰고,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통치가 폭력이 되는 역사가 인류의 역사입니다. 전쟁이 끊이질 않습니다. 21세기 수많은 정보가 축적되어 있지만, 인류의 역사가 어느 때보다 정확하게 엄청나게 많은 양으로 정리되어 있지만, 여전히 전쟁이 그치지 않는다는 점은 인류의 아이러니일 밖에 없습니다. 소말리아, 미얀마, 팔레스타인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까지전쟁은 약한 사람들에게 더욱 취약합니다. 무기가 없는 사람들은 노예처럼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통치는 폭력이 아니라 돌봄이어야 합니다. 힘은 약한 존재를 돌볼 의미가 있습니다. 

 

=> 강과 돌봄 

그런면에서, 에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강은 세상을 돌보는 물입니다. 돌보기 위해 물이 흐르고, 교류가 일어나고, 물건이 사고 팔리는 겁니다. 생명을 주기 위해, 치료와 회복이 일어나기 위해 물이 곳에서부터 나오고, 세상은 곳에 모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개의 강물이 흐른다는 것은 단순히 지형지물을 알려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단순히 에덴의 위치를 추적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상을 돌보는 중심이 바로 에덴이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무너진 에덴의 기능은 결국 하나님께서 온전히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에덴의 기능보다 훨씬 멋지게 작동하는 새로운 예루살렘을 만들어 주실 겁니다. 

 

4. 나가며_창조의 하나님

말씀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질서를 만드신 하나님, 작품을 만드신 하나님, 그리고 돌봄통치를 만드신 하나님,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무에서 유의 창조도 위대하지만, '유'에 질서와 작품과 돌봄의 기능까지 넣어서 만든신 것이 더욱 위대한 일입니다. 창조의 하나님을 우리는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의 창조를 묵상하면 그분의 원대한 계획과 뜻을 이해할 있습니다. 우리의 세계관을 튜닝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분의 창조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분의 창조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입니다. 이번 , 창조의 하나님을 깊이 살피고 묵상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1. 창조의 하나님을 불러 봅시다. 창조의 하나님을 되뇌여 봅시다. 일종의 촛점 기도가 되겠습니다. 단어를 되뇌이며 창조의 하나님의 그려봅시다.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질서, 작품, 통치를 창조해내실 하나님을 떠올려 봅시다. 

 

2.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기도합시다. 탈레반의 위협과 박해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더이상의 테러와 폭력, 살해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랑과 정의 그리고 평화가 땅에 임하도록 같이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혹은 새롭게 떠오른 질문은 무엇인가요? 

 

2. 세계 통치의 중심지로서 에덴 동산을 설계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의도가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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