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7 06 화요일

여는 기도

내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1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계시는 일어나야 일들을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천사를 보내셔서, 자기의 요한에게 이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자기가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3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과,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들의 열매이시요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고,

6 우리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시어 자기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7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그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것이다.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것이다.” 그렇게 것입니다. 아멘.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주석
1: 계시란 하나님의 주도와 허용이 없이는 사람들의 접근이 불가능한 진리가 하나님에 의해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IVP 성경신학사전).

 

4, 8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란 말은 이따금 헬라어에서 영원한 신성을 나타내던 칭호와 관련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특히 구약에 나오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름에 대한 헬라어 해설을 반영한다(IVP 성경배경주석).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revelation)입니다. 이 계시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이고(1절), 요한이 본 것이고(2절), 또한 모든 사람들이 이 이루어질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3, 7절). 하나님의 사람들은 현실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하나님을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4, 8절)’으로 설명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스스로를 ‘알파요 오메가(8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의 통치 아래 있던 일곱 교회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과거에도, 미래에도 함께 계시는 주인(Lord)’이라는 메시지는 어떤 의미로 전해졌을까요? 지금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

사무엘하에서 요한계시록으로 

 

다윗 시대에서 요한의 시대로 시공간이 이동되었다. 

사무엘하 말씀을 통해 다윗이 명암을 보았다. 

다윗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 다윗의 자손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요한과 그의 시대 성도들에게로 시점을 이동한다. 

성경의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은 나름의 재미가 있다. 

시대와 장소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일하셨는지 살피고 여전히 이곳 여기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

요한의 시각은 오실 예수님에게 맞춰져 있다. 

요한은 때가 가까이 왔음을 확신하고 있다.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7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그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것이다.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것이다.” 그렇게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처음의 일성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라.”

요한은 말을 이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사용하고 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 그러니 굳건히 우리의 신앙을 지키고, 아직도 어둠에 있는 사람들이 돌아오길 요청하고 있다. 

사실 요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이렇게 늦어지는지 의아해하고 있었다.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재림은 늦어지는데, 외부의 공격은 거세다. 박해가 심해지고 있다. 로마의 황제들은 자신이 신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성도들의 고난은 점점 강도가 더해지고 있다. 

베드로도 그의 편지에서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썼다(벧후 3:9). 그것은 아직 구원받을 사람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가 차야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말이다. 아직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계획하신 인원만큼의 회심자를 얻지 못했다는 말이다. 

요한은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를 단순하게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한계시록 전체를 통해서 재림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고난과 시련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의 역동적인 삶이 담겨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의 접근과 조금 다르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베드로의 답변이 시대적으로 앞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베드로와 요한의 성향 차이이기도 하리라. 

요한은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를 문장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보여준다. 여러 장의 그림으로 재림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림은 결국 현실의 사람들에게 믿음의 삶을 살라고 굳게 현재를 이겨내라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의 접근 방식과 요한의 접근 방식 둘다 필요하다. 

 

요한이 보는 복음의 정수 

 

4b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들의 열매이시요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고, 6 우리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시어 자기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구절들은 요한이 복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첫째, 복음은 위대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평화다. 그분은 영원히 계신 분이시며, 부활의 처음이시고, 모든 중의 왕이시다. 절대적으로 위대하신 예수님이 은혜를 주신다. 평화를 주신다. 영원한 , 부활의 , 모든 현실 권력을 능가하는 왕이 은혜를 베푸신다. 평화를 베푸신다. 이것만 생각해도 요한은 가슴이 벅차다. 복음의 기쁜 소식이 그에게 들린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사실을 요한은 누구보다도 알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이다.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라고 자신을 표현하기도 했다. 익명이 오히려 더욱 부각되는 형국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의 삶을 지지하시고 더욱 멋진 삶을 살라고 격려하시며 응원하시는 분이시다. 이러니 기쁜 소식이 아닐 없다. 

셋째,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죄와 죽음, 사단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주셨다는 것이다. 그분의 사랑이 일을 하셨다. 사랑이 우리를 해방한다. 그분의 의무가 아니라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여러 압제에서 구원하신다. 이게 복음이다. 사랑이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크고 작은 선물을 주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사랑이 그분 자신을 주신 것이며, 사랑이 사람들을 실제적으로 영적으로 해방시켰다. 이게 기쁜 소식이다. 요한은 기쁨이 넘칠 밖에 없다. 

넷째, 해방 이후의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되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제사장이 되게 주셨다. 해방만으로는 우리의 삶을 제대로 정초해 나갈 없다. 우리는 그런면에서 연약하기 그지 없다. 해방이 자유가 아니라 막막함의 감옥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하나님 나라로 엮어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나라가 되고 나라의 통치 질서 속에서 있게 되었다. 허망함과 막막함을 이겨낼 있는 위치에 우리를 올려 주신 것이다. 더불어 우리는 세상의 죄를 주님께 가져와서 화목의 제사를 드릴 있는 제사장의 위치에 올려주셨다. 하나님과의 화해를 주선할 있는 위치를 주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왕이 죄인을 사랑해서 자신의 목숨으로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해방시켜주시더니 그들에게 엄청난 지위를 허락하신 것이다. 이러니 복음이다. 

 

그렇게 것입니다. 아멘. 

 

이런 일이 더욱 강력하게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이런 복음의 역사가 거부할 없을 만큼 강력하게 드러나게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땅에 드러난다. 

요한은 확신에 가득 있다. 

여러 가지 환상을 보고 환상 끝에 이런 확신에 도달했다. 

요한의 환상은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요한이 가지고 있었던 이런 확신을 더욱 강화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것이었다. 의도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요한계시록은 두려움이 아니라 안도와 확신 속에서 현실을 살게 하는 힘이 된다. 

 

여전히 예수님이 오지 않으셨다. 

그래서 불안하다. 

혹시 안오시면 어쩌나 의심이 들곤 한다. 

그러나 복음으로 우리를 이끄신 예수님의 사랑이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리라 믿는다. 

어떻게 하면 회개하는 무리의 숫자가 가득찰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재림의 날을 앞당길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날에 하늘을 불타서 없어지고, 원소들은 타서 녹아버릴 것입니다.”(베드로후서 3:12) 

 

 

——

오늘도 귀한 말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당신의 사랑을 깊이 누리길 원합니다. 

요한이 생각하는 복음의 정수를 제가 깊이 누리길 원합니다. 

당신의 사랑이 제게 더욱 부어지게 하소서. 

우리 교회, 우리 아벱에 예수님의 사랑이 더욱 크고 능력있게 부어지길 간절히 소망하고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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