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7 30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법도를 사모합니다. 주님의 의로 내게 힘을 주십시오.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세상 나라는 우리 주님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16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는 스물네 장로도 엎드려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17 말하였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던 전능하신 ,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크신 권능을 잡으셔서 다스리기 시작하셨습니다.

18 민족이 이것에 분개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이 주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이제는 죽은 사람들이 심판을 받을 때가 왔습니다. 주님의 예언자들과 성도들과 작은 사람이든 사람이든 주님 이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실 때가 왔습니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때가 왔습니다."

19 그러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때에 번개가 치고, 요란한 소리와 천둥소리가 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우박이 쏟아졌습니다.

 

주석
19절: 성전의 열림이 자연 현상을 통해 강조된다. 요한계시록에서 이런 현상은 간혹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다른 단락들의 마무리에서 등장한다(8:5; 16:18) 나팔 소리가 수반된 시내산의 신 현현 사건에 대한 암시는, 연이은 일곱 나팔의 종결과 특히 잘 어울린다(IVP 성경비평주석).

 

일곱 번째 나팔 소리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선포됩니다(15절). 더불어 스물네 장로도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고,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16-18절). 이것은 약속된 하나님의 비밀이 드러난 것입니다(10:7 참조). 또한 제단 아래에서 외치던 순교자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6:10 참조).

 

세상의 불의와 악 속에서 주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자들은,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이 땅 가운데서 복음을 증언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은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보고 듣고 있는 요한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상상해 봅시다. 지금 나에게 이 메시지는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

 

요한계시록을 완벽하게 해석할 있는 사람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만이 하실 있다. 

최대한 본문의 의도에 맞게 해석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나도 여러 해석 중에 하나를 따르게 된다. 그중 하나가 심판이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다양한 국면의 표현으로 반복된다는 견해이다.  

일곱 봉인이 해제되고, 일곱 나팔이 불려지고, 일곱 대접이 쏟아진다. 

봉인의 해제는 어린 양되신 예수님께서 직접 하늘에서 진행하신다. 

봉인의 해제와 더불어 나팔이 불려진다. 나팔은 전우주를 향한 선포다. 

봉인의 해제, 나팔 소리, 그리고 대접이 쏟아진다. 대접은 심판을 받는 사람들을 더욱 구체화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쏟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언어이다. 

이렇게 심판의 국면을 보여준다. 

시간적 순서로 이루어졌다기보다 심판의 국면을 개의 각도로 보여주고 있다. 

1) 어린 양과 하늘 보좌의 각도, 2) 우주에 선포되는 각도, 3) 심판받는 대상에 집중된 각도. 

보좌에서 우주로 그리고 사람에게로 관점이 변화된다. 

 

오늘은 일곱째 나팔이 벌어지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늘의 장로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한다.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기 위해 멀리서 찾아왔다. 

사람들은 우주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경배한다. 

그러나 사실을 경멸하는 사람들이 있다. 

 

17 말하였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던 전능하신 ,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크신 권능을 잡으셔서 다스리기 시작하셨습니다.

18 민족이 이것에 분개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이 주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 우주를 창조하신 , 지금도 다스리시는  

그분에 대한 인식, 그분에 대한 경배에 분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신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우주의 주인되신 분이 제시하신 인간의 도리,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의 대원칙을 깨고,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양,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사람들을 자기 맘대로 죽이는 자들이 있다.  

욕망에 이끌려 자신 스스로가 신이 되려고 했던 수많은 지도자들 

그들은 영원히 계시며, 지금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가 다스려야지, 하나님이라는 형상없는 존재가 인간의 양심에 새겨놓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에 의거해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는 하나님(창조의 , 지금도 다스리시는 )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대신 자기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양심에 새겨놓은 하나님의 뜻은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에서 끓어오르는 대로 새로운 법과 규정을 만들고 사람들을 통치했다. 죽이고 살리고를 자신의 맘대로 진행한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기로 결정하신다. 

 

욥처럼, 멜기세덱처럼,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끝까지 붙들고 사람들이 있었다. 

현재를 다스리시는 창조주 믿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계획에 참여하게 사람들을 선별하여 적은 책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가 이제는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전달되었다. 

이제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존재를 보게 된다.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구체화하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통치하시는 창조주를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인간의 형상으로 태어나셔서 사람들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 매우 직접적으로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성품과 뜻과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셨다. 

사랑, 분노, 우정 등의 감정들을 보여주셨다. 

토론, 가르침, 피드백 등의 지적 활동을 보여주셨다. 

소명, 죽음을 향한 발걸음 등의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셨다. 

예수님 이후로는 예수님 말고 다른 존재나 마음 흐릿한 하나님 의식으로는 하나님께 다가갈 없다. 

왜냐하면, 더욱 분명하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실물이 있는데, 자꾸 그림만 가리킨다면 옆에 있는 실물이 섭섭하다. 

사람의 마음 흐릿한 하나님 의식만으로는 하나님께 도달할 없다는 사실을 인류 역사가 가르쳐 주고 있다. 

흐릿함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구현할 없다. 

사단이 오랫동안 흐릿한 의식을 오염시켜왔다. 

사단은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고 강고한 조직 사회를 만들어 하나님 의식을 더욱 흐릿하게 만들거나 이상한 색깔로 칠해버렸다. 인류는 이상 양심과 마음에 새겨놓은 하나님 의식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흐릿한 하나님 의식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 놓으실 있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동일한 분이 맞다. 

그러나 구약의 하나님은 고대 인간의 의식 속에서 드러날 , 욕망과 두려움에 오염된 인간의 양심과 마음 때문에 온전히 표출되지 못했다. 성경의 저자들도 자신의 개인적 한계와 공동체적 한계 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할 밖에 없었다. 성령의 감동은 인간 저자들을 기계로 만든 것이 아니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과 공동체에 적용하려고 했다. 문제는 아무리 하나님께서 100% 순수한 뜻으로 말씀한다고 해도, 인간은 자신의 한계 속에서 해석, 적용하기 때문에 100% 순수한 하나님의 뜻이 남아있기가 어렵다. 

오직 예수님만이 100%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실 있었다. 인류 구원 계획의 의도를 성취하신 것이다. 

물론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는데, 예수님은 말씀 속에 거하시기 때문에 예수 이후의 인류도 종종 하나님과 예수님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구약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혹은 비약적으로 나아진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아주 중요한 이유 하나다. 

그러니 성령님도 예수님을 기억하도록 우리는 돕는다. 

예수님 이후의 성령님의 감동은 예수님께로 향한다. 성령의 감동은 예수님을 다시 떠오르게 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고,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과 사역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기억하게 만든다. 이것이 성령님의 감동이다. 미래를 예언하고 누군가의 죄를 들쳐내는 식의 활동은 현저하게 줄었다. 성령님의 역할은 이제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 

한번 자신을 왕의 자리에 놓았던 사람들은 다시 겸손하게 인간으로 돌아오기가 어렵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놓으려 한다. 

하나님은 그들은 더이상 용서 없다. 

그들은 심판을 받게 된다. 

심판을 요한이 보고 있는 것이다. 

 

 

18 민족이 이것에 분개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이 주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이제는 죽은 사람들이 심판을 받을 때가 왔습니다. 주님의 예언자들과 성도들과 작은 사람이든 사람이든 주님 이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실 때가 왔습니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때가 왔습니다."

 

 

심판받는 이유에 대해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이라는 점이다. 

우주를 망가뜨리는 사람들. 

자신들의 욕망으로 땅의 질서를 망가뜨리는 자들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땅을 더럽히고 망가뜨린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요한계시록을 묵상하면 어쩔 없이 마음이 팍팍해진다. 

심판이 무섭고, 이해할 없는 그림 언어들로 인해 답답해진다. 

묵상이 싫어지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싶어진다. 

마음을 그저 하나님께 가져간다. 

불편하고 답답한 마음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으로 돌아가고 싶다. 

빨리 요한계시록 묵상을 마치고 복음서로 가고 싶다. 

아니 복음서가 아니어도 좋다. 이야기가 있는 성경으로 옮겨가고 싶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보면, 내가 성경을 나의 정서를 돌보는데 사용하는 것이 성경읽기의 핵심이 아니라면, 핵심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라면, 지금의 답답함과 하기 싫은 마음도 그대로 두고 주어진 말씀에 거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요한계시록을 통해 나의 생각과 관점을 바꾸시길 원하실 수도 있다. 

다시 조용히 말씀에 멈춘다. 

 

——

주님, 분노하시는 주님, 

주님의 분노에 두려움이 몰려듭니다. 

본노하시는 주님을 마음에서 아예 삭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분노하시는 주님은 성경의 주님이십니다. 

절절한 사랑의 이야기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노와 심판의 이야기로 끝날 있습니다. 

사랑을 끝까지 거부하고 무시하고 저주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주님, 마음이 끝까지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하나님이 무서워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더욱 귀하고 아름답고 고귀하고 사랑스러워서 사랑하게 주세요. 마음을 지키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르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7 29 목요일

여는 기도

마음이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1 나는 지팡이와 같은 측량자 하나를 받았는데, 때에 이런 말씀이 내게 들려 왔습니다. "일어서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고, 성전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세어라.

2 그러나 성전의 바깥 뜰은 측량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그것은 이방 사람들에게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거룩한 도성을 마흔두 동안 짓밟을 것이다.

3 나는 증인에게 예언하는 능력을 것이다. 그들은 천이백육십 동안 상복을 입고 예언할 것이다."

4 그들은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 앞에 있는 올리브 나무 그루요, 촛대 입니다.

5 그들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원수들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들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고 것입니다.

6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 활동을 하는 동안에, 하늘을 닫아 비가 내리지 못하게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번이든지, 어떤 재앙으로든지, 땅을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7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마칠 때에, 아비소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싸워서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8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도시의 넓은 거리에 내버리게 것입니다. 도시는 영적으로 소돔 또는 이집트라고도 하는데, 그들의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입니다.

9 여러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흘 동안 예언자의 시체를 것이며, 시체가 무덤에 안장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10 그리고 위에 사는 사람들이 시체를 두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서로 선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것은 예언자가 위에 사는 사람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나 사흘 지난 뒤에, 하나님에게서 생명의 기운이 나와서 그들 속으로 들어가니, 그들이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12 예언자가, 하늘로부터 자기들에게로 "이리로 올라오너라" 하는 소리가 울려오는 것을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이 그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13 바로 때에 지진이 일어나서, 도시의 십분의 일이 무너졌는데, 지진으로 사람이 칠천 명이나 죽었습니다. 그리고 살아 남은 사람은 두려움에 싸여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14 둘째 재난은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셋째 재난이 닥칠 것입니다.

 

 

주석
2절: ‘마흔두 달’과 ‘일천이백육십일(12:6 참조)’,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12:14 참조)’는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3년 반에 해당하는 표현이며, 모두 다니엘서의 예언으로부터 유래했다(단 7:25; 9:26-27; 12:7, IVP 성경주석).

증인(3-4): 4절에서 요한은 스가랴 4장의 맥락에서 증인 역할을 하는 선지자들을 표현한다. 곳에서 감람나무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 대표한다. 그리고등대(촛대)’ 이스라엘이다. 개뿐이었던 등대가 나무에 부응하기 위해 등대가 된다. 그리고 등대는 예언하는 능력 가운데 있는 교회 그린다(IVP 성경주석).

 

요한에게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라는 말씀이 들립니다(1절). 그리고 측량할 곳과 측량하지 말고 내버려 둘 곳이 나누어집니다(2절). 뒤이어 두 증인이 등장합니다. 이 두 증인은 상복을 입고 1260일(42달)동안 예언의 말씀을 전합니다(3절). 그리고 그들이 증언을 마칠 때, 아비소스(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3일 반 동안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7-10절).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생기로 살아나서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12절).

 

신실한 두 증인은 세상의 불의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교회)을 의미합니다. 이방 사람들이 42달동안 하나님의 도성을 짓밟는 동안, 신실한 증인은 상복을 입고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신실한 증인들은 예수님처럼, 죽임 당하고 수치를 당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기가 이 신실한 증인들을 살리고, 하늘로 올리십니다. 그리고 세상은 놀라운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

확실히 이렇게 상징으로 표현해 놓으니까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이게 아마도 계시문학의 상징이 갖는 절대적인 힘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해서 미치게 만드는 . 

실체가 무엇인지 모를 표현해서 더욱 알고 싶어지게 만드는 . 

하지만, 해석 공동체 안에 있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게 만드는 . 

지혜와 수수께끼가 난무한다. 

구약의 여러 표현들이 등장한다. 

스가랴와 다니엘서의 느낌이 곳곳에 배어 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사건이 겹쳐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린다. 

역사속에서 반복되었던 패턴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결국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린다. 

그분이 우리를 부활시키실 것이다. 

신실하게 그분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여실 것이다. 

 

정말 요한계시록은 궁금함을 증폭시킴과 동시에 집중력을 잃게 만드는 묘한 책이다. 

궁금해서 미치겠지만, 어느 순간 집중력을 잃어버린다. 

그림이 연결이 안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있는 드라마의 그림이 아니다. 

이야기가 뜬금이 없다. 개연성도 없다. 무질서한 단서들만 난무하는 범죄현장같다. 

오래 쳐다보기가 어렵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겨우겨우 시심 설명을 통해, 집중력을 유지한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시 기대한다. 

 

최근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상이변들을 보면 정말 마지막 시대의 마지막 때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예수님이 오실 것만 같은 느낌적 느낌이다. 

중국에서의 큰물, 유럽의 홍수, 남미의 우박, 사우디의 폭우…. 

미국 캐나다의 큰불, 호주의 큰불 

곳곳이 난리다. 

많은 사람들이 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 

자연이 고통받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우리 주님의 구원을 간구한다.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 

세계 질서가 급변할 수도 있다. 

코로나가 세계 질서의 변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에 더욱 강하게 개입하실 때가 가까워오고 있다. 

교회사에 걸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종말의 신앙을 가지고 시대를 살아갔다. 

아마 나에게도 그런 종말 신앙을 원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

주님,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씀에 대한 집중력도 그렇고 일상에 대한 집중력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집중력을 유지할 있도록 도와주세요. 

당신의 뜻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하루를 살아가도록 도와주세요. 

몸의 피곤함은 정서적 영적 피곤함으로 이어집니다. 

더위에 지치지 않고 마음 속에서 주님을 더욱 추구하게 하소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세계에 재난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재난 속에서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때로는 국가나 정부가 충분히 대비 하지 않아서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 책임맡은 사람들이 더욱 신실하게 자신의 책임을 다하게 하시고, 

문제가 생길 , 마치 자신의 가족이 당하는 고통인 것처럼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해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7 23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법도를 사모합니다. 주님의 의로 내게 힘을 주십시오.

 

1 어린 양이 일곱째 봉인을 때에, 하늘은 시간 동안 고요하였습니다.

2 그리고 나는 하나님 앞에 있는 일곱 천사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나팔을 하나씩 받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3 다른 천사가 와서, 금향로를 들고 제단에 섰습니다. 그는 모든 성도의 기도에 향을 더해서 보좌 금제단에 드리려고 많은 향을 받았습니다.

4 그래서 향의 연기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습니다.

5 뒤에 천사가 향로를 가져다가, 거기에 제단 불을 가득 채워서 땅에 던지니, 천둥과 요란한 소리와 번개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6 때에 나팔을 하나씩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우박과 피에 섞여서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땅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푸른 풀이 타버렸습니다.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타는 산과 같은 것이 바다 던져졌습니다. 그래서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9 바다에 사는, 생명이 있는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부서졌습니다.

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나가 횃불처럼 타면서 하늘에서 떨어져서, 강들의 삼분의 일과 샘물들 위에 덮쳤습니다.

11 별의 이름은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물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고, 많은 사람이 물을 마시고 죽었습니다. 물이 물로 변하였기 때문입니다.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의 삼분의 일과 달의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입어서, 그것들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고, 낮의 삼분의 일이 빛을 잃고, 밤도 역시 그렇게 되었습니다.

13 그리고 내가 보고 들으니, 날아가는 독수리 마리가 하늘 한가운데로 날면서, 소리로 외쳤습니다. "화가 있다. 화가 있다.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 아직도 천사가 불어야 나팔 소리가 남아 있다.”

 

 

주석
성도의 기도(1-5) ‘하늘이 고요 일이 발생하였다. 3-4절에 비추어 , 이는 성도의 기도를 듣기 위함이었던 같다. 5절에서 그들의 기도가 응답된다. 향을 태운 불이 땅에 던져져 심판의 수단이 된다(IVP 성경주석).

나팔 소리(6-13절) 첫 번째 네 가지는 출애굽 때 있었던 애굽의 재앙을 연상시킨다. 15:3에서, 그리스도의 오심은 암묵적으로 출애굽에 비교된다(구속을 받은 자들이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른다). 그러므로 두 번째 출애굽으로서의 최종적인 구속이 첫 번째 출애굽과 마찬가지로 유사한 재앙에 의해 예고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IVP 성경주석).

 

어린양이 일곱 번째 봉인을 떼자, 잠시 동안 침묵이 흐릅니다(1절). 이 침묵 가운데 성도들의 기도가 금향로의 연기와 함께 하나님께 올라갑니다(4절). 그 이후에 성도들의 기도가 담긴 향로가 제단의 불과 함께 땅에 던져지고(5절), 일곱 나팔의 재앙이 시작됩니다(6절).

 

일곱 나팔의 재앙은 하나님의 공의를 바라던 순교자들과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8:5; 6:10 참조). 출애굽을 떠올리게 하는 나팔 재앙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중에도,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고통과 신음에 귀를 기울이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과 신음에 귀를 기울이고 계시고,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토로합시다.

 

——

성도의 기도

 

성도들의 오랫동안 드렸던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된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간구, 그들이 하나님께 드렸던 대화의 내용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모든 말들이 하나님께 도달한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에 향을 얹어 그분의 코로 흡수한다. 

오랫동안 향은 하나님 앞에서 올랐다. 

숱한 동물들의 냄새, 피냄새, 배설물 냄새로 혼란스러운 냄새의 세계에 강력한 향이 정리에 들어간다. 

출애굽 당시 성소에는 향이 피워져 있었다. 

하나님은 성도의 간구를 직접 흡향하신다. 

 

특별히 지금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도들의 고난과 고통 속에 올라오는 기도들이다. 

기도는 구원의 요청이며, 빠른 심판이 도래할 것을 강구하는 기도다. 

물론 와중에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을 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연합 속에서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는 기도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간절하고 급박하게 하나님께 요청하는 기도다. 

 

구해주세요. 

살려주세요. 

당신의 정의를 보여주세요. 

더이상의 불의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전쟁이 끊임없이 발발하고 약한 사람들은 죽어나간다.

그러니 애절한 간구의 목소리는 중단이 없다. 

하나님은 기도 소리를 들으신다. 

그리고 정의의 심판을 내리신다. 

 

해석의 방식

 

첫번째 나팔이 울린다. 

인의 심판와 나팔의 심판이 어떻게 연관된지는 모르나 

시간의 순차적 흐름에 따라 일이 진행될 것이라는 판단은 너무 1차원적이다. 

상징은 시간의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계시는 시간의 순서대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중요도에 의해 과장되거나 축소된다. 

계시록의 문학 장르로서의 특징도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나선형의 상승 구조라고 수도 있겠다. 

인과 나팔, 그리고 대접 

그냥 첫인상은, 봉인을 해제하는 것은 상당히 공식적이다. 

비밀이 풀린다는 것에 초점이 있는 싶다. 

봉인을 해제하는 어린 양에 대한 주목도가 상당하다(6:1, 3, 5, 7, 9, 12, 8:1). 

봉인을 뜯으니 본격적인 하나님의 심판과 마지막 때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드러난다. 

그것도다는 조금 비밀스럽게도 나팔은 천하게 공표한다는 의미가 강하게 표출된다. 

봉인의 해제는 하늘의 보좌위의 공식 문서의 드러남이라면, 나팔 소리는 우주에 퍼지는 파동이요 영향력이다. 

자연 만물이 나팔 소리에 반응한다. 하늘과 , 강과 바다, 태양과 달과 모든 만물이 반응한다. 

나팔 소리는 만물 속에 내장된 프로그램을 작동하게 하는 스위치와도 같다. 

대접에 대한 인상은, 하나님의 진노가 사람들에게 임하는 장면이 강조된다. 

자연의 반응보다 진노의 대상에 대한 묘사가 좀더 세밀하다. 

진노를 받는 사람들의 죄악과 그들의 잘못에 촛점이 있다. 

이렇게 재앙 시리즈에는 그것마다 특징이 있다. 

 

시간의 순서대로 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강조점의 이동으로 재앙을 반복적으로 소개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결국 인류의 죄악으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것이고, 억울한 죽음은 신원받게 것이다. 

하나님은 우주적 심판으로 만물과 사람들을 새롭게 한다. 

그리고 완성된 하나님 나라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찰 것이다. 

천상의 찬양이 수시로 울리며, 사람들은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파티를 열고, 하나님의 통치 질서에 서로 복속하며 우주와 땅을 통치하게 것이다. 

 

심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새로운 우주를 여는 문이다. 

그런면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고대한다. 

세상과 우주의 새로운 국면을 기대한다. 

 

——

 

어떤 심판이 다가오더라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당신이 하실 일을 기대합니다. 

기대감으로 오늘 하루를 살기 원합니다. 

코로나, 기후위기, 패권전쟁, 경제전쟁 

세상은 정신이 없습니다. 

와중에 선거는 다가오고, 올림픽은 개최됩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어느 하나 정답을 찾기 힘든데, 

그럼에도 주님께서 세상을 바꾸실 것을 기대합니다. 

오직 어린 양이 하실 있습니다. 

심장은 주님떄문에 뛰게 하시고, 

눈물은 주님에 대한 기대 때문에 흐르게 하소서. 

여전히 기아로 허덕이는, 수해로 고통받는, 산불로 위협받는 주님의 백성들을 구원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7 22 목요일

여는 기도

마음이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9 뒤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없을 만큼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인데, 두루마기를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앞에 있었습니다.

10 그들은 소리로, "구원은 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의 것입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11 모든 천사들은 보좌와 장로들과 생물을 둘러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12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영원무궁 하도록 있습니다. 아멘!” 하고 말하였습니다.

13 때에 장로들 가운데 하나가 "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14 내가 "장로님, 장로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더니,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사람들은 환난을 겪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희게 하였습니다.

15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그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좌에 앉으신 분이 그들을 덮는 장막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16 그들은 다시는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도 않고, 해나 밖에 어떤 열도 그들 위에 괴롭게 내려 쬐지 않을 것입니다.

17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MSG

I saw a huge crowd, too huge to count. Everyone was there—all nations and tribes, all races and languages(9).

 

 

주석
13-14 장로의 물음에 대한 요한의 대답은나도 알고 싶습니다라는 뜻을 함축한다. 무리가 가운데서 나오는 환난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이면 정상적으로 받아야 하는 시련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세상 무렵에 일어나는 환난을 가리킨다(IVP 성경주석).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의 큰 무리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구원을 찬양합니다(9-12절). 그리고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장로들 가운데 하나가 요한에게 설명하려 합니다(14절). 그들은 큰 환난을 지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환난 속에서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장막 아래에서 더 이상 고통과 눈물, 굶주림과 목마름이 없을 것입니다(16-17절).

 

6번째 봉인(6장)과 7번째 봉인(8장) 사이에 위치한 이 본문은 세상에 큰 환난이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보호받고 건짐 받을 것임을 보여줍니다. 민족, 인종, 백성, 언어를 넘어서서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환난으로부터 구원받고, 하나님과 어린양의 구원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이 장면을 한 번 떠올려봅시다.

 

——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위대한 영웅을 사랑하지 않을 없다. 

역사는 일의 중요성을 극대화하는 배경이다. 

인류의 역사 내내 실패와 좌절과 고통은 끊이지 않았고, 인류는 참된 구원자를 갈망해왔다. 

역사가 없었다면, 필요성, 중요성, 시급성,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우리 힘으로 충분히 이룰 있다는 자만심이 가득했을 것이다. 

인간의 지식과 능력으로 충분히 유토피아를 만들 있으며, 인류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구가할 있을 거라 믿었을 것이다. 

메시야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내내 전쟁과 폭력과 살인과 강간으로 가득하다. 

지배층이건 피지배층이건 이는 마찬가지다. 작은 공동체이건 국가 단위건 간에 싸움은 끊이지 않는다. 

평화로운 시기는 잠시 동안이며 이내 폭력과 전쟁이 발발한다. 

인류는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힘이나 능력이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그래서 역사의 중심이 된다.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한다. 

사랑과 섬김과 자기희생이 중심가치가 된다. 

인류에 새로운 희망을 준다. 그것도 그분 스스로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말이다. 

그러니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인류 역사이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역사이건 아님 자신의 개인사이건 간에 조금이라도 진지하고 정직하게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죽임 당하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을 없다. 

 

백성이 경배하며 찬양한다. 

군중 심리에 의해, 다른 사람들에 묻혀서 하는 찬양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구원의 감격, 기쁨, 감사가 있다. 

감격이 한데 뭉쳐 나오는 것이다. 

구원받은 백성들의 기쁨이 천상의 합창이 된다. 

각자 구원받은 이야기가 있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없이 사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 권력,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감격이 덜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것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도움으로만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감격이 끊이지 않는다. 

개개인의 감격이 모여 우주적 찬양이 일어난다. 

영원히 보좌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장면은 상징이다. 

물론 어느 역사적 순간에 저런 장면이 연출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역사를 통틀어 구원받은 무리들이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앞에 서서 영광의 찬양을 하게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똑같은 장면만 계속 된다면 그건 예술 작품에 불과하다. 

살아있는 일상과 삶은 작품을 뛰어 넘는다. 

우리는 그분의 통치에 참여하며, 찬양과 일상이 통합된다. 

새로운 통치 질서 속에서 새로운 임무가 주어지고 새로운 관계 방식과 역동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같이 모여 서로를 축복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자원의 부족함, 물질의 부족함, 먹을 것의 부족함을 겪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그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찬양과 일상이 통합되어 삶의 영역에 기쁨이 들어설 것이다. 

 

오늘 본문의 찬양이 준거가 것이다. 

사람들은 찬양의 순간을 기억하며 일상에서 떠올리고 회상하고 다시 확인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춤이 일상이 되고, 노래가 주변에 넘친다. 

이런 날이 온다. 

아름다움의 극치 

 

이런 날을 기대한다. 

 

——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예수님, 

우주가 주님을 찬양하고 박수를 치며 주님 앞에서 춤을 춥니다. 

절제된 찬양과 기쁨이 가득합니다. 

오늘 하루도 모습을 상상하며 주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완벽하게 모방할 수는 없겠으나, 영광스런 찬양의 모습이 인생에 구현되게 하소서. 

열방이 함께 모였던 월드어셈블리와 같은 일들이 끊이지 않도록, 

코로나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일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때를 다시 기다리며 지금의 시기를 지혜롭게 보내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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