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7 13 화요일

 

여는 기도

내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1 "사데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보내어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행위를 안다. 너는 살아 있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

2 깨어나라. 그리고 아직 남아 있지만 죽어 가는 자들을 굳건하게 하여라. 나는 행위가 나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3 그러므로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되새겨서, 굳게 지키고, 회개하여라.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같이 것인데, 어느 때에 내가 네게 올지를 너는 알지 못한다.

4 그러나 사데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 몇이 있다. 그들은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인데,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5 이기는 사람은 이와 같이 옷을 입을 것인데, 나는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않을 것이며, 아버지 앞과 아버지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시인할 것이다.

6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보내라. '거룩하신 , 참되신 ,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 여시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시면 사람이 없는 그분이 말씀하신다.

8 나는 행위를 안다. 보아라, 내가 앞에 문을 하나 열어 두었는데, 아무도 그것을 닫을 없다. 네가 힘은 적으나, 말을 지키며,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9 보아라, 내가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 손에 맡기겠다. 그들은 스스로 유대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다. 보아라, 내가 그들이 와서 앞에 꿇어 엎드리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는 것을 알게 하겠다.

10 인내하라는 말을 네가 지켰으니, 세상에 닥쳐올 시험을 받을 때에, 나도 너를 지켜 주겠다. 시험은 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려고 닥치는 것이다.

11 내가 가겠다. 너는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잡아서, 아무도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여라.

12 이기는 사람은, 내가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 그는 다시는 성전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도시,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사람의 몸에 두겠다.

13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주석
사데(1): 사데는 1세기 말경에 번창하던 경제 중심지였고, 영향력 있는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편지가 반대자나 사회적 충돌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우리는 기독교 공동체가 그런 상황에 적응했다고 추론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사데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생각처럼살아 있지않고죽었다 주장한다(IVP 성경비평주석).

빌라델비아(7절): 서머나에서처럼 빌라델비아 도시의 유대인들은 ‘사단의 회’로 불리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을 반대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는 오직 유대인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에 자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 나라의 주재자는 이미 자신을 따르는 이에게 하나님 나라를 열어 놓으셨다(IVP 성경주석).

 

주님은 사데 교회가 사실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말씀하십니다(1절). 그런 사데 교회를 향해 ‘깨어나라(2, 3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주님께 받고 들은 가르침을 기억하고, 지키고, 회개하여야 합니다(3절). 주님은 신실하게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을 알고 계십니다(4절).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7절; 사 22:22 참조).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고 닫을 권세가 있는 분입니다(8절). 그 주님께서 친히 거짓된 세력들을 굴복시킴으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향한 사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9절). 그렇기에 우리는 인내하며 주님의 약속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

죽은 , 죽어 가는  

예수님은 사데 교인 중에 벌써 죽은 자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죽어 가는 자가 있다고도 말씀하신다. 

몸은 살아 있고, 모임은 유지되고, 구체적인 실천도 일어나고 있지만, 이미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있다. 

죽어가는 자들이 있다. 

그와 동시에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성도들도 있음을 말씀하신다. 

교회에는 크게 옷이 깨끗한 사람, 죽어가는 사람, 이미 죽은 사람이 공존하고 있다. 

어느 교회나 이런 사람들이 있겠지만, 사데교회는 비율이 죽은 사람들 쪽이 높다. 

예수님은 옷이 깨끗한 사람,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2 깨어나라. 그리고 아직 남아 있지만 막 죽어 가는 자들을 굳건하게 하여라. 

 

죽어가는 사람들을 깨우라. 

죽어가는 사람들을 다시 세우라. 

 

3 그러므로 네가 그 가르침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되새겨서, 굳게 지키고, 회개하여라. 

 

다시 살리는 방법은 결국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시 되새기고, 굳게 지키고, 회개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해내는 것이다. 

처음 받았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복기하는 . 

예수님의 가르침의 순수한 원본을 찾아가는 , 

다시 가름침 위에 서서, 자신의 삶을 회개하는 . 

이것이 다시 사는 길이다. 

 

사람들은 변화 앞에 무기력하게 휩쓸리곤 한다. 

세상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면 도태되고 결국 사회적 부적응자, 실패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변화를 쫓아간다는 말은 변화를 배운다는 것이다.

배우지 않고서는 따라갈 수가 없다. 새로운 문명, 새로운 과학기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우고 익혀서 자기 것으로 삼아야한다. 

그러니 얼마나 피곤한가. 따라가기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모자란다. 

그렇게 열심히 배워도 선도그룹에 올라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뉴스가 나오고, 체계적인 배움의 프로세스가 나왔다면 이미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저 뒤따라가기에도 바쁘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시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갈 있는가? 

예수님의 가르침이 세상의 변화에 적절한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때에도 다시 그분의 가르침으로 돌아갈 있는가? 

그분의 가르침의 현실 적합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진다면 과연 다시 시간을 들여 그분의 가르침에 몰입할 있을까? 

 

예수님은 이런 상태를 죽어가는 상태라 판단하시는 같다. 

그분의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갈 필요를 못느끼는 사람들. 

현재의 필요에 몰입되어 그것을 따라가기에도 바쁜 사람들. 

교회 모임에는 나오지만, 생각과 마음은 변화되는 세상 앞에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사람들. 

예배는 드리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라지고, 종교적 관습과 습관에 젖어 있는 사람들. 

그렇게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가치가 축소되고 점점 멀어진다. 

죽어가는 것이다. 

가르침의 내용이 희미해 지는 ,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점점 죽어가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살리는 것이 사역자의 역할이다. 

교회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들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다시 돌리는 , 

가르침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는 , 

그래서 다시 자신의 삶을 가르침에 비추어 되돌리는 .   

이것이 다시 살리는 길이다. 

 

이렇게 살리는 사람들이 흰옷을 입는 사람들이다. 

끝까지 지켜내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이다. 

 

 

방해꾼의 존재 

빌라델비아 교회 주변에는 강력한 유대인 그룹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아님 예수님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 그룹인 같다.

게다가 유대 민족주의자로서 오직 구원은 이스라엘에게만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모양이다.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대인들은 사단의 무리라는 판단을 받았다. 

예수님은 그들의 말과 행위가 사단에게 속한 것임을 말씀하신다. 

 

 9 보아라, 내가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 손에 맡기겠다. 그들은 스스로 유대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다. 보아라, 내가 그들이 와서 앞에 꿇어 엎드리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는 것을 알게 하겠다.

 

그런데 감동적인 부분이 있다. 

사단의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결국 거룩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 앞에 꿇어 엎드려진다. 

그리고 예수님, 하나님이 유대인들이 아닌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사단의 무리들이 더이상 자기 주장을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하나님의 선호를 드러내신다는 약속이다. 

반론을 제기할 없다. 

명확하다. 

하나님은 유대민족주자들의 편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방의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옹호하신다. 

부정할 없는 증거가 차고 넘칠 , 사단의 무리들은 마음의 무릎을 꿇고 수긍할 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방해꾼은 패배한다. 

방해꾼이 없지 않다. 방해꾼은 언제나 생길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교인들에게 마음의 무릎을 꿇게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사랑이 머무는 곳에 계속 거하는 것이 핵심이 된다. 

 

예수님, 모든 것을 아시는

본문에서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으로 등장하신다. 

요한계시록의 예수님은 교회의 상황을 너무나 아시는 분이시다. 

사람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아신다. 

교회에 존재하는 여러 사람들의 상태를 판단하시고 구분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레이다, 그분의 CT, 그분의 MRI 정확하시다. 

그리고 처방도 정확하다. 

그분의 교회의 의사가 되신다. 

그분의 처방전에 따라 교회가 움직이면 교회는 살아난다. 

그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회개하기를 요청하신다. 

요한계시록의 교회들에게 거의 공통적으로 요청하시는 것은 회개다. 

고쳐서 돌이키는 . 

예수님의 원래의 가르침으로 다시 고쳐서 돌이키는 . 

회개는 성도들에게 계속 요청된다. 

처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요청되는 것이 아니다. 

조금 멀리 떨어져 나간 사람들에게, 교회 전체에게 다시 요청된다. 

교회는 언제든지 회개의 자리를 만들 있어야 한다. 

자기 만족에 빠져있으면 안된다. 명확한 예수님의 말씀에 돌아서야 한다. 

 

 

내가 속한 공동체는 예수님의 진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종합검진을 받으러 내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사도 요한처럼 귀를 기울일 있는가? 

때로 슬픈 진단을 받더라도,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죽어가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그렇게 해야 한다. 

 

——

의사되신 예수님, 

저와 공동체를 주님의 진찰에 맡깁니다. 

누구보다도 정확히 판단하시는 , 

누구보다도 정확히 진단하시고 처방하시는 , 

우리를 살려주시는 . 

당신께 저와 공동체를 맡깁니다. 

혹여라도 죽어가고 있다면 살려주십시오. 

당신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게 주세요. 

수많은 학자들의 이야기에 훼손되지 않고 오직 주님이 원래 우리에게 주셨던 말씀으로 돌아가게 주세요. 

그렇게 다시 살아나게 주세요. 

당신의 영적 권위가 우리 개개인들에게 되살아나 주님께 순복하고픈 마음이 충만하게 주세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게 해주세요. 

 

오늘도 주님 앞에 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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