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7 10 토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종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주님의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시오.

 

18 "두아디라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보내라. ' 눈이 불꽃과 같고, 발이 놋쇠와 같으신 , 하나님의 아들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나는 행위와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오래 참음을 알고,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

20 그러나 네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이세벨이라는 여자 용납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예언자로 자처하면서, 종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미혹시켜서 간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자다.

21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는 자기 음행을 회개하려 하지 않았다.

22 보아라, 나는 그를 병상에다 던지겠다.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그와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으면, 환난을 당하게 하겠다.

23 그리고 나는 그의 자녀들을 반드시 죽게 하겠다. 그러면 모든 교회는 내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살피는 분임을 알게 것이다. 나는 너희 사람에게 행위대로 갚아 주겠다.

24 그러나 두아디라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 사탄의 깊은 흉계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인 너희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

25 다만 내가 때까지, 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굳게 붙잡고 있어라.

26 이기는 사람, 일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에게는,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

27 그는 쇠지팡이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고, 민족들은 마치 질그릇이 부수어지듯 것이다.

28 이것은 마치, 내가 나의 아버지께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다스리는 것과 같다. 나는 사람에게 샛별을 주겠다.

29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주석
두아디라(18절): 두아디라의 경제는 무역과 수공업을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역 동업 조합(길드)은 그들의 후원 신에게 바치는 공동 식사(보통 약 한 달에 한 번)를 했다. 두아디라에는 유대 공동체가 있기는 했지만, 영향력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동업 조합 사회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격리되었다(IVP 성경배경주석).

이세벨(20-23): 22-23절의 언어는 분명 비유적으로 범죄에 맞는 처벌을 진술하고 있다.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그의 자녀 똑같다. 그녀의 추종자 집단 전체가 종국을 맞게 것이다(IVP 성경주석).

 

두아디라 교회는 그들의 사랑과 믿음과 섬김, 오래 참음으로 칭찬을 받습니다(18절). 또한 그들의 처음보다 나중 행위가 더 훌륭하다고 칭찬받습니다(18절). 하지만 두아디라 교회도 우상숭배와 음행의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거짓된 가르침을 전하는 자칭 예언자 이세벨을 주님은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22-23절).

 

두아디라 교회 사람 중에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에게 주님은 특별한 메시지를 주십니다. 주님이 다시 올 때까지 진리를 굳게 잡고 있을 것을 명령하십니다(25절). 그리고 그들에게 민족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26절). 도시의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진리를 붙잡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주님은 아시고 새로운 약속을 주십니다.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타협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주님은 아십니다.

 

——

진보가 있는 교회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오래 참음에 있어서 점점 진보가 있는 교회였다.

마음도 중요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도 중요하다. 예수님은 일단 두아디라 교회의 행위가 처음보다 낫다고 평가하신다. 

그렇다고 그분이 교인들의 마음을 모르시는 것은 아니다. 

23절에 보니, 예수님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살피는 분임을 분명하게 드러내신다. 

그리고 마음을 보고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위대로 판단하고 갚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마음과 행위는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가지를 쉽게 분리하고픈 유혹에 빠진다. 

심리학의 발달은 인간 내면세계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집중한다. 

법과 사회학은 인간의 행동이 실제 미치는 역할에 집중한다. 

사이는 점점 멀어지는 같기도 하고 때로 가까이 붙기도 한다. 

왔다갔다하지만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을 따로보게 되는 경향을 갖는다. 

왜냐면 심리는 개인의 내밀한 것이며 터치할 없는 비밀의 영역이나 행동은 측정과 관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분이시다.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그분은 아신다. 

내가 주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아신다. 

부끄러울 때가 많다. 

 

에베소와의 비교

 

에베소 교회랑 자꾸 비교하게 된다. 

느낌엔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좀더 높은 기대를 가지고 계신 같다. 

에베소 교회가 보여준 행동은 그야말로 진리 수호의 최전선에서 교회와 진리를 지켜내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처음 사랑이라는 모호한 기준, 혹은 상당히 높은 기준의 말로 에베소 교회를 지적하고 계신다. 

그에 비해 두아디라 교회는 진리 수호에 실패하고 있었다. 

이세벨이라는 이단적 교설을 분별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녀를 따르는 사람들이 여럿 생겼다. 

그녀는 스스로 예언자라고 부르며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간음하게 하고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게했다. 

우상의 신전 제의와 유사한 방식을 가르쳤는지 모르겠다. 

이것만 놓고 , 두아디라 교회는 철저히 실패했다. 

복음의 진리가 훼손되었다. 

두아디라 교회에는 와중에 이세벨의 예언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고, 예수님은 이들을 축복하기 원했다. 그들이 끝까지 진리에 붙어 있기를 견고하게 있기를 부탁하고 계신다. 

그러니 두아디라 교인들은 기초적인 신앙 지킴만으로도 일단 합격이다. 

에베소 교회는 그것으론 부족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만 했다. 

에베소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기대와 기준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교회마다 성숙의 여정이 다르다. 

복음의 진리가 더욱 분명하게 가르쳐질 필요가 있는 교회가 있다. 

진리 교육보다 실천이 필요한 교회가 있다. 

실천보다 마음과 태도가 훈련되어야 교회가 있다. 

이렇게 교회마다 특징이 있고, 강조점이 변한다. 

 

공동체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성숙의 지점이 다르다.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동자로 교회들의 행위와 그들의 마음을 살피신다. 

그분의 눈에서 벗어날 사람, 교회가 없다. 

 

인내

진리위에 터를 세우고,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이 넘치는 교회를 주문하고 계신다. 

최소한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이 바라시는 교회는 진리 수호, 사랑 실천, 그리고 인내다. 

꾸준함, 마음과 실천의 꾸준함 

인내 그리고 인내를 통한 발효 

야고보도 베드로도 인내를 엄청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보니 최근에 읽고 있는 책도 앨러 크라이더의 인내의 발효다. 

인내는 신실함의 다른 이름이다. 

신실함은 오랜 세월 인내의 삶을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젊은이들의 피끊은 심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같다. 

변화에 민감한 현대 사회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과연 그런가? 

많은 변화 앞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어찌 보면 인내아닐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코어를 끝까지 지켜낼 있는 인내. 

변화는 외부에서 찾아오건, 스스로 결단하건, 언제나 맞딱뜨리게 된다. 

삶의 여정은 변화의 연속이다. 

아브라함의 여행은 급격한 변화 속으로의 내어던짐이었다.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은 사울이라는 외부의 강력한 공격 때문이었다. 

내부건 외부건 사람은 언제나 급격한 변화 속에 산다. 

그러니 변명할 없다. 

현대 사회가 급격하게 바뀐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의 코어가 흔들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없다.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중심 가치를 지키고 변화 앞에서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 

발효되어 우리의 독특함이 세상에 향기, 냄새를 뿌릴 때까지 말이다. 

사람들은 발효의 냄새를 싫어하곤 한다. 

그러나 발효된 음식은 몸에 좋다. 오랜간다. 

온갖 미생물들이 적절하게 농익는다. 사람을 살리는 곰팡이요 세균이다. 

 

과연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인내하며 있을까?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

주님, 

인내의 삶을 살게 주세요. 

하나님께서도 오래 참고 있듯이 저도 오래 참고 오래 견디면서 진리를 굳게 붙잡도록 인도 해주세요. 

 

공동체마다 특징이 있습니다. 

특징을 잡아내며, 필요하면 적절한 격려와 경고를 통해 건강한 교회, 인내할 있는 교회로 세워가게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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