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7 30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법도를 사모합니다. 주님의 의로 내게 힘을 주십시오.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세상 나라는 우리 주님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16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는 스물네 장로도 엎드려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17 말하였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던 전능하신 ,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크신 권능을 잡으셔서 다스리기 시작하셨습니다.

18 민족이 이것에 분개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이 주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이제는 죽은 사람들이 심판을 받을 때가 왔습니다. 주님의 예언자들과 성도들과 작은 사람이든 사람이든 주님 이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실 때가 왔습니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때가 왔습니다."

19 그러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때에 번개가 치고, 요란한 소리와 천둥소리가 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우박이 쏟아졌습니다.

 

주석
19절: 성전의 열림이 자연 현상을 통해 강조된다. 요한계시록에서 이런 현상은 간혹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다른 단락들의 마무리에서 등장한다(8:5; 16:18) 나팔 소리가 수반된 시내산의 신 현현 사건에 대한 암시는, 연이은 일곱 나팔의 종결과 특히 잘 어울린다(IVP 성경비평주석).

 

일곱 번째 나팔 소리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선포됩니다(15절). 더불어 스물네 장로도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고,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16-18절). 이것은 약속된 하나님의 비밀이 드러난 것입니다(10:7 참조). 또한 제단 아래에서 외치던 순교자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6:10 참조).

 

세상의 불의와 악 속에서 주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자들은,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이 땅 가운데서 복음을 증언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은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보고 듣고 있는 요한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상상해 봅시다. 지금 나에게 이 메시지는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

 

요한계시록을 완벽하게 해석할 있는 사람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만이 하실 있다. 

최대한 본문의 의도에 맞게 해석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나도 여러 해석 중에 하나를 따르게 된다. 그중 하나가 심판이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다양한 국면의 표현으로 반복된다는 견해이다.  

일곱 봉인이 해제되고, 일곱 나팔이 불려지고, 일곱 대접이 쏟아진다. 

봉인의 해제는 어린 양되신 예수님께서 직접 하늘에서 진행하신다. 

봉인의 해제와 더불어 나팔이 불려진다. 나팔은 전우주를 향한 선포다. 

봉인의 해제, 나팔 소리, 그리고 대접이 쏟아진다. 대접은 심판을 받는 사람들을 더욱 구체화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쏟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언어이다. 

이렇게 심판의 국면을 보여준다. 

시간적 순서로 이루어졌다기보다 심판의 국면을 개의 각도로 보여주고 있다. 

1) 어린 양과 하늘 보좌의 각도, 2) 우주에 선포되는 각도, 3) 심판받는 대상에 집중된 각도. 

보좌에서 우주로 그리고 사람에게로 관점이 변화된다. 

 

오늘은 일곱째 나팔이 벌어지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늘의 장로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한다.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기 위해 멀리서 찾아왔다. 

사람들은 우주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경배한다. 

그러나 사실을 경멸하는 사람들이 있다. 

 

17 말하였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던 전능하신 ,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크신 권능을 잡으셔서 다스리기 시작하셨습니다.

18 민족이 이것에 분개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이 주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 우주를 창조하신 , 지금도 다스리시는  

그분에 대한 인식, 그분에 대한 경배에 분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신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우주의 주인되신 분이 제시하신 인간의 도리,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의 대원칙을 깨고,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양,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사람들을 자기 맘대로 죽이는 자들이 있다.  

욕망에 이끌려 자신 스스로가 신이 되려고 했던 수많은 지도자들 

그들은 영원히 계시며, 지금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가 다스려야지, 하나님이라는 형상없는 존재가 인간의 양심에 새겨놓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에 의거해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는 하나님(창조의 , 지금도 다스리시는 )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대신 자기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양심에 새겨놓은 하나님의 뜻은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에서 끓어오르는 대로 새로운 법과 규정을 만들고 사람들을 통치했다. 죽이고 살리고를 자신의 맘대로 진행한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기로 결정하신다. 

 

욥처럼, 멜기세덱처럼,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끝까지 붙들고 사람들이 있었다. 

현재를 다스리시는 창조주 믿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계획에 참여하게 사람들을 선별하여 적은 책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가 이제는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전달되었다. 

이제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존재를 보게 된다.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구체화하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통치하시는 창조주를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인간의 형상으로 태어나셔서 사람들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 매우 직접적으로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성품과 뜻과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셨다. 

사랑, 분노, 우정 등의 감정들을 보여주셨다. 

토론, 가르침, 피드백 등의 지적 활동을 보여주셨다. 

소명, 죽음을 향한 발걸음 등의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셨다. 

예수님 이후로는 예수님 말고 다른 존재나 마음 흐릿한 하나님 의식으로는 하나님께 다가갈 없다. 

왜냐하면, 더욱 분명하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실물이 있는데, 자꾸 그림만 가리킨다면 옆에 있는 실물이 섭섭하다. 

사람의 마음 흐릿한 하나님 의식만으로는 하나님께 도달할 없다는 사실을 인류 역사가 가르쳐 주고 있다. 

흐릿함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구현할 없다. 

사단이 오랫동안 흐릿한 의식을 오염시켜왔다. 

사단은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고 강고한 조직 사회를 만들어 하나님 의식을 더욱 흐릿하게 만들거나 이상한 색깔로 칠해버렸다. 인류는 이상 양심과 마음에 새겨놓은 하나님 의식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흐릿한 하나님 의식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 놓으실 있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동일한 분이 맞다. 

그러나 구약의 하나님은 고대 인간의 의식 속에서 드러날 , 욕망과 두려움에 오염된 인간의 양심과 마음 때문에 온전히 표출되지 못했다. 성경의 저자들도 자신의 개인적 한계와 공동체적 한계 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할 밖에 없었다. 성령의 감동은 인간 저자들을 기계로 만든 것이 아니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과 공동체에 적용하려고 했다. 문제는 아무리 하나님께서 100% 순수한 뜻으로 말씀한다고 해도, 인간은 자신의 한계 속에서 해석, 적용하기 때문에 100% 순수한 하나님의 뜻이 남아있기가 어렵다. 

오직 예수님만이 100%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실 있었다. 인류 구원 계획의 의도를 성취하신 것이다. 

물론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는데, 예수님은 말씀 속에 거하시기 때문에 예수 이후의 인류도 종종 하나님과 예수님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구약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혹은 비약적으로 나아진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아주 중요한 이유 하나다. 

그러니 성령님도 예수님을 기억하도록 우리는 돕는다. 

예수님 이후의 성령님의 감동은 예수님께로 향한다. 성령의 감동은 예수님을 다시 떠오르게 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고,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과 사역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기억하게 만든다. 이것이 성령님의 감동이다. 미래를 예언하고 누군가의 죄를 들쳐내는 식의 활동은 현저하게 줄었다. 성령님의 역할은 이제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 

한번 자신을 왕의 자리에 놓았던 사람들은 다시 겸손하게 인간으로 돌아오기가 어렵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놓으려 한다. 

하나님은 그들은 더이상 용서 없다. 

그들은 심판을 받게 된다. 

심판을 요한이 보고 있는 것이다. 

 

 

18 민족이 이것에 분개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이 주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이제는 죽은 사람들이 심판을 받을 때가 왔습니다. 주님의 예언자들과 성도들과 작은 사람이든 사람이든 주님 이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실 때가 왔습니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때가 왔습니다."

 

 

심판받는 이유에 대해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이라는 점이다. 

우주를 망가뜨리는 사람들. 

자신들의 욕망으로 땅의 질서를 망가뜨리는 자들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땅을 더럽히고 망가뜨린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요한계시록을 묵상하면 어쩔 없이 마음이 팍팍해진다. 

심판이 무섭고, 이해할 없는 그림 언어들로 인해 답답해진다. 

묵상이 싫어지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싶어진다. 

마음을 그저 하나님께 가져간다. 

불편하고 답답한 마음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으로 돌아가고 싶다. 

빨리 요한계시록 묵상을 마치고 복음서로 가고 싶다. 

아니 복음서가 아니어도 좋다. 이야기가 있는 성경으로 옮겨가고 싶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보면, 내가 성경을 나의 정서를 돌보는데 사용하는 것이 성경읽기의 핵심이 아니라면, 핵심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라면, 지금의 답답함과 하기 싫은 마음도 그대로 두고 주어진 말씀에 거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요한계시록을 통해 나의 생각과 관점을 바꾸시길 원하실 수도 있다. 

다시 조용히 말씀에 멈춘다. 

 

——

주님, 분노하시는 주님, 

주님의 분노에 두려움이 몰려듭니다. 

본노하시는 주님을 마음에서 아예 삭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분노하시는 주님은 성경의 주님이십니다. 

절절한 사랑의 이야기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노와 심판의 이야기로 끝날 있습니다. 

사랑을 끝까지 거부하고 무시하고 저주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주님, 마음이 끝까지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하나님이 무서워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더욱 귀하고 아름답고 고귀하고 사랑스러워서 사랑하게 주세요. 마음을 지키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르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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