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6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25 내 영혼이 진토 속에서 뒹구니,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에게 새 힘을 주십시오.

26 내가 걸어온 길을 주님께 말씀드렸고, 주님께서도 나에게 응답하여 주셨으니, 주님의 율례를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27 나를 도우셔서, 주님의 법도를 따르는 길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주님께서 이루신 기적들을 묵상하겠습니다.

28 내 영혼이 깊은 슬픔에 빠졌으니,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

29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 주십시오.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30 내가 성실한 길을 선택하고 내가 주님의 규례들을 언제나 명심하고 있습니다.

31 주님, 내가 주님의 증거를 따랐으니, 내가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32 주님께서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시면, 내가 주님의 계명들이 인도하는 길로 달려가겠습니다.

 

[ESV]

My soul clings to the dust; give me life according to your word!(25절)

My soul melts away for sorrow; strengthen me according to your word!(28절)

 

[오늘의 묵상]

주님을 부를 이유가 있다. 

시인의 영혼이 진토 속에 있고, 깊은 슬픔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원인이 분명히 등장하지는 않는다. 

허나 31절에 따르면, 시인은 수치를 당하는 일에 대해 예민하다. 

부끄러움을 겪으면 슬픔이 찾아온다. 

소외감을 느낀다. 

쥐구멍이라도 찾는다. 

사람들 만나는 것을 꺼린다. 

점점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영혼이 메말라 간다. 

수치스러움, 부끄러움, 이런 감정들을 오래 갖고 있으면 사람의 마음과 영혼은 병든다. 

 

시인은 주님을 부른다. 

주님의 도우심을 요청한다. 

‘새 힘을 주십시오. 나에게 새 힘을 주십시오.’

시인에게 간절한 열망은 새로운 힘이다. 

부끄러움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힘. 

독수리와도 같은, 호랑이와도 같은 힘, 준마와도 같은 힘이 필요하다. 

 

수치스러움이 깊어지면, 주님의 율법을 지킬 힘도 점점 줄어든다. 

자신감은 상실되고, 율례보다 내 마음이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갇히면 외부에 주어진 어떤 의무도 거리끼게 된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려고 하니 문제가 발생한다.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다. 

주님의 율례를 배우고, 법도를 깨달을 수 있는 힘. 

그 율례와 규례와 법을 실천할 수 있는 힘. 

배우고 깨닫고 따르고 달려갈 수 있는 힘. 

그 힘은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다. 

주님의 법은 주님의 뜻을 현실로 구현하는 장치다. 

그 법을 지키고 따른다는 것은 주님의 뜻을 구현하는 매개가 된다는 뜻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주님께 간구한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의 그 의를 구하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이걸 실현하고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 

성령님의 힘이다. 

그 힘이 있어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삶에 실천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율법 조문과는 다르다. 

예수님의 존재, 삶, 사역, 삶과 사역의 방식, 십자가, 부활 등 그분의 전체 삶이 새로운 규례요, 율법이다. 

성령님은 이 예수님을 기억나게 하시는 분이시다. 

구약에는 모세 율법을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면, 이제는 예수님을 마음에 새기고 그분의 말씀과 삶의 태도를 묵상하고 따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걸 하기 위해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오늘도 주님을 부른다.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외치기 위해서… 

 

[오늘의 기도]

율법의 완성이 되신 예수님, 

율법의 조문 자체보다 인격으로 말씀하시는 예수님,

당신을 기억하고 묵상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삶과 말씀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배우게 하소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주님과 더욱 친해지도록 도우소서. 

 

주님, 당신을 따르려면 매일 매일 새로운 힘이 필요합니다.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소경 바디메오가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쳤던 것처럼,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길 외쳐 부릅니다. 

제 내면에 깊은 갈망을 발견하게 하소서. 

주님과 더 깊은 교제 가운데 들어가길 갈망합니다. 

그 교제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길 소망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10월 02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9 젊은이가 어떻게 해야 그 인생을 깨끗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길, 그 길뿐입니다.

10 내가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11 내가 주님께 범죄하지 않으려고, 주님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합니다.

12 찬송을 받으실 주님, 주님의 율례를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13 주님의 입으로 말씀하신 그 모든 규례들을, 내 입술이 큰소리로 반복하겠습니다.

14 주님의 교훈을 따르는 이 기쁨은, 큰 재산을 가지는 것보다 더 큽니다.

15 나는 주님의 법을 묵상하며, 주님의 길을 따라 가겠습니다.

16 주님의 율례를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ESV]

With my whole heart I seek you; let me not wander from your commandments! I have stored up your word in my heart, that I might not sin against you(10-11절).

 

[주석]

9절. 이 시의 사례는 ‘청년’에게 맞추어져 있는데, 이는 순결한 삶이 끊임없는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을 암시한다… ‘무엇으로’(How)는 실제적인 질문으로서, ‘도대체 무슨 수단으로?’라는 의미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이제 연휴가 이틀 남았다. 

부담스러운 일, 해야 할 일들이 점점 다가온다. 

연휴 기간 미뤄두었던 일들이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시인은 젊은이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시인도 젊은이로 보인다. 

9절에 이어 10절의 주어가 “내가”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유혹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성적인 유혹, 돈에 대한 유혹, 성공에 대한 유혹… 

그 모든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나이가 바로 젊은이다. 

젊기에 빠르게 회복되고, 그렇기에 일단 최선을 다해 달리기 시작한다. 

방향보다도 속도에 쾌감을 느낀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가 중요한데, 젊을 때는 그보다 순간의 속도감을 즐기려는 경향이 있다. 

사단은 그것을 노린다. 

또한 경계를 벗어나는 스릴도 즐긴다. 

윤리적, 법적 경계를 넘어 세상의 끝으로 가려고 한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율법 체계를 넘어서려고 한다. 

시험해 보려고 한다. 

정말 이 안에 있는 것이 가장 즐거운지, 밖에 있는 것이 더 즐거운지 알고 싶다. 

젊은이에게는 그런 충동이 올라온다. 

반복되는 충동이 부르심이라 착각한다. 

 

시인은 그 충동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아무리 충동이 있더라도 율법의 경계를 넘지 말라고 경고한다. 

더 나아가 그 충동을 율법을 연구하고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데에 쓰라고 권면한다. 

 

오늘 시에는 말씀을 묵상하는 자의 자세와 태도와 방법에 대해 잘 말해 주고 있다. 

 

1. 간직

2. 배움

3. 소리내어 읽음

4. 소리내어 읽음을 반복 

5. 묵상

6. 따름

7. 잊지 않음

8. 기쁨

9. 간구

 

9가지의 말씀 묵상의 방법과 태도가 나와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태도인 기쁨이다. 

말씀을 배우고, 반복적으로 읽고 간직하는 것의 마음의 동인은 바로 기쁨이다. 

주님의 말씀이 기쁘다.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기쁜 사람은 즐거운 사람은 계속 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기도 할 것이다. 

말씀을 제대로 간직하고 따를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기도를 계속 드릴 것이다. 

말씀에 대한 기쁨을 간직한 사람은 복이 있다. 

이것이 진정한 복에 속한다. 

 

어느 순간 이 기쁨이 줄어들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난 이 기쁨 덕분에 사역자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 기쁨이 나를 추동했다. 

말씀에 대해 배우고, 말씀의 의미를 알아가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나이가 들어 이 기쁨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슬프다. 

다시 찾아야 할 기쁨이 바로 이것이다. 

찬양을 할 때도 기쁨이 있다. 

하지만 더 근복적으로 말씀의 기쁨이 회복되어야 한다. 

주님, 도우소서. 

 

[오늘의 기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말씀을 더욱 기뻐하게 하소서. 

당신이 주시는 메시지를 더욱 즐겁게 받아들이게 하소서. 

오랫동안 보여주신 당신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과정을 더욱 즐겁게 여기게 하소서. 

 

흐뜨러진 마음이 회복되게 하소서. 

해야 할 많은 일들을 다시 즐겁게 감당하게 하소서. 

대회를 준비하는 수많은 선수와 스탭처럼 일상 속에서 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소서.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을 위로하소서. 

정치가 회복되게 하소서. 

상식을 벗어난 자들이 권력을 얻지 못하도록 막아 주세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 사랑과 공의의 개념을 아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게 하시고, 지도자가 되게 하소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내각, 행정 관료를 비롯한 공무원, 국회위원, 사법부의 구성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소서.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것에서 벗어나 공동체를 위하는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9월 25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1 그 행실이 온전하고 주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은, 복이 있다.

2 주님의 증거를 지키며 온 마음을 기울여서 주님을 찾는 사람은, 복이 있다.

3 진실로 이런 사람들은 불의를 행하지 않고, 주님께서 가르치신 길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

 

4 주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법도를 주시고, 성실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5 내가 주님의 율례들을 성실하게 지킬 수 있도록, 내 길을 탄탄하게 하셔서 흔들리는 일이 없게 해주십시오.

6 내가 주님의 모든 계명들을 낱낱이 마음에 새기면, 내가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7 내가 주님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하겠습니다.

8 주님의 율례들을 지킬 것이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메시지]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하나님이 알려 주신 길을 걷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고 최선을 다해 그분을 찾는 사람을 복이 있다.”(1-2절)

 

[주석]

1-2절. ‘행실이 온전하여’(blameless)는 여호와의 ‘법’의 주위에서, 즉 외적(‘행하다’)으로나 내적(‘전심’)으로나 충만히 ‘통합된’ 삶을 가리킨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오늘 시인은 복 있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 하나를 밝힌다. 

바로 주님의 법대로 사는 것이다. 

주님의 증거(2절)란 무엇인가? 

아마도 주님의 법과 유사한 뜻일 게다. 

주님이 보여주신 규율은 주님의 성품과 뜻과 비전을 품고 있다. 

주님의 법을 지킨다는 의미는 주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그분의 뜻과 비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특히 온 마음을 기울인다는 것은 그 비전을 자기 것으로 삼을 때 가능하다. 

법이 추구하는 비전이 있다. 

법과 제도와 규정은 비전을 향한 도로요 표지판이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법과 제도를 잘 따르는 것이 핵심이다. 

 

시인의 기도는 나의 기도다. 

주님의 율례를 성실히 지킬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기도. 

시인은 율례를 성실히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길이 탄탄해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탄탄하면 더 수월하게 율례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탄탄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율례를 지켜야 한다. 

그 모든 율례와 계명은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의 결과다. 

하나님의 지혜가 녹여져 있다. 

우주를 창조하신 그분이 인간의 죄된 상황을 지혜롭게 고려하시어 그 시대에 가장 적절한 율례와 계명을 주셨다. 

지혜와 의가 반영된 계명이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를 맞아 율법을 완성시키셨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뿐 아니라 마음 속 동기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규정들이다. 

산상수훈이 그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와 원리들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비전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인류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 자녀로 삼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은 여전하다. 

왜 하나님이 이런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포기하셔도 거부하셔도 상관없을텐데, 그분은 당신의 꿈과 계획을 위해 꾸준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일하신다. 

그 계획에 동의한다. 

그 비전을 공유한다. 

그래서 그분의 율례와 법을 사랑한다. 

 

[오늘의 기도]

삼위 하나님, 

나의 아버지, 

당신의 꿈과 계획과 비전을 사모합니다. 

그 꿈에 동의합니다. 

그 계획에 찬성합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위해 저도 노력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도모하고 감당하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의 길,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규율들을 잘 따르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그 길을 갈 걸어갈 수 있도록, 

중간에 넘어져서 멈추지 않도록, 

근육이 풀리거나 뭉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우리 나라에 평화를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9월 18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19 구원의 문들을 열어라. 내가 그 문들로 들어가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겠다.

20 주님의 문이다.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갈 것이다.

21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나에게 구원을 베푸셨으니,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2 집 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23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니, 우리의 눈에는 기이한 일이 아니랴?

24 이 날은 주님이 구별해 주신 날, 우리 모두 이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25 주님, 간구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님, 간구합니다. 우리를 형통하게 해주십시오.

26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이에게는 복이 있다. 주님의 집에서 우리가 너희를 축복하였다.

27 주님은 하나님이시니,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셨다. 나뭇가지로 축제의 단을 장식하고, 제단의 뿔도 꾸며라.

28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내 하나님, 내가 주님을 높이 기리겠습니다.

29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메시지]

“지금 구원하소서. 하나님, 지금 구원하소서! 오 하나님, 자유롭고 충만한 삶을 주소서!”(25절)

 

[주석]

19절. 19절 이후로 어조가 바뀐다. 즉, 여호와에 관한 말이 여호와께 드리는 말로 바뀐다. 목소리 역시 바뀐다(IVP 성경주석).

 

27절. 축제 행사에는 춤과 더불어 잎이 무성한 가지를 한아름 안고 행진하는 행사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하나님이 풍요를 베풀어 주셨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언약의 가시적 성취를 온 공동체가 함께 경축했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관성. 

오늘은 이 단어가 무겁게 다가온다. 

원래 하던대로, 변화없이 지금 그 자리를 지키는 것. 

존재에도 관성이 작용한다. 

업무에도 관성이 작용한다. 

더 큰 변화나 움직임을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하던대로, 그대로 가길 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다. 

변화는 사람을 부대끼게 한다.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가 인간 본성이다. 

 

우리 주님은 그 관성을 깨셨다. 

영원히 하늘의 영광 속에 사셔도 되지만, 인간이 되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성육신. 

그것은 관성의 반대말이다. 

이도 저도 아닌 중간자, 

아니, 이도 저도 맞는 통합자. 

그 애매함으로 들어오셨다. 

사람들이 그 돌을 버린 이유가 있다. 

그 변화를 믿을 수가, 받아 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 

 

관성. 

어느덧 나도 관성에 푹빠져있다. 

움직이기 싫다. 

변화는 피곤이다. 

관성이 지속된다면, 빠지는 것이 도리다. 

쾌락이 관성을 욕구하게 한다. 

변화는 쾌락에 저항한다. 

 

존재적 변화는 더욱 쾌락을 방해한다. 

피곤한 인생을 선택했다. 

주님을 따르는 자의 인생은 피곤하다. 

존재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시니 그렇다. 

 

누군가를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힘과 의지가 나에게 있는가? 

 

주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 눈에 기이한 일이다. 

기인한 일은 무시하기가 어렵고, 주목하면 모종의 변화가 일어난다. 

변화는 피곤한 일이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기대하기 싫은 날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제 내면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나이가 들어 몸이 늙으니, 마음도 늙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저에게 찾아오셔서 저를 진단해주소서. 

저의 상태를 잘 돌아보게 하소서. 

 

현상유지의 욕망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변화가 두려워지는 시기가 오는 것 같습니다. 

주님, 

이 시기도 주님의 뜻에 맡깁니다. 

주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가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