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06일 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선한 사람과 그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1  내가 고난을 받을 때에 주님께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여 주셨다.2  주님, 사기꾼들과 기만자들에게서 내 생명을 구하여 주십시오.3  너희, 사기꾼들아, 하나님이 너희에게 어떻게 하시겠느냐? 주님이 너희를 어떻게 벌하시겠느냐?4  용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싸리나무 숯불로 벌하실 것이다!5  괴롭구나! 너희와 함께 사는 것이 메섹 사람의 손에서 나그네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구나. 게달 사람의 천막에서 더부살이하는 것이나 다름없구나.6  내가 지금까지 너무나도 오랫동안,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왔구나.7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평화를 말할 때에, 그들은 전쟁을 생각한다.

 

NIV

I call on the LORD in my distress, and he answers me(1절).

 

주석

5절. 극 북쪽에 있는 ‘메섹’(창 10:2)과 시리아 아라비아 사막에 있는 ‘게달’(렘 2:10)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시편 기자가 살 수 없는 곳이다. 이 두 장소는 은유적으로, 집에서 매우 먼 곳, 황량한 이 세상의 바깥쪽을 암시한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사기꾼들과 속이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들은 자신의 잇속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속인다. 

감옥에서도 꼭 피해야 할 재소자들이 있는데, 바로 사기범이란다. 

그들에게 잘 못 걸리면 평생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 

물리적 상해를 입는 것만큼이나 사기를 당해 평생 모아 온 돈을 날리고 빚더미에 앉는 것도 고통스럽다. 

사기꾼들은 결국 싸움을 만들어 낸다. 

남을 속이기 때문에 공동체에는 불신이 싹튼다. 

깊은 불신은 평화를 저해한다. 

불신이 결국 전쟁을 만들어낸다. 

정직이 결국 전쟁을 막는다. 

정직해야 신뢰가 쌓인다. 

 

나 혼자 아무리 평화를 사랑한다고 해도,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갈등과 긴장 그리고 싸움에 휘말리기 마련이다. 

실수도 정직하게 말하면 해결할 수 있다. 

잘못과 부족함도 정직하게 인정하면 그 이후를 바라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루고자 하는 목표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감추고 속이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목표에 달성하는 듯 싶지만, 어느새 자기 주변에 갈등과 긴장으로 나가 떨어지는 사람들 투성이다. 

자칫하면 서로 미워하고 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나도 정직해야 하지만, 정직한 사람들 사이에 지내는 것도 축복이다.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 속에 지내는 것이 축복이다. 

갈등과 긴장이 있지만, 결국 정직한 사람들은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들여 준다. 

오늘도 다시 정직을 연습한다. 

 

그렇게 기도의 세계로 들어간다. 

기도의 세계는 정직의 세계다. 

거짓으로 기도할 필요는 전혀 없다. 

기도는 정직을 연습하는 최적의 장소다. 

하나님은 나의 심정을 잘 아신다. 

그분께 숨어, 그분의 품 안에서 나의 바램과 소원을 아뢴다. 

그렇게 정직을 연습한다. 

 

[오늘의 기도]

정직한 영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주님께 숨길 것이 없습니다. 

작은 욕망도, 작은 수치도 주님께 내어 놓습니다. 

실수도 부족함도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님, 저를 용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저를 당시의 친구로 여겨 주시니 감사합니다. 

 

기도의 영을 불어 넣어 주소서.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9월 26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 예수께서 어느 날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기쁜 소식을 전하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장로들과 함께 예수께 와서

2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누가 이런 권한을 당신에게 주었습니까? 어디 우리에게 말해 보십시오.”

3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물어 보겠으니,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

4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난 것이냐? 사람에게서 난 것이냐?”

5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면서 말하였다. “‘하늘에서 났다’고 말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요,

6 ‘사람에게서 났다’고 말하면, 온 백성이 요한을 예언자로 믿고 있으니, 그들이 우리를 돌로 칠 것이다.”

7 그래서 그들은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났는지를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주석]

4절. ‘하늘’ 이란 유대인이 하나님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말이다(IVP 성경배경주석).

7절. 이 대답은 질문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보았으면서도 그 권위를 인정하기를 꺼렸으며 그 상황에서 옳은 행동을 결정할 수 없었음을 보여 준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어리석기도 하고 비겁하기까지 하다. 

대제사장, 율법학자, 장로들 이야기다.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예수님을 무너뜨리기 위해 애쓴다. 

 

예수님은 여리고를 지나 이제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신다. 

기쁜 소식을 전하신다. 

레파토리는 정해져 있다. 

하나님 나라가 임했으며, 하나님 나라의 원리대로 살아갈 것을 말씀하셨을 것이다. 

구약의 메시야가 바로 자신이며, 안식일의 주인도 자신임을 밝히셨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을 주문하셨다. 

이것은 기쁜 소식이다.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사실이 기쁨이다. 

남성과 여성이 더 이상 상하질서 속에 있지 않다. 

종과 주인도 더 이상 상하질서 속에 있지 않다. 

모두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세상의 상하질서는 타락의 산물이다. 

사람 모두는 하나님의 동등한 형상이다. 

당시의 모든 종, 여성, 죄인들에게 이런 메시지가 복음이 되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기쁜 소식들의 집합체다. 

 

그러니 높은 위치에 계신 분들은 화가 난다. 

위계질서의 상층부는 부글부글 끓는다.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없다. 

도대체 누구의 권위로 이런 발언을 하는가? 

사회 파괴 세력이며, 무정부주의자이고, 민중선동가일 뿐이다. 

그들은 질문을 던진다. 

혹여나 로마의 뒷배가 있을 지도 모른다. 

권력관계로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뒷배를 궁금해한다. 

돈이 있든지 권력이 있든지.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도움이나 배경이 있을 거라 예측한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당황한다. 

예수님은 탁월한 역질문 전문가이다. 

자신이 답하기 전에 의중을 묻는 촌철살인의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는 짜증이 나겠지만. 

요한의 권위는 누구에게로부터인가? 

하늘이라고 하면, 왜 그를 인정하지 않았는지 말문이 막힌다. 

사람이라고 하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공격이 무섭다. 

지도자들은 모른다고 답한다. 

비겁하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요한의 권위가 하늘이라고 왜 말할 수 없는가! 

 

예수님은 정직하다. 

당신들이 모른다고 한다면, 난 말할 수 없다고 말하겠다. 

난 모르지 않지만, 너희들의 태도를 보니 말하지 않겠다. 

역시 대단한 포부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부어지지 않는 한, 이런 담대함이 나올 수 있었을까? 

유대교 중심의 사회에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전쟁 수행 능력이라고 갖추었다면 모를까, 촌구석 목수장이가 이렇게 대담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 믿을 수 없다. 

 

난 비겁하다. 

부딪히기 싫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인식이 강하다. 

생각보다 겁이 많다. 

생각보다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

부족하다. 

나의 부족을 인정한다. 

그래서 모른다고 말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분명히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적 확신에 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정직하자. 

 

 

[오늘의 기도]

삼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비겁한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분노하지만 회피하는 저를 봅니다.

부족한 저를 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정직하게 말하는 법, 

정직하게 대처하는 법을 유지하게 하소서.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원칙이 바뀌지 않게 하소서. 

핵심을 유지하고 원칙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내적 확신이 더욱 강해지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03일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7 나는 여러분을 높이기 위하여 나 자신을 낮추었고, 또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것이 죄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8 나는 여러분을 섬기기 위하여 삯은 다른 여러 교회에서 받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교회에서 빼앗아 낸 셈입니다.

9 내가 여러분과 같이 있는 동안에는 빈곤하였지만, 여러분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도 누를 끼친 일은 없습니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교우들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조달해 주었습니다. 나는 모든 일에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10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진실을 걸고 말합니다마는, 아가야 지방에서는 아무도 나의 이런 자랑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11 내가 왜 이렇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12 나는 지금 하고 있는 대로 앞으로도 하겠습니다. 그것은, 자기네가 자랑하는 일에서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일을 한다는 인정을 받을 기회를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러한 기회를 잘라 없애기 위함입니다.

13 이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들이요,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입니다.

 

14 그러나 놀랄 것은 없습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가장합니다.

15 그렇다면, 사탄의 일꾼들이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고 해서, 조금도 놀랄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그들이 행한 대로 될 것입니다.

 

주석

8절 바울은 재정적인 유익 때문에 가르치던 궤변론자로 보이지 않으려고, 또는 고린도인에게 의존해서 사는 후견 대상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사례 받는 것을 피해 왔을 것이다(IVP 성경배경주석).

 

9절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그들의 도움은 거절하면서 마케도니아에서 도움받았던 일 때문에 모욕감을 느꼈던 것 같다. 거짓 사도들은 그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탐욕스럽게 거둬들였다(IVP 성경주석).

 

바울은 자신을 낮추고 값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7-9절). 재정적 유익 때문에 고린도 교회에 접근하는 거짓 사도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사례를 받지 않은 것입니다(12절). 바울은 자신의 이런 행동이 오해받는 것에 비탄을 금치 못합니다(10-11절). 하지만 바울은 오해와 거짓에 지지 않기 위해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12-15절). 

 

악의 간교함에 비하면, 선은 너무나도 약하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심지어 자세를 낮추고 값없이 베푸는 방식은 이용당하기 십상입니다. 악은 선으로 인정받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립니다. 그러나 바울은 진실을 알고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마음을 다잡습니다. 악이 노리는 기회를 잘라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리석음으로 복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오늘의 묵상]

바울은 이 편지를 쓰면서 상당히 고뇌하고 힘들었을 것 같다. 

떄로는 성도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지적하고, 자신의 비판자에 대해 변론하며, 자신의 진정성을 확인시켜가면서, 다양한 어조로 설득하고 있다. 

아주 피곤한 일일다. 

정서적으로 엄청나게 소진되는 일을 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는 사례비를 받지 않고 있었다. 

대체로 아가야 지방의 교회에서는 돈을 받지 않고 선교 사역에만 집중했다.

파송 교회였던 안디옥 교회나 마케도니아 지역의 교회들에서 생활비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부족했던 것은 스스로 텐트를 만들어 팔면서 충당했을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했다.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그런데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이런 바울의 선의 조차도 어떤 교인들에게는 비판의 거리가 된다. 

다른 선생들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다. 

돈을 받고 가르치는 것이 정당하며 그래야 가르침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등의 논리가 등장했던 모양이다. 

짐이 되지 않으려고 시작했던 일들이 도리어 오해를 낳았다. 

이런 오해를 푸는 것도 바울의 몫이다. 

아무런 말 없이 지나갈 수 있었지만, 계속 놔두면 그것도 교회를 분열시키는 명분이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변호하며 자기 자랑을 한다. 

정직이 최선의 방법이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난제를 풀어가는 지름길이다. 

이리저리 재봐야 한 번 꼬인 관계가 쉽게 풀릴 일이 없다. 

때로는 욕을 먹더라도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한다. 

단순함이 승리하는 것이다. 

 

리더십, 선생님, 이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오해를 많이 받는다. 

뒤에서 수군수군 대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한다. 

뒷담화든 공식적인 비판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비판에 대응하는 방식의 첫번째는 정직함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덕을 세움이다. 

두번째를 너무 의식하면 정직함을 잃게 된다. 

눌러두고 참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가능하면 정직하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는 것이 좋다. 

혼자 비난을 감수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매번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함께 상황을 공유하고 필요한 만큼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 

한 사람의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책임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빛을 가장한 사탄의 일을 간파하고 있었다. 

사탄의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 마치 아주 선한 사람인 양 행동한다. 

교인들은 그 사람의 간계에 속아 때로는 신앙의 본질 조차도 흔들린다.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에 대한 가르침에 유혹당한다. 

뭔가 더 신비로운 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전에 배웠던 것은 저차원이라고 생각한다. 

참 복음에서 점점 멀어진다.

빛을 가장한 사탄의 일꾼들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신천지의 경우 일반적인 교회에 들어와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의 교회로 데리고 간다. 

그런 사람들을 잘 분별하는 것이 교회 지도자들, 리더들의 몫이다. 

 

바울도 예수님처럼 그들의 실체는 행위의 열매로 알게 된다고 말한다. 

당장은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결국은 파국이며 분열이며 미움이다. 

바울이 아무리 노력해도 멀리 떨어져 있는 이상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정통 교회는 일상을 중시한다. 

사이비는 일상에서 분리를 종용한다. 

일상의 관계를 더욱 영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세상과 분리되어 자신만의 세상을 만드는 것은 사탄의 속임수다. 

1. 정직함으로 대응하기 

2. 사탄의 속임수와 미혹을 분별하기 

오늘의 적용이다. 

 

 

[오늘의 기도]

정직을 원하시는 하나님, 

바울처럼 정직하길 원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정직하게 표현하길 원합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되, 정직하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길 원합니다. 

현재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상황과 제 자신을 포장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정직이 모두에게 최선임을 배우게 하소서. 

 

빛 되신 성령님,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눈을 허락하소서. 

거짓, 과장, 축소가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거짓을 일삼습니다. 

사탄의 거짓말과 속임수에 맞서 더욱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한 주의 시작을 다시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9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 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서,

10예루살렘을 마흔한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할머니는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이다.

11아사는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12그는 성전 남창들을 나라 밖으로 몰아내고, 조상이 만든 모든 우상을 없애 버렸다.

13그리고 그는, 자기 할머니 마아가가 아세라를 섬기는 혐오스러운 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자기의 할머니를 왕 대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아사는, 할머니가 만든 혐오스러운 상을 토막내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버렸다.

14그렇다고 해서 산당이 모두 제거된 것은 아니지만, 주님을 사모하는 아사의 마음은 평생 한결같았다.

15그는 자기의 아버지와 자기가 거룩하게 구별해서 바친 은과 금과 그릇들을, 주님의 성전에 들여놓았다.

16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 사이에는,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늘 전쟁이 있었다.

17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고, 어느 누구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였다.

18그러자 아사는, 주님의 성전 창고와 왕실 창고에 남아 있는 모든 은과 금을 모아, 그의 신하들의 손에 들려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시리아의 헤시온 왕의 아들인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면서 말하였다.

19"나의 아버지와 그대의 아버지가 서로 동맹을 맺은 것과 같이, 나와 그대도 서로 동맹을 맺읍시다. 여기에 그대에게 은과 금을 선물로 보냅니다. 부디 가셔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맺은 동맹을 파기하시고, 그를 여기에서 떠나게 하여 주십시오."

20벤하닷이 아사 왕의 청을 받아들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려고 자기의 군사령관들을 보내어서, 이욘과 단과 아벨벳마아가와 긴네렛 전 지역과 납달리 전 지역을 치게 하였다.

2 바아사는 이 소문을 듣고는, 라마 건축을 멈추고, 디르사로 거처를 옮겼다.

22그리고 아사 왕은 모든 유다 사람에게 명령하여,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할 때에 쓰던 돌과 재목을 가져 오게 하였다. 아사 왕은 이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보수하였다.

23아사의 나머지 행적과 그의 권세와, 그가 한 일과 그가 건축한 모든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다 기록되어 있다. 그는 늘그막에 이르러서, 발에 병이 났다.

24아사가 죽어서 조상들과 함께 잠드니, 그의 조상 '다윗 성'에 조상들과 함께 장사지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도대체 아사는 어떤 인물인가? 

이렇게 개혁적인 일들을 일으킬 용기와 힘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아버지 아비야 왕도 우상을 섬겼고, 그의 할아버지 르호보암도 그릇된 길로 갔는데, 

어떻게 아사는 그 길을 버리고 다윗의 따라 평생 한결같을 수가 있었을까? 

정말 놀랍고 의아한 일이다. 

 

열왕기 저자는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를 여러 차례 언급한다. 

그가 미친 악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마아가가 아세라 신을 섬겼고 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눈치를 보느라 아세라 신을 따랐다. 

아사는 유다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아사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그는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평생 간직했다. 

그러하기에 개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막강한 할머니의 권력과 영향력을 이겨내고 그 일을 해 낸 것이다. 

정말 어려운 일을 해 낸 것이다. 

성전 남창들을 나라 밖으로 몰아냈다. 

우상을 없애 버렸다. 물론 모든 산당을 없애거나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40년동안 그는 유다를 다스리며 마음을 지켰다. 

어찌보면 아사의 개혁과 그의 곧은 마음은 성경에 나오는 그 어떤 믿음 좋은 사람들보다 더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없던 질서와 구조를 만드는 것도 엄청 힘든 일이다. 

그러나 기존의 구조를 개혁하고 쇄신하여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것도 무척이나 힘들고, 때로는 더 힘들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혁에는 항시 반대 세력이 있으며, 기존 권력에게 빌붙어서 단물을 빨아먹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사의 40년 통치는 실로 어마어마한 성과다. 

오롯이 하나님만 사모했던 그의 40년을 기억하고 싶다. 

 

그가 비록 하나님을 사모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섬겼다고 하지만, 그에게 고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북이스라엘 바아사의 침략이 있었다. 늘상 전쟁을 벌여야 했던 것이다. 

주님을 잘 섬긴다고 해서 긴장과 갈등, 고난과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한 번 어그러진 유다와 이스라엘의 분열상은 쉽게 아물지 않는다. 

아사만 잘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하는데, 서로 길이 달라져버리면 그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아사는 어찌보면 계속되는 동족간의 전쟁 속에서 하나님 의지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40년이면 결코 짧지 않는 기간인데, 그 기간 동안 민족간의 통합과 연합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쉽고 안따깝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멋진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 

그렇게 항상 기도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기도를 드린다고 꼭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분의 뜻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꼭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사모해도, 계속되는 긴장과 갈등이 존재할 수 있다. 

하나님을 사모해도, 외부의 지속적인 공격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을 사모해도, 어려움에 처한다. 

그것이 인생이며, 신앙 생활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끝까지 그분을 붙드는 삶, 그것이 내가 가야할 길이다. 

그것이 소명이다. 

 

남북한도 마찬가지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반백년 이상을 살았다. 

외부 세력들은 우리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까지 그 길을 추구해야 한다. 

전쟁이 없는 세상, 평화가 깃든 세상을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가장 많이 파괴하는 행위가 전쟁이다. 

전쟁 속에 피는 작은 사랑의 행위가 밝게 빛나는 이유는 전쟁이 너무 참혹하게 사람들의 사랑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드려도, 믿음의 삶을 산다고 해도, 남북한이 하나가 되고 서로 존중하며 공존/번영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타임라인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어찌되었건 아사는 본받을 만한 인물이다. 


주님, 

평생을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을 사모하며 살았던 아사를 기억합니다. 

비록 어려운 일들이 많았고, 평생 전쟁하며 살아야 했지만, 그래도 그는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저도 그런 길을 걷고 싶습니다. 

다윗처럼 정직하고, 아사처럼 주님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실수하고 넘어져도 다시 정직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고,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매력적이지 않아도 됩니다. 

성공하지 않아도 됩니다. 

유명해지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저의 삶을 평가할 때, 내 앞에서 정직했으며, 나를 사모하던 사람이었다고 말씀해주신다면 그것도 정말 행복한 일이 될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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