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6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25 내 영혼이 진토 속에서 뒹구니,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에게 새 힘을 주십시오.

26 내가 걸어온 길을 주님께 말씀드렸고, 주님께서도 나에게 응답하여 주셨으니, 주님의 율례를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27 나를 도우셔서, 주님의 법도를 따르는 길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주님께서 이루신 기적들을 묵상하겠습니다.

28 내 영혼이 깊은 슬픔에 빠졌으니,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

29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 주십시오.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30 내가 성실한 길을 선택하고 내가 주님의 규례들을 언제나 명심하고 있습니다.

31 주님, 내가 주님의 증거를 따랐으니, 내가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32 주님께서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시면, 내가 주님의 계명들이 인도하는 길로 달려가겠습니다.

 

[ESV]

My soul clings to the dust; give me life according to your word!(25절)

My soul melts away for sorrow; strengthen me according to your word!(28절)

 

[오늘의 묵상]

주님을 부를 이유가 있다. 

시인의 영혼이 진토 속에 있고, 깊은 슬픔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원인이 분명히 등장하지는 않는다. 

허나 31절에 따르면, 시인은 수치를 당하는 일에 대해 예민하다. 

부끄러움을 겪으면 슬픔이 찾아온다. 

소외감을 느낀다. 

쥐구멍이라도 찾는다. 

사람들 만나는 것을 꺼린다. 

점점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영혼이 메말라 간다. 

수치스러움, 부끄러움, 이런 감정들을 오래 갖고 있으면 사람의 마음과 영혼은 병든다. 

 

시인은 주님을 부른다. 

주님의 도우심을 요청한다. 

‘새 힘을 주십시오. 나에게 새 힘을 주십시오.’

시인에게 간절한 열망은 새로운 힘이다. 

부끄러움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힘. 

독수리와도 같은, 호랑이와도 같은 힘, 준마와도 같은 힘이 필요하다. 

 

수치스러움이 깊어지면, 주님의 율법을 지킬 힘도 점점 줄어든다. 

자신감은 상실되고, 율례보다 내 마음이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갇히면 외부에 주어진 어떤 의무도 거리끼게 된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려고 하니 문제가 발생한다.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다. 

주님의 율례를 배우고, 법도를 깨달을 수 있는 힘. 

그 율례와 규례와 법을 실천할 수 있는 힘. 

배우고 깨닫고 따르고 달려갈 수 있는 힘. 

그 힘은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다. 

주님의 법은 주님의 뜻을 현실로 구현하는 장치다. 

그 법을 지키고 따른다는 것은 주님의 뜻을 구현하는 매개가 된다는 뜻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주님께 간구한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의 그 의를 구하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이걸 실현하고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 

성령님의 힘이다. 

그 힘이 있어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삶에 실천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율법 조문과는 다르다. 

예수님의 존재, 삶, 사역, 삶과 사역의 방식, 십자가, 부활 등 그분의 전체 삶이 새로운 규례요, 율법이다. 

성령님은 이 예수님을 기억나게 하시는 분이시다. 

구약에는 모세 율법을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면, 이제는 예수님을 마음에 새기고 그분의 말씀과 삶의 태도를 묵상하고 따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걸 하기 위해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오늘도 주님을 부른다.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외치기 위해서… 

 

[오늘의 기도]

율법의 완성이 되신 예수님, 

율법의 조문 자체보다 인격으로 말씀하시는 예수님,

당신을 기억하고 묵상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삶과 말씀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배우게 하소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주님과 더욱 친해지도록 도우소서. 

 

주님, 당신을 따르려면 매일 매일 새로운 힘이 필요합니다.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소경 바디메오가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쳤던 것처럼,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길 외쳐 부릅니다. 

제 내면에 깊은 갈망을 발견하게 하소서. 

주님과 더 깊은 교제 가운데 들어가길 갈망합니다. 

그 교제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길 소망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8월 03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 마음이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내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2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무리 가운데서 한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은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28 그러나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

29 무리가 모여들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구하지만, 이 세대는 요나의 표징 밖에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과 같이, 인자 곧 나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그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부터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그들은 요나의 선포를 듣고 회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3 “아무도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놓지 않고, 등경 위에 놓아 두어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보게 한다.34 네 눈은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성하면, 네 온 몸도 밝을 것이요,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몸도 어두울 것이다.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지 살펴보아라.36 네 온 몸이 밝아서 어두운 부분이 하나도 없으면, 마치 등불이 그 빛으로 너를 환하게 비출 때와 같이, 네 몸은 온전히 밝을 것이다.”

 

The Message

If you live wide-eyed in wonder and belief, your body fills up with light. If you live squinty-eyed in greed and distrust, your body is a musty cellar. Keep your eyes open, your lamp burning, so you don’t get musty and murky. Keep your life as well-lighted as your best-lighted room.”(34-36절)

 

주석

29절.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입증할 어떤 기적적인 표시를 원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을 위압할 강력한 행사를 원치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심판자와 구원자로서의 성부 하나님의 인격을 드러내는 일을 하고자 하셨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귀신을 제어하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에 대해 바알세불의 힘으로 내쫓는다고 비난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사단의 졸개들의 조직에 대해 설명하시는 예수님. 

이런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한 여인이 크게 감동을 받았다. 

예수님도 귀하지만,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나오게 한 마리아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아마 여기서부터 카톨릭의 성모 숭배 사상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은 특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진짜 복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다. 

산상수훈의 결론도 사실 이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말씀을 하셔도 듣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실천할 의지가 없다. 

 

그런 사람들은 계속해서 표징을 원한다. 

이적과 기적을 원한다. 

문제는 이적과 기적이 주어져도 자신들이 원하는 형식과 내용이 아니면 거부한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수많은 이적과 기적을 행하셨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고 죄와 사단의 권세로부터 풀어내셨다. 

그럼에도 여전히 더 큰 표징을 원한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부활의 기적을 보여주셔도 만족하지 못한다. 

사람 심리가 그렇다. 

자기 프레임이 강한 사람들이 그렇다. 

 

이제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보일 3일간의 죽음과 부활은 요나의 기적을 닮았다. 

그런 표징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할 것이다. 

소수만 믿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있을지라도, 예루살렘 성은 여전히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복음은 전세계로 퍼져 나가겠지만, 자기 프레임에 갇혀 사는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회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과거 요나의 때, 니느웨 사람들보다 더 악하다. 

마음이 굳어있다. 

시기와 미움이 가득하다. 

어떤 기적도 그들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자신들이 쌓아 놓은 높은 성을 어떤 누구도 깨뜨릴 수 없다고 믿는다. 

심지어 하나님도… 

 

그러니 마음에 빛을 비추어 왜곡된 관점과 잘못된 성을 깨부수어야 한다. 

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지 살펴보아라.

성령님의 빛으로 비추어서 마음을 새롭게 하라. 

마음의 눈을 밝게 만들어 마음을 환히 비추라. 

어둡고 갑갑한 자기만의 프레임을 비추어 진짜 죄가 무엇인지 확인하라. 

솔로몬의 지혜도 인정하지 않고, 요나의 회개 선포도 받아들이지 않는 자신의 완고함을 인식하라. 

시기(질투)와 완고함으로 마음을 어둡게 방치하지 마라. 

그래야 산다. 

사랑의 기적, 사랑의 표징인 예수님의 십자가와 3일간의 무덤과 부활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산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의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아무리 설교해도 듣지 않고, 어떤 기적을 보여줘도 회개하지 않으니, 

악한 세대라고 말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지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믿지 못합니다. 

신화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합니다. 

종교 장사라고 합니다. 

주님, 이들에게 빛을 비춰주소서. 

성령님의 빛을 비춰주소서. 

사랑이 그들에게 흘러가도록 도와주소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경배하고 주님을 알아가게 해 주소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켜주세요. 

성령님 더 강하게 역사해 주세요. 

제 주변이 하나님 나라가 되도록 

주님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5월 17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36 아셀 지파에 속하는 바누엘의 딸로 안나라는 여예언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많았다. 그는 처녀 시절을 끝내고 일곱 해를 남편과 함께 살고, 37 과부가 되어서,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겨왔다. 38 바로 이 때에 그가 다가서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였다.39 아기의 부모는 주님의 율법에 규정된 모든 일을 마친 뒤에, 갈릴리의 자기네 고향 동네 나사렛에 돌아왔다. 40 아기는 자라나면서 튼튼해지고, 지혜로 가득 차게 되었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함께 하였다.

 

ESV

And coming up at the very hour she began to give thanks to God and to speak of him to all who were waiting for the redemption of Jerusalem(38절).

 

주석

여예언자 안나(36절) 누가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독자들을 자기 그림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당신이 누구든, 나이가 몇이든 상관없다. 베들레헴의 구유에서부터 빈 무덤과 그 이후까지, 예수님의 이야기는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예언자 안나는 일찍이 남편을 여읜 후 평생을 성전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겨왔습니다(36-37절). 그녀는 아기 예수를 만나자 기뻐하며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린 사람들에게 아기로 오신 구원자에 대해 말합니다(38절).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으셨지만, 성전에서 신실하게 기다린 이들의 입을 통해 구주로 선포되셨습니다.

 

굴곡진 삶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겨왔던 안나는 아기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다합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에는 민족도, 성별도, 나이도, 사회적 지위도 상관이 없습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묵상]

여든네 살이 되도록. 

 

여든네 살. 

오랜 세월이다. 

굴곡진 삶의 이야기가 많다. 

아셀 지파의 여러 어르신들을 만났을 것이다. 

아버지 바누엘과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을 마무리하고 결혼을 했다. 

7년간의 결혼 생활도 끝이 났다. 

아마 남편이 죽거나 이혼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과부가 되어서는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 

예언자의 삶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겼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 

어떤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리고 구약 예언자들의 전통에 따라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에 대해서도 언급했을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시므온에게만 메시아의 탄생을 알렸을 것 같지가 않다. 

안나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직감했다. 

그리고 때때로 그 메시아의 출현이 멀지 않았음으로 사람들에게 알렸을 것이다. 

결혼을 14-5살에 했다고 하면, 과부가 된 것은 21-2살, 늦어도 30살 안이었을 것이다. 

그러하면 5-60년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백성들을 기도와 위로로 섬겼다.  

참 오랜 세월이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억울함, 슬픔, 고난, 질환, 죽음… 

사람들은 즐겁고 행복한 것보다 고통과 고난의 이야기를 안나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죄를 밝히고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말했다. 

그러기를 5-60년. 

이제는 말할 기운도 많지 않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메시아의 도래가 임박했음도 알고 있다. 

기도할 때마다 금식할 때마다 성령님의 음성과 이미지를 본다. 

점점 확신에 거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오랜 세월의 기다림이, 인생 전체의 기다림이 드디어 완성되는 날이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나이 많은 늙은 여종을 살펴주셔서 죽기전에 당신의 탄생을 눈으로 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기도 중에 보았던 주님의 영광스런 탄생을 이렇게 현실에서 보게 되니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아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찬양합니다.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더 나아가 만 백성을 구원하실 것임을 찬양합니다. 

사탄의 결박으로부터 구출하시고,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키실 것을 찬양합니다. 

오 하나님 당신의 은혜와 자비에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그녀의 입에서는 탄성과 감사가 쏟아졌다. 

아기를 보지만 이스라엘의 구원을 보고 있다. 

그에게 현실은 과거와 미래가 쏟아지는 다차원의 세계다. 

예수님의 탄생은 구약의 세계관과 새예루살렘의 환상이 만나는 사건이다. 

과거의 전통이 미래를 향해 빛처럼 뻗어나가는 사건이다. 

인류는 새로운 미래를 맞이한다. 

 

그러니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삶을 걸고, 이건 진실이다. 

그간 예언을 하면서 자신의 말씀 사역, 대언 사역이 100% 맞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사탄의 유혹을 받기도 했다. 

때로는 자신의 욕심이나 욕구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 때마다 금식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그러나 이건 찐이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임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다. 

시므온과도 오랫동안 알아왔다. 

서로 이 새로운 세상의 도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왔다. 

 

인생 전체를 건 기다림은 무엇인가? 

나는 매번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여름 수련회, 겨울 수련회… 

수련회를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들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수련회 마지막 날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거 말고 내 인생 전체를 건 기다림이 있는가? 

80살이 되고 90살이 되어도 기다리는 그 기다림은 무엇인가? 

나의 자녀들이 다 자라고,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 후에도 죽음을 앞두고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의 재림. 

그분이 오셔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완전한 세상을 만들어주시길. 

더 이상의 전쟁과 재앙이 없는. 

새로운 세상의 도래. 

 

그날을 기다린다. 

죽음을 앞두고도 기다린다. 

끝까지. 

 

 

[오늘의 기도]

다시 오실 예수님, 

당신을 끝까지 기다립니다. 

죽음 바로 앞에서도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 마음으로 오늘도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을 보기 원합니다. 

당신이 오실 그 날을 환상으로 보게 하소서. 

당신이 오셔서 새로워질 그 날을 머리속으로 더욱 분명하게 보게 하소서. 

기도 중에 더욱 분명한 그림으로 보길 원합니다. 

오늘도 기다림으로 벅차오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07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11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억지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를 인정해 주었어야 마땅합니다. 내가 비록 보잘것없는 사람일지라도, 저 우두머리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12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일일이 참고 견디면서, 놀라운 일과 기적을 표징으로 삼아 사도가 된 표징을 행하였습니다.

13 내가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고 여러분이 다른 교회들보다 못난 점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한 것이 불공평한 처사라고 하면,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4 지금 나는 이렇게 세 번째로 여러분에게로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구하는 것은 여러분의 재물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위하여 재산을 모아 두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재산을 모아 두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15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비용을 쓰겠고, 내 몸까지도 희생하겠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더 많이 사랑하면 할수록, 여러분은 나를 덜 사랑하겠습니까?

16 어쨌든 나는 여러분에게 짐이 된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간교한 속임수로 여러분을 사로잡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7 내가 여러분에게 보낸 사람들 가운데 누구를 통해서 여러분을 착취한 일이 있습니까?

18 내가 디도에게 여러분에게로 가라고 권하였고, 또 그와 함께 형제 한 사람을 보냈는데, 디도가 여러분을 착취한 일이 있습니까? 디도와 내가 같은 정신으로 행하고,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주석

14-15절 부유한 고린도인들은 바울의 후견인이 되기 원했다. 바울이 그들의 후원을 거절한 것은 사회적인 통념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실상은 그가 후견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바울을 의지해야 하는 자였기 때문이다(IVP 성경배경주석).

 

바울은 다시 한번 자신을 인정해 주길 요청합니다.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면 용서하라고 이야기합니다(11-13절). 그러나 바울은 앞으로도 그들에게 재정적으로 폐를 끼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가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부모의 마음으로 고린도 교회를 계속 사랑하겠다고 말합니다(14-18절).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거짓 사도들의 간교한 속임수를 폭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착취하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희생과 사랑은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사로잡히는지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약자를 착취하고 이용하는 간교한 속임수가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불의를 폭로하시고, 세상을 그분의 방식으로 사로잡으실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1. 어리석은 사람 

바울은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물론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긴 하다. 

그러나 결국 그 결정은 바울이 했던 것이다. 

무엇을 하였기에 어리석은 사람이 된 것인가? 

그건 어쩔 수 없이 자기 자랑을 한 것 때문이다. 

자신의 출신을 자랑하고, 그동안의 수고와 노력을 자랑했다. 

그렇지 않으면 성도들이 자신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양날의 검이다. 

이런 식의 말들은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바울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런 바울의 말에 정이 떨어질 수 있다. 

자기 행동에 대해 정당화, 합리화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더 싫어질 수 있다. 

차라리 당하면서 사는 것이 낫다고 믿는 사람들은 바울의 자기 자랑과 자기 합리화에 실망할 수도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선택을 했다. 

성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자기 자랑이 어리석은 행동이긴 하지만,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복음을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정수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 선택을 한 것이다. 

자기를 드러내고, 다른 사도들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고, 후원받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이런 모습들을 선택한 것이다. 

자기가 어리석은 바보가 되더라도, 성도들의 신앙을 위해 어찌보면 성육신을 한 것이다. 

부작용이 있고, 후폭풍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바울은 이렇게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도들을 위해, 복음을 위해 바보가 되었다. 

그 결과가 생각했던대로 그대로 나왔기를 바란다. 

 

2. 재물이 아니라 여러분!! 

윤복희의 “여러분”이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여 나는나는나는나는 너의 기쁨이야"
마지막 소절의 가사는 멜로디와 어울려 절심함이 배가된다. 

친구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의지와 결단이 묻어난다. 

 

바울도 같은 마음이다. 

돈의 문제가 아니다.
성도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길 바란다. 

비용문제로 성도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선교 여행에는 언제나 돈이 들기 마련이다. 

숙식비와 교통비가 가장 많이 든다. 

그러나 돈 문제로 성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후원을 받고 안받고의 문제가 아니다. 

성도들에게 진정성있게 다가가고 싶었다. 

복음이 잘 전해지기만을, 그리스도의 사랑이 잘 전달되기만을, 그리고 자신의 애정이 잘 수용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고린도교회 성도와 자신의 관계를 부모 자식 관계로 이해하고 있다. 

성도들을 깊이 품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자신의 자녀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내리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려운 일을 감당하고 있다. 

 

3. 성금요일 

오늘은 성금요일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던지셨다. 

죽음으로 당신의 자녀들을 살리셨다. 

죽음의 권세를 쥐고 사람들을 위협하던 사단의 위력을 깨부수셨다. 

몸은 죽었으나 영은 승리했다. 

온 우주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다. 

고통의 끝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영광이 찾아온다. 

 

이런 십자가가 있었기에 바울이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십자가의 정신이 바울에게 이어진다. 

자기 희생이 사람들의 생명으로 이어진다면 마다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 자기를 바보가 되게하고, 

사람들의 영생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 기독교는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다. 

자신의 돈과 시간과 에너지는 내어주는 사랑이 있었기에…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은 그렇게 내어주는 사랑 끝에 자기 보상이라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대했던 반응이 오지 않을 때, 보상심리가 작동한다. 

최선을 다해 희생하고 섬겼는데, 그 섬김에 대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을 때, 그걸 넘어 오히려 비판할 때, 극단적인 보상심리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사단의 계략이다. 

이걸 이겨야 한다. 

예수님은 그걸 이겼다. 

3년의 헌신에도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비난하고 비판했다. 

화낼만 했다. 

심판과 저주를 퍼부을 수 있었다. 

유대 지도자 뿐만일까? 

자신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도달하지도 못했으며, 심지어는 회계담당 제자인 유다는 자신을 은 30냥에 팔아버렸다. 

하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했다. 

결국 자신의 생명을 주는 것까지 하셨으니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보상심리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육체를 지닌 사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한 가지,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이다. 

 

사역자들은 보상심리를 항상 조심해야 한다. 

희생하고 헌신한다고 생각하기에, 결국엔 뭔가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그 좋은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채우려는 욕망이 차오른다. 

그 욕망이라는 형광물질은 사탄의 레이다에 즉각적으로 탐지된다. 

사탄의 조직적 계략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한 개인이 이걸 이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한 개인이 사탄의 조직을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하늘의 군대와 조직을 운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극복할 수 있다. 

성령님이 이끄시는 하나님 나라의 군대와 조직이다. 

 

나에게도 이런 보상심리가 꼬물꼬물 올라온다.

나이가 드니 더욱 위험천만이다. 

다시 예수님의 십자가로 나아간다. 

성금요일의 십자가!! 

 

[오늘의 기도]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 

당신의 십자가는 너무 큰 충격입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를 더욱 존엄한 존재로 만듭니다. 

당신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그 사랑만큼 우리는 존귀합니다. 

그 정신이 나를 살게 하고 우리를 살게 합니다. 

예수님, 감사하고 또 사랑합니다. 

 

십자가의 정신을 끝까지 유지하게 해 주세요. 

보상심리에 빠져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게 해 주세요. 

보상심리에 빠져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욕구하지 않게 해 주세요.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오늘 당신의 십자가에 동참하게 하셔서, 

당신의 마음을 더 깊이 느끼도록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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