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9월 24일 금요일

 

여는 기도

주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로 어서 와 주십시오.

 

14그런 다음에, 왕은 얼굴을 돌려 거기에 서 있는 이스라엘 온 회중을 둘러 보며, 그들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15그는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나의 아버지 다윗에게 친히 말씀하신 것을 모두 그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16'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가 내 이름을 기릴 집을 지으려고,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에서 어느 성읍을 택한 일이 없다. 다만, 다윗을 택하여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다' 하셨습니다.

17내 아버지 다윗께서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을 기릴 성전을 지으려고 생각하셨으나,

18주님께서 나의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내 이름을 기릴 성전을 지으려는 마음을 품은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19그런데 그 집을 지을 사람은 네가 아니다. 네 몸에서 태어날 네 아들이 내 이름을 기릴 성전을 지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20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서, 이렇게 내가 이스라엘의 왕위를 이었으며,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을 기릴 이 성전을 지었으니, 주님께서는 이제 그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21주님께서는 이집트 땅에서 우리의 조상을 이끌어 내실 때에, 그들과 언약을 세우셨는데, 나는 주님의 언약이 들어 있는 궤를 놓아 둘 장소를, 이렇게 마련하였습니다."

 


 

대를 이어 가업을 계승하는 가족이 별로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특히 그 자녀의 직업 선택권이 제약되는 것은 최악이라고 보았다. 

자녀는 각각의 고유한 주체로서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최근 대를 이어 맛있는 빵을 만드는 가게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보았다. 

자녀가 대를 이어 부모의 전통을 물려받아 그 전통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정말 보기 좋았다. 

부모도 자녀도 행복해 보였다. 

 

다윗과 솔로몬 이야기에서 그동안 주목했던 부분은, 그들이 영웅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물론 그들은 훌륭한 일을 해냈다. 

왕국을 정치적으로 안정시키고, 부강하게 만들었다. 

뛰어난 업적과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구원자는 아니었다. 

자신들의 약점으로 인해 왕국이 위협을 받았다. 

그러기에 강점은 강점대로 인정하지만, 약점을 배제하지 않는 오히려 그동안 숨겨져 있었던 약점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일을 묵상자의 책임으로 알고 그렇게 했다. 

 

그런데 오늘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다윗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약속이 솔로몬에게 이어져서 결국 성취되었다는 점이다. 

대를 이어 부모의 약속을 자신의 약속으로 삼았다.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 

아버지의 소원을 아들의 소원으로 삼았다. 

 

20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서, 이렇게 내가 이스라엘의 왕위를 이었으며,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을 기릴 이 성전을 지었으니, 주님께서는 이제 그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대를 이어 충실하게 가족에게 주어진 소명을 이뤄내는 모습이 귀해 보인다. 

우리 가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명은 무엇인가 고민해본다. 

명절 직후라 그런지 더욱 가족의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삶을 기대하고 계시는가? 

나는 과연 남편과 아빠로서 우리 가족의 소명을 어떻게 성취하고 있는가? 

갑자기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그런데 가족 뿐만이 아니라, 공동체도 대를 이어 전수하고 전수받는 전통과 정신이 있고, 하나님의 약속과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있다. 

이것이 대를 이어 잘 전달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신간훈의 훈련 담당자로 섬기고 있다. 

신입간사들이 우리의 가치와 전통과 소명에 대해 더 깊이 각인하고 체화되도록 돕고 싶다. 

억지로 함이 아니라 기쁘고 즐겁게 그 소명에 반응하고 기쁘게 헌신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21주님께서는 이집트 땅에서 우리의 조상을 이끌어 내실 때에, 그들과 언약을 세우셨는데, 나는 주님의 언약이 들어 있는 궤를 놓아 둘 장소를, 이렇게 마련하였습니다."

 

솔로몬이 기억하는 근원적 이야기는 출애굽이다. 

다윗에게 약속한 것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전체와 약속하신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역사를 배우는 것도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정치경제사를 위시로한 엘리트들의 역사를 공부할 수도 있고, 백성과 서민들의 소소로운 삶의 단편들의 역사를 공부할 수도 있다.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서 역사 공부의 목적이 드러난다. 

모든 역사를 알 수 없다. 모든 역사적 사실을 다 기록한다고 한다면 수퍼컴퓨터가 수조개 있다고 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모든 개인의 역사까지 다 저장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역사를 주목해서 봐야 하는 것일까? 

 

먼저,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맺어졌고,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둘째, 약속의 점진적 성취를 위해 어떤 사람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어떤 역할들을 감당했는가? 

셋째, 그 약속의 성취가 가져온 현실의 결과들은 무엇인가?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둘다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약속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때로는 기념하며 또한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약속을 소망하는 태도… 

오늘도 그분의 약속을 기억한다.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 

그렇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이어가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그런 분이라는 사실이 참 감사합니다. 

사랑을 주시고 또한 약속도 주시니, 사랑받아 감사하고 소망을 품게 되니 감사합니다. 

당신의 성품을 기대어, 주님의 약속을 강렬히 소망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주시고, 그 나라가 온전히 임하게 하소서. 

세상의 모든 인류가 평화롭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날을 죽기전에 보고 싶습니다. 

 

제 주변의 많은 형제 자매들이 이런 하나님을 기대하며 소망하며 살아가도록 도와주세요. 

함께 꿈꾸는 일들이 더욱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09월 20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지휘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다윗의 믹담, 사울을 피하여서 동굴로 도망하였을 때에 지은 시]

 

1참으로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께로 피합니다. 이 재난이 지나가기까지, 내가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합니다.

2가장 높으신 하나님께 내가 부르짖습니다. 나를 위하여 복수해 주시는 하나님께 내가 부르짖습니다.

3하늘에서 주님의 사랑과 진실을 보내시어,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나를 괴롭히는 자들을 꾸짖어 주십시오. (셀라) 오, 하나님, 주님의 사랑과 진실을 보내어 주십시오.

4내가 사람을 잡아먹는 사자들 한가운데 누워 있어 보니, 그들의 이는 창끝과 같고, 화살촉과도 같고,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과도 같았습니다.

5하나님, 하늘 높이 높임을 받으시고, 주님의 영광을 온 땅 위에 떨치십시오.

6그들은 내 목숨을 노리고, 내 발 앞에 그물을 쳐 놓아 내 기가 꺾였습니다. 그들이 내 앞에 함정을 파 놓았지만, 오히려 그들이 그 함정에 빠져 들고 말았습니다. (셀라)

 

7하나님, 나는 내 마음을 정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확실히 정했습니다. 내가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8내 영혼아, 깨어나라. 거문고야, 수금아, 깨어나라. 내가 새벽을 깨우련다.

9주님, 내가 만민 가운데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뭇 나라 가운데서 노래를 불러,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10주님의 한결같은 그 사랑, 너무 높아서 하늘에 이르고, 주님의 진실하심, 구름에까지 닿습니다.

11하나님, 주님은 하늘 높이 높임을 받으시고, 주님의 영광 온 땅 위에 떨치십시오.


시편의 여러 시들이 있지만, 이 시만큼 갑자기 시인의 정서가 바뀌는 시도 많지는 않은 것 같다. 

1-6절에서는 고통을 호소하는 장면이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신세가 처량하다. 

사울을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다. 

물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으나, 사울이 왕인 이상 사울을 위해 싸워왔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사울 왕국의 안정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런데 지금은 도망자 신세가 되어서 동굴에 갇혀 있다. 

사울의 군대가 다윗을 쫓고 있다. 

죄가 있다면 열심히 한 죄 밖에 없다. 

억울하다. 처참하다. 축축한 동굴 어둠 속에서 눈물을 삼킨다. 

시인은 현재의 동굴을 하나님의 날개 그늘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나마 들판에서 무방비로 노출시켜주시지 않고 동굴을 발견하게 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한다고 말하는 듯 싶다. 

 

노아가 방주에서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듯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듯이, 

다윗은 동굴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는다. 

 

사람은 위기가 닥치면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기 마련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 부르짖는다. 

특별히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 분을 참을 길이 없어 부르짖는다. 

부르짖는 기도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몸은 힘들고, 매일 정신적 스트레스로 하루하루를 살기 힘들고, 사회적 요구와 기대에 부응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다 포기하고 싶을 때, 

그 때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것이 부르짖는 기도다. 

부르짖는 기도는 서민적인 기도다. 

엘리트들은, 사회적으로 가용자원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사람들은, 부르짖는 기도의 필요를 많이 느끼지 않는다. 

돈도 부족하고 자신을 도울 사람들도 많지 않고 관계망도 빈약한 사람들은 마지막 죽을 힘을 다해 부르짖는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르짖는 기도는 절박한 서민들의 기도인 것이다. 

 

부르짖는 기도의 끝에는 마음의 결단이 있다. 

7-11절은 갑작스레 바뀐 다윗의 마음을 보여준다. 

그는 마음을 정했다. 

찬양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자신의 부르짖는 기도 소리가 동굴 속에 울려 퍼지는 동안, 그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원망과 분노, 배반에 대한 치를 떠는 고통 속에서 드려졌던 기도 소리는 이제 되돌아 오는 울림이 되어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결심으로 열매맺는다. 

밤새도록 드려졌던 고통의 기도는 새벽의 찬양으로 변한다. 

 

8내 영혼아, 깨어나라. 거문고야, 수금아, 깨어나라. 내가 새벽을 깨우련다.

 

작은 새벽빛이 동굴 속으로 들어온다. 

그의 오랜 부르짖음은 노래가 되어 동굴을 울린다. 

상상 속의 거문고와 수금의 음율이 들리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사랑, 진실하심, 영광이 각각 선율이 되어 거문고와 수금의 소리 위에 얹혀진다. 

그렇게 새벽의 노래가 완성된다. 

힘있게 부르는 다윗의 노래는 추적자들이 듣든 말든 거세게 휘몰아치며 동굴을 휘집고 다닌다. 

노래가 끝나는 무렵, 다윗의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영광스런 하나님의 모습이 그의 눈에 선하다. 

그의 눈은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께 닿아 있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는다. 

 

매일 매일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마음을 지킬 힘이 없다. 

수많은 논의와 결정 해야할 사항이 계속해서 다가온다. 

나에겐 추진할 힘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주님을 다시 바라본다. 

그분께 마음의 시선을 맞춘다. 

그분의 영광을 묵상하며 그분이 하신 일들을 되새긴다. 

그렇게 동굴 속에서 주님을 찬양한다. 

동굴의 에코를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말이다. 

 

추석이다. 

부모님과 가족들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매 순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 

때로 마음이 너무 무거워 마음의 동굴 속에 들어갑니다. 

그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불쌍히 여겨달라고, 살려 달라고 외칩니다. 

그 때 마다 외면치 않으시고 다시 마음의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다윗처럼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찬양하겠다는 마음을 확정하겠습니다. 

주님을 저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제가 가진 최선으로 주신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오늘도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09월 18일 토요일

 

여는 기도

살아 있는 어느 누구도 주님 앞에서는 의롭지 못하니, 주님의 종을 심판하지 말아 주십시오.

 

1솔로몬은, 자기의 궁을 건축하기 시작하여 그것을 완공하는 데, 열세 해가 걸렸다.

2그는 '레바논 수풀 궁'을 지었는데, 그 길이는 백 자이고, 그 너비는 쉰 자이고, 그 높이는 서른 자이다. 백향목 기둥을 네 줄로 세우고, 그 기둥 위에는 백향목 서까래를 얹었다.

3지붕에는, 한 줄에 열다섯 개씩, 모두 마흔다섯 개의 서까래를 대고, 백향목 판자로 덮었다.

4창틀은 세 줄로 되어 있고, 그 창문들은 세 단으로 되어서,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5문과 문설주는 모두 네모난 모양이고, 창문은 창문끼리 세 줄로 마주 보고 있었다.

6그는 기둥들을 나란히 세워 주랑을 만들었다. 그것은 길이가 쉰 자이고 너비가 서른 자인, 벽이 없는 복도였다. 주랑 앞에는 현관이 있고, 현관 앞에 또 기둥들이 있고, 그 기둥들 위에는 차양이 걸려 있었다.

7또 그는 '옥좌실' 곧 '재판정'을 짓고, 그 마루를 모두 백향목으로 깔았다.

8자기가 있을 왕궁은, '재판정' 뒤에 있는 다른 뜰에 지었는데, 그 건축 양식은 다른 건물들의 건축 양식과 서로 비슷하였다. 또 솔로몬은 이것과 같은 궁전을, 그가 결혼하여 아내로 맞아들인 바로의 딸에게도 지어 주었다.

9왕궁을 포함한 모든 건물은, 치수를 재어서 깎은 귀한 돌, 앞뒤를 톱으로 자른 값진 돌들로 지었는데, 기초에서부터 갓돌까지, 또 바깥은 물론이고, 건물 안의 큰 뜰까지, 다 그러한 재료를 써서 지었다.

10기초를 놓을 때에도 값진 큰 돌들을 놓았는데, 어떤 돌은 열 자나 되고, 어떤 돌은 여덟 자나 되었다.

11기초를 다진 다음에는, 그 위에다가 치수를 재어서, 잘 다듬은 값진 돌과 백향목으로 벽을 올렸다.

12왕궁 뜰의 담이나, 주님의 성전 안뜰의 담이나, 성전의 어귀 현관의 담은, 모두 잘 다듬은 돌 세 켜와 두꺼운 백향목 판자 한 켜를 놓아서 쌓았다.

 


7년에 걸친 성전 공사가 끝나고 이제는 13년간의 솔로몬 궁 공사다. 

그간의 경험이나 기술이 궁전 공사에 사용된다. 

성전보다 더 크고 복잡하다. 

주 자재는 잘 다듬은 돌과 레바논의 백향목이다. 

궁전은 재판정, 솔로몬의 거처, 왕비의 거처, 이렇게 크게 3 부분으로 나뉜다. 

재판정을 제일 먼저 언급한 것이 눈에 띈다. 

이 재판정이 과거에 창녀 둘의 아기 재판 때처럼 일반 백성들이 찾아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일지 의문이 든다. 

성전보다 화려한 솔로몬 궁에는 이제 아무나 소를 제기하거나 재판을 신청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좀더 명망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재판이 다뤄지지 않았을까 싶다. 

아님 국정 논하는 자리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겠다. 

정확한 쓰임새는 확실히 알긴 어려우나 여튼 과거처럼 일반 백성들이 찾아오기는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었을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대학들이 국내 굴지의 기업들의 지원을 받아 캠퍼스 건물들을 새로이 많이 지었다. 

건물들이 화려하고 멋있다. 마치 호텔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호텔 라운지처럼 드문드문 놓인 소파들과 테이블 위에 학생들이 저마다 노트북 하나씩을 켜고 집중하고 있다. 

대화하는 학생들도 있긴 하지만 그렇게 떠들썩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고상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그렇게 새로운 건물이 신축되자마자 아쉽게도 건물 대관이 무척이나 까다로워졌다.

출입도 신경을 많이 쓴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건물이 새것이고,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장비나 인테리어도 거의 새것이기 때문에 도난 방지를 위해서도, 건물관리를 위해서도 대관이나 출입이 통제될 필요가 있다. 

이해한다. 

그러나 결국 점점 가기가 어렵다. 

외부인은 저 멀리서 건물 구경이나 해야 한다. 

 

13년의 대 공사로 지어진 솔로몬 궁에는 수많은 가드와 호위병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눈을 피해 궁에 들어가는 것은 그야말로 즉결처형감이다. 

힘없고 돈없고 백없는 사람들이 궁전에 들어가 재판을 신청하는 것 자체가 더욱 어려워졌을 것이다. 

이런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화려함 뒤에는 소외가 있다. 

철저한 내부 관리 뒤에는 고통받는 주변인들이 있다. 

리더는 내부 관리 뿐 아니라 주변을 살피는 “돌봄 통치”에 열려 있어야 한다. 

시간과 공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래야 소외로 인한 고통이 줄고, 주변인들도 맘 편하게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의 “상징”을 맛볼 수 있다.  

깔끔한 것이 핵심이 아니라 사랑이 핵심이다. 

 

오늘도 적극적인 돌봄 통치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내 자신부터 가족, 교회, 직장… 

나로부터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한 돌봄이 더욱 가득 미치기를 바란다. 

화려한 건물, 물질, 언변이 아니라 사랑에서 비롯한 환대. 칭찬, 축복을 통해서 말이다.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한 주를 정리하고 주일을 준비하는 토요일입니다. 

지난 한 주 폭풍처럼 지났던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잘 정리하고, 

내일 주일을 준비하며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게 해 주세요. 

꼼꼼하게 주변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돌봄 통치를 대리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오늘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9월 17일 금요일

 

여는 기도

주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로 어서 와 주십시오.

 

15성전의 안쪽 벽에는 바닥에서 천장에 닿기까지 벽 전체에 백향목 널빤지를 입히고, 성전의 바닥에는 잣나무 널빤지를 깔았다.

16성전 뒤쪽에서 앞쪽으로 스무 자를 재어서, 바닥에서부터 천장의 서까래에 이르기까지 백향목 널빤지로 가로막아서, 성전의 내실 곧 지성소를 만들었다.

17내실 앞에 있는 성전의 외실은, 그 길이가 마흔 자였다.

18성전 안쪽 벽에 입힌 백향목에는, 호리병 모양 박과 활짝 핀 꽃 모양을 새겼는데, 전체가 백향목이라서, 석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19성전 안에는, 주님의 언약궤를 놓아 둘 내실을 마련하였다.

20성전의 내실 곧 지성소는 길이가 스무 자, 너비가 스무 자, 높이가 스무 자이고, 순금으로 입혔으며, 백향목 제단에도 순금으로 입혔다.

21솔로몬은 성전 내부도 순금으로 입히고, 지성소 앞에는 금사슬을 드리웠으며, 그 지성소를 모두 금으로 입혔다.

22그래서 그는 온 성전을, 빠진 곳이 전혀 없도록, 금으로 입혔다. 심지어는 성소에 속하여 있는 제단들까지도, 모두 금으로 입혔다.

23그는 지성소 안에 올리브 나무로 두 개의 그룹을 만들었는데, 높이는 각각 열 자이다.

24그 한 그룹의 한쪽 날개는 다섯 자, 그룹의 다른 쪽 날개 역시 다섯 자이다. 그 날개의 한쪽 끝으로부터 다른 쪽 날개의 끝까지는 열 자이다.

25두 번째 그룹도 열 자이며, 두 그룹이 같은 치수와 같은 모양이었다.

26이쪽 그룹의 높이도 열 자이고, 저쪽 것도 열 자이다.

27솔로몬은 그 그룹들을 지성소의 가장 깊숙한 곳에 놓았다. 그룹들의 날개는 펴져 있어서, 이쪽 그룹의 한 날개가 저쪽 벽에 닿았고, 저쪽 그룹의 한 날개는 이쪽 벽에 닿았다. 그리고 지성소의 중앙에서 그들의 다른 날개들은 서로 닿아 있었다.

28그는 이 그룹에도 금으로 입혔다.

29그는 성전의 지성소와 외실의 벽으로 돌아가면서, 그룹의 형상과 종려나무와 활짝 핀 꽃 모양을 새겼다.

30또 그 성전의 지성소와 외실 마루에도 금으로 입혔다.

31지성소 어귀에는 올리브 나무로 문을 두 짝 만들고, 그 인방과 문설주는 오각형으로 만들었다.

32그리고 올리브 나무로 만든 문 두 짝에는, 그룹의 형상과 종려나무와 활짝 핀 꽃 모양을 새겼는데, 그룹 모양과 종려나무 모양 위에도 금으로 입혔다.

33또 올리브 나무로 본당의 외실 어귀를 만들었는데, 그 문설주는 사각형으로 만들었다.

34그리고 잣나무로 만든 두 개의 문이 있는데, 한 쪽의 문도 두 부분으로 접히고, 다른 문도 두 부분으로 접히게 되어 있었다.

35그 위에 그룹들과 종려나무와 활짝 핀 꽃 모양을 새겼는데, 그 위에 고루고루 금을 입혔다.

36또 성전 앞에다가 안뜰을 만들었는데, 안뜰 벽은 잘 다듬은 돌 세 켜와 두꺼운 백향목 판자 한 켜로 벽을 쳤다.

37주님의 성전 기초를 놓은 것은 솔로몬의 통치 제 사년 시브월이고,

38성전이 그 세밀한 부분까지 설계한 대로 완공된 것은 제 십일년 불월 곧 여덟째 달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 데는 일곱 해가 걸렸다.

 

주석

금으로 입혔다(21, 22, 28, 29, 32, 35): 황금 도금을 아낌없이 사용한 것은, 지나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은, 근동의 신전을 장식하는 관행이었다(IVP 성경주석).

 


백향목은 어떤 향을 낼까? 

솔로몬의 성전은 백향목의 은은하고 독특한 향으로 가득하다. 

백향목의 향으로 인해 벌레가 접근하지 못한다. 

 

“백향목은 중동에서도 레바논 산맥의 해발 2000m 이상에서만 자라며 적어도 300년은 자라야 목재로 사용 가능하고, 400년이 되어야 열매가 열리는 귀한 목재이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3867148

 

그동안 백향목에 대해 조사할 생각도 못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성전의 향을 상상한다. 

백향목의 그 은은한 향이 성전을 채운다. 

그 안에 오랫동안 머물러 본다. 

공사중이라고 해도, 먼지가 많을 뿐 현대의 건축과정에서 생기는 화학약품/제품들의 냄새가 진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백향목, 올리브 나무 등이 잘려나가고 조각되고 끼워맞춰지면서 나오는 나무의 그 본연의 냄새가 날 것이다. 

7년간의 공사 기간 중에 대부분은 이런 백향나무의 향기와 올리브 나무의 향기로 가득하다. 

그 향이 완공된 성전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사실 완공된 성전의 냄새는 나무 냄새가 아니라 피 냄새이며 살 태우는 냄새다. 

성전 뜰에서는 제물이 도축되고 태워진다. 

완공되어 성전의 기능이 작동될 때의 냄새는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도리어 완공되기 전까지의 공사 기간 중의 냄새가 더욱 향기로울 수도 있다. 

 

나는 완공될 성전을 기대하며 목수의 일을 감당하는 한 목공이고 싶다. 

매일 매일 백향목의 향을 맡으며 조금씩 조금씩 건축 퍼즐을 맞춘다. 

나무를 깍고, 설계에 맞춰 자르고, 망치질을 하고 그렇게 성전 하나하나를 만들어간다. 

과정 속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작고 소중한 것들을 의미있게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다. 

성취의 결과물에 대한 기대로 과정의 향기로움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공동체는 다시 성전을 짓는 중이다. 

무너진 곳을 살피고, 백향목을 가져다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성전을 짓고 있다. 

어려움이 많다. 

신뢰관계를 온전히 회복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사역적 방법론도 개발해야 한다. 

관계와 제도와 사역 전략 모두 중요하고 새로이 세워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몇년이 걸릴지 모른다. 

짧았으면 좋겠지만, 내 바램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더욱 그 과정을 소중히 여기자. 

만나는 사람들, 진행하는 프로그램, 진행되는 논의들… 

성전의 작은 부분, 문 하나를 나무로 만드는 마음으로, 그렇게 향기로운 작은 걸음을 오늘도 걷는다. 

 


일의 성취 뿐 아니라 과정도 소중하게 주목하시는 하나님, 

저의 약점인 성취주의의 부작용을 종종 경험합니다. 

과정 속에 스며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헌신을 쉽게 간과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세심하게 그 과정들을 밟아가고, 그 속에서 백향목의 향기를 경험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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