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9월 13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지휘자를 따라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다윗의 믹담, 블레셋 사람이 가드에서 다윗을 붙잡았을 때에 다윗이 지은 시]

 

1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사람들이 나를 짓밟습니다. 온종일 나를 공격하며 억누릅니다.

2나를 비난하는 원수들이 온종일 나를 짓밟고 거칠게 나를 공격하는 자들이, 참으로 많아지고 있습니다. 오, 전능하신 하나님!

3두려움이 온통 나를 휩싸는 날에도, 나는 오히려 주님을 의지합니다.

4나는 하나님의 말씀만 찬양합니다. 내가 하나님만 의지하니, 나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육체를 가진 사람이 나에게 감히 어찌하겠습니까?

5그들은 온종일 나의 말을 책잡습니다. 오로지 나를 해칠 생각에만 골몰합니다.

6그들이 함께 모여 숨어서 내 목숨을 노리더니, 이제는 나의 걸음걸음을 지켜 보고 있습니다.

7그들이 악하니, 그들이 피하지 못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 뭇 민족들에게 진노하시고 그들을 멸망시켜 주십시오.

8나의 방황을 주님께서 헤아리시고, 내가 흘린 눈물을 주님의 가죽부대에 담아 두십시오. 이 사정이 주님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9내가 주님을 부르면, 원수들이 뒷걸음쳐 물러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편이심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10하나님을 의지하며 나는 하나님의 말씀만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는 주님의 말씀만을 찬양합니다.

11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니, 내게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람이 나에게 감히 어찌하겠습니까?

12하나님, 내가 주님께 서원한 그대로, 주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겠습니다.

13주님께서 내 생명을 죽음에서 건져 주시고, 내가 생명의 빛을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거닐 수 있게, 내 발을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적에게 잡혀 큰 어려움을 당하지만 하나님만 의지하며 찬양합니다(1-4절). 하지만 적들은 말과 행동과 감정으로 시인을 괴롭게 합니다(5-8절). 이런 상황 속에서 시인은 아무리 강한 적들이라도 주님 앞에선 도망갈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9-13절).

 

시인은 적들에게 잡혀 엄청난 고통을 받지만 적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서 다 도망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시인은 환난 중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며 찬양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과 환난이 날 삼킬 듯이 달려와도 하나님은 나의 편이 되어 주십니다. 눈앞의 문제만 바라보지 말고 그 너머에서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뻐할 수 있는 힘을 얻읍시다.

 

——

적군에게 붙잡혔다. 

포로가 된 것이다. 

현대전의 포로와 고대의 포로는 그 차이가 현격하다. 

현대전의 포로는 제네바 협약에 의해 최소한의 인권이 존중받는다. 

그러나 고대에는 죽거나 노예가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전쟁의 포획물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다. 

어떻게 죽을지도 모른다. 비참하게 죽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윗은 온종일 고통을 당한다. 

한시라도 가만히 두질 않는다. 

괴롭히고 조롱한다. 

오늘 시에서 “온종일”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다윗이 느끼는 두려움과 좌절감이 전달된다. 

 

요사이 D_P라는 드라마가 핫하다. 

군대 탈영병을 잡아오는 드라마다. 

군에서의 부조리는 어제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언어, 육체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다. 

함께 붙어 있는데, 하루 종일 시달린다면 과연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예전보다는 그 정도가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군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다윗은 그런 군대에서 최고의 약자의 위치가 되었다. 

포로가 되어 매 순간 죽음의 공포와 싸운다. 

전장에서 전장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블레셋의 골리앗을 이긴 장수라고 소문이 났다. 

너도 나도 유명한 포로를 보러 온다. 

그리고 한마디씩 한다. 

“에게… 저런 놈이 어떻게 골리앗을 이겼대? 다 거짓말 아니야?” 

“우리 민족의 원수, 저놈을 어떻게 죽여줄까?” 

 

그런데 역사적 사건과 관련을 지으면, 다윗은 싸우다가 블레셋에게 잡힌 것이 아니었다. 

삼상 21:10-15절을 보면,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 사울의 위협을 피하려다가 지금 블레셋에 잡혀 오게 된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의 놀림이야 어떡해서든 참아 보겠으나, 

동족으로부터 피하다가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서는 눈물이 흐를 수 밖에 없다. 

 

8나의 방황을 주님께서 헤아리시고, 내가 흘린 눈물을 주님의 가죽부대에 담아 두십시오. 이 사정이 주님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다윗의 눈물이 이해가 된다. 

밤마다 잠자기 전에 눈물이 흐른다. 

미친 척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처량했을까? 

민족을 위해 영웅처럼 싸웠지만 돌아오는 것은 도망자 신세다. 

현대 영화의 모티브로도 많이 사용된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특수부대 요원이 모함을 받아 도망자가 되어 죽을 고비를 넘긴다. 이런 종류의 영화 말이다. 

다윗은 죽음의 두려움, 배신에 대한 분노, 조롱에 대한 부끄러움…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오늘도 살고 있다. 

 

그래도 주님을 의지하겠다는 그의 결심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자신의 지혜로는 한계가 너무 많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밤마다 눈물의 기도를 드린다. 

 

11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니, 내게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람이 나에게 감히 어찌하겠습니까?
12하나님, 내가 주님께 서원한 그대로, 주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겠습니다

 

자꾸 두려움이 없다고 하니, 왠지 정말 두려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다잡는다.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오랫동안 의지하고 신뢰해 왔기 때문에, 그 관성으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다. 

지식, 동의, 신뢰의 마음, 즉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다윗에게 확신이 있었을까? 

이 시를 반복해서 읽고 노래할 때마다, 그는 마음의 동요를 그대로 감지한다. 

첫소절을 읽을 때에는 고통스런 감정이 올라온다. 

뒤로 갈수록 다시 신뢰의 마음을 다잡는다. 

이 시의 기능이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고, 그리고 다시 주님께 신뢰의 마음을 드린다. 

 

다양한 일들이 마음을 옥죄온다. 

나의 연약함, 실수에서 오는 상황의 어려움도 있고, 그저 외부 상황이 그러하기에 찾아오는 어려움도 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마음을 지키는 일이 쉽지 않다. 

이웃 사랑을 위한 노력, 그것은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다시 한 번 결심한다.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그만큼 매일 매일 경험하는 삶의 무게가 무겁다는 방증이다. 

 

——

주님, 

저의 연약함 때문이건, 그저 상황의 변화 때문이건 어려움이 찾아 올 때, 

분노의 감정에 휩싸여 자신에게건 타인에게건 비난만 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다윗처럼 시를 짓고 

시를 읊조리며 

주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하고

동시에 나의 감정을 토로하고 

그렇게 다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주께서 도와 주세요. 

 

주님만이 저의 상황을 다 아십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사람은 모릅니다. 

저의 마음 속 부담과 고민은 주님만이 아십니다. 

주님께서 인도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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