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1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다윗이 교훈을 하려고 지은 믹담, 지휘자를 따라 수산 에둣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 소바'와 싸울 때에 요압이 돌아와서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군 만 이천 명을 죽였다. 그 때에 다윗이 지은 시]

 

1하나님, 주님께서 우리를 내버리시고, 흩으시고, 우리에게 노하셨으나, 이제는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2주님께서 땅을 흔드시고 갈라지게 하셨으니, 이제는 그 갈라지고 깨어진 틈을 메워 주시어서, 땅이 요동치 않게 해주십시오.

3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에게 곤란을 겪게 하시고, 포도주를 먹여 비틀거리게 하셨습니다.

4활을 쏘는 자들에게서 피하여 도망치도록, 깃발을 세워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인도해 주십시오. (셀라)

5주님의 오른손을 내미셔서,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6하나님께서 성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크게 기뻐하면서 뛰어놀겠다. 내가 세겜을 나누고,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겠다.

7길르앗도 나의 것이요, 므낫세도 나의 것이다. 에브라임은 내 머리에 쓰는 투구요, 유다는 나의 통치 지팡이이다.

8그러나 모압은 나의 세숫대야로 삼고, 에돔에는 나의 신을 벗어 던져 그것이 나의 소유임을 밝히겠다. 내가 블레셋을 격파하고, 승전가를 부르겠다."

9누가 나를 견고한 성으로 데리고 가며, 누가 나를 에돔까지 인도합니까?

10하나님, 우리를 정말로 내버리신 것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의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않으시렵니까?

11사람의 도움이 헛되니, 어서 우리를 도우셔서, 원수들을 물리쳐 주십시오.

12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우리는 승리를 얻을 것이다. 그가 우리의 원수들을 짓밟을 것이다.


표제에 나와 있는 상황과 시인의 노래의 내용이 잘 맞지 않는다. 

표제에는 분명 요압이 돌아와서 에돔 군 만 이천 명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우리를 정말로 내버리신 것입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전쟁을 도와주시고 계신 것이 아닌가? 

다윗은 감사를 드려야지 지금 원망섞인 기도를 드리는 것이 합당한가? 

뭔가 이상하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찬양의 순간에 처절한 간구의 기도가 드려지고 있다. 

1절도 그렇다. 

 

1하나님, 주님께서 우리를 내버리시고, 흩으시고, 우리에게 노하셨으나, 이제는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언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단 말인가? 

언제 흩어셨단 말인가? 

다윗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는 있겠다. 

전쟁 자체가 고통이다. 

이방인들과 계속되는 싸움과 전쟁은 왕으로서 참 곤욕스런 일이다. 

외교력의 문제를 제기하는 신하와 백성이 있을 수 있다. 

전쟁을 매년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왕의 일이 아닌가? 

아무리 작은 전쟁이라도 결국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사실이다. 

전쟁이 일어난 것 자체가 하나님의 분노다. 

진정한 승리는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자발적인 순종으로 이끄는 것이 최고의 승리다. 

그런면에서 하나님이 온 세계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확고부동해지면 더욱 좋겠다. 

그래야 이스라엘 주변국도 더이상 제사장 나라인 이스라엘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8그러나 모압은 나의 세숫대야로 삼고, 에돔에는 나의 신을 벗어 던져 그것이 나의 소유임을 밝히겠다. 내가 블레셋을 격파하고, 승전가를 부르겠다.

 

실제로 이 세상 모든 나라의 소유권은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은 모압과 에돔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거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유다는 하나님의 통치지팡이이다. 

유다를 통해 하나님은 전 세계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로 하셨다. 

그러니 그 유다의 말을 따르는 것이 필요했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하는 것. 

그분의 다스림에 기쁨으로 따르는 것. 

그리스도인의 마땅히 해야 할 바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어서 그런 삶으로 들어오도록 인도하면 제일 좋은 일이다. 

 

한 주의 시작이다. 

그분의 다스림에 순복하고 싶다. 

그분의 이끄심에 기쁨으로 따르고 싶다. 


 

주님, 

한 주를 시작하는 시작이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주님께 저의 부담을 내려놓습니다. 

주님께서 인도해주세요.

억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진행되도록 주님께서 인도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10월 06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14해마다 솔로몬에게 들어오는 금은, 그 무게가 육백육십육 달란트였다.

15이 밖에도 상인들로부터 세금으로 들어온 것과, 무역업자와의 교역에서 얻는 수입과, 아라비아의 모든 왕들과 국내의 지방장관들이 보내 오는 금도 있었다.

16솔로몬 왕은, 금을 두드려 펴서 입힌 큰 방패를 이백 개나 만들었는데, 방패 하나에 들어간 금만 하여도 육백 세겔이나 되었다.

17그는 또, 금을 두드려 펴서 입힌 작은 방패를 삼백 개를 만들었는데, 그 방패 하나에 들어간 금은 삼 마네였다. 왕은 이 방패들을 '레바논 수풀 궁'에 두었다.

18왕은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거기에다 잘 정련된 금을 입혔다.

19보좌로 오르는 층계에는 계단이 여섯이 있었으며, 보좌의 꼭대기는 뒤가 둥그렇게 되어 있었으며, 그 앉는 자리 양쪽에는 팔걸이가 있고, 그 팔걸이 양 옆에는 각각 사자 상이 하나씩 서 있었다.

20여섯 개의 계단 양쪽에도, 각각 여섯 개씩 열두 개의 사자 상이 서 있었다. 일찍이,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는 만들지 못하였다.

21솔로몬 왕이 마시는 데 쓰는 모든 그릇은 금으로 되어 있었고, '레바논 수풀 궁'에 있는 그릇도 모두 순금이며, 은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솔로몬 시대에는, 은은 귀금속 축에 들지도 못하였다.

22왕은 다시스 배를 바다에 띄우고, 히람의 배와 함께 해상무역을 하게 하였다. 세 해마다 한 번씩, 다시스의 배가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새들을 실어 오고는 하였다.

23솔로몬 왕은 재산에 있어서나, 지혜에 있어서나, 이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훨씬 뛰어났다.

24그래서 온 세계 사람은 모두, 솔로몬을 직접 만나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넣어 주신 지혜의 말을 들으려고 하였다.

25그래서 그들은 각각 은그릇과 금그릇과 옷과 갑옷과 향료와 말과 노새를 예물로 가지고 왔는데, 해마다 이런 사람의 방문이 그치지 않았다.

26솔로몬이 병거와 기병을 모으니, 병거가 천사백 대, 기병이 만 이천 명에 이르렀다. 솔로몬은 그들을, 병거 주둔성과 왕이 있는 예루살렘에다가 나누어서 배치하였다.

27왕 덕분에 예루살렘에는 은이 돌처럼 흔하였고, 백향목은 세펠라 평원지대의 뽕나무만큼이나 많았다.

28솔로몬은 말을 이집트와 구에로부터 수입하였는데, 왕실 무역상을 시켜서, 구에에서 사들였다.

29병거는 이집트에서 한 대에 은 육백 세겔을, 그리고 말은 한 필에 은 백오십 세겔을 주고 들여와서, 그것을 헷 족의 모든 왕과 시리아 왕들에게 되팔기도 하였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숫자는 666이다. 

이 숫자의 상징을 열왕기 저자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경 전체를 아는 사람으로서는 이 숫자가 그냥 넘어갈 숫자는 아니다. 

15절에 보면 666이외에 훨씬 많은 금들이 모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666을 쓸 필요는 없다. 차라리 777를 쓰던지…

솔로몬의 궁은 금으로 뒤덮혀 있다. 

은은 귀금속 축에도 들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들이 솔로몬 궁으로 몰려 들어온다. 

 

사람들이 박물관에 가는 이유가 있다. 

세상의 가장 진귀한 것들이 그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과거의 사람들이 무엇을 귀하게 여겼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솔로몬 궁이 그렇다. 

전 세계의 진귀한 보물들과 값비싼 귀중품들이 몰려 들고 있다. 

 

22왕은 다시스 배를 바다에 띄우고, 히람의 배와 함께 해상무역을 하게 하였다. 세 해마다 한 번씩, 다시스의 배가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새들을 실어 오고는 하였다.

 

지중해 서쪽 끝의 다시스까지 가서 해상무역도 하였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진귀한 물건들이 배를 통해 들어온다. 

사람들은 배가 들어오는 날, 함께 모여 세계 저쪽 끝으로부터의 신기방통한 물건과 동물들을 보면서 국력을 실감한다. 

이스라엘의 중흥기 맞다. 

 

23솔로몬 왕은 재산에 있어서나, 지혜에 있어서나, 이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훨씬 뛰어났다. 24그래서 온 세계 사람은 모두, 솔로몬을 직접 만나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넣어 주신 지혜의 말을 들으려고 하였다.

 

BTS를 보려고 온 세계 사람들이 몰리듯, 솔로몬을 보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이스라엘로 향한다. 

예루살렘은 국제적인 도시가 되어간다. 

이방인들도 종종 길거리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가져오는 수많은 우상들도 함께 발견된다. 

그 우상이 예루살렘의 문화적 힘에 위축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약점이 노출되기를 기다리는 것도 사실이다. 

 

에덴에서 출원한 네 개의 강들중 하나인 비손강은 금은이 풍부한 하윌라 평야를 지나간다고 표현되어 있다. 

에덴은 금은이 풍부한 세계 통치의 중심지요, 세계적 성전이 위치한 곳이었다. 

그 에덴의 비전이 예루살렘에서 솔로몬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 비전이 계속 되기 위해 솔로몬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666에 멈추지 말고, 777로 가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국제적 도시로서의 명성이 자자하며, 세상 사람들은 솔로몬의 부와 지혜를 여호와 하나님의 덕분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솔로몬은 그 부와 지혜의 근원인 하나님의 이름이 더욱 높아지기 위해 어떻게 다음 스텝을 밟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단순히 군사력을 높이고 무기를 금치장 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이집트로부터 말을 사와서 군사력을 증대시키는 것에 흡족해서는 안된다. 

정치, 외교, 군사, 경제력이 최상위를 차지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이제 하나님의 본래 뜻을 어떻게 잘 구현하느냐이다. 

 

666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다. 

하지만 777은 하나님의 안식과 완벽함의 상징이다. 

6일까지는 일하는 날이지만, 7일째 되는 날은 안식하며 쉬어야 한다. 

만들어 놓은 물질 세계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창조자 하나님께 집중해야 하는 날이다. 

물질의 플라이 휠이 돌기 시작하면 7을 잃어간다. 

하나님의 성전의 기능은 단순히 제사를 많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전에서 하나님과 함께 쉬면서 그분의 영광을 기념하는 일이다. 

7까지 가야 우리는 조율된다. 

생산이든 창작이든 자기 표현은 6일 동안 충분히 하면 된다. 

7일에는 그분과 함께 즐거워하는 시간을 누려야 한다. 

이것이 즐겁지 않다면, 사람은 다른 즐거움을 찾기 마련이다. 

그리고 다른 즐거움은 결국 그 사람을 파멸적 중독에 빠지게 만든다. 

건강한 중독이 있다. 그건 하나님의 인격에 빠지는 중독이다. 

7은 그분의 인격으로 인해 즐거움에 빠지는 시간이다. 

 

한국의 국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정치, 외교, 군사, 경제력 뿐 아니라, 문화력도 세계 수준급이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한다. 

스스로 도취되면 안된다. 하나님의 뜻을 잘 물어야 한다. 

부와 성취 이면에 약자와 고통받는 사람들의 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

세계 돌봄 통치를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과 세상의 샬롬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6이 아니라 7에 집중해야 한다. 

7일 내내 생산성의 고도화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 하루는 오로지 하나님의 인격에 반응하는 날로 잡아야 한다.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하고, 그런 개인이 되어야 한다. 

 

비가 온다. 

그분과의 대화에 집중해 본다. 


주님, 

저는 그 어느때보다 풍요롭게 살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사는 것 자체가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경제적 부를 누리며 사는 겁니다.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저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그동안의 삶과 비교할 때, 상당히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더욱 깊이 주님을 바라보게 해 주세요. 

예수님과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풍요에 집착/중독되지 않고 오직 당신께 집착/중독되고 싶습니다. 

종교 중독이 아니라 인격 중독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과의 깊이 있는 관계 속에서 더 배우고 익히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주변을 돌보고 세상을 돌보고 싶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더 깊은 대화로 인도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10월 01일 금요일

 

여는 기도

주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로 어서 와 주십시오.

 

1솔로몬이 주님의 성전과 왕궁 짓는 일과, 자기가 이루고 싶어 한 모든 것을 끝마치니,

2주님께서는, 기브온에서 나타나신 것과 같이, 두 번째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3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나에게 한 기도와 간구를 내가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내 이름을 영원토록 기리려고 지은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였다. 따라서 내 눈길과 마음이 항상 이 곳에 있을 것이다.

4너는 내 앞에서 네 아버지 다윗처럼 살아라. 그리하여 내가 네게 명한 것을 실천하고, 내가 네게 준 율례와 규례를 온전한 마음으로 올바르게 지켜라.

5그리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을 사람이 그에게서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약속한 대로, 이스라엘을 다스릴 네 왕좌를, 영원히 지켜 주겠다.

6그러나 너와 네 자손이 나를 따르지 아니하고 등을 돌리거나, 내가 네게 일러준 내 계명과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곁길로 나아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을 숭배하면,

7나는, 내가 준 그 땅에서 이스라엘을 끊어 버릴 것이고, 내 이름을 기리도록 거룩하게 구별한 성전을 외면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사이에서, 한낱 속담거리가 되고,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8이 성전이 한때 아무리 존귀하게 여김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 곳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놀랄 것이고 '어찌하여 주님께서 이 땅과 이 성전을 이렇게 되게 하셨을까?' 하고 탄식할 것이다.

9그러면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의 조상을 이집트 땅으로부터 이끌어 내신 주 그들의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미혹되어, 그 신들에게 절하여 그 신들을 섬겼으므로, 주님께서 이 온갖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다' 하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은 본래 에덴에 있었다. 

그 아름다운 창조의 공간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영원토록 기려지고 세상을 향한 돌봄 통치가 일어나길 바라셨다. 

그 초기의 성전인 에덴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제사장으로 임명하여 당신과 세상의 중재자가 되기를 바라셨다. 

그 초기의 성전이 이제 솔로몬을 통해 다시 세상에 재현되고 있다. 

성전의 완공은 제사장 나라로서의 솔로몬 왕국이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다. 

솔로몬 궁전의 완공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의 이스라엘이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다. 

따라서 하나님의 눈길과 마음이 이곳에 머무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나님은 솔로몬을 통해서 에덴의 비전을 다시 이루길 원하셨다. 

 

아담과 하와에게 기대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었다. 

생육하고 번성하면서 세상을 돌보고 다스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산 중앙의 실과는 먹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그들은 에덴에서 온 세상의 돌봄 통치자 그리고 대제사장의 역할을 수행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순종을 원하셨다. 순종은 억지로 하는 복종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발적 따름이 순종이다. 

 

이 자발적 따름을 이제 솔로몬에게 요구하신다. 

에덴의 재해석이 솔로몬 성전과 왕궁이라고 한다면, 이제 새로운 아담인 솔로몬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잘 따라야 했다. 

우상 숭배를 멀리해야 했다. 

우상 숭배의 본질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우상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채운다. 자신의 권력을 강화한다. 자신을 신처럼 여기도록 사람들을 압박한다. 

수많은 외국의 신들은 자기 입맛대로 고른다. 

돈과 풍요가 필요한면 바알을 찾는 식이다. 

쾌락과 음란함을 추구하면서 아세상 신을 찾는 식이다. 

 

성전과 왕궁은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그 성전과 왕궁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는 돌봄 통치자이며 제사장역할을 하는 솔로몬이 하나님의 명령을 잘 따르느냐가 본질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가 본질이다. 

 

이것에 실패하면, 그들은 결국 성전과 왕궁에서 쫓겨날 것이다. 

시온산에서 쫓겨나 외국의 노예가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을 때, 그들이 에덴에서 쫓겨났듯이 말이다. 

게다가 성전이 훼파되고 왕궁이 파괴된다.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웃음거리와 한낱 소문으로 전락한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탄식할 것이다. 

솔로몬의 영광을 기억하던 사람들은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열왕기상이 편집될 시점에는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지 못했다. 

그분의 경고를 끝까지 주의깊게 살피지 못했다. 

 

두 번째 에덴이라고 불릴만한 예루살렘에서 그들은 쫓겨났다. 

하나님은 슬픈 마음을 가눌 길이 없으셨다. 

에덴에서의 실패가 반복된다. 

이 방법으로는 안된다. 

새로운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구별된 땅을 두어 그곳에서 세상 돌봄 통치하는 방식을 이제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성령님을 구별된 사람들에게 부어주시는 방법이다. 

끝까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 힘을 공급하신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솔로몬과 언약을 맺으신다. 

솔로몬의 기도 만큼이나 아름다운 언약의 내용이다. 

하나님의 눈길과 마음이 항상 이 곳에 있겠다는 그분의 약속은 참 아름답다. 

 

나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해 본다. 

끝까지 충성스럽게 섬기겠다고 약속했던 나의 모습도 기억해 본다. 

그날, 그 시를 기억하면 오늘도 살고 싶다. 

성실하게 충성스럽게… 


 

약속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의 기도를 들으셨고, 이제까지 신실하게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했던 약속의 기도로 기억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충성스럽게 섬기겠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저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겠습니다. 

성령님 저를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09월 27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지휘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다윗의 믹담]

 

1너희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말 정의를 말하느냐? 너희가 공정하게 사람을 재판하느냐?

2그렇지 않구나. 너희가 마음으로는 불의를 꾸미고, 손으로는 이 땅에서 폭력을 일삼고 있구나.

3악한 사람은 모태에서부터 곁길로 나아갔으며, 거짓말을 하는 자는 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빗나갔구나.

4그들은 독사처럼 독기가 서려, 귀를 틀어막은 귀머거리 살무사처럼,

5마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않는구나.

6하나님, 그들의 이빨을 그 입 안에서 부러뜨려 주십시오. 주님, 젊은 사자들의 송곳니를 부수어 주십시오.

7그들을 급류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해주십시오. 겨누는 화살이 꺾인 화살이 되게 해주십시오.

8움직일 때 녹아내리는 달팽이같이 되게 해주십시오. 달을 채우지 못한 미숙아가 죽어서 나와 햇빛을 못 보는 것같이 되게 해주십시오.

9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 생것과 불붙은 것이, 강한 바람에 휩쓸려 가게 해주십시오.

10의로운 사람이 악인이 당하는 보복을 목격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악인의 피로 그 발을 씻게 해주십시오.

11그래서 사람들이 "과연, 의인이 열매를 맺는구나! 과연, 이 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구나!" 하고 말하게 해주십시오.

 

 


 

지도자건 백성이건 정의, 공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다윗은 여러모로 인정받는 지도자였다. 

한 왕국의 왕이다. 

그가 가진 권한과 파워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일반 백성들이 보기에 다윗은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며, 그의 말 한 마디에 전쟁이 발발하기도 종식되기도 한다. 

그런 다윗이 보기에도 여전히 세상엔 정의가 흐트러져 있고, 공정이 무너져 있다. 

다윗은 어찌보면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다. 

정의와 공정을 말로 추구할 것이 아니라 실제 자신의 정책으로 혹은 재판으로 구현해 내야 하는 사람이다. 

지도자의 삶, 권력자의 삶이 그래야 한다. 

그런데 본문의 다윗은 마치 자신이 정의과 공정을 요청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의아하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실제 구현해야 할 입장에서, 정의와 공정이 더욱 눈에 들어왔을 수도 있겠다. 

자신의 말과 정책과 재판에서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려면, 그에 대한 감각이 예리해져야 한다. 

섬세해져야 한다. 좋은 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혜이며 분별력이다. 

 

불의한 자들, 독기가 가득한 자들, 거짓을 꾸미는 자들… 

이런 사람들을 분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의 의도를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고한 백성이 피해를 받지 않는다. 

공의와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불의한 자들에 대한 분별력이 더욱 높아져야 한다. 

이기적인 사람들, 자신을 위해 이웃을 위해하는 사람들, 폭력과 살인에 관대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빨리 분별하고 자신과 이웃을 보살피고, 공동체를 보호해야 한다. 

그러니 다윗의 노래에 이토록 정의와 공의에 대한 추구가 많은 것이다. 

 

31세의 누구는 6년간의 근무후 퇴직금으로 50억을 받았다고 한다. 

산재 위로금과 상여금이 포함된 금액이라고 한다. 

과연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공의로운 처사는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리적 폭력보다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 재정을 통한 불의이다. 

정의로운 노동과 공정한 배분이 쉽게 구현되지 않는다. 

돈이 돈을 낳지, 노동으로 돈을 벌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투기로 순진한 사람들의 평생 모은 재산을 앗아간다. 

지도자가 될 수록 더욱 더 정의과 공정에 예민해져야 한다. 

그러나 어느 사회건 지도자들이 그렇게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들도 자신과 이웃을 속이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러니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의와 공정에 예민해져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예민해 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도 어느 순간 스스로를 속이면서 정의과 공정으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의 시는 단순히 다윗 개인의 노래로 끝나지 않았다. 

시편의 시들은 대중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로 발전한 것이다. 

사사로운 개인의 습작시가 아니다. 

공동의 열망이 노래로 울림을 만든다. 

모두가 다 함께 정의과 공정을 부르짖는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한다. 우리 모두 정의로게 살자고, 의인으로 살자고 말이다. 

이 노래는 공동체의 윤리의식을 강화한다. 

 

그리고 그 정의과 공정의 절대 기준이며 절대적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공동의 결단만으로 될 것 같았으면 이미 거룩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그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야 불의한 자들의 민낯이 드러날 것이다. 그들의 사악한 행위가 천하에 밝혀질 것이다. 

거짓과 폭력과 불의와 기만으로 무장한 사람들을 상대하기란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다. 

공동체 전체가 함께 소리치며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세요. 

하나님의 기준, 그 공의로운 기준으로 판단해 주세요. 

주님, 악인이 벌을 받게 하시고 의인의 얼굴에 웃음을 허락하소서. 

이렇게 말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주님을 닮은 사람들이 더 많이 일어나게 해 주세요. 

정의와 공정에 대해 예민하게 깨어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정의로운 하나님을 부르고 정의로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해주세요. 

우리에겐 하나님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또한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 공동의 기도, 공동의 찬양을 들어 주세요. 

특히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불의한 특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게 해주세요. 

남북에 평화로운 왕래가 일어나게 하시고, 평화체제가 구축되게 하소서. 

모든 국민들의 열망을 주님께서 들어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북한의 주님들에게도 더 깊숙히 전달되도록 도와주세요. 

 

오늘 하루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모든 회의와 일정을 주께서 인도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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