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09일 금요일

 

여는 기도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1 예언자 엘리사가 예언자 수련생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너는 허리를 단단히 묶고, 손에 이 기름병을 들고, 길르앗의 라못으로 가거라.2 거기에 가면, 그 곳에서 님시의 손자이며 여호사밧의 아들인 예후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안에 들어가, 그의 동료들 사이에서 그를 불러내어 밀실로 데리고 들어가거라.3 그리고 기름병을 기울여 그의 머리에 부으며 ‘나 주가 말한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 하고 말하여라. 그렇게 말한 다음에 너는 문을 열고 속히 도망하여라. 지체해서는 안 된다.”

 

4 그리하여 예언자의 시종인 그 젊은이가 길르앗의 라못으로 갔다.5 그가 도착하였을 때에, 그 곳에는 군대의 장군들이 둘러앉아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장군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자 예후가 말하였다. “우리들 가운데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겁니까?” 그 시종이 말하였다. “바로 장군님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6 예후가 일어나서 집 안으로 들어가자, 예언자의 시종인 그 젊은이는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말하였다.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7 너는 네가 섬기는 상전 아합의 가문을 쳐라. 나는 내 종들인 예언자들의 피와 또 주님의 다른 종들의 모든 피를 이세벨에게 갚으려고 한다.8 나는 아합의 가문을 모두 다 멸망시킬 것이다. 그렇다. 아합에게 속한 사람은 매인 사람이건 놓인 사람이건 가릴 것 없이, 남자는 누구나 이스라엘 안에서 끊어 버릴 것이다.9 나는 아합의 가문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과 같이 만들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가문과 같이 만들 것이다.10 그리고 개들이 이스르엘 땅 안에서 이세벨을 뜯어 먹을 것이다. 그를 매장할 사람조차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난 뒤에 예언자의 시종인 그 젊은이는 문을 열고 도망하였다.

 

11 예후가 왕의 신하들이 있는 데로 나오자,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좋은 소식이었소? 그 미친 녀석이 장군께는 무슨 일로 왔었소?” 예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장군들께서도 그 사람이 누구고, 그가 쓸데없이 떠들고 간 말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을 것이라 믿소.”12 그러나 그들이 말하였다. “슬쩍 넘어가지 마시오. 우리에게 사실을 말해 주시오.” 예후가 대답하였다. “그의 말이, 주님께서 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어 세웠다고 말씀하시었다고 하였소.”13 그러자 그들은 황급히 일어나, 각자 자기의 옷을 벗어서, 섬돌 위 예후의 발 아래에 깔고, 나팔을 불며 “예후께서 임금님이 되셨다” 하고 외쳤다.

 

주석

1절. “너는 허리를 단단히 묶고”는 어떤 행동을 위해 준비하라는 것을 의미한다(IVP 성경주석)

3절. 예후에 대한 예언은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지시하신 명령이었고 아합 가문의 멸망은 엘리야가 했던 예언이었다(왕상 19:15-16; 21:20-28). 이 모든 것은 엘리사의 제자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엘리사의 시종

엘리사 선생님이 갑자기 부르셨다. 

뭔가 중대한 말씀을 하려는 듯, 입술은 굳게 닫혔고, 양쪽으로 살짝 늘어졌다. 

시종을 바라보는 눈빛은 맑고 깊었다. 

잘 들으라며, 미리 언질을 주셨다. 

이미 그의 손에는 기름병이 들려 있었고, 시종은 혹시 자신에게 부으려고 하는지 순간 의심했다. 

“이 기름병을 들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길르앗 라못은 전쟁이 그치지 않는 곳이었다. 

북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국경에 위치한 도시로 한동안 시리아의 점령 속에 있었지만 최근 요람(북이스라엘)과 아하시야(남유다)이 합공하여 시리아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만나라, 그를 밀실로 데리고 가서, 이 기름을 그의 머리에 부어라. 그리고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라고 말하여라”

시종은 다리가 풀렸다.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요람 왕은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왕의 휴양지였던 이스르엘에 머물고 있다. 

이스르엘 지역은 예전에 아합왕과 이세벨이 나봇으로부터 그의 포도원을 강제로 빼앗았던 곳이다. 

부상당한 왕을 두고 전장의 장군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라니, 이건 반역이었다. 

시종은 정신이 아득했다.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전장의 장군을 불러 내기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은 엘리사 선생님이 직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이 몰려왔고, 실제로 두려웠다. 

마지막 말이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그렇게 말한 다음에 너는 문을 열고 속히 도망하여라. 지체해서는 안 된다.”

왠지 생명 걸고 하라는 말을 들렸다. 

 

길르앗 라못으로 가는 내내 걱정이었다. 

기름병을 들고 가는 것 자체가 부담 100배였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미션이었다. 

그동안 선생님의 심부름을 실수없이 수행해 왔다. 

순종이라면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건 뭔가 결이 다른 심부름이었다. 

이렇게 중차대한 일을 시종에게 시켰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길르앗 라못에 도착하니 과연 전장터였다. 

곳곳에 전쟁의 흔적이 선명하다. 

나무들이 꺾여 있었고, 불에 그을린 자국도 분명했다. 

돌에 묻은 핏자국도 아직 그대로였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장군들이 모여 있는 지휘소가 어딘지 알려주었다.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몇번이나 증명해야 했다. 

 

장군들의 회의 장소에 들어가기가 몇번이나 주저되었다. 

하지만, 엘리사가 섬기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시종의 하나님이기도 했다. 

엘리사의 명령은 사람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용기를 내었다. 

과거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더 올라가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특히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담대함을 떠올렸다. 

엘리사 선생님의 굳은 입술과 단호한 말들을 기억해냈다. 

 

“장군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미 누가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인지 파악했다. 

그를 보며 말을 했지만, 그 자리에는 장군이 한 둘이 아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군사 회의 중에 낯선 사람의 침범을 용인하기 쉽지 않는 법이다. 

그럼에도 예후는 그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장군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조용한 곳으로 가 주시죠” 

낯선 젊은이의 요청은 무례했다. 

전투중인 장군을 혼자 불러낸다? 

신원 파악이 확실하지 않은 민간인 복장의 한 젊은이와 같이 둘만 있는다?? 

 

무기를 소지했는지는 이미 검색이 끝난 상황이었다. 

장군이 민간인 청년의 말에 겁을 낼 일은 아니었다. 

시종을 불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둘만 있는 공간에 접어들자, 시종은 엘리사의 표정을 따라했다. 

그리고 기름병의 기름을 장군에게 부었다. 

예후는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그 행동의 기이함과 갑작스러움에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시종의 말은 더 가관이었다. 

‘당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합니다. 아합의 왕가를 진멸하십시오. 이세벨은 개에게 물어 뜯길 겁니다.’

엘리사의 예언을 그대로 읊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말하느라 신경이 곤두섰다. 

예후 또한 그 말들을 들으면서 전율이 올랐다. 

하나님의 선택이 자신에게 온 것이다. 

 

시종은 부리나캐 달려 나갔다.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고 싶었다. 제발… 

시종은 그의 소임을 다했다. 

혹시 여기서 잡혀서 죽을 수도 있었다. 

요람의 신복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반역의 앞잡이인 이 시종을 가만 둘 리 만무하다. 

 

2. 왕이 된 예후 

다른 장군들은 갑자기 뛰쳐나와 빨리 사라져가는 시종을 보며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예후가 빨리 나오지 않았다면, 혹시라고 암살 시도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예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봤다. 

“좋은 소식이었소? 그 미친 녀석이 장군께는 무슨 일로 왔었소?” 

예후는 일단 시종의 말을 숨기고 싶었다. 

“장군들께서도 그 사람이 누구고, 그가 쓸데없이 떠들고 간 말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을 것이라 믿소.”

다른 장군들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전쟁의 중요한 정보였을 수도 있었다. 

전황을 뒤집을 핵심적인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예후가 심어 놓은 정보원이었을 수도 있다. 

“슬쩍 넘어가지 마시오. 우리에게 사실을 말해 주시오.” 

예후도 더는 피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주님께서 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어 세웠다고 말씀하시었다고 하였소.”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장군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젊은이가 엘리사의 시종이라고 말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아합과 이세벨의 강압 통치에 안그래도 진절머리가 난 상황이었다. 

예후 같은 장군이 왕이 된다면 그동안 전쟁터에서 생사를 함께 했던 자신들을 외면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후는 왕이 될만한 리더십과 성품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다들 공감하는 눈치였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갑옷을 벗고, 웃옷을 벗어 예후의 발 아래에 깔았다. 

병사들이 가지고 있었던 나팔을 가져다가 불면서 이렇게 외쳤다. 

“예후께서 임금님이 되셨다.”

새로운 왕조가 탄생했다. 

하나님이 새로운 왕을 주셨다.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통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삼으셨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사울 왕을 대체하도로 하셨다.

그 전통이 다시 살아났다. 

예후가 북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되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에 다시 개입하시기 시작하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람을 부르셔서 소명을 주시는 하나님, 

그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임을 기억합니다. 

부담되고, 불편하고, 피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당신이 부르신 것이 확실하다면, 용기를 내겠습니다. 

엘리사의 시종이 그랬던 것처럼 죽음을 마다않고 최선을 다해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그런 용기와 힘과 지혜를 공급해주세요. 

 

하나님의 개입을 간절히 구합니다. 

한국의 역사에 개입해주세요. 

세계의 전쟁 가운데 개입해주세요. 

평화의 시대가 오도록 이끌어 주소서.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한반도의 항국적인 평화의 땅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도록 인도해주세요. 

자신의 이익과 분노에 의해 움직이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움직이는 정치인들이 더 많아지도록 도와 주세요. 

 

설 연휴의 시작입니다. 

너무 풀어지지 않고, 제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해서, 가정과 가족을 섬기도록 이끌어 주세요. 

잘 쉬고, 잘 먹고, 잘 섬기는 하루 하루 되게 해 주세요. 

달리면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달릴 때 주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8유다의 아사 왕 제 이십육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디르사에서 두 해 동안 다스렸다.

9그러나 엘라의 신하이며 병거부대의 절반을 지휘하는 시므리 장군이, 엘라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 때에 엘라는, 디르사에 있는 아르사 궁내대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취해 있었는데,

10시므리가 들어가서, 엘라를 쳐죽였다. 유다의 아사 왕 제 이십칠년에, 시므리가 엘라를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11시므리는 왕위에 올라서, 바아사 가문에 딸린 사람은 모두 죽였는데, 바아사 가문의 남자는, 일가 친척이든지 친구이든지, 한 사람도 남겨 두지 않았다.

12시므리는, 주님께서 예후 예언자를 시키셔서 바아사에게 말씀하신 대로, 바아사 가문의 모든 사람을 멸망시켰다.

13이것은 바아사와 그의 아들 엘라가 지은 모든 죄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우상을 만들어서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분노를 샀다.

14엘라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다 기록되어 있다.

15유다의 아사 왕 제 이십칠년에, 시므리는 디르사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나, 그의 통치는 칠 일 만에 끝났다. 시므리가 엘라를 살해하고서 왕위를 차지할 그 무렵에,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에 속한 깁브돈을 치려고 포진하고 있었다.

16그러나 진을 치고 있던 군대는, 시므리가 반역하여 왕을 살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바로 그 진에서 그 날로 군사령관인 오므리 장군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

17오므리는 온 이스라엘을 이끌고 깁브돈으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포위하였다.

18이 때에 시므리는, 그 성읍이 함락될 것을 알고는, 왕궁의 요새로 들어가서, 그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불길 속으로 들어가서, 자기도 불에 타 죽었다.

19이것은 시므리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행을 하고,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가서,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한 그 죄 때문에 생긴 일이다.

20시므리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꾀한 모반에 관한 것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

21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둘로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라 가서 그를 왕으로 삼았고, 그 나머지는 오므리를 따랐다.

22그러나 오므리를 따르는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르는 백성보다 강하여서, 디브니는 살해되고, 오므리는 왕이 되었다.

23유다의 아사 왕 제 삼십일년에 오므리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열두 해 동안 다스렸는데, 여섯 해 동안은 디르사에서 다스렸다.

24그는 세멜에게서 은 두 달란트를 주고, 사마리아 산지를 사들였다. 그리고 그 산에다가 도성을 건설하였는데, 그 산의 소유자인 세멜의 이름을 따라서 그 도성의 이름을 사마리아라고 하였다.

25오므리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는데, 그 일의 악한 정도는 그의 이전에 있던 왕들보다 더 심하였다.

26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걸은 모든 길을 그대로 따랐다. 오므리는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하고, 또 우상을 만들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게 하였다.

27오므리가 한 나머지 행적과 그가 부린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28오므리는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서 사마리아에 묻히고, 그의 아들 아합이 그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었다.


반역이 반역을 낳고 그 반역이 또 반역을 낳는다. 

반역이 일상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반역을 꿈꾼다. 

왜냐하면 자기가 왕이 되고 싶어하니까 말이다. 

사람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자신이 왕이 되어 맘대로 하고 싶어한다. 

인간 본성이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미 왕을 달라는 12지파들에게 분명하게 경고하셨다. 

그 왕으로 인해 백성들은 고통을 당할 수 있다. 

 

북이스라엘은 그야말로 개판이다. 

몇 년 사이에 반란이 몇 번씩 일어난다. 

그 와중에 외부와의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전쟁 중에 나가있던 오므리는 반역의 소식을 듣고서 자신이 반란을 일으킨다. 

시므리에게 왕권을 넘기느니 자기가 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말씀을 읽다보니 이해가 안되는 구석이 있다. 

하나님은 바아사와 엘라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시므리를 사용하셨다. 

시므리는 7일간 통치를 했는데, 바아사와 엘라의 죄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그 시므리를 오므리를 통해 심판하셨다. 

그런데 오므리에 대한 평가는 그전 왕들보다 더 심각한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여러움이다. 

선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심판하지 않으시고 

악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심판하신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도 그렇지 않은가!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도 그렇지 않는가!

과연 도덕적 우위를 논할 수 있는 나라들인가? 

그저 힘만 강한 나라들 아닌가.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은 어떤 나라, 어떤 개인도 사용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선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도 일하시고, 악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일하신다. 

특히 하나님의 통치에서 중요한 다섯 가지 요소가 있는데, 

통치의 방향인 에덴 비전의 회복, 그리고 통치의 방식인 부르심, 은혜, 약속, 심판이 바로 그것이다. 

그 가운데 부르심과 은혜, 약속은 믿음의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통치 방식이라면, 

심판은 둘 다를 가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통치에 반기를 든 사람들과 조직들을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든, 악한 사람들을 통해서든 심판하신다. 그것이 성경의 역사다. 특히 구약은 이런 하나님의 통치를 역사를 통해 보여준다. 

북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했다. 

그들은 여로보암의 죄, 즉 자신보다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죄짓게 했기 때문이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현실적인 심판, 즉각적인 심판의 결정도 내리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특히 하나님의 분노가 종종 느껴진다. 

좋은 왕도 오래가지 못하고, 못된 왕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의 죄악이 하나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 

하나님은 회복을 위해 선택된 민족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모습을 보며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하시다. 

그 고통과 슬픔이 예언자들을 통해 드러난다. 

예레미야가 애가를 지은 이유가 있다. 

수많은 예언자들이 슬퍼하며 재에 않아 울어버리는 일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최근의 하나님은 슬퍼하시는 분으로 느껴진다. 

그분은 수많은 딜레마 속에 결국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시는 분이셨다. 

슬픔의 끝은 자신을 바치는 것이다.

오랜 연민은 결국 우주적 결정을 이끈다. 

슬퍼하시는 하나님… 

슬픔의 하나님… 

숱한 인간사를 보면서 그분의 심장은 울고 있다.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들이 헤메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아… 하나님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들일 수 있는가? 

 

오늘은 그분의 슬픔에 나도 젖는다. 


슬퍼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슬픔에 동참합니다. 

당신 백성을 향한 기대가 차츰 고통으로 바뀝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눈물로 가득하십니다. 

예레미야는 당신의 슬픔을 대변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깊은 연민에 잠깁니다. 

역사의 단편만 봐도 이렇게 슬픈데, 모든 역사를 아시는 당신의 눈에는 얼마나 슬플까요. 

주님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 슬픔에 저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다만,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까지 몰아가고 싶진 않습니다. 

당신도 저의 한계를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하루 주님 옆에 머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8 11 수요일

여는 기도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십시오. 주님의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1 나는 성전에서 음성이 울려오는 것을 들었는데, 음성이 일곱 천사들에게 이르기를 "가서,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일곱 대접을 땅에 쏟아라" 하였습니다.

2 그래서 첫째 천사가 나가서 대접을 땅에 쏟으니,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짐승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에게 아주 나쁜 종기 생겼습니다.

3 둘째 천사가 대접을 바다에 쏟으니, 바닷물이 죽은 사람의 처럼 되고, 바다에 있는 모든 생물이 죽었습니다.

4 셋째 천사가 대접을 강과 샘물에 쏟으니, 물이 되었습니다.

5 내가 들으니, 물을 주관하는 천사가 말하기를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던 거룩하신 주님, 이렇게 심판하셨으니, 주님은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6 그들은 성도들과 예언자들의 피를 흘리게 하였으므로, 주님께서 그들에게 피를 주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되어야 마땅합니다" 하였습니다.

7 내가 들으니, 제단에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전능하신 , 주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습니다" 하는 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8 넷째 천사가 대접을 해에다 쏟았습니다. 해는 불로 사람을 태우라 허락을 받았습니다.

9 그래서 사람들은 몹시 뜨거운 열에 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재앙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였고,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10 다섯째 천사가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짐승의 나라가 어두워지고, 사람들은 괴로움을 이겨서 자기들의 혀를 깨물었습니다.

11 그들은 아픔과 부스럼 때문에, 하늘의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행동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주석
일곱 대접(1): 나팔 재앙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심판의 비유적 표현은 구약의 출애굽기에 나오는 애굽에 내린 심판에서 특별히 빌려온 것이다. 그것은 요한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예전의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억압하는 자가 항복하고 그들이 해방될 일어날 이러한 심판으로부터 보호받으리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IVP 성경배경주석).

 

명령에 따라 천사들이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일곱 대접을 땅에 쏟기 시작합니다(1절). 처음 다섯 대접이 땅, 바다, 강, 해, 짐승의 왕좌에 쏟아지고, 애굽에서 일어난 재앙과 유사한 재앙들이 일어납니다(2-4; 8-10절). 이 재앙들이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에게 고통을 줍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행동을 회개하지 않습니다(9, 11절). 그리고 천사와 제단에서 나온 소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다고 고백합니다(5-7절).

 

애굽에서 일어난 재앙을 떠올리게 하는 일곱 대접의 심판은, 잠시 동안 이 땅에서 권세를 휘두르던 짐승의 세력들을 꺾어 놓습니다. 하나님의 이 엄중한 심판은, 정의를 요청하던 순교자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6절).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의인과 악인 모두에게 공의롭습니다. 오늘 하루, 이 주님의 의로우심을 노래합시다.

 

——

 

대접 재앙의시작

 

드디어 대접 재앙이 쏟아부어진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사단을 따르던 자들에게 대접의 재앙이 쏟아진다. 

대접의 재앙은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10가지 재앙과 매우 유사하다. 

바다와 강물이 피로 변한다. 

해가 불타 오른다. 

어둠이 가득하다. 

재앙 속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회개하지 않는다. 

완악함이 극에 달한다. 

자신을 돌아보기 보다는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인간의 도덕적 선택이 그동안 만들어왔던 수많은 역사의 질곡을 마치 자연히 일어난 , 마치 하나님의 잘못인양, 마치 역사의 순리가 그러하다는 , 회피한다. 

어찌 모든 원인이 자기에게만 있거나, 혹은 외부에게만 있겠는가! 

한쪽으로만 치우친 원인 찾기는 결국 마음의 완악함만 쌓이게 만든다. 

하나님의 재앙은 그들의 반역 때문임을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반역의 시작과 역사적 전환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께 반역의 죄를 저질렀다. 

하나님께서 하지말라는 바로 그것을 행했다. 

물론 번의 반역 행위가 인류에 미친 영향이 너무 지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인간을 대표하는 사람, 지도자의 반역이 인류 사회 전체에 미친 악영향이 어머어마하다. 

아담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대리통치자였다. 그래서 더욱 그랬던 같다. 

감사하게도 예수님은 그와 달랐다. 자발적으로 순종하셨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셨다. 

그것이 구원의 길을 여는 새로운 종족의 탄생을 알리는 길이었다. 

예수를 따른다는 말은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순종하겠다는 말이다. 

더이상 아담의 계보를 따르지 않고 예수의 계보를 따른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 나도 걸어가는 것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드디어 하나님의 공의로운 개입이 전면적으로 드러난다. 

사단을 따르던, 마음에 자기 확신으로 가득차 회개를 모르던 자들은 하나님의 재앙으로 고통 속에 죽어간다.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결코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간의 자신들의 삶에 대해 확신에 차있다. 

하나님은 참으로 공의롭게 개입하신다. 

 

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에서 "그렇습니다. 주 하나님, 전능하신 분, 주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습니다" 하는 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공의로운 심판에 목말라한다.   

모두들 자신이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잘못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있다고 항변한다. 

진실을 밝히기가 어렵다. 

모든 증인들이 양심껏 증언하는 것이 아니다. 

속고 속이는 싸움이 계속된다. 

서로 자신들의 머리가 좋다고 여기면서 상대방을 속인다. 

그렇게 재판은 뒤틀어진다. 

검사도 변호사도 자기에게 유리한 증언과 증거만 가지고 판결을 기다린다. 

공의와 정의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하나님은 진실을 아신다. 마음 생각까지도 아신다. 뇌파의 흐름을 아시고, 세포간에 전달된 정보들도 아신다. 

그분만이 가장 진실하고 공의롭고 공명정대한 심판과 재판을 여실 있는 분이시다. 

그분만이 일을 내실 있다. 

우주는 하나님의 신비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준다.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신비로운 투성이가 바로 우주다. 

그러하기에 과학자는 신앙인이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계속 보기 때문이다. 

우주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지혜로 가장 공의롭게 심판과 재판을 하신다. 

 

 

마음의 완악함과 싸우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고집을 피우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포기하고 싶지 않고, 지고 싶지 않고, 더욱 유명해지고 인기가 있어지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사람들의 인정에 더욱 매달리기도 한다. 

설교 편에 대해 칭찬을 듣고 싶어진다. 

설교듣는 사람들이 변화되길 소망한다. 

그들이 다가와 칭찬해주길 바란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하나님이 곳에 내가 서게 된다.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의 자리에 내가 있으려고 한다. 

과연 나는 하나님께 오롯이 모든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가 묻게 된다. 

나의 설교 퍼포먼스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모습이 제대로 전달되고, 그분의 메시지가 제대로 선포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리에 서면 안된다. 

마음의 고집과 싸워야 한다. 

주님께 다시 자발적으로 순종하고자 한다. 

그분의 구원의 역사를 되짚어보며 구원의 역사에 기뻐하면서 자발적으로 순종하고자 한다. 

그게 신앙인의 삶이다.   

 

 

——

주님, 마음에 여전히 남아있는 완악함이 있다면 버리게 해주세요. 

역사의 주인되시고, 인류 구원의 희망과 구체적인 실천을 행하셨던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 덕분에 제가 있었습니다. 

주님 덕분에 수많은 생명이 삶을 얻었습니다. 

인류가 살아갈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반역한 인류에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에 더욱 자발적으로 순종하며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의 말씀을 더욱 기뻐하면 살아가도록 도와주세요. 

 

오늘도 주님께 맡깁니다. 

모든 만남에서 주님의 인도와 사랑과 평화를 느끼도록 도우시고, 

하나님의 손길과 흔적을 경험하도록 인도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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