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06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소서.

7 엘리사가 다마스쿠스에 갔을 때에 시리아 왕 벤하닷은 병이 들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왕에게 하나님의 사람이 이 곳에 와 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8 왕이 하사엘에게 말하였다. “예물을 가지고 가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시오. 그리고 그에게, 내가 이 병에서 회복될 수 있겠는지를, 주님께 물어 보도록 부탁을 드려 주시오.”
9 하사엘은 다마스쿠스에서 제일 좋은 온갖 예물을 낙타 마흔 마리에 가득 싣고, 몸소 예를 갖추어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서서 말하였다. “예언자님의 아들 같은 시리아 왕 벤하닷이 나를 예언자님에게 보냈습니다. 왕은, 자신이 이 병에서 회복되겠는가를 여쭈어 보라고 하였습니다.”10 엘리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가서, 왕에게는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시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내게 계시해 주셨소.”
11 그런 다음에 하나님의 사람은, 하사엘이 부끄러워 민망할 정도로 얼굴을 쳐다 보다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12 그러자 하사엘이 “예언자님, 왜 우십니까?” 하고 물었다. 엘리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그대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어떤 악한 일을 할지를 알기 때문이오. 그대는 이스라엘 자손의 요새에 불을 지를 것이고, 젊은이들을 칼로 살해하며, 어린 아이들을 메어쳐 죽일 것이고, 임신한 여인의 배를 가를 것이오.”13 하사엘이 물었다. “그러나 개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엘리사가 말하였다. “주님께서, 그대가 시리아 왕이 될 것을 나에게 계시하여 주셨소.”
14 그는 엘리사를 떠나서 왕에게로 돌아갔다. 벤하닷 왕이 그에게 물었다. “엘리사가 그대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소?” 그가 대답하였다. “엘리사는, 왕께서 틀림없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15 그 다음날, 하사엘은 담요를 물에 적셔서 벤하닷의 얼굴을 덮어, 그를 죽였다.

주석
12절. 왕상 19:17-18을 보면 하사엘은 이스라엘로부터 바알 숭배를 제거하는 역할을 감당하도록 예견 받았다. 그러나 엘리사의 예언에서는 시리아의 압제가 강조되고 있다(IVP 성경주석).
13절. 왕상 19:15를 보면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하사엘을 시리아 왕으로 기름 부으라고 지시하셨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뻔뻔한 벤하닷 
시리아 왕도 참 뻔뻔하다. 
북이스라엘을 침공하고 약탈하고 성읍을 공격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벤하닷 왕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예언자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 
엘리사가 유명해지긴 했나보다. 
엘리사 덕분에 하나님의 이름도 높아졌다. 
엘리사의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래서 시리아 왕도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했던 것이다. 
낙타 40마리에 각종 선물과 예물을 실었다. 
엄청난 양이다. 
목숨 앞에서는 적국의 예언자에게도 도움을 구한다. 
목숨 앞에서는 자존심도 버리고, 뻔뻔하게 구걸하게 된다. 

자신의 생명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되지만, 때로 그걸 넘어서는 결정과 결기를 보여 줄 필요도 있다. 
마태복음 10:39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하고 계신다. 
일반적으로는 목숨이 최상의 가치다. 
그러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다. 
우주의 생명을 공급하시는 하나님과 그의 통치는 영원하다. 
영원한 그분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수도 있다. 
신앙의 수많은 순교자들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 

시리와 왕의 뻔뻔함과 억척스러움에 한 편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충분히 누린 분이 적국의 예언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처럼 느껴진다. 

2. 피할 수 없는 슬픔
엘리사는 큰 슬픔에 빠진다. 
벤하닷 왕의 명령을 받아 찾아온 하사엘이 결국 시리아의 왕의 되어 북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무서운 전쟁이 시작될 것이며, 하사엘은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일 것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하나님의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다. 
아합과 이세벨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심판이다. 
하나님과 바알을 섞어 버렸다. 
공의로운 하나님의 통치를 권력자 중심의 폭압 통치로 바꾸었다. 
왕과 왕비가 원하면 어떤 법도 고칠 수 있고, 어길 수 있었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했다. 
종교와 사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서 너무 멀리 멀어졌다. 
하나님은 이들의 죄악을 심판하시기로 했고, 그래서 시리아의 하사엘을 왕으로 삼으시고 전쟁을 주도하게 하신다. 
이스라엘이라도 그들의 죄악을 그냥 방치하시지는 않는다.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는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 
엘리사는 그 미래를 보았기에 눈물을 흘렸다. 
그 미래는 과거 죄악의 결과이기에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과거라고 해서 현재 북이스라엘이 아합의 죄에서 벗어났는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그들은 여로보암과 죄와 아합의 죄를 따르고 있었다. 
철저한 회개와 회심이 없었다. 
그러니 그 심판의 예언이 계속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고, 하나님의 심판은 마지막으로 미뤄졌다. 
하나님이 지금 구약시대처럼 심판하시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 사람들을 계속 초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 초대에 응해 변화되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초대에 감사하면 된다. 
나의 선조의 죄와 내가 지은 죄로 인해 심판받을 것을 두려워해 숨을 필요가 없다. 
심판은 유예되었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하셨다. 
은혜와 자비가 많으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보여준 사랑을 기반으로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속 초대하신다. 
이것이 복음이다. 

과거에는 힘있고 위대하고 전쟁에 능하고 불의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우주 유일의 참 신 하나님으로 등장하셨다. 
그것이 복음이었다. 
연약하여 항상 죽음의 위협 속에 놓여 있던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강력한 하나님이 복음이었다. 
지금도 연약한 사람들에게 강력하고 위대한 하나님이 복음이다. 
그러나 진정한 복음은 그 위대한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셔서 죽기까지 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엄청한 사랑이 죄를 짓는 수많은 사람들을 참고 기다리고 인내하게 한다. 
당신이 하신 약속을 끝까지 지킬 힘은 그 위대한 사랑에 있다. 

엘리사는 죄악으로 멸망해가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울었다. 
우리는 여전히 참고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사람들을 보며 울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진리를 말할 수 없다고들 한다. 
모두가 서로 자신의 경험과 주관이 옳다고 한다. 
객관적인 진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기에 우주적 유일신 하나님도 자신의 경험과 이성, 생각과 감정 아래 둔다. 
정말 그런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개인도 어쩔 수 없이 시대의 영향을 받는 내러티브의 산물이다. 
러프하게 보면 시대 사조에 따라 사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그것조차도 상대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진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주장도 상대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무시할 필요도 없다. 
단지 우리가 정말 봐야 하는 것은 ‘어떤 내러티브가 사람과 세상과 자연과 우주에 더 유익이 되고 지속가능하게 하고 풍요롭게 할 것인가’이다. 

피할 수 없는 슬픈 속에 있는 현대 그리스도인을 떠올리며, 
주님의 긍휼을 구한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오늘도 주님의 슬픔을 느낍니다. 
피할 수 없는 슬픔을 공감합니다. 
참고 인내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끝까지 무시하고 공격하고 모독하는 자들에 대한 슬픔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소서. 
당신의 사랑으로 그들의 삶이 새롭게 되게 하소서. 
당신의 은혜로 우리의 삶이 변화되게 하소서. 

피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도 소망을 발견하기 원합니다. 
당신께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도하기 원합니다. 
더욱 아름다고, 선하고, 참된 것을 추구하는 자들이 많아지게 하소서.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고 주님의 뜻을 우선하는 자들이 더 많아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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