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8 10 화요일

여는 기도

내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1 그리고 나는 하늘에서 크고도 놀라운 다른 표징을 하나 보았습니다. 일곱 천사가 일곱 재난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지막 재난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것으로 끝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2 나는 불이 섞인 유리 바다와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유리 바다 위에는 짐승과 짐승 우상과 이름을 상징하는 숫자를 이긴 사람이, 하나님의 거문고를 들고 있었습니다.

3 그들은 하나님의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 부르고 있었습니다. " 하나님, 전능하신 ,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만민의 왕이신 주님, 주님의 길은 의롭고도 참되십니다.

4 주님, 누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주님만이 홀로 거룩하십니다. 모든 민족이 주님 앞으로 와서 경배할 입니다. 주님의 정의로운 행동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5 뒤에 내가 보니, 하늘에 있는 증거의 장소인 장막 성전이 열리고,

6 성전으로부터 일곱 천사가 일곱 재난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들은 깨끗하고 빛나는 모시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있었습니다.

7 생물 가운데 하나가,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계신 나님의 진노를 가득 채운 대접 일곱 일곱 천사에게 주었습니다.

8 성전이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에서 나오는 연기로 가득 차게 되니, 일곱 천사의 일곱 재난이 끝나기까지는, 아무도 들어갈 없었습니다.

 

주석
3절: 이 노래는 “모세의 노래”로서, 홍해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부른 구원의 노래를 암시한다(출 15:1-18 참조). 따라서 도입부(2절)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야기에 상응하는 요소를 담고 있다. 곧 유리 바다는 홍해에 상응하고, 바로와 이집트인은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에 상응한다(IVP 성경비평주석).

 

이제 마지막 재난, 일곱 대접의 재앙이 시작됩니다(1절). 이 재난의 시작을 알리는 모습(1절)과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자들의 모습이 대비됩니다(3절). 짐승의 공격을 이겨낸 이들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찬양합니다(3-4절). 이제 마지막 재난이 시작되고 하나님의 공의가 온 세상에 세워질 것입니다.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모습은 출애굽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애굽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과 홍해 사건은 애굽에는 두려움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그분의 놀라운 구원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마지막 심판 역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마침내 이 땅의 불의를 심판하시고 그분의 정의를 회복하실 우리 주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

 

선뜻 묵상을 글로 옮기기가 주저된다. 

말씀의 그림 아니라 나의 삶에 주어진 수많은 그림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말씀 자체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요한계시록이 워낙에 추상적이고 뜬금없는 그림들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욱 그런 같다. 

역사서의 경우는 그래도 납득이 되고 개연성이 있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요한계시록은 그렇지가 않다. 전혀 개연성없는 꿈과 같은 장면이 불쑥불쑥 튀어 오르기 때문이다. 

 

일곱 천사가 일곱 재난을 일으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을 받아 죄인들과 악인들에게 퍼부을 작정이다. 

일곱 천사에 대한 하나님의 특명이 떨어지고 실행되기 전에, 

사단의 세력을 이긴 자들의 노래가 들린다. 

이긴 자들은 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고 있다. 

주님만이 홀로 영광받으실 분이시다. 모든 민족이 주님 앞으로 와서 경배할 것이다. 

그동안은 주님의 은혜에 대해 노래를 했다면, 오늘은 주님의 정의로운 행동에 대해 찬양하고 있다. 

이제 오랫동안 쌓여 있던 인간 재판의 불공정함이 철퇴를 맞는 날이다. 

사단과 그의 졸개들, 그리고 수많은 인간 팔로워들은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에 넘겨질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반역을 결국에 정의롭게 판단하신다.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내려진다.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고 인내하고 기회를 주셨지만, 결국 거부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이 쏟아진다. 

수많은 재앙이 그들에게 닥친다. 

수많은 죽음이 그들 앞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요한계시록의 그림을 싫어한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 꺼려한다. 

괜히 분명하지도 않는 해석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겁주는 같기도 하고, 

그걸 빌미로 종교사업한다는 외부의 비난에 직면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제일 편하고 좋은 이야기들로 채우려는 욕망에 굴복한다. 

가르치는 자들이 범하는 어리석음 하나다. 

성경 전체에서 다루는 모든 주제를 가능하면 모두 다루어야 한다. 

신앙 인격의 형성은 성경의 모든 주제를 자기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여러번의 믹싱과정을 통해 내적으로 통합할 점점 온전함으로 나아간다. 

한가지 주제만으로 신앙 인격이 성장하지는 않는다. 

성경의 주제들은 마치 섞이지 않는 다른 재질과 물성들을 지닌 같다. 

믹서기에 넣어 주제들이 서로 어울리도록 갈고 흔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믹싱되는지 과정을 보는 것도 필요하다. 

내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노력없이 한두가지 주제에 꽂혀 그대로 밀어 부친다면, 

약간 괴기스러운 존재의 신앙 인격이 등장한다. 

자기부인이 사라진 사라진 신앙 인격은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의 가면 혹은 옷을 입고 길거리를 활보한다. 

어울림과 자연스러움이 사라진 신앙의 옷은 개성을 넘어 크로테스크 쪽으로 발전한다. 

대중과의 접점을 잃어버리고, 자기만의 삶에 틀어박혀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는 히키코모리같은 모습으로 전락한다.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주제가 비록 어렵고 거부하고 싶더라도 

우리의 신앙 인격의 믹서기 안에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 

씨름해야 한다. 

그분의 정의과 심판은 어떻게 다른 성경의 주제들과 어울리는지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신앙이 하나님과의 관계이기에 기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그분에 대한 이해이기에 상당히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그걸 오늘도 인내하며 그분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요한이 보았던 비전과 그림을 오늘도 나의 신앙 인격의 믹서기 안으로 밀어 넣는다. 

더욱 온전해질 모습으로 기대하면서 

더욱 예수님을 닮을 자아가 되길 기대하면서 

 

——

예수님, 어찌보면 이미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이 쏟아부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숱한 전쟁과 기아와 기후 재앙이 끊이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못먹어서 죽고, 병들어 죽고, 싸우다 죽습니다. 

참혹한 전쟁을 멈출 능력이 인류에게 없습니다. 

1, 2 세계대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미사일이 떨어지고, 포탄이 날아다닙니다. 

비행기가 폭탄을 투하하고, 독가스가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입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무작정 자연 현상에 대입하는 우를 범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진노가 없다고 단정짓기도 주저됩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시간을 제가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든, 인간의 잘못으로 인한 결과이든 간에 지금 세계는 재앙적 환경을로 치닫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를 구원해주세요. 

우리를 구출해주세요. 

 

인류를 버리지 마시고, 주님의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건져주세요. 

당신의 나라를 완성하시고, 예수님의 통치를 세상이 온전히 인정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주님의 적극적인 개입을 간청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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