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07일 수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16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 오년에 여호사밧이 아직도 유다의 왕일 때에,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다스리기 시작하였다.17 그는 서른두 살에 왕이 되어, 여덟 해 동안 예루살렘에서 다스렸다.18 그는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기 때문에, 아합 가문이 한 대로, 이스라엘 왕들이 간 길을 갔다. 이와 같이 하여, 그는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19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기의 종 다윗을 생각하셔서 유다를 멸망시키려고는 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이미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서 왕조의 등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20 여호람이 다스린 시대에, 에돔이 유다의 통치에 반기를 들고 자기들의 왕을 따로 세웠다.21 그래서 여호람은 모든 병거를 출동시켜 사일로 건너갔다가, 그만 에돔 군대에게 포위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여호람은 병거대장들과 함께, 밤에 에돔 군대의 포위망을 뚫고 빠져 나왔다. 군인들은 모두 흩어져 각자의 집으로 갔다.22 이와 같이 에돔은 유다에 반역하여 그 지배를 벗어나 오늘날까지 이르렀고, 그 때에 립나 역시 반역을 일으켰다.23 여호람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24 여호람이 죽어, 그의 조상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었다.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주석

립나(22절). 블레셋과 유다의 국경 부근에 이었던 것으로 보아 블레셋의 도시로 추정한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아합의 딸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동족이다. 

서로 반목했을 때도 있었지만, 협력할 때도 있었다.

지난 번 모압을 치러 올라갈 때도 유다와 이스라엘은 합공을 펼쳤다. 

이번에는 유다의 새로운 왕 여호람이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다. 

혼인을 통해 남북 왕조의 결속을 다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북이스라엘의 죄악이 극에 달했을 때, 지대한 영향을 준 사람이 바로 아합의 부인인 이세벨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아합의 딸을 유다의 왕비로 맞이하고 있다. 

왜 하필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아합 가문이 행한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북이스라엘에게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엘리야와 엘리사가 예언했던 그 많은 내용을 남유다 왕실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이방신 바알을 왕실에 들여와 북이스라엘을 온통 혼합주의 신앙으로 바꾸었던 이세벨의 영향을 우려하는 신하가 전혀 없었단 말인가? 

이러니 유다 땅에도 바알 신앙이 유입되고 만다. 

유다 왕 여호람은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아 북이스라엘의 죄악을 따라하게 된다. 

 

이 당시 결혼은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 실행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고려와 정략에 의해 맺어진다. 

아합의 딸을 통해 북이스라엘과 더 공고한 관계를 맺으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겠다. 

그러나 정치를 생각하기 전에, 유다의 왕과 신하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구했어야 했다. 

유다는 일반적인 나라가 아니다. 

전 세계를 향한 제사장 나라가 되기를 하나님이 원하셨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나라가 되기를 원하셨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이방신을 들여왔던 아합 가문의 딸을 왕비를 맞이한 것이다. 

 

2. 약속

하나님은 유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보류하신다. 

그 이유에 대해 성경 저자는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의 약속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약속을 하셨고, 그 약속에 매여 계신다. 

약속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자기 제한의 결정이다. 

다윗의 왕가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통치자, 메시아가 나올 것을 약속하였다. 

다윗의 왕가를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다윗의 자손을 통해 인류의 구원자를 내시겠다는 당신의 계획은 독백이 아니라 구체적인 약속과 확언으로 세상 밖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반역한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할 때도 하나님의 약속을 언급했다. 

하나님은 당신이 공언한 약속에 대해 끝까지 지키시겠다는 의지가 있으시다. 

그분의 약속과 신실함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여전히 믿고 신뢰한다. 

약속은 선물이고, 약속은 은혜를 낳는다. 

약속에 기대어 우리는 대범한 제안을 할 수 있다. 

약속을 악용하지만 않으면 된다. 

부족함과 연약함에 대해서는 약속에 기대어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에 기반해서 설립되고 운영되고 유지된다. 

기업이나 국가의 운영 원리과 똑같을 수는 없다. 

유사한 원리도 있고, 적용가능한 방식도 있겠으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다. 

머릿돌 되신 예수님 위에 교회는 세워지고, 함께 하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 위에 교회는 건재하다. 

친목 모임이 아니다. 

스터디 카페도 아니다. 

그분의 약속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교회다. 

 

개인에게도 약속을 주실 수 있다. 

소명이 그렇다. 

한 개인을 불러 주시고 그 소명으로 끝까지 살아가도록 이끄신다. 

그 약속이 있기에 소명을 품는 자는 절망하지 않는다. 

약속을 믿고 정진한다. 

그 약속을 자주 상기하는 것이 영성에 큰 도움을 준다. 

 

[오늘의 기도]

약속을 주시고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 

예수님이 당신의 약속의 성취임을 믿습니다. 

그 약속을 자주 상기하게 해 주세요. 

그리하여 중요한 의사 결정에 있어서 경제적, 정치적 논리가 아니라, 약속에 기반한 논리로 이끌어 주소서. 

제게 주신 약속을 기억합니다. 

한 평생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저의 약속도 기억합니다. 

저의 약속은 흔들리지만, 주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일에 주님께서 주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 일에 사용하여 주소서. 

오늘도 만나는 사람, 기억나는 사람들을 회복 시키는 일에 사용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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