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13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소서.

 

27 유다의 아하시야 왕은 이것을 보고 벳하간으로 가는 길로 도망하였으나, 예후가 그의 뒤를 추적하며 “저 자도 죽여라” 하고 외치니, 이블르암 부근 구르 오르막길에서 예후의 부하들이, 병거에 타고 있는 아하시야를 찔러 상처를 입혔다. 그는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그 곳에서 죽었다.28 그의 부하들이 그를 병거에 실어 예루살렘으로 운반하고, 그를 ‘다윗 성’에 있는 그의 조상들의 묘지에 함께 장사지냈다.

29 아합의 아들 요람 왕 제 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30 예후가 이스르엘에 이르렀을 때에, 이세벨이 이 소식을 듣고, 눈 화장을 하고 머리를 아름답게 꾸미고는, 창문으로 내려다보았다.31 예후가 문 안으로 들어오자, 이세벨이 소리쳤다. “제 주인을 살해한 시므리 같은 자야, 그게 평화냐?”32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문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내 편이 될 사람이 누구냐? 누가 내 편이냐?” 그러자 두세 명의 내관이 그를 내려다보았다.33 예후가 그들에게 명령하였다. “그 여자를 아래로 내던져라.” 그들이 그 여자를 아래로 내던지니, 피가 벽과 말에게까지 튀었다. 예후가 탄 말이 그 여자의 주검을 밟고 지나갔다.34 예후가 궁으로 들어가서, 먹고 마시다가 말하였다. “이제 저 저주받은 여자를 찾아다가 장사를 지내 주어라. 그래도 그 여자는 왕의 딸이었다.”35 그들이 그 여자를 장사지내 주려고 찾아 나섰으나, 그 여자의 해골과 손발밖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36 그들이 돌아와서 그에게 그렇게 보고하니, 그가 말하였다. “주님께서, 주님의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시켜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스르엘의 밭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주검을 뜯어 먹을 것이며,37 이세벨의 주검은 이스르엘에 있는 밭의 거름처럼 될 것이므로, 이것을 보고 이세벨이라고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셨는데, 그대로 되었다.”

 

NIV 

Jezebel's body will be like refuse on the ground in the plot at Jezreel, so that no one will be able to say, ‘This is Jezebel.’”(37절)

 

주석

벳하간-구르/이블라암-므깃도(27절). 아하시야는 이스르엘에서 남쪽으로 간다. 이것은 유다로 가는 방향이지만 또한 그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북 왕국 수도 사마리아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IVP 성경배경주석).

30절. 이세벨의 단장은 이 세상을 품위 있게 떠나기를 원하는 행위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예후 장군이 아합 왕가에 반기를 들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요람은 죽었고, 이제 예후의 군대가 이스르엘로 말 고삐를 당겼다는 소문도 순식간이었다. 

왕의 겨울 별장에 머물던 이세벨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자신의 사위, 유다의 아하시야 왕도 죽었다는 소식이 돌았다. 

절망적이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위세등등했던 자신의 말은 더는 위력이 없었다.

곁에 있는 시종 정도만 자신의 말을 들었지, 대부분의 신하들은 이미 겁에 질려 도망했거나 예후 편에 서 버렸다. 

이대로 예후가 성에 도착하게 되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자신의 인생이 흘러간다. 

죽음을 앞에 두니, 화려했던 자신의 인생 뒤편의 후회와 회한이 몰려온다. 

북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던 숱한 예언자들도 떠오른다. 

엘리야를 비롯하여 엘리사와 그의 예언자 학교에서 배출했던 수많은 예언자들이 자신의 정권과 우상 숭배와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했던 기억이 소환된다. 

그들을 억압했고 대신 바알 제사장들을 적극 기용하고 중용했다. 

바알 제사장들이 곳곳에서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해 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 반역이 현실화 된 상황에서 아무도 이세벨 편에 서지 않는다. 

모두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났다. 

이세벨은 외로움을 느꼈다. 

이제는 죽음을 준비하는 일만 남았다. 

그래도 왕가의 딸이며, 한 나라의 국모인데, 우아하고 고상하게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위세등등했던 지난 날의 위엄을 놓고 볼 때, 최소한 죽음 앞에 초라해지고 싶지 않았다. 

화장을 하고, 머리를 아름답게 올리고, 가장 좋은 옷을 입었다. 

치장하는 모든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매번 하던 일인데, 오늘따라 더디게 가다가 또 갑자기 시간이 빨리 간다. 

심장의 박동이 빨라졌다 느려졌다를 반복한다. 

바알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 

아무런 대답이 없다. 

 

예후가 도착했다. 

성안 왕궁 창문을 통해 익숙한 얼굴 예후를 내려다 본다. 

“이게 평화냐?” 

꾸짖듯, 가능한 위엄있게 소리쳐 본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왕비의 엄위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떨리는 음성을 숨길 수는 없었다. 

남아 있던 시종들도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이다. 

 

예후가 말했다. 

“내 편이 될 사람이 누군가? 누가 내 편인가?”
쩌렁쩌렁 울리는 예후의 말 소리에 창문마다 손을 들고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묵숨이라도 부지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저 여자를 창밖으로 내던져라”

예후의 명령에 이세벨의 내관과 시종들이 달려든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당당하게 죽고 싶었는데, 내관과 시종들의 호위를 받으며, 반역자의 칼에 당당하게 목을 내밀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소리치며 발악해보지만, 이미 몸은 반쯤 떠올랐다. 

그리고 허우적거리는 순간, 몸은 내동댕이 쳐졌고, 두개골과 내장이 터지면서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타락시킨 권력자의 죽음이었다. 

누구 칼에도 피를 묻히지 않고 그저 추락하여 죽게 되었다. 

말이 그의 시신을 밟고 지나갔다. 

 

예후는 그의 군대와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서열 정리를 마친다. 

반역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처리한다. 

죽이든지, 감옥에 넣든지… 

그리고 잔치를 연다. 

새로운 왕이 탄생했다. 

신하들은 새로운 왕을 칭송했다. 

술과 고기를 먹고 있는 와중에 예후는 이세벨의 시체가 생각났다. 

최소한 장례라도 치러주고 싶어졌다. 

그런데 이미 그의 시체가 뿔뿔이 흩어졌다. 

아름다웠던 외형은 다 사라지고 두개골과 몇개의 뼈만 남았다. 

개들이 와서 먹어치웠던 것이다. 

이로써 예언자 엘리야의 말이 현실이 되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온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의 죄로 이끌었던 권력자의 최후는 이렇게 허망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 했다. 

아름다운 꽃도 10여일이면 시들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았다. 

신군부는 1979년 서울의 봄을 짖밟았다.

탱크와 모반을 앞세워 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80년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시민들을 학살하는 잔악한 짓을 저지르고 만다. 

이제 역사는 기억한다. 

그들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어리석고 고통스러운가! 

성공한 쿠테타는 혁명이란다. 

혁명의 결과가 시민들의 학살이라면 그것은 정당한 혁명이 아니라 권력욕에 사로잡힌 엘리트들의 반역일 뿐이다. 

국가보안법은 시민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되었어야 했다. 

자신들의 세상이 영원할 거라 생각했겠지만 역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의 만행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있다. 

그러니 권력을 가진 사람, 수많은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악마적 욕망을 버리고, 겸손히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자. 

상황을 통제하고 주도권을 가지려는 목적을 잘 살피자. 

사람들을 위한 것인가, 나의 욕망을 극대화하려는 것인가? 

조심스럽게 겸손하게 내게 주어진 권한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겸손하게 섬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섬김을 실천하시는 예수님, 

하늘의 가장 큰 권세를 가지고 계시면서도 사람들을 섬기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당신의 섬김을 끝까지 따르도록 이끄소서. 

작은 권한이라도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사용하게 해 주소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당신의 나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용도로 사용하게 하소서. 

겸손하길 원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도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다시 하루를 시작합니다. 

연휴 후에 찾아오는 무력감으로부터 건져주시고, 

다시 용기를 내고 힘을 내어 시작하도록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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