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10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14 그리하여 님시의 손자이며 여호사밧의 아들인 예후는, 요람을 칠 모의를 하게 되었다. 그 때에 요람은 이스라엘 전군을 이끌고, 시리아 왕 하사엘과 맞서서 길르앗의 라못을 지키고 있었다.15 요람 왕이 시리아 왕 하사엘과 싸울 때, 시리아 사람에게 다친 상처를 치료하려고 이스르엘로 돌아와 있을 때였다. 마침내 예후가 말하였다. “장군들이 나와 뜻을 같이 한다면, 아무도 이 성읍을 빠져 나가서, 이스르엘에 이 사실을 알리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오.”16 그런 다음에 예후는,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갔다. 요람이 그 곳에서 병으로 누워 있었다. 유다의 아하시야 왕은 요람을 문병하려고 벌써 거기에 와 있었다.

 

17 이스르엘의 망대 위에 서 있는 파수병이, 예후의 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 “웬 군대가 오고 있습니다” 하고 외쳤다. 그러자 요람이 말하였다. “기마병을 보내어 그들을 만나, 평화의 소식이냐고 물어 보아라.”18 그리하여 기마병은 그들을 만나러 가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평화의 소식이냐고 물어 보라 하셨소.” 그러자 예후가 말하였다. “평화의 소식인지 아닌지가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내 뒤를 따르라.” 파수병이 왕에게 보고하였다. “그들에게 간 전령이 돌아오지 않습니다.”19 그리하여 왕이 두 번째 기마병을 보내자, 그가 그들에게 가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평화의 소식이냐고 물어 보라 하셨소.” 그러자 예후가 말하였다. “평화의 소식인지 아닌지가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내 뒤를 따르라.”20 파수병이 왕에게 또 보고하였다. “그들에게 간 전령이 또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친 듯이 말을 모는 모습이, 님시의 아들 예후와 비슷합니다.”21 이 말을 듣자, 요람은 “병거를 준비하라!” 하고 명령하였다. 병거를 준비하니,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자기의 병거를 타고 예후를 만나러 나가서,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땅에서 그를 만났다.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예후 장군, 평화의 소식이오?” 하고 물었다. 예후는 “당신의 어머니 이세벨이 저지른 음행과 마술 행위가 극에 달하였는데, 무슨 평화가 있겠소?” 하고 대답하였다.23 요람이 그의 손에 쥔 말고삐를 급히 돌려 도망하면서, 아하시야에게 소리쳤다. “아하시야 임금님, 반역이오.”24 예후가 힘껏 활을 당겨 요람의 등을 겨누어 쏘자, 화살이 그의 가슴을 꿰뚫고 나갔다. 그는 병거 바닥에 엎드러졌다.

 

25 예후가 요람의 빗갈 시종무관에게 말하였다. “그 주검을 들고 가서,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시오. 당신은, 나와 당신이 그의 아버지 아합의 뒤에서 나란히 병거를 타고 다닐 때에, 주님께서 그를 두고 선포하신 말씀을 그대로 기억할 것이오.26 주님께서 아합에게 ‘내가 어제, 나봇과 그의 아들들이 함께 흘린 피를 분명히 보았다. 바로 이 밭에서 내가 너에게 그대로 갚겠다. 이것은 나 주의 말이다’ 하고 말씀하셨소. 이제 당신은 그 주검을 들고 가서, 주님의 말씀대로 그 밭에 던지시오.”

 

NIV 

Jehu said to Bidkar, his chariot officer, “Pick him up and throw him on the field that belonged to Naboth the Jezreelite. Remember how you and I were riding together in chariots behind Ahab his father when the LORD made this prophecy about him(25절).

 

주석

이스르엘(14절). 길르앗 라못에서 이스르엘까지는 약 72킬로미터이다. 이스르엘은 아합이 세운 겨울 수도이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 예후의 반역

칼을 뺏으니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다. 

뜻을 같이하는 장군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야 한다. 

예후는 장군들에게 입단속을 시킨다. 

절대로 외부에 흘러 나가서는 안된다. 

요람 왕은 전투 중에 다쳐 왕의 휴양지인 이스르엘 궁에서 치료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군사를 일으켜 이스르엘로 진격한다. 

이스르엘 망대에 서 있던 파수병이 이상한 군대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왕에게 보고 한다. 

왕은 기마병을 보내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싶어한다. 

그런데 기마병은 예후와의 만남 이후에 돌아오질 않는다. 

두 번에 걸친 기마병의 투입에도 함흥차사다. 

어쩔 수 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요람 왕과 문명와 있었던 남유다 아하시야 왕이 함께 병거에 오른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자신의 군대 장관 예후가 아닌가? 

그런데 좀 이상했다. 

길르앗 라못을 지켜야 하는 예후가 왜 여기로 오고 있는가? 

만약 올 거라면 미리 전령을 보내 허락을 맡아야 하는데,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던 터라 덜컥 두려움이 엄습했다. 

요람이 묻는다. 

“예후 장군, 평화의 소식인가요? 아님 나쁜 소식인가요?”

예후의 대답은 피를 솟구치게 한다. 

“당신의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마술 행위가 극에 달했는데, 무슨 평화가 있겠단 말이오!!”

청천병력같은 소리다. 

갑자기 어머니 이야기는 무엇이며, 그 말뽄새는 무엇인가! 

이건 반역이었다. 

두려움이 더욱 커졌다. 

빨리 도망가야 한다. 

예후 장군을 당할 수가 없다. 

그는 전쟁에 잔뼈가 굵은 전사였다. 

 

요람 왕은 예후가 쏜 화살에 가슴이 뚫려 죽고 만다. 

그리고 그 시체는 과거 아합과 이세벨이 강제적으로 빼앗았던 나봇의 포도원에 던져진다. 

이 모든 조치는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예후의 순종의 결과다. 

하나님은 아합과 이세벨의 죄를 결코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북이스라엘에 바알 우상을 들여오더니, 수많은 이방신을 음란하게 섬겼다. 

자신들만 섬긴 것이 아니라 백성들도 우상 숭배 하도록 법과 정책과 문화를 만들었다. 

게다가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던 나봇의 포도원을 강제 탈취 하더니만 나봇과 그의 집안을 쑥대밭을 만들었다. 

엘리야도 엘리사도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지만, 아합 왕가는 듣지 않았다.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했다. 

 

예후는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는 하나님의 종이었다. 

이름이 비슷하지만,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예후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을 드러냈다. 

예후를 비롯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들이 구약에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한 가지다. 

오직 사람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는 하나님이 심판을 뒤덮는 사랑을 보여주셔야 했다. 

심판만으로는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잠시 돌아오는 듯 싶지만, 결국 다시 떠난다. 

하나님이 얼마나 사람들을 사랑하는지를 증명해 보이셔야만 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일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 이후로 하나님은 심판의 대행자로 사람을 쓰시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참고 인내하시기로 결정하셨다. 

예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고, 점점 확장되고 있다. 

결국 최종적인 하나님 나라가 오게 되면, 그 때에는 분명한 심판이 기다린다. 

예수님의 통치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대의 반역이든, 전쟁이든 하나님 운운하면서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기만이다. 

민주주의적 양심과 소양으로 지도자를 비판하고 참여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그분은 평화를 원하 시고 평화를 위한 중재자의 출현을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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