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4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벌리고 헐떡입니다.

 

8 “에브라임은 다른 민족들 속에 섞여서 튀기가 되었다. 에브라임은 뒤집지 않고 구워서 한쪽만 익은 빵처럼 되었다.9 온갖 외세가 국력을 삼키는데도 에브라임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깨닫지 못한다.10 이스라엘의 교만이 이스라엘에게 불리하게 증언한다. 이 모든 일을 겪고도, 주 하나님에게로 돌아오지 않는다. 나를 찾지도 않는다.11 에브라임은 어리석고, 줏대 없는 비둘기이다. 이집트를 보고 도와 달라고 호소하더니, 어느새 앗시리아에게 달려간다.12 내가 그들이 가는 곳에 그물을 던져서, 하늘에 나는 새를 잡듯 그들을 모조리 낚아챌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죄악 그대로 내가 그들을 징계하겠다.

 

13 나를 떠나서 그릇된 길로 간 자들은 반드시 망한다! 나를 거역한 자들은 패망할 것이다. 건져 주고 싶어도, 나에게 하는 말마다 거짓말투성이다.14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나, 거기에 진실이 없다. 오히려 침상에 엎드려 통곡한다. 곡식과 포도주를 달라고 빌 때에도 몸을 찢어 상처를 내면서 빌고 있으니, 이것은 나를 거역하는 짓이다.15 그들의 두 팔을 힘있게 기른 것은 나였지만, 그들은 나를 해치려고 음모를 꾸몄다.16 허망한 것에 정신이 팔린 자들, 느슨하게 풀어진 활처럼 쓸모 없는 자들, 대신들은 함부로 혀를 놀렸으니, 모두 칼에 찔려 죽을 것이다. 이것이 이집트 땅에서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NIV

Ephraim mixes with the nations; Ephraim is a flat cake not turned over(8절).

 

 

[오늘의 묵상]

외세가 에브라임을 삼키고 있다. 

강대국 이집트에게 도움을 청한다. 

신흥 강국 앗시리아에게 도와달라 부탁한다.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버렸다. 

이집트에게 손 벌리지 말라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다. 

외세의 압박이 있을 때, 누구에게 가장 먼저 달려가야 하는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해주신 분은 누구인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에브라임)은 그분의 은혜와 자비를 잊어버렸다. 

두려우니 지푸라기를 잡는다. 

물에 몸을 맡기지 않고 지푸라기를 잡고 구원을 바란다.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하나님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도자들의 외교 행보로 인해 이스라엘 전체가 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근원적인 문제가 더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기는 하나, 거기에는 진실이 없다.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진정성이 결여되었다. 

어느 순간 하나님도 알고 계신다, 이스라엘이 거짓말장이라는 것을. 

하나님과 다른 신을 겸하여 섬기고 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종교적 자해를 한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이방신을 향한 구애의 손길이다. 

이렇듯 두 마음을 품는 것, 하나님이 끔찍이도 싫어하신다. 

하나의 마음, 하나의 생각으로 주님께 나아가고 주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다른 신을 섬기고픈 유혹을 이겨야 한다. 

혼합주의는 버려야 할 악이다. 

혼합주의는 거짓말을 내재화한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관계를 이용하고 왜곡시킨다. 

외도하는 배우자와 같다. 

같은 침대에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는 거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한낱 우상 조각으로 폄훼한다. 

존재의 가벼움. 

이익의 가치화. 

기억 상실.

모든 면에서 이스라엘은 낙제다. 

 

오피스 와이프가 넘쳐나고, 바람 피우는 것을 문화 현상으로 수용하는 현대 사회. 

과연 한 분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분께만 충성하자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말이야 그럴 수 있으나, 마음이 벌써 갈라졌다. 

외도 문화가 뒤덮고 있으니, 그 속에서 신실함과 충성을 마음 깊은 곳에서 거부한다. 

평생 직장도 사라졌고, 인스탄트 문화가 기승이며, 휘발성 릴스 문화가 견고해졌다. 

가정은 깨어지고, 교권은 무너졌고, 상식적인 국가 지도자는 사라졌다. 

어떻게 신실함과 충성을 마음의 자세와 태도로 삼을 수 있을까! 

어떻게 올곧게 평생 한 분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섬길 수 있을까! 

점점 어려운 주제가 되어간다. 

너무 많은 정보가 우리의 가벼운 존재를 뒤흔들어 정박하지 못하게 한다. 

아! 이 가련한 인생. 

 

주님께 정박하고 싶다. 

그분께 뿌리내리고 싶다. 

그렇게 한 분 하나님만을 평생 섬기고 싶다. 

 

 

[오늘의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주시는 하나님, 

저의 부족함에도 여기까지 인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피정을 통해 보여주셨던 흰 독수리를 다시 떠올립니다. 

새로운 힘으로 공급하셨던 주님을 찬양합니다.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사랑과 신뢰로 끝까지 주님을 붙들길 원합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다시 주님께 뿌리는 내리길 원합니다. 

가벼운 제 존재를 불쌍히 여기시고, 무거운 닻을 내리도록 도우소서. 

신실함으로 주님께 나가아길 소망합니다. 

 

항암치료 중인 형제 자매들을 위로하시고 회복시켜주소서. 

오늘도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을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11월 23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니, 주님의 법이 나의 기쁨입니다.

 

1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여 주고자 할 때마다, 에브라임이 지은 범죄가 드러나고 사마리아가 저지른 죄악이 드러난다. 서로 속이고, 안으로 들어가서 도둑질하고, 밖으로 나가서 떼지어 약탈한다.2 내가 그들의 죄악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전혀 마음에 두지도 않는다. 이제는 그들이 저지른 모든 잘못이 그들을 에워싸고 바로 내 눈 앞에 있으니, 내가 안 볼 수 없다.”

3 “왕을 갈아치울 자들이 악한 음모를 품고서도 겉으로는 왕을 기쁘게 하며, 온갖 기만으로 대신들을 속여 즐겁게 한다.4 그들은 성욕이 달아오른 자들이다. 그들은 화덕처럼 달아 있다. 빵 굽는 이가 가루를 반죽해 놓고서, 반죽이 발효될 때를 제외하고는 늘 달구어 놓은 화덕과 같다.5 드디어 우리 왕의 잔칫날이 되면, 대신들은 술에 만취되어 곯아 떨어지고 왕은 거만한 무리들과 손을 잡는다.6 새 왕을 세우려는 자들의 마음은 빵 굽는 화덕처럼 달아 오르고, 그들은 음모를 품고 왕에게 접근한다. 밤새 그들의 열정을 부풀리고 있다가 아침에 맹렬하게 불꽃을 피워 올린다.7  그들은 모두 빵 굽는 화덕처럼 뜨거워져서, 그들의 통치자들을 죽인다. 이렇게 왕들이 하나하나 죽어 가는데도 어느 누구도 나 주에게 호소하지 않는다.”

 

NIV

whenever I would heal Israel, the sins of Ephraim are exposed and the crimes of Samaria revealed(1절).

 

주석

6-7절. 지도자를 전복시키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 북 왕국 역사의 막바지에 그런 음모가 여러 번 있었다(왕하 15장; 17장)(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하나님은 더 이상 눈 감을 수가 없다. 

이스라엘의 범죄가 만천하에 들어난다. 

서로 속이고, 도둑질하고, 약탈한다. 

죽음이 언제나 문 앞에 있다. 

반역이 기승이다. 

조금만 힘을 얻으면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인양 거드름을 핀다. 

교만한 마음은 현 정권에 칼을 겨눈다. 

정당한 방법이 막혀 있으니, 반역을 도모한다. 

기존의 통치자도 문제이고, 새로운 힘을 갖게 자도 문제다. 

하늘 아래 태양은 하나여야만 한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들의 기만은 철저히 준비된다. 

속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그리고 잔치날이 왔다. 

궁중 잔치의 화려함 뒤엔 독뱀이 득실댄다. 

술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허술한 행동에도 의심을 거둔다. 

드디어 D-DAY다.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에 들떠서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다. 

욕망의 화신이다. 

잔치 자리는 살육의 현장이다. 

포도주와 피가 뒤섞여 아수라장이다. 

고통을 호소해 봐야 죽음뿐이다. 

찔리고 베이고 잘린다. 

숨을 데가 없다. 

도망치다가 넘어지면 그곳이 자기 무덤이 된다. 

 

한 번 이렇게 권력을 얻게 되면, 그 뒤로는 죽음의 공포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자신이 생각했던 그 모든 반역의 모의과 기술들이 다 떠오른다. 

누가 배신할까 두려움으로 두리번거린다. 

편안히 누워 잘 수가 없다. 

정신병에 걸리지 않으면 성공이다. 

 

죽고 죽이는 살인 게임의 나라, 이스라엘. 

하나님이 원하셨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이 꿈꾸셨던 나라와 거리가 멀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누구도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7  그들은 모두 빵 굽는 화덕처럼 뜨거워져서, 그들의 통치자들을 죽인다. 이렇게 왕들이 하나하나 죽어 가는데도 어느 누구도 나 주에게 호소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법을 잃어 버렸다. 

주님께 나아가 애통해하는 법을 잊었다. 

호세아 선지자와 아주 소수 외에는 모두 힘을 키우고, 폭력성을 키우고, 살인기계의 꿈을 꾼다.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현실을 애통해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없다. 

 

하나님의 마음은 애가 탄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이런 나라로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이룰 수 없다. 

모든 민족에게 복을 나누는 나라, 

모든 민족이 본 받을 나라,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흐르는 나라, 

그 나라를 꿈 꿀 수가 없다.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하나님은 애가 타실 것 같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잘 드러내지 못한다. 

정치하는 목사들은 한 자리 하려고 혈안이다. 

서로 싸우는 목사들도 많다. 

그래도 아직은 하나님께 호소하는 성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희망이 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의 비윤리적 행동과 일탈이 난무하고, 교회 세습(대물림)이 횡행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개입을 바라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한다. 

 

끝까지 주님을 붙는 존재가 되리라고 다짐한다.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의 통찰을 따라,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존재가 되길 소망한다. 

소유로 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존재 그 자체로 정체성을 찾고 의미를 활성화시키는 사람이 되길…

 

[오늘의 기도]

역사의 주인되신 하나님, 

사람들의 정치 행위 가운데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남을 죽여야 내가 위로 올라갑니다. 

통제에 대한 욕구는 통치에 대한 욕망으로 자랍니다. 

주님, 오직 진정한 통치자는 여호와 한 분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저 남미의 어느 나라에서는 정치인을 죽여서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고 장악력을 유지하려는 조직폭력배들이 많습니다. 

죄악이 이 땅에 가득합니다. 

전쟁이 그치질 않습니다. 

주님, 어서 오셔서 이 땅을 회복시켜주소서. 

전쟁이 그치고 사랑와 평화가 자리잡도록 이끄소서. 

전쟁의 뉴스를 더 이상 보지 않도록,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기사들이 더욱 넘치도록, 

주님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11월 21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니, 주님의 규례로 나를 살려 주십시오.

 

1 이제 주님께로 돌아가자. 주님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고, 우리에게 상처를 내셨으나 다시 아물게 하신다.2 이틀 뒤에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 만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니, 우리가 주님 앞에서 살 것이다.3 우리가 주님을 알자. 애써 주님을 알자. 새벽마다 여명이 오듯이 주님께서도 그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해마다 쏟아지는 가을비처럼 오시고,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신다.

 

4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나를 사랑하는 너희의 마음은 아침 안개와 같고,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5 그래서 내가 예언자들을 보내어 너희를 산산조각 나게 하였으며, 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로 너희를 죽였고, 나의 심판이 너희 위에서 번개처럼 빛났다.

 

NIV

Your love is like the morning mist, like the early dew that disappears(4절).

 

주석

1-3절. 호세아의 권면이 아니라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고 형식적으로 회개할 때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었다(한 권으로 꿰뚫는 소예언서). 

4절.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마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네가 그렇게 말했더라도, 너는 신의를 지키지 않았고 아주 오랫동안 내게 잘못을 저질렀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분이 용서해주시는 분, 자비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들에게 심판이 임한다하니 그제서야 주님께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그 태도는 나쁘지 않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 돌아가야 한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해도, 우리는 주님께 돌아갈 수 있다. 

평생 피해자에게 사죄하며 살더라도, 우리는 주님께 돌아갈 수 있다.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며 그분의 사랑 가운데 거할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사회법의 처벌을 넘어 그 사람 존재를 귀하게 여기신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돌아오기를 촉구하신다. 

 

문제는 이를 악용하는 경우다.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죄를 짓는 데 거리낌이 없다. 

진정한 회개는 자기가 가던 길에서 돌이키는 것인데, 그걸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용서만 구한다. 

하나님은 자동적으로 용서하는 분으로 알고 있다. 

하나님은 용서하는 분이지만, 기계적으로 자동적으로 용서하는 용서 자판기가 아니다. 

그분에겐 심판할 힘도 있으시고, 자유의지도 있으시다. 

인간에게만 자유의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유의 하나님, 자유로운 하나님이시다. 

 

개인의 부족함과 연약함에 나오는 죄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상 숭배와 그로 인한 착취와 구조악을 지적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교적인 열심이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정서적인 어려움이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부정함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만연한 하나님께 대한 반역에 대한 것이다. 

6:7-9절은 이렇게 적고 있다. 

 

“7그런데 이 백성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나를 배반하였다.

8 길르앗은 폭력배들의 성읍이다.

발자국마다 핏자국이 뚜렷하다.

9강도 떼가 숨어서 사람을 기다리듯,

제사장 무리가

세겜으로 가는 길목에 숨었다가

사람들을 살해하니,

차마 못할 죄를 지었다.”

 

이런 죄악들이다. 

개인의 연약함과 부족함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너무나도 관대하시다. 

계속 기회를 주신다. 

성숙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을 배반했는데도 진심으로 돌이키질 않는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강도처럼 이웃들을 괴롭히고 죽인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윤리적 삶과 도덕과 사회 문화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고서는 심판이 임한다하니, 얄팍하게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용서하시지 않을 것이다. 

우상을 버리고, 폭력과 살인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의 잘못을 배상하고, 진심으로 회개해야 한다. 

그것이 살 길이다. 

 

오늘도 나를 성찰한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구한다. 

그리고 더 큰 죄에 빠지지 않도록, 우상에 빠지지 않도록 회개한다. 

작은 죄가 큰 사회악이 되어, 이웃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 없는지 살핀다. 

주님께 회개한다. 

 

[오늘의 기도]

진정한 회개를 원하시는 주님, 

몸이 곤하지만, 주님을 찾습니다. 

저의 연약함을 돌아봐 주소서. 

저의 죄악으로 이웃이 고통당하는 일이 없도록 인도해주세요. 

저의 부족함으로 사람들이 아파하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세요. 

무엇보다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길 원합니다. 

예수님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삶,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끝까지 감당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11월 17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벌리고 헐떡입니다.

 

1 “너희 제사장들아, 이 말을 들어라! 너희 이스라엘 백성아, 똑똑히 들어라! 너희 왕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너희가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너희는 미스바에 놓은 덫이고, 다볼 산 위에 펼쳐 놓은 그물이다.2 반역자들이 살상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모두 징벌하겠다.3 나는 에브라임을 잘 안다. 내 앞에서는 이스라엘이 숨지 못한다.  에브라임이 몸을 팔고 있고, 이스라엘이 몸을 더럽히고 있다.”

4 그들의 온갖 행실이 그러하니, 하나님께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음란한 생각이 그들 속에 가득 차서, 주님을 알지 못한다.5 이스라엘의 교만이 이스라엘에게 불리하게 증언한다. 이스라엘 곧 에브라임은 저의 죄에 걸려서 넘어질 것이다.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질 것이다.6 양 떼와 소 떼를 몰고 주님을 찾아 나선다고 하여도, 주님께서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으니, 그들이 주님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7 그들이 주님께 정조를 지키지 않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그들이 지키는 새달 절기가 밭과 함께 그들을 삼킬 것이다.

 

NIV

The rebels are deep in slaughter. I will discipline all of them(2절).

 

주석

1절. ‘미스바’는 사무엘이 순회하면서 법률 소송을 해결했던 곳이었을 것이며(삼상 7:16), 적어도 호세아 시대에는 그 곳에 종교적인 성소가 있었을 것이다. ‘다볼’은 드보라와 바락이 야빈과 시스라에게 엄청난 승리를 거둔 곳이었다(삿 4:6, 12-16). 우리는 이 곳에서 자행된 죄의 성격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백성들을 사악한 습관에 빠뜨려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어떤 죄였을 것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제사장, 왕족, 그리고 백성. 

이들 모두 죄악에 심취되어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선한 전통을 다 망가뜨리고 있다. 

대집회가 열려서 백성의 회개가 시작되었던 미스바 지역, 이 지역이 우상 숭배로 더렵혀졌다. 

우상이 그들의 삶 곳곳에 파고들었다.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망가지니 백성은 피폐했다. 

속까지 썩어서 언제나 음란한 생각 뿐이다. 

진실,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다만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깎아 내리고 그래서 서로 살육하는 집단으로 바뀌고 있다. 

그들의 죄는 이제 가나안의 죄에 가까워졌다. 

죄가 가득해서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해보인다.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다. 

 

원래 하나님은 죄인들을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연약한 자들, 고통 속에 허덕이는 자들을 찾아오신다. 

약자라고 죄인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집트에게 고통 받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착한 사람들이었던가? 

그럴 리 없다. 

그들 중에도 죄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을 구원하셨다. 

하나님은 죄인들, 약자들을 구하길 원하신다. 

문제는 그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도 그분과의 관계를 끝까지 거부하는 경우에 하나님은 최후의 메시지를 전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이 떠나신다”이다. 

계속 관계를 거부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행위를 계속한다면 하나님은 떠나실 것이다. 

그 메시지를 듣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는 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정말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할 것이다. 

 

성욕은 사라지지 않고, 음란한 생각은 끊어지지 않는다. 

성관계 제의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 강렬한 경험을 잊을 수 없다. 

하나님보다 다른 신을 더 많이 생각한다. 

쾌락과 번영을 약속하는 신을 찾는 것이 인간 본성이다. 

쾌락과 부를 약속하는 돈의 신은 지금도 사람들을 강력하게 유혹한다. 

 

과연 우리는 유혹을 이길 수 있는가? 

돈이 가져다 주는 수많은 즐거움과 유익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목적과 의미 그리고 즐거움을 더 귀하게 여길 수 있을까? 

주님의 현존을 더 즐거워할 수 있을까? 

그분과 교재하는 삶, 그분을 즐거워하는 삶을 더 추구할 수 있을까? 

 

올 해 첫 눈이 내린다. 

살상과 살육이 가득한 세상 곳곳에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축복이 내리길 기도하게 된다. 

돈과 쾌락이 아닌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진실과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 

당신을 더 깊이 알아가고 사랑하기 원합니다. 

돈으로 세워진 화려한 조명과 퍼포먼스보다 하나님 당신의 현존을 더 귀하게 여기길 원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돈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현존을 더욱 사모하게 하소서. 

사회의 지도자들이 쾌락과 권력이 아니라 이웃 사랑을 더욱 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전쟁과 살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을 뒤바꾸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기를 원합니다. 

사회를 바꿔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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