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5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부르짖음이 주님 앞에 이르게 해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

 

1 이스라엘 자손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주님께서 이 땅의 주민들과 변론하신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사랑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2 있는 것이라고는 저주와 사기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다. 살육과 학살이 그칠 사이가 없다.3 그렇기 때문에 땅은 탄식하고, 주민은 쇠약해질 것이다. 들짐승과 하늘을 나는 새들도 다 야위고, 바다 속의 물고기들도 씨가 마를 것이다.”

4 “그러나 서로 다투지 말고, 서로 비난하지도 말아라. 제사장아, 이 일로 네 백성은 너에게 불만이 크다.5 그래서 낮에는 네가 넘어지고, 밤에는 예언자가 너와 함께 넘어질 것이다. 내가 너의 어머니 이스라엘을 멸하겠다.6 내 백성이 나를 알지 못하여 망한다. 네가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내가 가르쳐 준 것을 버리니, 나도 너를 버려서 네가 다시는 나의 성직을 맡지 못하도록 하겠다. 네 하나님의 율법을 네가 마음에 두지 않으니, 나도 네 아들딸들을 마음에 두지 않겠다.7 제사장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에게 짓는 죄도 더 많아지니, 내가 그들의 영광을 수치로 바꾸겠다.8 그들은 내 백성이 바치는 속죄제물을 먹으면서 살고, 내 백성이 죄를 더 짓기를 바라고 있다.9 그러므로 백성이나 제사장이 똑같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내가 그 행실대로 벌하고, 한 일을 따라서 갚을 것이니,10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아무리 음행을 하여도 자손이 불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백성이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나 주를 버렸기 때문이다.”

 

NIV

my people are destroyed from lack of knowledge(6절). 

 

주석

10절.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제의 매춘’이 성적인 제의 행위를 통해 다산을 보증하려는 의도로 이루어졌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하나님이 호세아를 부른 이유가 드러난다. 

10절, “이 백성이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나 주를 버렸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구원자되신 하나님을 버렸다. 

이집트에서 구출해주신 하나님, 온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버렸다. 

버린 이유는 다른 신들을 섬기기 위해서다. 

 

다른 신들을 통해 추구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배부름이요, 다른 하나는 자손이다. 

풍요와 다산을 원했다. 

더 많은 부를 추구했고, 더 많은 자손을 낳기를 바랬다.

하나님이 추구하는 것과 다르다. 

하나님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무엇보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였다. 

인간의 욕심은 하나님 나라의 매력보다 다른 신들의 달콤한 유혹에 더 끌렸다. 

하나님을 경험한 이스라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그 악을 조장했다. 

율법을 마음에 새기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새겼다.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백성들까지도 죄악으로 이끌었다. 

제사장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하나님께 도달하는 악의 향기는 더욱 짙어졌다(7절). 

 

제사장은 죄가 무엇인지 분명한 기준으로 알리고, 하나님과 다시 화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호세아 시대(BC 8세기)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죄를 방치했다. 

백성들은 저주와 사기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에 중독되었다. 

살육과 학살이 그치지 않는다. 

정글이다. 밀림이다. 

힘쎈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을 죽이고 도살한다. 

대등하다 생각되면 온갖 수법으로 저주한다. 

속이고 속임으로 죽인다. 

속임으로 상대의 재산을 빼앗고, 누군가의 여인을 빼았는다. 

여로보암 2세, 경제적으로는 번창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회는 썩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부는 일부 강자들, 기득권들의 부였지, 모든 사람들의 부가 아니었다. 

 

호세아 4장은 로마서 8장 떠오르게 한다. 

피조물이 신음하고 탄식한다.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다린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롬 8:22) 

인간들의 살육과 학살로 땅이 신음한다. 

탄식하는 땅으로 인해 전쟁에 연루되지 않은 주민들도 고통을 겪는다. 

들짐승과 하늘을 나는 새들도 다 야위고, 바다 속의 물고기들도 씨가 마른다. 

창조세계가 엉망이 된다. 

인간의 죄악은 세상을 병들게 한다. 

창세기의 창조 명령이 중요한 이유다. 

땅을 잘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인간으로 말미암아 우주가 병들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을 ‘진실없음, 사랑없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없음’에 둔다. 

하나님을 그렇게 알려 주었는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자신들의 욕망에 비춰 살아간다. 

 

하나님은 진실이요. 사랑이다. 

그분을 모르면 진실도 사랑도 모르는 거다. 

진실은 사실과 다르다. 

사랑은 애정과 다르다. 

진실은 의도와 맥락과 목적이 폭로된 사실이다. 

사랑은 자기 부인과 희생이 포함된 애정이다. 

하나님을 알아야 세계의 진실을 안다. 

하나님을 알아야 사랑의 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을 모르니 얄팍한 자신의 관점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애정한다. 

그러니 욕망이 하나님이 된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 된다. 

살인, 살육, 학살의 기초가 놓인다. 

 

하나님을 알자.

그분을 더 깊이 알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당신을 더 깊이 알게 하소서. 

이 세상의 의미와 의도는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당신을 통해 진실을 알게 하시고, 

당신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나의 욕망과 욕심에 치우치지 않게 하소서. 

겸손히 주님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니, 주님의 규례로 나를 살려 주십시오.

 

1 주님께서 나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는 다시 가서, 다른 남자의 사랑을 받고 음녀가 된 그 여인을 사랑하여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들에게로 돌아가서 건포도를 넣은 빵을 좋아하더라도, 나 주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너도 그 여인을 사랑하여라!” 2 그래서 나는 은 열다섯 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을 가지고 가서, 그 여인을 사서 데리고 왔다. 3 나는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많은 날을 나와 함께 살면서, 창녀가 되지도 말고,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지도 말고, 나를 기다리시오. 그 동안 나도 당신을 기다리겠소.”

 4 이스라엘 자손도 많은 날을 이렇게 왕도 통치자도 없이, 희생제물도 돌기둥도 없이, 에봇도 드라빔도 없이 살 것이다. 5 그런 다음에야 이스라엘 자손이 돌이켜서, 주 그들의 하나님을 찾으며, 그들의 왕 다윗을 찾을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떨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받을 것이다.

 

NIV

They will come trembling to the LORD and to his blessings in the last days(5절).

 

주석

4절. 희생제물과 돌기둥은 신을 예배하는 도구를 나타내며, 에봇과 드라빔은 신의 뜻을 묻는 도구를 말한다(IVP 성경배경주석). 

4절. 4절의 전체적인 의미는, 이스라엘이 정화의 시기를 가지는 동안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데 있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또 다시 호세아를 부르신다. 

자신의 아내 고멜을 찾아 오라는 부르심이다. 

비록 다른 남자와 밤을 같이 보내고, 호세아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지만, 그래도 다시 찾아 오라고 부르신다. 

의지적인 사랑을 하라고 하신다. 

감정과는 상관없이 끝까지 사랑하라고 하신다.

가혹하지만, 그래서 피학적인 사랑, 변태적인 사랑 같다. 

이런 사랑을 하라고 하신다면, 과연 누가 순종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확실한 한 가지가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그 마음으로 끝까지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이 율법에서 명한 규정, 제사제도,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욕망과 욕구대로 살아간다고 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심지어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값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이 세상에 오셨다. 

하나님이 창녀와 세리를 부르러 온 것이다. 

죄인들을 다시 데리고 오기 위해 하나님 자신이 지불할 값이 되셨다. 

호세아는 은 열다섯 세겔과 보리 한 호멜을 가지고 고멜을 다시 샀다면,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기 위해 자신을 드리셨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성품과 행동을 반영한다, 

호세아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았다. 

정죄하기보다 다시 기회를 주고, 그 기회를 구매한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공동체에 흘러야 한다. 

스스로 죄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회복되어야 한다. 

기독 공동체는 용서가 흐르는 공동체다. 

하나님의 용서가 몸에 배어 자연스레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을 용서하게 된다. 

분노를 품고 복수를 꿈꾸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맞지 않는다. 

공분은 죄를 지은 한 개인에게 풀기보다는 그런 죄의 씨앗이 도사리고 있는 구조악과 배후악에게 쏟아부어야 한다. 

범법 행위는 그에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과는 별개로 그리스도인들은 죄인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가해자는 철저히 하나님께 회개하고 피해자에게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며 배상해야 한다. 

그리고 구조악과 배후악을 드러내고 피해자와 함께 싸워야 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동체는 그렇게 세워진다. 

 

용서와 자비 그리고 인내…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예수님의 실천이다.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온전히 그 일을 감당할 수는 없겠으나, 추구해야 함이 옳다. 

과연 우리는 용서의 메시지를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겠는가? 

 

용서, 겸손, 순종이라는 단어를 거부하는 세대다. 

의지적인 거부라기보다 무의식적인 거부감이다. 

몸이 반응하지 않는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아예 이런 단어에 대한 개념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비판, 공정, 개성, 다양성이라는 단어가 더욱 거세다. 

이런 단어들의 울림이 상당히 크다. 

그렇다고 용서, 겸손, 순종, 헌신, 희생을 정말 포기할 것인가?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가 묵상하고 되새기고 결단해야 할 것은 결국 용서요 순종이 아닐까!! 

 

 

[오늘의 기도]

호세아를 부르신 하나님,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을 내리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명령을 내리시기보다 사랑과 위로를 전하시는 하나님으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사랑과 위로와 격려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때로 당신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명령과 가이드를 주시는 분이기도 하십니다. 

그 부르심과 명령에 순종하라 하십니다. 

저의 이해를 너머 주께서 주시는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신뢰의 마음을 주십시오. 

모든 것이 다 이해되어 따르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따르게 하소서.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감당할 명령을 내려주시길 간구합니다. 

저에게 순종할 수 있는 용기와 힘도 공급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11월 08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부르짖음이 주님 앞에 이르게 해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

 

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져서,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되어 보거나 세어 볼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이 너희를 로암미라고 부른 땅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를 것이다.11 그 때가 되면,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통일을 이룩하여, 한 통치자를 세우고, 땅에서 번성할 것이다. 그렇다. 이스르엘의 날이 크게 번창할 것이다.

1 이제 너희는 형제를 암미라고 하고, 자매를 루하마라고 하여라.”

 

NIV

In the place where it was said to them, ‘You are not my people,’ they will be called ‘sons of the living God.’(10절)

 

주석

10절.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져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상기시키면서(창 22:17; 32:12), 언약이 회복될 것임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말한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언제일지 모른다. 

회복의 예언이 내려왔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이 다시 주어진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스라엘의 죄악이 가득하고, 하나님을 버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이 주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회복의 메시지를 주신다. 

모세와 맺은 언약, 다윗과 맺은 언약이 여전히 살아있다. 

회복된 이스라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남북이 통일되고, 위대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다. 

땅에서 번성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다. 

예수님은 새로운 이스라엘 자손을 만드시는 분이시다. 

혈통에 의한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여 순종하는 정신과 영을 가진 새로운 이스라엘이다. 

이들은 온 땅에 크게 번성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암미요, 하나님의 루하마이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가 되는 것이다. 

 

회복의 약속을 믿고 그 날을 기다리는 것. 

이것은 구약의 신앙인이나 신약의 신앙인이나 동일하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을 믿고 그 날을 기다린다. 

더 이상 전쟁이 없고, 평화가 가득하고, 사랑으로 서로를 세워주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린다. 

새로운 땅을 건설하고, 그 땅에서 번성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 다시 오시면 우리는 진정으로 회복하게 될 것이다. 

난 그날을 기다린다. 

비록 지금의 세계는 전쟁으로 물들었고, 기후 위기로 위험에 처해 있더라고, 그 마지막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지고 오는 온전한 회복이다. 

그날을 사모한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 

어서 오셔서 이 땅을 회복시켜주소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 

피로 물어들 있는 흙, 

비정한 자들이 생명을 앗아가는 땅 

주님, 

당신이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사람들의 노력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통치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11월 07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니, 주님의 규례로 나를 살려 주십시오.

 

2 주님께서 처음으로 호세아를 시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주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아라! 이 나라가 주를 버리고 떠나서, 음란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3 호세아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결혼하였다. 고멜이 임신하여, 호세아의 아들을 낳았다. 4 주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하여라. 이제 곧 내가 예후의 집을 심판하겠다. 그가 이스르엘에서 살육한 죄를 물어서 이스라엘 왕조를 없애겠다.5 또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평원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겠다.”6 고멜이 다시 임신하여 딸을 낳았다. 이 때에 주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라고 하여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겠다.7 그러나 유다 족속은 내가 불쌍히 여기겠다. 그들의 주 나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그들을 구출하겠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활이나 칼이나 전쟁이나 군마나 기마병으로 구출하는 것이 아니다.”8 로루하마가 젖을 뗄 때에, 고멜이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9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고 하여라. 너희가 나의 백성이 아니며, 나도 너희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NIV

When the LORD began to speak through Hosea, the LORD said to him, “Go, take to yourself an adulterous wife and children of unfaithfulness, because the land is guilty of the vilest adultery in departing from the LORD.”(2절)

 

주석

2절.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결혼은 이스라엘이 야웨와 맺은 언약을 나타내는 은유다(IVP 성경배경주석).

2절. 1-3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부부 관계로 묘사하며, 이스라엘이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 즉 헤세드를 잃어버린 것을 꾸짖으며 심판의 말씀을 전한다(한 권으로 꿰뚫는 소예언서).

 

[오늘의 묵상]

BC 8세기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는 군사적 승리를 얻었고, 나라는 부강해졌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갔다. 

경제적으로는 부유했지만 영적으로 가난했다.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멀리했다. 

하나니은 호세아 선지자를 불러, 음란한 여인과 결혼을 하라고 시키신다. 

이유는 한 가지다. 

이스라엘의 현 상황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호세아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말씀하시지만, 사실 그의 인생 전체가 걸린 일이었다. 

고멜과의 결혼은 호세아의 명예에 훼손을 일으킨다. 

몸을 파는 여인과 결혼하라고 시키셨다고 오랫동안 해석되어 왔다. 

최근에는 꼭 그렇게만 해석할 이유는 없다고들 한다. 

창녀가 아닐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여인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성적 비행을 저질렀거나 저지를 수 있는 여인임을 암시한다. 

어찌되었건, 고멜은 음란한 여인이었다. 

직업적 창녀는 아니더라도, 소문이 안 좋은 여인일 수 있었다. 

따라서 혼기도 놓치고, 결혼도 하기 힘든 상황일 수 있었다. 

그런 여인과 결혼을 한다는 것은 경건한 호세아 입장에서는 옵션이 아니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자신의 인생이 걸린 일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계속 따른다.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 일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고멜 입장에서는 이런 이름을 지으라는 남편의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고민스럽다. 

로루하마, 로암미….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름이다. 

첫째 아들 이스르엘은 호세아의 친아들로 여겨졌으나, 둘째와 셋째는 의심스럽다. 

고멜에게 다른 남자가 있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추측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다만, 호세아는 힘겨운 인생을 살아야 했다.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드려야했다. 

선지자의 삶이 참 고단하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고단한 삶으로 부르신다면 과연 나는 순종할 의지가 있는가? 

이제까지도 어떤 순간순간 참 고단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러저리 뛰어다니며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앞으로도 이런 삶을 계속 살라하시면 마음이 참 어려울 것 같다. 

조금은 더 여유롭게 조금은 더 쉽게 가고 싶은 마음이 사람 마음이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 일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순종의 삶을 살 것이다. 

사랑하는 삶을 살 것이다. 

감정과 의지가 다를 때, 그 때 구할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이다. 

 

 

[오늘의 기도]

성령님, 

제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높은 기준은 있지만, 그 기준에 도달하지를 못합니다. 

주님께 순종하고 싶은 마음과 제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은 마음이 충돌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하는 삶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사람들의 인정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추진하지 못합니다. 

멈칫합니다. 

 

주님, 저의 존재를 강하게 만들어 주소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 때로는 사람들의 아쉬움을 뒤로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알려줄 수는 없습니다. 

단 한가지를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기도하는 삶.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삶. 

 

주님, 저에게 힘을 공급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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