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05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니, 주님의 규례로 나를 살려 주십시오.

 

1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2 그러나 내가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 짐승을 잡아서 바알 우상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며, 온갖 신상들에게 향을 피워서 바쳤지만,3 나는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고, 내 품에 안아서 길렀다. 죽을 고비에서 그들을 살려 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4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5 이스라엘은 이집트 땅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로 돌아오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6 전쟁이 이스라엘의 성읍을 휩쓸고 지나갈 때에, 성문 빗장이 부서질 것이다. 그들이 헛된 계획을 세웠으니 칼이 그들을 모조리 삼킬 것이다.7 내 백성이 끝끝내 나를 배반하고, 바알을 불러 호소하지만, 그가 그들을 일으켜 세우지 못할 것이다.

 

NIV

It was I who taught Ephraim to walk, taking them by the arms; but they did not realize it was I who healed them(3절).

 

주석

1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신 출애굽 사건에 대해 언급하신다(한 권으로 꿰뚫는 소예언서).

 

[오늘의 묵상]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어머니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다. 

갓난 아기 때부터 하나님은 젖을 물리고, 업어 키웠다. 

하나님 품에 안아서 그들을 보호하고, 걸음마를 가르치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시켰다. 

 

문제는 그들이 사춘기 반항아처럼 하나님을 떠나간 것이다. 

하나님이 아무리 불러도 점점 멀어진다. 

탕자처럼 집에서 멀어진다. 

그냥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골라서 한다. 

바알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을 골탕 먹이려는 듯이. 

하나님을 욕보이고 있다. 

하나님께 보호를 받고, 키움을 받고, 사랑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이를 부모로 삼는다. 

기가 막힐 일이다. 

 

사춘기 반항을 크게 겪지 않은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부모님이 큰 돈을 버시지 않았고, 집은 항상 가난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기도를 잊을 수가 없다. 

최선을 다해 기도로 돌보시는 모습, 아들을 언제나 인정해 주시는 모습. 

부모님께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내겐 하나님도 그런 분이시다. 

나에게 큰 돈을 주시는 분은 아니시다. 

나에게 큰 명예를 주시는 분도 아니시다. 

그러나 그분은 나에게 참 좋은 것들을 많이 주셨고, 그것들이 나를 자라게 했다. 

난 그 하나님을 버릴 마음이 없다. 

다른 것으로 나의 신을 삼을 생각이 없다. 

죽기까지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실 것이다. 

 

이스라엘을 구출하신 하나님, 

온 인류를 구원하신 하나님,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사랑하셔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 던지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나는 끝까지 사랑할 것이다. 

 

오늘도 그 마음을 확인하고 다짐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오랜 시간 주님을 사랑해왔습니다. 

오랜 시간 주님을 따라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저는 최신의 신학에서의 하나님 이해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려해야 할 것이 있고, 배워야 할 것이 있지만, 제가 믿는 하나님은 오랜 시간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사람을 사랑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저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섬기겠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12월 01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벌리고 헐떡입니다.

 

1 이스라엘은 열매가 무성한 포도덩굴, 열매가 많이 맺힐수록 제단도 많이 만들고, 토지의 수확이 많아질수록 돌기둥도 많이 깎아 세운다.2 그들의 마음이 거짓으로 가득 차 있으니, 이제는 그들이 죄값을 받는다. 하나님이 그들의 제단들을 파괴하시고, 돌기둥들을 부수실 것이다.3 “우리가 주님 두려운 줄 모르고 살다가, 임금도 못 모시게 되었지만, 이제 임금이 있은들 무엇에다가 쓰랴?” 하며 한탄할 날이 올 것이다.

4 그들은 빈 약속이나 일삼고, 거짓 맹세나 하며, 쓸모 없는 언약이나 맺는다. 그러므로 밭이랑에 돋아난 독초처럼 불의가 퍼진다.5 사마리아 주민은 벳아웬의 금송아지를 잃고 두려워하고, 그 우상을 잃고 슬퍼할 것이다. 그것을 즐겨서 섬긴 이교의 제사장들은, 우상의 영화가 자기들에게서 떠난 것 때문에 탄식할 것이다.6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앗시리아로 가지고 가서 대왕에게 선물로 바칠 것이다. 그러나 에브라임이 대가로 받아 오는 것은 수치뿐일 것이다. 끝내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긴 일로 수치를 당하고야 말 것이다.7 사마리아는 멸망하게 되었다. 왕은 물 위로 떠내려가는 나무토막과 같다.8 이제 이스라엘의 죄악인 아웬 산당들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 올라서 그 제단들을 뒤덮을 것이다. 그 때에 백성들은 산들을 보고 “우리를 숨겨 다오!” 또 언덕들을 보고 “우리를 덮어 다오!” 하고 호소할 것이다.

 

 

NIV

They make many promises, take false oaths and make agreements; therefore lawsuits spring up like poisonous weeds in a plowed field(4절).

 

 

[오늘의 묵상]

북이스라엘은 부유했다. 

농작물이 잘 자랐다. 

포도도 잘 자라고, 추수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풍요가 가지고 온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복지가 아니라 우상 숭배였다. 

이교 제단을 곳곳에 세운다. 

둘기둥 우상을 허구한 날 만들어 세운다. 

돌기둥은 단순히 예술적 표현이 아니다. 

돌을 깎는 것은 대단히 고된 작업이다. 

종교적 심성으로 만들게 된다. 

복을 내려줄 신을 상상하면서 돌기둥을 만든다. 

당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던 하나님과는 대조된다. 

하나님이 어떤 형상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더라면, 우상들과 경쟁력이 있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한 모양이라도 자신의 대표하는 조각을 만들지 말라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과 관계 맺고 있는 인간이다. 

다른 어떤 형상도 하나님을 대변할 수 없다. 

그러니 하나님의 전략은 인간과의 언약 관계를 통해 역사를 만들어 가시고, 이야기를 써 내려가시는 것이다. 

조각품으로 당신을 표현하지 않으시고, 관계와 역사와 서사로 표현하신다. 

그 속에 드러난 하나님을 계속 신뢰하며 따르며 사랑하며 살아갈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눈의 동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쉽게 따라가지 못한다. 

귀보다는 눈이 훨씬 욕망적이다.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확실히 욕망을 자극한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는 순식간에 뇌에 찍힌다. 

소리는 오래 걸리며 뇌는 소리를 해석하느라 쉽게 피곤해진다. 

사람들은 한 눈에 들어오는 금송아지를 세운다. 

그게 하나님이라고 속인다. 

농경 사회에서 송아지만큼 귀한 것이 없다. 

밭을 일구고 농작물을 나르는 일에 소가 기여한다. 

그런 소의 형상을 한 반짝이는 우상은 모든 사람들이 염원하는 풍요를 욕망하게 한다. 

곳곳에 돌기둥을 세워 자신들의 부를 위해 기도한다. 

곳곳에 금송아지를 세워 부의 근원인 가짜 하나님을 섬긴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짓을 골라서 한다. 

그 옛날 모세 때의 금송아지 사건을 모를 리 없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분노하셨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심판을 받았는지 그새 잊었다. 

경제적으로 풍요해지니, 정신이 허약해졌다. 

돈이 사람들을 망가뜨린다. 

 

욕망이 제어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거짓이 난무하다. 

빈 약속, 거짓 맹세, 쓸모 없는 언약(4절)이 퍼진다. 

결국 정보가 부족한 사람, 착한 사람, 타인을 믿어 보려는 사람들이 곤경에 빠지고 죽음에 이른다. 

사기가 판을 치니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불의한 사회는 제어되지 않는 욕망 덩어리, 즉 우상으로부터 비롯된다. 

 

전세 사기, 보이스 피싱, 금융 상품의 불완전 판매… 

죄다 사기다. 

남을 속여 자신의 잇속을 차린다. 

SNS 속에 포장된 거짓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필라델피아 켄싱턴의 마약 거리는 미국 제약 회사의 사기인 펜타닐의 결과다. 

돈을 잃고 신의를 잃고 모든 것을 잃는다. 

불의가 땅에 가득하다. 

 

우상이 판을 치면 사회는 불의하게 된다. 

하나님이 참을 수 없는 사회가 된다. 

물과 불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셨으니, 남는 것은 스스로 멸망하는 길이다. 

서로 싸우다 지옥을 만난다. 

지옥같은 사회를 위해 누가 지키며 누가 헌신하겠는가!
헌신하지 않는 공동체, 사회는 결국 외세의 먹이가 된다. 

침략이 잇따르고, 전쟁의 참화는 지옥의 지옥을 낳는다. 

 

현재 한국 사회도 우상이 판을 친다. 

지도자들이 우상 숭배자가 많다. 

점집이 여전히 방방곡곳에 있다. 

지도자들이 무당을 찾아간다. 

무당과 법사의 말을 듣고 자신과 사회의 미래를 맡긴다.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는다. 

경제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으나, 우상과 미신은 전근대적이다. 

그나마 아직은 신실한 주님의 백성이 남아 있다. 

그루터기들이 끝까지 남아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야 한다. 

 

성령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의 죄악을 불로 태워주시길 기도한다. 

우상을 좋아하는 우리의 본성에 불로 태우시고 물로 씻어주시길 기도한다. 

지금 함께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사람들의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시길… 

 

[오늘의 기도]

우상을 싫어하시는 하나님, 

불의한 세상을 혐오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겪고 계시는 딜레마를 생각합니다. 

사람을 사랑하시어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당신을 오늘도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내면, 속사람을 바꾸길 원하시는 주님의 의도를 인지합니다. 

주님! 

저의 속사람을 바꾸소서. 

더욱 사랑하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더욱 경건한 존재가 되게 하소서. 

나 자신과 남을 속이지 않게 하소서. 

속이는 사람들을 재빠르게 알아차리게 하소서. 

우상을 배척하고, 불의를 멀리하게 하소서. 

오직 주님을 사랑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11월 30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니, 주님의 법이 나의 기쁨입니다.

 

10 “내가 이스라엘을 처음 만났을 때에, 광야에서 만난 포도송이 같았다. 내가 너희 조상을 처음 보았을 때에, 제 철에 막 익은 무화과의 첫 열매를 보는 듯하였다. 그러나 바알브올에 이르자, 그들은 거기에서 그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바치고, 우상을 좋아하다가 우상처럼 추악해지고 말았다.11 이제 에브라임은 새와 같은 꼴이 될 것이다. 에브라임의 영광은 새처럼 날아갈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는 일도 없고, 여인들이 임신하는 일도 없고, 아기를 낳는 일도 없을 것이다.12 이미 낳아서 기르는 자식들은, 내가 빼앗을 것이다. 한 아이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백성을 버리는 날에, 재앙이 이 백성에게 닥칠 것이다.”13 “내가 보기에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습니다만, 에브라임이 제 자식들을 살인자에게 끌어다 주게 되었습니다.14 주님, 그들에게 벌을 내리십시오! 주님께서는 무슨 벌을 내리시고자 하십니까? 아이 배지 못하는 태를 주시고, 젖이 나지 않는 가슴을 주십시오.”

 

15 “이 백성의 온갖 죄악은 길갈에서 시작된다. 내가 그들을 미워하기 시작한 것도 길갈에서다. 하는 짓이 악하니, 그들을 나의 집에서 쫓아내겠다. 다시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이라는 것들도 모조리 나를 거슬렀다.16 에브라임은 그 밑동이 찍혀서 뿌리가 말라 버렸으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자식을 낳는다 하여도, 그들이 낳은 귀여운 자식들을 내가 죽게 할 것이다.”

17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 나의 하나님이 백성을 버리실 것이다. 그 백성은 만민 사이에서 떠도는 신세가 될 것이다.

 

 

NIV

Ephraim’s glory will fly away like a bird- no birth, no pregnancy, no conception(11절).

 

 

주석

11절. 여기서 ‘에브라임의 영광’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많은 자녀를 의미한다(IVP 성경주석).

13절.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정치적 혼란에 휩쓸리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납게 돌진해 온 앗수르 군대에 그 가족들을 노출시키도록 만든 것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절망적이다. 

이스라엘을 처음 만났을 때는 희망이 넘쳤다. 

광야를 걷다 먹기 좋은 포도송이를 만난다. 

오랜 갈증을 풀어주는 꿀맛이요 꿈맛이다. 

제 철 과일이 얼마나 맛있는가! 

무화과의 첫 열매를 기다리는 마음, 드디어 첫 열매를 맛보는 순간, 이 모든 절정들이 흘러간다. 

이스라엘은 우상을 더 좋아했다.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의존이 사라지고, 자신들의 욕망에 따라 우상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결국 우상처럼 되어 추악하고 더럽혀졌다. 

성전에는 창녀들이 제사장 노릇을 한다. 

몰렉 신은 자녀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다. 

이교적 행위는 보편적 윤리 의식을 저버린다. 

하나님의 율법은 내팽겨지고 추악한 우상을 따라 욕망의 화신이 된다. 

종교 행사가 변질되니, 일상에도 영향을 준다. 

가장 거룩해야 할 신 앞에서의 행위도 타락하니, 나머지 일상은 그저 추악의 반복이다. 

더 이상 회복을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스라엘의 영광은 날아가고, 그들의 비전도 사라진다. 

욕망과 비전은 다르다. 

욕망은 지극히 이기적인 열망의 발로요, 비전은 공공의 유익을 위한 소망의 발로다. 

사명과 비전은 사라지고, 욕망만 남아 사람들을 추악의 함정으로 내몬다. 

절망적이다. 

 

하나님의 최종 판단은 심판이다. 

그들을 자신의 땅에서 떠나 만국의 떠돌이가 되게 하시겠단다. 

본문 한 구절만 보면, 서글프고 아쉽고 그래서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하고 싶다.

그러나 호세아 시대를 조망하면 하나님이 이해된다. 

사람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고 싶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한 행동을 보면, 하나님도 이해가 된다. 

오죽하면 자신의 선지자에게 고멜을 아내로 삼게하고, 아이들의 이름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실까!! 

자신을 구원한 참 신을 버리고, 반역하고, 그 땅을 살육의 현장으로 만든 자들을 벌하시는 것이 당연한 일로 보인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성경에서 지울 수 없다. 

내 입맛에 맞게 하나님을 재단할 수 없다. 

그분은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이며, 그리고 용서도 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분의 자유다. 

나도 내 자유가 있듯이 그분도 그분의 자유가 있다. 

사실 그분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크다. 

그분이 당신의 자유를 극대화하면 나의 자유는 없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자유를 줄여가면서까지 나의 자유를 확보해주셨다. 

이런 분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사람들은 그분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때, 할 말이 없어진다. 

그분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분의 판단 앞에 겸허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교회는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그들의 본분이다. 

자신들의 의식이 확장되고, 지식이 축적되고, 관점이 넓어진다고 해서, 하나님과 우주를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성육신의 신비, 교회의 신비를 다 안다고 말하지 말자. 

그분의 자유와 뜻을 다 헤아린다고 주장하지 말자. 

그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분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일이다. 

이해하기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해를 넘어서는 요소를 인정하라는 말이다.

아무리 아이들이 똑똑해도 부모의 사랑과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때로 부모는 아이를 위해 소리쳐야 하는 순간이 있다. 

때로 부모는 아이를 위해 침묵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혹시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해야 신뢰하겠다고 말하는 똑부러진 7살 어린이 같이 행동하는 것은 아닌가. 

 

교회들이 더 이상 우상숭배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돈의 우상, 권력의 우상, 욕망의 우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보다 더 높아진 그 어떤 것도 우상이다. 

팀 켈러정의에 따르면, 가짜 신, 즉 우상이란 “우리의 삶에 아주 중심적이고 본질적이어서 만약 그것을 잃게 되었을 때 우리의 삶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란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삶의 의미 100%를 두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팀 켈러는 “인간의 마음이 우상 공장”이라고 썼다.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 

마음을 살피지 않는 교회 지도자가 그 자리에 있으면 교회는 결국 우상 숭배를 하게 된다. 

 

돈과 권력을 주의하라. 

지도자들이여, 주의하라. 

나여! 주의하라. 

 

[오늘의 기도]

우상 숭배로 점철되어 있는 한국 사회와 교회를 용서하여 주세요. 

한국 교회의 예배가 과연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리어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여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게 돕고 있는지는 아닌지 돌아봅니다. 

절실한 필요를 주님께 아뢰는 것이 어찌 문제가 되겠습니까! 

문제는 절실한 필요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문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뜻을 구하면서 생기는 절실한 필요가 아니라, 자신의 유익과 편안을 추구하면서 생기는 절실한 필요가 아닌가요. 

주님, 저와 우리 교회를 다시 회복시켜 주소서. 

진정한 부흥을 허락하소서. 

진정한 부흥은 마음의 우상을 버리고, 오직 주님을 사랑하고,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상 밖으로 넘쳐나는 겁니다. 

이런 부흥이 일어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11월 29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부르짖음이 주님 앞에 이르게 해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

 

1 이스라엘아, 너희는 기뻐하지 말아라. 이방 백성들처럼 좋아 날뛰지 말아라.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떠나서 음행을 하였다. 너희는 모든 타작 마당에서 창녀의 몸값을 받으며 좋아하고 있다.2 그러나 타작 마당에서는 먹거리가 나오지 않고, 포도주 틀에서는 새 포도주가 나지 않을 것이다.3 에브라임이 주님의 땅에서 살 수 없게 되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고,  앗시리아로 되돌아가서 부정한 음식을 먹을 것이다.4 이방 땅에서는, 주님께 포도주를 제물로 부어 드릴 수 없고, 그들이 바치는 제물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먹는 것은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사람들마다 부정을 타게 될 것이다. 그들이 먹는 것은 허기진 배나 채울 수 있을 뿐, 주님께서 계신 집으로 가져다가 바칠 것은 못 된다.5 절기가 오고, 주님께 영광을 돌릴 잔칫날이 돌아와도, 무엇을 제물로 드릴 수 있겠느냐?6 재난이 닥쳐와서 백성들이 흩어지는 날, 이집트가 그 피난민을 받아들여도, 끝내, 멤피스 땅에 묻히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가지고 간 귀중한 금은 보화는 잡초 속에 묻히고, 살던 곳은 가시덤불로 덮일 것이다.

 

7 이스라엘은 알아라. 너희가 보복을 받을 날이 이르렀고, 죄지은 만큼 벌받을 날이 가까이 왔다. 너희는 말하기를 “이 예언자는 어리석은 자요, 영감을 받은 이 자는 미친 자다” 하였다. 너희의 죄가 많은 만큼, 나를 미워하는 너희의 원한 또한 많다.8 하나님은 나를 예언자로 임명하셔서 에브라임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예언자가 가는 길목마다 덫을 놓았다. 하나님이 계신 집에서마저, 너희는 예언자에게 원한을 품었다.9 기브아 사건이 터진 그 때 못지않게, 이 백성이 더러운 일을 계속한다. 주님께서 이 백성의 죄악을 기억하시고, 그릇된 행실을 다 벌하실 것이다.

 

NIV

The prophet, along with my God, is the watchman over Ephraim, yet snares await him on all his paths, and hostility in the house of his God(8절).

 

주석

9절. ‘기브아 사건이 터진 그 때’는 이스라엘 역사의 암흑 시기, 그리고 레위인의 첩과 그 사건의 여파를 회고하는 말이다(삿 19-21장). 사사기 저자의 평가는 이렇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이런 판결은 호세아의 시대에도 적절했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거룩이 훼손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거룩의 개념을 넣어주시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오셨다. 

존재, 시간, 공간에 구분을 통해 거룩을 알고 느끼게 하셨다. 

성소, 지성소를 두어 안팎 공간적 거룩을 보여주셨다. 

안식일과 절기를 두어 시간적 거룩을 제시하셨다. 

먹을 수 있는 동물과 없는 동물, 제물로 바칠 동물과 그렇지 못한 동물을 구분하여 존재적 거룩을 예시하셨다. 

주님은 거룩하시니 당연히 그의 백성들도 거룩해야 했다. 

 

그러나 거룩이 훼손되었다. 

하나님을 버리고 음란하게 다른 신을 섬겼다. 

그 순간 거룩은 훼손되어 버렸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율법에서 말했던 거룩의 기준들이 다 무너질 것이다. 

하나님을 자신들의 기준대로 대할 것이다. 

자신들이 아는 대로, 경험한 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더 이상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를 기뻐 받으실 수 없다. 

마음이 떠난 자들의 제사는 하나님께 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배와 공동체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뿐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쏟지 못하고 젯밥인 고기에만 눈길을 보낸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계획에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자신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고 굶주린 성욕을 채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에게는 손가락질을 한다. 

미친 놈이라 욕한다. 

원한과 미움을 품는다. 

언제든 예언자들을 죽일 준비가 되어 있다. 

사실 호세아처럼 인생을 걸어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하는 모습을 보면 미쳤다고 할 만 하다. 

음녀를 아내로 두지 않나, 아이들의 이름을 저주의 이름으로 짓지 않나. 

호세아의 말들이 그들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원래 하나님의 말씀은 달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분의 말씀은 때로 날카로운 칼이요, 묵직한 도끼다. 

우리 존재 한복판에 쑥 들어와 헤집고 나간다. 

그동안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고, 변화를 만든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있다. 

그러기에 반발하고 저항한다. 

저항감이 없는 기도 생활은 정직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님 앞에 서면 평안과 함께 저항감도 느끼곤 한다. 

그분은 평화의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의 죄를 싫어하는 거룩한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사랑과 거룩이 그분께 동시에 공존하니, 인간은 양가 감정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그 저항감을 갖고 계속 그분 앞에 서야 한다. 

 

존재의 고통을 안고 다시 주님 앞에 선다. 

나의 죄와 부족함을 알려주시면 알려주시는대로 받아내야 한다. 

그리고 오늘도 정직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저도 거룩하길 원합니다. 

거룩을 유지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유혹도 많고, 거짓도 많고, 이론도 많습니다. 

숱한 이론이 주님의 말씀과 메시지를 난도질합니다. 

물론 어떤 사상과 이론은 주님의 말씀을 새롭게 하고 더 돋보이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음란한 우상 숭배를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주님, 분별의 지혜를 더하소서. 

예수님을 닮아 거룩함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기도의 삶에서 저항감이 몰려 오더라도 참고 인내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