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6 24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5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 다윗이 군대를 거느리고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웠다. 블레셋 사람과 싸우는 전투에서 다윗이 몹시 지쳐 있을 때에,

16 거인족의 자손인 이스비브놉이라는 사람이 삼백 세겔이나 되는 청동 창을 들고, 허리에는 칼을 차고, 다윗을 죽이려고 덤벼들었다.

17 그러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블레셋 사람을 쳐죽이고, 다윗을 보호하였다. 그런 다음에는, 다윗의 부하들이 다윗에게, 다시는 자기들과 함께 싸움터에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고서 그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은 이스라엘의 등불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고자 합니다."

18 뒤에 다시 곱에서 블레셋 사람과 전쟁이 일어났다. 그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가 거인족의 자손인 삽을 죽였다.

19 곱에서 블레셋 사람과 전쟁이 일어났다. 그때에는 베들레헴 사람인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을 죽였는데, 골리앗의 창자루는 베틀 앞다리같이 굵었다.

20 가드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에 거인이 하나 나타났는데, 그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여섯 개씩 모두 스물넷이었다. 사람도 거인족의 자손 가운데 하나였다.

21 그가 이스라엘을 조롱하므로, 다윗의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였다.

22 사람은 모두 가드에서 태어난 거인족의 자손인데, 다윗과 부하들에게 모두 죽었다.

 

블레셋 거인들을 죽인 다윗의 용사들이 소개됩니다. 이스비브놉으로부터 다윗을 구해내고 왕의 출전을 만류한 아비새(15-17절), 곱에서 거인족 삽을 죽인 십브개(18절), 가드 사람 골리앗을 무찌른 엘하난(19절), 가드에서 거인족을 죽인 다윗의 조카 요나단(20-21절)입니다.

 

다윗 혼자 이룬 왕국이 아닙니다. 늘 그의 곁을 지킨 장수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지쳐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운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돕고 의지한 벗들이었습니다. 내 곁에서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동역자들의 이름을 떠올려 봅시다. 아름다운 동역의 관계로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간구합시다.

 

——

어게인 전쟁 

 

다시 전쟁이다. 

이번엔 다윗이 직접 출전한다. 

한동안 다윗은 왕궁에서 거닐면서 전쟁을 멀리서 지휘했다. 

그러다가 죄를 저질렀다.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청부살해했다. 

죄가 다윗 혈통 사이의 죽고 죽이는 사악한 범죄를 낳았다. 

그러나 이제 다시 다윗은 전장터에 나가서 싸우고 있다. 

늙은 나이에 전장터를 다니는 것은 힘든 일이다. 

최근에 압살롬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내전을 겪었다. 

그런 경험들이 그로 하여금 다시 전쟁터로 부른 것인지도 모른다. 

내전이 있으니, 외부의 적이 처들어 온다. 

다윗 왕국의 약점이 보인 것이다. 

오랜 시절 원수처럼 지냈던 블레셋이 처들어왔다. 

거인들을 대동해서 말이다. 

옛날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던 처럼 많은 이스라엘의 용사들이 일어나 거인들을 죽였다. 

 

공동체적 약점

 

약점이 노출되면 적군은 언제든지 처들어 있다. 

그래서 내부 분열이 최대의 적인 것이다. 

신뢰관계의 회복, 불만의 소통, 적극적인 설명과 소통, 공정한 인사관리 

모든 것이 내부 분열을 막고, 공동체의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다. 

리더십은 전체 공동체를 위해 깊이 헌신할 필요가 있다. 

 

메시아 왕국의 용사들

 

다윗 외에 이런 용사들이 있었는지 몰랐다. 

아비새, 십브개, 엘하난, 요나단 

이런 위대한 용사들이 있었기에 다윗 왕국이 유지되었다. 

책사도 필요하고 직접 전쟁에 출전할 용사, 장군도 필요하다. 

그렇게 왕국이 유지되는 것이다. 

 

메시아의 나라도 책사와 용사가 필요하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유일한 왕이시다. 

현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인간인 책사와 용사들이 있어야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가 활성화된다. 

모두 소중하다. 

 

 

팀웍의 필요성 

 

그런면에서 팀웍은 필요한 자질이다.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공동의 목표와 이익을 위해 함께 달려갈 있는 능력. 

상대방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함께 일할 있는 방법을 찾는 . 

실무자와 관리자가 어떻게 팀웍을 기르고 일할 있을까! 

탁월한 성취를 위해 높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서로의 장점과 의견을 최대한 많이 존중하고 그들이 주도적으로 일할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 

생각나는 피드백이 100이라면, 입으로 건네는 피드백은 20 정도가 적당할 같다. 

모든 것을 피드백하는 것은 의욕을 빼앗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여백을 주어야 한다. 

비록 성과가 최상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서로 협력관계라면 더욱이 그렇다. 돈을 주고 시키는 갑을관계라면 모든 피드백을 전달하고 논의를 함이 맞다. 

그러나 상호협력관계라면, 더욱이 자발적인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라면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상대방의 자율성과 주도성, 창의성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도록 돕는 일이 핵심이다. 

특히 실무자가 자기의 전문성을 표현할 있도록 도와야 한다. 

모든 조직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 공동체의 관리자는 이럴 필요가 있다고 본다. 

 

상위가치_과정 행복

 

이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의 성장을 도우려고 ,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소중한 용사들을 얻을 있다. 

과거에는 충성이 상위가치였지만, 지금은 상호 존중을 통한 과정에서의 행복이 상위가치다. 

과정이 서로 즐겁고 행복하다면 결과의 부족함에 대해서는 용납이 가능하다. 

그러나 과정이 불행한 상태에서 최고의 성과가 나왔다면 그것은 어느 개인의 개인기, 개인적 역량의 표출이고, 결국 팀은 오래가기 어렵다. 

우리는 팀으로 존재한다. 공동체로 존재한다. 

그러기에 자신의 생각을 조금은 주장하고 서로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좋은 용사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

 

하나님, 팀으로 일할 있도록 도와주세요. 

좋은 팀원 서로 존중하면서 과정에서의 행복을 누릴 있는 팀웍을 만들어 주세요. 

그래서 메시아 왕국의 아름다움이 더욱 강하게 드러나게 도와주세요. 

결과는 오직 주님께 맡기고 우리 안에 아름답게 퍼져나가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6 23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23 요압은 이스라엘의 군대 사령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으로 이루어진 경호원들의 지휘를 맡고,

24 아도니람은 부역 감독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역사 기록관이 되고,

25 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26 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제사장이 되었다.

1 다윗 시대에 동안이나 흉년이 들었다. 다윗이 주님 앞에 나아가서 곡절을 물으니,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사울과 그의 집안이 기브온 사람을 죽여 살인죄를 지은 탓이다."

2 다윗은 기브온 사람을 불러다가 물어 보았다. (기브온 사람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의 자손이 아니라, 아모리 사람 가운데서 살아 남은 사람들이며, 이미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살려 주겠다고 맹세하였는데도, 사울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편파적으로 사랑한 나머지, 있는 대로 그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3 다윗이 기브온 사람에게 물었다. "내가 당신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소? 내가 무엇으로 보상을 하여야, 주님의 소유인 백성에게 복을 빌어 주시겠소?"

4 기브온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사울이나 그의 집안과 우리 사이의 갈등은 은이나 금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다윗이 그들에게 물었다. "그러면 당신들의 요구가 무엇이오? 내가 들어 주겠소."

5 그들이 왕에게 말하였다. "사울은 우리를 학살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영토 안에서는, 우리가 어느 곳에서도 살아 남지 못하도록, 우리를 몰살시키려고 계획한 사람입니다.

6 그의 자손 가운데서 남자 일곱 명을 우리에게 넘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택하신 사울이 살던 기브아에서, 우리가 주님 앞에서 그들을 나무에 매달겠습니다." 왕이 약속하였다. "내가 그들을 넘겨 주겠소."

7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들 사이에 계시는 주님 앞에서 맹세한 일을 생각하여,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은, 아껴서 빼놓았다.

8 대신에 왕은 아야의 리스바가 사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알모니와 므비보셋 붙잡고, 사울의 메랍이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인 아드리엘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다섯을 붙잡아다가,

9 기브온 사람의 손에 넘겨 주었다. 기브온 사람이 주님 앞에서 그들을 산에 있는 나무에 매달아 놓으니, 일곱이 함께 죽었다. 그들이 처형을 받은 것은 곡식을 거두기 시작할 무렵,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때였다.

10 때에 아야의 리스바 굵은 베로 만든 천을 가져다가 바윗돌 위에 놓고, 밑에 앉아서,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때로부터 하늘에서 주검 위로 가을 비가 쏟아질 때까지, 낮에는 공중의 새가 주검 위에 내려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들이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11 아야의 딸이며 사울의 첩인 리스바가 이렇게 하였다는 소문이 다윗에게 전해지니,

12 다윗이 길르앗의 야베스로 가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주민에게서 찾아왔다. (블레셋 사람이 길보아 산에서 사울을 죽일 때에, 블레셋 사람이 사울과 요나단의 시신을 벳산의 광장에 매달아 두었는데, 거기에서 시신을 몰래 거두어 이들이 바로 길르앗의 야베스 주민이다.)

13 다윗이 이렇게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거기에서 가지고 올라오니, 사람들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다른 사람들의 뼈도 모아서,

14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지파의 땅인 셀라에 있는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무덤에 합장하였다. 사람들이, 다윗이 지시한 모든 명령을 따라서 그대로 뒤에야, 하나님이, 땅을 돌보아 주시기를 비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주석

기브온 사람들(1-2): 기브온은 베냐민 지파의 영토에서 예루살렘 북서쪽으로 1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 9장에 기록된 사건의 결과 조약에 의해 보호를 받았다(IVP 성경배경주석).

 

사울이 기브온과 맺은 조약을 어기고 그들을 죽인 죄로 이스라엘에 삼 년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에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 집안 사람의 목숨을 요구했고(1-6절), 사울 왕가의 아들 일곱 명을 나무에 매달았습니다(7-9절). 사울의 아내 리스바는 오랜 기간 주검을 지킵니다. 이는 다윗 왕을 향해 죽은 아들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간청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들의 뼈를 조상의 무덤에 합장해주었습니다(10-14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동시에 기브온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은 기브온과 화해하지 않고는 회복될 수 없었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한 채 우리만의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웃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태도들이 바로 잡히고, 약한 자들이 억울하게 차별당하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버리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신 멋대로 제사를 드린다거나 아말렉의 전리품을 함부로 취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겠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니, 사울은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나가려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몰살시키려고 했다. 

하나님은 일을 그냥 버려 없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기브온의 하나님이기도 하시다. 

 

그렇지만 역시 오늘날의 문화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기브온 사람들의 요구도 요즘 상식 밖이다. 

사울의 잘못을 그의 아들들에게 요구하는데, 특히 사울의 메랍과 아드리엘 사이의 다섯 아들을 함께 속죄제물로 바친 사건은 충격적이다.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어쩔 없이 사울 왕가의 사람들을 속죄제로 바쳐야 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겠으나 지금의 상식으로는 도전히 납득하기가 어렵다. 

사람을 속죄물로 바치라는 기브온의 요구도 무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요구였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자신들이 당한 죽음과 학살과 고통을 생각해 , 정당한 요구라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사울 왕의 죄를 다윗에게 책임지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사울 왕의 죄는 그가 죽음으로써 값을 치렀다고 있으나, 기브온 사람들의 고통은 신원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매우 오랜 시간 끝에 기브온의 사람들의 마음의 고통을 달래 주신다. 

여러가지 생각이 마구 올라온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기브온 사람들의 고통의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사울 왕가 사람들을 죽임으로서 그들의 마음이 시원해졌는가? 

사울 왕의 죄의 책임을 다윗 시대에 묻고 계시는가? 

조금은 이해가 안되는 내용들이 서로 맞부딪힌다. 

 

모든 것에는 그의 맞는 때가 있는 모양이다. 

예수님도 3년간의 공생애 시간을 가지셨다. 

하필 3년인가! 1년일 수도 5년일 수도 있는데, 굳이 3년의 시간을 보내신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의 시간을 어찌 인간인 내가 단정짓거나 판단할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때가 있다. 때를 기다리면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집트에서 고통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유다사람들이 고토로 복귀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메시아 나라를 시작하신 것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기브온의 억울함을 신원해 주신 것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성경을 읽어가는 사람들은 어쩔 없이 때를 기다리게 된다. 

예수님의 재림의 기다림이 가장 오랜 시간의 흐름 뒤인 같다. 

신원의 때가 있고, 회복의 때가 있고, 고통의 때가 있고, 슬픔의 때가 있다. 

회개의 때가 있다.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때가 있다. 

 

새로운 리더들은 자신들을 위한 삶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메시아의 나라를 위한 삶을 살아야 것이다. 

1년차, 2년차, 그리고 올해 새로 뽑히는 신입간사 모든 사람들이 미래의 리더들이다. 

이들 중에 메시아의 나라를 이끌고 나갈 영적 거장들이 나와야 한다. 

지성과 감성, 영성을 겸비한 영적 리더들 

말씀 속에서 지성이 숨을 쉬고, 감성이 자라며, 영성을 겸비한 사람들이 나오기를 소망한다. 

이들을 통해 공동체의 회복을 꿈꾼다. 

이들이 만들어갈 미래의 메시아의 나라를 상상한다. 

더욱 겸손하게 리더로서 자라길 소망한다.   

 

예전에 아벱의 리더의 삶에 필요한 덕성에 대해 정리해 적이 있다. 

 

*** 복음주의자 (하나님 나라 운동가) 자세

1) 변혁을 위한 희생과 헌신을 두려워하지 마라_복음주의적 변혁가
- 나의 변화(치유), 친구의 변화(전도), 교회와 사회의 변화(리더십)
-
도전 이후에는 인내다.
-
불평과 변혁 : 불평엔 헌신을 찾아볼 없다. 그러나 변혁가는 불평의 지점에 뛰어든다.
-
복음으로 자기 자신과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라와 세계에 유의미한 변화를 있는 사람이다. 순종과 비판을 동시에 있는 사람이다. 복음에 대해서는 순종으로, 성경의 원리에 위배되는 사람이나 조직, 구조에 대해서는 비판과 변혁의 자세로 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2) 내외부를 통합하라_내외면의 통합과 성숙
-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건강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살펴보라.
-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사회적 사건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관찰하라. 

-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아 혹시 우리도 빠질지 모르는 교만, 허영, 가식, 위선을 벗어버리고 관계와 소통을 증가시키면서 외부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그리스도인, 외부세계의 변화에 민감하며 세상이 무엇을 향해 가는지 인식하고, 그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해 있는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

 

3)소명을 찾고 동역자와 협력하라_소명과 동역
-
자신의 소명을 깨달아 알아 소명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소명의 자리에서 통전성, 내면과 외부를 통합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 더불어 자신의 소명과 다른 소명의 사람들과 관계 맺고 그들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협력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 통전적 복음주의자

이런 사람들을 저는 통전적 복음주의자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원한다. 교회에서도 순종과 비판을 동시에 사용할 알며, 사회에서도 순종과 비판을 동시에 사용할 아는 사람. 자신의 삶의 위치가 어디든지 간에 자신의 소명을 따라 내면을 점검하면서 외부세계와 소통할 있는 사람.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려주며 복음을 전할 있는 사람... 

 

과거의 생각이지만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벱은 여전히 복음주의적 변혁가의 출현을 기다린다. 

그렇지만 내외면의 통합과 성숙을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소명을 깨달아 알고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들과 동역하는 사람들이다. 

말씀과 기도, 주되심과 세계관 교육 모든 것이 복음주의적 변혁가의 출현을 위한 것이다. 

 

때를 기다린다. 

 

 

2021 06 22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1 즈음에 불량배 사람이 곳에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세바였다. 그는 비그리의 아들로서, 베냐민 사람이었다. 그는 나팔을 불면서, 이렇게 외쳤다. "우리가 다윗에게서 얻을 몫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이새의 아들에게서 물려받을 유산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아, 모두들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자!"

2 말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은 다윗을 버리고,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라갔다. 그러나 유다 사람은 요단 강에서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줄곧 자기들의 왕을 따랐다.

3 다윗은 예루살렘의 왕궁으로 돌아온 뒤에, 예전에 왕궁을 지키라고 남겨 후궁 명을 붙잡아서, 방에 가두고, 감시병을 두었다. 왕이 그들에게 먹을 것만 주고, 이상 그들과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죽을 때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냈다.

4 왕이 아마사에게 명령하였다. "장군은 유다 사람을 사흘 안에 모아 나에게 데려 오고, 그대도 함께 오시오."

5 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모으러 갔으나, 왕이 그에게 정하여 기간을 넘겼다.

6 그래서 다윗은 아비새에게 명령하였다.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도 우리를 해롭게 것이오. 그러므로 장군은 나의 부하들을 데리고 그를 뒤쫓아 가시오. 혹시라도 그가 요새화된 성읍들을 발견하여 그리로 피하면, 우리가 찾지 못할까 염려되오."

7 그래서 요압의 부하들과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과 모든 용사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아 가려고, 아비새를 따라 예루살렘 밖으로 나갔다.

8 그들이 기브온의 바위 곁에 이르렀을 때에, 아마사가 그들의 앞으로 다가왔다. 요압은 군복을 입고, 허리에 띠를 띠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칼집이 달려 있고, 칼집에는 칼이 들어 있었다. 요압이 나아갈 때에, 칼이 빠져 나와 있었다.

9 요압은 아마사에게 "형님, 평안하시오?" 하고 말하면서,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턱수염을 붙잡고 입을 맞추었다.

10 요압이 다른 손으로 칼을 빼어 잡았는데, 아마사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요압이 칼로 아마사의 배를 찔러서, 그의 창자가 땅바닥에 쏟아지게 하니, 다시 찌를 필요도 없이 아마사가 죽었다. 그런 다음에 요압은 자기 동생 아비새와 함께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아 갔다.

11 때에 요압의 부하 사람이 아마사의 주검 곁에 서서 외쳤다. "요압을 지지하는 사람과 다윗 쪽에 사람은 요압 장군을 따르시오."

12 그러나 아마사가 길의 한가운데서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으므로, 지나가는 모든 군인이 멈추어 서는 것을, 요압의 부하가 보고, 아마사를 길에서 들판으로 치워 놓았다. 그런데도 그의 곁으로 지나가는 군인마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요압의 부하가 아마사의 주검을 옷으로 덮어 놓았다.

13 그가 길에서 아마사를 치우자, 군인들이 모두 요압을 따라서,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아 갔다.

14 세바가 모든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로 두루 다니다가, 아벨 지역과 벳마아가 지역과 베림의 지역까지 이르렀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그의 뒤를 따랐다.

15 요압을 따르는 군인들은 곳에 이르러서, 벳마아가의 아벨을 포위하고, 세바를 치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성읍을 보면서 둔덕을 쌓으니, 둔덕이 바깥 성벽의 높이만큼 솟아올랐다. 요압을 따르는 모든 군인이 성벽을 무너뜨리려고 부수기 시작하니,

16 성읍에서 슬기로운 여인 하나가 이렇게 외쳤다. " 말을 들어 보십시오.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장군께 드릴 말씀이 있으니, 요압 장군께, 이리로 가까이 오시라고, 말씀을 전하여 주십시오!"

17 요압이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요압 장군이십니까?" 하고 물었다. 요압이 "그렇소" 하고 대답하니, 여인이 요압에게 " 여종의 말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요압이 말하였다. "어서 말하여 보시오."

18 여인이 말하였다. "옛날 속담에도 '물어 것이 있으면, 아벨 지역에 가서 물어 보아라' 하였고, 그렇게 해서 무슨 일이든지 해결하였습니다.

19 저는 이스라엘에서 평화롭고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지금 이스라엘에서 어머니와 같은 성읍을 하나 멸망시키려고 애쓰십니다. 주님께서 주신 유산을 삼키려고 하십니까?"

20 요압이 대답하였다. "나는 절대로 그러는 것이 아니오. 정말로 그렇지가 않소. 나는 삼키거나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오.

21 일이 그런 것이 아니오. 사실은 에브라임 산간지방 출신인 비그리의 아들 세바라는 사람이, 다윗 왕에게 반기를 들어서 반란을 일으켰소. 여러분이 사람만 내주면, 내가 성읍에서 물러가겠소." 여인이 요압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의 머리를 성벽 너머로 장군께 던져 드리겠소."

22 그런 다음에, 여인이 주민에게 돌아가서 슬기로운 말로 설득시키니,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잘라서, 요압에게 던져 주었다. 요압이 나팔을 부니, 모든 군인이 성읍에서 떠나, 저마다 자기 집으로 흩어져서 돌아갔다. 요압은 왕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반란이 일어납니다. 앞선 남북 지파 간 논쟁의 결론으로 북이스라엘 지파에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세바가 북이스라엘 지파들의 민심을 이반시키는 선동을 하고,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를 따릅니다(1-7절). 요압은 왕이 임명한 군 지휘관 아마사를 죽입니다. 자신을 대신해 군 지휘관이 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8-13절). 한 여인의 지혜로 성을 무너뜨리지 않고 반란은 제압됩니다(14-22절).

 

아브넬을 죽이고 압살롬을 죽인 요압이 아마사도 제거합니다. 그의 복수와 야망 앞에서는 왕의 명령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한 온갖 비열하고 폭력적인 방법들이 난무합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이 땅 위에 임하길 기도합시다.

 

——

반란이 일어나니 연이어 발생한다. 

허기사 자신의 아들도 반역을 일으키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반역이 일어나면, 국가와 민족은 어려움을 겪는다. 

내전이 일어나고 수많은 무고한 시민, 백성이 죽는다. 

지도자들의 전쟁에 백성은 살아있는 체스판의 말이 되어 죽어나간다. 

 

사실 다윗 후궁의 잘못은 무엇인가? 

다윗이 정말 처철하게 응징해야하는 사람은 후궁이 아니라 그의 아들들이었다. 

암논과 압살롬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후궁들은 어쩔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밖에 없다. 

그런 후궁들은 가두고 그들의 삶을 살피지 않은 것은 과연 왕의 역할인가!

 

세바의 반역으로 다시 전쟁의 기운이 감돈다. 

반역은 고대 사회에 언제나 두려움을 일으켰다. 

지도자들은 반역자들을 색출하는 작업을 쉼없이 진행했다. 

모반, 반역의 기미가 있으면 곧바로 숙청에 들어갔다. 

단순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공동체가 거의 파괴되지 직전까지 진행되는 것이 반역의 결과다. 

정권의 반대자들은 항상 있지만 반역을 통해 정권이 뒤집어 지면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 

 

요압은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정치군인이다.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삶을 살기 위해 살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떻게 다윗에게 오랫동안 충성했는지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정도면 다윗에게 반역을 일으키기 가장 좋은 인물이 요압이겠다. 

다윗을 왕으로 모시지만, 이하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신의 앞길을 막는 경우 가차가 없다. 

요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2021 06 19 토요일

여는 기도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피난처는 오직 주님뿐입니다.

 

31 때에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도 로글림에서 내려와서, 왕이 요단 강을 건너는 일을 도우려고, 요단 가에 이르렀다.

32 바르실래는 아주 늙은 사람으로, 나이가 여든 살이나 되었다. 그는 부자였으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왕에게 음식을 공급하였다.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말하였다. "노인께서는 나와 함께 건너가시지요. 나와 같이 가시면 내가 대접하겠습니다."

34 그러나 바르실래는 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얼마나 오래 산다고, 임금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겠습니까?

35 나이가 지금 여든입니다. 제가 나이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어떻게 가릴 알겠습니까? 종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신들, 맛을 알기나 하겠습니까? 노래하는 남녀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들, 제가 나이에 알아듣기나 하겠습니까? 그러니 종이 높으신 임금님께 다시 짐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36 종은 임금님을 모시고 요단 강을 건너려는 뿐인데,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이러한 상을 저에게 베푸시려고 하십니까?

37 부디 종을 돌아가게 하셔서, 고향 마을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덤 곁에서 죽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신에 종의 아들 김함이 여기에 있으니, 그가 높으신 임금님을 따라가게 하시고, 임금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그에게 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38 그러자 왕이 약속하였다. "물론, 내가 김함을 데리고 가겠소. 그리고 노인께서 보시기에 만족하도록, 내가 그에게 대하여 주겠고, 나에게 특별히 부탁한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이루어 드리겠소."

39 드디어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넜고, 왕도 건너갔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복을 빌어 주니, 바르실래가 자기의 고장으로 돌아갔다.

40 왕이 길갈로 건너갈 때에 김함도 왕을 따라서 건너갔다.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을 따라서, 요단 강을 건너갔다.

41 그런데 갑자기 이스라엘 사람이 왕에게 몰려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우리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이 우리와 의논도 없이, 임금님을 몰래 빼돌려 임금님과 임금님의 가족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를 모시고 건넜습니까?"

42 그러자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임금님과 가깝기 때문이다. 너희가 이런 일로 그렇게 화를 이유가 무엇이냐? 우리가 임금님께 조금이라도 얻어 먹은 것이 있느냐? 임금님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주신 것이 있어서 그러는 아느냐?"

43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은 유다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께 요구할 권리가 너희보다 갑절이나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희는 우리를 무시하였느냐? 높으신 임금님을 우리가 다시 모셔와야 되겠다고 먼저 말한 사람이, 바로 우리가 아니었느냐?" 그래도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강경하였다.

 

다윗이 마하나임에 머무를 때 음식을 공급했던 바르실래가 왕을 맞으러 나왔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다윗을 도운 공적으로 그의 가문 전체가 왕의 곁에서 혜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절합니다. 왕에게 짐이 될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바르실래는 아들 김함을 왕에게 부탁하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31-40절). 북이스라엘 지파들과 유다 지파는 왕을 사이에 두고 논쟁을 벌입니다(41-43절).

 

아첨과 속임수로 권력에 빌붙기 위해 혈안인 사람들 속에서 바르실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순수하게 다윗을 돕고자 했고 욕심 없이 물러설 줄 알았습니다. 모함과 배반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은 사람, 나를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을 진실하게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길 기도합시다.

 

 

——

반역은 진압되었다. 

왕의 귀환이 시작되었다. 

행렬이 뒤따른다. 많은 사람들이 왕을 축하하고 축복한다. 

왕도 나이가 들었지만, 나이가 많았던 바르실래가 왕을 배웅한다. 

요단 강을 건너는 일을 도우려고 함께 간다. 

왕은 그동안 바르실래의 재정적 섬김을 통해 유익을 누렸다. 

그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예루살렘으로 같이 가자고 요청한다. 

그러나 그는 정중히 거절한다. 나이가 많고 몸이 쇠하여 조용히 고행에서 죽고자 한다. 

대신 자신의 아들 김함을 추천한다. 왕의 통치에 쓸모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거한 것이다. 

바르실래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알고 있었다.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할 , 사람은 추해진다. 

노욕은 더욱더 그렇다. 

누릴 만큼 누린 사람이 죽을 때까지 보이는 욕망은 그야말로 욕이 나온다. 

그러나 인간은 욕심이 끝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먹을 것에 대한 의지도 끝이 없고, 잠자는 , 섹스 하는 것의 욕망도 끝이 없다. 

 

절제를 배우는 , 

나이가 들수록 더욱 많이 배워야 하는 것이 바로 절제다. 

그런데 많이 경험한 사람들이 많이 욕구하는 것이 심리적 현실이다.

쾌락은 강도 높은 쾌락을 낳는다. 

경험은 높은 농도의 경험을 욕구한다. 

그러니 나이가 많을수록 절제를 장착하기가 어려워진다. 

게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아는 이상, 굳이 욕망을 절제해야 이유가 별로 없어진다. 

돈과 권력이 주는 달콤함을 알고, 게다가 끝의 허망함을 경험한 사람들은 순간의 쾌락을 굳이 참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이는 그렇게 절제를 멀리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언약이 더욱 절실하다. 

세대를 넘어 가르쳐야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욕망 추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라면, 오랫동안 절제가 주는 유익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참고 인내할 있는 능력을 발휘할 있겠다. 그게 언약의 힘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세대를 넘어서 전달되어야 한다. 언약은 공동체를 형성하며, 인간 관계의 언약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언약은 신실함을 전제한다. 그러니 언약을 알고 언약을 오랫동안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어도 추해질 있는 것이다. 

 

약속을 깨는 것이 너무 쉬워지는 세상이다. 

사소한 약속도 소중하지만, 중요한 약속에 대해서는 정말 목숨 걸고 지켜내겠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요사이 군인들의 이야기를 종종 보고 듣는다. 

강철부대 군인들의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배운다. 

대의를 위해 여전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여군 특전사의 모습에 감동이 된다. 

군인정신의 핵심은 대의를 위한 자기 헌신이요. 국가 공동체와의 약속을 목숨을 바쳐 지켜내는 충성이다. 

어찌보면, 기독 공동체가 잃어버린 정신이 바로 군인 정신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물론 군대 문화의 불의함을 모르지 않으며, 대의에 의해 개인이 말살되는 현실이 옳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다만, 때로 기독인들이 보이는 절제에 대한 나약함은 안쓰럽다. 

끝까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지켜내는 . 언약에 충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감당해야 일이 많은데 기도의 자리에서 나의 욕망을 확인하고 때로 절제하는 훈련을 하고 싶다. 

나의 욕망을 하나님께 두는 훈련. 

때로 불가능해 보이는 훈련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감당하고 싶다. 

 

——

주님, 

제어하지 못하는 여러 욕망들을 봅니다. 

주님께 마음을 집중하고 다시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으로 성장할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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