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6 23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23 요압은 이스라엘의 군대 사령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으로 이루어진 경호원들의 지휘를 맡고,

24 아도니람은 부역 감독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역사 기록관이 되고,

25 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26 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제사장이 되었다.

1 다윗 시대에 동안이나 흉년이 들었다. 다윗이 주님 앞에 나아가서 곡절을 물으니,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사울과 그의 집안이 기브온 사람을 죽여 살인죄를 지은 탓이다."

2 다윗은 기브온 사람을 불러다가 물어 보았다. (기브온 사람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의 자손이 아니라, 아모리 사람 가운데서 살아 남은 사람들이며, 이미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살려 주겠다고 맹세하였는데도, 사울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편파적으로 사랑한 나머지, 있는 대로 그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3 다윗이 기브온 사람에게 물었다. "내가 당신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소? 내가 무엇으로 보상을 하여야, 주님의 소유인 백성에게 복을 빌어 주시겠소?"

4 기브온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사울이나 그의 집안과 우리 사이의 갈등은 은이나 금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다윗이 그들에게 물었다. "그러면 당신들의 요구가 무엇이오? 내가 들어 주겠소."

5 그들이 왕에게 말하였다. "사울은 우리를 학살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영토 안에서는, 우리가 어느 곳에서도 살아 남지 못하도록, 우리를 몰살시키려고 계획한 사람입니다.

6 그의 자손 가운데서 남자 일곱 명을 우리에게 넘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택하신 사울이 살던 기브아에서, 우리가 주님 앞에서 그들을 나무에 매달겠습니다." 왕이 약속하였다. "내가 그들을 넘겨 주겠소."

7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들 사이에 계시는 주님 앞에서 맹세한 일을 생각하여,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은, 아껴서 빼놓았다.

8 대신에 왕은 아야의 리스바가 사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알모니와 므비보셋 붙잡고, 사울의 메랍이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인 아드리엘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다섯을 붙잡아다가,

9 기브온 사람의 손에 넘겨 주었다. 기브온 사람이 주님 앞에서 그들을 산에 있는 나무에 매달아 놓으니, 일곱이 함께 죽었다. 그들이 처형을 받은 것은 곡식을 거두기 시작할 무렵,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때였다.

10 때에 아야의 리스바 굵은 베로 만든 천을 가져다가 바윗돌 위에 놓고, 밑에 앉아서,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때로부터 하늘에서 주검 위로 가을 비가 쏟아질 때까지, 낮에는 공중의 새가 주검 위에 내려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들이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11 아야의 딸이며 사울의 첩인 리스바가 이렇게 하였다는 소문이 다윗에게 전해지니,

12 다윗이 길르앗의 야베스로 가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주민에게서 찾아왔다. (블레셋 사람이 길보아 산에서 사울을 죽일 때에, 블레셋 사람이 사울과 요나단의 시신을 벳산의 광장에 매달아 두었는데, 거기에서 시신을 몰래 거두어 이들이 바로 길르앗의 야베스 주민이다.)

13 다윗이 이렇게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거기에서 가지고 올라오니, 사람들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다른 사람들의 뼈도 모아서,

14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지파의 땅인 셀라에 있는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무덤에 합장하였다. 사람들이, 다윗이 지시한 모든 명령을 따라서 그대로 뒤에야, 하나님이, 땅을 돌보아 주시기를 비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주석

기브온 사람들(1-2): 기브온은 베냐민 지파의 영토에서 예루살렘 북서쪽으로 1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 9장에 기록된 사건의 결과 조약에 의해 보호를 받았다(IVP 성경배경주석).

 

사울이 기브온과 맺은 조약을 어기고 그들을 죽인 죄로 이스라엘에 삼 년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에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 집안 사람의 목숨을 요구했고(1-6절), 사울 왕가의 아들 일곱 명을 나무에 매달았습니다(7-9절). 사울의 아내 리스바는 오랜 기간 주검을 지킵니다. 이는 다윗 왕을 향해 죽은 아들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간청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들의 뼈를 조상의 무덤에 합장해주었습니다(10-14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동시에 기브온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은 기브온과 화해하지 않고는 회복될 수 없었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한 채 우리만의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웃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태도들이 바로 잡히고, 약한 자들이 억울하게 차별당하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버리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신 멋대로 제사를 드린다거나 아말렉의 전리품을 함부로 취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겠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니, 사울은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나가려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몰살시키려고 했다. 

하나님은 일을 그냥 버려 없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기브온의 하나님이기도 하시다. 

 

그렇지만 역시 오늘날의 문화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기브온 사람들의 요구도 요즘 상식 밖이다. 

사울의 잘못을 그의 아들들에게 요구하는데, 특히 사울의 메랍과 아드리엘 사이의 다섯 아들을 함께 속죄제물로 바친 사건은 충격적이다.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어쩔 없이 사울 왕가의 사람들을 속죄제로 바쳐야 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겠으나 지금의 상식으로는 도전히 납득하기가 어렵다. 

사람을 속죄물로 바치라는 기브온의 요구도 무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요구였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자신들이 당한 죽음과 학살과 고통을 생각해 , 정당한 요구라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사울 왕의 죄를 다윗에게 책임지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사울 왕의 죄는 그가 죽음으로써 값을 치렀다고 있으나, 기브온 사람들의 고통은 신원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매우 오랜 시간 끝에 기브온의 사람들의 마음의 고통을 달래 주신다. 

여러가지 생각이 마구 올라온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기브온 사람들의 고통의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사울 왕가 사람들을 죽임으로서 그들의 마음이 시원해졌는가? 

사울 왕의 죄의 책임을 다윗 시대에 묻고 계시는가? 

조금은 이해가 안되는 내용들이 서로 맞부딪힌다. 

 

모든 것에는 그의 맞는 때가 있는 모양이다. 

예수님도 3년간의 공생애 시간을 가지셨다. 

하필 3년인가! 1년일 수도 5년일 수도 있는데, 굳이 3년의 시간을 보내신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의 시간을 어찌 인간인 내가 단정짓거나 판단할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때가 있다. 때를 기다리면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집트에서 고통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유다사람들이 고토로 복귀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메시아 나라를 시작하신 것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기브온의 억울함을 신원해 주신 것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성경을 읽어가는 사람들은 어쩔 없이 때를 기다리게 된다. 

예수님의 재림의 기다림이 가장 오랜 시간의 흐름 뒤인 같다. 

신원의 때가 있고, 회복의 때가 있고, 고통의 때가 있고, 슬픔의 때가 있다. 

회개의 때가 있다.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때가 있다. 

 

새로운 리더들은 자신들을 위한 삶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메시아의 나라를 위한 삶을 살아야 것이다. 

1년차, 2년차, 그리고 올해 새로 뽑히는 신입간사 모든 사람들이 미래의 리더들이다. 

이들 중에 메시아의 나라를 이끌고 나갈 영적 거장들이 나와야 한다. 

지성과 감성, 영성을 겸비한 영적 리더들 

말씀 속에서 지성이 숨을 쉬고, 감성이 자라며, 영성을 겸비한 사람들이 나오기를 소망한다. 

이들을 통해 공동체의 회복을 꿈꾼다. 

이들이 만들어갈 미래의 메시아의 나라를 상상한다. 

더욱 겸손하게 리더로서 자라길 소망한다.   

 

예전에 아벱의 리더의 삶에 필요한 덕성에 대해 정리해 적이 있다. 

 

*** 복음주의자 (하나님 나라 운동가) 자세

1) 변혁을 위한 희생과 헌신을 두려워하지 마라_복음주의적 변혁가
- 나의 변화(치유), 친구의 변화(전도), 교회와 사회의 변화(리더십)
-
도전 이후에는 인내다.
-
불평과 변혁 : 불평엔 헌신을 찾아볼 없다. 그러나 변혁가는 불평의 지점에 뛰어든다.
-
복음으로 자기 자신과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라와 세계에 유의미한 변화를 있는 사람이다. 순종과 비판을 동시에 있는 사람이다. 복음에 대해서는 순종으로, 성경의 원리에 위배되는 사람이나 조직, 구조에 대해서는 비판과 변혁의 자세로 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2) 내외부를 통합하라_내외면의 통합과 성숙
-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건강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살펴보라.
-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사회적 사건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관찰하라. 

-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아 혹시 우리도 빠질지 모르는 교만, 허영, 가식, 위선을 벗어버리고 관계와 소통을 증가시키면서 외부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그리스도인, 외부세계의 변화에 민감하며 세상이 무엇을 향해 가는지 인식하고, 그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해 있는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

 

3)소명을 찾고 동역자와 협력하라_소명과 동역
-
자신의 소명을 깨달아 알아 소명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소명의 자리에서 통전성, 내면과 외부를 통합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 더불어 자신의 소명과 다른 소명의 사람들과 관계 맺고 그들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협력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 통전적 복음주의자

이런 사람들을 저는 통전적 복음주의자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원한다. 교회에서도 순종과 비판을 동시에 사용할 알며, 사회에서도 순종과 비판을 동시에 사용할 아는 사람. 자신의 삶의 위치가 어디든지 간에 자신의 소명을 따라 내면을 점검하면서 외부세계와 소통할 있는 사람.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려주며 복음을 전할 있는 사람... 

 

과거의 생각이지만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벱은 여전히 복음주의적 변혁가의 출현을 기다린다. 

그렇지만 내외면의 통합과 성숙을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소명을 깨달아 알고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들과 동역하는 사람들이다. 

말씀과 기도, 주되심과 세계관 교육 모든 것이 복음주의적 변혁가의 출현을 위한 것이다. 

 

때를 기다린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