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7월 11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 마음이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내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40 나병 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로 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선생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42 곧 나병이 그에게서 떠나고, 그는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께서 단단히 이르시고, 곧 그를 보내셨다.

44 그 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된 것에 대하여 모세가 명령한 것을 바쳐서, 사람들에게 증거로 삼도록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나가서, 모든 일을 널리 알리고, 그 이야기를 퍼뜨렸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드러나게 동네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 곳에 머물러 계셨다. 그래도 사람들이 사방에서 예수께로 모여들었다.

 

주석

41절. 성경에서는 나병에 걸린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격리하도록 규정했다(레 13:45-46). 그래서 나병환자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으며, 건강한 사람은 나병환자들을 무시하기를 좋아했다.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는 일은 금지되었으며,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불쾌하게 여겼다(IVP 배경주석).

 

44절.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은 레위기 13-14장의 요구에 부합한다. 이에 따르면 나병에서 나은 사람이 아무런 제약 없이 유대인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제사장에게 검사를 받아야 한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 나병환자

제자들과 마을을 옮겨 다니며 말씀을 전한다.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왔으며 예수님의 등장이 이를 증명한다는 말씀은 어디에서나 충격이었다. 

그 말씀 자체도 힘이 있고 능력이 있었지만, 그 말씀 뒤에 귀신들이 떠나가고 병든 자들이 일어나는 현상을 경험한 사람들, 특히 제자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이 흐른다. 

새로운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기적같은 일들이 많이 벌어졌지만, 나병 환자의 고침은 모두에게 기억될만한 것이었다. 

그가 등장하자 모든 사람들이 길을 터 주었다. 

그를 만지는 것, 그와 몸이 닿는 것, 그 모든 것이 죄가 되었다. 

하나님께 저주 받은 사람, 그와 눈 마추지는 것조차 거부하곤 했다. 

그는 언제나 왕따였고 외톨이였다. 

병을 앓고 나서는 집에 들어가 가족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언제 몸의 살과 뼈가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 

가족들도 그를 피하고, 겨우 음식만 갖다 줄 뿐이다. 

가축,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점점 자신을 비하한다. 

자존감은 지하로 내려갔고, 자신감은 장롱 밑으로 쳐박혔다. 

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나았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외톨이. 

 

멀리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예수라는 분의 등장으로 온 마을이 시끄러웠다. 

귀신 들렸던 사람들이 나앗다고 쑥덕쑥덕이다. 

열병도 낫고, 앉은뱅이도 나앗단다. 

그렇다면 이 지긋지긋한 병도 고칠 수 있는 거 아닐까! 

실낱 같은 희망을 품는다.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좁은 방구석에서 몸을 일으켜 쪽문을 끼이익 연다. 

쏟아지는 태양 빛에 눈을 들 수가 없다. 

입과 코를 감쌓던 누더기 천으로 끌어 올려 눈을 가린다. 

온 몸에 칭칭 감고 있는 회색옷은 원래의 색이 바래서 회색인지 카키색인지 분간이 안된다. 

멀리서 사람들이 그의 등장에 놀라 그를 피해 돌아 지나친다. 

천천히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오랜만에 걸었던니 발 날이 아프다. 

아킬레스건도 뻐근하니 발목이 잘 안돌간다. 

그래도 터벅터벅 걸어간다. 

아이들이 놀란다. 

오랜만에 나병 환자를 대낮에 본 사람들은 흠칫흠칫 눈을 흘기며 옆으로 피한다. 

저쪽에 흙먼지가 많이 나는 곳이 보인다. 

누군가 연설을 하는 듯 보인다. 

사람들 중에 우는 자들도 있다. 

감사를 표하는 사람, 눈물을 흘리는 사람, 박수를 치는 사람… 

뭔가 일어나는 것이 틀림없다. 

 

“그래 마지막 희망을 걸어봐야지”
그에게로 다가간다. 

아람어로 구약 성경을 읽고, 설명하는 분이 보인다. 

때때로 설명과 명령이 반복되고, 그 때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군중이 갈라진다. 나병 환자를 봤기 때문이다. 

모두들 숨을 죽인다. 

홍해가 갈라지듯 옆으로 늘어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꽂힌다. 

부끄러움이야 병이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달고 살았다. 

부끄러움을 이기는 힘은 죽고 싶었기 때문에 나온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기에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다. 

무릎도 편치 않다. 

물집이 잡힌 무릎을 땅바닥에 꿇어 미끌어지듯 앞으로 나아간다. 

 

“선생인,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어느 순간 조용히 그의 행동을 지켜 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을 하신다. 

바로 그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다. 

저주받은 죄인의 몸에 손을 댔다. 

상상 밖의 일이었다. 

이제까지 말로만으로도 병도 고치고, 귀신도 내쫓았다.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되었다. 

모두들 충격적인 장면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벌어진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래 그렇게 해 주겠소. 몸아 깨끗해져라”

몸에 댄 손을 떼지 않으셨다. 

도리어 그의 몸을 천천히 쓰다듬듯 등으로 어루만졌다. 

충격의 도가니. 

그러자 그의 몸이 화끈거렸다. 

잘려나갔던 그의 코가 회복되고, 손가락이 다시 자랐다. 

발톱이 오르고, 새끼 발가락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몸이 회복되는 것이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도 알고 예수님도 알고 주변의 사람들도 알았다. 

그는 깨끗하게 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탄성이 흘러 나왔다. 

또 하나의 기적이 터진 것이다. 

 

“당신의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시오. 그리고 오늘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예수님의 다정한 당부의 말이 전해졌다. 

그는 흥분되었다. 

놀라운 기적에 어쩔 줄 몰랐다.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사장에게는 물론이고, 가족이며 친구며 모두에게 이 기적을 이야기해야 했다. 

이제 더 이상의 외로움은 끝났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일이 남았다. 

기쁨의 소식을 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자신을 고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이 사실은 변함이 없다. 

계속 외치고 또 외쳤다. 

예수님이 진정한 의사였다. 

 

나병환자를 만졌으니, 아무리 병을 고쳤다해도, 유대 율법에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야했다. 

마을 중심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병환자가 예수님이 자신을 만졌으며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다녔기 때문에, 도리어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저주받은 죄인이야”

참으로 황당하다. 

병을 고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부정적인 배척의 네이밍이었다. 

“저주받은 죄인”

그의 병과 함께 저주를 자신의 것으로 삼으셨다. 

그가 이 세상이 오신 이유다.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시러 오셨다. 

마을 중심으로 못 들어가도 괜찮다. 

외딴 곳도 예수님이 계시면 중심이 된다. 

사람들은 결국 예수님을 찾는다. 

죄인들의 죄를 자신의 것으로 삼으시는 주님, 

그분의 능력이 이제 서서히 세상에 나타난다. 

참 능력은 병고치는 능력이 아니라, 죄와 저주를 대신 짊어지는 능력이다. 

 

 

[오늘의 기도]

오 예수님,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대신 저주를 받으신 주님, 

당신이 낮아지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당신이 대신 저주를 받으셨으니, 우리가 고침을 입었습니다. 

더는 죄와 저주의 노예가 아닙니다. 

이제는 해방과 자유의 사람입니다. 

자유를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죄에서 구원하셨으니, 그 기쁨으로 일상을 살아갑니다. 

 

이 기쁨을 끝까지 전하게 하소서. 

죄의 종으로 외로움으로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전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7월 10일 수요일

여는 기도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십시오. 주님의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35 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36 그 때에 시몬과 그의 일행이 예수를 찾아 나섰다.

37 그들은 예수를 만나자 “모두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39 예수께서 온 갈릴리와 여러 회당을 두루 찾아가셔서 말씀을 전하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주석

37절. 시몬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이 최근의 평판이 가져온 최대의 기회를 놓치는 실수를 저지르고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수님은 단순히 기적을 행하는 분으로서 사람들이 자신을 찾는 것을 거부하셨다. 예수님은 구원자로 인식되기 원하셨다. 이 일을 이루고자 예수님은 가까운 마을들에서 복음을 전하셨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 외딴 곳

아주 이른 새벽, 예수님은 외딴 곳으로 가신다. 

그냥 잠이 일찍 깨신 것만은 아니다. 

기도하러 가셨다. 

아주 이른 새벽은 아직 해가 뜨기 전이다. 

동녁이 붉어온다. 

새들이 해를 향해 날아 오르니 그림자인지 새인지 모르겠다. 

아무도 깨우지 않기 위해 스르르 문을 연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사랑하는 제자들의 잠을 깨울지 모른다. 

기도야 어디서든 할 수 있지만, 특별한 곳이 있다. 

방해받지 않는 곳, 집중할 수 있는 곳, 새벽의 기운이 스며드는 곳, 

하늘과 맞닿은 곳, 작은 신음 소리도 크게 울리는 곳, 하나님의 눈이 향하는 곳, 

그 곳으로 간다. 

 

무슨 기도를 하시나?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주님께 묻는다. 

조용히, 때로는 소리를 내어, 하늘을 잠시 본다. 

붉은 빛이 나뭇잎 사이에 머문다. 

그 여린 빛이 하나님의 눈동자처럼 비친다. 

가늘게 뜬 눈으로 땅과 하늘을 흘긴다. 

다시 눈을 감고 하나님의 음성에 주목한다. 

자신의 눈에 담긴 하나님의 편지를 읽는다. 

하나님은 여기에 머물지 않기를 원하신다. 

아브라함을 불러 저 먼 미지의 땅으로 보내신 하나님, 

에스겔과 다니엘을 적들로 가득한 불안의 땅으로 이끄신 하나님, 

요나를 그의 소원과는 반대 방향으로 몰아붙이신 하나님, 

이제 자신과 동일체인 아들 예수를 다른 곳으로 이끄신다.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다. 

자신에게 집중하기보다 하나님께 집중한다. 

30분, 그리고 또 30분,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해진다. 

머물렀던 곳이 아니라, 새로운 곳으로, 낯선 곳으로 그래서 나그네로, 그 편지가 고딕체가 된다. 

 

제자들이 일어났다. 

선생님이 사라졌다. 

웅성웅성, 이 곳 저 곳, 주와 선생이신 예수님을 찾는 소리로 소란스럽다. 

베드로가 나선다. 

“예수님을 찾으러 밖으로 나가봅시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마을 주변을 둘러 찾는다. 

외딴 곳. 

정말 사람이 없던 곳, 저 멀리 예수님이 계신다. 

도마가 발견했다. 

그도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아니던가. 

홀로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만의 감이 있다. 

모두들 우르르 예수님께로 다가간다. 

“선생님, 모두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말씀도 안하시고 왜 혼자 계시나요? 다음부턴 말씀을…”

 

예수님이 일어나신다. 

동쪽의 태양 빛이 이미 강렬하다. 

그 빛이 예수님의 옷을 통과하니 더욱 빛나는 천사의 날개와 같다. 

확신에 찬 예수님의 얼굴은 기쁨과 단호함이 섞여 있다. 

인자한 웃음과 단단한 입술은 안 어울리 듯 어울린다. 

“가까운 마을로 가자. 여러 마을을 다녀야겠다. 그곳에서도 말씀을 선포해야 겠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소명이다. 가자!”

아침부터 움직이자신다. 

밥은 먹든지 해야 할 것 아닌가. 

예수님을 찾으로 온 많은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난뒤, 다시 걱정의 얼굴이 비친다.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야 한다. 

여러 마을을 다니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한 자리에 가능하면 머물러 있는 것이 익숙하고 편하다. 

이동은 건강할 때야 흥미진진한 모험이지, 조금이라도 아프면 곤욕이다. 

그래도 그분이 가자고 하시니, 따라 나선다. 

 

아침이 다 가기 전에 벌써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중앙 회당을 찾으신다. 

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고 다들 회개해야 한다고 선포하신다. 

그 선포가 어찌나 능력이 있던지,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갑자기 “악”하는 소리와 함께 그동안 귀신 들렸다 소문난 사람이 엎드러진다. 

예수님의 선포가 그대로 사람들의 마음과 육체에 닿는다. 

하나님 나라가 왔으니, 귀신은 그 능력을 잃는다. 

아픈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 온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병이 낫는다. 

아침에 조금이라도 원망했던 제자들은 그새 놀라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하루라도 그분을 따라다녔다면 그분의 능력이 어떠한지 알게 된다. 

예수님은 새로운 운동을 일으키시는 분이시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 당신의 기도를 봅니다. 

당신이 오랫동안 앉아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루를 시작하시는 모습,

신앙의 선배들이 그랬듯이 새로운 길을 두렴없이 시작하는 모습을 봅니다. 

주님, 저에게 당신의 용기를 허락하소서. 

새로운 길을 따를 수 있도록, 

두려움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흥분을, 

새로운 사람에게 미치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그 영광스러운 일을 경험하길 소망합니다. 

 

이곳을 떠나더라도 실패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내가 그래야 하고 나의 자녀들도 그래야 합니다. 

우리 가족 모두 당신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 07 05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법도를 사모합니다. 주님의 의로 내게 힘을 주십시오.

 

16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들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19 예수께서 조금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것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주석

16-18. 누가복음 저자는 예수님이 무리를 가르치시고, 기적적으로 물고기를 잡게 하신 것에 대해 말함으로써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설명한다( 5:1-11). 마가는 독자들에게 예수님의 권위를 각인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1. 나를 따라오너라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를 지나가신다. 

그분이 오랫동안 살던 곳은 나사렛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사역을 위해서 사람들이 많이 있던 갈릴리 지역으로 옮겨 오셨다. 

갈릴리는 호수 중심으로 많은 마을들이 조성되어 있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호수주변이라 호젓하고 평화로운 시골마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갈릴리는 폭동과 반란의 장소였다. 

로마에 반기를 들어 폭동을 일으켰다. 

저항의식이 충만한 곳이었다. 

예수님의 사역지가 갈릴리 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수님은 어부들을 주목하셨다. 

양을 기르는 것도 농작물을 키우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초대교회 사역은 사람을 낚는 사역이었다.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라는 그물을 던진다. 

그물에 걸려드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로 한꺼번에 3천명, 5천명이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어부들에게 초대교회 선교사역은 어찌보면 익숙한 느낌이었다. 

자신들이 그물 가득히 물고기를 잡듯이 회심자를 얻게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경험을 사용하셔서 초대 교회 지도자로 삼으셨다. 

 

핵심은 어부들이 예수님을 따랐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목수였다. 

목수가 어부를 불렀다.

말에 시몬,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의 뒤를 따랐다. 

이것이 신비로운 중에 하나다. 

예수님이 특별히 어떤 것을 보여주지는 않으셨다. 

이적을 보여주신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을 따라오라고 권했을 뿐이다. 

처음 제자들은 마치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 지역으로 갔던 것처럼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에 거의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있었다. 

 

오랜만에 EARC 참석한다. 

IVF 국제단체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주님의 백성들이 곳에 모인다.

서로의 사역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한다. .

2017 한국에서 열린 EARC에서 진행국장으로 섬겼다. 

하나님이 동아시아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동아시아의 학생들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신다. 

우리의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신다. 

2024 코로나를 거친 동아시아 학생 운동에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가?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비전과 EARC 어떤 연관을 갖는가? 

이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 

 

주께서 부르실 , 언제든지 따라나서겠다는 초심을 잊지 말자. 

그분을 따라 멀리 왔다. 

앞으로는 어떤 길로 인도하실까?

끝까지 그분의 길을 걷길. 

신실하게 그분을 따라가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제자를 부르시는 주님, 

저도 주님의 제자라고 생각하며 이제까지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운 것도 많습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왔지만, 지금와 생각하면 부끄럽고 후회되는 일들도 있습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바꾸려고 애썼지만, 때로는 고집스러웠고 교만했습니다.

주님, 겸손히 주님을 따르는 사람 되게 하소서. 

어떤 길을 가든지, 주님을 더욱 신뢰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7월 04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 마음이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내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15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대조성경

NIV

“The time has come,” he said. “The kingdom of God is near. Repent and believe the good news!”(15절)

 

주석

15절.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지금 우주를 다스리고 계신다고 인식했다. 하지만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통치가 온 땅의 모든 백성에게 미칠 날이 오기를 기도했다. 그때가 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두 번 오신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두 단계로 온다고 인식했다. 곧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통치는 현재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온 세상에서 이루어진다(IVP 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1. 복음 선포  

오랜 기다림의 끝이 왔다. 

하나님이 당신의 통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신다. 

이스라엘에만 국한 되었던 하나님의 직접통치가 이제 전 세계에 퍼지게 될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그 뜻을 더욱 분명하게 밝히셨다. 

이제 사람들은 하나님의 통치 스타일과 그 내용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섬김의 공동 통치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이 세상을 공동으로 다스릴 계획을 실천하고 계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도 요한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메시지) 그 자체시다.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은 수많은 중간관리자를 부르신다. 

 

지난 주 수련회 설교를 통해 예수님의 복음 선포에 대해 다뤘다. 

그분은 로마제국이 중시하는 황제 중심의 복음 선포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승리와 통치를 전하는 복음을 선포하셨다. 

당시는 로마제국 근방의 나라들과 지속적인 전쟁이 있었고, 그 전쟁에서 승리하여 복귀하는 황제와 그의 군사들이 가져오는 소식을 기쁜 소식이라고 불렀다. 

황제의 통치가 더 굳건해지고, 그들의 적은 패퇴하였고, 수많은 노예와 전리품들을 가져오게 되었다. 

로마의 시민들은 황제체제가 강고해지는 것에 환호를 보냈고, 자부심을 느꼈으며, 황제와 황군을 칭송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황제의 복음 선포에 비견된다. 

드뎌 하나님 나라가 왔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나라가 로마 제국과 유대교 배경 속에 출연한 것이다. 

 

요한도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고 그 메시지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그러나 요한의 회개에는 부족한 것이 있었다.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메시지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통치가 도래했다고 주장하며 선포하신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죄와 죄책을 사라지게 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동참하여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공동 통치하기 위해서라도 죄를 회개해야 한다. 

높은 도덕성과 왕과의 친밀함이 공동통치의 자격 요건이다.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거나 도덕성을 충분히 갖추지 않는다면 공동 통치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가 없다. 

왕과의 친밀함을 통해 지속적으로 왕의 뜻을 파악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사탄의 참소와 대적자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 

이 둘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회개해야 한다. 

주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회개는 후회나 죄책이나 자기 연민이 아니다. 

회개 혹은 회심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지금 가던 그 방향으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높은 도덕성이 우선일까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우선일까?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우선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화해하길 원하신다. 

그 친밀한 관계 속에서 높은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나온다. 

함부로 말하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함부로 정죄하지 않는다. 

그런 자제력을 유지하고, 죄에 대해 멀리하려고 할 때, 그것은 단순히 인간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에서 그분이 주시는 능력으로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며칠 아팠다. 

감기로 인해 쩔쩔맸다. 

나이가 드니 잘 안 낫는 느낌이다. 

아프면 일상을 살아낼 힘이 많이 줄어든다. 

건강한 삶의 루틴을 유지하기도 어려워진다. 

아픈 와중에도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 모든 것을 은혜로 감당했다. 

루틴이 약화된 것은 아쉽지만, 그 와중에 주님의 은혜를 누린 것은 감사한 일이다. 

아프지 않고 일상의 루틴을 유지하는 것도 그분의 은혜요 선물이다. 

더욱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 다시 시작하는 시기다. 

 

 

[오늘의 기도]

당신께 더 가까이 나아오길 원하시는 주님, 

다시 일상의 루틴을 지키며 당신과 깊이 대화하게 하소서. 

당신과의 친밀함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헛수고입니다. 

당신의 뜻을 행해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한다면 그 끝은 후회일 뿐입니다. 

매일 매일 당신의 뜻을 묻고 당신께 집중해서 삶의 목표와 방법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부르심에 반응하게 하소서. 

건강한 리더십을 주셔서 공동체가 함께 당신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끄소서. 

겸손함을 주셔서 제가 아는 지식과 경험으로 당신의 길을 예단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주님, 당신의 품 안에 안겨서 당신의 말과 행동을 모방하고 싶습니다. 

영향력의 확대를 목표로 삼지 말고, 오직 작은 예수, 그림자 예수가 되게 하소서.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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