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니, 주님의 법이 나의 기쁨입니다.

 

6 그런데 빌라도는 명절 때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 주곤 하였다.

7 그런데 폭동 때에 살인을 한 폭도들과 함께 바라바라고 하는 사람이 갇혀 있었다.

8 그래서 무리가 올라가서, 자기들에게 해주던 관례대로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9 빌라도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그 유대인의 왕을 여러분에게 놓아주기를 바라는 거요?”

10 그는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넘겨주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무리를 선동하여, 차라리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12 빌라도는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그 사람을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요?”

13 그들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14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정말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일을 하였소?” 그들은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15 그리하여 빌라도는 무리를 만족시켜 주려고,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한 다음에 십자가에 처형당하게 넘겨주었다.

 

주석

14절. 빌라도 재임기의 유대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떠올려 보면, 빌라도가 예루살렘에 따르는 이가 많았던 갈릴리 출신의 유명한 예언자를 그렇게 공개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처형하기를 주저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예수님을 제거하면 폭동이 일어날 수 있었다. 빌라도는 바로 그것을 피하고 싶어 했다(IVP 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빌라도는 영리한 총독이었다. 

백성들의 마음을 살피는 사람이었다. 

명절 때마다 백성들이 원하는 죄수를 풀어 주곤 했다. 

이건 정치적으로 장단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정치적 인물이 풀려나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물을 풀어주면 정치적 반대파가 늘어나고 또 다른 폭동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었다. 

물론 한 번 붙잡혀서 여러 고문과 심문을 받은 사람이 다시 정치적으로 재기하여 군중들의 규합하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에 대한 정보가 치안 담당자에게 다 노출되었을 것이고, 그와 연관된 사람들도 충분히 조사했을 것이다. 

출옥된다 한들 감시가 심하고 만약 그와 접촉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의 안전도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저런 유익들을 재가며 그를 풀어 주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이득이 있다고 본 빌라도는 유대인의 명절 때마다 죄수 중 한 명을 풀어주었다. 

 

빌라도는 눈치가 빠른 총독이었다. 

예수를 대제사장들이 고소한 이유는 그들이 예수를 시기했기 때문임을 알아차렸다. 

 

10 그는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넘겨주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그들의 고소는 예수가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사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스스로 주장하기보다는 유대인의 진정한 목자로 활동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백성들의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위로하고 회복과 평화를 선언했다. 

원래는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었는데, 그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틈에 예수님의 활동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원하고 있었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그 열망의 절정을 연출했다. 

빌라도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모를 리 없었다. 

예수가 입성할 때 백성들이 어떻게 환영했는지, 성 안에서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었는지, 빌라도는 자신들의 정보원들을 통해 다 듣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를 고발하면서 그의 말과 행적인 유대인의 왕 같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정말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그 어떤 왕보다도 더 나았다. 

빌라도는 예수가 사형을 받을 만한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 모든 것은 대제사장들의 시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그러니 백성들에게 직접 물어본다면 예수가 풀려날 수 있을 거라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백성들은 대제사장과 장로들보다 예수를 더 잘 따를 것이라는 내심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의 영악함과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 

그들은 백성들 사이에서 언론 플레이를 할 줄 아는 영악함을 가졌다. 

생각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빌라도는 당연히 예수를 풀어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이상하게 흘러갔다. 

백성들, 군중들이 갑자기 바라바를 풀어달아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폭동을 일으킨 적이 없으며, 사람들을 해한 적이 없었다. 

예수는 사형을 받을만한 죄가 없었다. 

빌라도는 예수를 사형시키라는 군중들의 함성을 듣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재차 묻는다. 

“그러면, 당신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그 사람을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요?”

유대인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람, 예수 그 자신이 그렇게 주장하기보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별명을 붙여서 불리웠던 사람, 그 예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무죄방면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군중들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던, 정치적 감각을 가진 빌라도는 이 시점에서 결단을 내린다. 

 

예수님은 이 모든 과정을 조용히 지켜만 볼 뿐이었다. 

저주를 내릴 수도 있었고, 이상한 기적을 행하실 수도 있었다.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게 할 수도 있었고, 엄청난 돌풍을 불게하여 거대한 메뚜기 떼가 들이닥치게 할 수도 있었다. 

그 어떤 기적과 이적도 행하지 않으셨다. 

그동안도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기적과 이적을 행하신 적이 없다.

사람들을 위해 병고치는 기적을 보여주셨다. 

사람들을 돌보고 보호하기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셨다. 

자신의 필요가 아니라 사람들, 제자들의 필요를 채워주셨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평온하게 사람들을 응시하셨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도리어 그들을 죄에서 구원해야 할 자신의 소명을 더 깊이 묵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못 박으라”는 외침을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듣고 계셨다. 

그들의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예수님의 슬픔은 더욱 깊어지고 그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도 더욱 커져갔다. 

그들에겐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시킬 단 하나의 방법만이 남았다. 

바로 십자가에서의 죽음이었다. 

 

빌라도는 최선을 다했다. 

그는 백성을 이길 힘이 없었다. 

정치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군중들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여론을 무시해서는 통치를 이어갈 수 없다. 

빌라도가 이해가 된다. 

 

백성도 사실 이해가 된다. 

그들은 쉽게 현혹되는 사람들이다. 

제대로된 정보를 획득하기 어렵다. 

냉철하게 현실의 문제를 분석하기 어렵다. 

군중심리에 현혹되기 일쑤다. 

 

문제는 권력을 가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시기한 셈이다.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고 싶었다. 

하나님을 빌미로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었다. 

백성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예수님이 그토록 비판했던 그룹이다. 

 

이제 내가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 

쇠락해가고 부패해 가는 한국교회에 어떤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부르시고 있나? 

계속 묻고 또 물어야 할 질문이다. 

 

[오늘의 기도]

본받고 싶은 주님, 

주님의 길은 침묵의 길입니다. 

군중들의 외침은 당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구원을 갈망하는 부르짖음입니다. 

그렇게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면서 주님은 그 길을 걸으십니다. 

한국교회의 실태는 참담합니다. 

지도자들 중에 진실함으로 무장한 자가 많지 않습니다. 

생존이 급급하고 명예가 소중하여 타협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죄와 멀지 않고 사람들을 죄로 안내합니다. 

 

지금도 슬퍼하시는 주님, 

한국교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이제까지 한 단체를 섬기면서 그 길을 찾아왔습니다. 

지금부터는 단체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길을 도모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주님의 인도를 받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예수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11월 13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부르짖음이 주님 앞에 이르게 해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

 

1 새벽에 곧 대제사장들이 장로들과 율법학자들과 더불어 회의를 열었는데 그것은 전체 의회였다. 그들은 예수를 결박하고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2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그러자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대답하셨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

3 대제사장들은 여러 가지로 예수를 고발하였다.

4 빌라도는 다시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아무 답변도 하지 않소? 사람들이 얼마나 여러 가지로 당신을 고발하는지 보시오.”

5 그러나 예수께서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상하게 여겼다.

 

ESV

But Jesus made no further answer, so that Pilate was amazed(5절).

 

[오늘의 묵상]

새벽에 사람들을 모았다. 

사실 그 전부터 대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도 밤새 오늘의 모의를 실행하기 위해 깨어 있었다. 

대제사장들, 장로들, 율법학자들이 다같이 모여 예수를 죽이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고 있었다. 

전체 회의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기자는 것이었다. 

그들에겐 사형 집행권이 없었다. 

로마의 법 체계에 따라 빌라도 총독에게 넘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여러 기소할 내용들은 이미 마련했다. 

거짓 증언을 할 사람들도 확보했다. 

 

아침 일찍 빌라도의 법정에 도착했다. 

그도 아침부터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모두들 참 부지런하다.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기소 내용을 유심히 경청한다. 

어떤 죄가 있는지 살핀다. 

살인이나 절도, 강도 등의 죄가 있는지, 로마 법에 정한 법률 위반이 있는지, 특히 로마에 대항하는 정치범인지 꼼꼼히 보았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사형에 처해 달라고 요청한다. 

사형은 아무나 시킬 수가 없으니 빌라도는 더욱 자세히 문건들을 살펴본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가 없음을 확인한다. 

단지 예수가 유대 종교법을 어긴 것처럼 보인다. 

로마의 실정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전통을 범한 것으로 보인다. 

난감하다. 

예수께 묻는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예수는 이제까지 별로 말이 없다가, 빌라도의 말에 응한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
이게 무슨 말인가?

그렇다는 뜻인가 아니라는 뜻인가? 

당신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 말이 맞다는 뜻인가, 아님 당신이 말한 거지 내가 말한 것이 아니오라는 뜻인가? 

애매한 표현이긴 해도, 그간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그렇다는 말로 보인다. 

대제사장들이 들고 일어난다. 

“저 말 꼬락서니를 보십시오. 저자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소이다. 이는 분명히 정치적인 도발이고 반역입니다. 저자에게 사형을 선고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유대인의 왕임을 입증하는 증거를 대기 시작한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말 뿐만 아니라 그의 행동과 행적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예수가 진짜 유대인의 왕, 아니 그보다 더 위대한 분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을 죽이기 위해 단순히 종교 율법을 어겼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가 실제 유대인의 왕처럼 행세했다고 주장해야 했고, 자연스레 예수의 행적에 대한 설명과 그에 대한 증인을 세워야 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예수는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고,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회복시키고, 심지어는 바다 잠잠케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행한 사람이었던 거다. 

예수는 부정하지 않는다. 

다 맞는 말이다. 

빌라도는 의아하다. 

이렇게 멋진 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폭동을 일으키거나 사람들을 규합해서 로마 군대와 전투를 벌인 것도 아니다. 

그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먹을 것을 공급하고 병자들을 치료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형을 시키라고… 

 

예수께 묻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사형시키라고 죄목을 말하고 있는데, 당신의 변론은 무엇이오?”

예수는 잠잠하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증언이 어느 정도 맞아서다. 

혹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예수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죽음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터다. 

빌라도는 의아했다. 

“저들의 말은 거짓입니다. 나는 로마에 대항한 적인 한 번도 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 전혀 미동이 없다. 

그저 하늘을 응시할 뿐이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 

당신의 침묵을 봅니다. 

묵묵히 당신의 길을 가시는 모습을 봅니다. 

사람들의 고소를 조용히 참아 내십니다. 

십자가의 길은 조용히 참는 길입니다. 

 

피곤한 몸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몸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주께서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의 소명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11월 09일 토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법도로 내가 슬기로워지니, 거짓된 길은 어떤 길이든지 미워합니다.

 

55 대제사장들과 온 의회가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그를 고소할 증거를 찾았으나, 찾아내지 못하였다.

56 예수에게 불리하게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의 증언은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57 더러는 일어나서, 그에게 불리하게, 거짓으로 증언하여 말하기를

58 “우리가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내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은 다른 성전을 사흘만에 세우겠다’ 하였습니다.”

59 그러나 그들의 증언도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60 그래서 대제사장이 한가운데 일어서서, 예수께 물었다. “이 사람들이 그대에게 불리하게 증언하는데도, 아무 답변도 하지 않소?”

61 그러나 예수께서는 입을 다무시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제사장이 예수께 물었다. "그대는 찬양을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6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그이요. 당신들은 인자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63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고 말하였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들이 더 필요하겠소?

64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예수는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정죄하였다.

65 그들 가운데서 더러는, 달려들어 예수께 침을 뱉고,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고 하면서 “알아 맞추어 보아라” 하고 놀려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하인들은 예수를 손바닥으로 쳤다.

 

주석

56절. 유대율법에 따르면, 사형 사건의 경우에 거짓 증인은 사형에 처해야 했다. 로마는 공회에게 거짓 증인을 처형할 수 있도록 재판권을 주지는 않았지만, 공회는 적어도 그 증인에 대한 징계는 해야 했다. 그 소송 사건이 그냥 속개되었다는 것은 거기 모인 공회원들이 심각하게 치우쳐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IVP 배경주석).

63절. 대제사장은 예수님의 대답에 분노한다. 예수님이 자신을 메시아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반란 혐의를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메시아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분이 감히 하나님의 왕좌에 앉으리라는 주장을 함으로써 신성을 모독했다. 더 이상의 증인은 필요하지 않다(IVP 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예나 지금이나 법을 잘 알고 법과 가까운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 

법을 잘 알기에 자기가 빠져나갈 방법을 알고 있다. 

법을 잘 알기에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법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다. 

평범한 사람들은 법정에 들어가는 것도 겁이 난다. 

권위자들 앞에 서는 것도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 법을 이용하고 활용할 줄 안다. 

그러니 법망을 교묘히 피할 줄도 알고, 법을 악용할 줄도 안다. 

법을 잘 안다고 도덕적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대제사장 집에는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던 자들이다. 

그 계획의 일부는 거짓 증언이다. 

모든 사람들의 진술이 잘 맞지 않는 것은 그들의 증언이 거짓으로 조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증인의 증언으로 서로 논박된다. 

예수님이 나서지 않아도 저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금방 들통난다. 

만약 예수님이 말로 싸우기로 결정하셨다면, 그 어떤 증언도 논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침묵하기로 결정하셨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모의꾼들은 운짐달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예수님을 기소할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인기 때문에 한낮까지 판결이 미뤄지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전까지 예수의 범법 사실을 밝혀서 결론을 내야 한다. 

사형집행권이 대제사장에게 없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고 빌라도 총독에게 사건을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은 예수께 묻는다. 

"그대는 찬양을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대제사장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찬양을 받으실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며, 그의 아들, 메시아, 즉 기름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맞냐고 묻는다. 

예수님이 드디어 입을 여신다. 

‘당신의 말이 맞소. 

인자는 하늘의 우편에 앉아 있고, 하늘 구름을 타고 내려올 것이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셨다. 

오직 그 사실 하나만을 인정하셨다. 

그러자 대제사장은 곧바로 판결을 내린다. 

신성모독, 

그 죄는 유대인에게 가장 무거운 죄였다. 

그 죄명을 예수님에게 씌운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함께 지켜보던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달려든다. 

달려들어 보기 좋게 침을 뱉는다. 

그 장면이 눈에 남는다. 

몇몇이 달려드는 모습이 선하다. 

분노에 차서 죽일 듯이 달려나와 더러운 침을 예수께 내뱉는다. 

기력이 있는 사람들은 예수께 달려들어 그의 눈을 천으로 가리고 뺨을 갈긴다. 

그들의 분노는 조롱으로 바뀐다. 

그러자 하인들도 예수를 때린다.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고, 예루살렘 성전 테이블을 뒤엎었던 예수님은 그저 당하기만 한다.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그분이 그 정도도 못할까 싶다. 

그러나 그분은 조용히 당하신다. 

반항하거나 논박하지 않으신다. 

당하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권위자들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것이 우리다. 

윗권세의 결정에 그대로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들의 판단을 쉽게 믿는다. 

그들의 처분이 당연하다고 믿고 동조한다. 

그들의 말에 따라 무고한 사람을 때리고 조롱하고 죽인다. 

연약한 분별력이다. 

분별력을 향상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자칫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무시하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그분을 때리고 조롱하고 죽이는 데까지 가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도 있다. 

그러니 더욱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자.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저를 위해 묵묵히 당신의 소명의 길을 걸어가심을 봅니다. 

인류를 위한 당신의 무거운 걸음에 감사드립니다. 

나를 위한 당신의 조롱받음을 슬퍼하며 바라봅니다. 

 

사랑하는 주님, 

제가 더욱 큰 분별력을 갖게 하소서. 

휘둘리지 않게 하소서. 

이쪽 말, 저쪽 말을 주의 깊게 듣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판단하도록 이끄소서. 

과거 기독교 세계관이 가졌던 승리주의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길을 걷길 원합니다. 

죄인들과 연약한 사람들을 위한 삶,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자기 부인과 헌신의 삶, 

그런 삶을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이끄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11월 08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벌리고 헐떡입니다.

 

51 그런데 어떤 젊은이가 맨몸에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니,

52 그는 홑이불을 버리고, 맨몸으로 달아났다.

53 그들은 예수를 대제사장에게로 끌고 갔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54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예수를 뒤따라 대제사장의 집 안마당에까지 들어갔다. 그는 하인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주석

52절.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완전한 붕괴는 벗은 몸으로 도망치는 청년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IVP 비평주석). 

53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유력한 종교 법정인 공회를 대표하는 세 집단이었다. 이 사건의 경우, 공회의 여러 회원들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라고 주장할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대제사장의 집에서 미리 알리지도 않고 은밀한 밤 모임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임은 여러모로 불법이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많은 학자들은 이 어떤 젊은이는 아마도 마가복음을 쓴 마가라고 생각한다. 

예루살렘에 그럴 듯한 집에서 살고 있는 마가. 

그의 집 다락방에서는 예수님의 마지막 식사가 있었다. 

그는 야심한 시간에 예수님을 따라왔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옷을 다 갖추지 못했다. 

집에 있는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라 나섰다. 

예수님은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다. 

제자들은 졸기 바빴다. 

마가는 그 장면을 봤지만, 그도 피곤하여 졸기 바빴을 것이다. 

밤 2-3시쯤이 되었을까.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여러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뭔 일인지 궁금해서 눈이 번쩍 뜨인다. 

그리고 최대한 눈을 비벼 그 장면을 바라본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잡혀서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가는 뒤에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는 예수를 버리지 않았다. 

어디로 가시는지 너무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예수님이라면 언제든지 이런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을 잡기 위해 달려드는 상황에서는 몸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왠만해서는 그냥 이불을 두른 채 도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들이 달려들어 그를 붙잡으려고 하니, 이불을 던져 놓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는 맨몸으로 집까지 뛰었다. 

 

닭이 울기 전 새벽부터 대제사장과 장로들 율법학자들이 대제사장의 뜰에 모여 있었다. 

그들도 잠을 설쳤을 것이다. 

예수를 잡아 죽여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다. 

예수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님은 소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밤새 최선의 기도를 드리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새벽을 깨워 대제사장의 집에 모였다. 

이 두 장면이 함께 겹친다. 

 

베드로는 마가보다는 더 멀찍이서 뒤를 밟았다.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단연코 제자들 중에 가장 용기 있는 자라고 할 수 있겠다. 

대제사장의 집 안마당까지 들어갈 수 있는 용기가 그에게 있었다. 

불을 쬐고 있는 그 집 종들 사이에 들어가 몸도 녹이면서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보를 얻고 싶었다. 

좀 전에는 말고의 귀를 잘라버리는 용맹스러움도 드러낸 바 있다. 

기회가 된다면 예수님을 꺼내서 탈출을 도모할 수도 있다. 

문제는 과연 예수님이 탈출 할 의지가 있는가였다. 

그동안 말씀하신 것을 보면 그분에게 의지가 커 보이질 않는다. 

탈출할 거였으면, 아까 사람들이 몰려올 때, 유다가 다가 올 때, 베드로가 칼을 뽑았을 때 할 일이었다. 

고민이 점점 커진다. 

틱틱 소리내며 타오르는 불빛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긴다. 

이게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예루살렘에서의 고난과 죽음이라는 건가! 

아직도 믿기지 않고 당황스럽지만, 일단 상황을 살펴보기로 한다. 

 

예수님은 저항하지 않으셨다. 

유대의 지도자들 앞에서도 별 말이 없으셨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라는 식이었다. 

그분은 이제 소명을 향해 남아 있는 하루를 이렇게 시작하신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어디로 갈까?
다른 제자들처럼 도망칠까, 베드로처럼 멀찍이 따라갈까, 마가처럼 붙어서 따라갈까, 그러나 발각되어 도망갈까, 예수님처럼 말 없이 그 자리를 지킬까… 

나는 오늘 어디에 서 있는가?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십자가 사건을 묵상하고 상상했습니다. 

감격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마 마가 만큼 그 날의 사건들을 생각했던 사람도 드물겁니다. 

자신의 홑이불을 내던지고 도망갔던 그 사건 말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죽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의지하여 당신의 사랑을 확신합니다. 

저 또한 당신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십자가를 통해 확신합니다.

저는 주님을 순간적으로 버리고 떠난다고 해도 주님은 언제나 저를 사랑하십니다. 

오늘도 그 믿음과 확신으로 주님께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오늘도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들의 성장과 성숙에 약간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하고 열정과 에너지를 붓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님께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의 인생이 주님으로 더욱 반짝거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저의 오늘이 더욱 행복해질 것입니다. 

주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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