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09일 토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법도로 내가 슬기로워지니, 거짓된 길은 어떤 길이든지 미워합니다.
55 대제사장들과 온 의회가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그를 고소할 증거를 찾았으나, 찾아내지 못하였다.
56 예수에게 불리하게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의 증언은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57 더러는 일어나서, 그에게 불리하게, 거짓으로 증언하여 말하기를
58 “우리가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내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은 다른 성전을 사흘만에 세우겠다’ 하였습니다.”
59 그러나 그들의 증언도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60 그래서 대제사장이 한가운데 일어서서, 예수께 물었다. “이 사람들이 그대에게 불리하게 증언하는데도, 아무 답변도 하지 않소?”
61 그러나 예수께서는 입을 다무시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제사장이 예수께 물었다. "그대는 찬양을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6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그이요. 당신들은 인자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63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고 말하였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들이 더 필요하겠소?
64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예수는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정죄하였다.
65 그들 가운데서 더러는, 달려들어 예수께 침을 뱉고,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고 하면서 “알아 맞추어 보아라” 하고 놀려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하인들은 예수를 손바닥으로 쳤다.
주석
56절. 유대율법에 따르면, 사형 사건의 경우에 거짓 증인은 사형에 처해야 했다. 로마는 공회에게 거짓 증인을 처형할 수 있도록 재판권을 주지는 않았지만, 공회는 적어도 그 증인에 대한 징계는 해야 했다. 그 소송 사건이 그냥 속개되었다는 것은 거기 모인 공회원들이 심각하게 치우쳐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IVP 배경주석).
63절. 대제사장은 예수님의 대답에 분노한다. 예수님이 자신을 메시아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반란 혐의를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메시아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분이 감히 하나님의 왕좌에 앉으리라는 주장을 함으로써 신성을 모독했다. 더 이상의 증인은 필요하지 않다(IVP 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예나 지금이나 법을 잘 알고 법과 가까운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
법을 잘 알기에 자기가 빠져나갈 방법을 알고 있다.
법을 잘 알기에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법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다.
평범한 사람들은 법정에 들어가는 것도 겁이 난다.
권위자들 앞에 서는 것도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 법을 이용하고 활용할 줄 안다.
그러니 법망을 교묘히 피할 줄도 알고, 법을 악용할 줄도 안다.
법을 잘 안다고 도덕적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대제사장 집에는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던 자들이다.
그 계획의 일부는 거짓 증언이다.
모든 사람들의 진술이 잘 맞지 않는 것은 그들의 증언이 거짓으로 조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증인의 증언으로 서로 논박된다.
예수님이 나서지 않아도 저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금방 들통난다.
만약 예수님이 말로 싸우기로 결정하셨다면, 그 어떤 증언도 논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침묵하기로 결정하셨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모의꾼들은 운짐달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예수님을 기소할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인기 때문에 한낮까지 판결이 미뤄지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전까지 예수의 범법 사실을 밝혀서 결론을 내야 한다.
사형집행권이 대제사장에게 없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고 빌라도 총독에게 사건을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은 예수께 묻는다.
"그대는 찬양을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대제사장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찬양을 받으실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며, 그의 아들, 메시아, 즉 기름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맞냐고 묻는다.
예수님이 드디어 입을 여신다.
‘당신의 말이 맞소.
인자는 하늘의 우편에 앉아 있고, 하늘 구름을 타고 내려올 것이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셨다.
오직 그 사실 하나만을 인정하셨다.
그러자 대제사장은 곧바로 판결을 내린다.
신성모독,
그 죄는 유대인에게 가장 무거운 죄였다.
그 죄명을 예수님에게 씌운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함께 지켜보던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달려든다.
달려들어 보기 좋게 침을 뱉는다.
그 장면이 눈에 남는다.
몇몇이 달려드는 모습이 선하다.
분노에 차서 죽일 듯이 달려나와 더러운 침을 예수께 내뱉는다.
기력이 있는 사람들은 예수께 달려들어 그의 눈을 천으로 가리고 뺨을 갈긴다.
그들의 분노는 조롱으로 바뀐다.
그러자 하인들도 예수를 때린다.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고, 예루살렘 성전 테이블을 뒤엎었던 예수님은 그저 당하기만 한다.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그분이 그 정도도 못할까 싶다.
그러나 그분은 조용히 당하신다.
반항하거나 논박하지 않으신다.
당하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권위자들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것이 우리다.
윗권세의 결정에 그대로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들의 판단을 쉽게 믿는다.
그들의 처분이 당연하다고 믿고 동조한다.
그들의 말에 따라 무고한 사람을 때리고 조롱하고 죽인다.
연약한 분별력이다.
분별력을 향상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자칫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무시하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그분을 때리고 조롱하고 죽이는 데까지 가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도 있다.
그러니 더욱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자.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저를 위해 묵묵히 당신의 소명의 길을 걸어가심을 봅니다.
인류를 위한 당신의 무거운 걸음에 감사드립니다.
나를 위한 당신의 조롱받음을 슬퍼하며 바라봅니다.
사랑하는 주님,
제가 더욱 큰 분별력을 갖게 하소서.
휘둘리지 않게 하소서.
이쪽 말, 저쪽 말을 주의 깊게 듣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판단하도록 이끄소서.
과거 기독교 세계관이 가졌던 승리주의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길을 걷길 원합니다.
죄인들과 연약한 사람들을 위한 삶,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자기 부인과 헌신의 삶,
그런 삶을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이끄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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